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Q&A_예수께서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이유

 

Q. 예수님은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시험을 받으셨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탄에 이끌려 가신 것이 아니었군요?

 

A. “예수께서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요단강에서 돌아오사 성령에게 이끌리시어 광야로 가”(눅4:1)셨습니다. “성령이 곧 예수를 광야로 몰아내신지라 광야에서 사십일을 계셔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으시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니”(막1:12), “이 모든 날에 아무것도 잡수시지 아니하시니라”(눅4:2). 예수님께서 시험받으시기 위하여 광야로 이끌리셨을 때 그분은 하나님의 성령에게 이끌리셨습니다.

아담이 식욕의 힘에 굴복했을 때 전 인류는 잃어버림을 당했습니다. 신성과 인성이 연합되어 있던 구주께서 아담의 자리에 서셨습니다. 그리고 거의 6주일 동안의 끔찍한 금식을 견디셨습니다. 광야에서 금식 중에 주님은 대적자에게 저항할 만한 준비를 위해 아버지께 계속 기도드리므로 배고픔을 거의 못 느꼈습니다. 하나님의 밀실에 들어가 열렬한 기도로 원수를 대적할 힘을 구하셨으며, 인류를 위해 자신이 맡은 모든 일을 수행할만한 은혜를 주실 것이라는 보증을 간구했습니다. 마주할 전투에 대한 생각 때문에 다른 것은 다 잊어버렸습니다. 마치 오늘날 시험 당하는 사람들이 하나님께 나아가 도움을 청하면 생명의 떡으로 먹여 주시듯이, 주님의 영혼도 생명의 떡으로 배불림을 받았습니다. 그분이 사탄의 유혹으로부터 사람들을 구원할 능력을 받고 있을 때 그분은 사람들에게 전할 그 진리의 말씀을 먹고 사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유혹을 받고 타락한 사람들을 지배하는 사탄의 권세가 깨어지는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병든 자들을 치료하고, 희망 잃은 자들을 위로하고, 낙담하는 자들을 격려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위해 계획해 놓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는 동안에 그분은 40일의 금식이 끝날 때까지 조금도 배고픈 줄 몰랐습니다.
이제 이상은 사라지고 주님의 인성은 음식을 그리워하는 간절한 마음과 함께 식물을 필요로 했습니다. 이제는 사탄이 공격할 기회가 왔습니다. 사탄은 빛의 천사 중 하나처럼 나타났습니다.
그리스도는 가장 적절한 때에 아버지께서 음식물을 주시리라는 것을 믿음으로 알았습니다. 혹독한 시련 중에서도 자신에게 할당된 시련의 일부를 조급하게 줄여보려고 시도하지 않았습니다. 궁지로 몰렸을 때 타락한 인간은 자신을 위해 기적을 행할 힘도, 고통이나 통증을 없앨 힘도, 원수를 누르고 이길 힘도 가질 수 없습니다. 인류를 시험해서 스스로를 입증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아버지의 사랑과 능력을 믿는 그들의 믿음과 확신을 시험해 보기 위해 그들을 자주 시험의 자리로 이끌어 품성을 계발할 기회를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생애는 완전한 하나의 모형으로, 언제나 교훈과 모본으로 하나님이 그분의 의지이시며 믿음과 신뢰가 그분 안에 있어야 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사탄은 하나님의 율법은 불공평하고 순종할 수 없다며 아담의 범죄를 증거로 제시해 왔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과 같은 인성으로 아담의 실패를 만회하셔야 했습니다. 그러나 유혹자의 공격을 받았을 때 아담은 완전한 장년으로 몸과 마음에 충만한 활력과 에덴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었으며 날마다 하늘의 천사들과 교통하고 있었기에 아무런 죄의 영향을 받지 않았던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사탄과 상대하려고 광야에 가셨을 때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4천 년간 인류는 체력과 정신적, 도덕적 가치가 퇴보되어 왔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퇴보된 인류의 연약함을 취하심으로써만 인류를 쇠퇴된 깊은 구렁에서 구원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세상에 와서 사기꾼 사탄의 힘을 벗어난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 악의 모든 연합 세력은 사람의 아들로 오신 분이 걷는 인생길에 배치되어 그분에게 싸움을 걸어서 할 수 있는 대로 그분을 이기려고 하였습니다.
주님은 광야로 들어가 사탄을 만났을 때 그는 사람이 유혹을 잘 받는 바로 그 점에다 시험을 걸어왔습니다. 우리의 크신 대리자시요, 보증인이신 그분은 아담이 걸려 넘어진 바로 그 지점을 통과하셨습니다. 아담이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했던 것처럼 예수님도 걸려 넘어지셨을까요? 주님은 사탄의 공격에 번번이 “기록되었으되”라는 말씀으로 되받았고, 사탄은 정복당한 원수로서 그 전쟁의 들판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아담의 치욕스러운 실패를 설욕하고 완전한 순종의 품성을 완성하시고 인간 가족들에게 한 모본을 남기셨습니다. 이것은 우리로 그분의 모본을 그대로 모방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만약 주님이 하나님의 율법과 관계있는 곳에 단 한 점이라도 실패가 있었다면 온전한 제물이 못되었을 것입니다. 아담이 실패한 것은 단 한 점뿐이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인간을 돕기 위해 타락한 인간의 약점을 몸에 그대로 지닌 채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아 맞서야만 하셨습니다(히4:15). 그분은 인성을 취하시고, 인류의 연약성과 퇴화된 모습을 그대로 갖고 계셨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들이 말하듯이 주님이 유혹에 굴복하는 것이 불가능했다면 그분은 우리를 도우실 수도 없습니다. 항복할 가능성이 없다면 유혹은 유혹이 아닙니다. 만약 주님이 실패할 가능성이 없으셨다면 인간이 시험 당하는 것같이 모든 일에 한결같이 시험을 받으실 수도 없었습니다. 그분도 아담과 모든 사람처럼 시험대 위에 올려진 자유 행위자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인간으로서 인간을 위해 싸우러 오셨다는 것은 진실로 엄숙한 사실입니다. 그분이 당한 유혹과 승리가 말해주는 것은 인간은 그 모본을 그대로 본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왕은 주님께서 오랜 금식으로 배가 몹시 고프실 때 찾아와서는 돌로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제안했습니다. 인간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는 그리스도가 배고픔과 가난과 기타 인간의 모든 경험적 측면을 다 알아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는 힘으로 유혹을 저항했습니다. 그분은 믿음의 손으로 하나님의 보좌를 꼭 붙잡았습니다. 하나님을 믿음으로 그와 꼭 같은 도움을 얻지 못할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유혹과 시련 중에 인간이 무익한 자신의 능력을 결코 의지하지 않도록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그분의 능력의 근원을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모본이 되려고 오셨고 우리도 하나님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러 오셨습니다. 인간은 정욕으로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함으로써 예수님처럼 신성의 본성(the divine nature)에 참여하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벧후1:4). 사탄은 구주의 발꿈치에 상처를 입혔지만 구주의 영혼에 발붙일 곳을 찾지 못해 그분의 머리는 손도 대지 못했습니다. 그리스도는 모본으로써 인간도 완전하게 설 수 있음을 분명하게 하셨습니다. 인간은 악을 저항할 능력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것은 땅도 죽음도 지옥도 정복할 수 없는 능력이며, 그리스도께서 이기신 것같이 이길 수 있는 곳에 그들을 처하게 하실 능력입니다. 신성과 인성이 그 사람들 속에서 연합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성령의 충만한 사람의 모본이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