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이 달의 말씀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그분과 협력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기꺼이 그분의 동역자가 되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손을 내밀고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한걸음씩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쏙 빼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살아남는 이들]
그리스도인이십니까? 요즘처럼 기독교의 양면성이 뚜렷해지는 시대가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한쪽에서는 너무나 인기가 있습니다. 마치 명함 한 장 지니듯이 사람들은 자신의 사업을 위해, 사교를 위해 쉽게 교회에 나갑니다. 때문에 많은 신자들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이 무슨 의미인지를 모르고 있으며, 그들의 영적생활은 무기력하고 나약합니다.
 왜 그런 것일까요? 수십 년 교회를 다녔지만 성경의 진리에 대해서는 무지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말씀들, 성경의 예언들, 요한계시록, 적그리스도와 짐승의 표, 아마겟돈 전쟁, 뉴에이지, 예수그리스도의 재림 등 다양한 주제의 성경공부가 준비 돼 있습니다.
진실한 거듭남을 경험하고 싶고, 깊은 영적 목마름을 해결하고자 진리의 생수를 찾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살아남는 이들] 월간지를 소개합니다.

신앙기사 1부_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고 싶을 때

신앙기사 제목: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는 길

성경은 우리를 하나님의 동역자라고 설명합니다.“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 너희는 하나님의 밭이요 하나님의 집이니라”(고전 3:9).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하나님께서는 혼자서 일하시는 것이 아니라 인간과 함께 일하고 계십니다. 구원은 그저 믿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일방적으로 다 알아서 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구원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인간에게는 아무 공로가 없으며 인간의 어떠한 선행도 구원에 영향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선택과 협력이 없이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 수 없습니다. 그분은 어느 누구도 강요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구원을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하여 이루어 나가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협력해야 한다는 것일까요? 이번 호를 통해 하나님과 동역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배워보겠습니다.

 

성경 말씀에는 성도들이 행하는 옳은 행실이 의(세마포)라고 설명하면서 성도들이 행한 그 행실은 사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에게 허락하사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게 하셨은즉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계 12:8). 분명히 하나님께서 허락하시고 입혀주신 것이지만 또한 분명히 성도들이 행한 행실입니다. 이것이 무슨 뜻일까요? 다음의 성경절을 보면 좀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2,13).

우리는 늘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우리 안에서 행하게 하시는 분, 우리 마음에 의와 순결과 사랑에 대한 갈망과 소원을 주시고 그것을 행할 능력을 주시는 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그분의 뜻을 이루고자 하는 열망을 주실 때에, 우리는 그 뜻에 굴복하고 따라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주신 소원과 열망을 가진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큰 섭리와 징조를 보이시고 길을 열어주셔도 우리가 그 길로 가길 원하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집 짓는 것과 같이

집 짓는 것을 예로 들어 보십시다. 집을 지을 때에 목수가 조수에게 나무 한쪽을 붙잡아 달라고 합니다. 그 때 조수가 나무를 붙잡아 주어야 못을 잘 박을 수 있습니다. 목수가 나무 합판을 적당한 간격으로 잘라달라고 할 때에 조수가 거기에는 석고보드를 써야 한다고 고집하면 안 됩니다. 목수가 시키는 대로 잘 협력할 때에만 집은 제대로 지어질 수 있습니다. 집을 짓는 것은 목수가 하는 것입니다. 조수가 집을 짓는 것이 아니지만, 그렇다고 조수의 협력이 없이 목수도 집을 지을 수 없습니다. 그런데 조수는 목수가 하라는 대로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역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것인데,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실 때에 그분의 역사에 반응하며 협력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그분의 아름다운 형상을 지으시려 하실 때에 우리의 뜻을 버리고 그분의 원하시는 뜻을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 때에 우리 안에 그분의 형상이 꼴 지어질 것입니다.
아마 어떤 분들은 이렇게 물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만 구원 얻는 것이 아닙니까?”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 속에 역사하여서 결심하고 행하게 하기 위해 주시는 것이지 결코 우리의 굴복과 선택 그리고 노력을 대신하여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우리의 것으로 삼으려면 우리는 우리의 몫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대신하여 결심이나 활동을 해주시겠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깨워 하나님의 역사하심에 협력해야 하며 그럴 때에 그분께서는 우리 안에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신앙기사 2부_하나님의 이끄심을 느낄 때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그분의 동역자로 만드시기 원합니다. 구원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나가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우리를 동역자로 만드시기 위해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방법은 다양합니다. 먼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끄시고 사랑으로 역사하셔서 이 일을 이루십니다. 하나님의 기이하신 역사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까요?

이끄심을 느낄 때

여러분은 하나님의 조용한 이끄심을 느껴본 적이 있으십니까? 세미하게 속삭이시는 음성을 들어보셨습니까? 말씀을 읽거나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알려주시는 그분의 뜻을 깨달으신 적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 뜻대로 살고자 하는 간절한 열망을 느껴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모든 것을 가진 것 같지만 무엇인가 텅 빈 허전함을 느낄 때, 일시적인 향락 후에 느껴지는 진정한 행복에 대한 갈망, 바쁘고 정신없이 살던 어느 순간에 잠깐씩 스쳐 지나가는 평화와 순결에 대한 동경... 어쩌면 그것들은 하나님의 조용한 이끄심일지도 모릅니다.
내가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 내 삶의 목적이 무엇이고 내 가치가 무엇인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 때에 조용히 눈을 감고 하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분의 이끄심을 저항하지 말고 따라가십시오.

