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3부_계명과 복음을 분리했다

사탄이 행하는 분리작전 중에 가장 효과적인 결과를 거둔 것이 계명과 복음을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18세기의 신학자요 청중교회 목사였던 에드워즈 A. 파크 교수는 종교계가 당면한 위기를 보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험의 한 가지 원인은 강단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강조하는 일을 게을리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강단이 양심의 소리가 메아리치는 곳이었다…가장 유명한 설교자들은 주님의 본을 따라 강단에서 계명과 그 교훈과 그 엄숙한 명령을 명백히 가르쳐 줌으로 놀라운 능력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항상 두 가지 큰 원리를 반복하여 말하였는데, 그것은 계명은 하나님의 완전하심을 나타내는 사본이며, 계명을 사랑하지 않는 자는 복음도 사랑하지 않는 자라는 두 가지의 큰 원리를 반복하였습니다. 왜냐하면 계명은 복음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참 품성을 반사하는 하나의 거울이기 때문이다. 이 계명을 사랑하지 않는 위험은 죄의 흉악성, 죄의 영향이 미치는 범위, 죄의 결점들을 과소평가하는 위험을 가져온다. 계명을 거역함으로 조성되는 악은 그 계명이 지닌 의에 비례 됩니다…”

“이미 언급한 위험과 밀접한 관계를 가진 것은 하나님의 공의를 과소평가하는 위험이다. 오늘날 강단에서 일반적으로 주장하는 경향은 하나님의 공의를 하나님의 자비와 분리하고 그 자비를 원칙으로 높이지 않고 하나의 감정으로 전락시키는 것이다. 기독교에 들어온 자유주의 신학, 이른바 신신학은 하나님께서 결합해 놓은 것을 산산조각으로 해체시켜 버렸다. 하나님의 계명은 선한 것인가? 악한 것인가? 물론 선한 것이다. 그러므로 공의도 선한 것이다. 왜냐하면 공의는 계명을 집행하게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과 공의, 인간의 불순종과 죄의 범위를 과소평가하는 습관 때문에 사람들은 죄를 속하기 위하여 마련된 은혜도 과소평가하는 습관을 이루기 쉽다.”

계명의 속성

많은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 계명을 폐하셨기 때문에 그 이후부터 사람이 계명의 요구에서 해방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그중 어떤 사람들은 계명을 마치 무거운 멍에처럼 나타내고 계명의 속박과 복음 아래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대조적으로 말합니다. 그러나 선지자들과 사도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계명을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내가 주의 법도를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행보할 것이오며”(시 119:45)라 하였고, 사도 야고보는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신 후에 십계명을 “최고한 법” 또한 “온전한 율법”이라고 말했습니다(약 2:8, 1:25). 또한 요한계시록에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지 반세기 후에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영어 흠정역 성경에는 ‘계명을 지키는 자’로 번역되었음)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계 22:14)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당신의 죽음으로써 하늘 아버지의 계명을 폐하셨다는 주장은 아무 근거가 없습니다. 만일 하나님의 계명이 변경되거나 폐지될 수 있었다면 사람을 죄의 형벌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실 필요가 없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계명을 폐지하기는커녕 계명의 불변성을 증명해 줍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율법을 크게 하며 존귀케”하(사 42:21 난외 주석)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가 율법(을) …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 18)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에 대하여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시 40:8)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 본질상으로 불변입니다. 그것은 계명의 창시자이신 하나님의 뜻과 품성을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므로 그분의 계명도 사랑입니다. 계명의 두 가지 큰 원칙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사람에게 대한 사랑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랑은 계명의 완성”(롬 13:10)입니다. 하나님의 품성은 의며 진리입니다. 그의 계명의 본질도 마찬가지입니다. 시편 기자는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주의 모든 계명이 의로우”(시 119:142, 172)니이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율법도 거룩하며 계명도 거룩하며 의로우며 선하도다”(롬 7:12)고 주장합니다. 이와 같이 계명은 하나님의 마음과 뜻의 표현이므로 그 창시자와 같이 영구적인 것이 되어야 합니다.

