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_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이유

자, 다시 하나님과 사단 사이에 일어난 대 쟁투로 돌아가 보자. 우리는 이 전쟁이 인류에게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 함께 공부했다. 이제 이 전쟁 때문에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야만 했던 이유에 대해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이유 1.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과 사랑을 보여주시기 위해

선과 악의 대 쟁투에 있어서 그리스도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는 사단에 의해 속임을 당한 인류에게 하나님 아버지의 성품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나를 보는 자는 나를 보내신 이를 보는 것이니라”(요 12:45).
“이로써 영광에 이르도록 미리 예비하신 긍휼의 그릇들에게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을 알리려 하셨을진대”(롬 9:23 KJV).
“그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빛이 어두움에 비취되 어두움이 깨닫지 못하더라”(요 1:4,5).
 이 세상은 하나님에 대한 오해의 어두움으로 가득 차 있다. 사단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그분에 대한 진리를 왜곡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므로 그분을 나타내길 원하셨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인류를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알려주며 구원 얻는 길을 열기를 원하셨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저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니라.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오직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위하여 화목제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니라”(요일 4:9-10).
 예수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므로 하나님의 인간에 대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독생자를 보내신 사랑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본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독생자 예수님을 주셨고, 예수 그리스도는 자신의 생명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다. 얼마나 놀랍고 신비한 사랑인가! 매일 그 사랑이 우리의 명상과 이야기의 주제가 되게 하자!
“여인이 자기의 젖 먹는 자식을 잊을 수 있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을 수 있겠느냐? 참으로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하리라. 보라,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 네 성벽이 계속해서 내 앞에 있나니”(사 49:15,16).
 예수님의 생애는 사랑과 동정과 자기희생으로 이루어졌다. 그분은 온유하시고 부드러우시면서도 진리의 원칙에는 반석과 같아 죄와 결코 타협지 않은 분이셨다. 그분은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신 분이셨다. 예수님의 생애를 통하여 우리는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어떤 분이신지 알 수 있다.

이유 2. 사단의 주장을 무효화시키기 위해

예수께서는 인간으로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시고 율법을 온전히 지키셨다. 그러므로 사단의 주장, 곧 하나님의 법은 불완전하며 지킬 수 없는 것이라는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내셨다.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하나니 율법이 없는 곳에는 범함도 없느니라”(롬 4:15).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롬 10:4).
 십자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함과 동시에 하나님의 계명, 온 우주의 법은 완전한 것이며 변경될 수 없는 것임을 증명한다. 만일 하나님이 주신 계명이 불완전한 것이며 인간이 지킬 수 없는 것이라면, 다시 말해 하나님의 계명이 변경될 수 있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 죄의 삯인 죽음을 당하시기 위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셔야 할 필요가 없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십자가는 계명의 완전함과 불변성을 증거하는 동시에 죄의 값은 영원한 사망이라는 사실을 온 우주 앞에 선포하고 있다.

인간으로서 계명을 지키신 예수님의 모본이 왜 중요한가?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오히려 자기를 비어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빌 2:5-7).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벧전 2:22).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히 4:15).
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같은 “종의 형체를 가”(빌 2:7)지시고서 죄짓지 않는 생애, 즉 율법을 지키시는 삶을 사시므로 우리도 죄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보여주셨다. 죄는 불법 즉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요일 3:4).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한결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를 짓지 않으시므로 인간이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사단의 주장이 거짓임을 드러내 주셨고 인류에게 소망의 빛을 비춰주셨다.
 예수님의 승리의 비결은 하늘 아버지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아버지와 교통하시므로 능력을 받으신 데 있었다. 그분은 자신의 뜻대로 사신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대로 사셨다. 그분께서는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요일 5:3-4). 하나님께로 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다. 그 사랑은 율법과 일치하는 것이다.
 우리도 예수님의 모본을 따를 때에 순종하는 생애를 살 수 있다. 우리의 힘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가능하다. 믿음으로 예수께서 우리 마음에 거하시게 할 때에 계명을 지키는 것은 즐거운 일이 될 것이다. 예수님은 바로 그 일을 가능케 하시기 위해 오셨고 우리의 모본이 되셨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 8:3-4). 우리가 하나님의 성령을 따라 행할 때에 승리할 수 있다.


