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_말씀이 육신이 되신 신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

요한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와 함께 거한다는 놀라운 표현으로 성육신을 기록했다.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요 1:1).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셨다. 말씀은 거룩하신 존재자이시며 하늘 아버지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신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로서 존재하셨다. 인류와 천사들이 창조되기 이전에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
요한은 모든 사람들이 깨닫고 감화를 받을 수 있도록 단순한 표현으로 이 놀라운 문제를 증거하고 있다. 인간의 육체를 쓰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교리는 신비에 속한 것이며 “이 비밀은 만세와 만대로부터 옴으로 감취었던 것”(골 1:26)이다. 이것은 매우 심오한 경륜이고 비밀이다. 우리는 그 비밀을 경이와 감탄 속에서 바라본다. 예수께서 하늘의 본성에 비하여 매우 열등한 인성을 스스로 취하시고 인간으로 오셔서 우리 속에 거하시다니! 그분께서 나타내 보이신 겸손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놀라운 겸손이다. 우리는 그 성육신의 이유를 영원이라는 세월을 통해 연구해야 희미하게 깨달을 것이다. 영원한 사랑에 기초를 둔 그 신비를 아주 겨우 깨달을 수 있을 뿐이다.

1) 성육신의 신비

하나님께서 육신으로 나타나셔야만 했다는 사실은 실로 신비에 속하는 것이며,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이 문제를 이해하기 어렵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취하신 것처럼 믿게 하신 것이 아니라 정말로 인성을 쓰셨다. “자녀들은 혈육에 함께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한 모양으로 혈육에 함께 속하”(히 2:14)셨다. 그리스도는 마리아의 아들이었고 인간의 혈통을 따른 다윗의 후손이었다. 주님께서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로 그 신분을 밝히신 것이다.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세력으로 인해 인간이 타락할 것에 대비하여 태초부터 준비를 해놓으셨다. 구속의 경륜은 인간이 타락한 후에 만들어진 고안책이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창조 때로부터 중보자의 직분에 임명되었고, 영원 전부터 인간의 중보자요, 대리자요 설정되셨다. 이 세계가 창조되기 이전에 그리스도의 신성이 인성을 쓰시도록 결정되었던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를 위하여 한 몸을 예비하셨도다”(히 10:5)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때가 차고 하늘의 시계가 그 섭리의 시간을 가리킬 때 주님께서는 베들레헴의 갓난아기로 이 세상에 오셨다.

구속 사업은 그리스도가 당신 자신의 본체에 인성을 쓰심으로 이루어졌다. 그리스도 안에 인성을 이루고 이 타락한 인류를 신성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이 구속 사업이다. 이제 인류는 예수님 안에서, 마치 그리스도가 하늘 아버지와 하나이신 것처럼 하나가 될 수 있게 되었다. 포도나무와 그 가지가 붙어 있는 것으로 상징되는 이 놀라운 연합은, 유한한 인간이 그리스도의 인격에 연결되고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의 본성에 흡수되게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하나가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성과 인성을 취하신 존재로서 당신의 긴 인간의 팔로 온 인류를 감쌀 수 있으셨으며, 동시에 당신의 거룩한 팔로 무한하신 분의 보좌를 붙잡을 수 있으셨다.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시키시고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해 우리와 같은 위치로 내려오신 것이다.
죄와 부정을 추호도 알지 못하신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상태에 놓여 있는 인성을 쓰셨다. 이것은 유한한 인간으로서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굴욕이었다. 이 얼마나 깊고 진지한 사색과 명상을 요하는 문제인가! 주님께서는 인간들 사이에서 궁핍을 맛보시고 가장 심한 굴욕을 당하시기까지 자신을 굽히셨다. 주님의 가난하심을 인하여 우리로 부요케 하시려고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셨다.

