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권두언

우주에는 심각한 법정 투쟁이 진행 중입니다.
하나님의 법은 불공평하고 결함이 있기 때문에 우주의 행복을 위해서 그 법을 폐기해야 한다는 사단의 고소가 하늘 법정에 상정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계명은 피조물들은 결코 지킬 수 없는 것이며, 하나님은 그 지킬 수 없는 법을 강요하는 이기적인 분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의 경륜을 세우셔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셨습니다.
그 구속의 경륜 속에는 하늘이 이전에 결코 쏟아본 적이 없는 놀라운 선물, 곧 당신의 독생자를 주신 사랑의 선물이 들어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의 사랑을 증명하기에 충분했고, 계명을 지키는 그의 의로운 생애는 하나님의 법을 옹호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아직 사단의 고소가 해결될 수 없었습니다.
우주에 걸려있는 이 소송사건은 하나님 혼자서는 해결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는 증인들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하나님의 법의 공의를 드러내고 옹호해 드릴 증인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사단이 던진 이 고소에 대한 증명과 변호가 공정하고 명백하게 온 우주 앞에 이루어지지 않으면 하나님께서는 사단과의 그리고 죄와의 전쟁을 끝마치실 수가 없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기다리고 계십니까?
자기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굴복하고, 성령의 충만하심과 능력을 받아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사람들,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께 승리를 가져오며 우주의 법정에서 하나님을 변호할 증인들이 나타나기를 지금 하나님께서는 학수고대하고 계십니다.

우리 속에 놀라운 구속의 신비가 이루어지기를,
그리하여 하나님의 증인이 되기에 부족함 없는 독자 여러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강 병국 목사

 

Love Letter_당신의 거울 앞에서

강 영은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볼 것을 인함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일 3:2~3).

아직 한참 더 기다려야 할까요?
들여다보면 당신과 똑같은 얼굴이 비치면 좋으련만
당신을 전혀 닮지 않은 윤곽이 언뜻 투영되면
소스라치게 놀라 뒷걸음칩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바라다보면 당신과 똑같은 마음이 비치면 기쁘련만
여기저기 각진 모서리 불뚝 솟아 있는 걸 보면
깜짝 놀라 주저앉습니다.


당신의 거울은 너무나 적나라해
선뜻 다가가 비춰보기가 두려워집니다.
마음과 생각과 동기를 다 드러내는 당신의 신기한 거울…


거짓말을 하지 않는 당신의 거울은
있는 그대로 다 비춰주어 겁이 나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당신의 거울이 아니었던들
제가 어찌 제 모습을 알 수 있었겠습니까?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할까요?
고운 모습 비치기를 당신은 그렇게 간절히 바라시는데…
얼마나 더 세월이 흘러야 할까요?
끝없는 원처럼 둥근 사랑의 마음 당신은 원하시는데…


오늘도 당신은 거울 깊숙이에서 저를 바라보십니다.
그 속의 당신의 모습과
그 밖의 저의 모습이
똑같이 닮아있기를 원하시면서…


아직
거울 앞에 서면
여기저기 부서진 이미지만 흩어져 보입니다만
곧 거울 속에서
당신과 똑같이 닮은 사람을 볼 것을 믿어봅니다.
당신과 똑같은 사람을 만날 것을 믿어봅니다.


언젠가
그때가 오면,
그래서
내가 당신의 얼굴을 뵙게 되면,
저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그 얼굴이 바로 거울에 비치던 얼굴이었기에…
그 마음이 바로 거울에 비치던 마음이었기에…
그 모습이 바로 깨끗한 주님 당신의 모습이 되어 있기에…

 

제1부_하늘에서 시작된 전쟁

총 제목: 하나님께서 무엇을 기다리시는가?

성경을 연구할 때 우리는 성경 전체에 흐르는 하나님의 사랑과 소원을 발견하게 됩니다.
곧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베푸신 하나님의 놀라운 구속의 방안에서 우리는 그것을 봅니다.

성경 전체에 펼쳐져 있는 구속의 역사와 흐름을 보면, 왜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으며, 왜 아직도 죄의 역사가 끝나지 않고 있는지, 그리고 지금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기다리시는지 깨닫게 됩니다.

그러면 우리는 깊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의 원대한 구속의 역사에 있어서 우리의 할 몫은 무엇이며, 또한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전쟁에서의 예수님과 인간의 역할은 무엇일까 라는 주제들에 대해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구속의 역사와 그 흐름에 대해 문답식으로 공부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이 중요한 문제를 함께 연구할 때에 하늘의 신비한 구속의 비밀을 깨닫게 되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



이 세상에는 슬픔과 불행과 고통이 끊이지 않고 일어나고 있다. 날로 더해가는 비극적인 일들과 사건들과 불안한 정세들을 보면서, 우리는 이 모든 것이 죄의 결과로 인해 초래된 것임을 알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언제 이 세상의 죄의 역사를 마치실 것인가? 하나님께서는 무엇을 기다리고 계시는가?

이제부터 우리는 질문과 답을 통해, 어떻게 죄가 시작되었으며, 이 세상은 언제 어떻게 끝마치게 되는가, 그리고 죄의 역사가 마쳐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하는 문제에 대해 공부해 보기로 한다. 연구를 마치기 전에 우리는 하나님께서 지금 무엇을 기다리고 계시는지에 대해 깨닫게 될 것이다.

** 죄가 생기기 전의 하늘은 어떠했는가?

성경에는 죄가 생기기 전의 하늘에 대해 많이 언급되어 있지는 않지만, 우리는 몇 가지 성경 절들을 통해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던 세계, 죄 없는 하늘이 어떠했는지 상상해볼 수 있다.
“여호와께서 그 보좌를 하늘에 세우시고 그 정권으로 만유를 통치하시도다”(시 103:19).
“그 때에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하였었느니라”(욥 38:7).

 죄가 생기기 전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온 우주는 완전한 조화와 평화, 진리와 사랑이 충만했으며, 모든 것은 완전하고 아름다웠다. 서로가 서로를 자기 몸처럼 사랑하며,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돌리는 것이 하늘 천사들과 우주 거민의 기쁨이었다. 하늘 거민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진실되고 순수하며 거룩한 사랑뿐이었다. 모든 것은 완전하고 아름다웠고 안전하였다.

** 그러면 하늘을 지배하던 법은 무엇이었는가?

하늘의 존재들은 하나님의 법이 존재하고 있었는지 모를 정도로 하나님의 뜻과 완전히 조화되어 있었으며,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순종하기를 즐거워하였다.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이었던 무아적인 사랑은 온 하늘을 지배하는 법칙이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시 89:14).
“주의 의는 영원한 의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시 119:142).
 하나님 정부의 기초는 사랑의 율법이었다. 모든 존재자들의 행복은 이 의의 원칙과 완전히 일치하는 것에 있었다. 의와 진리, 공의와 인자함은 하나님 나라의 법이었다. 성경은 하나님 율법은 완전하고, 진실되며, 순결하며 의롭고 영원하다고 선포한다(참고 시 19:7-10).
모든 피조물은 이 사랑의 법에 순종하므로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사랑과 충성과 봉사를 계속하는 동안에는 서로에 대한 사랑과 그 하늘의 행복을 파괴할 불화는 없었다.


