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4부_칭의에서 성화를 분리했다

사탄의 사용한 분리작전 중에 하나는 칭의에서 성화를 분리한 것입니다. 사람이 죄를 회개할 때에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모든 죄를 용서를 받을 때에 의롭다는 칭함을 받게 됩니다. 그것을 신학적인 용어로 “칭의”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그 때 우리는 과거의 죄를 다 청산하고 새롭게 태어나는 거듭남의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구원은 칭의에서 다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의롭다 칭함을 받은 사람은, 정말 그의 생애가 온전히 의롭게 되고 그 의로운 생애를 계속 유지되게 해야 합니다. 거듭남은 한번으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거듭남은 계속 지속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로부터 계속 칭의를 받도록 하나님께 우리의 마음과 온 생애를 지속적으로 바치고, 또 거룩하게 변화되는 경험을 “성화”라고 합니다. 사탄은 그저 믿기만 하라,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과 순종은 필요가 없다는 분리작전을 사용하여 기독교에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진리로 성화됨

참된 성화는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에 보낸 편지에서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너희의 거룩함이라”(살전 4:3)고 기록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너희로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살전 5:23)고 하였습니다. 성경은 성결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얻을 수 있는지 가르쳐 줍니다. 구주께서는 제자들을 위하여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입니다”(요 17:17)고 기도하셨습니다. 바울도 신자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롬 15:16)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요 16: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계명에 나타나 있는 의의 큰 원칙들이 사람들에게 알려집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며, 완전하신 하나님을 그대로 나타내주므로 그 계명에 순종할 때 이루어지는 품성도 또한 거룩하여집니다. 그리스도는 그런 품성의 완전한 모본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항상 그의 기뻐하시는 일을 행”(요 15:10, 8:29)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분과 같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어 그분의 거룩한 율법의 원칙과 일치한 품성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성화입니다. 이 일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고 하나님의 영의 내재하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아서만 성취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신자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 13)라고 권고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유혹을 받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언제나 그것을 대항하여 싸울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사람의 연약함이 하나님의 능력과 연합될 때 믿음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이김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고전 15:57)라고 부르짖게 됩니다.

성경은 성화의 과업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짐을 분명히 알려 줍니다. 죄인이 회개하여 속죄의 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해질 때부터 그리스도인 생애가 시작됩니다. 이때부터 그는 “완전한 데 나아”가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자라나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빌 3:13, 14)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성경이 제시하고 있는 성화를 얻는 계단을 우리에게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는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 1:5-10)고 기록하였습니다.

성화의 참 뜻

진정한 성화의 경험을 한 사람은 겸손한 정신을 나타낼 것입니다. 성결의 두려운 위엄을 목격한 사람들은 모세처럼, 무한하신 하나님의 순결하심과 완전하심에 비해 그들 자신의 무가치함을 깨닫게 됩니다.

선지자 다니엘은 참된 성화의 모본이었습니다. 그의 일생은 주님을 위하여 바친 고상한 봉사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는 하늘의 “은총을 크게 받은 사람”(단 10:11)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존경받는 선지자는 자신의 순결과 성결을 주장하는 대신에 자신을 죄많은 이스라엘의 한 사람으로 간주하고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께 이렇게 탄원했습니다. “우리가 주의 앞에 간구하옵는 것은 우리의 의를 의지하여 하는 것이 아니요 주의 큰 긍휼을 의지하여함이니”, “우리가 범죄하였고 악을 행하였나이다.” 그는 다시 “내가 이같이 말하여 기도하며 내 죄와 및 내 백성 이스라엘의 죄를 자복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에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서 교훈을 주셨을 때에 그는 “내 몸에 힘이 빠졌고 나의 아름다운 빛이 변하여 썩은 듯하였고 나의 힘이 다 없어졌”다고 하였습니다(단 9:18, 15, 20, 10:8).

욥도 폭풍 가운데서 주님의 음성을 듣고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6)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또 이사야는 스랍들이 주님의 영광을 보고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하고 창화하는 소리를 듣고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사 6:3, 5)고 크게 외쳤습니다. 바울은 셋째 하늘로 이끌려가서 사람의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말을 들은 후 자기 자신을 가리켜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고후 12:2; 엡 3:8)라고 말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품에 안겨서 사랑을 받은 요한은 그분의 영광을 보고 천사의 발 앞에 엎드러져 죽은 것같이 되었습니다(계 1:17 참조). 이렇게 참된 성화의 길을 가는 사람들은 자신이 거룩하다거나 죄 없다고 자만하지 않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의 그늘 밑을 걸어가는 사람들은 자고하거나 죄에서 해방되었다고 으스대는 주장을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의 심장을 파열시킨 고뇌의 원인이 자기들의 죄였다는 것을 느끼며, 그런 생각이 그들을 스스로 겸비하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가장 가까이 생애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죄악과 약점을 가장 분명히 깨닫고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구주의 공로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오늘날의 종교계에서는 많은 경우에 칭의만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성화를 좀 가르치고 있기는 하지만, 하나님의 계명을 무효시키는 가르침과 병행시키고 있기 때문에 그것은 성경상의 참된 성화와는 거리가 먼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자들은 성화가 순간적인 것이며 오직 믿음으로만 완전한 성결을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들은 “믿기만 하면 구원은 그대의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받는 자 편에서는 그 이상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는 듯이 생각하게 가르칩니다. 동시에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의 권위를 부인하고 그들이 계명을 지켜야 할 의무에서 해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품성과 뜻의 표현이 되는 원칙에 조화되지 않으면서 어떻게 사람이 하나님의 품성과 뜻에 일치하는 성결을 이룰 수 있겠습니까?