2) 인간의 모본이 되시기 위해

왜 성육신의 방법을 택하셔야 했는가? 인간이 타락한 후에 사단은 인류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사실이 입증되었다고 선언하였다. 그리고 그는 이 주장을 온 우주에 퍼뜨렸다. 이제 하나님의 법은 지킬 수 없는 법이니 무효화시키라는 도전을 받게 되었다. 사단의 주장은 사실인 것처럼 들렸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인성을 가지고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 이 때에 그리스도께서는 이 기만자의 정체를 폭로하기 위하여 오셨다. 그러기 위해 그분께서는 인성을 쓰기로 하셨던 것이다. 천국의 대주재이신 주님께서는 인간의 사건을 책임지셨다. 인간이 소유할 수 있는 동일한 조건들을 가지시고, 인간이 반드시 극복해야 하는 사단의 시험들을 이기셨다.

예수께서는 인성을 가지시고, 매순간 계속적으로 하나님 아버지 안에 연합하여 거하고, 하나님 아버지를 의지하며, 하늘의 능력과 연합될 때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손수 모본으로 보여주셨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능력과 은혜를 받아 우리도 그 모본을 따라 살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주셨다. 이렇게 하는 것이 타락한 인간이 거룩한 성품에 참여자가 되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취하심으로 인간의 시련과 슬픔 및 인간이 당해야 할 모든 시험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셨다. 죄에 대하여 낯설은 천사들은 특이한 시련 가운데 있는 인간을 동정할 수 없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성을 쓰시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심으로 시험을 받게 될 모든 영혼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알 수 있게 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모욕, 조롱, 멸시 및 조소를 감수하셨다. 뿐만 아니라 사랑과 선하심과 자비로 충만한 당신의 복음을 허위 진술하며 악용하는 말을 들으셨다. 주님께서는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거하셨다고 해서 귀신의 왕이라는 호칭도 들으셨다. 주님의 탄생은 초자연적인 것이었으나 신령한 사물에 대하여 눈이 어두워진 당신의 친 백성들은 그것을 오점과 흠으로 여기고 비웃었다. 주님께서 맛보지 않으신 인간의 쓰라린 슬픔이란 단 한 점도 없었으며, 주님께서 견디지 않으신 인간의 저주란 단 한 부분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번도 죄를 지시거나 시험에 넘어지신 적이 없었다. 우리를 위해 모든 고난과 시험과 유혹을 견디신 것은, 우리의 모본이 되셔서 그 자취를 좇게 하시기 위함이었으며, 하나님께로 우리들을 인도하시기 위함이었다.
타락한 인류를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슬픔의 인간으로 이 땅에 계셨고, 비애를 맛보셨으며, 당신의 천국을 떠나셨다는 사실은, 우리의 모든 교만을 묻어버리게 하고, 우리의 모든 허영심을 부끄럽게 하며, 자부심과 높아지고자 하는 우리의 죄를 드러내고도 남음이 있게 한다. 죄인들의 결핍, 시련, 비애 및 고통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삼으신 주님을 바라보라! 죄의 결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서 이러한 고난을 받으시고 영혼의 상처를 입으셨다는 것을 우리 마음에 깊은 교훈으로 받아들일 수 없을까?

그리스도께서 인성을 취하시고 이 땅에 오신 것은, 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이 하늘 아버지와 아들과 연결될 때에 사단과의 투쟁 속에서도 모든 거룩한 요구에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증거하시기 위함이었다. 주님께서는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라고 말씀하셨다. 그분의 놀라운 사랑과 성육신의 신비는 우리로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순종하도록 만들기에 넉넉하지 않은가?