이끄시는 사랑

예수님께서는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요 12:32)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로 이끄는 것은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십자가로 이끌어 줍니다. 그리고 죄인이 십자가에서 치르신 큰 희생을 바라볼 때에 회개하게 됩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오는 탕자의 이야기를 잘 알고 있습니다. 탕자가 그 아버지의 집에서 멀리 떠나 있는 동안, 낯선 나라에서 그의 재물을 허비하며 방탕한 삶을 사는 동안에도 탕자의 아버지는 여전히 집 나간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아들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과 아버지의 사랑은 그 탕자의 마음에 호소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의 집을 떠나 방황하는 동안 가진 것은 다 사라지고 친구들도 떠나갔으며, 아무도 그를 반겨주지 않고, 세상에서의 희망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보일 때에, 그의 마음에 있던 마지막 희망의 불은 바로 아버지의 사랑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사랑이 그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혹시나 아버지께로 돌아가면 아버지가 자기를 받아주실지도 모른다는 희망이 생겼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영혼 속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갈망이 일어나는 것은 방랑자를 그의 아버지의 사랑의 품으로 이끄시는 하나님의 영의 부드러운 애원이며 간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끊임없이 역사하고 계십니다. 혹 인간의 마음이 무디어 그것을 느끼지 못할지라도 조금씩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이끌리게 하는 감명이 이루어집니다. 이러한 감명들은 그리스도를 명상함으로나 혹은 실제로 성경을 읽거나 설교 말씀을 들으므로 받게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성령께서 어떤 계기를 통하여 직접적이고도 강한 호소를 하십니다. 그럴 때에 영혼이 그 호소에 응하고 자신을 바친다면 그 영혼은 회개에 이르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은 회심을 갑작스런 경험이라고 이야기할지 모르지만 사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꾸준하고도 오랜 과정을 거쳐서 호소하고 이끌어 오신 결과입니다.” (『오! 그리스도』17장 니고데모).
그분의 사랑의 힘이 우리를 이끌고 계십니다. 우리는 잘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지만 그분의 사랑이 우리를 감싸고 우리를 돌보며 우리를 그분의 품으로 이끄시는 것입니다.
“내가 영존하는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였기에 인자함으로 너를 이끌었노라”(렘 31:3).

사랑에 이끌려 감

우리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호소의 말씀을 읽습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돌아와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사 55:3).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이 들릴 때에 그것을 소홀히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영혼이 살기 위해서 우리는 그분의 이끄심에 굴복하여 따라가야 합니다.
“우리는 어떻게 구원을 받을 수가 있는가?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린 바 되었으니 뱀에게 속고 물린 자마다 쳐다보면 살 수 있다.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이로다”(요 1:29). 십자가에서 비치는 빛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낸다. 그의 사랑은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 준다. 만일 우리가 이 이끄심을 저항하지 않는다면 구주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한 죄를 회개하는 가운데 십자가 밑으로 인도함을 받을 것이다. 그 때에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영이 사람의 심령에 새 생명을 지어 준다. 사상과 욕망은 그리스도의 뜻에 순종하게 된다. 심령은 우리들 속에 역사하시어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시는 그분의 형상으로 새로 지음을 받는다. 그 때에 하나님의 율법이 심령에 쓰이게 되며 우리는 그리스도와 더불어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시 40:8)나이다고 말할 수 있게 된다.” (『오! 그리스도』17장 니고데모 ) .

하나님과 천사들은 인간의 협력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끄심을 방해하는 유일한 장애물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뜻대로, 즉 하나님과 동역하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의 길로 가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해 우리의 뜻을 버리고 그분의 뜻을 선택하고 그분의 길로 가기로 결심해야 합니다. 아무도 여러분에게 강요하거나 강제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라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이끄시지만 결코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선택은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기 위한 첫걸음은 바로 그분이 이끄심에 저항하지 않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그분의 이끄심을 느낄 때에 그것을 지나쳐 버리지 마십시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기면 어찌 피할 수 있으리요?”(히 2:3).

신앙기사 3부_내 자신의 참 모습이 보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역자로 삼으실 때에 사용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임하십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자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 귀중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죗된 모습을 보게 되고, 우리의 죄를 깨닫고 용서의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들은 모두 성령의 감화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가슴이 쿵쿵 하고 뛰는 것도 모두 성령께서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작은 거짓말을 했을 때 그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고 들키게 될까 봐 스트레스를 받고 기분이 언짢은 것도 사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고 회개케 하시는 역사입니다.

성령의 꾸짖으심을 느낄 때

“그분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요 16:8).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를 깨우쳐주시기 위해 그분의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그 메시지는 때로는 목사님을 통해 전달될 수도 있고, 이웃이나 가족을 통해 전달될 수도 있으며, 가끔 낭패와 좌절을 통해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의 메시지는 아첨이나 평안의 기별이 아닙니다. 듣기 좋고 양심을 잠재우며 죄인을 위로하는 기별이 아닙니다. 그분은 범죄자의 양심에 무거운 짐을 두시고 그 마음과 영을 슬픔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게 하시며 회오의 화살로 찌르십니다. 때로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죄의 결과를 제시하므로 하나님의 필요를 더욱 느끼게 하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외침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성령의 꾸짖음을 느낄 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조용한 이끄심에 저항하지 않고 따라갈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게 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과 비교되는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 마음에 없는 겸손을 입술로 나타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심령이 가난하다고 말하는 중에도 마음속에는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겸손과 덕이 풍부하다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진정한 상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의를 그렇게 높이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순결하심과 탁월하심을 깊이 생각할 때에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가난함과 결점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른 모든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의롭다는 두루마기를 입고 있으며 아무 소망도 없이 잃어버린 바 된 자들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만일 구원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죄를 인정하고 나의 필요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아름다운 의의 옷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되 타락한 이스라엘아, 너는 돌아오라. 나는 긍휼이 많은 자니 그런즉 내 분노가 너희 위에 임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나는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느니라. 너는 오직 네 죄를 인정할지니 이는 네가 주 네 하나님께 죄를 짓고”(렘 3:12, 13).
위의 말씀은 “너는 오직 네 죄를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인정하고 그분께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 모습을 보게 해주시고 우리의 죄를 꾸짖으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피하도록 하며, 그분을 통하여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겸손하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진리를 순종하고 실천하므로 우리 자신의 삶을 정결하고 순결하게 할 기회를 제공하고 계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죄를 인정하기를 꺼립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대신에 자꾸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부모는 자기가 화내는 이유를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는 부모에게 돌립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마음에 변화를 주실 것입니다.
혹 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럴 마음이 전혀 없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고 할지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예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분하고 딱딱한 마음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그분의 사랑을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죄로부터 돌아서게 하고 죄를 싫어하게 하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죄송할 때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 5:31).
인간에게는 자기를 방어하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즉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선을 좋아할 수도, 죄를 싫어할 수도 없습니다. 나의 죄를 인정하고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을 아프시게 한 것이 진정으로 슬프고 하나님께 죄송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회개는 죄를 슬퍼하고 그 죄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면 죄를 버리지 않게 될 것이며, 또한 진정으로 죄에서 떠나지 않으면 우리 생애에도 진정한 변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 스스로가 죄를 담당하고 싶어하며 거짓이나 위선없이 죄를 자백하게 이끌어 줄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 땅을 고치리라”(대하 7:14).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려니와 누구든지 죄들을 시인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잠언 28:13).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그분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긴다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모든 죄의 더러움에서부터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의가 우리가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죄를 덮어주는 가면이나 속임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결코 죄를 품고 있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의는 죄를 가려주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죄를 밝히 드러내어 버리게 하시고 그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고 버리는 자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죄송함을 느낄 때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모든 죄를 드리십시다.