** 그런데 어떻게 죄가 시작되었는가?

죄가 없던 하늘에서 어떻게 죄가 시작되었는가 하는 것은 오묘이다. 우리는 다만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죄의 역사가 누구에 의하여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알 수 있다.
“주 여호와의 말씀에 너는 완전한 인이었고 지혜가 충족하며 온전히 아름다웠도다.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어서 각종 보석… 으로 단장하였음이여… 너는 기름부음을 받은 덮는 그룹임이여 내가 너를 세우매 네가 하나님의 성산에 있어서 화광석 사이에 왕래하였었도다”(겔 28:12-14).
 위의 말씀에서 사단이 두로 왕으로 묘사됐다는 것을 알 수 있는데, 13절에는 “네가 옛적에 하나님의 동산 에덴에 있”었다고 나와 있다. 그러면 사단은 본래 어떤 존재였는가? 위의 말씀에 의하면 사단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모든 피조물 중에 가장 큰 영광과 능력을 받았고 가장 아름다웠으며 탁월한 지혜를 가졌던 천사장이었다. 루시퍼(사단의 타락하기 전 이름-사 14:12 KJV)는 하나님의 보좌 주위를 왕래하던 가장 큰 사랑과 신임을 받은 그룹 천사였다.

** 루시퍼는 어떻게 하나님께 반역하게 되었는가?

완전하였던 루시퍼는 어떻게 죄를 품게 되었을까? 그는 어떻게 해서 죄의 왕이 된 것일까?
“네가 지음을 받던 날로부터 네 모든 길에 완전하더니 마침내 불의가 드러났도다. … 네가 아름다우므로 마음이 교만하였으며 네가 영화로우므로 네 지혜를 더럽혔음이여”(겔 28:14,17).
 성경은 루시퍼에 대해 “마음이 교만하였”다고 말한다. 그의 모든 영광과 지위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그리스도께 돌려지는 영광을 자신이 받고자 하였으며, 그분만이 가질 수 있는 권세를 탐하였다. 바로 루시퍼의 이 교만과 자신에 대한 사랑이 하늘의 평화를 깨뜨리고 세상에 죄를 가져온 원인이 되었다.
 하나님께서는 루시퍼에게 돌아오도록 간청하시고 경고하셨다. 루시퍼는 자신이 하나님의 정부에 반역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의 자존심은 끝까지 하나님의 호소에 굴복하지 못하게 하였다. 교만은 불신을, 불신은 죄를 낳았다.
 사단은 자신의 권위와 지위를 이용하여 자기를 따르는 사랑스럽고 충성스런 천사들에게 교묘하게 하나님께 대한 불신의 씨앗을 심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정부의 법에 반대하도록 선동하고, 하나님을 불공정하다고 비난하면서 겉으로는 자신이 하늘의 조화와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이런 의심과 불신의 정신은 천사들 사이에 번지기 시작하였으며, 하늘의 천사들 사이에 분열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 루시퍼 외에도 범죄한 하늘의 천사들이 있었는가?

성경은 루시퍼에 의해 하늘의 천사들 사이에 일어났던 투쟁에 대해 분명히 말씀하고 있으며 그로 인해 마귀의 편에 가담한 범죄한 천사들이 있음을 말씀한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며” (벧후 2:4).
“또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에 가두셨으며.” (유 6).
 어떤 이들은 인간 말고도 범죄한 존재들이 있는지 의문을 가진다. 그러나 위의 말씀은 “범죄한 천사들”이 있음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다. 그래서 천사들 중에 루시퍼(사단)의 편을 선택한 무리가 생겨나게 되었다. 사단은 자기 혼자 범죄하고 타락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따르던 많은 천사들을 기만하여 범죄에 가담시켰다.

** 하늘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쌔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계 12:7,8).
 루시퍼의 반역으로 인해 하늘에서 사단과 하나님과의 전쟁이 시작되었다. 성경은 사단이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하늘에서 쫓겨난 사단과 그의 추종자들은 하나님께서 가장 아끼시는 인류를 자신의 편으로 만들고자 결심했으며 그렇게 해서 하늘에서 시작된 선과 악의 전쟁터는 이 땅으로 옮겨지게 되었다.

제2부_싸움의 쟁점

하나님과 사단 사이의 일어나게 된 전쟁, 선과 악과의 이어지는 전쟁을 보면서 사람들은 의아해할 것이다. 왜 하나님께서는 즉시 죄의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셔서 지금까지 이토록 많은 문제가 일어나도록 허용하셨을까? 도대체 이 전쟁의 쟁점은 무엇인가?

** 왜 하나님께서는 반역이 일어나자마자 사단을 즉시로 멸하지 않으셨는가?

이것은 많은 사람이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질문이며 이 질문에 대해 어떠한 대답을 하고 있는지는 매우 중요하다.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출 35:5). “중심에 진실함을 주께서 원하시오니… 주의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키시고 자원하는 심령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시 51:6, 12).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치 아니하며…”(호 6:6).
 위의 말씀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을 억지로나, 공포와 두려움으로가 아니라 진실과 사랑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섬기기를 원하신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이다(요일 4:8).
 만일 하나님께서 사단이 반역을 했을 때에 그를 즉시로 멸하셨다면 사단의 반역의 이유는 의심과 비밀로 덮어진 채 우주 거민들과 천사들은 하나님을 사랑으로가 아니라 두려움과 공포로 섬기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므로 사단의 진정한 본질이 드러나도록 하나님께서는 허용하셨고 죄의 성질과 그 결과가 드러나도록 하셨다. 그래서 모든 지성적 존재들은 자신의 자유 의지(선택권)를 가지고 하나님을 선택하든지 사단을 선택하든지 자기의 섬길 자를 택하도록 하셨다.

** 사단과의 싸움에서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방법은 무엇인가?
“그 손의 행사는 진실과 공의며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시 11:7,8).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는 자시니라”(약 5:11).
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무기는 사랑과 공의이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으로 섬기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어떤 위협이나 강제적인 것에 의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선택에 의해 자원하고 기쁜 마음으로 그분을 따르기를 원하신다. 누구든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심을 알게 된다면 그분을 사랑하여 따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 사단이 사용하는 무기는 무엇인가?
“저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저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니라”(요 8:44).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3-15).
 사단의 무기는 거짓말과 거짓된 가르침과 미혹과 기만과 압제와 핍박이다. 사단은 부귀와 명예로 유혹한다. 그러나 여기에 미혹되지 않는 자들은 핍박과 죽음으로 위협하고 강제적 수단을 사용한다. 그는 또한 진리에 대한 타협과 오류를 진리와 섞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사단의 하나님께 대한 거짓된 가르침에 기만당하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그들이 어느 편에 섰는지도 모른 채, 기류를 따라서 흘러가고 있다.

** 이 싸움의 쟁점은 무엇인가?
사단과 하나님이 싸운다면 누가 이기겠는가? 설명이 필요없이 하나님이 이기실 것이다. 그런데 왜 이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고 계속되는 것일까? 하나님이 사단을 이기지 못하셔서 그런 것인가? 결코 아니다.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단 7:25).
 사단은 하늘에서 하나님의 성품의 사본인 그분의 율법은 불필요한 것이며 지킬 수도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사단은 하나님께서 피조물을 억압하여 구속하고 복종하게 하기 위해 법을 만드셨으며, 율법을 통하여 자유를 제한하려고 하신 것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즉 이 싸움은 하나님의 율법과 관련된 것이다. 사실 루시퍼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므로 하나님의 말씀 한마디면 그의 존재는 사라질 수 있었다. 그러나 이 싸움은 무력적인 싸움이 아니라 법적인 대결이었다.
 사단이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의 율법에 대하여 온 우주 앞에서 고소했으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공의로움과 그분의 율법의 불변성과 의로움을 보여주셔야 했다. 또한 인간이 하나님의 법 계명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셔야만 되었다. 그리고 사단의 참된 모습과 죄의 결과가 어떠한지 온 우주 앞에 명백히 드러나야만 하였다. 바로 이 일을 위해 예수께서 오셔야만 하셨다.

제3부_인류의 범죄의 결과

연구를 계속하기 전에, 여기서 잠깐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벌어진 큰 전쟁을 옆에 놓아두고, 하늘에서 벌어진 이 대쟁투가 인간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되었는지를 살펴보며 공부를 계속하기로 하자.

