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부_십자가가 주는 진정한 의미

그리스도께서 경험한 십자가의 고통은 그 어떤 육체적 고통이나 순교자들의 경험과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십자가에는 어떠한 수치나, 억지로 믿어야만 하는 짐이 없습니다. 이사야는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죄악”이란 무엇인가요? 우리의 죄악은 우리로 하나님과 분리되게 만들었습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하였습니다.(사 59:2) 죄는 우리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을 분리시키고 우리의 영혼을 빼앗기게 하였으며 담대함을 잃어버리게 하였습니다. 구주께서는 진정으로 우리의 죄악을 자신에게 옮겨놓으셨습니다. 이 의미는 죄가 갖는 모든 죄책감과 외로움, 완전히 버림받은, 더 이상 희망이 없이 멸망 받기만을 기다려야만 하는, 사형선고 받은 죄인의 처절함을 모두 느끼셨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를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시킨 요소들이었습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이는 우리로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24.
그리스도께서는 단순히 그의 어깨에 우리의 짐을 지시지 않으셨습니다. 주님은 그의 마음과 영혼 깊숙이 우리의 죄를 지셨습니다. 그의 모든 신경조직에, 그의 마음과 영혼에 우리의 죄를 지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고후 5:21.

그리스도께서 죄를 위하여 받으신 그 죽음이란 무엇인가요? 성경은 두 가지 죽음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보통 말하는 죽음으로 “잔다”는 의미에서의 죽음(요 11:11,13 참고)을 말하고, 둘째 사망은 완전한 죽음을 말합니다. 요한계시록 2:11, 20:6, 21:8절에 나오는 이 둘째 사망은 하나님과 영원히 분리되는 것이며, 모든 빛과 즐거움과 생명으로부터 영원히 분리되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 상태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당하신 그 죽음은 바로 이 둘째 사망이었습니다. 영원히 이 땅과 온 우주에서 사라져 가는, 더 이상 다시 태어나거나 창조함 받을 수 없는,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할 상태로 가버리는 죽음이었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깐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을 받으심을 인하여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히 2:9.

예수께서는 인류 모두가 각기 당하여야 할 그 둘째 사망을 맛보셨으므로, 그리스도께서 당하신 죽음은 우리가 늙어서 죽는 그러한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만약 그들이 죄를 짓는다면 받을 것이라고 말한 그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이 지구에 그 동안 살았던 수 천억의 인류 개개인의 모든 죄의 결과를 마음에 지시고 한 사람의 죄책감이 아니라 수 천억 명의 죄책감과 그들의 불안함과, 희망 없음을 모두 느끼시며 영원한 죽음을 당하시는 십자가상의 그리스도를 생각하여 보세요.

“그러므로 저가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이 마땅하도다 이는 하나님의 일에 자비하고 충성된 대제사장이 되어 백성의 죄를 구속하려 하심이라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 히 2:17,18.

십자가에서 그리스도의 마음은 하나님 아버지의 얼굴로부터 완전히 가려졌습니다. 희망도, 빛도 둘째 사망 속에서 완전히 사라졌으며, 다시 창조되는 부활도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죄인의 죽음을 당하셨으므로 더 이상 부활을 기대하거나 용서를 바랄 수 없었습니다. 만약 예수께서 부활의 소망을 조금이라도 느낄 수 있었다면, 그는 모든 사람의 죽음을 맛보기에 부적합하였을 것이고, 진정으로 자신을 우리의 죄를 위하여 희생하실 수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실 때에 그의 인성은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나아가사 얼굴을 땅에 대시고 엎드려 기도하여 가라사대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마 26:38,39.

그리스도께서 마셨던 그 잔은 어떤 인간도 아직까지 맛보지 못한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우주 역사의 시작부터 지금까지 오직 그리스도만이 영원한 죽음을 당하셨습니다. 소름 끼치도록 두렵고 절망적인 둘째 사망을 온전한 정신으로서 경험하신 그리스도. 그의 손을 찌른 못도, 그의 뚫어진 발도, 매서운 채찍도 그를 죽게 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육체적 고통을 거의 느끼실 수 없을 정도로 그 마음의 고통이 극심하셨습니다. 그를 죽인 것은 겟세마네부터 흘리시기 시작한, 피땀 흘리는 마음의 고통이었습니다.

“훼방이 내 마음을 상하여 근심이 충만하니 긍휼히 여길 자를 바라나 없고 안위할 자를 바라나 찾지 못하였나이다” 시 69:20.

