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아야 사랑해_콩순이보다 예수님!

 

엄마는 스마트폰으로 참 많은 일을 한다. 쇼핑에서부터 결재, 은행 일까지. 지인들과의 대부분 연락은 카카오톡으로 한다. 그뿐이겠는가. 정보를 얻기 위한 모든 검색, 밴드 활동, 카페도 스마트폰을 열어 살펴본다. 설교도 유튜브를 통해 시청하거나 팟캐스트를 이용한다. 스마트폰이 없이는 생활이 어려울 만큼 이제는 필요악이 되어버렸다. 응애응애 아기 때부터 귀엽고 사랑스런 모습을 담고 싶을 때 아이 얼굴에 들이미는 것도 스마트폰이었다. 카메라 기능이 워낙 좋고, 소지하고 있다 바로 사용하기 용이해 DSLR은(한글 용어로) 구석에 모셔둔 지 이미 오래다. 이유야 어찌 됐든, 아이 앞에서 스마트폰을 사용한 엄마의 죄는 크다. 엄마 손에 스마트폰이 놓여있는 한 아이가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지 않은가! 엄마가 아프고 힘들 때 한 번씩 가지고 노는 것을 허용했고, 혼자서 심심해하는 것이 안쓰러워 동영상 한두 편씩 보여줬는데, 시나브로 아이가 스마트폰을 만지는 손놀림이 예사롭지 않다. 엄마가 모르는 기능을 스스로 터득하기도 하고, 아직 한글을 모르지만, 여기저기 메시지도 보낸다.  말을 잘 듣다가도 가끔 떼쓰고 심술부리는 모습을 보면, 이래서는 안 되겠다 싶은 마음에 스마트폰 사용금지 명령을 내렸다가도 그 끈이 느슨해지면서 여러 가지 핑계로 엄마는 또 풀어주기 일쑤였다. 일관성 없는 엄마의 태도가 아이를 더 혼란스럽게 했다는 것을 시인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를 대하며 숨겨져 있던 엄마의 연약성과 부족함이 얼마나 적나라하게 드러나는지... 기도가 나오지 않을 수 없는 나날이다.

초아가 네 살, 이맘때의 일이다. 아침부터 마이크를 들고 신나게 노래를 부르며 집안을 누비다 싫증이 났는지, 부엌에서 일하는 엄마에게 스마트폰을 찾아 들고 왔다.
"엄마, 콩순이 노래 보고 싶어요."
잘 놀다 웬 콩순이냐. "안 돼, 책에서 나오는 노래 듣고 불러."
"콩순이 노래 보고 싶단 말이에요."
"가서 기도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엄마가 좋아하는 것 하게 해 주세요.’하고 기도해봐."
조금 단호한 어투였다. 엄마는 부엌일을 마저 하고, 아이는 엄마 스마트폰을 손에 든 채로 거실로 사라졌다. 아이 손에서 핸드폰을 바로 빼앗을 수도 있었지만, 엄마는 아이를 시험해 보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설거지를 끝내고 화장실을 가려는데, 소파에 앉은 아이 입에서 기도 소리가 흘러나오는 것을 들었다.
“......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아이는 엄마가 말한 대로 정말 기도를 하고 있었다. 기도 내용이 궁금한 엄마가 아이를 바라보며 물었다.
"기도했어? 뭐라고 기도했어?"
"콩순이 안 보게 해달라고 기도했어요."
"그랬어? 기도하고 나니까 마음이 어때?"
"콩순이 말고, 아가(인형)랑 놀 거예요.“
“기특하네~ 우리 딸. 엄마 감동했어.”

스마트폰 사용 또한 엄마에게든 아이에게든 충분히 유혹거리가 될 수 있고, 세상에 살면서 이러한 유혹들과 부딪혔을 때 올바른 선택을 하고, 싸워 이길 수 있는 힘을 길러주는 것이 엄마가 도와야 할 일 중 하나일 것이다. 스마트폰을 아주 사용하지 않으며 살기는 현실에서 어려우니 말이다. 삶이 늘 절망적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투쟁에서 나름대로 승리하는 아이의 모습을 통해 엄마는 희망을 보고, 작은 기쁨을 얻기도 한다.  다섯 살 초아는 조금 더 세상에서 적응하며 사는 법을 터득했고,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지난해보다 강해진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투쟁할 거리도 많아졌고, 그 강도도 세어졌다. 하지만 아직 여린 순 같고, 회기가 빠른 이 아이에게 콩순이보다 예수님을 더욱 깊이 새겨주려 하늘의 지혜를 구하고, 애써야겠다. 아이가 넘어지더라도 다시 일어서고, 나아갈 수 있도록 돕는 신실한 엄마가 되자.  

오늘 아이가 없는 자리에서 식사 중에 아이의 아빠가 ‘뇌와 멀티미디어’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그 영향력은 훨씬 심각하며, 마약중독보다 더한 중독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과 유일하게 교통하는 기능의 전두엽을 파괴하고, 마비시킨다는 것은 참으로 두려운 일이라는 것. 물론 이러한 내용을 엄마가 모르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몸이 안 좋다, 집안일이 바쁘다, 돌아볼 것이 많다 등등 엄마는 늘 핑계거리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초아가 콩순이나 뽀로로를 알고 난 후, 영상에서 보았던 대사나 행동을 모방하는 것을 보면서 엄마는 자괴감이 들었다. 스펀지 같은 아이가 신나고 재미난 것을 보고 따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며, 그것이 죄는 아닐진대, 엄마의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는 생각이 엄마를 작아지게 만들었다.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을 그 이마에 새겨주는 데 게을리했던 엄마의 잘못을, 살아계신 하나님의 품성을 생활 속에서 온전히 가르치지 못했던 엄마의 과오를, 있는 그대로 주님께 가지고 나가야겠다. 우리 주님은, 엄마의 부족함과 무능함을 탓하지 않으시고, 하늘의 선물을 한없이 부어주실 것이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