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_막내의 고백

글 이준희

요즘 우리 집 아이들은 용돈 기입장을 작성하고 있습니다. 작년까지만 해도 생각지 못했던 용돈 지급 문제가 우리 집 큰 아이를 통해서 대두하게 되었는데요. 자기를 제외한 반 아이들 전체가 용돈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최근에서야 알게 되었던 우리 큰 아이가 친구들이라면 누구나 누리는 그것을 자기는 누려보지 못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섭섭했던지 비교적 포용적인 아내에게 이 문제를 가지고서 하소연을 해왔고 동정심 많은 아내는 아이의 그런 사정을 제게 알려왔던 것입니다.
솔직히 사랑스러운 아이들에게 얼마 되지 않는 용돈을 쥐여주는 것이 무슨 대수로운 문제가 되겠습니까? 만은~, 그런데 왠지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그냥 주는 것이 아이들에게 유익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해보겠노라고 공표하고 시간을 벌어서 고민하던 중, 전에 읽었던 한 책자의 글귀가 때마침 떠올랐던 것입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녀들은 읽고 쓰고 숫자를 이해하고 자신의 금전 출납부를 기입하도록 교육을 받아야 한다."
눈이 번쩍 뜨인 나는 그 길로 거실로 나아가 방에서 놀고 있는 아이들을 불러 용돈을 정기적으로 주는 대신 용돈 기입장을 쓰도록 권유를 했습니다. 그런데 우리 아이들이 아빠를 닮아서 그런지 참 대책이 없더군요. 용돈을 받는다는 희소식을 듣고선 너무 기뻤던 나머지 부과될 책임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흔쾌히 아빠의 계책에 말려들었던 것입니다.

큰 아이는 이천 원, 작은 아이는 천 원, 한 주 한 주 용돈 받는 재미, 돈 모으는 재미가 쏠쏠한 반면 용돈기입장 관리가 좀처럼 쉽지는 않은가 봅니다. 산수를 잘하는 큰 아이는 검사할 때가 되면 자신 있게 기입장을 내미는데 올해 이학년이 된 우리 막내는 검사 때마다 퇴짜를 맞고 여러 번 고치기를 반복하니 얼굴에 피로와 곤욕스러움이 역력하더군요. 초반에는 '아빠 딸들, 용돈 받으러 오세요~' 하고 말하면 주인 맞으러 나온 강아지처럼 덩실덩실 춤을 추며 달려오더니 이제는 '용돈 받으러 오세요~'라고 말하면 우리 막내는 패잔병처럼 축 처진 어깨를 하고서는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벌써 용돈 받는 날이에요' 하고 볼멘소리를 합니다.
한 편으로는 안쓰럽기도 하지만 뭐 어쩝니까? 기왕에 시작된 것 굳히기에 들어가야 하겠지요? 사실 제가 느끼기에 그 훈련은 큰 아이보다도 막내 아이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에 덜렁대고 실수하는 일이 다반사이고 물건을 잃어버리는 일도 또 쓰던 물건들을 여기저기 흩어놓고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 일도 다반사이기 때문에 한 번쯤은 이런 훈련이 필요하겠다 싶었던 찰나였는데 뭐 올 것이 온 것이지요. 그러나 책임만 부과하고 나 몰라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런 일엔 당연히 서포터가 따라붙어야겠지요? 아이가 무기력한 모습으로 턱을 괴고 앉아 손가락셈을 하고 있을 때면 언제나 다가가서 재미있는 산수 교실 선생님이 되어주었습니다. 그럴 때면 아이의 그늘진 얼굴은 밝고 화사한 꽃잎처럼 변해있었습니다.

