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 달의 말씀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하늘 시민이라는 사실을 지속적으로 인식해야 하며 하늘에서 경험하리라고 기대하는 순결, 겸손, 온유 그리고 사랑은 이곳 지상에서도 나타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행동은 우리가 하늘의 시민임을 드러내야 합니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행하는 우리의 교제를 통해 하늘이 그들에게 매력적인 곳이 되게 해야 합니다."

 

[열한시 소개글]
마태복음 20장에 포도원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포도원 주인은 이른 아침부터 3시, 6시, 9시에 장터에 나가 일할 사람들을 불러옵니다. 하지만 일이 마쳐지지 않았는데 해가 저물어 가자 급히 11시 일꾼들을 투입시킵니다. 이 내용은 비유로 끝나지 않고 역사에서 실체화되는 말씀입니다. 11시에 부름을(소명) 받은 사람들은 예수님의 재림 직전의 시대, 인류 역사의 문을 닫기 1시간 전에 긴박하게 투입되어 적그리스도와 짐승의 표의 정체를 밝히고, 하나님의 영광의 사본인 십계명의 회복과 인간 성소의 정결(죄를 승리하는 거룩한 삶)에 대한 복음,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의 우주적인 대 전쟁, 재림 전 심판과 영원한 복음, 그리고 예수그리스도의 재림을 전하는 사명을 맡은 남은 무리들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소명(召命)과 사명(使命)을 위해 11시 백성은 오늘도 목숨을 초개(草芥)와 같이 여깁니다.

신앙기사 1부_함께 들여다보는 천국의 원칙

신앙기사 제목: 지금 시작되는 천국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복스러운 소망의 약속을 찾으라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다시 오리라”는 재림의 약속과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처소,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약속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 될까요? 미래의 상급을 바라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생의 고난과 슬픔과 혼란과 고통이 다 지나고 하늘에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이라는 소망은 우리에게 큰 용기와 힘을 줍니다. 이생에 살지만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지금 시작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법이 마음 속에 이루어진 사람은 곧 다가올 천국의 시민이 될 것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천국에 대해 함께 생각해 봅니다. 이미 시작된 천국을 마음에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지 말라고 하시면서,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먼저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기 원하는 사람은 천국에 대해, 그리고 천국의 법칙에 대해 바른 개념과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 생활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가기를 소망하는 것에서 끝날 뿐, 천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천국 시민의 법칙을 발표하셨을 때 유대 백성들은 놀랐습니다. 팔복과 더불어 하늘의 시민의 구비조건과 그리스도인 삶의 원칙들을 발표하셨을 때, 당연히 천국과 그 보상이 그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하늘의 법칙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놀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은 당연히 너희들의 것이며, 너희는 하늘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말씀을 들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 하늘의 원칙과 정신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음을 깨닫고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천국의 법칙은 그들의 생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열성과 의로운 행위와 공로가 그들을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게 하리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현세에서도 세속적인 정신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늘 현세에 받을 보상과 세상에 대한 욕망에 집착한 나머지, 마음 속에 은혜의 왕국을 건설하러 오신 메시아의 사명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은혜의 왕국을 먼저 세우셔야 했는데, 만일 이 땅에 사는 동안 마음 속에 하늘의 법칙이 먼저 세워지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미래의 천국의 시민이 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천국 시민의 원칙과 법은 하늘을 다스리시는 통치자에 의해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는 그분의 사상과 성품과 통치 원칙이 들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님의 성품의 사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생애가 이루어질 때, 인간은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지금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원칙이 마음에 세워진 사람은 천국으로 옮겨지기 전에 천국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세상의 왕국과 반대되는 천국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법정이나 회의나 입법 기관의 결정이나 세상의 위인들의 후원을 얻어 건국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인간의 마음에 심으므로 이루어집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 13).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오늘날 종교계에서도 그들이 믿는 대로 세상적이고, 현세적인 주권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나라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이 세상 나라의 위대한 치리자, 법정과 국회와 병력과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치리자로 만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왕국에 대한 소망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주님께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곧 세상적인 인정을 받고 강압적인 치리와 통치권으로 인간들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며, 그렇게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해 나갑니다. 이러한 왕국의 건설이 그리스도 당시 유대인들이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과 야망에 들어맞는 현세적인 왕국을 세우려고 하셨더라면 그들은 예수님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그 당시의 정부는 부패하고 강압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도처에서 잔인한 압제와 불공평하고 부당한 대우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사회 개혁을 시도하거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국가의 권력 남용을 공격하지도 않으셨고 국가의 원수를 정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권력을 장악한 자의 권위와 행정에 간섭하지 않으셨고 세속적인 정치를 멀리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사람들의 재난에 무관심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근본 구제책이 단순히 인간적인 그리고 외적인 조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먼저 세속으로부터 구제되어야 사회가 정화된다는 것을 아셨던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진정한 마음의 개심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지름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지 않습니다. 자아 희생의 정신을 지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세속적인 정신과 조화될 수 없습니다. 이 두 원칙은 서로 반대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마음에 심는 하늘의 법칙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5~28).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제자들 가운데 이 원칙을 세우려고 노력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위가 어떤 특정하고 편파적인 방법을 통해 획득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얻는 것도 아니고, 증여를 통해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품성의 결과입니다. 면류관과 보좌는 그냥 얻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달성한 상태의 증거,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자아를 정복한 사람이 얻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지위는 자아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백성들은 지배 계급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세력과 부와 교육은 지도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군중을 억압하는 많은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상류 계급은 생각하고 결정하고 향락하고 지배하게 되어 있었으며, 하류 계급은 복종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종교도 권력에 좌우되었습니다. 백성은 그들의 상전의 지시대로 믿고 행하도록 요청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는 다른 원칙 하에 그분의 국가를 건설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권력으로가 아닌 봉사로 부르셔서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권력과 지위와 재능과 교육은 동료들에게 봉사할 큰 의무를 감당하도록 그 소유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내 나라에는 편애와 최상권의 원칙은 없다. 유일의 위대함은 겸손의 위대함이다. 유일의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함에서 찾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 중에서 모든 면에서 돌보는 사람이었으며 짐을 지는 분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과 빈곤을 나누셨고 제자들을 위하여 극기하셨으며, 더욱 어려운 곳을 평탄하게 하기 위하여 저들보다 앞서 가시고 당신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지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마치셨습니다.

