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2부_십자가를 지고 따르라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눅 14:27).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스승 되신 예수님의 생애를 똑같이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예수님이 당하셨던 동일한 고난을 겪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이 하셨던 똑같은 방법으로 사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려면 나처럼 그대의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냥 따르라는 것이 아닙니다. 온 몸과 마음과 힘을 다해, 주님께 모든 것을 바치며 따르라는 말입니다.

1) 예수님이 설명하신 십자가의 길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희생의 생애가 제자들이 따라야 할 생애의 모본이 됨을 설명하셨습니다. 근처에서 서성거리고 있던 사람들을 제자들과 함께 가까이 부르시고 그분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은 놀랐습니다. 십자가는 로마의 세력을 연상시켰습니다. 십자가는 가장 잔인하고 굴욕적인 형태의 사형 기구였습니다. 당시의 흉악한 죄수는 사형 장소까지 십자가를 지고 가도록 되어 있었고, 종종 그들의 어깨에 십자가를 메게 할 때에 광포하게 항거하다가 마침내 그 고문의 기구가 그들에게 메워지곤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당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자기를 따라오라고 명령하신 것입니다. 
그 당시 이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들에게 비록 희미하게 밖에는 이해되지 않았지만, 가장 치욕적인 수욕, 곧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기까지 그들이 복종해야 할 것을 지적하신 것이었습니다. 이 말씀보다 더 완전한 자아 포기를 묘사한 말씀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하여 받으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분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잃어버린 상태에 있을 동안에는 하늘을 계실만한 곳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비난과 모욕의 생애를, 그리고 치욕의 죽음을 당하기 위하여 하늘 궁정을 떠나셨습니다. 값을 헤아릴 수 없는 하늘 보화로 부요하던 그분이 가난하게 되신 것은 당신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우리로 부요하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입니까!
십자가 위에서까지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구원하러 오신 사람들에 대한 깊은 사랑 때문에 자신의 고통을 잊어버리셨습니다. 우리 구주께서 나타내신 사랑과 관심에 비교해 볼 때, 우리의 사랑은 얼마나 냉랭하며, 우리의 관심은 얼마나 나약합니까! 예수님은 우리 인류를 구속하기 위하여 당신 자신을 주셨는데, 우리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바치지 않으려고 핑계 댈 것만 찾고 있지는 않는지요? 우리의 구주께서는 우리의 죄 때문에 치욕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지만 위대한 구속사업에 종사하시는 동안 우리 주님은 배척과 멸시와 조롱을 받으셨습니다.

2) 십자가를 진다는 것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1. 자기를 부인하는 것
십자가는 죽으러 가는 사람이 지는 것입니다. 자신이 못박힐 것을 지고 가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철저한 자기 부정, 자아 부인의 길을 걸으라는 말입니다. 자신의 뜻, 자신의 감정, 자신의 기호, 욕심, 욕망을 포기하고 대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일, 하나님의 방법에 맞는 일을 하며 사는 것을 말합니다.
왜 십자가는 못박는 일을 수반합니까? 그것도 스스로는 못박을 수 없고 타인이 못을 박아주어야 하는 일이 왜 수반되어야 합니까? 마치 로마 군인이 예수님을 못박았듯이…
십자가를 지는 일에는 자신이 스스로 죽는 것도 있지만, 다른 사람이 나를 죽도록 연단시키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다른 사람들이 우리의 자아를 못박아 죽여주는 일을 한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통해 괴롭힘을 받게 되거나 자존심이 깎여지게 되고, 사람들에 의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기도 하며, 사람들에 의해 따돌림을 받고 외로워지게 되는 일을 겪게 됩니다. 같지 않은 여러 환경과 상황들 속에서 우리 자신들이 부딪히면서 깎이고 자아가 낮아지고 뿌리 뽑히는 일들이 수반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은 우리로 예수님의 형상을 더 닮도록 만들어주는 고마운 일들입니다.

