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_우리를 위해 비우신 하나님

총 제목:인자, 가까이 오신 하나님

모세는 어느 날 불에 타고 있는 떨기나무를 보았습니다. 분명히 떨기나무는 불에 타 없어져야 하지만 나무는 그대로 보존되면서 불이 타오르고 있었습니다. 그 장면은 인간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신비였습니다.

이 신비한 장면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상징을 예표해 줍니다. 이것은 인자가 되셔서 우리에게 가까이 다가오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를 상징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신성의 연합을 상징해주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성육신의 주제를 연구할 때에 우리는 놀라운 사랑의 신비를 깨닫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주제에 접근할 때에 조심해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이리로 가까이 하지 말라!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출 3:5)고 하신 말씀처럼, 겸손하고 주의 깊게 이 주제를 연구해야 합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예수님의 성육신의 신비에 대해 함께 나눠봅니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에 대한 연구는 숨은 진리를 깊이 탐구하는 사람들에게 풍성한 보상을 가져올 것입니다. – 편집실 –


제 1부: 우리를 위해 비우신 하나님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5~8).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켜 “근본 하나님의 본체”이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본체이신 분께서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다고 기록했다.
하나님이 자신을 비우시고 사람이 되시다니, 얼마나 놀라운 사랑이며 겸손인가! 그렇게 하신 이유는 우리 타락한 인간들 가까이 오셔서 죄를 대속하시고 모본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렇게 하셨다. 하나님의 위대하신 속성을 다 비우시고 종처럼 인간을 위해 봉사하시며, 우리 죄를 지시고 죄 자체가 되셔서 십자가의 참혹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
그렇다면 아들 하나님이 무엇을 비우셨는가?

* 하나님의 속성 가운데 대표적인 속성
1. 전지성(Omniscient):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성
2. 전능성(Omnipotent):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는 '전능하신' 속성.
3. 무소부재성(Omnipresent): 어디에나 계실 수 있는 속성.

1) 전지성을 비우심

“예수는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 하나님과 사람에게 더 사랑스러워 가시더라”(눅 2:52).

예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성육신의 사실만 보아도 놀라운 일인데, 예수님은 자신을 철저히 비우신 무력한 아이로 태어나셨다.
예수님께서 전지성을 비우신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누가복음 2장 52절 말씀처럼 어린 아기로 태어나신 예수님에 대해 성경은 “그 지혜와 그 키가 자라가며”라고 묘사하였다.
이 성경 구절은 위대한 창조주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아시는 전지성을 가진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모르는 무력한 아이로 태어나셔서, 자라가시면서 점차적으로 지혜를 터득하신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영어로 이 구절을 살펴보면 그 의미가 더 우리에게 다가온다.
“And Jesus increased in wisdom and stature” (KJV).
“And Jesus grew in wisdom and stature” (NIV).
예수께서는 자라가시면서 배우시고 지혜가 늘어가셨다.

예수께서는 열두 살이 되어 유월절에 성전에 올라가셔서 희생제물을 보시면서 비로소 당신의 사명을 깨달으셨다. 그 장면을 상상해보라! 열두 살이 된 소년 예수께서는 처음으로 성전을 바라보셨다. 그리고 흰 두루마기를 입은 제사장들이 엄숙하게 성전 봉사를 행하는 것을 보셨다. 그분은 제단 위의 피 흘리는 제물을 바라보셨다. 향연이 하나님 앞으로 올라갈 때에 그분은 다른 경배자들과 함께 머리 숙여 기도하셨다. 그분은 그 감명적인 유월절 예식들을 목도하시면서 날마다 그 예식들의 의미를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셨다. 의식의 모든 행사는 자신의 생명과 관련이 있는 듯이 생각되었다. 새로운 충동이 그분의 마음속에서 일어나고 있었다. 그분은 조용하게 명상에 잠기셨다. 자신의 사명의 신비가 구주에게 공개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런 장면들과 사명을 명상하는 일에 골똘하여 소년 예수님은 부모 곁에 머무르시지 않았다. 그분은 홀로 있기를 원하셨다. 유월절 예식이 끝난 후에도 그분은 여전히 성전 뜰에 남아 계셨다. 그래서 다른 참여자들이 떠나간 후에도 그분은 뒤에 남으셨던 것이다.

사명의 신비를 깨달으신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과 뜻을 행하기 위해 준비하셨다. 어린 예수님의 상태를 보아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입으신, 전지성을 비우신 그분의 겸손을 깨닫게 된다. 전지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을 비우사 무력한 아이로 태어나시고 지내시고 자라나신 것을 얼마나 놀라운 신비이며 겸비인가!

2) 전능성을 비우심

“내가 아무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요 5:30).