신앙기사 4부_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싶을 때

하나님께서 베푸신 큰 사랑을 깨닫고, 나를 그렇게 사랑하시는 분에게 행한 나의 죄를 깨달을 때에 우리는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됩니다. 그런데 회개와 함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두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회개의 심령을 주실 때에, 우리의 모든 죄들을 드러내 주실 때에, 우리의 참 모습을 보게 해주실 때에, 우리는 그 죄들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께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요구하십니다. 그 죄를 우리가 계속 가지고 있는 한 우리는 그 죄와 함께 멸망하게 될 것을 그분께서 아시기 때문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을 요구하십니다. 그분께서는 “내 아들아, 네 마음을 내게 달라”고 말씀하십니다(잠 23:26 참고). 온 마음을 하나님께 드려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분의 형상으로 우리를 회복시키는 그 변화가 우리 속에서 결코 일어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치료하시고 죄로부터 해방시키길 원하십니다. 그렇게 하려면 전적인 변화, 우리의 온 성질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다른 표현으로 새로 남, 혹은 재창조가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 위해 우리는 하나님께 우리 자신을, 우리의 온 마음을 그분께 드려야만 합니다. 마음을 드린다는 것은 또한 그분의 뜻에 온전히 굴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마음을 전부 바침

하나님께서는 나누어진 마음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반은 세상의 것이 되고 반은 하나님의 것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의 것이 아니라면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그분은 나누인 봉사를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전부를 요구하십니다. 그분은 분열된 마음의 통치권을 받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은 그분의 보좌를 사탄과 나누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상에 대한 모든 애정과 사랑의 하나님께로부터 돌아서게 하는 모든 것들을 버려야 합니다. 온전히 그분께서만 나를 주장하시도록 해야 합니다.
마음의 열쇠는 하나뿐입니다. 그 하나뿐인 열쇠를 누구에게 주느냐는 우리에게 달려 있습니다. 우리 마음의 키를 하나님께 드릴 때 그분께서 우리 마음의 주인,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실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부분적인 굴복과 부분적인 순종은 사탄에게 일할 수 있는, 사탄이 마음대로 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영혼의 성전이 하나님께 전적으로 바쳐지기 전에는 그것은 사탄의 요새로 활용될 뿐입니다. 우리의 전 존재가 예수님께 굴복될 때에야 그분께서 우리의 영혼을 정결케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죄된 마음을 하나님께 드립시다. 그래서 그분께서 그분의 자비로 정결케 하시고, 그분의 피로 깨끗게 하시며, 무한한 사랑으로 우리 마음을 채워주시도록 허락합시다.
“너희는 회개하고 돌이켜서 너희의 모든 범죄에서 떠나라. 그리한즉 불법(죄가)이 너희를 황폐하게 하지 아니하리라. 너희는 너희가 범한 모든 죄를 너희에게서 떨쳐버리고 너희를 위하여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영을 만들지어다. ...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겔 18:30, 31).
주님의 손에 우리의 전 존재, 즉 혼과 몸과 영을 다 내맡기십시다. 그리고 그분의 사랑 받는 사람이 되기로, 성화된 매체가 되기로 결심합시다. 그분의 뜻에 따라 움직이는 사람이 되기로, 그분의 정신으로 지배받기로, 그분의 영으로 충만케 되기로 결심하십시다.

마음을 차지하려는 두 세력

우리가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바치려 할 때에 우리는 우리의 마음을 차지하려는 두 세력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죄된 육체의 소욕은 우리를 주장하여 범죄케 하려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육체의 욕심과 싸워야 할 것입니다. 자신과의 싸움, 그것은 일찍이 싸운 싸움 중 가장 큰 싸움이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에 복종시키며 자신을 바치는 일은 쓰라린 투쟁과 치열한 싸움이 요구됩니다. 그러나 우리가 순결한 영혼을 갖고자 한다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한다면, 하나님의 것이 되고자 한다면, 우리의 마음은 하나님께 온전히 바쳐져야 합니다.
“너희는 속이는 육욕을 따라 썩은 너희 삶의 옛 습관을 좇는 옛사람을 벗어 버리고, 네 생각의 영 안에서 새롭게 되어, 참된 의와 거룩함 안에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새 사람을 입으라”(엡 4:22~24 RSV).
“그러므로 너희도 죄에 대하여는 너희 자신을 죽은 자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겨야만 하느니라”(롬 6:11 RSV).

죄에 대하여 죽는다는 것은 죄에 대한 나의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하여 산 자로 여기라는 것은 내 마음을 주관할 권리를 하나님께 드리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봅시다. 누군가 나를 짜증나게 하고 화나게 할 때에 화낼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합니다. 다른 사람을 비난하고 다른 사람을 원망하고 싶을 때에 그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뜻대로 한바탕 퍼붓고 싶은 그 욕망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자존심과 나의 유익과 나의 명예와 평판만을 먼저 생각하고, 나만을 보호하고자 하는 이기심에 대한 권리를 포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죄에 대하여 죽는 것입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도록 마음을 드리면, 하나님께서는 나로 하여금 내가 원망하고 싶은 그 사람을 용서하고 이해할 수 있는 마음을 주셔서 그 사람을 위해 기도하게 하십니다. 비난하는 말 대신 친절하고 용기주는 말을 하게 됩니다. 나보다는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게 됩니다. 짜증내고 조급하는 대신 인내하고 온유하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에 대하여 사는 것입니다.
우리 마음에서 투쟁이 일어날 때 얼른 내 자신의 권리를 하나님께 드리십시다! 하나님께 우리 마음의 열쇠, 우리 마음의 통치권을 드리십시다! 그래서 죄에 대하여는 죽고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가 됩시다!

신앙기사 5부_하나님의 기적이 내 안에서 일어날 때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자백하면 그분께서는 신실하시고 의로우사 우리의 죄들을 용서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느니라”(요일 1:9).

