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계문 목사 칼럼_기독교가 추구하는 것

 

기독교가 추구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기독교인으로서 무엇을 추구하며 사십니까? 여러분의 교회는 무엇을 소망하며 나가십니까?
많은 기독교인이 예수님을 믿으면서도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게 아니라 대박을 꿈꾸며 삽니다. “언젠가는 내게도 행운이!”라는 표어를 안고 살아가지는 않습니까?
기독교의 본 모습, 믿는 자들이 가장 소원하는 것은 무엇이 되어야 할까요?

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하나님께로부터 멀리 떠나 있다는 것을 알고 또 자기 자신과 죄에 대하여 종이 되어 있다는 사실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상태를 개선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막상 자기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경험에 이르지는 않습니다.
많은 사람들은 “선하게 살아야지” “거룩하게 살아야지” 그렇게 결심합니다. 물론 “내 맘대로 살아야지” “방탕하며 살아야지” 하는 것보다는 나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 마음만 있고, 그것으로 그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자기의 잘못을 시인하면서 간혹 회개라는 것을 하지만, 그 죄를 낱낱이 구별하여 버리지는 않습니다. 죄에서 구원해 달라고 소리치지도 않습니다.
마음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지 않고 “적당히” 바칩니다. 그리고 ‘지금 말고 언젠가는 하나님께 헌신하는 생애를 살거야’ 라고 다짐합니다. 지금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선하게 살고 싶다. 의롭게 살고 싶다.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은 좋지만 그것으로만 그친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우리는 실제로 의롭게 살아야 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매순간 하나님을 섬기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교회를 다니는 많은 신자들이 하나님의 아름다운 형상으로 회복되지 않은 채 구원받기를 소망하지만, 참 그리스도인이 되려는 희망만 가지고 있다가 멸망에 들어가게 될 수 있습니다.
얼마나 슬픈 일입니까?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액자에 넣어 벽에 걸어놓기 위한 좌우명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이상(理想)은 행복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복 받는 삶이 아닙니다. 만사형통인 삶이 아닙니다. 기독교의 이상은 ‘거룩해지는 것’입니다.
높은 경지의 어떤 종교적 체험을 했다고 해서 그것이 불의를 합리화시켜주지는 못합니다. 죄 가운데 살고 있으면서 강렬한 신비적 체험, 감정적 충족을 추구하는 것은 자기를 속이는 것입니다. 찬양집회 때 뜨거운 눈물을 쏟아낸 것이 거듭난 증거가 아닙니다. 남들이 못 알아듣는 방언을 오랜 시간 한다고 해서 그것이 성령충만이 아닙니다.

참된 기독교인, 참된 그리스도인은 성경의 모든 진리를 사랑하기 때문에, 거룩한 말씀에 따라 사는 것을 진실로 원하는 사람입니다.
“거룩”은 이것 안하고 저것 안하고 이것 고치고 저것 고쳐가며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거듭남과 함께 주님이 부어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마음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십니다 (빌 2:13).
우리의 신앙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합시다.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거듭나야 하겠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요 3: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