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회사_프랑스에서의 성경과 왈덴시안이 당한 박해

 

루이스 드 베르퀸(Louis de Berquin)이라는 한 젊은 귀족이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개심한 후, 부지런히 복음서를 쓰고 번역하고 인쇄하고 보급하였다. 그는 곧바로 체포되었다. 마가렛이 그를 위해 중재하지 않았다면, 화형 당했을 것이다. 그는 후에 신앙 때문에 순교 당했다.

“많은 인쇄업자들이 체포당했고 한동안 모든 인쇄가 금지되었다. ... 프란시스 왕은 만일 자기 자녀라도 이러한 불경스런 이단들을 믿고 있음이 발견된다면 그들을 교수시킬 것이라고 선언하였다. ... 하느님을 달래는데 적합하다고 인정되는 한 가지 방식으로, 여섯 명의 프로테스탄트들이 파리에서 화형 당했다. 그들은 불 위에 매달린 채, 그 위로 내려졌다 올려지기를 반복했다. 그들의 극심한 고통은 오래도록 지속하였다. 1534년 11월 10일과 1535년 5월 5일 사이에, 24명의 프로테스탄트들이 파리에서 산 채로 화형당했다.”(Durant, History of Civilization, VI, p.505).

이때, 왈덴시안들 중 남은 자들이 카톨릭 당국자들의 화를 돋우었다.
“추기경 드 투어논(Tournon)은 왈덴시안들이 그 정부에 대항하는 반역 음모를 꾸미고 있다고 암시하면서, 그 병들고, 주저하는 국왕을 설득하여서 한 명령에 서명하게 하였다(1545년, 1월 1일). 그 명령은 이교의 죄가 있다고 밝혀진 모든 왈덴시안들을 사형에 처함이 마땅하다는 것이었다. ... 한 주 이내에(4월 12~18) 몇몇 마을이 완전히 전소되었다. 그중 한 마을에서는 800명의 남녀와 아이들이 살육 당했다. 두 달 동안 3000명이 죽임 당했고, 22개 마을들이 파괴되었고, 700명의 남자들이 갤리 노예선으로 보내졌다.”(Durant, VI, pp.505,506). 1546년, 프랑스 북부 모(Meaux) 지역에서 한 회중이 발각되었고, 그 회원 중 14명이 화형 당했다. 같은 해 피터 차폿(Peter Chapot)이 불어 성경을 프랑스로 반입하여 판매했다는 죄명으로 화형 당했다(Foxe, abridged, p.100). 프란시스 사후에 왕위에 오른 앙리 2세(1547-1559) 치하에서도 잔인한 박해가 계속되었다.

“한 칙령이 1546년에 레페브레와 그의 서책에 대하여 로마 카톨릭 당국에 의해 발표되었는데, 거기서 다음 진술이 발견된다. ‘기독교 대중을 위해서, 어떠한 성경 역본이라도 인쇄되도록 허용하는 것은 쓸모없고, 유익하지도 않다. 오히려 그것들은 유해한 것으로 반드시 발매금지되어야 한다.’ 또한 그 사본을 소지하고 있는 자는 누구든지 그것을 8일 이내에 제출해야 한다고 명령했다.”(Beardslee, The Bible among the Nations, pp.211,12).

수많은 성경을 믿는 사람들이 이 시기에 프랑스에서 고문당하고 순교 당하였다. 일례로, 피터 차폿은 1546년에 체포당했는데, 당시 그는 성경을 제네바에서 프랑스로 가져와 보급하기 시작했다. 그는 정죄 받고 화형 당했다. 박해실에서 그가 진술한 대담한 증언 때문에, 새로운 법령이 만들어졌다.
“화형에 처하게 될 모든 자는, 그들이 불 위에서 신앙을 철회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혀를 잘려야 한다. 그 법은 이후로 부지런히 지켜졌다.”(Foxe, unabridged, II, p.133).
다른 13명이 이 무렵 파리에서 화형 당했다. 1546년에 스테판 폴리오트도 자신이 보급하고 있던 성경과 복음서가 든 가방과 함께 체포당했다. 그의 혀는 잘렸고, “목에 책들을 매단 채” 화형 당했다(Foxe, unabridged, II, p.134).
제화업자, 니콜라스 네일이 1553년에 파리에서 체포되었는데, 당시 그는 믿는 자들 사이에 보급하기 위해 책이 든 꾸러미를 나르고 있었다. 그는 체포된 후 곧 화형 당했다.
1554년, 디오니시우스 베이레는 프랑스로 수많은 책들을 몰래 반입하다가, 노르망디에서 체포되었다. 그는 “산 채로 화형 시키라는 형을 선고받았다. 세 번 위로 올려졌다, 다시 불 속으로 던져졌다.”(Foxe, unabridged, II, p.145).
서적 판매를 생업으로 삼았던, 바돌로매 헥토도 1556년에 체포되어 툴린에서 화형 당했다.

팍스의 완본 <<순교사>>는 3권, 3227페이지로 된 대규모 책에서 많은 페이지 중 거의 150페이지가 단지 일부 프랑스 순교자들의 목록으로 채워져 있다.

성경을 믿는 자들에 대한 칙령들이 1549년과 1551년에 발표되었다. 종교재판 소장이 1557년에 임명되었다. “이설을 용납하지 않는 칙령들이 지나간 자리에는 엄청난 순교자들이 따랐다.”(Shelton, History of the Christian Church, III, p.184).
1562년에 한 위그노 회중이 바시(Vassy)에서 파괴되었다. 거의 60명의 남녀와 아이들이 죽임을 당했고, 100명이 부상당했다(Shelton, III, p.192).
잔혹한 바돌로매 날의 대학살이 1572년에 파리에서 발생하였고, 2천명 이상이 맹목적인 종교 학살로 살육 당했다. 루이 13세의 통치 하에서(1610-1643)와 루이 14세의 치하에서(1643-1715),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심하게 고통받았다. 루이 14세 치하에서 200,000명의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프랑스를 떠나야 했다. 심지어 19세기, 나폴레옹 하에서까지도, 프랑스의 카톨릭 당국자들은 프로테스탄트들과 다른 성경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고 있었다. 1854년 10월 31일 자의 한 칙령이 모든 종교적인 모임들을 금지했기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숲 속이나 들판에서 비밀리에 모임을 가져야만 했다(Blakeney, Popery in Its Social Aspect, pp.114,115).

이렇게 우리는 프랑스에서 카톨릭 당국자들이 불어 성경과 그 성경을 믿고 유일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였던 사람들을 어떻게 대하였는가를 살펴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