우리가 우리의 죄를 자복할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와 잘못을 완전히 전부, 하나도 남김없이 깨끗하게 하십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모든 찌꺼기까지, 모든 분노와 질투와 원한까지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그분께서는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하실 뿐 아니라 우리 안에 새 마음을 창조해주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행하시는 놀라운 기적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바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성령을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풍성히 부어 주사 우리로 저의 은혜를 힘입어 의롭다 하심을 얻어 영생의 소망을 따라 후사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 3:5~7).
우리가 잘 알다시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신 후 한 로마 병정이 창으로 예수님의 옆구리를 찔렀습니다. 그러자 거기에서 피와 물이 흘러나왔습니다. 그 피는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들의 죄를 씻어 주는 것이었고, 물은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생명을 주는 생명수를 상징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정결케 된 영혼이 그분이 주시는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의 용서를 받는다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큰 의미가 있습니다.

거듭나게 하시는 기적

“하나님의 용서는 단순히 우리를 정죄에서 면하게 해주는 사법적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게 한다. 마음을 변화시키는 것은 구원하는 사랑의 표현이다. 다윗은 “하나님이여 내 속에 정한 마음을 창조하시고 내 안에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시편 51편 10절) 하고 기도했을 때 용서의 참뜻을 깨달았다. 그는 다시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시편 103편 12절)라고 말한다”(『산상 수훈』5장 주기도문).
우리는 우리 자신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듭나게 할 수 없습니다.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워진다는 것은 인간의 영광을 먼지와 티끌 속에 던지고 인간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할 수 없는 그것을 인간을 위해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역사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재창조해 주시는 하나님의 기적인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능력에 이끌린 죄인이 십자가 앞에 나아가 부복할 때에 그는 새로 창조함을 받습니다. 그는 새 마음을 받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 지음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더 요구될 것이 없는 거룩함을 입게 됩니다. 하나님은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롬 3:26)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리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30)고 성경은 말씀합니다. 죄로 말미암아 우리가 입은 수치와 타락은 매우 크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얻게 될 우리의 영예와 위대함은 더욱더 클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순결케 하며 우리로 하늘에 적합한 거룩한 자들이 되게 할 것입니다.
“그런즉 누구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옛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모든 것이 새롭게 되었도다”(고후 5:17).
“이제 너희가 죄로부터 해방되었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으니 너희가 얻은 것은 성화와 그것의 끝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롬 6:22 RSV).

하나님의 길로만 감

이제 거듭난 영혼은 계속적인 새로운 용기와 기쁨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새로운 영이 영혼의 성전을 차지하고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그리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할 때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삶 속에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성화란 매 순간 내 자신의 길을 버리고 하나님의 길을 가기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들뜬 기분이나 황홀경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모든 것을 복종시킨 결과로써 이르러 오는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을 좇아 사는 생애입니다. 이것은 우리 하늘 아버지의 뜻을 좇아 실천하는 것이며, 시험 가운데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 가운데서 평안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둠 속에서도 하나님의 허락을 빛 가운데 있을 때와 똑같이 믿는 믿음입니다. 신앙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는 것처럼 하나님을 전적으로 신뢰하고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에 우리는 그분의 사랑 가운데서 쉼을 얻을 수 있습니다.

“성화란 무엇인가? 이것은 그 자신의 것을 남김없이, 영혼과 몸과 정신을 모두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그리고 바르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고 하나님과 더불어 겸손히 동행하는 것이다. 그 자신의 이기심이나 자신을 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것이다. 하늘의 마음을 품고, 순결하고, 이기심이 없고, 거룩하고, 흠이나 점이 없는 것이다.”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하나님께 우리 전부를 온전히 바친 상태, 우리의 마음과 의지가 온전히 그분의 뜻에 굴복된 상태를 거룩하다고 합니다. 그 때에 하늘의 원칙이 우리의 삶을 주관하고 우리의 성품을 꼴 짓게 되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더욱 하나님을 닮아 감

일년에 한 번이 아니라 매일 참된 회심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고전 15:31)고 말했습니다. 이런 진정한 회심은 사람을 하나님과의 새로운 관계 속으로 인도합니다. 내 자신을 버리고 매일 하나님의 영으로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의 인도하심을 받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즐기게 될 것입니다. 날마다 더욱더 우리는 하나님을 닮고 싶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과 동역하는 길, 그분과 동행하는 길은 그분의 뜻을 따르는 길입니다. 그분의 뜻을 따라서 걸을 때에 우리는 그분처럼 변화되고 그분을 나타내게 되는 것입니다.
“저가 빛 가운데 계신 것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귐이 있고 그 아들 예수의 피가 우리를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요일 1:7).
빛 가운데 행한다는 것은 빛이신 하나님과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삶을 주관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과 맞지 않는 것은 버리는 것입니다. 내 삶의 모든 것, 내 마음의 소원을 그분의 말씀에 맞출 때에 우리는 하나님을 닮게 됩니다. 닮게 된다는 것은 내 안에 그분을 사랑하는 마음과 열망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그분을 닮고 싶고 그분과 사귀고 싶고 그분과 함께 동행하고 싶은 것입니다.

바울은 “마음으로부터 하나님의 뜻을 행하”라( 엡 6:6)고 했습니다. “마음으로부터”라는 말이 더욱 마음에 와 닿지 않습니까? 그래서 순종은 마음에 있는 소원과 원칙을 실행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싶은 마음을 주시고 그러한 소원을 주시며 능력을 주시는 것을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통해 우리는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는 생애를 사는 것입니다. 은혜로 의롭다 하심을 얻을 뿐 아니라 그 은혜로 순종과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지요.
“너희는 순종하는 자녀로서 전에 알지 못하던 때에 따르던 정욕들에 너희 자신을 맞추지 말고 오직 너희를 부르신 분께서 거룩하신 것같이 너희도 온갖 행실에서 거룩할지니라”(벧전 1:14, 15).
“모든 참된 순종은 마음에서 우러나온다. 그리스도와 함께 일하는 것은 우리의 마음이다. 만일 우리가 동의한다면 그분은 우리의 마음과 정신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간주하시고 우리의 사상과 목적을 당신의 뜻과 일치하도록 섞어 놓으실 것이다. 그리하여 우리가 그분에게 순종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이 받은 자극을 실행에 옮기는 데 불과하게 될 것이다. 세련되고 성화된 의지는 그분께 봉사하는 일에서 최고의 기쁨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특권으로 생각하고 우리가 하나님을 알 때에 우리의 생애는 계속적인 순종의 생애가 될 것이다”
(『오! 그리스도』73장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화평의 그 하나님께서 친히 너희를 온전하게 거룩히 구별하시는도다. 그런즉 내가 하나님께 기도하여 너희의 온 영과 혼과 몸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흠 없이 보존해 주시기를 구하노라. 너희를 부르신 분은 신실하시니 그분께서 또한 그것을 행하시리라”(살전 5:23,24).

