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1부_함께 들여다보는 천국의 원칙

신앙기사 제목: 지금 시작되는 천국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복스러운 소망의 약속을 찾으라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다시 오리라”는 재림의 약속과 우리를 위해 마련하신 처소,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히 살게 되리라는 약속일 것입니다. 만일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내세에 대한 소망이 없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이 될까요? 미래의 상급을 바라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지만, 이생의 고난과 슬픔과 혼란과 고통이 다 지나고 하늘에서 주님과 영원히 함께 살 것이라는 소망은 우리에게 큰 용기와 힘을 줍니다. 이생에 살지만 천국을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런데 천국은 지금 시작되는 것입니다. 천국의 법이 마음 속에 이루어진 사람은 곧 다가올 천국의 시민이 될 것입니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천국에 대해 함께 생각해 봅니다. 이미 시작된 천국을 마음에 이루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랍니다. -편집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눅 17:20,21). 하나님의 나라는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 천국을 찾기 위해 이곳 저곳을 찾아다니지 말라고 하시면서, 천국은 너희 안에 있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천국은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천국에 들어가려면 먼저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루어야 합니다.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한 삶을 누리기 원하는 사람은 천국에 대해, 그리고 천국의 법칙에 대해 바른 개념과 이해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천국 생활에 합당한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만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가기를 소망하는 것에서 끝날 뿐, 천국과는 거리가 먼 사람이 되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먼 미래가 아닌 지금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천국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예수님께서 산상수훈을 통해 천국 시민의 법칙을 발표하셨을 때 유대 백성들은 놀랐습니다. 팔복과 더불어 하늘의 시민의 구비조건과 그리스도인 삶의 원칙들을 발표하셨을 때, 당연히 천국과 그 보상이 그들의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던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의 모습이 하늘의 법칙과는 너무나 판이하게 다르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놀라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물었습니다. “누가 과연 천국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인가?” 그들은 예수님으로부터 천국은 당연히 너희들의 것이며, 너희는 하늘에 들어갈 자격을 충분히 갖추고 있다는 말씀을 들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그들이 하늘의 원칙과 정신으로부터 너무나 멀리 떨어져 있음을 깨닫고 당황하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이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천국의 법칙은 그들의 생각과 너무나 달랐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자신들의 종교적인 열성과 의로운 행위와 공로가 그들을 천국에 넉넉히 들어가게 하리라는 자부심에 가득 차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현세에서도 세속적인 정신과 마음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려고 하고 있었습니다. 유대 백성들은 늘 현세에 받을 보상과 세상에 대한 욕망에 집착한 나머지, 마음 속에 은혜의 왕국을 건설하러 오신 메시아의 사명을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의 마음 속에 은혜의 왕국을 먼저 세우셔야 했는데, 만일 이 땅에 사는 동안 마음 속에 하늘의 법칙이 먼저 세워지지 않으면 천국에 들어갈 수 없고 미래의 천국의 시민이 될 수 없음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천국 시민의 원칙과 법은 하늘을 다스리시는 통치자에 의해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에는 그분의 사상과 성품과 통치 원칙이 들어 있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하나님의 성품의 사본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생애가 이루어질 때, 인간은 마음 속에 천국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천국은 지금 시작될 수 있습니다. 하늘의 원칙이 마음에 세워진 사람은 천국으로 옮겨지기 전에 천국을 맛보며 살게 됩니다.

세상의 왕국과 반대되는 천국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는 법정이나 회의나 입법 기관의 결정이나 세상의 위인들의 후원을 얻어 건국되는 것이 아닙니다. 천국은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그리스도의 성품을 인간의 마음에 심으므로 이루어집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요 1:12, 13).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처럼, 오늘날 종교계에서도 그들이 믿는 대로 세상적이고, 현세적인 주권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나라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은 주님을 이 세상 나라의 위대한 치리자, 법정과 국회와 병력과 시민들 위에 군림하는 치리자로 만들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세속적인 왕국에 대한 소망과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주님께서 인간적인 방법으로, 곧 세상적인 인정을 받고 강압적인 치리와 통치권으로 인간들 위에 군림하기를 원하며, 그렇게 하나님의 사업을 추진해 나갑니다. 이러한 왕국의 건설이 그리스도 당시 유대인들이 바라던 것이었습니다. 만일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과 야망에 들어맞는 현세적인 왕국을 세우려고 하셨더라면 그들은 예수님을 기꺼이 받아들였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라”(요 18:3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시던 그 당시의 정부는 부패하고 강압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도처에서 잔인한 압제와 불공평하고 부당한 대우로 괴로움을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사회 개혁을 시도하거나 혁명을 일으키지 않으셨습니다. 국가의 권력 남용을 공격하지도 않으셨고 국가의 원수를 정죄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권력을 장악한 자의 권위와 행정에 간섭하지 않으셨고 세속적인 정치를 멀리하셨습니다. 그것은 그분께서 사람들의 재난에 무관심하셨기 때문이 아니라, 그것의 근본 구제책이 단순히 인간적인 그리고 외적인 조치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먼저 세속으로부터 구제되어야 사회가 정화된다는 것을 아셨던 주님께서는 사람들의 진정한 마음의 개심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지름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지 않습니다. 자아 희생의 정신을 지닌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은 세속적인 정신과 조화될 수 없습니다. 이 두 원칙은 서로 반대됩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고전 2:14).

