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부_두 길-당신이 선택한 길은 어떤 길입니까?

 

사람들이 즐겨 애송하는 시 중에 로버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이라는 시가 있습니다. 시인은 노란 숲속에서 만났던 두 갈래 길과 그 길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던 그의 경험을 시로 적고 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했던 그 선택 때문에 후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끝을 맺습니다.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두 갈래 길이라는 일상적 소재를 통해 우리의 인생을 표현한 이 시는, 우리 인생에서 만나는 두 갈래 길 중에 어느 쪽을 선택하든 그 선택한 길 때문에 우리의 운명이 완전히 다르게 결정된다는 것을 담담한 어조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예수님을 따르기 위해 우리 앞에 제시된 길에 대해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친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으로, 모든 사람들 앞에는 언제나 두 가지 길이 주어지고 거기서 반드시 자신이 갈 길을 선택해야 함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내리는 그 선택은 우리의 운명을 완전히 결정지어 줍니다.

1) 두 길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가지 길은, 한 길은 넓은 길, 또 다른 길은 좁은 길입니다. 넓은 길은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이고, 좁은 길은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그리고 어떤 길을 선택하는가에 따라 결과는 영원한 것이 됩니다.
그리스도 당시에 사람들은 대개 언덕이나 산 위에 위치한 성벽으로 둘린 마을에서 살았습니다. 일몰 때 닫히는 성문이 가파른 바윗길에 붙어 있었기 때문에, 저녁 무렵에 집으로 가는 사람들은 밤이 되기 전에 성문에 도착하기 위해 힘든 오르막길을 서둘러 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해가 지기 전에 성문에 도착하기 위해 서두르는 저문 길의 나그네는 길가에 있는 그 어떤 매력적인 것에도 한눈을 팔 수가 없었습니다. 오로지 성문으로 들어가는 한 가지 목적만을 생각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장면을 그리스도인의 노정에 대한 인상적인 상징으로 사용하셨습니다.

1. 좁은 길, 십자가의 길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어떤 길입니까?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 앞에 제시한 길은 좁고 그 문이 들어가기에 어렵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을 따르는 길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따라갈 수 있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십자가는 항상 두 길이 나누어 지는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려면 자신이 십자가에 못박힌 경험을 해야 갈 수 있습니다. 자아가 십자가에 못박히고 자신을 부인하는 사람만 따를 수 있는 길이 십자가의 길입니다. 그 길이 좁은 길이고 그것이 좁은 문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그 입구가 험합니다. 만일, 버리지 않은 어떤 죄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그 길이 들어가기에 너무 좁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주님의 길을 따라가려면, 우리 자신의 길과 자신의 뜻과 자신의 악한 습관과 행동을 버리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이 보여주신 계명 황금률이 인간의 모든 교만과 자기 본위의 마음을 제거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섬기는 사람은 세상의 의견을 따르거나 세상의 표준에 맞출 수 없습니다. 하늘의 길은 높은 지위와 부를 그대로 가지고 들어가기에는 너무 좁고, 자기중심적인 야망을 불태우기에도 너무 협소하며, 안락을 즐기며 오르기에도 너무 험하고 거친 길입니다. 좁은 길을 먼저 걸어가신 그리스도의 몫은 고통, 인내, 자아 희생, 비난, 궁핍 그리고 그분을 대항하는 죄인들의 반박이었습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려고 한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기 원한다면 이러한 몫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앞에는 두 갈래 길이 있습니다. 한 길은 하늘로 가는 순종의 길이요, 다른 한 길은 사람들이 죄와 방종의 짐을 가지고 아무렇게나 갈 수가 있지만 필경은 파멸과 영원한 죽음에 이르는 넓은 길입니다.

2. 험한 전진의 길

만일, 영생으로 가는 길을 가려면 여러분은 계속해서 올라가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좁은 길, 십자가의 길, 생명의 길은 오르막길이기 때문입니다. 버리고 또 버리고 세상을 거슬러서 올라가야 하는 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생애는 하나의 싸움이며 진군입니다. 예수님께 순종하는 모든 행동, 그분을 위해 참은 모든 극기의 행동, 인내하며 견디어 낸 모든 시련, 유혹에서 거둔 모든 승리는 생명과 승리의 영광을 향하여 나가는 행진의 발걸음입니다.