구원의 계획과 기초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그분께서 끼치신 모본을 따르고 그분의 양무리를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 심령이 속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거나 판단하거나 그 의무를 규정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에게 생각할 자유와 그가 깨달은 대로 행할 자유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오만한 압제도, 행동의 강제도 없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지배하고 충성을 강요하려고 세상에 내려오는 것이 아니요, 은혜의 사자로서 섬기려고, 인류를 향상시키는 일에 사람들과 협력하려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그녀의 아들들이 주님의 왕국에서 하나는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도록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당신의 왕국의 명예와 영광은 이 세상의 명예와 영광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 주셨습니다. 크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겸비하게 낮춰야 하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 자녀들에게 봉사자요, 종으로 일하셨듯이 종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의 원칙은 사랑입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는 배치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집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에게 충성하게 될 것인데, 이 사랑은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원칙이 천국을 다스리는 원칙입니다. 천국에서 보좌 옆에 가장 가까이 설 사람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사랑 즉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고전 13:4, 5)하는 사랑,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죽기까지 모든 것을 주고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가장 깊이 체득할 자들이 될 것입니다.

신앙기사 2부_천국은 지금 시작된다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1).

삶은 순간이 모여 이루어집니다. 순간의 조각들이 모여서 시간을 이루고 시간이 하루의 삶을 만들어냅니다. 만일 우리의 현재의 삶이 하늘의 원칙에 합당한 삶이면 장래의 삶도 그럴 것입니다. 우리의 현재의 품성과 모습은 장차 우리가 이루게 될 모습의 확실한 그림자입니다. 일상생활에 나타나는 매일의 삶과 성품이 그렇지 않은데, 갑자기 확연하게 다른 미래의 성품과 모습이 나타나지 않습니다. 오늘의 나의 모습이 앞으로 올 천국의 생활의 모습입니다. 천국은 이 땅에서 시작되는 것입니다. 산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매일 매 순간 주님과 산 교제를 갖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세상이 살 수 없는 보물,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누리는 화평과 하늘의 분위기 속에 살게 됩니다. 하늘에서 성도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지상에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상의 생활은 하늘 생활의 시작이고, 지상의 교육은 하늘 원칙에 입문하는 것이며, 이생에서의 인생활동은 내세에서의 인생활동을 위한 훈련입니다.

천국의 법칙을 이 땅에서도

하나님의 나라의 법은 영원히 불변하는 법입니다. 계명은 하나님의 정부의 기초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천국 시민의 법칙과 행동의 강령을 산상수훈을 통해서 발표하셨는데, 이 산 위에서 발표하신 산상수훈은 하나님의 왕국의 헌법, 헌장을 선포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늘 신민의 자격 조건과 하늘나라의 법을 말씀하신 이 설교에는 하나님의 법인 계명을 지키는 삶과 성품이 어떠한 것인지 자세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팔복과 그리스도인의 삶의 행동 지침에 대해서 말씀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마 5:17~1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계명에 일치하는 생애와 성품은 천국 시민이 되기 위한 조건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사람이 천국의 법을 지키는 사람이 되는 것이며, 그런 사람이 천국에 들어가서 살 수 있는 것입니다.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일 3:4). 구속의 계획은 우리를 사탄의 권세에서 완전히 회복시키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왕국의 법칙을 따르기로 순종하는 영혼에게서 죄를 분리시키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귀의 역사를 멸하시기 위하여 오셨으며, 모든 회개하는 영혼에게 성령을 주셔서 그로 죄를 범하지 않도록 만반의 대비책을 세우셨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그 구속받은 자녀들에게 하늘에 적합한 품성을 건설하라고 명령하십니다. 품성은 유일하게 하늘로 가져갈 수 있는 재산입니다. 천국의 법칙이 마음 속에 이루어진 사람은 이 땅에서도 천국의 시민이 되어 하늘을 맛보며 삽니다.

천국의 법칙을 이루게 하시는 은혜

주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하늘에 적합한 성품을 이루게 하시는 데 필요한 모든 구속의 방법을 고안해 놓으셨습니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주님께 바치고 그분을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생애가 아무리 악하였을지라도 그분의 공로로 인하여 우리는 의롭다 하심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이 우리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우리는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앞에 받아들이는 바 됩니다. 이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께서는 마음을 변화시키십니다. 그분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 마음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믿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항상 그분에게 바치고 순복함으로 말미암아 유지됩니다. 그렇게 하는 동안에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은 우리 속에서 주님께서 그분의 기쁘신 뜻대로 행하시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갈 2:20)는 간증이 우리의 것이 됩니다.

하나님께 바쳐져 있고 성령께 굴복된 상태가 늘 우리에게서 유지되어야 합니다. 의지가 하나님께 굴복되어 있을 때 마음의 평안과 화평이 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비록 이 세상에 있을지라도 주님과 교통하는 기쁨을 누릴 수 있으며 그분의 사랑의 빛과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받는 영구적인 위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될 때에 생애의 매 발걸음은 그분의 사랑을 더욱 깊이 체험하게 되는 가운데 복된 평화의 본향으로 한 걸음씩 매일 더 가까이 나아가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머지않아서 천국 문은 하나님의 자녀들을 들이기 위하여 활짝 열리게 될 것이고 영광의 왕의 입술에서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 25:34)는 큰 음악 소리와 같은 축복이 귀에 들릴 것입니다.

머지않아 구속함을 받은 자들은 예수님께서 저희를 위하여 예비하신 나라로 맞아들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교제하고 사귈 동무들은 이 땅의 비열한 자, 거짓말하는 자, 우상 숭배자, 더러운 자, 믿지 않는 자들이 아닙니다. 사탄을 이기고 하나님의 도움으로 완전한 품성을 형성한 자들로 더불어 교제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들을 괴롭게 하는 모든 죄의 습관, 모든 불완전한 것이 그리스도의 피로 말미암아 완전히 제거되고, 태양의 광선보다 훨씬 뛰어난 아름답고 광채 나는 하나님의 영광 속에서 살 때에,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과 아름다움이 모든 구원 받은 사람들을 통하여 빛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천국의 화평과 행복은 이 땅에서 우리의 마음 속에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천국을 연습하라

이생에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으면서 미래의 천국과 그 보상만을 바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영광을 누리기 원하는 사람은 이 땅에서 천국을 연습해야 합니다. 범죄하기 전에 인간은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골 2:3) 있는 분과 즐거이 교통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범죄한 이후로는 신성한 것을 즐기지 않게 되고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싶어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도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은 그러합니다. 마음이 하나님과 융화하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 더불어 교통하는 가운데서 기쁨을 얻지 못합니다.

