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3부_두 주인과 은혜

 

“이는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 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1).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바울은 로마서 5장과 6장에서 우리 마음속에 군림하고 다스리는 두 왕, 두 세력, 두 주인에 대해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는 죄를 다스리는 왕으로 의인화하여 말하고 있으며, 또한 종에게 복종을 요구하는 주인으로서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종이 되는 것은 곧 사단의 종이며 사망에 이르는 결과를 거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또한 바울은 우리를 다스리는 또 다른 세력인 은혜와 의에 대해서 말하고 있으며, 순종의 종이 되고 하나님의 종이 될 때에 영생에 이르게 됨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 두 주인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마 6:24, 눅 16:13 참조). 사람이 주인을 가졌을 때 주인은 그를 완전히 통제합니다. 주인을 가진다는 것은, 그 주인을 섬기고, 그 주인의 말을 듣고, 주인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말합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우리가 복종하는 주인은 우리가 누구의 노예인지를 보여줍니다. 우리는 “나는 나의 한 부분은 이 주인을 섬기고 다른 부분은 저 주인을 섬기겠다”라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어느 쪽이든 미워할 것이고 다른 쪽을 사랑할 것입니다. 같은 원리가 영적 영역에서 성립됩니다. 우리는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죄의 종이라면, 그는 죄를 지을 것이고, 만일 그가 하나님의 종이라면, 그는 하나님을 섬기고 그분께 봉사할 것입니다. 죄와 하나님은 상호 배타적인 주인입니다. 우리는 양쪽 모두의 노예가 될 수 없습니다.
로마서 6장 14절에는 “죄가 너희를 주관하지 못하리니”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지배하다”는 단어에서 보는 것처럼 죄는 왕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지배하다”는 뜻의 그리스어는 문자적으로 “왕이 되다” 또는 “왕의 역할을 하다”는 의미입니다. 죄는 우리의 육체에 대한 지배권을 행사하며 우리의 행위를 조종하려고 합니다. 죄는 “사망 안에서 왕 노릇”(롬 5:21)하고, 우리를 죽게 만들며(롬 7:13), 우리를 주관하고(롬 6:14), 각양 탐심을 이루며(롬 7:8), 죄인을 속이고 죽입니다(롬 7:11). 그래서 바울은 죄로 하여금 너희를 지배하지 못하게 하라고 권고합니다. 이것은 죄가 우리의 인생에 대하여 통치권을 주장하지 못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죄의 종이 되어 멸망에 이르지 말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6장 12절에 “몸의 사욕을 순종치 말고”에서 “사욕”이라고 번역된 그리스어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욕망은 좋은 것일 수도 있고 나쁜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가 지배할 때 욕망은 우리로 좋지 않은 것을 원하게 만들며, 죄의 욕망들은 악하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가 스스로 욕망과 싸우려고 할지라도 그것은 오히려 더 강해지고 저항할 수 없는 것이 됩니다. 죄는 마치 난폭한 독재자와 같아서 만족할 줄 모르고 더 많은 것을 원합니다. 그런데 이 12절 앞에는 “그러므로”라는 중요한 단어가 나옵니다. 이 말은 앞절 10~11절의 내용을 돌아보게 합니다. 그 앞의 내용은 옛 생애에 대해 침례를 받고 옛사람이 죽은 사람들은 이제 하나님을 향하여 살아간다는 내용입니다. 하나님이 그의 삶의 중심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죄의 종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섬기며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행하는 사람은 동시에 죄를 섬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께 대하여 살아 있는 자”이기 때문입니다. 
두 주인의 비유에서 바울은 한 주인을 섬기는 것은 다른 주인에게서 해방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양자택일을 해야 합니다. 어느 주인을 섬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어떤 주인을 섬깁니까?

 

2) 은혜와 해방
성경은 죄의 노예가 된 사람들은 죽음에 이르는 길에 있다고 말합니다. 로마서 6장 23절에서 바울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기록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5절은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죄의 종이거나 순종의 노예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 두 범주 중 하나에 속합니다. 모든 사람은 죽음을 초래하는 죄의 노예이거나 또는 의로움을 가져오는 순종의 노예입니다. 그런데 매우 기쁜 소식이 우리에게 들려옵니다! 그것은 우리가 죄의 노예에서 벗어날 길을 하나님께서 마련하셨다는 놀라운 소식입니다! 그 길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은혜”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 속에 왕 노릇을 하여 죄의 종에서 우리를 해방시키고 구원하며 우리에게 영생을 가져다준다고 선언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은혜는 우리 안에서 왕노릇 할 수 있습니다.
은혜란 무엇일까요? 은혜는 헬라어로 “카리스마(charisma)”인데, “카리스”(charis)에서 파생되었으며 “은혜의 행위”, “은혜의 선물”을 뜻합니다. 바울은 “은혜”라는 용어를 특별한 의미로 사용했는데,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죄인들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풍성한 사랑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을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했고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러한 은총과 인애를 받을 만한 아무런 가치나 공로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어떤 공로가 있어서가 아니고 전적인 그분의 선물로서, 죄된 인간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무한하신 사랑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된 은혜의 복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1:16)인 것입니다.
그런데 은혜란 단순히 하나님의 자비나 용서하심을 가리키는 것뿐이 아니라, 인간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적극적이고 역동적이며 변화시키는 능력입니다. 그러므로 은혜는 인간 안에 역사하여 모든 것을 충족시키고, 사람의 마음속에서 왕 노릇 하고, 마음을 변화시키어 구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 놀라운 힘으로 역사하여 사람들을 변화시키고 진리에 순종하게 하며, 죄를 미워하고 싫어하게 하여 죄에서 탈피하게 만듭니다. 이것이야말로 은혜가 그 힘을 발휘하여 우리 속에서 왕 노릇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죄의 종에서 벗어나 의의 종이 되게 만드는 힘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죄를 승리하게 하는 힘입니다!
바울은 “법 아래”에 사는 사람은 죄의 지배를 받게 될 것이며 죄의 노예라고 말합니다. 반대로 은혜 아래 사는 사람은 죄의 지배를 받지 않게 될 것이며 순종으로 의의 종이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은혜 아래 사는 사람들에게는 죄를 승리하는 일이 가능할 것인데, 그것은 계명이 그 마음에 새겨지고, 성령님이 항상 그 걸음을 인도하시기 때문에 죄를 이기고 극복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칭함을 얻으며,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침례를 받아, 옛 사람을 장사 지내고 새로운 생명으로 나아오는 모든 과정을 거치는 사람은 그의 삶의 보좌에서 죄가 물러나는 경험을 할 것입니다! 그는 죄의 노예가 아니라 은혜로 죄에서 해방되고 죄의 다스리는 권세를 물리치는 하나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더 이상 법 아래 살지 않고 은혜 아래 산다는 말은 죄를 지어도 상관없다는 뜻이 아니라, 죄의 지배에서 벗어나 은혜로 죄를 극복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는 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