그런데 얻어야 할 승리는 인간의 힘으로 얻어지지 않습니다. 매 순간 싸움과 치열한 전쟁을 치러야 합니다. 그리고 그 싸움의 장소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 인류가 지금껏 싸운 가장 큰 싸움은 자아를 하나님의 뜻에 굴복시키는 것, 곧 마음을 사랑의 주권에 바치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 싹튼 이기심과 교만은 매사에 대항하여 싸우려고 일어날 것입니다. 우리를 지배하려고 일어나는 육체의 세속적인 욕망과 습관을 스스로의 힘으로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를 속박하고 있는 강력한 원수를 정복할 수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수 있으십니다.

길이 험하며 오르막길이 비탈져 있고 좌우에 함정이 많이 있을지라도, 우리는 여행길에서 겪는 고통을 견디어야 할 것입니다. 피곤할 때에도, 안식이 그리울 때에도 계속해서 전진해야 하고, 연약할 때에도 싸워야 하며, 낙심될 때에도 계속 희망을 품고 가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우리의 인도자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마침내 소망의 항구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보다 먼저 그 험한 길을 친히 걸어가셨고, 우리의 발을 위하여 그 길을 평탄하게 하셨습니다.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이 비록 가파르지만, 그 길에는 피곤한 자들에게 생기를 주는 기쁨의 샘이 있습니다. 좁은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비록 환난을 당해도 크게 기뻐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사랑하는 구주께서 곁에서 동행하시기 때문입니다. 위로 한 걸음 한 걸음 올라갈 때마다 주님의 손길을 더욱 분명히 깨닫게 되고, 발걸음마다 더없이 밝은 영광의 빛이 앞길을 비추어 줄 것입니다.

2) 넓은 길은 저절로 찾아진다

많은 사람들은 편한 길 내리막길을 선호합니다. 자아를 부인할 일도 없고, 죄를 버려야 할 일도 없는 넓은 문과 넓은 길은 많은 무리의 사람들이 택하는 길입니다. 그 길은 온갖 세속적 마음과 이기주의와 교만과 부정직과 도덕적 타락을 가지고도 갈 수 있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의견과 주장에 따라 이기적인 마음이 지시하는 대로 무엇이나 할 소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멸망으로 인도하는 길을 가는 데에는 따로 길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아를 부인하는 일과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을 거절하게 되면 그 문과 길이 넓어 발이 사망으로 끝나는 길을 향하여 저절로 가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올라가는 길은 힘든 길이며 내려가는 길은 쉬운 길이라고 결론을 내리지 말아야 합니다.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에도 줄곧 고통과 형벌이 있고, 슬픔과 실망이 있습니다. 사단의 길이 매력적으로 보이도록 만들어져 있는 것은 사실이나, 그것은 모두 기만입니다. 악의 길에는 쓰라린 후회와 점점 깊어지는 고뇌가 있습니다. 사람이 교만과 세속적 야망을 좇는 것을 즐겁게 여길 수도 있지만 그러나 그 종말은 고통과 슬픔인 것을 알게 됩니다. 내리막길은 그 입구가 꽃으로 밝게 빛날지 모르나 가시가 있습니다. 입구에서 빛나던 희망의 빛이 절망의 흑암 속으로 사라져 버리고,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은 끝없는 밤의 어둠 속으로 빠져들어 가게 될 것입니다.

