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5부_승리의 비결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우리가 알거니와 우리 옛 사람이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것은 죄의 몸이 멸하여 다시는 우리가 죄에게 종노릇 하지 아니하려 함이니, 이는 죽은 자가 죄에서 벗어나 의롭다 하심을 얻었음이니라.”(롬 6:5~7).

우리가 어떻게 하면 죄를 승리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들을 함께 생각해 봅시다.

 

1) 죽으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그분의 죽음과 부활 안에서 그리스도와 연합하였습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만이 사람을 죄의 속박에서 해방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종이 죽으면 주인의 통제를 받지 않게 된다는 명확한 진리를 제시합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인도 죄에 대하여 죽을 때에 죄의 통제에서 해방된다는 것을 설명합니다. 그는 우리의 옛 자아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다고 말합니다. “옛 사람”이 무엇입니까? 옛 사람은 우리의 옛 성격이며, 죄의 경향에 종속되고 죄의 노예가 되었던 우리의 옛 삶입니다. 그러나 이제 옛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 그리스도와 단합되어 그분이 돌아가셨을 때 우리는 죽었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와 연합한 우리 속에 죄는 통치자로서의 힘을 잃고 무력해졌습니다. 이것은 죄가 멸절되거나 그것이 끝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 대한 그 권력은 깨졌습니다. 우리는 더 이상 불의의 도구로 우리 몸을 사용할 필요가 없습니다.
여기서 “죄의 몸이 멸하여”에서 “멸하다”는 헬라어 단어는 “katargeo” 입니다. 이 단어는 "효과가 없거나 힘이 없어지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의 구속사업으로 말미암아 사탄과 죄의 권세는 무력화되었습니다. 그렇다고 사탄이나 죄가 영원히 제거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이 의미는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의 생활에서의 사탄의 권세와 죄의 권세가 붕괴되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죄가 우리 몸을 지배하고, 우리를 지시하는 힘은 깨졌습니다. 그것은 아직 소멸되지 않았지만 우리 속에서 다스리고 군림하는 권위는 사라졌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절은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말합니다. 이 구절의 “육체”는 바로 “옛 사람”과 같은 동의어입니다. 승리하기 원하는 사람은 죽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으십시오! 우리는 그와 함께 죽고 이제 새로운 삶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2) 부활하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한 사람은 새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죄는 더 이상 우리의 주인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죄의 권세와 지배에서 자유롭게 되었습니다. 옛 자아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으므로 죽었고, 이제 성령으로 말미암아 거듭난 새 자아가 살아 있습니다. 즉 죄와의 관계에서는 죽고, 동시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살아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인간의 의식을 옛 자아와 새 자아로 따로 나누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의식적으로 옛 자아를 계속해서 죽이고, 새 자아를 살리는 일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더 이상 죄를 지을 의무가 없습니다. 죽은 자는 죄에서 해방되었습니다. 해방되었다는 헬라어 단어는 보통 "의롭다 함"으로 번역되는 단어입니다. 문자적으로 "죽은 사람은 죄에서 의롭게 됨"이라고 읽습니다. 이제 그리스도가 죄에 대하여 단번에 죽은 것처럼 우리도 단번에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자신이 죄의 지배에 대하여 영원히 죽은 것처럼 간주해야 합니다. 즉 새롭게 부활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죄에 대하여 죽고 하나님에 대하여 사신 그리스도를 닮게 되는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통해”서가 아니라 그분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만이 그 경험에 참여할 수 있는 것입니다.

 

3) 계속 예수님과 연합하여 사십시오
비록 우리의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전히 우리의 “죽을 몸” 속에 있으며, 이 세상의 욕망과 갈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죄는 여전히 하나의 권세입니다. 만일 우리가 한 순간이라도 허용한다면, 죄는 여전히 우리를 지배할 것입니다. 성령으로 거듭남이 육신의 세속적인 욕망들을 근절해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경험은 우리를 죄의 지배를 성공적으로 저항하도록 하늘의 높은 권세와 능력 안에 살도록 해줍니다. 하지만 계속해서 우리의 충성을 죄에 바칠 것인가 그리스도에게 바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매일 “새로운 회심”을 경험해야만 합니다. 어제의 경험이 오늘을 위해 충분치 못합니다. 비록 어제는 죄에 대해 죽었다 해도, 우리의 “옛 사람”이 오늘 다시 그 추한 머리를 들 수 있는 것입니다. 옛 자아를 끊임없이 그리고 완전히 죄에 대하여 죽도록 지킴으로써만 우리는 매일 하나님께 대하여 살 수 있습니다. 거듭남의 경험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새로운 삶, 변화된 삶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논리는 아주 간단합니다. 우리의 주인이 바뀌었으니 당연히 우리의 삶도 바꾸어져야 한다는 내용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밖에 있을 때에는 어쩔 수 없이 사탄이 이끄는 대로 죄를 지으면서 살았지만, 이제는 우리를 피 값으로 사신 예수님이 우리의 주인이기 때문에 우리는 절대로 죄를 지으면서 살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마음 안에 거하실 때에 심령은 그의 사랑과 그와 더불어 교통하는 기쁨으로 충만하게 되어 항상 예수님을 그리워서 따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명상하는 가운데 자신을 잊어버리게 될 것이며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모든 행동의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억제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요구를 응하기 위하여 최소한도 얼마를 바쳐야 할는지를 묻지 않고 또한 가장 낮은 표준을 원하지 않고 다만 예수 그리스도의 뜻에 완전히 일치되기를 바랄 것입니다. 예수님과의 연합없이 그분에 대한 깊은 사랑이 없이 그리스도를 따르노라고 하는 것은 한갓 말뿐이요 무미건조한 형식과 힘든 고역이 될 뿐입니다. 죄의 통치에서 자유롭게 되었다는 것은 죄가 없다는 뜻이 아니며, 죄와 더 이상 씨름하지 않아도 된다든지, 우리에게 절대 실패가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대신 그것은 예수님과 계속 연합하여 사는 가운데 죄가 더 이상 우리를 지배하지 못하기 때문에 그것을 극복하리라는 승리의 약속을 매일 주장하며 살라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