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5부_신앙과 생활을 분리했다

사탄은 오늘날 신앙과 생애를 분리해 놓는 일에 크게 성공하고 있습니다. 신앙은 이름뿐이며 생활과는 별개의 것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교회에서만 신앙을 하는 사람은 아닌지, 우리 개인 생활에서, 가정과 이웃들에게, 직장에서 우리는 그리스도를 대표할 수 있는 신앙인인지 살펴봐야 합니다.

현대의 바리새인들

고대의 바리새인들은 신앙과 삶을 분리해서 살므로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겉으로는 매우 경건한 척하면서, 회당과 거리에서는 매우 거룩한 척하면서 그들의 삶은 온갖 악덕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리켜 “회칠한 무덤”같다고 하셨습니다. 당시 어떤 무덤들은 속에는 송장이 있으나 무덤의 겉은 회로 칠하여 매끈하고 깨끗하게 손질해 놓았습니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마 23:28). 다음의 엄중한 말씀을 들어보십시오.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너희가 박하와 회향과 근채의 십일조를 드리되 율법의 더 중한 바 의와 인과 신은 버렸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소경된 바리새인아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마 23:23-26).

바리새인들은 율법주의적인 신앙도 문제였지만, 그들은 눈에 보이는 신앙적 의무를 행하므로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그들이 해야 할 일을 다 했다고 만족하는 것이었습니다. 속마음에는 분노가 있어도, 이웃과 싸웠어도, 용서를 못한 사람이 있어도 겉으로 드러난 신앙적 의무를 행하므로 그들은 안위를 얻었습니다.

오늘날은 어떻습니까? 우리는 혹 교회에서의 삶과 가정에서의 삶이 다른, 이중인격을 가지고 위선적인 신앙을 하는 사람은 아닙니까? 고대의 바리새인들처럼 많은 사람들은 교회에서의 의무를 행하므로 신앙적 의무를 다했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에 충실하고 열심히 봉사하므로 하나님께서 그들 개인의 삶에서의 죄악들을 봐주실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안 볼 때에, 하나님 앞에서 정직한 사람이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들의 입으로뿐 아니라 그들의 삶으로 거짓말을 하지 않는 사람들…. “누구든지 스스로 경건하다 생각하며 자기 혀를 재갈 먹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을 속이면 이 사람의 경건은 헛것이라”(약 1:26).

바벨론의 관습에서 분리되라

베드로는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을 제어하라”(벧전 2:11)고 말합니다. 죄악적인 갈망을 만족시킬 때마다 신체의 기능이 마비되고 영적?지적 감각력이 죽고 하나님의 말씀 혹은 성령의 감화는 마음에 빈약한 인상을 끼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에게 “우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거룩함을 온전히 이루어 육과 영의 온갖 더러운 것에서 자신을 깨끗케 하자”(고후 7:1)고 말했습니다. 그는 또한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갈 5:22, 23)와 같은 성령의 열매에 “절제”를 부가시켰습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이익을 추구하고 유행을 따르기에 급급한 나머지 그들의 능력을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또 많은 사람들이 탐식과 음주와 금지된 쾌락을 통하여 고상한 인간성을 타락시키고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이를 견책하는 대신에 오히려 물욕과 연락을 사랑하는 마음을 부추기고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만으로 공급할 수 없는 교회의 자금을 보충하기 위하여 너무도 흔히 세속적인 방법들을 사용합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오늘날의 교회에 오셔서 종교라는 미명 아래 행해지고 있는 연회와 부정한 거래들을 보신다면, 그분께서는 일찍이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을 내쫓으신 것과 같이 하나님을 모독하는 이런 자들을 내쫓지 않으시겠습니까?

세상은 자아 방종에 빠져 있습니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많은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고상한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너희는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 세속적 만족과 죄악적 습관을 완전히 내버리지 않으면 성화는 진실한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저희 중에서 나와서 따로 있고 부정한 것을 만지지 말라”는 조건에 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영접하여 너희에게 아버지가 되고 너희는 내게 자녀가 되리라”(고후 6:17, 18)는 약속이 주어져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두움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잠 4:18)릅니다. 의의 태양 되시는 그리스도의 밝은 빛이 하나님의 종들에게 비칠 때 그들은 그분의 빛을 반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영의 은혜와 그분의 품성의 순결이 그분의 증인들의 삶에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바울은 에베소 교회의 형제들에게 그리스도인의 특권이 얼마나 고귀한 것인지를 깨닫기를 바라는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는 그들에게 가장 의미 깊은 말로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의 자녀들이 소유할 놀라운 능력과 지식을 열어서 보여 줍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그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닫는 것이 그들의 특권이었습니다. 사도는 이어서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고 간절히 구하였습니다(엡 3:16-19).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약속을 믿는 믿음을 통하여 도달할 수 있는 높은 표준이 여기에 밝혀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 표준에 도달할 때 우리는 그분의 요구를 이루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우리는 무한한 능력을 가지신 하나님의 보좌에 가까이 나아갈 수 있습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느뇨”(롬 8:32).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에게 성령을 아낌없이 주셨으므로 우리들도 그 영으로 충만함을 입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눅 11:13).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요 14:14).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요 16:24).

