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하나 신혼일기_#02. 첫 싸움에 깨지다

글 김사름

엊그제, 경북 상주에서 포도농사를 짓고 계신 친정 부모님 곁으로 거처를 옮겼습니다. 사위는 이제 아들이 되어 부모님과 함께 땅을 일구고 그 안에서 하나님과 더욱 가까워질 수 있기를 소망하는, 새로운 시작과 도전 앞에 서 있습니다. “여보, 나 오늘 밭으로 첫 출근이야~”하면서 활짝 웃는 남편에게 저 또한 환한 웃음으로 응원을 건넵니다. 처음으로 해보는 이삿짐 정리가 고됐는지 피로가 겹친 저는 하루를 꼬박 앓고 회복시켜 주시는 새 아침을 감사함으로 맞이했네요. 친정집에 오니 결혼 후 약 5개월이 지날 무렵 우리 부부 사이에 있었던 일이 하나 떠오릅니다.

결혼 후 처음 맞는 친정아버지의 생신날이었습니다. 남편과 가족이 되어 아버지의 생신을 함께 축하해드린다고 생각하니 제 마음은 한껏 들떠있었습니다. 뭐랄까, ‘이제 정말 한 식구가 되었구나’ 하는 그런 기쁨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런데 그 날 아침부터 찬양 녹화를 하는 일정이 대구에서 잡혀있었고 일정은 오후가 다 되어서야 끝이 났습니다. 식당 예약시간에 맞춰 가야 하는데, 축하하는 기분도 낼 겸 예쁜 케이크 하나를 사 가자고 제가 제안을 했습니다. 일 년에 한 번뿐인데, 이왕이면 맛있고 좋은 케이크를 사드리고 싶어서 마침 한 번 들러본 적이 있는 백화점 베이커리에 가기로 했습니다. 금방 사서 나갈 수 있겠지 생각했는데 백화점 주차장은 꽉 차 있었고, 주차하러 올라가는 비탈길이 온통 차들로 막혀 있어 오도 가도 못하는 상황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시골에 살기 시작하면서 백화점 갈 일이 사실 별로 없었으니 이렇게까지 번잡하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아침부터 피곤했던 일정에, 예상치 못한 주차난에, 비탈길에서 오르지도 내려가지도 못하는 상황이 겹쳐 남편은 조금 예민해져 있었나 봅니다. 저는 그런 남편의 상황을 생각지 못한 채 “여보 우리 몇 시쯤 도착할까요?” 하고 너무도 해맑게 물었습니다. 그러자 남편이 “제 시간에 절대 못 가요. 지금 주차도 못 했는데 어떻게.......” 하면서 약간의 짜증 섞인 말투로 제게 대답을 하더군요. 순간 정적. 퉁명스럽고 짜증 섞인 말투의 남편을, 연애한 기간 통틀어 3년이 넘도록 처음 마주한 저는 당황스러웠습니다. 그리고 너무 서운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잠시 뒤 남편은 제 기분을 살피며 자신이 예민하게 반응했던 것 같다고, 퉁명스러운 말투 때문에 기분이 상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의 말을 건넸습니다. 일단은 괜찮다 답하고 식구들과 시간을 보내고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날 밤 잠자리에 들기 위해 누워있는데 잠이 도무지 오지 않는 것입니다. 저녁에 있었던 그 서운한 마음이 쓴 뿌리로 남아 사건보다 더 크게 부풀려 해석하느라 밤새 잠을 설치고 말았습니다. ‘남편이 내게 어떻게 그럴 수 있지? 내가 뭘 잘못했다고?’ 사과를 받았음에도 평소의 저답지 않게 마음이 쉽게 풀리지 않고 무거웠습니다.

다음 날 아침, 잠을 못 잤으니 피곤한 상태에서 남편을 출근시킨 뒤 제 마음 상태를 하나님께 아뢰었습니다. ‘하나님 제 마음이 왜 이렇죠? 무엇이 잘못된 건가요? 저의 이런 마음을 주님께 해결받기 원해요.’라고 기도하며 사소한 상황임에도 밤잠까지 설친, 이해할 수 없는 제 상태를 있는 그대로 하나님께 말씀드렸습니다.

조용한 기도 가운데 제 마음에 있던 왜곡된 생각들을 하나씩 깨닫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착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리스도인 부부가 만났으니 우리는 전혀 문제가 없을 거야. 아담과 하와처럼 이상적인 부부로 살아야지.’ 하는 저만의 이상을 세워놓고는 연약한 우리의 본성을 주님께 매일 드리기보다, 저라는 사람의 생각과 의지로 그 이상을 지켜나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남편도 나도 실수하고 상처 줄 수 있는 연약한 존재임을 망각한 채, 어느새 자만하며 스스로 ‘그리스도인 부부’가 되어보려고 했던 모습을 보게 되더군요. 제가 세워놓은 이상이 무너지니 마음이 상하고 남편의 사과에도 진정한 아량을 베풀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제 힘으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려고 했으니...... 주님께 죄송하고 부끄러운 마음이 들어 고개가 숙여졌습니다. 또 다른 한 가지는, 남편이 저를 어떻게 취급하고 대하느냐에 따라 내 자신의 가치를 매기고 있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 것입니다. 결혼 생활에서 하나님 중심이 아닌 남편의 사랑이 중심이 되어 버리고 있었음을 알게 된 것이죠. 부부간의 사랑은 정말로 중요한 것이지만 하나님이 가운데 계신 사랑이 아닌 서로만 바라보는 사랑이라면 우상 숭배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런 생각들로 마음이 깨어지니 쓴 뿌리가 남았던 서운함도, 마음의 불편함도 이내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남편의 퇴근 시간, 따뜻한 밥상을 차려놓고 오늘 하나님과의 대화 속에서 깨닫게 된 것들을 이야기 나누었습니다. 남편은 오히려 자신 때문에 밤잠 설친 것을 매우 안타까워하며, 다시는 짜증내는 말투를 하지 않겠노라고 저를 꼭 껴안아주었습니다. 부부로 살면서 이러한 일은 반복해서 일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더한 일도 수없이 있을 것이라고 각오해봅니다. 하지만 이제 그런 일이 두렵지 않은 것은, 사람의 본성을 신뢰하지 않고 매일 주님 앞에 마음을 드림으로 그 은혜 가운데서 해결해 나갈 열쇠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어리석고 연약한 우리의 모습을 알게 해 주시니 감사할 뿐입니다. 이런 일이 있고난 후 남편은 제게 ‘김서운 양’이라는 별명을 붙여서 가끔 놀리기도 하지만 그 후로는 다행히도 밤잠을 설치며 서운해할 일이 아직까진 한 번도 생기지 않았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서로를 더 이해하게 되었기에, 결혼생활의 원칙이 다시 한 번 공고해졌기에 우리의 삶 가운데 불필요한 일은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모든 일에 사랑의 교훈으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배려에 초보 부부는 배우며 성장해나갑니다. 밭으로의 첫 출근을 마치고 돌아올 남편을 오늘은 제가 꼭 껴안아주고 싶습니다. 하나님 사랑의 품처럼 따뜻하게, 4월의 봄 햇살처럼 따뜻하게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