죄인은 하나님 앞에서 기뻐할 수 없고 거룩한 자들과 같이 사귀기를 꺼릴 것이며, 비록 그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더라도 그는 거기서 아무런 기쁨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이기심 없는 사랑이 지배하는 하늘에서, 각자의 마음이 무한하신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의 마음과 서로 통하는 천국에서, 죄인의 심금에는 아무런 공명도 느껴지지 않고 없을 것입니다. 죄된 사상과 취미와 동기는 하늘에 사는 무죄한 자들을 고무시키는 사랑과 기쁨과 취미와 동기와 배치될 것입니다. 죄인은 하늘의 “멜로디”에 거친 음조가 될 것이며, 그에게 천국은 말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장소가 될 것입니다. 그는 하늘의 빛이 되시고 하늘 기쁨의 중심인 하나님의 낯을 피하기를 원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인이 하늘에서 제외되는 것은 그들 자신이 하늘의 교제에 부적합하기 때문에 제외되는 것입니다. 죄를 사랑하고 버리기를 거절한 사람에게 하나님의 영광은 오히려 소멸시키는 불이 될 것입니다. 이 땅에서 하나님과 화목하는 법을 배우지 않고 하나님과 교제하는 법을 배우지 않은 사람은 천국이 불편한 장소가 될 것입니다. 하늘을 연습해야 하는 시간은 지금입니다.

무덤은 성품을 변화시키지 않는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곧 오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거룩한 천사들의 무리에게 호위되어 구름을 타고 오실 주님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셔서 충성되고 의로운 자들에게 불멸의 마무리 손질을 하실 분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그분은 그때 죄를 정결케 하시거나 품성의 결점들이나 성격의 약점들을 치료하시지 않습니다. 이 일이 우리에게 이루어져야 한다면 그것은 지금이며 재림 전에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중보사역을 마치시고 지성소에서 나오실 때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할 것입니다. 그들의 몸과 정신을 성화와 거룩함으로 보존한 사람들은 그 때 불멸의 마무리 손질을 받아 영화롭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불의하고, 성화되지 못하고, 더러운 자들은 그대로 남을 것입니다. 그때 가서 결점을 제거하고 거룩한 성품을 주는 일은 없을 것입니다. 성품의 변화는 지금 이루어져야 합니다.

재림의 때에 주님께서 정련 작업을 다시 하셔서 죄와 부패를 제거하시지 않으십니다. 이 모든 일은 은혜의 시기 동안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에게 이 일이 이루어져야 할 시간은 바로 지금입니다. 무덤은 인간의 성품을 변화시켜주지 않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이 평소에 이루고 자기 일생을 통해 형성했던 그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을 것입니다. 무덤은 성품의 결점을 제거해주거나 보완해주지 않습니다. 의롭다고 칭해주시는 칭의가 하늘에 들어갈 티켓이라면, 성화, 거룩하게 변화되는 것은 하늘에 가서 살 적합성입니다. 진리로 성화되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는 성품의 완성은 하늘 왕국의 영광과 하늘 천사들과 동거하기에 합당한 적합성을 이루게 해줍니다. 우리는 천국에서 하늘 왕의 아름다움을 볼 준비를 지금 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곧 하늘 영광 가운데 순결한 하늘의 천사들과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바로 여기서 천국에서 살 준비를 해야 하는 때는 지금이며, 우리의 몸과 영이 불멸에 적합하게 되어야 하는 장소가 있다면 바로 여기입니다.

우리는 이 마지막 시대에 만연하는 부패 속에서 흠 없이 서야 합니다. 이기심과 죄악이 우리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게 해야 하며, 하나님의 성령이 우리를 온전히 장악하여 우리의 모든 행위에 영향을 끼치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몸과 영이 거룩하게 변화되도록 우리는 혼신의 노력을 하며 주님께 매 순간 우리 자신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우리는 이 일을 넉넉히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의 은혜는 너무나 크고 능력이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신앙기사 3부_마음에 먼저 시작되는 천국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마 11:28).

천국에 가기 원하는 사람은 먼저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모든 것을 소유하고 있다고 해도 마음에 쉼과 평안과 안식이 없다면, 마음이 행복하지 않고 기쁘지 않다면, 그곳은 천국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 속에 어떤 감정의 앙금과 미워하고 용서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을 가지고 있다면, 마음 속에 천국이 시작될 수 없습니다. 또한 마음 속에 해결되지 않은 번민과 문제들로 가득 차 있다면 천국을 맛보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의 평안과 쉼을 주시기 위해 그런 사람들을 초청하십니다. 예수님을 힘입어 우리가 안식을 얻는 때에 하늘나라는 여기에서 시작됩니다. ‘와서 나를 배우라’는 주님의 초청에 응답하여 나오므로 우리는 영생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초청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초청하고 계십니다. 마음이 상한 자와 근심하는 자들, 희망이 시든 자들, 세속적인 기쁨으로 영혼의 갈망을 가라앉히려고 힘쓰는 사람들을 그분 안에서 모두 쉼을 얻도록 초청하셨습니다. 모든 사람은 알든지 모르든지 피곤하며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께서만 제거할 수 있는 짐에 억눌려 있습니다. 우리가 진 짐 중에 가장 무거운 짐은 죄의 짐입니다. 우리가 이 짐을 지도록 그대로 버려진다면 그것은 우리를 눌러 박살을 낼 것입니다. 그러나 죄가 없으신 예수님이 우리의 죄짐을 대신 지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모든 근심과 걱정과 슬픔과 무거운 죄의 짐을 당신께 벗어 놓으라고 초청하십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고단한 어깨에서 짐을 가져가실 것이며 쉼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행복은 마음을 열어 쉼을 주시는 평화와 평강의 왕을 받아들이는가 그렇지 않은가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모든 능력과 힘의 근원이 되신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고 그분께 우리 자신을 온전히 맡기고 의탁하므로 안온함과 쉼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영혼에게 주시는 평강과 안위와 소망을 붙잡는다면, 우리는 놀라운 소망 속에서 기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 구주께서는 인류의 맏형님으로 영원한 보좌 곁에 계십니다. 그분은 당신을 붙들고 당신께 얼굴을 돌이키는 각 사람을 바라보십니다. 그분은 인간의 약점과 필요가 무엇인지, 어떻게 시험을 대항할 힘을 얻을 수 있는지를 경험을 통하여 아시는데, 그것은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죄는 없으신 그분은 무서워 떠는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들을 지켜보십니다.

혹시 시험을 당하고 있으십니까? 주님께서 구원하실 것입니다. 연약함을 느끼십니까? 그분이 힘을 주실 것입니다.