계명의 역할

하나님과 화목하는 첫째 계단은 죄를 깨닫는 것입니다.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20). 죄인이 죄를 깨달으려면 먼저 자기의 품성을 하나님의 위대한 의의 표준에 비추어서 살펴보아야 합니다. 계명은 의로운 품성의 완전함을 보여 주는 거울로서 죄인에게 그의 결함을 깨닫게 해줍니다. 그러나 계명이 사람에게 그의 죄를 나타내 보여주기는 하지만 죄를 치료해주지는 못합니다. 계명은 순종하는 자에게 생명을 약속해 주는 반면에 계명을 범하는 것이 죽음임을 선고합니다. 오직 그리스도의 복음만이 죄의 선고와 더러움에서 사람을 해방시킬 수 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께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속죄 제물로 믿어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 사람은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용서를 받고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됩니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 양자의 영을 받고 “아바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

그렇다면 이제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여도 무방한 것일까요?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계명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계명을 굳게 세우느니라”(롬 3:31),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롬 6:2)라고 말합니다. 요한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고 하였습니다. 새로 남, 거듭남으로써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계명과 일치됨과 동시에 하나님과 조화를 이루게 됩니다. 이 위대한 변화가 죄인의 마음속에서 이루어지면 그는 죽음에서 생명으로, 죄에서 성결로, 범죄와 반역에서 순종과 충성으로 옮겨지게 됩니다. 하나님과 멀어져 있던 옛 생애는 끝나고 믿음과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과의 화목의 생애가 시작됩니다. 그리하여 “육신을 좇지 않고 그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계명의 요구를 이루어지게”(롬 8:4)합니다. 그 때에 심령에서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 119:97)고 외치게 됩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시 19:7) 합니다. 계명이 없으면 사람들은 하나님의 신성성과 순결, 그리고 자기 자신들의 죄와 불결에 대하여 올바른 관념을 가질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죄에 대하여 진정으로 깨닫지 못하고 회개할 필요성도 느끼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자로서의 자신의 속절없는 상태를 알지 못하고 속죄하는 그리스도의 피가 필요함을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근본적인 마음의 변화도, 생애의 개혁도 없이 기독교 종교를 받아들입니다. 그리하여 피상적인 회개가 보편화되고 결코 그리스도와 연합한 경험이 없는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들어오게 됩니다.

복음의 역할

복음은 사람을 하나님의 계명의 원칙과 일치되게 해줍니다. 태초에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과 본성에 완전히 조화를 이루었고, 의의 원칙이 마음에 새겨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죄가 창조주와 사람을 분리했습니다. 그리하여 인간은 더 이상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계명의 원칙과 반대되게 되었습니다.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롬 8:7). 그러나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시므로 사람이 하나님과 화목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은 그리스도의 공로를 통하여 창조주와의 조화를 회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워져야 하고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합니다. 이와 같은 변화는 새로 나는 것인데, 예수님께서는 이 일이 없이는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은 이 일을 이루어주었습니다. 복음은 능력이라고 했습니다(롬 1:15,16). 계명의 요구를 이루어 주어 우리를 계명을 누리며 살 수 있는 위치에 올려놓는 것입니다. 복음의 힘은 사람을 하나님의 성품의 사본인 계명을 사랑하게 만들어주고 계명을 즐거워하고 누릴 수 있는 동기와 능력을 줍니다.

그러나 사탄은 계명과 복음을 분리하므로 복음은 반쪽 복음이 되었고, 하나님의 영원불변한 계명의 권위와 중요성은 상실되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의 성격과 영속성과 그 의무에 대한 그릇된 개념이 회개와 성화에 대한 오류, 즉 참 복음에 대한 오류를 가져왔고, 그 결과로 교회 내의 경건의 표준이 낮아졌고 교회와 세상과의 구분 선이 흐려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이 다시 그 정당한 위치를 회복할 때만이 기독교와 그리스도인들에게 참된 개혁과 경건의 부흥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