3) 두 길을 가는 사람들의 특성과 태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두 길은 서로 구별되고, 분리되고, 서로 반대됩니다. 그 길로 여행하는 사람들의 삶과 품성과 의복과 대화에서도 서로 반대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들이 여행 끝에 가질 기쁨과 행복에 대하여 이야기하며 소망 속에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들의 얼굴은 당하는 시련과 고난으로 슬픈 빛을 띠지만, 예수님의 임재 속에서 얻는 성스러운 기쁨의 빛으로 빛납니다. 그들은 넓은 길에 있는 무리처럼 살거나 옷을 입거나 말하거나 행동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는 한 분의 모본이 주어져 있는데, 그들을 위하여 친히 앞서 그 길로 걸어가신 분입니다.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그분의 발자취를 보고 위로와 기쁨을 얻습니다. 예수님의 삶의 태도와 성품이 그들의 삶에 똑같이 반영됩니다. 그들이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는 한, 그들은 안전하게 하늘까지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넓은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현재 가지고 있는 자신의 소유와 재물과 명예, 그리고 자신의 용모와 의복과 그 길에서 얻는 쾌락 등에 몰두합니다. 그들은 영원한 사물에 마음을 두지 않습니다. 현세의 쾌락에 마음껏 몰두하고 즐기느라 그 길 끝에 있는 분명한 멸망에 대하여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내세의 행복이나 기쁨에 무관심하므로 영생이나 영적인 주제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현세에 얻는 영화가 그들의 주된 관심사이지만, 그것은 영원한 평안이나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그들은 매일 멸망으로 점점 더 빨리 달려가고 있습니다.

1. 좁은 길을 간다고 공언하는 사람들

그런데 종종 좁은 길을 간다고 공언하고 자랑하는 그리스도인들 중에 넓은 길을 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에 대하여 죽었다!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으니 준비하라!”고 크게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이 넓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그들은 얼굴에 잠깐씩 보이는 슬픔의 그림자 외에는 그들 주변에 있는 세상의 허망한 자들과 똑 같습니다. 그들의 마음과 성품과 삶과 대화는 세상 사람들과 똑 같지만, 정작 자신은 자기의 진짜 모습을 모르고 자신에 대해 매우 만족하면서 다른 사람들을 지적하는 일들을 합니다. 그들은 넓은 길을 가고 있으면서도 좁은 길을 가고 있는 자들에게 속한다고 공언하곤 합니다. 그러나 그들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기 때문에 “우리들 사이에는 아무런 차이가 없네요. 당신의 삶이나 성품도 우리와 똑 같네요. 우리도 당신처럼 똑같이 말하고 행동합니다”라고 비웃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자들에게 이런 현상이 나타날 수 있습니다. 세상과 일치되는 것, 진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려고 하지 않는 것, 자기의 뜻을 굽히지 않고 하나님께 굴복하려고 하지 않는 현상들이 일어납니다. 애굽을 떠난 후의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떠했습니까? 하나님께서 놀라운 방법으로 그들을 취급하시고 여러 번 구원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께로부터 시험과 연단을 받을 때마다 매번 불평하고 원망했습니다. 그들은 늘 떠나온 애굽과 애굽의 파와 마늘을 갈망했습니다.

2.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도

이 마지막 시대에 진리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행하는 도중에 불평하고 원망하고 하나님께 배은망덕한 것처럼 합니다. 그렇게 큰 빛이 분명하게 비추어지는 축복을 받았음에도, 그 큰 축복을 귀중하게 여기지 않고 진리로 변하지 않고 그에 온전히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않는다면, 우리들도 이스라엘 백성들보다 더 나은 것이 없을 것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그리스도인들 중에 어떤 사람들은 정결케 하는 시련이 무엇인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때때로 시련을 자초하고, 시련을 당할 때에 너무도 쉽게 낙심하며, 너무도 쉽게 상처를 받고, 너무도 쉽게 자존심을 상하게 되므로, 자기 자신이 영적으로 손해를 당합니다. 사단이 그들의 시련을 확대시키고 마음속에 잡념을 넣어 줄 때에 많은 사람들은 이에 굴복함으로 그들의 영성과 유용성이 약해집니다. 그들은 그들이 가고 있는 길이 거친 길이요, 극기의 길이요, 자아를 십자가에 못 박는 길임을 명심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마치 넓은 길을 가고 있는 것처럼 모든 것이 순탄하게 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됩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 위하여, 또한 모든 것을 기꺼이 감수하고 참을 수 있는 순결하고 성실하고 자아 희생적인 무리들만이 마지막 백성으로서의 자격을 갖추게 될 것이며, 그 사람들이야말로 주님을 따라 좁은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것이 증명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선택한 길은 어떤 길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