흠 없는 제물이 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의 요구 중 한 가지를 고의적으로 범하면서 거룩해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죄인 줄 알면서 고의로 죄를 범하게 될 때 깨우쳐 주는 성령의 음성을 침묵케 하고 자신을 하나님에게서 떠나가게 합니다. “죄는 불법이며” “범죄하는 자마다 그를 보지도 못하였고 그를 알지도 못하였”(요일 3:4, 6)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또한 요한은 계속해서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요일 2:4, 5)느니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모든 사람의 신앙 고백을 검토해 볼 수 있는 시금석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에서 성결의 표준으로 정해 주신 유일의 척도로 재어 보지 않고서는 어떤 사람도 성결하다고 할 수 없습니다. 도덕적 율법의 가치를 느끼지 않는 자들, 하나님의 계명을 소홀히 하거나 등한히 여기는 자들,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범하고 또 그렇게 남을 가르치는 자들은 하나님의 눈에 존중히 여겨질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무한하신 순결과 성결에 대한 진정한 개념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들이 하나님의 품성과 일치되는 사람들이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 못할 때, 또한 예수님의 순결과 고상한 모습, 그리고 사악한 죄의 성질에 대해 진정한 개념을 가지지 못할 때, 사람들은 자기 자신을 성결하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자기와 그리스도와의 거리를 멀리하면 할수록,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의 요구에 대한 개념이 부족하면 부족할수록, 자신이 자기 자신의 눈에 의롭게 보이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설명한 성화는 전인, 곧 영과 혼과 몸을 다 포함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인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너희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하노라”(살전 5:23)고 하였습니다. 그는 또한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고 편지하였습니다. 고대 이스라엘 시대에 하나님께 드리는 모든 희생 제물들은 모두 엄밀히 검사되었습니다. 만일 제물로 드려진 짐승에게서 어떤 결점이 발견되면 그것은 거절당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제물은 “흠 없는” 것으로 드리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이 그리스도인들은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는 명령을 받고 있습니다. 마음과 몸의 능력을 약화시키는 모든 행위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창조주를 위한 봉사에 부적당하게 만듭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드릴 수 있는 최선의 것이 아닌 것을 드릴 때에 기뻐하실까요? 그리스도께서는 “네 마음을 …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그들의 생애로써 하나님께 최선의 봉사를 하고자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행할 능력을 촉진시켜 줄 계명과 조화되고자 그들의 모든 역량을 다하여 끊임없이 노력할 것입니다. 그들은 정욕이나 식욕에 빠짐으로써 하나님 아버지께 드리는 제물을 약화시키거나 더럽히지 아니할 것입니다.

회개와 성화의 열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롬 8:1)

타락한 아담의 자손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들”이 됩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히 2:11)하십니다. 그리스도인 생애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과 승리와 기쁨의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대저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긴 이김은 … 믿음이니라”(요일 5:4). 하나님의 종 느헤미야가 “여호와를 기뻐하는 것이 너희의 힘이니라”(느 8:10)고 한 말은 진실한 말입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주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빌 4:4),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전 5:16-18).

이러한 일들이 성경상 회개와 성화의 열매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 가운데 나타난 의의 큰 원칙을 일반 그리스도교계에서 매우 등한히 여기게 가르쳤기 때문에, 진정한 회개와 성화는 아주 드물게 일어납니다. 이것이 바로 일찍이 신앙 부흥의 원동력이 되었던 하나님의 성령의 심오하고 영속적인 역사를 거의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우리는 바라봄으로써 변화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께서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과 거룩하심을 사람들에게 밝히 보여 주신 거룩한 원칙들을 무시하고 사람들의 교훈과 이론에 집착할 때, 교회 안에서 산 경건성을 잃어버리는 결과가 초래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다시 그 정당한 위치를 회복할 때에만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초대 교회가 가졌던 믿음과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보고 그리로 행하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 6: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