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1부_비용을 계산하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대가를 치르셨습니다. 잃어버린 지구를 되찾기 위해 하늘의 모든 보화 – 예수님의 고귀하신 생명, 희생, 고난, 수고, 관심, 시간, 구원을 이루시는 성령의 역사, 천사들의 섬김과 수고 – 가 바쳐졌습니다. 타락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주님께서 치르신 대가는 엄청났습니다. 더 이상 쏟아부을 수 없는 선물이 주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하고 그분을 섬기기로 선택한 우리도 주님을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있습니다. 그 값은 무엇일까요?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예수님을 따르는 대가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우리가 치르는 적은 대가가 얼마나 큰 가치의 선물을 가져다 주는지 깨닫게 되고, 그래서 더욱 감사함으로 열심히 주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 편집실 -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라오는 제자가 되기 위해 우리가 치러야 할 대가에 대해 명확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목숨과 가족과 형제들까지도 버리고 따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을 따르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만일 그 대가나 비용을 치를 마음이 없다면, 그것은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치르신 대가를 이해하지 못한 것이며, 그 놀라운 가치를 과소평가하는 것입니다. 모든 비용을 치르고, 그리고 거기에 따르는 모든 결과를 받아들이고 감사하는 사람은 주님을 기꺼이 따르는 사람입니다.

1) 하늘이 들인 비용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요 3:16). 

죄로 잃어버린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이 들인 비용을 이 성경절처럼 잘 나타내는 구절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죄인들을 구원하시고 영원히 살 수 있는 불멸의 생명을 주시기 위해 독생자 예수님의 생명을 속전으로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인간을 구원하시는 무한한 사랑을 세상에 부어 주는 일에 자원하여 생명을 바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고후 5:19)셨습니다. 무한한 사랑의 마음을 가지신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의 고민과 갈보리의 죽음으로 우리의 구속의 값을 치르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밖에는 아무도 우리의 구속을 완성시킬 수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품에 있는 자만이 능히 아버지를 나타낼 수 있었고, 오직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를 아는 자라야 그것을 드러낼 수 있었습니다.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드리신 무한한 희생이 아니고는 잃어버린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을 표현할 길이 없었습니다. 하늘의 모든 보화가 타락한 인류의 구원을 위하여 주어졌습니다.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갚으신 대가, 그 아들을 주사 우리를 위하여 죽게 하신 하늘 아버지의 희생과 사랑은 우리가 예수님을 통하여 어떤 축복과 영생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은 사도 요한은 멸망할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보았을 때에 찬탄과 존경의 마음이 충만해져서, 이 사랑의 위대함을 표현할 적당한 언어를 찾지 못하여 “보라!”고 부르짖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
범죄로 인해 인류가 사탄의 백성이 되었지만 그리스도의 속죄의 희생을 믿음으로 아담의 자손들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과 일체이셨던 예수 그리스도는 절대로 끊을 수 없는 줄로 그 자신을 인류에게 붙들어 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히 2:11)시고, 아버지의 보좌 앞에서 인성을 쓰신 우리의 맏형님이시요, 우리의 희생 제물이요, 우리의 중보자로서 서 계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인자되신 예수님! 하늘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치른 대가와 쏟아부은 비용은 이루 형용할 수 없고 계산이 불가능한 놀라운 것입니다.

2) 비용을 계산함
예수님께서는 그분을 따르는 사람들을 돌아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눅 14:26). 그리고 이어서 당신을 따르기 전에 먼저 그 따르는 비용을 계산해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 중에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진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아니하겠느냐?”(눅 14:28). 
예수님을 섬기기로 택하고 그분의 뒤를 따르기 전에 주님은 우리들에게 그 값을 헤아려 보라고 요청하십니다.

여기서 먼저 “미워하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배경을 연구해 보자면, 이 말은 신명기 21장15절에 사용되었던 배경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표현은 일부다처에 대한 것으로, 고전 번역은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는다”라고 번역이 되었습니다. 모세가 말하려는 핵심은 남편이 다른 아내들보다 한 아내를 더 좋아할지라도, 그는 덜 사랑받는 아내들에게 공평하게 대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현대적인 의미로 현대성경들은 사랑을 가장 사랑하는 ‘총애’로, 미움을 ‘마음에 안 드는’이라는 의미로 번역합니다. 그러므로 이 성경절이 분명하게 의도하는 것은 애정의 정도이지 진짜 미워하거나 증오하라는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문맥에서 ‘미움’은 진짜 증오하는 것이 아니라 덜 사랑하는 것을 가리킵니다.
예수님의 관점은 단순하지만 심오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 중에서 주님을 첫째로 하고 사랑하라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고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우리의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가족이 우선이고 그리스도가 둘째라면, 만약 우리의 목숨과 안일과 평안이 먼저이고 예수님이 둘째라면, 만약 재물과 세상과 명예가 첫째이고 예수님이 둘째라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주인이 되실 수가 없는데, 그것은 우리가 여러 주인을 섬기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그대는 나와 세상 중 무엇을 택하겠느냐고…. 내가 하늘의 모든 영광과 안일을 다 버리고 그대를 위해 사망과 고난과 슬픔을 택하였는데, 그대는 나를 위해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겠느냐고 물으십니다. 만일 그대가 친구나 형제자매나 부모나 가옥이나 땅을 나보다도 더 사랑하고 그런 것들을 더 소중하게 여긴다면, 그대는 내게 무가치하다고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위해 남김없이 다 주셨으므로, 우리를 위해 다 바치셨으므로, 우리도 주님을 위해 남김없이 바치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은 아직도 모든 것이 여러분의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는 값으로 산 바되었으므로 그 모든 것들은 우리의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모든 것을 되돌려드리는 것은 마땅하고 당연한 일입니다.
마음 속으로 먼저 하늘이 우리를 위해 들인 비용을 명상해 보십시오!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위해 드릴 비용의 계산이 너무도 손쉽게 나올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이렇게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 저를 위해 바치신 고귀한 희생이 너무도 크고 감당할 수 없어 저의 모든 것을 바칩니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