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이마에 인치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 받도록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미 다 하셨다. 그러나 우리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의 할 일을 다 하지 않으면 완벽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마저도 속수무책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렇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간이 그 은혜를 받아드리지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라곤 더 이상 아무것도 없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때 구속의 경륜에 동참하고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바로 두뇌에서 활동하는 세 가지 기능들의 투쟁 끝에 얻어지는 결실이다.

 두뇌 - 치열한 전쟁터

일단 뇌 속에 어떤 정보가 들어가면 세 가지 기능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 세 가지는 지성, 감성, 그리고 의지이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믿고 따르기로 결심할 때, 바로 이 세 가지들이 그 결심을 만들어 내는 주역들인 것이다. 앞이마에 자리한 이 세 가지 중요한 기능들은 입력된 정보에 재빨리 반응한다. 그리하여 분석하고 판단하여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한다.


이 이마야말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당신의 소유로서 표하고 인치시는 곳이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forehead, 앞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 계7:2, 3.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forehead, 앞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계14:1. 왜 하나님께서 다른 신체 부위가 아닌 앞이마에 인을 치라고 하셨을까? 왜냐하면 바로 앞이마의 두뇌 속에 하나님의 백성이 되기로 선택할지 아니면 마귀를 따르기로 선택할지를 결정하는 세 가지 기능들이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성이란 이해하고, 인식하고, 판단하며, 분별하는 기능이다. 또한 감성이란 소원하며, 느끼며, 충동하는 감수성의 기능을 말한다. 사람이 유혹을 받을 때, 지성과 감성은 각각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지성과 감성이 느끼고 말하는 것을 판단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바로 “의지”이다. 우리 뇌에 있는 이 세 가지 기능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이다. 왜냐하면 의지의 선택이 없이는 한 인간의 인생 방향이 결정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음성을 선택하면 그는 의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되지만, 그것이 육체의 음성을 붙잡고 그것에 복종하여 살면 악인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앞이마에 당신의 소유임을 확증하는 “인” (seal)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를 들어 보도록 하자. A라는 사람은 이제 막 그리스도를 받아들인 초신자이다. 그런데 그는 그가 포기해야 할, 그러나 하지 못하고 있는 한가지 문제 때문에 갈등을 느끼고 있다. 그의 지성은 그에게 그것은 죄니 반드시 버리고 예수를 따라야 한다고 촉구하고 있다. 반면에 그의 감성은 다른 반응을 보인다. 그의 마음 속의 소원과 감정은 이제까지의 습관을 버리고 싶지 않다고 얘기한다. 그의 느낌과 충동은 그 죄의 재미와 쾌감을 버릴 마음이 없다고 끝까지 사투하고 있다. 그 재미를 버리면 세상살이에 무슨 재미가 있겠느냐고 변론한다. 그러나 그의 마음의 지성은 계속 말하고 있다. 그 잘못된 습관은 자기와 하나님 사이를 막고 있는 장애물이라고, 그 죄의 습관을 버리지 않고서는 결단코 거듭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지성은 그 죄를 버리지 않고는 하늘에 들어갈 수 없다는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그러자 감성도 지지 않고 계속 반박한다. 이렇게 재미있는 것을 포기하면 생활의 만족이 없어지게 될 것이요, 결국에는 재미있고 좋은 것들은 모두 포기해야 하는 지점까지 나아가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세상을 사는 의미와 행복이 전혀 없을 것이라고 고집을 피운다.

 강한 의지와 약한 의지

자 이렇게 뇌 속에서 지성과 감성이 전쟁을 하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이 싸움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해결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이다. 의지가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도덕적인 결단을 내리든지 일상적인 생활의 결정이든지 간에 관계없이 단 하루를 살아도 우리는 이러한 선택의 순간에 끊임없이 부딪힌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이런 과정은 너무도 간단하다 못해 자동적이기까지 해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쉽게 지나친다. 하지만 이 의지의 결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조그만 의지의 선택들이 모여져 큰 결정을 만들고 결국에는 우리의 영생도 결정짓게 된다.


여기에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사용할 자유 의지가 죄로 인하여 몹시 약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 결과로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죄로부터 구원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디모데후서 2:26에서 “마귀의 뜻대로 그에게 사로잡혔던 그들이 마귀의 올무에서 깨어 나올까 함이라”(킹 제임스 성경 번역)라고 말씀하였다. 거듭나지 아니한 자들은 그들의 의지가 마귀의 뜻에 사로잡힌 바 되어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인간은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에 내어 맡겨질 수 밖에 없는 상태에 있는 것이다. 롬 7:18은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내 속 곧 내 육신에 선한 것이 거하지 아니하는 줄을 아노니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거듭난 의지

죄인이 회개하여 하나님의 뜻대로 살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실마리가 여기에 있다. 그것은 우리가 어떻게 하여야 우리의 의지의 힘을 강하게 할 수 있는가이다.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너무 약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셔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있다. 어떻게 하여야 내 자신을 굴복하여 의심과 마귀의 올무인 죄의 습관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라고. 과거의 실수들과 작심삼일이었던 결심들을 기억하면서 인간들은 절망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여기에 희망이 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10:27.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가 있으시다. 그것이 구원의 은혜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선택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의지를 바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신비한 능력으로 우리의 의지에 놀라운 힘을 주시게 되는 것이다. 우리 스스로 결심하고 행하려 하면 곧 피곤해지고 의로운 삶을 살기에 지쳐버리게 되는 것이다.