예수님께서 인성을 입으셨을 때에도 완전하신 하나님이셨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을 쓰시고 우리의 모본이 되시기 위해 입으신 예수님의 인성에 대해 생각해 보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시험을 당하실 때 신성을 사용하시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살리시고 치유를 위해서 하나님의 능력에 의지하신 것처럼, 시험을 당하실 때도 말씀의 능력과 믿음으로 승리하셨다.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되셨고 시험도 같은 방식으로 받으셨다. 광야에서 시험을 당하시던 예수님을 보라!

예수님은 지상에서 인성을 쓰시고 사실 때에 참을성 있게 날마다 힘써 일하셨다. 예수께서는 인생의 미천한 길을 당신의 모본으로 성결하게 만드셨다. 하늘의 주재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소박한 의복을 입으시고 거리를 다니시며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셨다. 그러나 갈릴리 해변에서 5천 명의 굶주린 영혼들을 먹이시던 이적을 행하셨을 때와 똑같은 능력을 소유하셨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짐을 덜거나 수고를 가볍게 하시기 위하여 하늘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다. 예수님께서는 온갖 재난과 슬픔이 따라다니는 인성을 취하셨으며, 가장 혹독한 시험과 시련을 당하셨다. 하늘의 주재이신 그리스도께서 몸소 인성을 쓰신 것뿐만 아니라, 가장 무거운 짐과 가장 미천한 직무를 감당하시기 위하여 자신을 낮추셨다는 사실은 천사들에게도 하나의 오묘였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하신 것은 우리 중 하나같이 되셔서 인간의 수고와 슬픔과 피곤을 경험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님은 우리 중 하나가 되어 순종의 모본을 보이셨다. 이 일을 위하여 그분은 인성을 취하시고 우리의 삶을 체험하셨다.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히 2:17). 만일 우리가 예수께서 겪지 않으신 어떤 일을 겪어야 한다면 사단은 이 점에 대하여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에게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할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히 4:15)으셨던 것이다.
그분은 우리가 당하는 모든 시험을 겪으셨다. 그분은 우리에게 제공되지 않은 능력은 당신 자신을 위하여 조금도 사용하지 않으셨다. 그분은 사람으로서 시험을 대하시고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써 승리하셨다.

3) 무소부재성을 비우심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요 11:21).

인성을 쓰신 예수께서는 동시에 아무 곳에나 존재하실 수 없었다. 이 성경 구절은 마르다가 그녀의 오라버니 나사로의 죽음 앞에서 슬프게 예수께 말한 내용이다.

아끼고 사랑하던 제자 나사로가 병들어 죽게 되었다는 소식을 받은 예수께서는 곧바로 그곳으로 가지 않으시고 며칠을 더 유하시다가 가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나사로의 병실에 계셨더라면 사단이 그를 이길 힘이 없었을 것이므로 나사로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멀리 떠나 계셨다. 원수가 그의 능력을 행사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은 그분이 정복한 원수로부터 나사로를 다시 찾아오시기 위함이었다. 그분은 나사로가 죽음의 지배 아래에 들어가도록 허락하셨으며, 고통받는 누이들은 오빠가 무덤에 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이 오라비의 죽은 얼굴을 바라볼 때에 구주에 대한 믿음이 격렬하게 시험받을 것을 아셨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그들이 겪는 투쟁으로 그들의 믿음이 더욱 큰 능력으로 빛나게 될 것을 아셨다.

예수께서는 여기저기에 동시에 존재하시거나 계실 수 없었다. 그것은 인성을 쓰신 까닭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무소부재성을 비우셨다. 먼 길을 흙먼지를 일으키며 수고스럽게 걸어 다니시면서 복음을 전하셨다.

4) 예수님의 겸비

그리스도께서 인간이 되시기로 동의하시는 가운데 나타내신 겸비의 정신은 온 하늘의 천사들과 존재자들도 기이하게 여기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선재성에 대한 사실이 없었다면, 인간이 되기로 동의하신 것이 이렇게 놀라운 겸비가 되지 못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에서의 그리스도의 위치를 알기 때문에 이 사실에 놀란다. 우리는 인간의 위치로 오셔서 우리를 손수 만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는 능력을 주시기 위해, 하늘의 왕의 제복과 왕관과 높은 지위를 내려놓으신 예수님을 매일 명상해야 한다.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는 신성에 인성을 옷 입으셨으며, 죽기까지 복종하셔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의 인성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우리의 영혼을 그리스도께 연결시키며, 또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를 하나님께 연결시키는 금고리이다. 이 주제는 우리가 항상 명상하며 연구하는 우리의 연구 과제가 되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실제적인 인간이셨다. 그렇지만 그분께서는 육신으로 계신 하나님이셨다. 생각하면 할수록 얼마나 크신 사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