3) 사단의 공격과 예수 그리스도의 승리

에덴에서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희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창 3:15)는 구속의 경륜을 발표하셨다. 이 말씀에 나타난 사단과의 적의의 관계는 단순히 사단과 예수 그리스도와의 관계에만 국한해서 말씀하신 뜻이 아니었다. 이것은 모든 인류에게 적용될 것이었다. 사단과 그의 천사들은 모든 인류에 대하여 증오심을 느낄 것이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인간 속에 넣어주시는 은혜로 말미암아 생기는 죄에 대한 증오심이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 생긴 증오심은 초자연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이 증오심은 일면 자연적인 것이었고, 그러나 또 다른 면으로는 인성과 신성을 겸하신 주님께 초자연적인 것이기도 하였다. 이 지상에 산 인간으로서 그리스도께서 하신 것처럼 완전한 증오심을 가지고 죄를 미워한 자가 과거에 전혀 없었다. 주님께서는 거룩한 천사들에게 작용했던 죄의 기만적이며 미혹적인 세력을 이미 보셨으며 당신의 모든 능력을 다하여 죄를 대적하셨다.
그리스도의 순결성과 거룩하심 및 죄를 짓지 않으신 주님의 의는 육욕과 죄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죄들에 대한 견책이 되었다. 주님의 생애 가운데 나타난 진리의 빛은 사단이 세상을 감싸고 있는 도덕적인 암흑 속에서 밝은 빛을 비추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거짓됨과 기만적인 성품을 노출시켰으며 많은 영혼들의 심령 가운데 있는 부패케 하는 감화력을 진멸하셨다. 사단이 그처럼 극렬한 증오심을 가지고 예수님을 대적한 원인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었다. 사단은 그의 타락한 무리들을 이용하여 예수님과 가장 치열한 전쟁을 벌이기로 결심하였는데, 그것은 주님께서 하늘 아버지의 완전하신 대표자로서 그 품성과 실행으로써 사단의 주장을 논박하시기 위해 이 땅에 계셨기 때문이었다. 사단은 하나님의 속성을 가혹하고 무자비한 분이라고 비난하였다. 그러나 사단은 아무도 멸망받지 않고 회개함으로 모든 자들이 영생하기를 바라시는 동정과 자비심이 많으신 하늘 아버지의 품성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난 것을 보았다.

사단은 그리스도를 정복하려고 사력을 다 하였다. 그는 인성을 쓰신 주님을 쉽사리 이길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였다.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마 4:8, 9)고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동요되지 않으셨다. 주님께서는 이 유혹이 얼마나 강하다는 것을 느끼셨으나 우리를 위하여 그 시험과 싸워 이기셨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인간이 마땅히 사용할 수 있는 무기 곧 강한 권고의 힘이 되시는 당신의 말씀인 “기록하였으되”(마 4:4, 10)만을 사용하셨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을 때 사단은 자신이 패배한 것을 깨달았다. 그는 자신의 참된 성격이 온 하늘에 드러난 것과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의 존재자들과 세계들이 하나님 편에 서게 되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는 자신의 영향력이 완전히 막힌 것을 보았다. 사단은 예수님의 발꿈치 밖에는 상하지 못하였다. 그리스도의 인성은 대쟁투를 종결시킨 승리를 세세토록 증명할 것이다.

4) 인간으로서 죄를 승리하심

타락한 상태에 있는 인성을 당신 스스로 취하셨으나 그리스도께서는 추호도 인간의 죄에 참여하시지 않으셨다. 주님께서 인간을 에워싼 연약함과 약점을 맛보실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선지자 이사야로 하신 말씀에 우리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마 8:17)고 하신 때문이었다. 주님께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이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죄를 아시지 못하였고 “흠 없고 점이 없는”(벧전 1:19) 하나님의 어린 양이셨다. 만약 사단이 그리스도로 가장 작은 죄 한 가지라도 범하도록 유혹할 수 있었다면 그는 구세주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먼저 말했듯이 그는 주님의 발꿈치를 상하였을 뿐이다. 만약 그리스도의 머리를 상하게 할 수 있었다면 인류의 소망은 완전히 사라졌을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인성의 완전한 죄 없으심에 관하여 의혹을 품어서는 안 된다. 우리의 신앙은 지적인 신앙이어야 하며 대속 제물이신 주님께 대한 완전한 신뢰심과 전적인 신앙을 가지고 예수님을 바라보아야 한다. 주님께서는 우주의 거민들에게까지도 당신의 인성에 나타난 완전한 겸비와 하나님의 모든 요구에 대한 완전한 순종을 보이셨다. 그분은 가장 미천한 인간까지라도 구원하실 수 있으시며, 거룩한 능력을 인간에게 주셔서 인간이 거룩한 성품의 참여자가 되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