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3부_내 자신의 참 모습이 보일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동역자로 삼으실 때에 사용하시는 것이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께서는 다양한 역사로 우리 마음속에 임하십니다. 그 중에서도 우리 자신의 참모습을 볼 수 있도록 눈을 열어주시는 것이 귀중한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죗된 모습을 보게 되고, 우리의 죄를 깨닫고 용서의 필요를 느끼게 되는 것들은 모두 성령의 감화에 의한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잘못을 했을 때에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가슴이 쿵쿵 하고 뛰는 것도 모두 성령께서 우리에게 죄를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 역사하시는 것입니다. 작은 거짓말을 했을 때 그것으로 인해 죄책감을 느끼고 들키게 될까 봐 스트레스를 받고 기분이 언짢은 것도 사실 성령께서 죄를 깨닫고 회개케 하시는 역사입니다.

성령의 꾸짖으심을 느낄 때

“그분께서 오셔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꾸짖으시리라”(요 16:8).
하나님께서는 종종 우리를 깨우쳐주시기 위해 그분의 메시지를 보내십니다. 그 메시지는 때로는 목사님을 통해 전달될 수도 있고, 이웃이나 가족을 통해 전달될 수도 있으며, 가끔 낭패와 좌절을 통해 전달될 수도 있습니다. 그분의 메시지는 아첨이나 평안의 기별이 아닙니다. 듣기 좋고 양심을 잠재우며 죄인을 위로하는 기별이 아닙니다. 그분은 범죄자의 양심에 무거운 짐을 두시고 그 마음과 영을 슬픔과 죄책감으로 가득 차게 하시며 회오의 화살로 찌르십니다. 때로는 죄인에게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과 죄의 결과를 제시하므로 하나님의 필요를 더욱 느끼게 하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는 외침이 일어나게 하십니다.
성령의 꾸짖음을 느낄 때에 우리는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지요? 우리가 하나님의 조용한 이끄심에 저항하지 않고 따라갈 때에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보게 해주십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바라볼 때에 우리는 십자가의 사랑과 비교되는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아무도 자기의 허물을 스스로 깨달을 수 없습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렘 17:9). 마음에 없는 겸손을 입술로 나타낼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 심령이 가난하다고 말하는 중에도 마음속에는 자기의 의를 자랑하고 겸손과 덕이 풍부하다는 자만심으로 가득 차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에 대한 진정한 상태를 알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리스도를 쳐다보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의 의를 그렇게 높이는 이유는 그리스도를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분의 순결하심과 탁월하심을 깊이 생각할 때에 우리 자신의 연약함과 가난함과 결점들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다른 모든 죄인들과 마찬가지로 스스로 의롭다는 두루마기를 입고 있으며 아무 소망도 없이 잃어버린 바 된 자들임을 보게 될 것입니다. 또한 우리가 만일 구원을 얻게 된다면 그것은 우리 자신의 선행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무한하신 은혜로 말미암아 되는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 있는 그대로

하나님의 의의 옷을 입기 위해 우리는 먼저 우리의 더러운 옷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그것은 나의 죄를 인정하고 나의 필요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아름다운 의의 옷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께서 말씀하시되 타락한 이스라엘아, 너는 돌아오라. 나는 긍휼이 많은 자니 그런즉 내 분노가 너희 위에 임하지 아니하게 하리라. 주가 말하노라. 나는 분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느니라. 너는 오직 네 죄를 인정할지니 이는 네가 주 네 하나님께 죄를 짓고”(렘 3:12, 13).
위의 말씀은 “너는 오직 네 죄를 인정”하라고 하십니다. 우리가 우리 죄를 인정하고 그분께 돌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용서하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참 모습을 보게 해주시고 우리의 죄를 꾸짖으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께 피하도록 하며, 그분을 통하여 죄의 노예에서 해방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로 겸손하게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진리를 순종하고 실천하므로 우리 자신의 삶을 정결하고 순결하게 할 기회를 제공하고 계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은 죄를 인정하기를 꺼립니다. 그들은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대신에 자꾸 다른 사람을 탓합니다. 부모는 자기가 화내는 이유를 자녀에게 돌리고 자녀는 부모에게 돌립니다. 자기의 죄를 인정하고 먼저 용서를 구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하면 그분께서 우리 마음에 변화를 주실 것입니다.
혹 죄를 인정하고 싶지 않으십니까? 그럴 마음이 전혀 없고 그럴 필요가 없다고 느끼십니까? 그렇다고 할지라도 있는 모습 그대로 예수님께 나아가십시오. 예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예수님께 나아가 분하고 딱딱한 마음이 부드러워질 때까지 그분의 사랑을 깊이 생각해보십시오. 죄로부터 돌아서게 하고 죄를 싫어하게 하는 힘은 우리 자신에게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진심으로 죄송할 때

“이스라엘에게 회개와 죄들의 용서를 주시려고 자신의 오른손으로 그분을 높이사 통치자와 구원자가 되게 하셨느니라” (행 5:31).
인간에게는 자기를 방어하기를 좋아하고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는, 즉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인간 스스로는 선을 좋아할 수도, 죄를 싫어할 수도 없습니다. 나의 죄를 인정하고 나의 죄 때문에 하나님을 아프시게 한 것이 진정으로 슬프고 하나님께 죄송스럽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역사이며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우리가 잘 알다시피 회개는 죄를 슬퍼하고 그 죄에서 떠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죄가 얼마나 악한 것인지를 깨닫지 못하면 죄를 버리지 않게 될 것이며, 또한 진정으로 죄에서 떠나지 않으면 우리 생애에도 진정한 변화가 없게 될 것입니다. 진정한 회개는 자기 스스로가 죄를 담당하고 싶어하며 거짓이나 위선없이 죄를 자백하게 이끌어 줄 것입니다.
여기 하나님의 약속이 있습니다.
“내 이름으로 일컫는 내 백성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떠나 자기를 낮추고 기도하여 내 얼굴을 구하면 내가 하늘에서 듣고 그들의 죄를 용서하며 그 땅을 고치리라”(대하 7:14).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하지 못하려니와 누구든지 죄들을 시인하고 버리는 자는 긍휼을 얻으리라”(잠언 28:13).

예수님께서는 믿음으로 그분께 나오는 모든 자들을 끝까지 구원하실 수 있으십니다. 만일 우리가 그분께 우리 자신을 맡긴다면 그분께서는 우리를 모든 죄의 더러움에서부터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우리의 죄를 놓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의가 우리가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은 죄를 덮어주는 가면이나 속임수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예수님께서는 결코 죄를 품고 있는 사람을 의롭다고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분의 의는 죄를 가려주기 위한 도구가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은 죄를 밝히 드러내어 버리게 하시고 그 죄를 진정으로 슬퍼하고 버리는 자를 의롭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 진정으로 죄송함을 느낄 때 우리의 죄를 인정하고 모든 죄를 드리십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