마음에 심는 하늘의 법칙

“예수께서 제자들을 불러다가 가라사대, 이방인의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의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 20:25~28).

예수님께서는 여러 번 제자들 가운데 이 원칙을 세우려고 노력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지위가 어떤 특정하고 편파적인 방법을 통해 획득되지 않습니다. 이것은 얻는 것도 아니고, 증여를 통해 받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품성의 결과입니다. 면류관과 보좌는 그냥 얻는 것이 아니며, 그것은 달성한 상태의 증거,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한 자아를 정복한 사람이 얻는 것입니다. 세상 나라에서 지위는 자아의 확대를 의미합니다. 예수님 당시의 백성들은 지배 계급의 유익을 위해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세력과 부와 교육은 지도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군중을 억압하는 많은 수단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상류 계급은 생각하고 결정하고 향락하고 지배하게 되어 있었으며, 하류 계급은 복종하고 섬기게 되어 있었습니다. 다른 모든 것과 같이 종교도 권력에 좌우되었습니다. 백성은 그들의 상전의 지시대로 믿고 행하도록 요청되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와는 다른 원칙 하에 그분의 국가를 건설하고 계셨습니다. 그분은 사람들을 권력으로가 아닌 봉사로 부르셔서 강한 자가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도록 하셨습니다. 권력과 지위와 재능과 교육은 동료들에게 봉사할 큰 의무를 감당하도록 그 소유자들에게 주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내 나라에는 편애와 최상권의 원칙은 없다. 유일의 위대함은 겸손의 위대함이다. 유일의 영예는 다른 사람에게 헌신적으로 봉사함에서 찾는 것이다!”

주님은 제자들 중에서 모든 면에서 돌보는 사람이었으며 짐을 지는 분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제자들과 빈곤을 나누셨고 제자들을 위하여 극기하셨으며, 더욱 어려운 곳을 평탄하게 하기 위하여 저들보다 앞서 가시고 당신의 생명을 버리심으로 지상에서 당신의 사업을 마치셨습니다.

구원의 계획과 기초는 사랑입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가장 큰 사람은 그분께서 끼치신 모본을 따르고 그분의 양무리를 사랑으로 섬기는 사람입니다. 양심의 문제에 있어서 심령이 속박을 받아서는 안 됩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을 지배하거나 판단하거나 그 의무를 규정해서도 안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영혼에게 생각할 자유와 그가 깨달은 대로 행할 자유를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나라에는 오만한 압제도, 행동의 강제도 없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지배하고 충성을 강요하려고 세상에 내려오는 것이 아니요, 은혜의 사자로서 섬기려고, 인류를 향상시키는 일에 사람들과 협력하려고 내려오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어머니가, 그녀의 아들들이 주님의 왕국에서 하나는 우편에, 다른 하나는 좌편에 앉도록 특별한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은 당신의 왕국의 명예와 영광은 이 세상의 명예와 영광과는 정반대라는 것을 그들의 마음에 깊이 새겨 주셨습니다. 크고자 하는 자는 누구든지 다른 사람에게 겸비하게 낮춰야 하며,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인간 자녀들에게 봉사자요, 종으로 일하셨듯이 종이 되어야 합니다.

천국의 원칙은 사랑입니다. 폭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의 정부의 원칙과는 배치됩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봉사만을 원하시는데 사랑은 명령으로 강요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이며, 그것은 힘이나 권위로 얻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직 사랑으로만 일깨워집니다. 하나님을 알게 되면 우리는 그분을 사랑하게 되고 그분에게 충성하게 될 것인데, 이 사랑은 자발적으로 흘러나오는 것이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랑의 원칙이 천국을 다스리는 원칙입니다. 천국에서 보좌 옆에 가장 가까이 설 사람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자기희생적인 사랑 즉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고전 13:4, 5)하는 사랑, 인간을 구원하기 위해 죽기까지 모든 것을 주고 희생하신 예수님의 사랑의 정신을 가장 깊이 체득할 자들이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