이 땅에서 사신 모든 생애를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부활에 관한 확신이 있으셨습니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아버지의 기뻐하시는 얼굴을 보실 수 있으셨으며, 이러한 영광의 햇빛 아래서 마음이 움츠러들 수 있는 어떠한 큰 장벽도 없었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상에서 회개한 강도가 자기를 기억해 달라고 하였을 때에도 예수께서는 즐거운 확신 속에서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곧 이러한 감흥은 사라지고 예수께서 마셔야 할 그 잔이 그의 몸과 마음을 침투해 들어왔습니다. 급속한 변화가 그에게 이르렀습니다. “저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저가 이스라엘의 왕이로다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올지어다 그러면 우리가 믿겠노라 가로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 자여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자기를 구원하고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며” 마 27:42,40.
그리스도께서 마신 그 쓴 잔은 이렇게 욕하고 저주하는 사람들, 예수께서 구원하시려고 왔던 바로 그 사람들로 인하여 더욱 쓰게 변하였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이러한 말씀을 들으시는 그리스도의 마음은 어떠하였을까요? “네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 한 번 내려와 봐!” “하나님이 왜 너를 구원해주지 않지?” 그리스도의 손은 넓게 벌려져 나무에 박혀 있었기에 귀를 막으실 수조차 없으셨습니다. 그저 기도할 수만 있었을 뿐. 승리의 기도가 아니라, 희망의 기도가 아니라, 버림받는 울부짖음의 기도뿐. 하늘은 닫혔고 어느 누구도 그를 돕는 손길을 뻗치지 않았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치 아니하오나 응답지 아니하시나이다” 시편 22:2.

여러 시간 동안 예수께서는 죄와 죽음의 짐과 싸우셨습니다. 구경꾼들의 잔인하게 모욕하는 말이 들리기 시작한 조금 후 “제 육 시로부터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제 구 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제 구 시 즈음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하나님과 자신과의 완전한 분리가 이루어졌음의 절망을 선고하셨습니다. 사람들의 모욕은 독에 담겨 가시 돋친 화살처럼 그리스도의 마음에 심한 고통을 일으켰으며,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되어 가는 예수의 영혼은 더 이상 견딜 수 없었습니다. 이제 완전한 죽음이 그리스도의 영혼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못 박힌 손으로 자신의 눈물을 감출 수 없음을 아시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두움을 보내어 놀리는 군중들로부터 그의 얼굴을 숨기셨습니다. 오직 짙은 암흑 속에서 들리는 것은 갈보리로부터 메아리치고 있었던 거의 사라져 가는 작은 신음뿐... 얼마나 잔인한 인간들인가요? 또한 얼마나 자비로운 하나님이신가요? 아들의 마지막 고통을 숨기시는 그 자상한 사랑. 천사들조차도 보기를 허락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의 고통의 마지막 장면들, 영원한 죽음을 갖게 하시기 위하여 끝까지 그리스도에게 나타내 보이지 않으셨던 하나님의 동정, 그러나 마지막 격정의 모습을 사람들로부터 숨기우신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은 하늘의 법과 구속과 사랑의 원칙을 온 세상에 전하고 있었습니다. 희망은 영원히 사라졌지만, 사랑은 견뎠습니다. 시편 22편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겪으셨던 그 고통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 나를 멀리하여 돕지 아니하옵시며 내 신음하는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나는 벌레요 사람이 아니라 사람의 훼방거리요 백성의 조롱거리니이다... 개들이 나를 에워쌌으며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믿음은 보이지는 않지만 실제로 존재하는 것에 대한 의지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보이지도 않고 존재하지도 않는 것을 위하여 희생할 수 있게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수난을 통과하실 때에 그 마음과 영혼은 오직 죽어 가는 인류를 위한 사랑으로서 채워져 있었습니다. 그에게는 부활과 영생의 희망이 전혀 없었지만, 사랑은 그 영원한 죽음을 끝까지 받아들일 수 있게 하였습니다. 사랑은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게 합니다. 순교자의 죽음이 아닌 죄인의 죽음을 택하시고, 희망 없는 영원한 죽음의 세계로 그의 얼굴을 돌리신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을 수만 있다면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들로 변화될 것입니다.

 

마치면서

십자가를 찬송합시다! 그것은 우리의 구원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를 감사합시다! 그것은 우리 하나님의 크신 사랑의 표상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참 목적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 오늘날, 십자가에 대한 커다란 오해가 범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귀가 뿌린 씨들입니다. 십자가는 인간의 죄를 용서해 줄 뿐만 아니라 인간의 마음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순종하는 진실된 그리스도인들로 바꾸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죄인들을 변화시켜 하늘에 있는 거룩한 천사들과 같이 살 수 있기에 안전한 자들로 만들어 주는 힘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용서하시고 구속하시는 것은 우리를 거룩하고 깨끗한 자들로 만드시기 위하여서 구원하신 것입니다.

십자가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우리에게 죄를 짓는 면허증을 주는 것이 아니라,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십자가는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율법을 완전케 해 주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을 순종하며 사는 사람들로 만들어 줍니다. 이것을 경험하는 자들이 바로 참된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십자가의 참된 의미와 사랑을 바로 알고 그 사랑으로 변화되는 독자분들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