우리로 하여금 순종하게 하는 힘, 그 동기 부여는 십자가에서 오는 것입니다. 오직 십자가를 통해서만 죄인은 죄의 본거지로부터 떠날 수 있으며 악의 강력한 세력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매번 십자가로 가까이 갈 때마다 우리의 심령은 순결하게 되고 진정으로 죄를 뉘우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아들을 십자가에 못박은 것은 나의 죄였다’고 말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십자가에서 자신의 모든 죄들을 버리게 되며 그리스도의 은혜를 통하여 품성이 변화될 것입니다. 구세주께서는 죄인을 진흙에서 일으키사 성령의 지도 아래 두실 것이며, 성령의 비추어 주심으로 우리가 구주를 바라볼 때 우리는 거기서 소망과 보장과 기쁨을 찾게 될 것입니다. 믿음은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붙잡는 손입니다. 그리고 바로 그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은 우리의 영혼을 연단한 금처럼 순결하게 할 것입니다.

신앙기사 6부_믿음에서 믿음으로 나아가야 할 때

성경은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고후 6:2). 여러분은 이 말씀을 믿으십니까? 지금 은혜 받을 수 있음과 바로 지금 구원받을 수 있음을 믿으십니까? 우리가 이것을 믿는 것은 증거가 눈에 보이고 특별한 느낌을 느꼈기 때문이 아닙니다. 단지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에 믿는 것입니다. 오늘, 바로 지금이 구원의 날입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은혜의 보좌로 나아가 그분의 도우심을 구할 수 있습니다. 바로 지금 우리는 우리의 모든 죄들로부터 깨끗하게 될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수 있으며 지금 성령의 능력을 구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그렇게 나와 있기 때문이며 그 약속은 믿는 자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하지 아니함이로라” (고후 5:7).

우리가 우리의 죄들을 예수님께 고백하고 그것을 버리기로 결심할 때, 그리고 우리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분의 뜻대로 살기로 했을 때에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분께서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셨음을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굴복할 때에 그분께서 우리에게 승리를 주실 것을 믿고 나아가야 합니다. 믿음은 행사하므로 증가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믿음에 대한 보답을 받을 때에 더욱 증가합니다. 믿음으로 그분의 말씀을 의지하여 나아가 그 말씀이 이루어지는 것을 경험하면 할수록 그 말씀에 대한 우리의 믿음은 더욱 견고하여질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는 이 복음이 믿는 모든 자를 구원에 이르게 하시는 하나님의 권능이기 때문이라”(롬 1:16).
“너의 믿음대로 되라”(마 9:29).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서 나느니라”(롬 10:17).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진정한 믿음이란

우리는 우리가 완전하게 됐다고 느껴지거나 어떤 증거가 보일 때까지 기다리지 말아야 합니다. 단순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을 때에 그 말씀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그 말씀을 하신 분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고 그분만을 섬기고자 결심하며, 그분의 말씀을 믿고 나아갈 때에 우리에게 그에 맞는 능력이 주어질 것입니다. 오랜 시간 세상에서 방황하며 죄악적 습관에 물든 사람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능력은 거기에서 그를 구출하여 내실 것이며 그러기를 원하십니다. 그분께서는 죄로 죽었던 영혼에게 생명을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전파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신원의 날을 전파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실 것입니다.
“여러분도 전에는 범죄와 죄로 죽었던 사람들입니다. ... 우리도 전에는 그들 가운데서 모두 육신의 정욕대로 살고 육신과 마음이 바라는 대로 행하여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날 때부터 진노의 자식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비가 넘치는 분이셔서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으로, 범죄로 죽었던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려 주셨습니다”(엡 2:1~6 KSV).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나를 해방하였음이니라”(롬 8:1,2).
그러므로 사단의 속삭이는 의심을 떨쳐버리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믿음으로 나아가십시오! 예수 그리스도만을 바라보십시오. 믿음으로 그분을 바라보고, 믿음으로 그분께서 악을 저항하신 것처럼 저항하며, 그분께서 기도하신 것처럼 기도하십시오. 믿음으로 그분께서 사신 것처럼 말씀으로 사십시오.

능력으로 충만케 됨

능력으로 충만하게 된다는 것은 내 안에 능력이 거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 능력은 무엇을 위한 능력입니까? 다른 이들에게 하나님을 나타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 주어진 능력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그 능력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의 삶에 풍성히 열리는 성령의 열매들, 즉 우리의 성품과 삶 속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을 통해 사람들은 하나님을 배우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바울은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말했습니다. 요한은 “그분을 영접하는 자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주셨”다고 말합니다(요 1:12).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 다시 말해 하나님의 아들이 될 수 있는 권세, 혹은 자격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는 것은 우리를 통해 나타나는 하나님의 성품입니다. 우리의 모습에서 하나님을 닮은 모습이 나타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임을 증거하게 되는 것이지요.
자녀는 부모의 피를 받고 태어나고 부모를 닮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은 하나님과 같은 영을 가졌다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같은 영이 우리 안에도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속성이 우리 안에도 있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 안에 거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바로 우리의 영적 생명이 되는 것입니다. 그 영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많은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 영이 없다는 것은 영적으로 죽었다는 것을 뜻하며 우린 아무 열매도 맺을 수 없게 됩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이는 나 없이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기 때문이라”(요 15:5).
“그분께서 자신의 영광의 풍성함에 따라 자신의 영을 통하여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 속에 거하게 하옵시고, 또 너희가 사랑 안에서 뿌리를 내리고 터를 잡아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그 너비와 길이와 깊이와 높이가 어떠함을 깨닫고 지식을 뛰어 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심으로 충만하게 되기를 구하노라”(엡 3:16~19).
포도나무의 원액이 모든 줄기와 가지와 포도송이를 순환하며 가장 낮은 실뿌리에서 가장 높은 잎사귀까지 전달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도 영혼 속에 타오르고 충만하여져서 우리 영혼과 삶의 모든 부분에 효력을 주며, 육체와 정신의 모든 활동에까지 영향을 주게 됩니다. 우리가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될 때, 성령께서 우리의 모든 것들을 주관하시게 될 때 우리는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 나타난 성령의 열매들은 영혼을 구원하는 가장 큰 능력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거하며 예수님만 바라보고 전진하십시오. 이것이 능력으로 충만케 되는 비결입니다.
“믿음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영원한 생명을 붙들라. 그것을 위하여 너 역시 부르심을 받았고 많은 증인들 앞에서 선한 고백을 하였도다”(딤전 6:12).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떨쳐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또 완성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자”(히 12:1, 2).