주께서는 “별의 수효를 계수하시”며 또한 “상심한 자를 고치시며 저희 상처를 싸매”(시 147:4,3)십니다. 그분의 초청의 말씀은 “내게로 오라”는 것입니다. 걱정과 시련이 어느 정도이든지 우리의 사정을 주님 앞에 내어놓으면, 우리는 참을 수 있는 힘을 얻을 것이며 곤경과 어려움에서 벗어날 길이 열릴 것입니다. 자신이 더욱 약하고 무력하다는 것을 알수록 우리는 그분의 능력 안에서 더욱 강해질 것이며, 우리의 짐이 무거우면 무거울수록 그것을 주님께 맡김으로써 더욱 복된 안식을 얻을 것입니다.

초청을 받아들이는 방법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쉼에는 조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조건은 모든 사람이 응할 수 있는 조건입니다. 그분은 당신이 주는 쉼을 어떻게 찾을 수 있는지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 11:29,30).

멍에를 멘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멍에를 메는 것은 우리의 의지를 주님께 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에게 멍에를 메는 것은 짐을 끌 때 소를 도와서 짐을 가볍게 해주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멍에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우리 마음대로 하려는 욕망을 버리고 우리의 의지를 주님께 바쳐야 합니다. 우리의 자아를 부인해야 합니다. 우리의 의지와 뜻을 주님께 바치고 주님의 뜻을 따라갈 때에,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뜻 안에 흡수되고 우리의 자아가 온전히 주님께 굴복될 때에 평안한 쉼이 옵니다. 그분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 곧 하나님의 계명의 법도 안에서 행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함께 행하는 것이므로, 그분의 사랑 안에서 그 마음은 쉼을 얻습니다. 그리스도를 믿고 전적으로 그분의 보호하심에 영혼을 맡기는, 곧 그분의 명령에 생애를 맡기는 자들은 평강과 평온을 얻을 것입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내게 배우라. 그러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그분에게서 온유와 겸손을 배우기 위하여 그리스도의 학교에 입학해야 합니다. 구원과 구속은 영혼이 하늘을 위하여 훈련을 받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훈련은 이 세상과 흑암의 왕의 학교에서 얻은 생각, 습관, 행습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늘이란 그리스도를 통하여 끊임없이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이 세상에서 살고 그분을 모방하고 닮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생에서 예수님과 동행할 때에 우리는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함을 입을 것이며 그분의 임재하심으로 만족을 느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임재로 우리를 기쁘게 하실 때에는 세상의 아무것도 우리를 슬프게 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그 일이 일어날 때에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모든 행복과 기쁨과 환희의 근원이 되는 것들을 이 땅에서 먼저 받을 것입니다. 주님과 함께 하는 이 세상이 천국이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천국의 평안을 얻기 위해

각 사람은 행복과 불행의 근원을 자기 자신 속에 가지고 있습니다. 만일 마음만 먹는다면 우리는 주님 안에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 불안이 일어나는 것은 자기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위로부터 거듭날 때에 예수님의 마음과 똑같은 마음이 우리에게 생길 것입니다. 그 때에야 우리는 가장 높은 지위를 구하지 않게 될 것이며, 온전히 예수님의 발아래 앉아서 배우려고 할 것입니다. 완전한 순종에는 완전한 쉼이 있습니다. 우리의 생애가 복잡해 보일지 모르나 우리가 슬기로우신 대장 되신 예수님께 우리 자신을 맡긴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광이 될 생애와 품성의 본을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그 품성은 하나님의 낙원에 들어가도록 가납하심을 받게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늘 마음에 평안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조화가 지배하는 그리스도의 마음에는 완전한 평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주위의 환경이나 상황에 동요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칭찬을 받음으로 의기양양해지거나 비난이나 실망으로 인하여 의기소침해지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심한 반대와 가장 잔악한 대우를 받으면서도 여전히 용기백배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의탁하기를 두려워하므로 불안하고 괴로운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지 않는데, 이는 그렇게 내어 맡기므로 겪어야 될 결과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굴복을 거절한다면 우리는 결코 평화를 얻을 수 없습니다.

하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천국을 맛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계속적으로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사셨던 것처럼, 하나님과의 교통 속에서 평안을 얻으며 사셨던 것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그분은 위대한 매력의 중심이 되실 것이며, 그렇게 그리스도 안에 감춰진 하나님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만나게 되고 거룩한 존재 안에 빠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십시오!

그분을 영접하고 그분의 은혜스러운 임재를 초청하십시오! 그러면 여러분의 마음은 날마다 새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평강과 안식을 받아들이고, 염려들을 초월하고, 그대가 받은 축복들을 인하여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의 특권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애는 안식의 생애입니다. 불안과 불만과 불안정은 구주의 부재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생애에 들어오시면, 그 생애는 주님을 위한 선하고 고상한 일로 가득 찰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우리 자신을 잊어버리고 사랑하는 구주와 점점 더 가까이 살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의 품성은 그리스도를 닮게 되고, 우리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은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었고 그분에게서 배웠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행복은 이 땅에서 먼저 누려야 합니다. 미래의 천국에서 하나님의 왕족의 일원이 된다는 것은, 이 땅에서 먼저 하나님의 가족이 되는 것입니다. 하늘에서 살 수 있는 마음은 이 땅에서 먼저 시작되는 것입니다.

신앙기사 4부_가정에서 시작되는 천국

천국은 먼저 가정에서 시작되어야 합니다. 가정은 지상의 작은 천국이 되어야 합니다. 하늘에 대한 가장 좋은 표본은 그리스도의 정신과 사랑이 깃든 가정입니다. 이 땅에서의 가정은 하늘 가정의 상징이므로, 만일 우리가 하늘에서 성도가 되고자 한다면 먼저 가정에서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나타내고 있는 품성의 특성들은 죽음이나 부활로 변하지 않습니다. 우리들이 평소에 가정과 사회에서 나타내던 똑같은 성벽을 가지고 무덤에서 올라올 것입니다. 변화하는 일은 이생에서 지금 이루어져야 합니다. 가정에서의 우리의 일상 생애가 운명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가정을 세상에서 작은 천국으로 만들기 원한다면, 그 일은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가능한 일입니다.

가정의 중요성

지상의 가정은 하늘의 가정의 작은 본보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정은 세상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게 해주는 가장 매력적인 곳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임재가 있고,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고 천사들이 방문하기를 즐기는 즐겁고 유쾌하고 행복이 꽃피는 곳이 되어야 합니다. 사회는 가정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지역 사회와 국가의 중심은 가정에 있습니다. 사회의 행복, 국가의 번영이 가정의 감화에 달려 있으며, 미래의 사회는 각 가정의 질에 따라 결정될 수 있습니다. 장차 오는 사회의 향상이나 퇴락은 사회를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좌우되는데, 가정에서 잘 교육받은 자녀들을 통해서, 가정에서 잘 형성된 자녀들의 품성과 인품을 통해서 사회는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지금 가정에서 가족의 구성원들 사이에 가지는 교제와 지금 그들이 형성하는 습관들과 지금 따라가는 원칙들은 여러 해 후에 나타날 사회의 형편에 대한 지표입니다.

