기독교회사_찬송가와 교황 기독교 역사 에피소드

중세 암흑기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찬송을 하였을까? 그들은 세속적인 방식으로 노래하는 것에는 결코 관심도 지식도 없었다. 그들은 오로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과 그분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 그분의 십자가와 부활, 중보, 재림을 노래하였으며, 이것은 기댈 것 없고 목숨이 원수들의 칼끝에 달려 있는 이 땅에 소망 없는 그들의 유일한 낙이었다.
한창 그들과 그들의 책들이 불태워지고 있을 때 원수들은 그들이 화형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보고 춤을 추며 하나님을 조롱하였다. 그래서 주님의 자녀들은 원수들이 춤을 출 수 없을 정도로 매우 느리게 찬송하였다. 하지만 느린 찬송에도 화형대에 몸을 맡긴 그들의 온 마음은 불타오르는 진리에 대한 사랑과 창조주이시며 구주이신 주님을 사모함이 더욱 간절하였다.

그러나 반대편에서 허례와 사치로 가득 찬 마음으로 세속의 부요함과 권력욕을 불태우던 진리의 원수들은 찬송 속에서도 허식과 자랑으로 가득 채워졌다. 사악하고 혐오스런 경쟁심으로 가득 찬 로마 카톨릭의 찬송들은 특별한 임명받은 자들만의 전유물로 평민들은 부를 수도 없는 법령을 만들고, 창조주 하나님이 아닌 자신들의 야망을 후원해 줄 사탄을 찬양하면서 그들의 하나님으로 스스로 속이고 있었다. 그들 중에 대교황으로 불리는 자에 대한 이야기를 살펴보자.

하나님 아버지 어둔 밤이 지나(통일찬송가 68장, 새찬송가 59장)
이 노래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 마그누스(Gregorius Magnus, 540~604)가 작사한 것이다. 그는 로마 카톨릭의 초대교황이며 카톨릭은 대교황으로 부른다. 공식 문서에서 스스로 ‘하느님의 종들의 종(servus servorum Dei)’이라는 칭호를 교황으로서는 처음 사용한 사람이다. 그 이유는 당시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자신을 가리켜 ‘세계 총대주교’라고 칭하자, 이에 반발하여 교황권이야말로 교회의 최고 권위임을 재확인시키기 위해서였다. “베드로좌는 모든 교회의 우두머리이며 전체 교회의 관심과 수위권이 베드로의 후계자에게 위임되어 있다. 따라서 교황은 신앙의 머리이다. 각 주교는 해당 지역에서 저마다 사목권을 유지하지만, 교황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레고리오 1세는 북유럽의 비(非)기독교 백성들(로마 카톨릭이 아닌 모든 그리스도인도 로마 교황권에게는 이교도였다)에 대한 교회의 전교 활동을 조직화하여 이를 독려하였다. 그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그레고리오 선교라고 불리는 잉글랜드의 앵글로색슨족 이교도들(실제로는 당시 이미 존재하던 성경을 믿는 아이단의 잉글랜드 광야교회를 대상으로 함)에 대한 포교였다. 그레고리오는 수도원장으로 있을 당시 로마 시내 광장을 거닐던 중에 우연히 잉글랜드에서 온 포로들이 노예 시장에서 매매된 것을 목격한 적이 있었는데, 이후로 한시도 잊은 적이 없었다고 한다.
잉글랜드를 위한 전교 활동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하게 확신한 그레고리오는 교황 펠라지오 2세에게 청하여 일단의 선교사들을 이끌고 잉글랜드로 향한다는 허락을 받았으나 실패했다. 교황직에 오른 이후에도 그레고리오는 잉글랜드에 대하여 집착하였다. 597년에 그는 자기 수도원의 수사들을 선교사로 임명하여 잉글랜드에 파견하였다. 그는 선교사들에게 이런 칙령을 내렸다. “전능하신 하느님께서는 착한 사람들에게 권위를 주시어 그들을 통해 당신의 자비를 백성들에게 베풀어주신다. 그대들의 사목지로 맡겨진 잉글랜드가 바로 그 경우이다. 그대들에게 내려진 하느님의 강복은 또한 그대들의 손을 통해 사목할 백성들에게도 내려질 것이다.” 그리하여 캔터베리의 어거스틴과 그의 동료 수도사 40여 명은 잉글랜드 로마 교회의 창시자들이 되었다. 잉글랜드 교회는 대교구 두 곳과 교구 열두 곳이 설정되었으며, 캔터베리 교구를 수좌 교구로 결정하였다. 그들은 잉글랜드의 그리스도인들을 회유와 협박으로 개종시키려다 실패하자 전쟁으로 인종청소를 유도하였다. 그레고리오 1세는 잉글랜드에서의 전교 활동이 모종의 성공을 거두자, 네덜란드와 독일에도 선교사들을 파견하였다. 가톨릭 신앙을 전파하고 이에 위배되는 모든 이교 및 미신을 제거하는 것은 그레고리오 1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더불어 이는 그가 교황으로 재임하는 기간 내내 유지된 중요한 정책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였다.

사람은 똑같은 말을 해도 그의 마음에서 나온 표현이기에 서로 다르다. 사탄은 교황 그레고리의 이 노래를 모든 사람이 부르게 하면서 당시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을 이교도로 여기면서 그들을 자신의 수하에 복종시키는 것에 전염했던 그레고리의 치적을 높이고,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이 속임으로 희석되는 것을 보면서 회심의 미소를 띠고 있다. 이 사탄의 작품을 종교개혁의 후예들은 영감 받은 찬송이라며 목청껏 부르고 있는 것을 보시는 우리 주님의 마음은 어떠하실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