**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이 무엇이었는가?
“이로써 영광에 이르도록 미리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게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리려 하셨을진대”(롬 9:23 KJV).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의 찬송을 부르게 하려 함이니라”(사 43:21).
“이는 그리스도 안에서 전부터 바라던 우리로 그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엡 1:12).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엡 2:10).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그분의 영광에 이를 뿐 아니라 또한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도록 창조되었다. 자기 자신의 만족과 행복만을 추구할 때 그 결과는 슬픔과 고독과 파멸뿐이다. 창조주의 뜻에 부합될 때에만 진정한 만족과 행복을 누릴 수 있다. 하나님만이 인간에게 가장 좋은 것이 무엇인지 아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단은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었던 인류를 가만 놓아두지 않았다.

** 사단은 어떻게 인류를 유혹하였는가?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뱀이 여자에게 이르되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1,5).

 사단과 그의 무리들은 하늘에서 쫓겨난 후 이 지상에 와서 인류의 조상인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였다. 그는 뱀으로 나타나 하와를 유혹하면서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의심과 그분의 사랑에 대한 오해를 심어주었다. 사단은 인류의 조상을 속이는 데 성공하였을 때, 인간이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다는 자기의 주장이 맞았다며 의기양양하였을 것이다. 이제 율법은 죄의 벌로 영원한 사망을 요구하였으므로 인간은 영원히 죽어 없어져 버릴 위기에 처하게 되었다. 죄로 인해 인간의 본성에는 죄의 경향이 싹트게 되었고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어두움이 세상을 내려 덮게 되었다. 인간은 사단의 유혹에 넘어갔고 아담에게 주어졌던 이 지구의 통치권은 사단에게로 넘어갔다.

** 죄를 범하므로 어떤 결과가 생겼는가?
성경은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도록” 창조된 인간이 죄를 범하므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되었다고 말씀한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롬 3:23). 하나님의 원래 계획은 인간이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고 그분의 영광의 찬송이 되게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죄는 그것을 망쳐 놓았다.
인간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하도록 창조되었다.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기 전에 아담과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교제를 나누었다. 그들은 서늘할 때에 하나님과 함께 걸었고 자녀가 그들의 아버지에게 말하듯이 그들의 창조주와 함께 이야기했다. 그리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해 하나님을 더 알고 사랑하며 그분의 성품을 닮고 그분의 영광을 반사하도록 되어 있었다.
하지만 아담과 하와는 범죄하게 되어 하나님의 뜻 대신 자신의 길로 가기로 결정했다. 그들은 하나님과의 친교를 깨뜨렸고, 그후로부터 인간은 그 자신만의 독자적인 길을 가기로 선택하였다. 때때로 이 자신의 뜻(Self-will)은 하나님께 대하여 반역하도록 역사한다. 어떤 때는 그것은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한 것으로 표현되었다. 그것이 어떠한 형태로 나타나든지 이 자신의 뜻(self-will)을 성경은 “죄”라고 부른다. 또한 “육신의 생각”(롬 8:6), 그리고 “불법”(요일 3:4)이라고 표현되었다. 인간의 본성에 있는 죄로 기울어지게 된 경향은 성령을 거스리게 된다. 즉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뜻 대신 나 자신의 뜻을 따르고자 하는 경향이 생기게 되었고, 사단은 그것을 이용하여 인간이 죄를 짓도록 유도하는 것이다. 인간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죄를 승리하거나 하나님의 율법을 지킬 수 없게 되었다. 인간은 죄로 인해 파멸할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이게 된 것이다.

** 죄는 친밀하던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가?
“죄의 삯은 사망이요, 하나님의 은사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롬 6:23)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2).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의 값이 사망이 되는 이유는 죄는 생명과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인간을 분리시키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빛이시”(요일 1:5)며 “하나님은 사랑이시”(요일 4:16)요, 생명(요 5:26)이시기 때문이다. 그리고 빛과 생명과 사랑은 어둠과 사망인 죄와는 공존할 수 없다. 그러므로 누군가가 인간을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러야만 하였고 분리된 하나님과 인간 사이를 다시 연결시켜 주어야 하였다.

** 죄를 위한 유일한 해결책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께서 인간이 받아야 할 그 죄의 형벌을 대신 받으시기로 하신 것이다.
“저는 우리 죄를 위한 화목제물이니 우리만 위할 뿐 아니요 온 세상의 죄를 위하심이라”(요일 2:2).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하나님께서는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므로 죄로 분리된 하나님과 인간과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시고 인간에게 빛과 생명을 주신 것이다.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요 1:4).
“오직 이것을 기록함은... 너희로 믿고 그 이름을 힘입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요 20:3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

인류에게 미친 범죄의 결과는 참혹하였으나, 그 모든 죄의 대가와 결과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셨다. 인류를 살리기 위해 세우신 구속의 경륜이 펼쳐지므로 그 놀라운 사랑 가운데 인간이 살길이 열리게 되었다.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제4부_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

자, 다시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일어난 대 쟁투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이 전쟁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함께 공부했다. 이제 이 전쟁 때문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유 1.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과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선과 악의 대 쟁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사단에 의해 속임을 당한 인류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 12:45).
“이로써 영광에 이르도록 미리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게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리려 하셨을진대”(롬 9:23 KJV).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 이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다. 사단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그분에 대한 진리를 왜곡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므로 그분을 나타내길 원하셨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알려주며 구원 얻는 길을 열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다.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사랑인가! 매일 그 사랑이 우리의 명상과 이야기의 주제가 되게 하자!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이 계속해서 내 앞에 있나니”(사 49:15,16).
 예수님의 생애는 사랑과 동정과 자기희생으로 이루어졌다. 그분은 온유하시고 부드러우시면서도 진리의 원칙에는 반석과 같아 죄와 결코 타협지 않은 분이셨다. 그분은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분이셨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다.

이유 2. 사단의 주장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예수께서는 인간으로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다. 그러므로 사단의 주장, 곧 하나님의 법은 불완전하며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내셨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 4:15).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계명, 온 우주의 법은 완전한 것이며 변경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한다. 만일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 불완전한 것이며 인간이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계명이 변경될 수 있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죄의 삯인 죽음을 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계명의 완전함과 불변성을 증거하는 동시에 죄의 값은 영원한 사망이라는 사실을 온 우주 앞에 선포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계명을 지키신 예수님의 모본이 왜 중요한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어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5-7).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 2:22).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종의 형체를 가”(빌 2:7)지시고서 죄짓지 않는 생애, 즉 율법을 지키시는 삶을 사시므로 우리도 죄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죄는 불법 즉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요일 3: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한결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를 짓지 않으시므로 인간이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사단의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내 주셨고 인류에게 소망의 빛을 비춰주셨다.
 예수님의 승리의 비결은 하늘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아버지와 교통하시므로 능력을 받으신 데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뜻대로 사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3-4). 하나님께로 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사랑은 율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 우리도 예수님의 모본을 따를 때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 수 있다.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믿음으로 예수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게 할 때에 계명을 지키는 것은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일을 가능케 하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의 모본이 되셨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행할 때에 승리할 수 있다.


이유 3. 죄의 대가를 치르시기 위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 죄의 대가는 영원한 죽음이다. 율법은 죄인에게 죄의 벌로서 죽음을 요구한다. 그 죄는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선고된 그 율법의 요구(정죄) 즉 영원한 죽음을 예수께서 대신 취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심이라”(막 10:45). 예수님께서 죄의 형벌을 받으심으로 인간에게 다시 살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죄의 형벌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은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믿는 사람은 과거에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완전한 용서를 받는 것이다. 지금도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시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가?
 그러나 만일 복음이 여기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반쪽 복음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용서해주시고 형벌에서 구원해 주셔도,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면 또다시 죄를 짓게 되는 데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용서하는 능력은 있어도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은 없단 말인가?