사회에서 한 가정이 예수님의 대표자로서 서는 일은 위대한 일입니다. 가정은 모든 사람이 읽는 하나님의 산 편지가 되고 하나님의 대사가 되어야 하는 놀라운 사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질서 정연하고 잘 훈련된 가정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설교보다도 그리스도를 더욱 많이 증거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원칙과 뜻을 따르는 가정에서 받은 감화는 가족의 각 사람을 통하여 사회에 전달됩니다. 그리고 사회는 그들의 감화로 더 향상되는 축복을 받습니다. 하나님을 증거하는 매개체로서의 가정의 역할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가정이 영혼들을 구원하는 도구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다른 가정에 감화를 끼칠 수 있도록 우리의 자녀들과 가족들로 좋은 성품의 덕성들을 소유할 수 있게 가르치는 일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부모들은 비록 교회에서 가르치는 교사는 되지 않더라도 참된 하나님의 교육을 실행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질서 있고 잘 훈련된 가정은 정금보다도, 오빌의 순금보다도 진귀한 것입니다.

가정의 분위기

가정에서 나타내는 사랑과 동정과 예절에 따라 가정의 분위기는 결정됩니다. 대체로 가정의 분위기는 부모들에게 달려있습니다. 만일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에 불화가 있는 경우에는 자녀들이 같은 정신을 나누어 받게 됩니다. 흔히 부모들의 정신을 감싸고 있는 분위기는 그 가정 전체를 채우고 가정의 각 부문에서 느껴집니다. 부모가 먼저 하나님의 사랑 가운데 연합하고 이해하고 사랑한다면, 그 사랑의 향기가 자녀들에게 전달되고 가정의 분위기는 행복하게 될 것입니다.

부모들은 말과 행동에 있어서 좋은 본보기가 되어야 하는데, 자신의 자녀가 장차 되기를 희망하는 그런 좋은 표본이 되어야 합니다. 부모가 먼저 깨끗한 언어와 그리스도인의 예모를 잘 실천하면 자녀들은 자연히 부모의 뒤를 따르게 되고, 그 가정의 분위기는 즐겁고 명랑하며 행복할 것입니다. 부모들은 어린 자녀들뿐 아니라 청소년기와 청년이 된 자녀들을 잘 가르쳐서, 자중하고 인내하며, 하나님께 신실하고 원칙에 성실하도록,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존중하고 순종하도록 가르쳐야 할 것입니다. 이런 원칙들을 잘 배운 자녀들은 자신의 생애를 잘 건설할 것이며 다른 사람들과 교제할 때에 그 원칙들을 실천하므로 주위에 축복이 될 것입니다.

가장 훌륭한 선교사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나옵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가정, 하나님을 사랑하는 가정, 하나님을 경배하는 가정, 성실과 정직이 실천되는 가정, 가정의 의무에 소홀하거나 부주의한 태만이 용납되지 않는 가정, 조용히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하는 일을 일상의 의무들 중에 가장 첫째로 삼는 가정, 주님을 위한 선교사는 이러한 가정에서 가장 훌륭하게 준비되는 것입니다.

가족 구성원의 마음과 태도

만일 그리스도인 가정이 빛을 발하는 가정이 되기를 원한다면, 예수님께서 늘 심령과 가정에 거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사랑은 행동에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은 모든 가족들 간의 교제에서 흘러나와야 하며, 또 사랑 그 자체가 사려 깊은 친절과 상냥함으로, 이기심이 없는 예절로 나타나야 합니다. 그런 사랑은 사랑의 근원되시는 하나님께로부터 매일 받을 수 있고 그분 안에 거하는 경험 속에서 얻을 수 있습니다. 이기심 없는 사랑의 원칙이 실행되는 가정은 하나님께서 경배를 받으시는 가정이요 참된 사랑이 지배하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들로부터는 아침과 저녁에 기도가 아름다운 향기처럼 하나님께로 올라가고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이 아침 이슬처럼 그 간구하는 자들 위에 내립니다. 우리의 행복은 사랑과 동정과 상호간의 진정한 예절을 행하는 데 달려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가정의 분위기를 부드러운 친절로 향기롭게 하십시오. 강퍅하고 냉정한 마음의 소유자들이 이 세상에 많은 이유는, 진정한 애정이 연약함으로 간주되어 좌절과 억제를 당하기 때문이며, 성장기에 계발되었어야 할 사랑과 동정심이 이기심과 경쟁심으로 위축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따뜻한 사랑의 빛으로 마음 속의 냉랭함과 이기심이 녹지 않는 한, 그런 사람들이 나타내는 속성은 사회와 가정을 불행하게 만들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실 때에 그러셨던 것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소유하고, 불쌍하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위해 베푸신 사랑과 자비의 마음을 소유하려면, 그리고 부족한 인간들을 돕기 위해 봉사하는 천사들의 이기심없는 봉사의 정신과 동정심을 가지려면, 우리는 매일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되기를 간구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자신들이 각기 하늘의 아름다운 원칙으로 지배를 받게 될 때에 우리는 주위에 하늘의 분위기를 나타낼 것입니다. 가정의 순결하고 행복한 분위기는 연약한 사람들을 하늘로 인도하는 좋은 감화를 끼칠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나 사회에서 다른 사람에 대해 배려하고 헤아리는 사려 깊은 말과 행동을 하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사랑과 관심 어린 말, 밝은 표정과 미소를 통해서 예수님의 사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타인에 대한 무관심과 냉정함은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하지 않았음을 나타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했으면서 타인에게 불친절하고, 이기적이고 냉담한 것은 불가능합니다. 우리의 생애는 우리 구주의 생애가 그러했던 것처럼 타인의 선과 행복을 위해 바쳐져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른 이들에게서 받은 작은 호의에 대해서도 감사를 표하며, 다른 이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의 슬픔과 짐을 부드럽고 친절한 행실과 사랑의 작은 행동을 통해 덜어 주며 그들을 기쁘게 할 기회를 찾아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서 시작되어 가정 밖의 관계로 확장되는 이러한 사려 깊은 예절은 인생의 행복을 쌓는 데 도움을 줍니다.