 

마치면서

본래 우리는 하나님과 반대 방향으로 가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앞에 보이는 부귀와 쾌락과 성공을 바라보며 진정한 쉼과 평안 그리고 행복을 외면하고 달려왔습니다. 우리의 정욕과 육신이 원하는 길의 결국은 슬픔과 파멸뿐인데도 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와 동행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그분과 같은 방향으로 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여러 방법을 통해 우리가 가는 길이 잘못되었음을 알려주시고 우리를 돌이키도록 이끄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우리는 그분과 협력해야 합니다. 가던 길을 버리고 돌아서야 하고 한 뜻과 한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분께 굴복할 때에 우리에게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 안에 하나님과 함께 하고자 하는 강한 욕망과 소원을 주십니다. 우리 스스로는 걸어갈 수 없기 때문에 우리는 매 순간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그분의 말씀을 순종하며 가야 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넘어뜨리고자 유혹하고 어려움을 주고 의심을 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만 바라보아야 합니다. 늘 우리의 연약함을 느끼고 예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 안에 거한다는 것이 무엇인지 경험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과 동행하기 위해 그분과 협력하고 계십니까? 여러분은 기꺼이 그분의 동역자가 되고자 하십니까? 그렇다면 지금 예수님께로 나오십시오. 그리고 그분께 손을 내밀고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한 걸음씩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그분을 쏙 빼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도록 해주실 것입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들이 너희 안에 거하면 너희가 원하는 바를 구하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에게 이루어지리라.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시나니 이로써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요 15:7,8).

성경 Q&A_“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의 의미

누가복음 13:8의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는 무슨 의미인가요?

A. 비유에서 포도원지기는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어 버리겠다는 선고에 아무 이의도 제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 열매 없는 나무에 대한 포도원 주인의 관심을 알고 있었으며 그도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그 나무가 많은 열매맺는 것보다 더 기쁜 것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이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라고 한 것입니다. 과원지기는 그처럼 희망 없어 보이는 나무지만 가꾸기를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포도원의 환경을 가장 좋게 만들고 온갖 주의를 다 기울일 것이었습니다. 포도원 주인과 포도원지기는 무화과나무에 대하여 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늘 아버지와 아들의 백성 이스라엘에 대한 사랑은 같았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좀 더 기회가 주어질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그들로 세상에 축복이 될 열매 맺는 의의 나무가 되도록 하나님의 사랑이 고안해 낼 수 있는 온갖 방법이 다 동원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비유에서 과원지기의 수고의 결과는 아무 말씀도 않으시고 이야기를 중단하십니다. 이 이야기의 결론은 말씀을 들은 세대에게 맡기셨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우리는 “그렇지 않으면 찍어 버리”라는 경고를 받습니다. 다시는 철회될 수 없는 그 선고가 선고되느냐 않느냐의 여부는 듣는 자에게 달렸습니다. 그 진노의 날은 매우 가까왔습니다. 포도원지기는 자비롭게도 이미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린 재난을 통해 열매 맺지 않는 나무의 멸망을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이 경고는 이 시대의 우리에게도 적용됩니다. 열매 맺지 않은 나무도 비와 햇빛과 과원지기의 돌봄을 똑같이 받습니다. 그 나무는 땅에서 양분을 빨아들이지만 열매 맺지 않는 가지는 땅을 어둡게 하므로 열매 맺을 나무까지도 그 그늘 때문에 번성할 수 없게 됩니다. 이처럼 여러분에게 아낌없이 부어주신 하나님의 선물로 세상에 아무런 축복을 나눠주지 않고 있지는 않습니까? 그렇다면 그대가 없었다면 응당 다른 사람에게 돌아갈 특권을 빼앗고 있는 것입니다.

아마 어떤 분은 자신이 땅만 못쓰게 하는 자임을 희미하게 알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몹시 자비로우셔서 아직 그 사람을 찍어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무관심하게 돌아서지 않으시며 죽게 내버려 두지도 않으십니다. 그분은 우리를 바라보시며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 이는 내가 사람이 아니요 하나님임이라”(호 11:8, 9)고 외치십니다. 긍휼이 많으신 구주께서는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겠나이다”라고 대언하고 계십니다. 이 연장된 은혜의 기간 중에 그칠 줄 모르는 꾸준한 사랑으로 그리스도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어떤 봉사를 하셨는지 생각해 봅시다. 주님은 “아버지여 그들을 용서하옵소서 그들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눅23:34)라고 기도하셨습니다. 그분의 승천 후에 복음은 먼저 예루살렘에 전파되었습니다. 성령을 부어 주셨고 초대 교회가 부활하신 구주의 권능을 나타냈습니다. 거기서 스데반이 “천사의 얼굴과 같”(행6:15)은 얼굴로 주님을 증거하고 잠들었습니다. 하늘이 줄 수 있는 모든 것이 주어졌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내 포도원을 위하여 행한 것 외에 무엇을 더할 것이 있었으랴”(사5:4)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아직도 “나 여호와는 포도원지기가 됨이여 때때로 물을 주며 밤낮으로 간수하여 아무든지 상해하지 못하게 하리로다”(사27:3)하십니다. “이 후에 만일 실과가 열면이어니와 그렇지 않으면…” 성령의 역사에 반응을 나타내지 않으면 점점 완고해져 마침내 성령의 감화를 전혀 감지할 수 없게 됩니다. 바로 그렇게 되었을 때에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느냐”는 선고가 내려질 것입니다.

