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_십자가 대속의 참된 의미

우리는 베드로전서 2장 24절에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게 됩니다. “친히 나무에 달려 그 몸으로 우리 죄를 담당하셨으니...” 어떻게 몸으로 타인의 죄를 질 수 있을까요? 이 사실을 이해하기 위하여 다음의 경험을 이해하도록 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죄를 짓고 나면, 예를 들어서 거짓말을 하거나 물건을 훔치고 나면 어떠한 반응이 우리의 몸에 나타나게 되는가요? 맥박이 빨라지고 가슴이 두근거리게 되며, 두려운 죄책감이 마음을 사로잡아 괴로움을 느끼게 되고, 얼굴이 빨개지며 식은땀이 몸을 적시게 됩니다. 그리고는 심판에 대한 두려움이 생기고 마음의 평화와 행복이 사라지게 됩니다. 이러한 것이 우리가 죄를 지었을 때 나타나는 신체적인 반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바로 그러한 것이 우리가 우리 죄를 우리의 몸으로 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우리 죄를 당신의 몸에 대신 지셨다는 말씀의 의미를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십자가의 대속이란, 우리의 죄를 마치 예수님 자신의 죄처럼 인정하여 대신 전가시키는 것 이상의 큰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죄를 지셨다는 의미는 우리의 부채를 은행의 계좌 모양으로 다른 사람의 책임으로 넘겨 버리는 것 이상을 의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셨다는 의미는, 우리의 죄로 인한 결과와 심판을 대신 경험하심으로써, 우리가 그러한 대가를 다시 치러야 할 필요가 없도록 하셨다는 실제적인 맞바꿈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에 대하여 미리 예언한 말씀들 가운데 특히 시편 40편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합니다. 시편 40편 12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부르짖음을 듣게 되는데, 그 부르짖음은 다름 아닌 십자가상의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고통에 대한 예언인 것을 보게 됩니다. “무수한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내게 미치므로 우러러 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음으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
죄가 전혀 없으시고 한 번도 죄를 범해 본 적이 없으신 구세주께서 나의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다고 말씀하고 계신 사실을 보세요! 다시 말해서 인류의 모든 죄악이 십자가 위에 달려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 한꺼번에 전가되어 내리 누르는 형편을 표현한 말씀입니다. 조금 전에 생각해 보았듯이 우리가 죄를 범할 때 느끼는 죄책감과 같은 신체적인 반응들이 갑자기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몸에 실제적으로 느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예수께서 인류의 모든 죄를 지금 자신의 몸으로 짊어지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인이 느끼는 절망감, 자비가 섞이지 않은 심판의 두려움과 그 죄책감의 뼈아픔을 순결하신 하나님의 어린양께서 갑자기 마음에 그리고 당신의 몸에 느끼기 시작하신 것입니다.

영원한 멸망의 죽음을 당하심

그래서 그분은 십자가에서 이렇게 부르짖으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그것은 순교자의 부르짖음이 아니었습니다. 어느 순교자가 하나님의 진리를 위하여 죽어 가면서 그러한 외침을 한 적이 있었습니까? 순교자들은 모두 다 기쁨과 소망 속에서 영원한 구원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목숨까지 바친다는 사실에 기뻐 찬송하면서 화형대나 단두대의 이슬로 사라져 가지 않았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죽음은 순교자들의 죽음과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그들이 받아야 할 죄의 결과를 대신 받아 주시는 대속의 죽음이었습니다. 한번도 하나님 아버지와 분리된 경험이 없이 늘 아버지와 하나이셨던 그분께서 우리의 죄를 짊어지시는 십자가에서 갑자기 하늘 아버지와 분리되는 느낌을 느끼신 것입니다. 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사이를 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납하실 수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죄를 지신 예수께서 통렬하게 부르짖으신 이유는 죄가 예수님을 지옥 같은 어두운 심연의 절망으로 몰고 갔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예언한 말씀으로 잘 알려진 이사야서 53장에서 우리는 더욱 명백한 말씀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사야 53:4 “그는 실로 우리의 질고를 지고 우리의 슬픔을 당하였거늘 우리는 생각하기를 그는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 하였노라”

이 말씀에도 우리가 받을 죄의 값을 예수께서 대신, 실재적으로 경험하여 주셨다는 사실을 말씀하여 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죄를 지신 것은 그 죄의 고통을 대신 경험하여 주신 사실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죄를 대신 책임지기 위하여 전가시키는 것 이상을 의미합니다. 또한 이사야서 53장12절 중반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보게 됩니다.

이사야 53:12 “이는 그가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게 하며 범죄자 중 하나로 헤아림을 입었음이라 그러나 실상은 그가 많은 사람들의 죄를 지며 범죄자를 위하여 기도하였느니라 하시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범죄하여 죽어가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자기 영혼을 버려 사망에 이르렀습니다. 그분은 우리 대신 완전히 죽어 없어져 버리더라도 죄인들을 위하여 대신 죽기를 택하겠다는 우리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강렬한 사랑을 나타내어 준 것입니다. 이 엄청난 사랑이 인류를 살게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영원토록 연구와 경외의 대상이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후서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5:21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바울은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서 죄 그 자체가 되셨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은 죄 그 자체가 되셔서 우리 대신 형벌을 받아주신 사실을 그렇게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부터 그러한 사실을 느끼셨기 때문에, 다시 말해서 죄를 대신 몸에 지시는 경험을 시작하셨기 때문에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탄원하셨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아니, 하늘 그 자체와 영원히 분리되어 죽어버릴 가능성을 내다보셨던 것입니다. 그 고뇌의 아픔을 과연 누가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육체의 고통이 아니라, 죄의 고통