이유 4. 십자가를 통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는 인간에게 십자가를 통한 용서뿐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창 3:15).
 위의 성경 절이 영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Gen 3:15). 즉 사단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증오심이나 적개심을 주시겠다는 뜻이다. 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죄를 억지로 끊으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기가 증오하는 것을 버리기란 쉽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 마음에 죄에 대한 증오심을 주신다. 그 증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죄가 하나님께 어떤 일을 했는지를 이해하게 될 때에 이르러 온다. 나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는 사실과 죄가 하나님의 마음에 가져다 주는 엄청난 고통에 대해 이해하게 될 때에 우리는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심판이나 지옥이 무서워서 하는 회개가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께 대한 죄송한 마음과 죄에 대한 슬픔으로 하게 되는 참된 회개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사랑이 증가함에 따라 죄에 대한 증오심도 커진다. 이것이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해주는 십자가의 놀라운 복음의 능력인 것이다.

** 거룩함으로의 초청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5-16).
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만일 예수님께서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의가 없고 죄를 이길 힘이 없으므로 아무리 용서를 받는다고 해도 다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그렇기 때문에 그저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 얻는 것 아닌가? 우리 대신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셨고 우리가 믿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의롭지 않아도, 우리 마음속에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해도, 믿기만 하면 하늘에 가는 것인가? 그러면 십자가는 우리 마음의 죄를 모두 내쫓고,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과 빛으로 가득 채움으로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의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할 수 없는 것인가?
 우리 마음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주시는 것이 새 언약이다. 사랑을 주시는 것, 그분의 사랑의 법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는 것이다(렘 31:33,34). 그러나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고 의롭게 되었다 해도 사단은 여전히 죄에 물들여져 온 육신의 본성을 통하여 유혹하고 우리 몸에 배어 있는 죄의 습관들은 우리를 얽어매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성경 말씀에서 유혹이 엄습할 때에 너희 자신을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권고하고 있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힘으로는 죄를 이기지 못할 것을 아시고 “내 안에 거하라”고(요 14:4) 말씀하셨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가? 믿음으로 성령을 통해서이다(요일 4:13, 3:24). 다시 말해 우리가 어느 한순간만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난 생애, 즉 계명을 지키는 생애(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려면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롬 8:1 KJV).
 우리 자신의 의지로 우리는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따를 것인지 성령의 음성에 따를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사 30:21).
매일 매 순간 우리 자신을 의의 종으로 드리고 성령을 따라 살기로 선택한다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예수님 안에 거한다면 우리의 삶은 율법을 온전히 누리는 생애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성품이 우리 모습과 생애 속에 반사되게 될 것이다.
 그대는 거룩함에 이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

 

제5부_마지막 증인들

** 왜 하나님께서 인간을 필요로 하시는가?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내가 밝히 알리고 구원하며 보여 주었나니 그때에는 너희 가운데 다른 이방 신이 없었노라. 그러므로 너희는 나의 증인이요, 나는 하나님이니라. 주가 말하노라”(사 43:12).
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그분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신다.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온 우주 앞에 증명하기를 원하신다. 그분은 이제 모든 것을 예수님을 통해 “밝히 알리고 구원하며 보여주”셨다.
 지금까지의 내용을 요약해보자. 사단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해 고소했다. 사단은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싸웠으나 패하였다. 이 땅으로 쫓겨난 사단은 하와를 유혹하여 인간으로 죄를 짓게 만들므로 인간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그의 말이 사실인 것처럼 보이는 듯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하여 사단의 말이 거짓임을 드러내셨고, 사단에게 속임을 당한 인간이 구원 얻을 수 있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예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사단은 인간 예수님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려고 온 힘을 다했다. 만일 예수님께서 실패하였다면 사단은 승리하게 되고 온 인류의 구원은 보장받을 수 없게 될 것이었다. 그러나 사단은 예수님으로 죄짓게 하는 데 성공하지 못하였다.
 그러나 예수님이 승리하셨다 해도, 인간 중에서 예수님의 모본을 따라 한 명이라도 예수님이 보여주신 것 같은 죄없는 생애와 의로운 성품을 이루지 못한다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이 헛일이요 사단의 주장이 맞게 되는 것이다. 즉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었기에 가능하였지 우리 같은 죄인들은 어쩔 수가 없다는 말이 맞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사단은 예수님의 공로를 힘입어 죄를 이기려는 자들, 예수님이 보여주신 생애와 성품을 이룸으로써 사단의 말이 거짓임을 증명하려는 자들이 나오지 않게 하려고 온 힘을 다해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증명할 사람들, 죄를 승리한 자들, 그 입에 거짓말과 흠이 없고 그의 이마에 하나님의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된 자들(계 14: 1,4,5)이 나온다면, 수 천 년간 계속되어 온 선과 악의 싸움은 끝나게 되고 하나님께서 승리할 수 있게 될 것이며, 마침내 사단과 그를 선택한 인간들은 마지막 심판을 받게 될 것이다.

 온 하늘은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이 나오기를 고대하며 주시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는 세계 곧 천사와 사람에게 구경거리가 되었다”(고전 4:9)고 말한다. 하나님을 옹호해 줄 증인들, 하나님에 대한 사랑 때문에 죄를 증오하고, 그분의 사랑이 마음에 기록되어 계명을 온전히 지키는 자들, 그들의 삶으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자들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우리가 아니면 저희로 온전함을 이루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니라”(히 11:40)고 말한 것이다.


** 이것은 정말 실제적인 싸움인가?
“그러나 페르시아 왕국의 통치자가 이십 일일 동안 나를 막았으나, 보라, 우두머리 통치자들 가운데 하나인 미가엘이 와서 나를 도와주었느니라. 내가 거기서 페르시아의 왕들과 함께 머물러 있었느니라”(단 10:13).
위의 말씀에서는 하늘의 천사들이 실제적으로 인간들 사이에서 역사하고 영향을 주어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의 뜻과 예언을 이루며 인간을 구원하려는 하늘의 군대와 하나님의 뜻을 막고 페르시아의 군을 통솔하여 예언이 이루어지지 않게 하려는 사단의 군대는 서로 싸우고 있었다. 그 광경은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으나 두 군대는 지금도 영적이면서 실제적인 전쟁을 하고 있다. 그들은 서로의 유리한 지점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서로 더 많은 영혼을 얻기 위해 팽팽히 맞서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하는 한마디의 말이나 행동, 생각들은 이 두 편의 군대 중 어느 한 편을 유리하게 하고 있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해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어야 한다. “마귀의 궤계를 능히 대적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에 대한 것이 아니요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에게 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 (엡 6:11-13).
한 영혼을 놓고 벌어지는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의 쟁투는 실제적인 것이다. 사단은 그의 온 전략을 동원하여 마지막 증인들이 준비되지 못하도록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그가 사용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사용한다. 무수한 오류들과 기만들, 진리를 무력화시키는 부패와 타락, 스포츠와 음악, TV와 인터넷, 인간의 육신적 욕망을 자극하는 모든 것들을 다 사용하고 있다. 또한 기독교인들을 매너리즘에 빠지게 하고 신앙을 형식과 위선이 되게 만들고 있으며, 헛된 평안과 확신을 주어 기만하고 있다.

여러분은 어느 편을 위해 싸우고 있는가? 그대는 하나님을 위해 싸우는 군사가 되지 않으려는가? 하나님께서 나타나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지막 백성이 되지 않으려는가? 주님께서는 지금 우리를 부르고 계신다. 지금 예수께 나아가 선한 싸움을 싸우는 군사가 되겠다고 약속하자!

