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_누가 예수님을 진짜로 믿는 사람들인가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입니다. 자기 자신의 의견이나, 아니면 어느 인간의 학설을 따르는 자들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좋은대로 사는 자들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의 모본을 따라 살기로 작정한 자들입니다. 세상을 살기에 편리한대로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원하시고 또한 제시하여 주신 길대로 사는 자들입니다.

그렇기에 그리스도인의 길과 세상의 길 사이에는 항상 투쟁이 있기 마련입니다. 믿는 자들이 예수님을 구세주로 받아드릴 때에는 동시에 예수님을 자기의 주인이요, 왕으로 받아드리는 것을 수반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 안에는 예수님을 자기 편리한대로, 자기 마음대로 믿고 사는 가짜 그리스도인들로 가득 차있는 이상한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떤 교회들은 기업이 되어 가는가 하면 어떤 교회들은 사회 친목 단체나 클럽처럼 변신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좌표를 다시 살펴보는 일이 필요하겠습니다. 과연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어떻게 말씀하고 있을까요? 어떠한 사람이 참된 그리스도인일까요?

예수님께서는 그리스도인의 삶에 대하여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마7:13,14)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들이 살기에 적합하지 않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사는 일이란 참으로 많은 희생이 필요되는 생애라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하는 기쁨과 즐거움은 이 세상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 있다는 말씀입니다. 마음이 거듭나서 취미와 좋아하는 것들이 바뀌어 지지 않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인 생애를 살 수가 없다는 말씀입니다. 쉽게, 그리고 편하게 사는 길은 멸망의 길이라고 말씀하신 셈입니다. 사도 바울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골3: 1-3).

세상에서도 재미를 보고 하늘도 가겠다는 태도로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멸망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구원을 얻는 길에는 중간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적당히 믿는 사고방식은 신앙이 아닙니다. 우리가 물려받은 성경과 진리는 피 묻은 것들입니다. 얼마나 많은 선조들이 자기들의 생명을 바쳐가며 신앙과 진리와 그리고 표준을 고수하여 왔습니까! 그러므로 우리는 빚진 자들입니다.

한번은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는데 어떤 사람이 질문을 하였습니다. “혹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얻는 자가 적으니이까?”(눅13:23) 옛날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궁금증은 한결같은 것을 보게 됩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주님을 따르는 제자의 길, 즉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란 어떠한 각오로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 길인지를 아주 명료하게 설명해 주셨습니다.
“저희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 (눅13:24)라고 말씀 하시고는 길을 가시다가 뒤 따르는 수많은 군중들을 향하여 다시 더 자세하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허다한 무리가 함께 갈쌔 예수께서 돌이키사 이르시되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고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좇지 않는 자도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 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않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가로되 이 사람이 역사를 시작하여 다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 또 어느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으로서 저 이만을 가지고 오는 자를 대적 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저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 지니라. 이와 같이 너희 중에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14:25-33).

예수님의 제자의 부르심은 아주 명백합니다. 따르기 전에 먼저 어떠한 댓가를 치루어야 하는지에 대하여 분명하게 제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부모 형제 사이에 선택하여야 할 입장에 놓이게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먼저 선택하지 않는 자는 내게 합당치 않다고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의 정욕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따를 때에 자연히 짊어지고 가야할 십자가가 따르게 됩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죽이는 길입니다. 그 길은 어떤 의미에서 수치스러운 일입니다. 옛날에 십자가를 지는 일이 그러했던 것처럼....자기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요 또한 주님의 축복 때문에 그것들을 소유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이해하고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재산이나 시간이나 달란트(재능)들은 모두 주님께서 주신 것이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서 사용되어져야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따르는 자가 그리스도인입니다. 이러한 제자됨의 댓가에 대한 가르침이 타협되거나, 가르쳐 지지 않고 망각되어 버렸을 때에 교회는 곤두박질하게 되었고 급기야는 세상 사람들과 교인들 사이를 구분하지 못할 만큼 타락하게 된 것입니다.


현대 그리스도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로 눈앞에 두고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예비하는 생활을 살아야 하는 때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선지자 아모스는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하나님을 만나기를 예비하라.” (암4:12). 우리는 하늘에서 거룩한 천사들과 이웃이 되어 살아야 할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초림하셨을 때에도 그 분의 길을 예비하기 위하여 부르심을 받았던 선지자 침례 요한도 회개의 기별을 전파하였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이 오시는 메시야를 마음속에 받아 드릴 수 있게 하기 위하여서 그들의 생애의 개혁과 부흥을 촉구하는 회개의 기별을 전하였던 것입니다. 그의 사명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는 이미 이렇게 예언해 두었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가로되 너희는 주의 길을 예비하라 그의 첩경을 평탄케 하라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 질 것이요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눅3:4-6)(사40:3-5).

그렇습니다. 산처럼 높아져 있는 우리의 교만한 마음들이 낮아져야 하겠습니다. 골짜기처럼 깊숙하게 들어가 있는 음흉한 마음들과 이기심들이 돋아져 평평하게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타협하며 적당하게 살아가는 굽은 마음들이 곧바로 펴져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돌들과 파인 곳들이 많은 길처럼, 거칠고 모나며 세상의 잔재들로 가득찬 성품들이 치워져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오시는 길이 평탄하여 지도록 말입니다. 침례 요한은 광야에서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요한이 침례 받으러 나오는 무리에게 이르되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장차 올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그러므로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 말하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눅3:7-9).


마태복음 13장에는 또 다른 예수님의 호소의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밭에 감추인 보화와 같으니 사람이 이를 발견한 후 숨겨 두고 기뻐하여 돌아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밭을 샀느니라 또 천국은 마치 좋은 진주를 구하는 장사와 같으니 극히 값진 진주 하나를 만나매 가서 자기의 소유를 다 팔아 그 진주를 샀느니라.”(마13:44-46). 보화가 감추인 밭의 값은 얼마였는가요? 백만불? 천만불? 아닙니다. 그 밭의 값은 그 농부가 가지고 있던 모든 것이었습니다. 진주의 값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진리와 영생의 댓가는, 다시 말해서 그리스도의 제자가 됨의 댓가는 자기의 옛 생애를 완전히 다 포기하고 예수님의 길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문을 좁은 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그 길은 가장 즐거운 길입니다. 그 길은 가장 보람되고 행복한 길입니다. 그 길은 세상이 줄 수 없는 평안과 쉼을 주는 길입니다. 그러나 그 길에는 한 가지 조건이 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함과 겸손함을 배워야 하는 길입니다. 진리를 발견하려고 헤메던 인간이 창조주요, 구속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찾아 만나고 나면 과거에 살던 죗된 길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이는지 모릅니다. 그리고 신기루와 같은 세상이 제시하는 행복에 속임 당했던 자신을 후회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죄를 미워하게 됩니다. 그것이 거듭난 자들의 특징입니다. 그리고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사는 영생의 길이 그렇게도 매력적으로 다가오는 것입니다.

“전에 악한 행실로 멀리 떠나 마음으로 원수가 되었던 너희를 이제는 그의 육체의 죽음으로 말미암아 화목케 하사 너희를 거룩하고 흠 없고 책망 할 것이 없는 자로 그 앞에 세우고자 하셨으니”(골1:21,22)라고 바울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베드로도 합세하여 우리들에게 이렇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사모하라...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 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0-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