이유 3. 죄의 대가를 치르시기 위해

“이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
“죄의 삯은 사망이요”(롬 6:23).
 죄의 대가는 영원한 죽음이다. 율법은 죄인에게 죄의 벌로서 죽음을 요구한다. 그 죄는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에게 선고된 그 율법의 요구(정죄) 즉 영원한 죽음을 예수께서 대신 취하셨다.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하심이라”(막 10:45). 예수님께서 죄의 형벌을 받으심으로 인간에게 다시 살 수 있는 두 번째 기회를 주신 것이다. 우리는 믿음으로 죄의 형벌에서 벗어나 구원을 얻은 것이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자신에게 적용하고 믿는 사람은 과거에 한 번도 죄를 지은 적이 없는 것처럼 완전한 용서를 받는 것이다. 지금도 그분은 우리를 용서하시고자 기다리고 계신다. 얼마나 놀라운 복음인가?
 그러나 만일 복음이 여기에서 그친다면 그것은 반쪽 복음에 불과할 것이다. 왜냐하면 죄를 용서해주시고 형벌에서 구원해 주셔도, 우리가 율법을 지키는 의로운 삶을 살지 못하면 또다시 죄를 짓게 되는 데 무슨 소용이 있다는 말인가?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용서하는 능력은 있어도 죄를 이기고 의로운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은 없단 말인가?

이유 4. 십자가를 통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

예수께서는 인간에게 십자가를 통한 용서뿐 아니라 십자가를 통한 승리를 주시기 위해 오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 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창 3:15).
 위의 성경 절이 영문에는 이렇게 되어 있다. “And I will put enmity between thee and the woman, and between thy seed and her seed”(Gen 3:15). 즉 사단과 하나님의 백성 사이에 증오심이나 적개심을 주시겠다는 뜻이다. 죄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죄를 억지로 끊으라고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러나 자기가 증오하는 것을 버리기란 쉽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통해 우리 마음에 죄에 대한 증오심을 주신다. 그 증오심은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을 때에, 죄가 하나님께 어떤 일을 했는지를 이해하게 될 때에 이르러 온다. 나의 죄가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박게 했다는 사실과 죄가 하나님의 마음에 가져다 주는 엄청난 고통에 대해 이해하게 될 때에 우리는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심판이나 지옥이 무서워서 하는 회개가 아니라, 진실로 하나님께 대한 죄송한 마음과 죄에 대한 슬픔으로 하게 되는 참된 회개이다.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사랑이 증가함에 따라 죄에 대한 증오심도 커진다. 이것이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죄를 이기게 해주는 십자가의 놀라운 복음의 능력인 것이다.

** 거룩함으로의 초청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5-16).
 성경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한다. “전에 너희가 너희 지체를 부정과 불법에 드려 불법에 이른 것같이 이제는 너희 지체를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롬 6:19).
만일 예수님께서 단지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해 십자가를 지셨다면 그것은 아무 소용이 없는 일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에게는 의가 없고 죄를 이길 힘이 없으므로 아무리 용서를 받는다고 해도 다시 죄를 짓게 되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아, 그렇기 때문에 그저 믿음으로, 은혜로 구원 얻는 것 아닌가? 우리 대신 예수님이 율법을 지키셨고 우리가 믿으면 그것으로 족한 것이 아닌가?” 그렇다면 정말 우리가 의롭지 않아도, 우리 마음속에 이기심과 욕심이 가득해도, 믿기만 하면 하늘에 가는 것인가? 그러면 십자가는 우리 마음의 죄를 모두 내쫓고, 우리 마음을 하나님의 마음과 사랑과 빛으로 가득 채움으로 우리의 삶이 그리스도의 의와 사랑으로 충만하게 할 수 없는 것인가?
 우리 마음에 죄를 미워하는 마음, 예수님의 마음을 주시는 것이 새 언약이다. 사랑을 주시는 것, 그분의 사랑의 법이 우리 마음에 기록되는 것이다(렘 31:33,34). 그러나 우리가 죄의 용서를 받고 의롭게 되었다 해도 사단은 여전히 죄에 물들여져 온 육신의 본성을 통하여 유혹하고 우리 몸에 배어 있는 죄의 습관들은 우리를 얽어매려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위의 성경 말씀에서 유혹이 엄습할 때에 너희 자신을 “의에게 종으로 드려 거룩함에 이르라”고 권고하고 있다.
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힘으로는 죄를 이기지 못할 것을 아시고 “내 안에 거하라”고(요 14:4) 말씀하셨다. 어떻게 우리가 예수님 안에 거하는가? 믿음으로 성령을 통해서이다(요일 4:13, 3:24). 다시 말해 우리가 어느 한순간만이 아니라 계속적으로 율법의 정죄에서 벗어난 생애, 즉 계명을 지키는 생애(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살려면 성령을 따라 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행하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행하느니라”(롬 8:1 KJV).
 우리 자신의 의지로 우리는 우리가 육체의 소욕을 따를 것인지 성령의 음성에 따를 것인지 선택해야만 한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할 것이며” (사 30:21).
매일 매 순간 우리 자신을 의의 종으로 드리고 성령을 따라 살기로 선택한다면, 끊임없이 하나님의 사랑 안에, 예수님 안에 거한다면 우리의 삶은 율법을 온전히 누리는 생애가 될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과 그분의 성품이 우리 모습과 생애 속에 반사되게 될 것이다.
 그대는 거룩함에 이르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은가?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롬 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