** 결국에 어느 편이 승리하게 될 것인가?
“나라와 권세와 온 천하 열국의 위세가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민에게 붙인 바 되리니 그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라 모든 권세 있는 자가 다 그를 섬겨 복종하리라”(단 7:27).
 이 싸움이 끝날 날은 멀지 않았다. 그 때에는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그분의 율법이 온전히 옹호될 것이며, 온 우주가(심지어 사단까지도) 하나님께서는 공의로우시고 자비로우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또한 사단의 주장은 거짓이었고 교만과 증오에 근거한 것이며, 죄의 결과는 불행과 아픔과 사망뿐이었음이 드러날 것이다. 그 때에 온 우주의 거민들과 천사들은 이렇게 외칠 것이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 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 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계 15:3-4).

** 마치면서

머지않아 오랫동안 계속되어 온 선과 악의 전쟁은 끝날 것입니다. 반역의 결과, 곧 하나님의 율법을 거역한 결과가 모든 지적 존재자의 눈앞에 분명해질 것이며, 하나님의 통치와 반대되는 사단의 법칙이 세상을 다스린 결과가 온 우주에 공개될 것입니다. 그 때에 충성된 자나 반역한 자들을 막론하고 온 우주는 한마음으로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고 선언할 것입니다.
이제 곧 모든 싸움이 끝나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님께서 인류를 위해 베푸신 큰 희생의 효과가 분명히 제시되고, 그리스도께서 정당한 지위를 차지하고, 정사와 권세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영광을 받으실 때가 올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굴욕을 참으시고 부끄러움을 개의치 않으신 것은 당신 앞에 있는 즐거움, 곧 많은 아들들을 영광으로 인도하는 즐거움을 위해서였습니다. 그 슬픔과 치욕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컸지만 기쁨과 영광은 그보다 더 클 것입니다.

그 때에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자들의 모습과 얼굴에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모든 마음에 하나님의 완전한 모습이 나타남을 보시고 만족해하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의인의 무리와 악인의 무리가 다 같이 들을 수 있는 음성으로 외치십니다.
“나의 피로 산 자들을 보라! 나는 그들을 위하여 고난을 받았다. 나는 그들을 위하여 죽었다. 나는 그들이 영원토록 내 앞에서 살아가게 하고자 그런 일을 당하였다.”
그때 보좌를 둘러 있는 흰옷을 입은 무리들이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라고 찬양의 노래를 부를 것입니다.

죄의 역사가 영원히 마쳐질 그 때에, 인간은 사단에게 빼앗겼던 지구의 통치권을 예수님께로부터 다시 받게 될 것입니다. 사단의 파괴 행위는 영원히 끝날 것입니다. “내 백성이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에 있으”리라. “다시는 강포한 일이 네 땅에 들리지 않을 것이요 황폐와 파멸이 네 경내에 다시 없을 것이며 네가 네 성벽을 구원이라, 네 성문을 찬송이라 칭할 것이라” (사 32:18, 60:18).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질려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찐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해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사 35:1, 55:13, 11:6, 9)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슬픔이나 고통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곳에는 눈물도 없고, 장례 행렬도 없을 것입니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 “그 거민은 내가 병들었노라 하지 아니할 것이라 거기 거하는 백성이 사죄함을 받으리라”(계 21:4; 사 33:24).
그러나 모든 것은 지나갔지만, 영원히 남게 될 한 가지 기념물이 있을 것입니다.
“또 사람이 그에게 이르기를, 네 두 손에 있는 이 상처들은 무엇이냐? 하면 그가 대답하기를, 그것들은 내가 내 친구들의 집에서 입은 상처들이라, 하리라”(슥 13:6).
그것은 우리 구주께서 당하신 십자가의 표입니다. 그분의 상하신 머리와 옆구리와 손발에는 죄가 빚어놓은 잔인한 유일의 흔적이 남게 된다. 선지자 하박국은 영광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광선이 그 옆구리(영어 성경-방주)에서 나오니 그 권능이 그 속에 감취었도다”(합 3:4)고 기록했습니다. 인류를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시기 위하여 붉은 피를 흘린 그 옆구리는 구주의 영광이 나타나고, “권능이 그 속에 감”추인 곳입니다. 그분의 굴욕의 표는 그분의 가장 큰 영광이 될 것입니다. 갈보리에서 상한 흔적은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주님께 대한 찬양을 불러일으키고 그분의 능력을 말해 줄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스런 구주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게 될 그 때에, 천천만만의 천사들에 둘러싸여, 구원받은 셀 수 없는 무리들이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게 될 그 때에 우리도 그곳에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님으로부터 “잘하였도다 착하고 진실된 종아”라는 말을 듣게 될 그 때에, 더 이상 죽음과 고통, 슬픔이 없고 오직 진실된 사랑과 신뢰, 완전한 조화만 있게 될 그 때에, 이 지구가 죄가 시작되기 전의 완전한 모습으로 회복되게 될 영광의 그 아침에, 우리가 다 함께 그 자리에 있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이슈_T.B 조슈아 목사 한국 방문 성령집회, 과연 성령의 역사인가?

 

1) 티비 조슈아 목사의 한국 방문과 성령치유집회

음향 시설을 통해 흘러나오는 꿍짝거리는 시끄러운 반주소리… 홀 안을 가득 메운 어마어마한 관중들이 복음성가를 리드하는 찬양팀의 현란한 노래와 몸짓과 춤에 맞추어 손을 흔들며 손뼉을 치며 열심히 노래를 부르고 있다.

휘황찬란한 조명은 그 장소를 가득 메운 사람들 위에 흔들리며 비추이고 사람들은 벌써 현란한 음악과 조명, 외쳐대는 통성기도와 웅성거리는 군중들 사이에서 흥분과 열정의 도가니로 빠져든 듯이 보인다. 드디어 시간이 되자, 단 위에 바람처럼 나타난 부흥목사… 군중들의 열광하는 환호소리에 매끈하게 답례한 후, 마치 쇼를 시작하듯이 능숙하게 기적(?)의 역사를 시작한다.

요즈음 기독교에서 가장 인기를 끄는 것이 있다면 “성령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지금 미국을 비롯한 서방 세계, 심지어 한국까지도 위에 묘사한 것과 같은 기적을 일으키는 소위 “성령의 역사 운동”이 활개를 치고 있다.

얼마 전 티비 조슈아 목사가 한국을 방문하여 성령치유집회를 열었다. 서울 고척 스카이돔에서 열린 티비 조슈아(T.B. Joshua) 목사의 치유집회는, 여러 면에서 많은 이들에게 주목을 받았다. "병든 자를 고친다"는 소문에 집회 당일 약 2만 명이 몰렸고, 기도를 받기 위해 등록한 환자의 수도 약 1천 5백 명에 달했다.


그러나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출신인 조슈아 목사의 이번 집회는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치유, 특히 '질병 치유'(신유)에 대한 바른 시각이 무엇인지 새삼 고민하게 하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집회 장소에 벌어진 여러 가지 해프닝과 의혹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웹상에서 퍼져나가고 있다. 조슈아 목사의 집회시간 '지각'으로, "정작 치유를 받은 이들은 10% 이내"라거나 "치유 받지 못한 중증 환자들에게 더 큰 상처를 줬다" 등 논란이 있기도 했다. '은사 중지' 여부를 두고 신학자들이 벌이는 갑론을박과는 별개로, 여전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런 류(類)의 소위 '치유집회'에 큰 관심을 나타내는 것은, 그만큼 분별력 있는 판단 역시 필요하다는 뜻이 아닐까?

 

2) 티비 조슈아 목사 성령집회 참석자 후기들
티비 조슈아 목사 성령집회 참석자들 중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집회가 과연 성령의 집회였는지 의구심을 표현하고 있다. 집회 스텝 중의 한명이 갑자기 환자로 변장해 깁스를 하고 나타난다든지 마치 짜인 각본에 따라 연기를 하듯 환자들이 어설픈 연기를 펼쳐 보인다든지 하는 증언들이 많다.
어느 기독교 신문 기사에 의하면, 조슈아 목사는 지난 7월 22일 오후 7시에 오기로 하고 오후 9시가 넘어서야 도착했고 시간이 부족하다며 겨우 1시간 정도 치유 사역을 진행했다고 한다. 그 다음날도 그는 약속시간보다 4시간이나 늦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먼발치에서 조슈아 목사를 쳐다보기만 했으며 대부분의 환자들은 희망을 잃고 허망하게 돌아갔다고 한다.
예수님은 당신에게 나아오는 병든 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시고 치유해 주셨다. 티비 조슈아 목사가 과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라고 할 수 있을까?