자기 부인이란 감정이 앞설 때 이성으로 정신을 다스리고 주님께 도움을 구하여 온유함과 차분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자기 부인이란 비난하고 흠 잡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유혹을 물리치는 것이고, 말을 잘 듣지 않는 거친 아이에 대하여 인내하는 것이며, 자신을 상냥하게 대하지 않는 가족들이나 사람들에게 친절한 것입니다.
자아를 부인하는 것이란, 다른 사람들이 실패할 때 의무의 자리에 서고, 할 수 있을 때는 언제 어디서나 책임을 지되, 칭찬이나 사람들의 눈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께 대한 불굴의 충성심으로 이루어야 할 사업을 하는 것이며, 주님을 위하여 모든 무거운 짐을 지고, 우리 자신을 찬양하고 싶을 때 침묵을 지키고, 다른 사람들의 입술이 그대를 찬양하게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자아 부정은 우리 자신을 섬기고 기쁘게 하고자 하는 성향을 부인하고 다른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그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입니다. 비록 동료들이 그대의 노력을 결코 알아주지 않거나 신임을 주지 않을지라도 계속해서 충실하게 일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이 받아들인 진리가 삶의 확고한 원칙이 되어 있는지 주의 깊이 살펴보고 확인하십니까? 기도의 골방을 떠날 때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함께 모시고 나갑니까? 여러분의 신앙이 여러분의 입술의 문을 지키고 있습니까? 마음은 여러분의 가정 밖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동정과 사랑으로 이끌리고 있습니까? 여러분은 성경의 진리를 더욱 분명히 깨달아서 그 빛을 다른 사람들에게 비취고자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말은 은혜로 고르게 되고, 행실은 그리스도인의 고결함을 보여주고 있습니까? 이 질문들에 대한 좋은 답이 여러분의 영혼에서 나와야 합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자아 부인의 길을 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2. 고난을 견디는 것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고난과 핍박을 견디는 일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분의 십자가와 그분이 우리를 위하여 당하는 고난이 영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사명은 오직 고난을 통하여서만 성취될 수 있었습니다. 그분의 앞에는 슬픔, 고난, 투쟁의 생애와 수치스러운 죽음이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온 세상의 죄를 지시고 아버지의 사랑에서 끊기는 일을 견디셔야 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께서 자신을 범죄한 인류를 위한 대속물로 바치시겠다고 결정하셨을 때에 그분은 앞으로 당하셔야 할 고난을 다 아셨습니다. 그러나 범죄한 인간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받으실 고난을 기꺼이 받으시겠다고 결정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구원 받을 사람들을 보는 즐거움, 곧 그분의 앞에 있을 구원 얻을 자들을 볼 그 즐거움을 인하여 모든 괴로움과 고난을 견디셨습니다.

예수님은 겟세마네에서 세상의 모든 인류의 죄의 짐을 지시고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죄짐이 그분의 어깨를 누르자, 고통 속에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 26:39)라고 부르짖었습니다. 그러나 겟세마네 전에도 벌써 그분 앞에 있을 고난을 생각하시고 “지금 내 마음이 민망하니 무슨 말을 하리요? 아버지여 나를 구원하여 이때를 면하게 하여 주옵소서”라는 음성을 발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는 헬라인 몇명이 주님을 뵈러 성전뜰로 찾아왔을 때였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고난의 때를 기다리는 가운데 이미 쓴 잔을 마시고 계셨습니다. 그분의 인성은, 하나님에게서조차 완전히 버림받은 것으로 보일 고난의 때, 곧 징벌을 받아서 하나님에게 맞으며 고난을 당한다고 모두가 생각할 그 고통의 순간에 대한 생각으로 움츠러들었습니다. 사람들 앞에 극악한 죄수 취급을 받으며 수치스럽고 모욕적인 죽음을 당할 일 때문에 위축되셨습니다. 그러나 그 때 예수님은 하나님 아버지의 뜻에 복종하셨습니다. 그분은 곧 “내가 이를 위하여 이때에 왔나이다!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탄의 나라는 그리스도의 죽음을 통하여서만 정복할 수 있었습니다. 인간은 오직 이 방법으로써만 구속받을 수 있었고, 하나님께서는 영광을 받으실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고뇌에 동의하셨으며 그 희생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늘의 임금께서 죄짐을 지는 자로서 고통을 받기로 동의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지고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고난과 고통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주님을 따를 때에 친구나 친척들, 사람들의 비난을 받으면서도 불평이나 후회 없이 인내와 겸손으로 견디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핍박하기 위해 사람들의 손에 들려진 핍박의 칼도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따를 때에 그분의 고난을 함께 당하도록 초청을 받고 있습니다. 십자가를 지도록 부르심을 받는 사람은 그의 고난에 참여하는 가장 높은 특권을 가지게 됩니다. 예수님의 고난을 함께 진다는 것보다 더 큰 영예는 없기 때문입니다.