행복은 작은 것들에서부터 쌓입니다. 우리가 행하는 일과 행하지 않는 일은 우리의 생애와 운명에 엄청난 힘으로 작용합니다. 우리는 게으른 상태로 하나님께서 하늘을 위해 품성을 완성하도록 우리에게 주신 소중한 시간을 허비하지 말아야 합니다. 만일 우리가 기도하고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믿기만 한다면 주님께서는 우리의 잘못을 극복하도록 우리를 도우실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을 통해서 넉넉히 이길 수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짧은 인생살이가 끝나고 그 영원한 천국에서 살게 될 때에, 지상에서 보내던 생에서 펼쳐진 우리의 삶의 모습과 질이 아름다운 천국에서 다시 시작될 때에, 우리가 이 세상에서 주님께 충성했던 나날들이, 그리고 천국을 위해 준비했던 나날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이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마치면서

천국이 가까이 이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져 오고 있습니다. 지금 천국을 마음 속에 이루고, 지금 천국을 이곳에서 연습하는 사람만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천국의 법칙, 하나님의 계명이 사랑으로 마음 속에 쓰여진 경험을 할 때에 천국은 이곳에서 시작됩니다. 어디든지 우리 주님을 모신 곳이면 천국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괴로움과 시련과 고통에서, 이 세상의 혼란과 번거로움과 불완전한 인간에게서 눈을 돌려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의 주요, 온전케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고 우리의 시선을 주님께만 고정할 때에, 세상의 영화는 사라지고 우리의 시야에 주님만 가득 차게 될 것입니다. 마음 속에 천국이 이루어진 사람은 환난이 와도, 핍박이 와도, 모진 슬픔 속에서도 평안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 기쁨과 화평 속에서 사는 삶은 천국에서도 영원히 이루어질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_하나님이 세운 에덴 가정

하나님께서는 만물을 창조하신 후에 에덴 가정을 우리 시조를 위하여 친히 마련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희망할 수 있는 모든 것으로 에덴 가정을 창설하시고 말씀하시기를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창조물들 가운데서 마지막이면서도 가장 고상한 사람으로 인하여 기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으로 완전한 세상에 사는 완전한 거주자가 되도록 계획하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홀로 거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기에 “사람의 독처하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을 지으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아담에게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곧 조력자, 다시 말하면 그의 짝이 되기에 알맞는 자로서 그로 더불어 사랑하고 동정함으로 하나가 될 수 있는 그런 배필을 마련하셨습니다. 하와는 아담의 한편에서 떼어낸 하나의 갈빗대로부터 창조된바 그 이유는 여인이 머리처럼 다스릴 것도 아니요, 또한 지위가 낮은 자처럼 남자의 발밑에서 짓밟힐 것도 아니며 다만 평등하게 그의 곁에서 사랑과 보호를 받을 것임을 의미하였습니다. 남자의 일부로서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인 여인은 아담의 제2의 자아였습니다. 이는 이 관계에 있어서 존재해야 할 밀접한 연합과 애정 깊은 결연을 뜻합니다.

“누구든지 언제든지 제 육체를 미워하지 않고 오직 양육하여 보호하나니”,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하나님께서는 첫 결혼식을 주례하심으로 우주의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결혼제도의 창설자가 되셨습니다. “혼인을 귀히 여기라.” 이는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첫 선물들 중의 하나이며 아담이 범죄한 후 낙원의 문을 나서면서 가지고 나온 두 개의 제도(안식일과 결혼) 중 하나입니다. 이와 관련되는 거룩한 원칙이 인정되고 순종될 때 결혼은 하나의 축복이 됩니다. 그것은 인류의 순결과 행복을 수호하며 또한 사람의 사교적 필요를 공급하고 육체적, 지적, 도덕적 본질을 향상시킵니다. 아담에게 하와를 배우자로 주신 그리스도께서는 가나 혼인 잔치에서 그의 처음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친구와 친척들이 함께 즐기던 잔치 자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공생애 봉사를 시작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는 결혼을 당신께서 친히 제정하신 제도로 승인하시고 이를 윤허(允許) 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결혼 관계를 당신과 당신의 구속받은 백성과의 관계를 상징하심으로써 이를 영광스럽게 하셨습니다. 그리스도 자신은 신랑이 되시고 교회는 신부가 된, 택하신 신부 곧 교회에 대하여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시되 “너는 온전히 아름다워 아무 티가 없도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창조 시 영광스러운 에덴가정에는 온갖 필요가 공급되었으며 죄도 없었고 쇠퇴의 징조도 없었습니다. 노래하는 행복한 새들은 마음껏 창조주를 찬송하는 노래를 불렀고 평화스러운 짐승들은 즐겁고 무죄한 상태로 아담과 하와의 주변에서 뛰놀면서 그들의 말을 순종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천사들도 자유로이 또 친절히 이 경건한 부부와 함께 교제하였습니다. 실로 아담과 하와는 창조주의 가장 고상한 작품인 완전한 인간이었으므로 어떤 그늘도 그들과 창조주와의 사이를 가로막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자비로우신 아버지로 알았고 모든 일에 있어서 그들의 뜻은 하나님의 뜻에 일치하였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품성은 아담의 품성에 반영되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은 천연계의 온갖 사물에서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은 미를 사랑하시기에 당신의 손으로 창조하신 만물에 이에 대한 명백한 증거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리고 사람으로 창조주께서 만드신 것들을 돌보는 일에 시간과 정력을 바쳐 종사함으로써 행복을 찾고 또한 동산 나무들의 열매로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키도록 하는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아담이 직업 없이는 행복할 수 없음을 아셨기에 아담에게 동산을 돌보는 일을 맡기셨습니다. 동산의 아름다움이 그를 즐겁게 하기는 하였으나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았으며 사람이 성결한 상태로 아무 일도 하지 아니하는 데 행복이 있었다면 사람은 직업 없이 살도록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을 창조하신 창조주께서는 무엇이 사람의 행복이 될 것인지 아셨기에 사람을 창조하시자마자 그에게 할 일을 지정하셨습니다. 장차 올 영광에 대한 약속과, 사람이 날마다 먹을 양식을 위하여 수고하여야 한다는 명령은 동일한 보좌로부터 온 것입니다.

사랑가득 건강식탁_연근 유자 샐러드

글 김영신

작년 겨울에 만들었던 상큼하고 달콤한 유자청이 아직 남으셨다구요? 해를 넘겨 보관하기는 그렇고.. 차로 마시는 것 외에 어떤 방법으로 먹으면 좋을까 생각해 보다가 봄에 알맞은 상큼한 유자 드레싱을 만들어보기로 했어요. 이제 추운 겨울이 지나서 그런지 초록 채소들을 보니 먹음직스럽게 느껴지네요. 하나님이 창조하신 식물들 중 사랑스런 모양이 많아요. 연근 또한 그 중에 하나지요. 사랑스런 연근이 상큼한 유자 드레싱을 만나서 멋진 샐러드 요리가 되었어요.