 

3) 거짓 성령 운동의 보편화

각종 성령 집회에 참석한 이들의 후기들을 듣고 있노라면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 고통과 시련 속에서 마음이 약해진 영혼들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이런 집회를 찾아온다. 하지만 준비된 은사들은 거의 대부분 참된 성령의 역사라기보다는 사람들을 큰 기만에 빠트리는 쇼의 양상으로 나타난다. 중요한 것은 마지막 때일수록 이러한 일들이 더 빈번히 자주 일어나게 될 것을 성경이 예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대 기독교는 전에 없었던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기적을 행하는 것이 보편화 되었으며, 이런 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비판 없이 확신하고 있다는 것이다. 1960년대나 70년, 80년대만 해도 기독교회 안에서 기적을 행하는 일들이 지금처럼 흔하거나 중요하게 여겨지지 않았고, 또 지금처럼 사람들의 주목을 끌지 않았었다. 그러나 지금의 기독교를 보라! 성령의 역사라고 여겨지는 방언, 병 고치는 기적들, 예언하는 것 등등,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현상들에 얼마나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가를…

이렇듯 눈에 보이는 현시에만 중요한 포커스를 맞추고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참된 성령의 역사가 무엇인지 알지 못하게 만드는 거짓 성령 운동과 기독교의 사조 때문에 많은 기독교인이 진리와는 거리가 먼 상태에 처한 채,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현상에만 집착하여 이것을 참된 성령의 역사라고 믿고 있다. 많은 기독교인이 진리의 말씀에 근거하여 순종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신을 부인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기 위해 말씀을 깊이 연구하며 깊은 영적 경험을 하는 대신, 말초신경을 자극하는 광적인 것과 사람을 흥분시키는 것에 몰두하고 있고 또한 이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열광하며 따르는 것을 본다.

그렇다면 왜, 현대의 기독교인들은 이렇게 되었는가? 많은 기독교인이 무엇에 의하여 초자연적인 현상인 “거짓 성령 운동”에 그렇게 열광하게 되었는가? 신기하게도 성경 요한 계시록 13장은 마지막 때에 이런 거짓 성령 운동이 성행할 것에 대하여 예언되어 있으며, 그렇게 하도록 만드는 배후의 세력이 무엇이며, 그렇게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에 대해서 말해주고 있다.

 

4) 거짓 성령 운동의 원조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마지막에 성행할 거짓 성령 운동에 대하여, 그리고 거짓 성령 운동의 원조되는 세력뿐 아니라 그런 운동을 일으키는 이유에 대하여 설명되어 있다. 먼저 계시록 13장 1,2절을 보자.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 뿔이 열이요 머리가 일곱이라 그 뿔에는 열 면류관이 있고 그 머리들에는 참람된 이름들이 있더라. 내가 본 짐승은 표범과 비슷하고 그 발은 곰의 발 같고 그 입은 사자의 입 같은데 용이 자기의 능력과 보좌와 큰 권세를 그에게 주었더라.”

이 성경절을 보면,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온다고 언급하고 있다. 성경에서 “물”이나 “바다”는 백성과 열국과 방언을 가리키고 (계 17:15), 짐승은 세력이나 국가를 가리키는 것으로서, 이 짐승은 유럽(당시 인구가 많은 곳)에서 올라온 교황권을 가리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렇다면 왜 교황권을 기독교의 거짓 성령의 원조라고 부르는지 그 증거를 성경을 통해 더 살펴보자.

가) 교황권을 도와주는 국가의 등장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계13:11~15

위의 성경절을 읽어보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교황권)을 도와주는 또 다른 짐승이(국가)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런데 이 땅에서 올라온 다른 짐승은 먼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 똑같은 권세를 가지고 행한다. 곧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며,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며,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사람은 죽이게 하는데, 중요한 것은 사람들 앞에서 이적을 행하여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며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있는 사람들을 미혹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바다에서 나온 첫 번째 짐승을 도와주는 두 번째 짐승은 누구일까? 이 두 번째 짐승의 정체를 알려면 이 짐승의 특징을 연구해야 하는데, 먼저 이 짐승은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알 수 있다. 성경에서 “땅에서 올라온다”라는 의미는, 물(유럽)에서 올라온 첫 번째 짐승과는 달리 인구가 적은 곳(아메리카)에서 건국된 나라라는 것이다. 그런데 이 짐승은 두 뿔을 가진 새끼 양 같은 짐승으로 상징되어 있다. 이 두 뿔은 정치와 종교가 분리되어 건국된 나라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짐승은 “미국”을 가리킨다.

이 짐승은 처음에는 새끼 양 같으나 나중에는 용처럼 말을 하게 된다. 곧, 마지막 때에 엄청난 세력을 가지게 되어,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고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그것에게 절하게 하며, 짐승의 표를 내리는 세력이 되어 하나님의 인을 가진 성도들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군림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것은 미국이 짐승(교황권)의 꼭두각시의 역할을 한다는 예언이다.

나) 거짓 성령 운동의 원조와 목적

지금까지 미국이 교황권을 위하여 짐승의 우상을 만들고 짐승에게 경배하게 한다는 사실을 배웠다. 그렇다면 미국이 어떻게 많은 사람들을 회유하고 강요하여 바다에서 올라온 첫 번째 짐승인 교황권에게 경배하게 하는가? 어떤 방법으로 그렇게 할 것인가? 그것은 바로 큰 이적을 행하여 사람들을 회유하는 것인데, 심지어 불이 하늘에서 땅에 내리게 하는 것과 같은 기적과 표적을 행함으로써 그렇게 하는 것이다. 흥미 있는 사실은, 현재 개신교가 기적을 행하는 일들은 천주교에서 배워온 것이다. 옛날의 개신교들을 보라. 언제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 성결교 등등의 개신교가 기적과 방언을 행했는가?

1960년대 노틀담 대학에서 천주교 대표들과 개신교 대표들이 만나서 집회를 할 때, 이상한 성령 운동이 시작되면서 그때에 개신교에도 기적과 방언을 하는 일들이 시작되었다. 1990년도 후반에 발표된 바티칸 교서에 의하면, 각 개신 교파에 오순절파식의 성령 운동을 유행하게 만들어 방언과 기적을 행하는 일들을 통하여 종교 연합을 꾀한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신실한 하나님의 자녀들 사이에 참된 방언이 있을 수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거짓 방언이 많으며, 병을 고치고 성령의 불이 내리는 착시 현상들과 함께 나타난다. 이것은 옛날 중세기에 로마 천주교회가 행하던 것들을 배워 온 것들인데 이러한 성령운동의 목적은 종교통합이라는 미명 아래 수많은 개신교회를 로마 교황권으로 흡수 통합하기 위한 것이다.

“남아프리카공화국(남아공)의 언론사들은, 아프리칸스어(Afrikaans) 신문사의 「디 뷔르허르(Die Burger)」, 「베일트(Beeld)」 등이 있다. 이 신문사들은 대한민국의 조선일보사와 중앙일보사, 동아일보사와 같은 영향력을 가진 신문사이다. 베일트(Beeld) 신문사는 1974년 9월 16일에 창간하여 아프리카 언어로 발행하는 일간지(日刊紙, 매일 발행함) 신문사이다.