행복한 가정_사회에서 빛이 되는 가정의 감화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영광을 받으시길 원하십니다. 하나님을 가족 중 첫째로 여기고 자녀에게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임을 가르치는 가정은 질서있고 훈련된 가정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거역하지 않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순종하는 가정을 세상에 소개함으로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가정에서 낯선 자가 되지 않으시고, 그분의 이름은 가족의 한 이름으로 존경과 영광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절대 주권으로 다스리시는 가정, 자녀들이 신앙과 성경과 창조주를 존경하도록 가르침을 받는 가정, 이러한 가정을 천사들은 기뻐합니다. 그런 가정은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 … 리라”고 하신 허락이 성취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모든 생활에서 진정한 원칙의 우월성을 나타내 보이는 이 땅에서 천국의 모형이며, 실물교훈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임재하심으로 가족이 다 행복할 수 있습니다. 그런 가정의 아버지는 하나님으로 더불어 교제함으로 부드럽고 온유한 정신으로 직장생활을 해나갈 것입니다. 그 자녀들은 그들이 배운 교훈을 이웃에게 나누어 주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의 생애의 고상한 원칙이 다른 가정에 소개되고 향상시키는 감화력이 그 이웃 인근에까지 퍼지게 될 것입니다. 다른 가정들은 그런 가정이 도달한 결과를 주목할 것이요 또한 그들의 모본을 따를 것이며 그들도 가정을 사탄의 감화로부터 보호할 것입니다. 이렇게 그리스도께서는 인생의 평범한 물들을 하늘의 포도즙으로 변화시킬 수 있으십니다. 그리할 때 그 가정은 축복된 에덴이 되고 그 가족은 하늘 가족의 아름다운 상징이 될 것입니다.

사랑가득 건강식탁 중국식 청경채 요리

글 김영신

애써 가꾸지 않아도, 그저 있어야 할 자리에 있는 앙증맞고 작은 들꽃에 눈길이 가는 봄입니다. 세상이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니, 세상에 사랑스러운 것들이 이렇게 많을 수 있다니.. 만물이 소생하고 화려한 꽃 잔치가 벌어지는 봄에는 그저 감사하고 신기할 따름입니다. 천연계를 통해 마치 우리를 위로하시듯,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를 가르쳐 주시듯, 그렇게 봄은 우리에게 기쁨을 선사합니다. 이현맘 눈에는 사랑스런 것들이 왜 이리 많을까요... 청경채도 참 사랑스럽게 생겼어요. 모양과 색깔이 어쩜 그리도 잘 조화가 되는지요.. 고소하면서 물이 많고 아삭거려 맛 또한 일품이랍니다. 그래서 이현맘은 봄이 되면 밭에 꼭 심는 채소가 청경채입니다. 이번 호에서는 채식 굴소스 만들어 청경채와 두부를 넣고 중국식으로 요리해 보았네요.

재료
얼려서 녹인 두부 반모(150그램), 청경채 10-12뿌리, 다진 마늘1작, 다진 파2큰, 참기름 1작은술, 채수(채소 우려낸 물) 100mL, 전분물 (전분1: 채수2)
채식 굴소스 : 간장 2큰술, 조청 2큰술, 마늘 1작은술, 표고가루 1작은술, 생강가루 조금

만들기
준비 - 팩에 든 두부를 사서 팩 그대로 냉동실에 얼리고 요리 하기 하루 전날 냉장고에 넣어 자연해동 시켜요.
1.두부를 눌러 물기를 짠 다음 소금을 뿌려 밑간을 해요
2.큼직하게 깍둑썰기 한 다음 팬에 굽거나 오일 스프레이 한 다음 오븐에 구워요.
3.팬에 오일을 두른 다음 다진 파와 마늘을 넣고 볶아요.
4.채식 굴소스 조금과 두부를 넣어 살짝 볶아요.
5.채수를 넣어 끓으면 청경채와 나머지 소스를 넣은 뒤 살짝 익혀요.
6.전분물을 부어 걸쭉하게 만든 다음 불을 끄고 참기름과 깨를 넣어요.

mom’s tip
웬만하면 만들어 먹자..위주의 이현맘이 채식 굴소스를 만들었어요.
요리는 정답이 없으니까 내 맘대로 만들면 되는 거지요..
그리고 청경채 대신 배추로 요리해도 아주 맛있어요.
배추도 청경채처럼 물이 많고 아삭거리니까요~
두부는 생략할 수 있고 때론 두부만 넣고 같은 방법으로 요리하셔도 좋아요.

mom’s note
두부를 얼리게 되면 물 분자끼리 결합해서 구멍이 생기고 두부 조직의 변화가 생기고 생두부에 없었던 쫄깃한 식감이 생겨 오히려 맛과 영양을 즐길 수 있다고 합니다. 즉, 보통 두부에는 단백질이 100g당 7.8g정도 들어있는 반면 두부를 얼리게 되면 50.2g으로 6배 정도 높아진다네요. 얼린 두부가 의외로 식감이나 맛이 더 좋다는 걸 최초로 발견한 사람이 아마 주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두부, 버리기는 아깝고 어찌할 줄을 몰라 냉동실에 넣었다가 꺼내서 요리해 보니 처음 원재료보다 더 맛있는 요리가 되면서 널리 알려지지 않았을까요?

힐링스토리_키위

계절의 여왕인 5월이 되었습니다. 곳곳마다 축제와 나들이로 시끌시끌합니다. 언제부터인지 여행과 먹거리, 외양을 꾸미는 일은 현대인들의 가장 큰 관심사가 되었습니다. 어린 딸조차 거울 앞에 서서 못생긴 외모가 불만이라며 슬퍼하는 걸 보았습니다. 인정 많고 긍정적인 딸이 마냥 사랑스럽기만 한데, 엄마의 마음은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외양보다는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에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요?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는 모습이기를 소망하며 부족한 걸음을 떼어 봅니다.

키위는 영양소 밀도 1위인 영양 덩어리 과일입니다. 영양소 밀도란, 과일에 함유된 단백질, 식이섬유, 비타민, 미네랄 등을 하루 권장량과 비교하여 산출해 보는 것으로 과일의 영양학적 가치를 측정하는 지수입니다. 오렌지, 바나나, 포도에 비하여 영양소 밀도가 월등히 높은 키위는 특히 비타민 C, 식이섬유, 항산화 성분같이 면역력에 중요한 영양소들이 듬뿍 들어 있습니다.