그렇게 몇 주를 평탄하게 보낸 듯했습니다. 적어도 그날의 사건이 벌어지기 전까지 막내 아이에게는 그랬을 겁니다. 평소와 같이 일요일 아침이 되어서 아이들에게 각각의 용돈을 나누어주고 용돈 기입장을 검수하는 시간이 찾아왔습니다. 큰 아이의 경우 예상대로 잘 정리해왔고 깜빡 덜렁쟁이 막내의 경우 원래 있어야 할 금액에서 400원이 모자랐습니다. 저는 400원을 찾아올 것을 요구했고 발등에 불이 떨어진 아이는 부랴 부랴 이방, 저방을 오고 갑니다. 기입장을 작성해나간 이래로 이런 일이 몇 번 있어왔기 때문에 한 번은 따끔하게 혼날 수 있다고 경고를 했었던 터라 그런지 아이는 불안해 보였습니다.
몇 분이 채 안 되어 방에서 나오더니 100원을 찾았다고 하더군요. 가끔씩 잃어버린 돈을 찾는 경우가 있었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고 아이와 함께 그 일을 기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조금 후에 다시 오더니 이번에는 200원을 더 찾았다고 했습니다. 뭔가 수상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잃어버렸어도 자기 방에서 잃어버렸을 텐데 엄마가 있는 방에서 나올 때마다 동전을 찾았다고 하니 말입니다. 이후로도 한참을 왔다 갔다 하면서 제 눈치를 살피고 무언가를 골똘히 생각하기를 번갈아 하다가 이윽고 엄마가 있던 방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잠시 후 울먹울먹하면서 엄마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러지 말고 그냥 아빠에게 솔직하게 말해, 괜찮아~ 아빠가 용서해주실 거야~" 대화가 끝났는지 아이는 빼꼼히 방문을 열더니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닭똥 같은 눈물이 맺힌 얼굴로 용기를 내어서 말을 꺼냅니다. "아빠, 동전.. 엄마가 준 거예요... 동전 못 찾았는데 혼날까 봐 그랬어요... 잘못했어요..."
아빠가 무섭긴 무서운가 봅니다. 죄책감을 감당할 수 없을 거라는 사실도 모르는 채 뛰어들어 대담하게 저질러본 사기 행각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중간에서 괴로워하다 결국 자비를 구하기로 결정하고 다가왔던 것입니다. 당황스러움도 잠시... 아이를 빤히 쳐다보며 어떻게 대해주어야 할까 고민하다가 저는 아이의 두 손을 잡고 소파에 앉히고 진정할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을 준 후 차근차근 타이르기 시작했습니다.
"은혜야, 마음이 힘들었지요? 그래요, 아빠도 알아요. 용기를 내어서 솔직하게 말해주어서 고마워요. 하지만 그런 행동은 우리 은혜에게 어울리지 않아요, 알지요? 아빠에게 혼나는 한이 있더라고 피하기 위해서 속이려고 해서는 안 됩니다. 우리 은혜가 한 말과 행동들이 모두 하늘에 기록될 텐데 그런 것들 때문에 혹시나 나중에 우리 은혜를 만날 수 없게 된다면 아빠 엄마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 은혜 없으면 하나도 행복하지 않을 텐데... 이제는 그러지 말아요, 알겠지요? 이리 오세요. 우리 딸, 아빠가 은혜를 위해서 하나님께 기도해주겠습니다."

아이의 두 손을 마주 잡고 하나님께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하는 기도를 드린 후, 매보다 더 아픈 마음에 회초리를 경험한 사랑스러운 아이를 꼭 껴안아 주었습니다. 아이는 눈물을 흘리며 어느 때보다도 더 힘을 주어 깊숙하게 아빠의 품을 파고들었습니다.
그냥 웃고 넘겨 버릴만한 작은 일이었을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제게는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주님 오시는 날은 더딘 듯하고 요사이 부쩍이나 실수도 많고 죄에 둔감해지는 것 같아 제 자신에 대하여 무척이나 초조하기만 합니다. 교훈할 목적으로 아이에게 우려를 표명했지만 정작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보시기에 보지 못할까 염려되는 것이 제 자신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가져봅니다. 아빠의 자비에 힘입고자 용기를 내었던 순전한 우리 막내 아이의 태도가 오늘따라 왠지 부럽기만 하네요. 아무래도 오늘만큼은 우리 아이와 같은 순전한 마음의 태도를 달라고 무릎을 굽혀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 부탁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