믿음과 순종을 분리한 결과

신앙과 생애를 분리하기 위해 사탄은 먼저 믿음과 순종을 분리했습니다. 한쪽에서는 오직 믿음만을 주장하게 하고, 오직 믿음이 아니면 그것은 이단이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를 주장하는 율법주의로 만들어 버린 것입니다. 또 한편으로는 너무 지나치게 자신의 노력과 헌신과 희생으로 하나님의 의를 얻어보려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의 신앙은 매우 무겁고 엄중하며 감사와 기쁨과 행복이 결여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과 순종을 분리해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이라고 불리는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이삭을 얻었고 그의 믿음을 이삭을 번제로 드리는 일을 통해 증명하였습니다. 순종은 믿음의 자연스런 결과입니다. 순종은 사랑의 반응입니다. 믿음이 말씀을 통해 이르러 오는 선물이라면 순종 역시 우리 안에서 하나님께서 행하게 하시는 선물인 것입니다.

“네가 하나님은 한 분이신 줄을 믿느냐? 잘하는도다. 귀신들도 믿고 떠느니라.” 누구나 지식적으로는 얼마든지 믿을 수 있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믿기만 하는 것은 사탄도 합니다.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 알고자 하느냐?” 그러나 행함이 없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닙니다.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드릴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케 되었느니라”(약 2:19-22). 성경은 매우 분명하게 “믿음이 그의 행함(순종)과 함께 일”한다고 가르칩니다. 믿음과 순종은 분리된 것이 아닙니다. 함께 일하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요일 2:5).

신앙과 생활

성경은 분명히 신앙과 삶이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 4:20). 복음을 입술로만 말하지 말고 삶으로 보여주도록 해야 합니다. 이 세상은 무엇을 기다리고 있습니까? 우리는 인터넷만 검색하면 수도 없이 쏟아져 나오는 말씀과 진리의 홍수 속에 살고 있습니다.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성경의 진리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왜 진리를 위해 목숨 거는 자들이 없습니까? 진리의 지식이 아니라 진리화된 사람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 얼굴만 봐도 이 사람은 진리를 가진 사람이구나,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은 참이라고 생각할 사람, 진리로 거룩하게 된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찾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 5:6). 그대의 믿음은 그대의 삶 속에, 이웃들 속에, 가정 안에서도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이 되고 있습니까? 그대의 믿음은 순종을 통해 온전하게 되고 있습니까?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을 가지므로 우리의 삶이 신앙이 되도록 합시다!

 

마치면서

사탄의 분리작전에 넘어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끊임없이 연결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는 것들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는 것은 아주 기본적이면서도 지나치기 쉬운 것들입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계실 때에 기도로 하나님과 연결되셨습니다. 그분은 매 순간 성령의 인도를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고 그분의 뜻을 이루는 삶을 사셨습니다. 그분 자신은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요 15:4). 우리를 하나님과 연결되게 하는 것들은 기도와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는 길뿐입니다. 기도로 하루를 열고 말씀으로 하루를 시작하십시오! 항상 기도로 하나님과 교통해야 합니다. 길을 걸을 때나 일상적인 의무를 행할 때에도 우리 마음이 늘 하늘을 향해 열려 있게 합시다! 때로는 기도할 마음이 없을 때에도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가 정말 우리 영혼의 호흡이 되었으면 합니다. 침묵의 기도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갈망과 소원을 올리도록 했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창조의 능력이 있습니다. 그 말씀은 우리에게 믿음을 주고 성령의 역사를 이루게 하며 우리를 거듭나게 합니다. 신앙생활에 힘이 없고 낙망하게 되는 이유는, 말씀을 등한히 하기 때문입니다. 유혹이 강하게 느껴지고 목적 없이 방황하는 이유는 말씀에서 떠나있기 때문입니다. 말씀 안에 거하도록 합시다! 말씀에서 영적 생명을 취합시다!

때때로 말씀을 읽을 때에 우리는 기도할 준비가 되는 것을 알게 됩니다. 모든 문제는 말씀을 등한히 함에서 시작되므로 문제의 해결은 말씀 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깨닫게 해주시고, 양심을 통해, 섭리를 통해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고 믿음으로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뜻에 나 자신을 굴복하는 것, 그분의 말씀에 아멘 하며 기쁘게 순종하는 것은 때로는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처럼 어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기꺼이 우리 자신을 하나님께 바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만큼 하나님과의 연결을 확고하게 하는 것은 없습니다. 순종을 통한 고난은 우리를 연단케 하여 주님을 더욱 반사하게 해줄 것입니다. 우리 삶에서 우리를 하나님과 분리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말씀과 기도와 순종을 통해 하나님 안에, 그분의 사랑 안에 거해야 하겠습니다. 그러면 포도 가지가 원줄기에 연결되어 있으면 자연스럽게 열매가 맺히듯이, 우리 삶에도 성령의 열매가 풍성하게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