키위의 효능

1. 건강한 대장
작년에 뉴질랜드에서 열린 '제1회 키위 효능 연구 국제 심포지엄'에서 소화기과 교수인 리처드 기어리 교수는 키위가 장운동과 대변 상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는지 연구한 것을 발표했습니다. 기어리 교수는 변비 등 소화기 질환을 가진 환자 59명을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 그룹은 매일 한 개의 그린 키위를 먹도록 하였고, 다른 한 그룹에게는 변비 치료제인 실리움을 복용하도록 하였습니다. 4주 후에 변비가 얼마나 개선되었는지 두 그룹을 비교해 보았는데, 놀랍게도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구나 키위를 섭취한 환자 중 2명은 변비 증상이 완전히 사라졌다고 합니다. 오히려 많은 양의 물과 함께 복용해야 하는 실리움보다 맛있는 키위가 섭취하기 훨씬 편한 것 같습니다. 키위가 변비에 도움이 되는 것은 풍부한 식이섬유 덕분입니다. 키위 한 개(100g)에는 3g 정도의 식이섬유가 들어있는데, 이는 사과의 1.5배에 달하는 양이라고 합니다. 특히 그린 키위에 함유된 식이섬유는 대부분이 물에 녹는 수용성 식이섬유로 다량의 수분을 저장해 변을 부드럽게 하고, 장운동을 활발하게 해 배변 횟수를 늘리는 데 도움이 됩니다. 기어리 교수는 키위로 변비나 소화불량 개선의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하루 2개씩 2주 이상 섭취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습니다.

2. 항산화 항암효과
골드키위는 암을 유발하는 DNA 손상을 막아주며, 항산화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과 비타민 C 등의 성분이 풍부하여 암 예방에 도움이 됩니다. 특히 그린 키위는 비타민이 풍부한 과일 중에서도 으뜸인데 비타민 C는 오렌지의 2배, 비타민 E는 사과의 6배 정도라고 합니다. 키위 한 개에 비타민 C 100㎎, 식이섬유 3.4g 등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는 보건 당국이 권장하는 비타민 C의 하루 섭취량과 같습니다.

* 강력한 항산화제인 비타민 C
신체를 활성산소로부터 보호하여 세포의 산화를 방지하므로 암과 각종 만성 질환을 예방, 치료하고 노화도 억제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비타민 C는 수용성이고 열, 빛, 물, 산소 등에 쉽게 파괴되는 민감한 물질이므로 가능한 한 식품을 공기와 접촉되지 않게 하여 시원한 곳에 보관하며, 식품을 잘게 썰지 않고 짧은 시간에 조리해 먹는 것이 좋습니다.

3. 천연 소화제
키위는 소화불량 개선에도 효과적입니다. 키위에는 천연 단백질 분해 효소인 액티니딘이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습니다. 액티니딘은 단백질의 분해와 흡수를 돕는 물질로, 위에서 음식을 빠르게 소화시켜 소화가 원활하게 이뤄질 수 있도록 돕습니다.

4. 고혈압 개선
키위에는 다량의 칼륨이 함유되어 있어서 나트륨을 배출하고 중성지방을 분해하는 효과를 하므로 혈압을 정상범위로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펙틴이라는 성분은 콜레스테롤을 낮추어 심장병이나 동맥경화 예방에 효과적입니다.

5. 혈당 감소
당뇨병 환자는 적절한 혈당 수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늘 식단에 주의해야 합니다. 과일도 예외는 아니어서 단 과일 섭취를 삼가야 한다는 게 일반적인 이야기였는데, `제1회 키위 효능 연구 국제심포지엄`에서 키위가 혈당이 올라가는 것을 막을 수 있다는 반가운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습니다. 뉴질랜드 국립식품 과학연구소 존 먼로 박사는 “키위가 혈당을 천천히, 조금씩 상승시켜 주므로 혈당 조절에 도움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키위의 무엇이 혈당 조절에 도움을 주는 것일까요? 그것은 바로 키위에 함유된 풍부한 식이섬유 때문입니다. 키위에 들어있는 식이섬유는 대부분 물에 녹는 수용성으로 다른 과일에 함유된 수용성 식이섬유보다 수분을 머금는 보수력이 뛰어납니다. 우리가 키위를 먹으면 장내에서 수분을 흡수하여 4배 가까이 팽창한다고 합니다. 팽창한 식이섬유가 장내 음식물을 감싸 음식물이 천천히 소화 흡수되도록 하고 이로 인해 혈당이 천천히 올라가게 합니다. 키위로 혈당을 조절하기 위해서는 식사 30분 전에 갈지 말고 껍질만 까서 그대로 섭취하는 것이 좋으며, 밥 양은 평소의 1/5 정도로 먹으면 된다고 합니다.

6. 피부탄력
키위에 함유되어 있는 풍부한 비타민 C는 항산화 효과뿐 아니라 자외선으로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역할도 합니다. 손상된 피부 재생을 촉진하고 멜라닌 색소의 증가를 억제하여 기미나 주근깨를 완화시켜 주므로 자외선 차단제를 꾸준히 바르는 것 못지않게 비타민 C를 꾸준히 섭취해 주는 것이 피부 건강에 매우 중요합니다.

7. 빈혈 예방
키위에 함유된 엽산은 임산부와 빈혈이 있는 분들에게 좋으며 특히 일반 키위보다 골드키위에 많다고 합니다.

건강보감_악한 습관을 따르는 육체를 지배하는 은혜로 성화된 이성

사람이 하나님의 성전, 곧 그분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한 거처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알면, 육체적 능력을 보존하고 발달시키기 위하여 자극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창조주께서는 인간의 신체 구조를, 놀랍고 훌륭하게 만드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것을 연구하고, 그 필요를 이해하고, 그것을 해치거나 더럽히는 일을 방지하는 일에 우리의 몫을 다하도록 명령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보다 건강한 생활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배양된 나쁜 생활 습관의 힘을 깨뜨릴 용기와 결심이 부족하고 필요한 노력과 투쟁과 희생을 하지 않으므로 그들의 생애가 종래에는 파멸될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일생 동안 망가진 체질, 연약한 의지력, 훼손된 지성, 허약한 정신력 등을 통하여 그들이 뿌린 악의 수확을 거두고 있습니다. 만일 그 악이 인생의 초기에 다루어졌다면 얼마나 많은 것들이 성취되었을까요? 대부분의 사람들이 타락하여 현세와 내세의 생명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악한 습관을 따르는 육체는 반드시 지배를 받아야 하고 보다 높은 능력이 그것을 지배해야 합니다. 습관은 의지에 지배되어야 하고, 의지는 하나님의 지배 아래 놓여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성화된 이성이 우리의 생애에서 지배력을 행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요구는 양심에 깊이 새겨져야 하며 우리는 자제의 의무와 순결의 필요와 각종 타락한 식욕과 더러운 습관에서의 해방에 대하여 깨우침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정신과 육체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의 선물이며 그분을 섬기기 위하여 최선의 상태로 보존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