육중한 고철들을 들어 올리는 기중기의 끝에는 강력한 지남철이 달려 있다. 그러나 그 지남철에 전류가 흐르지 않으면 원하는 고철들을 들어 올릴 수가 없다. 아무리 기중기의 끝을 무거운 쇠들에 갖다 대어도 전혀 끌어 올려지지가 않는 것이다. 그러나 그 속에 전기의 전류를 보내면 그 지남철이 힘을 발휘하여 그 무거운 고철들을 번쩍 들어 옮겨 버리게 되는 것이다. 우리의 의지의 힘도 꼭 마찬가지다. 우리는 항상 하나님의 성령의 은혜를 받아야 한다. 성령의 은혜의 전류를 받아야 우리의 의지가 제대로 힘을 발휘할 수가 있게 되는 것이다. 롬 8:2는 여전히 다음과 같이 외치고 있다.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하나님께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


문제는 많은 사람들이 자기의 죄에서, 사단의 올무에서 벗어나 해방되기를 간절하게 원하지 않는데 있다. 죄의 습관들과 세력에서 헤어나오기를 온 마음으로 원하지 않는다. 어느 정도 원하거나 희망 사항일지는 모르나 전적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릴 정도로 심각하지는 않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의지를 강제로 꺽으시거나 억지로 힘을 주실 수가 없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우리가 협력하는 일에 달려 있는 것이다. 우리가 복음을 믿고 하나님께 의지를 바치며 협력하지 아니하면 그 크신 구원의 역사와 능력도 속수 무책이 되는 것이다. 자녀들이 자기의 뜻대로 하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부모들이 아무리 도와 주려고 해도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죄인은 하나님께 이렇게 말해야 한다. “주님, 여기에 내 의지가 있습니다. 죄의 힘으로 연약하여지고 비뚤어진 나의 의지를 주님께 드립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힘이 없습니다. 나의 뜻과 나의 의지를 굴복하오니 주께서 고쳐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나의 뜻이 아니라 주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마음의 기능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의 힘이다. 그러나 이 기능이 하나님의 성령의 힘으로 항상 재충전되어야 한다.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진실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를 원하고 바라는가?

 사례 연구 Case Study

메리는 사십대 초반의 중년여성으로서 정상 체중을 초과한 자신의 몸무게 때문에 항상 걱정이었다. 그러던 중 그녀는 우연히 가까운 곳에서 열리는 건강 세미나에 참석하게 되었다. 거기서 그녀는 이제까지 그녀가 듣도 보도 못한 많은 것들을 배우고 깨닫게 되었다. 또한 비만의 주요 원인 중 하나가 정제되지 않은 인스턴트 식품을 많이 섭취하는 것에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 자리에서 그녀는 이제부터 다시는 인스턴트 식품을 입에 대지도 않으리라고 단단히 결심하였다.


그러나 세미나에서 집으로 돌아오면서 그녀에게 유혹이 다가왔다. 집으로 오는 길에는 쵸코렛 전문점들이 늘어서 있는 곳이 있었다. 이제까지 항상 집으로 돌아올 때면 꼭 그곳에 들려 초콜렛을 사가는 것이 그녀의 소중한 습관이었다. 그녀는 자신도 모르게 그 곳을 향하여 운전대를 돌리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였다. 언제나 그렇게 해왔듯이 건강 세미나를 참석하고 돌아오는 지금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동차를 쵸코렛 전문점 앞에 주차시키고 있는 것이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마음 속에서 싸우고 있는 두 음성을 들었다. 지성이 말했다. “메리, 넌 오늘 오후에 아주 좋은 강의를 들었어. 왜 당분이 농축되어 있는 식품을 먹으면 안 되는지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었지. 네가 여기서 초콜렛을 사 가면, 너의 결심을 깨뜨리는 것이 될거야. 너는 그것이 옳지 못하다는 것과 네 건강을 해칠 것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잖아!” 그러자 감성이 지지 않고 말했다. “왜 그렇게 혼자 튈려고 그러니. 요새 세상에 초콜렛 안 먹고 사는 사람도 있니? 그것 먹어서 살이 좀 쪄 봤자 얼마나 찌겠어. 오늘 하루만 먹고 다시는 안 먹으면 되지, 안 그래?”


몇 초 동안 메리는 이 두 음성 사이에서 방황하며 갈등하였다. 이제 그녀의 의지가 두 음성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만 하였다. 결국 그녀의 의지는 지성의 말을 따르기로 결심하였다. 그 곳에 내려서 전처럼 초콜렛을 사가는 대신 그녀는 곧바로 집으로 향하였다. 그날 저녁 내내 그녀의 마음은 가볍고 기뻤다. 왜냐하면 유혹을 물리치고 승리하였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