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부_기독교회 속에 들어온 사탄의 기만

그러나 우리가 한가지 기억해야 할 것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십자가에서 절정에 이르긴 했으나 그것으로 아직 구속이 끝나지는 않았다는 사실입니다. 마귀는 자기가 십자가를 없앨 수는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의 능력과 의미를 없애 버리기 위하여 또 다른 작전을 세웠습니다. 십자가를 그리스도인들이 믿더라도 십자가의 참된 의미를 오해시켜 버리면 십자가를 믿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다는 사실을 사탄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교묘한 전략을 세웠는데, 그것은 오히려 아예 믿지 않는 것보다 더 무서운 기만이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십자가를 없앨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는 십자가의 의미를 자기의 주장에 맞게 색칠하여 자기가 원하는 바대로 사람들이 믿고 따르도록 만들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는 태초부터 하나님의 율법은 꼭 순종할 필요가 없는 것이며, 하나님의 법을 폐해도 큰 문제가 없는 것이라고 주장하며 사람들을 유혹해 왔습니다. 그것이 바로 마귀가 인류의 조상들을 기만한 방법이 아니었던가요! 그는 그리스도인들이 십자가를 찬양하고 설교하며, 갈보리에 대하여 많이 말하는 것에 대하여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이 감정적으로 십자가에 대하여 많이 말하고 찬송하며 설교하기를 원합니다. 십자가의 그 참된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는 한 그리스도인들이 드리는 예배나 찬송은 사탄에게 조금도 두려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사탄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십자가에서 율법이 폐하여졌다고 가르치며 믿게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보혈과 은혜가 마치 인간의 불순종에 대한 좋은 핑계가 되도록 믿게 하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믿는 한 하나님의 계명은 더 이상 그렇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믿도록 권합니다. 십자가를 믿는 한 죄를 계속 지어도 충분한 용서 속에 있으니 염려할 필요가 없다는 듯이 믿고 살도록 격려합니다. 사탄은 갈보리의 십자가가 우리를 하나님의 율법에서 해방하였다고 믿게 만듭니다. 십자가가 마치 우리를 죄로부터 구해낸 것이 아니라, 그 죄 가운데서 구원을 준 것으로 믿게 만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자면,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를 죄에서부터 해방하여 낸 것이 아니라 죄를 짓는 일에 자유를 주신 것처럼 생각하게 하고 있다는 말입니다. 십자가의 보혈에는 능력이 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능력뿐만 아니라, 죄인들을 그 죄에서부터 해방하여 다시는 그 죄를 반복하지 않게 하는 힘이 있습니다. 나아가서 십자가는 죄인의 마음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대로 순종하며 사는 자로 만들어 주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있습니다.

히브리서 9:14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

만일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계명을 폐하신 것이라면,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 그 위에서 돌아가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율법을 그렇게 쉽게 폐해 버릴 수 있으셨다면, 예수께서 무엇 때문에 율법을 범한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그 값을 치르실 필요가 있었겠습니까?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있기 때문에 죄가 성립되는 것이고, 죄에 대하여서 하나님의 율법은 사망을 선고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십자가에서 인간들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사실 자체가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폐하시는 것이 아니라 존중하시고 높이신다는 사실을 드러낸 것입니다. 그냥 쉽게 율법을 폐하여 버리실 수 있는 일이었다면 무엇 때문에 그렇게 고통스러운 죽음을 통하여서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셔야만 했겠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서 율법을 폐하신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완전케 세우신 사실을 알 수 있게 됩니다.

마태복음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로마서 3:31 “그런즉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사도 바울이 설명한 예수께서 십자가로 폐하셨다는 것은(골 2:14-16 참조) 하나님의 계명이 아니라, 의문의 율법 곧 유대인들이 지키던 모세의 율법 즉, 절기들이나 종교 의식적인 절차들을 가리켜 말한 것이었습니다.

십자가의 의미를 감추어 버리는 것

사람이 죽을 때 진정으로 죽는 것이 아니라 어떤 다른 상태로 살게 된다는, 영혼은 절대로 완전히 죽지 않는다는 가르침은 큰 오류입니다. 단순히 비타민이 부족하여 어떤 병이 걸리는 것처럼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영혼 불멸적인 사상은 기독교회에 복잡한 혼란을 만들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뱀은 아담과 하와에게 그들이 죄를 지을지라도 절대로 죽지 않을 것이라고 유혹하였습니다(창 2:17 참고). 지금도 사탄은 우리에게 “너는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고 유혹하고 있습니다. “죽음이라는 것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 어떤 인간도 결코 완전히 멸망 받을 수 없어. 영혼은 자연적으로 불멸한다고.”
이러한 사상이 이방인들의 종교의 기본사상이 되었으며 점차적으로 기독교에 들어와 이제는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이 사상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겉으로 볼 때 이러한 생각이 별 나쁜 결과를 끼친다고 보이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생각하여 보세요. 이 사상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라고 하신 로마서 5장 8절의 말씀과 대치됩니다. 왜냐하면 영혼불멸설 안에는 실제적인 “죽음”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해서, 사탄이 우리에게 이 사상을 통하여 속이려 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께서 진정으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겪으셔야만 했던 경험은, 실제로 죽음이 존재하지도 않고, 그렇기 때문에 잃어버릴 것도 없고, 포기해야 할 것도 없으며, 그래서 참을 만하였다고 사탄이 말하는 것입니다.
실제로 죽음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희생은 어디에 있는가요? 희생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는 아무런 의미 없는 쇼에 불과합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노리는 것이며 십자가의 의미를 없애려는 것입니다. 나라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바친 전쟁 용사들의 죽음보다도 더 중요하지 않게 십자가를 만들어 버리는 사상이 바로 죽음이 없다는, 영혼 불멸의 사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