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인_율법과 복음의 완전한 조화의 삶을 보여준 요한 웨슬리

 

당시 영국에 나타난 영적 쇠퇴는 율법 폐지론의 교리가 빚어낸 결과였습니다. 많은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도덕률을 폐지하셨으므로 율법을 지킬 의무에서 벗어났고, “선을 행해야 할 책임감”에서도 해방되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영원성을 인정하면서도 목사들이 사람들에게 율법을 순종하라고 권면하는 것은 무용한 일이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고자 택한 사람들은 저항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경건과 덕성을 실천하게 되고, 이와 반대로 영원히 버림을 받은 자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능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라고 주장하였기 때문입니다.

또 “택함을 받은 자들은 은혜를 받지 못하거나 하나님의 은총을 박탈당할 수 없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택함을 받은 자들이 범하는 악행은 참된 범죄가 아니며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것으로 여길 것도 아니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들의 죄를 고백하거나 회개로써 그런 죄를 끊어버릴 필요도 없다”는 이상한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일반적으로 하나님의 율법에 대한 큰 위반이라고 생각되는 것이라도 만일 택함을 입은 자가 범한 것일 때에는 “하나님께서 죄로 간주하지 아니하신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왜냐하면 “택함을 입은 자는 하나님을 노엽게 하거나 율법에 금지된 것은 어떤 것이나 행할 수 없는 것이 그들의 본질적이요 뚜렷한 특징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이 괴상한 교리는 본질적으로 후세의 일반 교육자와 신학자의 가르침과 똑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의의 표준인 하나님의 율법이 결코 불변(不變)의 것이 아니라 도덕의 표준이 사회 자체의 현실에 의하여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항상 변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의 성격을 변경할 수 없도록 고정시켰다는 하나님의 선고에 대한 교리는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사실상 하나님의 율법을 거부하게 하였습니다.

웨슬리는 율법 무용론자들의 그릇된 의견을 단호하게 반대하고,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의문의 율법과 함께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는 자들에 대하여 “도덕적 율법은 주님께서 결코 폐지하지 아니하셨다. 그분께서 오신 것은 그 율법의 어떤 부분을 삭제하고자 함이 결코 아니다. 이 율법은 결코 폐할 수 없는 것이며, ‘충실한 증거자로서 하늘에 굳게 설 것’이다. …그 율법은 태초부터 있었는데, 그것은 ‘돌판에 새기지 아니하였으나’ 모든 인류의 자녀들이 창조자의 손에서 나올 때 그들의 마음에 모두 새겨졌다. 그리고 한때는 하나님의 손에 의하여 문자로 기록되기까지 하였지마는 오늘날에는 죄로 말미암아 그것이 크게 훼손되었다. 그러나 선악에 대한 의식이 다소나마 사람들의 마음속에 남아 있는 한 그 율법은 완전히 폐지될 수 없는 것이다. 이 율법의 모든 부분은 각 시대의 온 인류가 지켜야 할 의무로 남아 있어야 한다. 그것은 시간과 장소와 환경에 따라 좌우될 것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의 본성과 사람의 본성, 그리고 그 상호 간의 변경될 수 없는 관계에 의하여 좌우되어야 한다.”라고 말하였습니다.

그는 율법과 복음의 완전한 조화를 아래와 같이 말하였습니다. “율법과 복음은 가장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으로 율법은 끊임없이 복음을 위한 길을 만들어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로 가도록 지시한다.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 복음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여 율법을 더욱 정확히 성취하도록 한다. 예컨대 율법은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온유하고 겸손하고 성결하기를 우리에게 요구한다. 우리는 그와 같은 모든 요구에 대하여 부족함을 깨닫는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으로는 불가능하지마는 이처럼 사랑을 주고, 겸손하고 성결케 하는 하나님의 언약을 보게 된다. 우리는 복음, 곧 기쁜 소식을 붙들게 된다. 그런데 그것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루어진다. 곧 ‘율법의 의’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안에서 완전히 이루어지게 된다.”

