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Q&A_그리스도의 성육신은 왜 신비라고 하나요?

 

“이 신비는 여러 시대와 세대로부터 감추어졌다가, 이제 주님의 성도들에게 밝히 드러났고, 하나님께서는 이 신비의 영광이 이방인들 중에서 풍요함이 어떠한지를 자신의 성도들에게 알게 하셨나니, 이 신비는 너희 중에 계신 그리스도시요 곧 영광의 소망이니라.”(골 1:26,27).

이 신비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셨던 것처럼 그리스도께서도 우리 안에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성품이 그리스도를 통해 나타났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성품도 우리 안에 심어져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임재하시는 신비, “신성과 인성”의 연합으로 신성의 본성에 참여하는 것 (벧후 1:4, the divine nature), 이것이 영광스러운 소망입니다. 이어서 사도 바울은 언급하기를,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골 1:28, 29). 이 경건의 신비, 즉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를 가르치는 이유는 우리를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이며, 이 일을 위해 바울 자신도 자기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능력의 역사를 따라 힘써 일하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은 죄 없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 아니고 죄 있는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이 죄 없는 육신, 곧 죄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 안에 나타나시는 것은 조금도 신비가 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와 같이 죄와 죄의 성향을 지닌 육신에 자신을 나타내실 수 있다는 것은 하나의 신비입니다. 죄 된 육신의 본성을 입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죄를 짓지 않고 온 우주 앞에 승리의 깃발을 높이 드셨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마찬가지로 우리를 택하셔서 우리의 모든 죄 된 본성을 극복하고 당신의 의로우신 신성과 영광을 사람들 앞에 드러내 보이실 것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모든 삶 가운데서 우리는 여기저기에 죄를 위한 틈새들을 남겨두면서 살아왔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이 죄짓지 않는 생애가 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믿지도 않았고 선포해 보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하나님의 계명을 우리가 충만이 선포할 수가 없는 경우라면, 도대체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능력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죄 있는 육신을 입고 오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죄를 짓지 않으시고 하나님의 영광을 온 우주에 증명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한 무리를 택하셔서 우리의 죄 된 본성 때문에 우리가 죄를 지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거절하고, 오히려 우리의 모든 죄 된 본성을 극복하고 당신의 의로우신 성품과 영광을 사람들 앞에 나타내 보이실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스러운 육신을 통해 하나님이 자신을 나타내 보이시는 하나님의 신비, 즉 “너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승리하셨기에 우리도 승리할 수 있다는 것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참된 복음입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의 영광스런 소망인 것입니다.

“크도다 경건의 신비이여 논쟁의 여지가 없도다. 하나님께서는 육체 안에서 나타나셨고, 성령님 안에서 의롭게 되시고, 천사들에게 보이시고, 이방인들에게 선포되시고 세상에서 믿은바 되시고, 영광 속으로 올리우사 영접을 받으셨느니라.” (KJV 딤전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