예수께서 십자가상에서 돌아가실 때를 기억해 봅시다. 예수께서는 신음하시다가 서서히 돌아가신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양편 강도들은 금요일 저녁까지 아직 죽지 아니했기 때문에 속히 죽게 하려고 다리를 꺾었지만 예수께서는 벌써 운명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큰 소리로 부르짖으시고는 갑자기 고개를 떨구시고 숨을 거두셨다고 성경은 마지막 장면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이 갑자기 파열되어 돌아가신 증거입니다. 로마 군인이 죽었는지를 확인해 보기 위하여 주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르자 피와 물이 흘렀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심장이 작동하기를 멈추고 파열되었기 때문에 혈구와 혈청이 나뉘어서 물과 피가 따로 흘러내린 것입니다. 인류의 죄를 지시면서 그 괴로움과 죄의식을 더 이상 견디실 수가 없으셔서 예수님의 심장은 그만 터져버리고 만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못박힘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죄가 찌르는 아픔들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라 말할 수 있습니다. 우리 죄악들이 바로 예수님을 죽인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40편 12절은 예수님의 고통의 장면을 그린 예언에서 “내 마음이 사라졌음이니이다”라고 말씀하고 있는데, 영어로는 “Therefore my heart failed me”(그러므로 내 심장이 멈추었나이다-필자 번역)라고 번역하고 있어 예수께서 죄의 무게 때문에 심장이 멈추어 버린 표현의 감각을 느끼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어린 양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일은 우리가 피상적으로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깊고 넓은 엄청난 의미가 그 속에 내포되어 있습니다. 이 사실을 각자 개인의 마음속으로 믿고, 정말로 감사하며 눈물겹게 받아들이는 자가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입니다. 나의 죄를 주께서 실제로 대신 져 주셨고 그래서 내가 죄에서 자유를 얻고 그 정죄에서 벗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글을 읽고 있는 바로 여러분과 저의 죄 때문에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께 완전히 버림받아 심판당하시는 것으로 느끼셨습니다. 그것은 쇼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의 영혼은 떨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을 위하여 죄를 대신 져 주시고 영원한 죽음을 받아야 할지, 아니면 인류를 포기하고 아름답고 고통이 없는 하늘로 다시 올라가 버려야 할지를 선택하셔야 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예수의 곁에서 주님을 몹시 괴롭혔습니다. 감사치도 않고 깨닫지도 못하는 인류를 보여 주면서 예수님의 희생이 헛된 일이 될 것이요, 이제 이 대속의 죽음은 그를 영원히 멸망 당하게 만들 것이라는 절망적인 말들을 해 주었을 것입니다. 그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선택하셔야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죄인들을 위한 구속의 죽음을 자신의 것으로 감당하기로 결정하셨습니다. 다시는 무덤 속에서 나와 부활하지 못할 것처럼 영원한 멸망의 운명을 느끼신 것입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약속도 더 이상 보이지 아니하는 깜깜한 영혼의 그늘 아래서 하나님의 아들은 고민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자기 자신의 생명과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 자신의 영생과의 선택에서 촛불처럼 떨고 계셨습니다. 드디어 예수께서 믿음으로 승리하셨습니다. 그는 “다 이루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당신의 손에 의탁하나이다!”라고 소리치시며 고개를 떨구셨습니다. 선택은 이루어졌습니다. 주님의 너무나도 큰 사랑이 바로 여러분을 포기하실 수가 없으셨던 것입니다. 차라리 당신이 죽어 영원히 사라져 버리는 한이 있더라도 여러분을 구하여 내시겠다고 결정하신 것입니다. 그것은 이미 인류가 범죄하였을 때부터 결정해 놓으신 사실입니다. 그러한 주님을 하늘 아버지께서는 삼 일 만에 부활해 내시었습니다.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또한 우리의 유일한 구세주이십니다.
과연 누가 이 놀라운 하나님의 사랑을 다 이해할 수가 있을까요? 바다를 먹물로 삼고 하늘을 두루마리 삼아 모든 풀들을 붓으로 만들어 기록하려 해도 그 사랑 다 기록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을 알고 믿고 가슴 깊이 받아들여 감격해 하는 자들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됩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육신적인 고통 그 훨씬 이상을 의미합니다. 이것을 이해할 때 인간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이끌려 가게 됩니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 12:32.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를 중심으로 신앙합니다. 2000여 년을 거듭해 오면서 기독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구원의 표상으로 삼고 믿으며 가르치며 전하여 왔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 말할 정도였습니다(고전 2:2).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되었을까요?
인류가 이렇게 은혜의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과 또한 주님의 구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고 살고 있는 것은 갈보리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혜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영원토록 찬양과 존귀와 영광을 돌리기에 합당한 구속의 상징입니다. 십자가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죄 값을 갚으신 주님의 고통을 상징합니다. 인류가 당하여야 할 처참하고도 자비가 섞이지 아니한 영원한 멸망의 죽음을, 우리를 대신하여 지불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놀라운 희생을 나타냅니다. 십자가는 멸망 당하는 인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실 수가 없어서 절규하시며 돌아오라고 탄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상징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