톰 가우스(Tom Gouws) 교수는, 베일트(Beeld) 신문 기사에서 티비 조슈아(T.B.Joshua)의 정체를 폭로했다. 이 신문의 기사에는 티비 조슈아(T.B.Joshua)가 맡고 있는 예배당(SCOAN, Synagogue Church Of All Nations)의 강단에 걸려 있는 대형 현수막이 소개되었다. 이 현수막에는 아랍어와 영문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알라(Allah) 이외에는 어떤 신(神)도 없다(“There is no Deity but Allah.”고 새겨져 있고, 이슬람교의 쿠란(Quran) 59장 22-24절을 인용하고 있다.

베일트(Beeld) 신문은 이 현수막의 사진이 티비 조슈아(T.B.Joshua)를, 홍보하기 위해 SCOAN(Synagogue Church Of All Nations)에서 제작한 것으로 밝히고 있는데, 이는 티비 조슈아(T.B.Joshua)가 크리슬람(Chrislam:기독교와 이슬람교의 혼합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다“

 

5) 사탄이 거짓 성령 운동을 일으키는 이유

사탄은 마지막 때에 거짓 이적과 표적들을 이용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려고 할 것이다. 위에서도 잠깐 언급을 했지만, 천주교가 배후의 세력이 되어 번지고 있는 거짓 성령 운동은 마지막 때의 많은 하나님의 참 자녀들을 혼란에 빠지게 하고 미혹할 것이다. 기독교인들이 기적이나 이적, 또 초자연적인 현상들을 성령의 역사인 것으로 믿게 만들면, 참 성령의 역사, 곧 죄를 깨달아 회개하게 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생애를 개혁하게 하며, 극기하고 진정한 거듭남을 경험하게 하며, 다가오는 심판과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게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소홀히 하게 될 뿐만 아니라, 깨닫지도 못하게 되기가 쉽다.

또한 거짓 성령 운동에 빠지게 되면, 생애의 진정한 변화가 없이도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히 임하며, 열광적이고 흥분적인 성령의 역사 안에서 “구원 받았다”라는 거짓 안전감에 빠지게 만들기 때문에 그것은 위험한 일이다. 그리고 이런 거짓 성령 운동에 함께 참여하게 되면, 교파 간의 서로 다른 교리를 간과하게 만들고 성경의 진리를 연구하고 탐구하는 일을 그다지 중요하지 않게 여기게 만들며, 그냥 성령 안에서 사랑, 연합, 차이를 없애는 것, 용서만을 강조하게 만든다. 이런 일들은 우리 기독교인들이 아주 주의해야 할 일들인데, 그 이유는 성경에 예수님과 사도들이 이 일에 대하여 거듭 경고를 하셨기 때문이다.

사탄은 마지막 때에 그리스도인들을 거짓 성령 운동으로 끌어들여 가까운 예수 재림에 대하여 준비를 못하도록 기만하고, 또한 거짓 성령 운동을 통해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여 모든 종교를 하나로 연합시킨 후,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그에게 경배하도록 강제령을 내리려는 의도로 역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참된 성령의 역사하심을 따라 진리대로 살도록 인도해 달라고 하나님께 진실된 마음으로 기도해야 할 것이다.

진리탐구_144,000인의 하나님의 목적과 사명

영원한 복음이란?
“그가 큰 음성으로 이르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계 14:7)

하나님을 두려워하라!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자들은 심판대의 형벌 앞에 서게 되는데, 이 두려움은 누가복음 1장 74절에 나오는 말씀처럼 성결과 의로운 믿음만이 이러한 두려움을 없앨 수 있는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두려움”은 성결과 의로움만이 없앴을 수 있는데 이는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경건”입니다.

“우리로 원수의 손에서 건지심을 입고 종신토록 주의 앞에서 성결과 의로 두려움이 없이 섬기게 하리라 하셨도다 “ (눅 1:74-75)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요일 4:18)

“사랑”과 “경건”은 또한 하나님의 “계명”을 올바르게 순종하는 사람만이 믿음 안에서 온전함을 이루게 하는 능력을 경험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영광”은 오직 하나님만 받으실 수 있는데 그 영광은 그리스도께서 고난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에 들어가셨습니다.
주님의 고난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여러분도 알고 계시듯이 주님의 보혈이며 사랑이며 은혜인 “복음”입니다.

“그리스도가 이런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눅 24:26)

장차 그리스도인들에게 다가올 고난과 핍박은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 핍박은 개인적인 환경, 생각, 육신의 소욕 때문에 받는 고난이 아니라, 다시 전해질 “영원한 복음”으로 인한 핍박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그 고난의 길을 먼저 가셨고, 그분의 사도들도 가셨고, 많은 믿음의 선진들과 순교자들이 모본으로 가셨기 때문에, 마지막 예표의 사람들인 땅에서 구속함을 받을 첫 열매의 성도들이 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자녀이면 또한 후사 곧 하나님의 후사요 그리스도와 함께한 후사니 우리가 그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고난도 함께 받아야 될 것이니라” (롬 8:17)

“만일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은즉 부끄러워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벧전 4:16)

이러한 말씀들은 말세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인내”와 “소망”을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사랑”과 “경건”으로 담대함의 은혜를 입은 사람들이 고난을 통해 안으로는 그들의 믿음을 스스로 시험하고 확증하며, 밖으로는 세상 사람들에게 의와 절제와 장차 오는 하나님의 심판의 소식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 호에는 요한계시록에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심판”이 무슨 의미인지를 살펴볼 것인데 아울러 144000인의 사명과 목적이 무엇인지 자연스럽게 알게 되실 것입니다.

Healing Story_수박

 

진녹색에 검은 줄무늬로 옷 입은 수박을 보면 더위가 한 걸음 뒤로 물러나는 기분이 듭니다. 얼얼한 냉수 한 잔도 좋지만, 뚝 베어 먹는 시원한 수박 한쪽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많이 덥지, 어여 먹어라. 참 자상하신 하나님이십니다. 더운 여름의 끝자락, 입안 가득 차오르는 시원한 단물과 함께 감사와 행복감도 밀려옵니다. 이제, 시원한 가을이 올 것입니다.

수박의 구성 성분
약 95%가 수분이고 그 외에는 대부분이 당질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여름철 갈증 해소 및 피부 보습에 좋은 과일입니다. 100g당 칼로리는 약 19kcal밖에 되지 않고 0.3% 정도의 무기질을 함유하며 칼륨이 많이 들어 있습니다.
 
수박의 효능
*피로해소
무기질과 비타민이 풍부하여 피로 회복에 좋습니다.
*항암효과
수박에는 라이코펜이라는 성분이 들어있는데, 이는 면역력 향상에 도움을 주며 암세포의 성장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수박에 들어있는 라이코펜 함량은 토마토보다 3~6배나 많습니다.
*항산화 효과
수박 속이 붉게 보이는 것은 라이코펜 성분 때문이라고 합니다. 체내에 활성 산소가 많이 쌓이게 되면 세포 노화가 촉진되는데 이 성분은 활성산소를 제거해 주는 데 큰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이뇨작용
수박은 붉은 과육뿐만 아니라 껍질에도 좋은 효능이 많습니다. 수박의 껍질에는 아미노산의 일종인 시트룰린이라는 물질이 풍부히 들어있는데 이것은 체내 단백질 성분을 요소로 바꿔주어서 소변으로 배출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몸에 쌓인 노폐물을 소변으로 배출시켜 주고 평소 신장 기능이 약하여 몸이 붓거나 부종이 있으신 분들에게도 도움을 준다고 합니다.
*해독 효과
아르기닌 성분은 간에서 효소생성을 촉진시켜 혈압을 낮추고 알콜 분해를 촉진시킨다고 합니다.
*심혈관질환 예방
수박껍질에 있는 시트룰린은 혈관의 기능을 향상시켜 주고 혈관을 확장시켜 주는 효과가 있어서 혈압 강하 효능이 있다고 합니다. 따라서 혈액순환이 원활해지며 고혈압, 동맥경화와 같은 성인병과 뇌졸중, 심장마비와 같은 심혈관질환 예방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해열과 소염효과
고열로 인한 체액 분비의 장애나 소변이 원활하지 않는 경우, 목구멍이 붓거나 구창을 치료한다고 한의학에서는 말합니다.
*피부 노화 방지
수박 속에는 세포의 손상을 막아주는 베타카로틴이 풍부해 우리 피부의 콜라겐과 단백질을 보호해 주고 건조한 피부를 촉촉하게 만들어줍니다.
*숙면효과
수박에는 두뇌의 신경전달물질인 콜린이 함유되어 있어서 신체 리듬을 원활하게 하고 밤에 숙면을 취할 수 있게 도와줍니다. 또한 낮에는 집중력과 기억력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합니다.
*근육통에 탁월 
수박에는 칼륨이 풍부해 근육을 이완시켜 주는 데 효과적입니다.
*구충작용
수박씨에는 쿠르트비틴이라는 성분이 들어있습니다. 쿠르트비틴 성분은 기생충을 죽여주는 구충작용을 하며, 유해 콜레스테롤이 체내에 쌓이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합니다. 수박씨에는 단백질과 지질•칼슘•무기질도 다량 들어 있으므로 가능하면 씨를 씹어 먹으면 좋습니다.