또 “그리스도의 복음의 가장 큰 원수 가운데는 ‘율법을 기탄없이 공격하고’, ‘율법을 악한 것으로 말하는’ 자들이 있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율법을 깨뜨리도록(율법에 대한 의무를 폐기하는 것) 가르치되, 율법의 가장 큰 조항이나 가장 작은 조항뿐 아니라 율법 전체를 온전히 깨뜨리도록 가르친다. …그러나 이러한 허망한 일 가운데도 가장 놀라운 일은 그들이 그리스도의 율법을 전복하면서도 그것을 높이는 줄로 믿고, 주님의 교훈을 폐하여 버리면서도 그분의 사역을 확장하고 있는 줄로 여기는 일이다. ‘주여 평안하니이까’라고 말하면서 입을 맞춘 유다와 같이 행동한 그들이 예수님을 과연 높이고 있는가.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에게 주님께서는 ‘네가 입맞춤으로써 인자를 파느냐’고 말씀하실 것이다. 주님의 보혈에 대하여 말하면서 그분의 면류관을 벗기는 일과 그분의 복음을 발전시키는 체 하면서 율법의 어느 부분을 삭제해 버리는 일은 입맞춤으로 그분을 배신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믿음을 전하는 자로서 직접적이거나 간접적으로 순종하여야 할 어떤 적은 부분이라도 제해 버리려는 태도를 취하거나, 그리스도를 전하는 자로서 하나님의 율법의 지극히 작은 것을 조금이라도 약하게 하거나 무효로 만드는 자는 유다에게 한 정죄의 비난을 면할 수 없다.”

“복음을 전하면 율법의 모든 목적을 다 하는 것이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하여 “우리는 그것을 전연 부인한다. 복음은 소위 율법의 첫째 목적, 곧 사람들에게 죄를 깨닫게 하고 아직도 음부의 구덩이에서 그냥 잠자고 있는 자들을 깨우는 일을 할 수 없다. 사도 바울은 ‘율법으로 죄를 깨닫게 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죄를 깨닫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속량을 받아야 할 필요성을 진정으로 느끼지 아니한다. …‘건강한 자에게는 의원이 쓸데없고 병든 자에게라야 쓸데 있느니라.’ 건강한 자, 혹은 스스로 건강한 줄로 생각하는 자를 위하여 의원을 부르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그대들은 먼저 그들에게 그들이 병든 사람인 것을 깨닫게 하여야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그대들의 수고에 대하여 그들은 감사히 여기지 아니할 것이다. 이와 같이 자기가 완전하다고 생각하고 아직 그 마음을 깨뜨리지 아니한 자에게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웨슬리는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는 한편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그의 생애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헤아릴 수 없이 귀중한 교훈을 줍니다.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2∼3시간씩 기도하고 성경을 연구하였습니다. 그의 이러한 생활 습관은 일평생 계속되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그의 감정을 건드려도 자제할 수 있는 침착한 사람이었으며 매사에 꼼꼼하고 신중하게 대처하였습니다. 반대자들이 아무리 그를 공격하여도 두려워하거나 요동하지 않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해 주었습니다. 남이 필요하다고 느낄 때에는 그는 항상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주었고 자기가 가진 것을 모두 다 주었습니다. 그와 같은 그리스도의 종의 신앙과 겸손, 불굴의 열성, 극기, 헌신은 오늘날의 교회에 그대로 반영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는 철저한 헌신자였으며 항상 낙천적이고 밝은 마음과 겸손하고 절제 있는 생활을 하였다고 평가하였습니다. 나이 80세가 넘은 만년에 가서, 곧 반세기 이상의 봉사의 생애를 통하여 50만 명 이상의 영혼들을 신자로 얻었고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였으므로 영광스러운 결과를 보게 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