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계문 목사 칼럼_위기의 시대, 자살을 고민하고 계십니까?

 

우리가 사는 시대는 위기입니다. 암에 걸렸습니까? 그게 위기가 아닙니다. 사업이 망했습니까? 그게 위기가 아닙니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시집을 어떻게 갈까? 그것이 문제가 아니라 “나는 누구이며, 왜 존재하는가?” 여기에 대한 답이 없으면 이것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최대의 위기입니다.
아무리 잘 살고, 아무리 많이 배우고, 아무리 높아져도 여기에 대한 대답이 분명하지 않으면 그의 삶은 끊임없는 방황입니다. 내일 죽는다 할지라도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면 그의 죽음조차도 끝없는 방황입니다.
여기에 대한 대답은 교과서에도, 어느 대학의 과정에도, 수십년 도를 닦아도, 유학을 백번가도 여기에 대한 대답이 없습니다. 오직 이 대답은 하나님께서만 주실 수 있습니다. 이 문제가 해결되면 죽고 사는 것은 문제가 아닙니다. 왜 살아야 하는지 이유만 분명하다면 삶이 아무리 고생스러워도 넉넉히 살 수 있습니다.

자, 그런데 굉장히 철학적인 질문이죠? 내가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가를 말하기 전에, 생명이 어떻게 존재하게 됐는가? 이 대답이 먼저 주어져야 합니다.
모든 생명은 사랑의 결과로 존재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사람뿐만 아니라 공중에 나는 새 한 마리도 사랑하는 일이 있었기 때문에 태어났다는 사실입니다. 사랑이 있어야 생명이 존재한다는 것은 자연의 법칙입니다. 그러므로 사랑이 없이는 생명이 없습니다.
저는 생명이 저절로 태어났다는 진화론을 믿지 않습니다. 진화론은 생명의 원인이 되는 사랑에 대하여 한마디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저는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창조를 믿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그 생명이 존재하는 사랑에 대하여 가장 분명히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8).
아! 하나님이 사랑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에 생명을 창조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사랑이 없으면 사랑이 아니면 생명을 창조할 수가 없습니다.
산다는 것은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며 사는 것을 사람이라고 합니다. 사랑하지 않으면 사람이 아닙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이 옵니다. 사랑이 없으면 세상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세상을 움직이고 유지시키는 원인이요, 그 결과로 생명이 주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사랑이 인간들에게 어떻게 표현됐으며 그 사랑에 반응한 결과는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사랑고백
하나님께서 천연계를 통해 인간들에게 사랑을 고백하십니다. 우리가 알 수도 셀 수도 없는 수만 송이 꽃들을 보내주십니다. 튤립, 장미, 코스모스 거기다가 향수까지 뿌려서 계절마다 다른 모양으로 우리에게 바치십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몰라줘서 하나님이 편지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연애편지의 원조가 성경입니다. 성경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당신을 사랑합니다.” 창세기부터 계시록까지 사랑 빼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렇게 편지를 보내셨는데 그래도 인간들이 몰라줍니다. 그래서 그 편지가, 그 말씀이, 그 하나님이, 너무 너무 인간이 그리워서 마침내 인간이 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요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말씀만 가지고는 안되기 때문에 그래서 말씀이 사랑할 수 있는 인간이 되셨습니다. 인간과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육신이 되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입니다.

사람과 동물이 결혼할 수 없는 것처럼 온전한 사랑은 같아져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너무나 사랑하는데 인간들이 몰라줘요. 그래서 예수께서 인간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자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하나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고”(히 2:11).
거룩하게 하시는 자는 하나님이십니다.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는 우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 우리가 형제라고 합니다. 세상에! 세상 어디에 하나님을 형제로 삼고 있는 종교가 어디 있습니까?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이 사랑은 백번 천번을 얘기해도 다 이해할 수 없습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인간이 되실 수 있을까? 그리고는 나와 형제가 되다니! 복종을 강요하고 숭배받는 절대자가 아니라, 나와 사랑을 나눌 수 있는 가족이 되신 그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그냥 지구를 없는 셈 치고 새로 하나 만들면 될 텐데, 지구에 있는 인간들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니! 네! 그분이 바로 우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에 눈이 멀어버렸습니다. 우리를 향한 사랑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어떤 과학도 그것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어떤 인간의 지혜도 그 사랑의 깊이를 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사도 요한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의 높이와 깊이와 넓이를 보았을 때 찬탄과 존경의 마음이 충만하여 뭐라고 표현할 수 없어 이렇게 부르짖었습니다. “보라 아버지께서 어떠한 사랑을 우리에게 주사 하나님의 자녀라 일컬음을 얻게 하셨는고”(요일 3:1).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사랑과 무엇이 연결돼 있습니까? 사랑과 생명이 연결돼 있습니다.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존재하는가? 나는 왜 사는가? 나는 왜 오늘도 살아야 하는가? 오늘 우리는 대답을 찾게 됐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존재했고, 또한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으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롬 5:8) 우리 삶에 의미를 주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삶의 끈을 놓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면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실 정도로 우리를 사랑하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 죽음보다 강한 사랑이 십자가에서 베풀어졌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반응을 기다리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