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부_믿음으로만 구원받는 이유

믿음으로 구원받는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어떻게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될까요? 또한 무엇을 어떻게 믿으라는 말인가요?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역사를 믿는다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이 나이가 많아 자식을 갖는다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밤하늘의 별을 보이시면서 앞으로 네 자손이 이렇게 많아지리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보면서 자신에게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도 이루실 것을 믿었습니다. 왜냐하면 저 많은 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늙은이에게 자식을 생산할 수 있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넉넉히 지키실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습니다.
요한복음 17장 3절에 영생은 예수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 문제가 있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나는 예수를 알고 또한 그분을 믿는다. 그러므로 나는 구원받았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수박을 겉만 핥고 그 속은 먹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아브라함이 믿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도 우리에게 약속을 주십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는가요?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너희가 성령을 받은 것은 율법의 행위로냐 듣고 믿음으로냐?”(갈3:1-2). 초대 교회 시대에 그리스도인들은 믿을 때 성령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 받은 증거로 기적의 은사들을 주장하지만, 기적은 성령을 받은 확실한 증거가 될 수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기적은 마귀도 일으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성령을 받은 가장 확실한 증거는 무엇일까요? 성령을 받은 가장 확실한 증거는 우리가 마귀의 유혹을 물리치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 승리하는 능력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 성령은 율법의 행위가 아닌, 오직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아브라함의 복이 이방인에게 미치게 하고 또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게 하려 함이니라”(갈3:14).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임하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순종의 열매를 우리의 삶 속에서 생산해 내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이 믿음이 없고, 믿음을 가진 사람이 성령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믿을 때 우리 속에 성령(그리스도의 영)이 계신지 확인해 봐야 합니다. 그래서 바울이 로마서에도 고린도후서에도 ‘너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가 확인해 봐라. 너희 속에 성령이 없으면 너희는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롬8:9).

 

성령의 능력

우리가 아무리 믿는다고 공언해도 우리 속에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진리와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을 생산해 주지 않는다면 그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시편 119편을 읽어 보세요. 거기서 우리는 율법에 대한 다윗의 존중심과 사랑을 깊이 느낄 수 있습니다.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이야말로 성령의 역사의 결과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8:1). 그러므로 예수를 믿고 마음에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은 이제 더 이상은 죄의 노예가 아닙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롬8:2-4). 바울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되 그것을 자신의 노력과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말한 바로 이것이 갈라디아서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요약입니다. 여기에 그 공식이 나옵니다. “율법 안에서 의롭다 함을 얻으려 하는 너희는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지고 은혜에서 떨어진 자로다 우리가 성령으로 믿음을 좇아 의의 소망을 기다리노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갈5:4-6). 예수님 안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루는 삶을 살게 합니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 것도 그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우리에게는 이기적인 사랑은 있으나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은 없습니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롬5:5).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율법을 지키는 근본정신인데, 성령께서 이 사랑을 우리 마음속에 부어주셔야만 우리가 드디어 율법을 지킬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목적은 성령을 받는 것입니다.
“형제들아 너희가 자유를 인하여 부르심을 입었으나 그러나 그 자유로 육체의 기회를 삼지 말고 오직 사랑으로 서로 종노릇하라”(갈5:13). 이것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입니다. 우리의 이기적인 사랑이 아닌 성령을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의로운 생애를 살아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인 것입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16절). 이것이 구원입니다. 우리가 성령 충만하면 육체의 소욕이 우리를 지배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소욕이 나를 지배하면 성령이 우리를 떠나갈 수 밖에 없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한가지 문제
그런데 여기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믿음으로 하나님의 성령이 충만하여 성령의 힘에 의해서 내 속에 있는 죄의 법이 힘을 잃어버리고 주관됨으로서 새 생활을 시작한 후 구원받고 그 순간 우리의 생애가 끝나든지 예수께서 재강림하시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문제는 우리가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성령 충만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때 마귀가 우리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온갖 수단, 즉, 몸의 고통, 직장, 자녀문제, 경제문제 등으로 우리를 공격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죄를 이기는 것이 가능할까요? 성경의 대답은 물론 “YES”입니다. 요한일서 2장과 3장에는 하나님에게서 난 자마다 범죄할 수가 없다는 놀라운 말씀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마귀와의 실전에 약하기 때문에 쓰러지는 것입니다.
다음과 같은 예화를 통하여 이 문제에 대해서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합시다. 비가 올 경우 가끔 정전이 발생됩니다. 천둥번개가 쳐서 3초만 전기가 나가도 아주 귀찮은 일들이 생기곤 합니다. FAX에 있는 시간, 디지털 전화에 있는 시간, 주방의 오븐에 있는 시간들을 모두 올바로 교정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인생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생이라는 순례길을 걸어가다 가끔 원치 않는 천둥번개에 맞게 됩니다. 그러면 잠시 정전이 되어 믿음이 나가고 성령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쓰러지면 우리 힘으로 발버둥을 치다가 다시 주님께 나가게 됩니다. 이러한 경험들이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걸어가는 인생길에서 일어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죄는 반드시 이길 수 있으며, 정복할 수 있는 것으로 우리 모두에게 약속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약속했으므로 우리는 그것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 자신의 부족으로 인하여 가끔 넘어진다고 해서 죄와 유혹을 극복할 수 없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은 한번 받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받아야 합니다. 오늘의 구원은 내일의 구원을 보장하지 않습니다. 날마다 주님께 굴복하고 날마다 믿음을 새롭게 하고 날마다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주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역사를 믿음으로서 성령을 받고, 또 그 성령을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 진짜 믿음이고, 또한 이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성경은 우리가 실수하여 범죄하였을 경우에도 하늘에 중보자가 있으니 낙심하지 말라는 보증의 말씀을 주고 있습니다(고후5:5). 보증이란 무엇인가요? 보증이란 앞으로 더 크고 좋은 것이 온다는 것을 확증해 주는 것입니다. 그 더 좋은 것을 위해서 매일 보증을 받고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소망은 무엇인가요? 오직 믿음으로 성령의 약속을 받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오르락 내리락하지 않고 믿음으로 의롭게 사는 자들, 그리고 성령을 받고 예수를 마음에 모신 자들은 때때로 넘어질지라도 그들의 정신이 다른 것에 분산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일에 집중됩니다.
예수께서 재강림하시기 직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환난과 핍박이 엄습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예수께서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환난과 핍박이라는 용광로 속에 집어 넣으셔서 정결케 하신 후에 그들을 완전한 자로 인치실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성도들이 마지막 핍박과 환난 후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고 기록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14:1-5를 보면 계13장의 짐승의 표의 환난을 통과한 이후에, 드디어 인침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흠없이 서 있는 것을 우리는 보게 됩니다. 이러한 인침받은 자들, 즉 믿음으로 구원받은 자들을 환난에서 보호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일어나실 것입니다. “그때 네 민족을 호위하는 대군 미가엘이 일어날 것이요 또 환난이 있으리니 이는 개국 이래로 그때까지 없던 환난일 것이며 그때에 네 백성 중 무릇 책에 기록된 모든 자가 구원을 얻을 것이라”(단12:1). 성경은 최후의 승리자를 다음과 같이 묘사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14:12). 그러므로 우리가 소망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성령의 약속을 매일 받게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