재료 (4-5인분)

연근 10조각, 어린잎 & 샐러드용 모둠채소 2줌, 노랑 파프리카, 아몬드 슬라이스 & 해바라기씨 조금씩

유자 드레싱 - 유자청 6큰술, 매실 2큰술, 레몬즙 2큰술, 소금한 꼬집, 불린 캐슈 10알

만들기

1. 필러로 연근 껍질을 까서 얇게 썬 다음 소금과 식초를 넣은 물에 데쳐요. (소금과 식초를 넣은 물에 데쳐야 갈변이 없어요.) 2. 데친 연근은 찬물에 헹구어 물기를 빼 주세요. 3. 채소도 씻어 물기를 빼 주시고요, 4. 드레싱 재료를 모두 믹서에 넣고 곱게 갈아요.

mom’s tip

드레싱은 답이 없어요. 재료나 상황에 따라서 얼마든지 변경할 수 있거든요. 그러나 드레싱 자체의 맛이 너무 강렬할 경우엔 오히려 채소 고유의 맛을 느끼지 못하게 해요. 그래서 샐러드를 김치처럼 즐기는 서양에선 드레싱을 아주 간단하고 단순하게 만들지요. 하지만 샐러드보다 겉절이가 더 입에 맞는 한국 사람은 드레싱을 좀 강하게 만드는 편이지요. 캐슈넛을 생략하시면 더 상큼한 유자 본연의 맛이 느껴져요. 올리브유를 첨가하셔도 되구요, 입맛에 따라 재료는 가감하시면 됩니다.

mom’s note

이현맘은 요리할 때 색깔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빨주노초보검흰..이렇게 7빛깔을 골고루 쓰기를 좋아하거든요. 색깔마다 섭취할 수 있는 파이토케미컬이 틀리고 다양한 색을 사용하는게 더 먹음직스럽더라구요~ 그래서 연근에 비트 물을 들인 다음 꽃 모양을 만들었더니 샐러드가 더욱 멋스러워졌어요. 단순하지만 푸짐하고 근사한 연근 유자 샐러드, 봄 식탁에 올려보시겠어요?

힐링스토리_춘곤증

겨울 준비로 창문마다 뽁뽁이를 붙이던 일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따뜻한 기운이 느껴지는 봄이 되었습니다. 따스한 봄바람 속에서 우리 인생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마음이 느껴지는 듯합니다. 하지만 활기찬 봄기운과 반대로 나른하고 쉽게 피곤해지는 춘곤증이 우리를 성가시게 합니다. 특별히 아픈 데도 없는데 나도 모르게 눈이 스르르 감기고, 컴퓨터 업무를 보다가 엉뚱한 키보드를 누르기도 합니다. 충분히 잔 것 같은데도 개운하지 않고 집중력도 떨어져서 일의 능률이 오르지 않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답을 가지고 계시는 하나님께서는 아주 손쉬운 방법으로 춘곤증도 이겨낼 수 있도록 준비해 주셨습니다. 오늘은 춘곤증에 대해 알아보고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그 방법을 하나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원인

1. 계절의 변화에 대한 신체의 부적응 상태 - 춘곤증의 원인이 과학적으로 명확히 밝혀지지는 않았지만 추운 겨울에 길들어져 있던 신체가 계절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서 생기는 일시적인 현상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2. 영양소의 필요량 증가 - 봄철이 되어서 실외활동량이 많아지고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서 비타민 B1, 비타민 C를 비롯한 무기질 등 각종 영양소의 필요량이 증가하게 되는데 이를 충분히 섭취하지 못해서 춘곤증이 발생할 수도 있다고 합니다. 3. 스트레스 - 대체로 봄이 되면 새학기, 취직, 새로운 일을 시작하는 등 생활에 많은 변화가 시작되므로 그로 인한 스트레스가 원인이 될 수도 있습니다. 4. 잘못된 생활 습관 - 불규칙한 식사시간, 지나친 인스턴트 식품의 섭취, 폭식, 과로, 충분치 못한 휴식, 운동 부족, 흡연, 과다한 음주 등의 잘못된 생활 습관이 춘곤증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증상

피로감, 졸음, 집중력 저하, 식욕 부진, 소화불량, 현기증 등이 대표적이긴 하지만 개인의 건강한 정도나 주변 환경에 따라 다양한 증상을 호소한다고 합니다. 또한 평소에 운동이 부족하거나 과로를 했거나 나이가 많은 경우에는 춘곤증을 더 심하게 느낄 수도 있다고 합니다. 또 기운이 없으며 가슴이 뛰고 얼굴이 화끈화끈 달아오르는 등 갱년기 증상과 비슷한 증상을 보이기도 하는데 이러한 춘곤증은 1~3주 정도 지나면 자연히 사라지는 것이니 쓸데없는 조바심보다는 건강한 생활 습관으로 적절히 대처해 나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치료