3. 예수님을 시인하는 것
우리는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을 시인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자아를 위하여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 욕을 돌리는 것입니다. 겉으로는 혹 그들이 주님을 매우 열심히 섬길지 모르지만 그들은 자신들이 하는 모든 일에다 자아라는 실을 섞어 짜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이기심이라는 씨앗을 뿌리기 때문에 마침내 썩어질 것을 거둘 것입니다. 자아를 섬기는 봉사는 그 모습이 다양합니다. 그 모습 중 어떤 것은 별 해롭지 않은 것처럼 보이고, 표면적으로 착한 척 하기 때문에 훌륭한 사람으로 보이게 하지만 주님께 영광을 돌리지는 못합니다. 그들의 봉사로 인해서 하나님의 사업은 방해를 받습니다. 하는 일에다 자아를 개입시키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버림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모든 일에 자아를 부인하고 주님을 시인하는 일을 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대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그대를 시인할 것이다!”라고 하십니다. “그대는 세상에서 나의 증인이며 나의 은혜가 세상을 치유하기 위하여 흐를 수 있는 통로가 되어야 한다. 나도 하늘에서 그대의 대표자가 될 것이다. 하늘 아버지께서는 그대의 결함 있는 품성을 보지 않고 나의 온전함으로 옷 입은 그대를 보신다. 잃어버린 자를 위하여 바친 나의 희생에 참여함으로써 나를 시인하는 자는 누구든지 구원받은 자의 영광과 기쁨에 참여하는 자라는 시인을 받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를 시인하고자 하려면 우리 속에 그리스도께서 거하시게 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지 않은 것을 전해줄 수는 없습니다. 주님의 제자들이 교리를 유창하게 말하고 그리스도께서 친히 하신 말씀을 반복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만일 그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온유함과 사랑을 소유하지 않았다면 그분을 시인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정신에 배치되는 정신은 그 말하는 바가 어떠하든지 그분을 부인하는 것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험담을 하거나 어리석은 이야기를 함으로써, 진실되지 못하고 불친절한 말로써 그리스도를 부인할 수 있습니다. 생애의 의무를 회피하고 죄된 향락을 추구함으로써 그분을 부인할 수 있고, 세상을 본받음으로써, 무례한 행동을 함으로써, 자신의 의견을 사랑함으로써, 자아를 정당화시킴으로써, 의심을 품고 부질없이 걱정하고 흑암 중에 거함으로써 그분을 부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모든 방식으로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그들 안에 계시지 않다고 선언합니다.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4. 사랑하는 것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돌아가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은 곧 자기를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은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다른 사람의 결점과 실수와 약점을 오래 참습니다. 사랑은 모든 인간이 넘어지기 쉽고 타고난 악한 본성 때문에 초래되는 실수가 드러나도 관용을 베풀고 참습니다. 사랑이란 단어는 압제받고 억울하게 고소당하며 핍박받을 때 조용히 견디고 오래 참을 수 있는 마음의 상태를 의미합니다. 사랑은 항상 모든 관계에서 올바르고 적절하고 조화로운 것을 만드는데, 그것은 사랑이 다른 사람의 행복을 증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다른 사람의 행복과 기쁨을 해치거나 방해하는 모든 것을 피하도록 하기 때문입니다. 
이기심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소유한 사람은 자아를 잊어버리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 완전히 몰두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이 없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예수님이 우리 마음 속에 임재하시고, 우리의 마음이 하늘의 사랑의 근원과 연결되면 우리가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일이 가능해집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을 귀히 여기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버리셨습니다. 비천한 구유에서부터 십자가까지 우리도 그분을 따라갑시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대가 나의 제자가 되고자 한다면 멸시 받은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고 하십니다. 여러분은 그 잔을 마실 수 있습니까? 그 침례를 받을 수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