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하나·신혼일기_#06. 다친 손가락의 흔적

 

아직은 농부라 부르기 민망한, 새내기 농사꾼 부부는 처음으로 ‘진짜 가뭄’을 겪어보았습니다. 물론 이전에도 가뭄은 있었지만 ‘나의 일’로 와 닿진 않았기에 ‘진짜 가뭄’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간절히 기다린 장맛비가 시작될 때 신랑은 “우와! 비다~ 비 온다! 하나님, 감사합니다!”하며 환호성을 질렀고, 65세의 아버지는 마당에 떨어지는 시원한 비를 맞으러 상의를 탈의하고 나가시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장맛비가 온 땅을 적시는 동안 목말랐던 포도밭의 포도들은 어느 정도 싱그러움을 회복했습니다. 이내 장마는 그치고 연일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에 꿉꿉했던 이불과 빨래를 널어놓으니 보송보송 포근한 햇볕 냄새가 스밉니다. 메말랐던 땅에 충만한 단비가 내리고, 작물이 맛있게 익을 수 있도록 비추이는 햇빛을 보며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를 몸소 느끼니 이것이야말로 축복입니다.

텃밭에 각종 작물들을 심어놓으면 작물보다 더 잘 자라는, 제 이름으로 불리지 못하는 풀들을 우리는 흔히 잡초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사람이 원치 않는 풀이라고 해서 잡초라 불리는 것은 왠지 억울하다는 생각도 들지요. 어쨌든 이 풀들이 작물과 함께 자라나면 그것들을 베어 작물 옆에 덮어주는데, 멀칭효과도 내고 거름도 되니 좋습니다. 풀들이 조금 자랐을 때는 뽑아주는 것이 가능하지만 많이 자랐을 때는 본 작물의 뿌리까지 건드릴 위험이 있어 베어주는데, 서툰 낫질로 초보 중에 초보인 제가 나섰습니다. 그것도 아버지가 새로 장만한 반들반들 잘 드는 낫으로 말입니다. 처음에는 손에 익질 않아 불편하고 조심스럽기만 했던 낫질을 반나절하고 나니 제법 익숙해져 삭삭 베는 재미까지 느끼게 되더군요. 작물들이 훤히 얼굴을 보이고 나머지 풀들은 나란히 누워 조화를 이루니 보기에도 좋았습니다.
다른 일을 하던 신랑이 오후 작업에는 함께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여보, 나 풀 베는 작업은 처음 해보니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설명해줘요~”
반나절 동안 내공을 익힌 저는 자신감이 충만해서 설명을 시작합니다.
“여보, 풀 벨 때 작물을 건드리면 절대 안 돼요. 작물이 줄기를 다치면 성장을 못 하니까 작물과 풀을 구분해 놓은 다음에 풀만 잡아서 베야 돼요. 그리고 풀의 생장점을 베어야 풀이 더 자라지 못하니까 대충하지 말고 꼼꼼히 해줘요. 꼼꼼히~ 대충하면 금방 또 해야 되는 거예요. 알겠죠?”
제 설명이 장황하게 반복되다 보니 신랑이 하는 말,
“이야~ 여보, 풀베기 선배라고 되게 아는 척한다~ㅎㅎ”
반나절 더 해 보았다고 아는 척하는 제가 신랑 눈에 재밌게 보였나 봅니다. 그런데다 땅콩 잎을 신랑이 두 번 잘라먹은 뒤로는 조금씩 잔소리를 더해가며 대충하지 말고 정성스럽게 하라는 은근한 감시가 따라붙었지요.

다음날이었습니다. 어제 못다한 풀베기를 마저 하러 텃밭에 나갔습니다. 이제 오이 밭 두 골만 베어주면 끝날 일이고 어제의 경험으로 낫질 정도는 식은 죽 먹기라 생각했습니다. 풀베기 시작한 지 어언 10분. ‘앗!’ 눈 깜짝할 사이에 풀을 잡고 있던 왼손 두 번째 손가락 마디에서 피가 흐르기 시작합니다. 장갑을 꼈지만 하필이면 왼손 두 번째 손가락 마디 부분이 구멍이 나 있었고, 낫의 모서리가 그 곳을 찔렀던 것입니다. 혼자 집에서 응급처치를 하고 괜찮으려니 했는데 많이 쑤시고 아파 병원에 갔더니 깊이 찔렸다며 몇 바늘 꿰매고 돌아왔습니다. 신경과 힘줄을 건드릴 뻔한 상황, 무엇보다 통증이 심하니 잠을 잘 수 없어 힘들고, 일상생활에서 사용할 수 없으니 참 답답하더군요. 큰 수술 받았던 때와 견주어 보면 작은 상처겠지만 사람은 과거의 기억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 못하기에 눈앞에 닥친 이 상처가 너무 크게 다가와 속도 상하고, 아프기도 아파 괴로웠습니다.
저녁나절 일터에서 돌아온 신랑이 걱정하며 속상해 하다가 “여보, 풀베기 선배가 이렇게 다치면 어떡하나?” 하는데, 순간 잔소리와 설명으로 장황했던 저의 자만이 생각나 조금 부끄러운 마음이 들더군요. 알면 얼마나 더 안다고 그렇게 자신감에 차서 잔소리를 했는지, 지금은 부상병이 되어 신랑의 얼굴을 마주하니 어이없는 웃음이 났습니다.

그날 밤 통증으로 잠은 오지 않고 이런저런 생각들과 기도로 시간이 지납니다.
‘하나님, 제가 실수해서 손을 다쳤지만 참 아프네요. 견뎌내야겠지만 힘들어요. 통증이 좀 경감되면 좋겠어요. 하지만 더 자주 쓰는 오른손이 아닌 왼손이어서 다행이에요. 또 이렇게 다치고 나니까 이 손가락 하나가 얼마나 많은 일을 하고 있었고 많은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었는지 알게 되네요. 다 나으면 무엇인가 할 수 있음을 더 감사하면서 일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먼저 좀 해봤다고, 잘한다고 자만해서 조심하지 않고 신랑한테는 잔소리하더니 제가 이렇게 다쳐버렸어요. 주님, 제 신앙 생애에서도 이러한 모습이 있었겠지요? 어쩌면 지금도 그럴지 모르지요. 이젠 알았다고, 이젠 잘한다고 어느덧 우월한 자리에 올라 자만하는 마음이 제게 보일 때마다 더욱 알게 해주시고, 주님이 계신 그 낮은 마음자리에 머물도록 해주세요. 어쨌든 지금은 손가락이 너무 아프네요. 회복하는 밤이 되도록 도와주세요.’ 주님과 저의 대화는 이런 식으로 끝을 맺고 신랑의 토닥거림과 함께 새벽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습니다.
당연한 것이라 여겨졌던 일상, 씻을 수 있고, 설거지를 할 수 있고, 강아지 산책을 시켜줄 수 있고, 손빨래 한 옷을 짤 수 있고, 잠자는 동안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고, 무언가를 옮길 수 있는 평범한 일상이 사실은 굉장한 일이었음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몇 주간입니다. 아직 실밥을 풀기 전이고 통증도 남아 있습니다. 여름철이기도 하고 면역력도 낮은 편이라 더디 낫습니다. 하지만 타자를 칠 수 있을 정도의 힘은 주어진 상태라 이렇게 글을 쓸 수 있네요. 자만함을 경계하라는 하나님의 자상한 돌보심이 참으로 감사한 이 밤, 다친 손가락의 흔적은 제게 늘 좋은 경고가 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