1. 가벼운 운동 - 과격한 운동보다는 땀을 약간 흘리는 정도의 가벼운 전신 운동이 좋습니다. 운동은 몰아서 하는 것보다 자신의 체력에 맞춰서 규칙적으로 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맨손 체조나 스트레칭- 아침 시간이나 2~3시간 간격으로 10분 이상 해주므로 온몸의 근육과 관절을 풀어줍니다. *수영이나 자전거 타기와 같은 유산소 운동- 일주일에 3~5회, 1회 운동 시 30~50분 정도가 적당합니다. *산책- 일과 중 휴식시간이나 점심 후 바깥바람을 쐬면서 약 15~20분 정도의 가벼운 산책을 하는 것도 좋습니다. 춘곤증에서 빨리 회복하기 위해서 운동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2. 충분하고 적절한 영양 섭취 - *신선한 채소와 과일- 대체로 봄철에는 신진대사가 활발해지면서 평소보다 많은 양의 비타민이 필요합니다. 특히 탄수화물 소화에 도움을 주는 비타민B와 면역 기능을 돕는 비타민C가 많이 필요한데, 비타민 B1은 보리, 콩, 땅콩, 잡곡류 등의 견과류에 많이 포함되어 있고, 비타민C는 채소류나 과일류, 그리고 봄에 나는 냉이, 달래, 쑥갓, 미나리, 씀바귀 등에 풍부하게 들어 있습니다. *봄나물- 봄나물은 없어진 입맛을 돋우어 줄 뿐 아니라 단백질이나 칼슘, 철분 등이 풍부하게 들어 있어서 봄철에 필요한 영양분을 충분히 보충해 줄 수 있습니다. *아침 식사- 아침 식사를 해야 오전 동안 뇌가 필요로 하는 영양소를 공급해 줄 수 있고 점심 때 과식을 피할 수 있습니다. *커피, 음주, 흡연을 피하자- 졸음이 온다고 커피를 자주 마시거나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목적으로 음주, 흡연을 하는 것은 오히려 몸의 피곤을 더 가중시키는 것이 되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3. 충분한 수면 - 춘곤증을 줄이고 예방하기 위해서는 충분히 잠을 자야 합니다. *숙면- 너무 늦은 시간에 잠자리에 들거나 밤잠을 설치면 다음 날 오후에 피곤함이 가중됩니다. 일찍 귀가하여 하루 7~8시간 정도의 충분한 숙면을 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낮잠- 만일 밤잠을 설친 경우에는 점심 후 10~15분 정도 낮잠을 자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20분 이상 길게 자는 것은 밤잠을 방해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합니다. *주 중에 부족했던 수면과 피로를 풀기 위해서 주말이나 휴일에 몰아서 잠을 자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오히려 피로감을 가중시키는 일이라고 하니, 평소에 기상 시간과 취침 시간을 규칙적으로 정해놓고 생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4. 환경의 변화에 따른 스트레스를 최소화하고 여유를 갖는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 안전운전과 춘곤증  운전 중에 춘곤증이 나타나면 주의집중이 안 되고 졸음운전으로 이어져 사고를 일으키기 쉽습니다. 더구나 이런 경우는 대형사고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우 위험합니다. 그러므로 장거리 운전 시에는 2시간 간격으로 반드시 휴식을 취하고, 차 밖으로 나와서 체조를 하거나 자동차의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또 자주 창문을 열어서 환기를 시켜주므로 신선한 바깥 공기를 마시도록 하는 것이 좋습니다. 결국 춘곤증을 대처하는 방법도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드시고, 건강한 삶과 행복한 매일을 위하여 우리에게 심어주신 그 법대로, 순종하여 사는 길이 곧 영생입니다. 봄이 되면 더 다양하고 많은 영양소가 필요한 줄 아시고 온 들과 밭에 봄나물을 자라게 하시는 주님, 그분은 우리 각자를 너무도 잘 알고 계십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이 봄의 어여쁜 꽃들처럼 창조주께 기쁨으로 찬양드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건강보감_더 나은 건강한 생활의 교훈

건강 원리에 대한 교육이 오늘날보다 더 필요한 때는 일찍이 없었습니다. 생활을 편하게 하는 각종 기술, 문명의 이기들, 그리고 위생 문제와 질병의 치료에 이르기까지 삶의 많은 분야에서 놀라운 발전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인간의 체력과 인내력의 감퇴는 놀라울 정도입니다. 발달한 과학문명은 오히려 건전한 생명원칙을 파괴시키는 악을 조장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관습과 유행은 자연과 싸우고 있으며, 세상 것들을 추구하는 행동과 방종 등은 육체적·정신적 힘을 계속적으로 약화시키고 있습니다. 그 결과 세상에 부절제와 범죄, 질병과 불행이 도처에 발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들은 건강에 대한 교육과 지식을 생애의 중요한 지침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건강관리에 너무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고 있으며 병에 걸린 후에 치료하는 법을 아는 것보다 병을 예방하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각 사람은 자신과 더 나아가 인류를 위하여 생명법칙에 관하여 정통한 지식을 얻고 그것을 바르게 순종할 의무가 있습니다. 또 모든 사람은 인체의 여러 기관의 기능과 건강한 작용을 위한 상호 의존 관계를 이해해야 하며 정신이 육체에 미치는 영향, 그리고 그것들을 지배하는 법칙들을 연구해야 합니다. 깨끗한 공기, 햇빛, 절제, 휴식, 운동, 적당한 식사, 물의 사용,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는 것, 이것들이 인류를 위한 참된 치료제입니다. 모든 사람은 천연계의 치유력에 대한 지식을 알고 그것을 적용하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천연 치료법을 이용하려면 사람들이 기꺼이 하기를 좋아하지 않는 많은 주의와 노력이 요구됩니다. 자연적 치유와 회복의 과정은 점진적이므로 참을성 없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느리게 보일 것입니다. 건강에 해로운 방종을 버리는 데는 희생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결국은 자연 법칙에 꿋꿋하게 순종하는 사람들은 육신과 정신의 건강으로 보상받게 될 것입니다. 건강은 우연히 이루어지지 않고 건강 법칙에 순종한 결과입니다. 이 사실은 각종 경기에 참가하는 운동선수들에 의하여 입증되었습니다. 그들은 육체의 어떤 기관이나 기능을 약화시키거나 무능하게 만드는 태만과 부절제와 부주의가 패배를 준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가장 세심한 준비를 하고 철저한 훈련과 엄격한 규율을 따르며 모든 육체적 습관을 엄격하게 통제합니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아날지라도 오직 상 얻는 자는 하나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9:24). 그러나 질병과의 싸움에서도 이 바른 원칙에 순종함으로 자기 자신을 훈련시키는 사람은 모두 승리할 것입니다. 우리 생애의 각 부분에서, 이 건강 원칙을 실천하는 일을 별로 중요하지 않게 여기거나 주의를 기울이기에는 너무도 사소한 일로 간주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삶의 성패가 걸려 있는 문제들에 비추어 볼 때, 건강을 지키기 위하여 해야 할 일들은 사소한 것이 전혀 아닙니다. 모든 행동은 인생의 승리와 패배를 결정짓는 저울에 영향을 끼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너희도 얻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 9:24)고 명령합니다. 우리의 첫 조상들은 부절제한 욕망 때문에 에덴을 잃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였습니다. 모든 일에 절제하는 일은 에덴으로 우리를 되돌아가게 하는 일에 있어서 사람들이 깨닫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큰 관계가 있습니다. 고대 희랍의 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들이 실천한 극기를 지적하면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 그러므로 내가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같이 아니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같이 아니하여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라”(고전 9:25-27).

건강 원칙은 사람들 앞에 제시되어야 합니다. 최초의 배도의 가장 처참한 결과 중 하나는 사람의 자제력 상실입니다. 그 자제력을 다시 회복할 때에만 진정한 발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육체는 성품의 발전을 위하여 정신과 심령을 계발시켜 주는 유일한 매개체입니다. 건강을 손상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육체적 힘을 감퇴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적·도덕적 힘을 약화시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나쁜 습관에 빠지게 되면 사람은 옳고 그른 것을 분별하는 일이 더욱 어렵게 되므로 악을 저항하기가 더욱 어려워집니다. 그것은 실패와 패배의 위험을 증가시킬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