주의
수박은 차가운 성질의 과일이기에 평소 위장이 냉하여 설사를 자주 하거나 복통이 있는 분이라면 너무 많이 먹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또한 수박에 많은 수분이 위액을 희석하여 소화를 방해하기 때문에 기름진 음식과는 맞지 않습니다. 수박을 더욱 맛있게 먹는 방법은 섭씨 2도 이하에 냉장 보관하였다가 먹는 것입니다. 이유는 참외와 수박의 당분은 거의 과당과 포도당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과당은 저온에서 단맛이 더욱 증가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기독교회사_프랑스에서의 성경과 왈덴시안이 당한 박해

 

루이스 드 베르퀸(Louis de Berquin)이라는 한 젊은 귀족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개심한 후, 부지런히 복음서를 쓰고 번역하고 인쇄하고 보급하였다. 그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마가렛이 그를 위해 중재하지 않았다면, 화형 당했을 것이다. 그는 후에 신앙 때문에 순교 당했다.

“많은 인쇄업자들이 체포당했고 한동안 모든 인쇄가 금지되었다. ... 프란시스 왕은 만일 자기 자녀라도 이러한 불경스런 이단들을 믿고 있음이 발견된다면 그들을 교수시킬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 하느님을 달래는데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여섯 명의 프로테스탄트들이 파리에서 화형 당했다. 그들은 불 위에 매달린 채, 그 위로 내려졌다 올려지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극심한 고통은 오래도록 지속하였다. 1534년 11월 10일과 1535년 5월 5일 사이에, 24명의 프로테스탄트들이 파리에서 산 채로 화형당했다.”(Durant, History of Civilization, VI, p.505).

이때, 왈덴시안들 중 남은 자들이 카톨릭 당국자들의 화를 돋우었다.
“추기경 드 투어논(Tournon)은 왈덴시안들이 그 정부에 대항하는 반역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암시하면서, 그 병들고, 주저하는 국왕을 설득하여서 한 명령에 서명하게 하였다(1545년, 1월 1일). 그 명령은 이교의 죄가 있다고 밝혀진 모든 왈덴시안들을 사형에 처함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 한 주 이내에(4월 12~18) 몇몇 마을이 완전히 전소되었다. 그중 한 마을에서는 800명의 남녀와 아이들이 살육 당했다. 두 달 동안 3000명이 죽임 당했고, 22개 마을들이 파괴되었고, 700명의 남자들이 갤리 노예선으로 보내졌다.”(Durant, VI, pp.505,506). 1546년, 프랑스 북부 모(Meaux) 지역에서 한 회중이 발각되었고, 그 회원 중 14명이 화형 당했다. 같은 해 피터 차폿(Peter Chapot)이 불어 성경을 프랑스로 반입하여 판매했다는 죄명으로 화형 당했다(Foxe, abridged, p.100). 프란시스 사후에 왕위에 오른 앙리 2세(1547-1559) 치하에서도 잔인한 박해가 계속되었다.

“한 칙령이 1546년에 레페브레와 그의 서책에 대하여 로마 카톨릭 당국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거기서 다음 진술이 발견된다. ‘기독교 대중을 위해서, 어떠한 성경 역본이라도 인쇄되도록 허용하는 것은 쓸모없고, 유익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것들은 유해한 것으로 반드시 발매금지되어야 한다.’ 또한 그 사본을 소지하고 있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8일 이내에 제출해야 한다고 명령했다.”(Beardslee, The Bible among the Nations, pp.211,12).

수많은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 고문당하고 순교 당하였다. 일례로, 피터 차폿은 1546년에 체포당했는데, 당시 그는 성경을 제네바에서 프랑스로 가져와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죄 받고 화형 당했다. 박해실에서 그가 진술한 대담한 증언 때문에, 새로운 법령이 만들어졌다.
“화형에 처하게 될 모든 자는, 그들이 불 위에서 신앙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혀를 잘려야 한다. 그 법은 이후로 부지런히 지켜졌다.”(Foxe, unabridged, II, p.133).
다른 13명이 이 무렵 파리에서 화형 당했다. 1546년에 스테판 폴리오트도 자신이 보급하고 있던 성경과 복음서가 든 가방과 함께 체포당했다. 그의 혀는 잘렸고, “목에 책들을 매단 채” 화형 당했다(Foxe, unabridged, II, p.134).
제화업자, 니콜라스 네일이 1553년에 파리에서 체포되었는데, 당시 그는 믿는 자들 사이에 보급하기 위해 책이 든 꾸러미를 나르고 있었다. 그는 체포된 후 곧 화형 당했다.
1554년, 디오니시우스 베이레는 프랑스로 수많은 책들을 몰래 반입하다가, 노르망디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산 채로 화형 시키라는 형을 선고받았다. 세 번 위로 올려졌다, 다시 불 속으로 던져졌다.”(Foxe, unabridged, II, p.145).
서적 판매를 생업으로 삼았던, 바돌로매 헥토도 1556년에 체포되어 툴린에서 화형 당했다.

팍스의 완본 <<순교사>>는 3권, 3227페이지로 된 대규모 책에서 많은 페이지 중 거의 150페이지가 단지 일부 프랑스 순교자들의 목록으로 채워져 있다.

성경을 믿는 자들에 대한 칙령들이 1549년과 1551년에 발표되었다. 종교재판 소장이 1557년에 임명되었다. “이설을 용납하지 않는 칙령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엄청난 순교자들이 따랐다.”(Shelton,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III, p.184).
1562년에 한 위그노 회중이 바시(Vassy)에서 파괴되었다. 거의 60명의 남녀와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고, 100명이 부상당했다(Shelton, III, p.192).
잔혹한 바돌로매 날의 대학살이 1572년에 파리에서 발생하였고, 2천명 이상이 맹목적인 종교 학살로 살육 당했다. 루이 13세의 통치 하에서(1610-1643)와 루이 14세의 치하에서(1643-1715),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심하게 고통받았다. 루이 14세 치하에서 200,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심지어 19세기, 나폴레옹 하에서까지도, 프랑스의 카톨릭 당국자들은 프로테스탄트들과 다른 성경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었다. 1854년 10월 31일 자의 한 칙령이 모든 종교적인 모임들을 금지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숲 속이나 들판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가져야만 했다(Blakeney, Popery in Its Social Aspect, pp.114,115).

이렇게 우리는 프랑스에서 카톨릭 당국자들이 불어 성경과 그 성경을 믿고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였는가를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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