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2부_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분리했다

사탄의 중요한 분리작전 중의 하나는 하나님의 공의와 자비를 분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인간으로 더 쉽게 죄를 짓게 하기 위해 많은 것을 고안해내었습니다. 그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성품을 곡해시키는 것이었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을 매우 잔인하고 까다롭고 강압하는 분으로 나타내는 반면, 한편으로는 너무 너그럽고 부드러워서 우리의 회개와 믿음과 순종에 상관없이 무조건 은혜로 구원 얻게 하는 분으로 나타냅니다.

하나님은 기독교인들이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교회를 다니고 헌신을 많이 하는 사람은 특별한 축복을 주시고 죄를 좀 지어도 봐주시지만, 불신자는 저주를 받고 지옥에 넣어 무조건 영원히 형벌하시는 그런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이 정말 그렇게 비상식적인 분이실까요? 성경은 죄인에 대한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에 대해서뿐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로우심에 대해서도 분명히 말씀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들어온 기복신앙

사탄은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분리하므로 하나님을 아주 편협하고 비상식적이고 이기적인 분으로 만들어 놓았습니다. 그로 인해 교회에 기복신앙이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슬프게도 하나님이 너무 좋아서 또는 그분을 사랑해서 섬기는 것이 아니라, 단지 심판이 두려워서 혹은 축복이나 구원받기 위한 이기적인 목적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면 우리가 재산을 잃게 되고, 가족들이 병에 걸리게 되고, 비난과 조롱을 받게 되고 고난의 길을 가야 한다면, 그래도 우리는 여전히 하나님을 믿고 찬양하고 감사드릴 수 있을까요?

욥은 하루 만에 소와 낙타와 양들, 즉 평생 모은 모든 재산을 다 잃고, 종들과 심지어 사랑하는 자녀들을 다 잃게 되었습니다. 그에 더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듯 온몸에 종기가 나고, 남은 유일한 가족인 아내마저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하였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했을까요? 하나님을 믿어서 복을 받기는커녕 최악의 저주를 받다니…. 그때에 욥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께서 내게 복주시기 때문이 아니다. 하나님이 설령 나를 구원해 주시지 않으신다 해도, ‘그분께서 나를 죽이실지라도 나는 그분을 신뢰할 것이요, 오직 나는 그분 앞에서 나 자신의 길들을 유지하리라’(욥 13:15)”고….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입니까? 그의 신앙의 동기는 얼마나 순수하고 진실된 것이었습니까! 그러나 기복신앙은 이러한 신앙의 정신과 동기를 변질시켰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교회를 다니면서 시기 질투하며 부정직하게 산 사람을 하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구원하시고, 하나님을 모르고 양심대로 정직하고 성실하게 산 사람을 멸망시키신다면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실까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마 13:49)시는 이유가 있는 것입니다.

사랑에 대한 오해

사랑은 우리의 죄를 봐주는 것이 아닙니다. 사랑은 우리 마음에 역사하여 죄 자체를 버리고 승리하게 해주는 원동력이며,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할 수 있는, 즉 율법과 일치하는 마음을 줍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에 그저 믿기만 하면 구원해 주실까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분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도 억지로 구원하시는 것입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하나님만 우리를 위해 희생하고 하나님만 우리를 위해 고난 당하셔야 합니까? 우리가 생각하는 사랑은 너무도 이기적이고 제한적이고 차별적입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그분의 모든 말씀에 기쁘게 순종하게 합니다. 그러한 순종의 결과는 성화와 거룩함으로 나타날 것입니다.

공의와 사랑의 입맞춤

성경은 “하나님이 그 해를 악인과 선인에게 비취게 하시며 비를 의로운 자와 불의한 자에게 내리우심이니라”(마 5:45)고 말합니다.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 인자함과 진실함이 주를 앞서 행하나이다”(시 89:14). “하늘이 그 공의를 선포하리니 하나님 그는 심판장이심이로다”(시 50:6). 공의가 있기에 진정한 사랑이 있습니다. 공의가 없는 사랑은 참 사랑이 아닙니다. 즉 이 둘은 분리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공의와 사랑이 입 맞춘 곳이 바로 십자가가 아닙니까! 하나님의 공의는 율법이 죄인에게 요구한 영원한 죽음을 인간에게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은 그 율법의 정죄의 형벌을 예수님이 대신 당하게 하셨습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보좌의 기초라고 했습니다. 공의가 없다면 우주의 질서는 파괴되고 하나님은 말 그대로 자기를 좋아하는 사람만 감싸고 도시는 편협한 분이 되십니다.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들은 공명정대하십니다. 모든 사람들, 아니 온 우주 거민들 조차도 그분이 하신 일에 대해서 “왜 이렇게 했습니까?’라고 물을 자가 없습니다. 그분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그분이 하시는 일이 너무도 합리적이고 공정하고 자비로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존재들은 “죽임을 당하신 어린 양이 능력과 부와 지혜와 힘과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받으시기에 합당하도다”(계 5:12)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 그리고 사랑과 진실함이 온 우주에 평안과 안전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