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하나 · 신혼일기_#07. 위로

 

“여보, 이건 알아서 해야지 안하고 있으면 어떻게 해요?”
“여보, 그 일은 구체적으로 계획 세워서 하고 있어요?”
“여보, 그렇게 하면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그래요?”
그날 밤,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워야 할 잠자리에서 끊임없는 잔소리와 걱정이 이어집니다. 평소의 아내답지 않은 대화내용에 남편은 당황스럽기만 합니다. 자존심에 공격당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남편의 표정도 무겁습니다. 질문인지 책망인지 모를 말에 답변도 해보지만 전혀 예상치 못한 분위기에 의아함과 억울(?)함을 감추기는 어렵습니다. 사실 그날 남편은 잘못한 일이 없습니다. 문제는 제 마음에 있었지요.
“여보, 오늘 무슨 일 있었나? 좀 이상한데?"
저의 잔소리에 마음이 상했을 법도한데 이 상황을 정리하려는 듯 남편이 제게 묻습니다. 마음 상태를 물어주는 남편의 한마디에, 그때서야 제 마음 속 진짜 이야기가 나오려합니다.

암의 공통적인 원인이자 증상은 몸의 내, 외부가 차갑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찬 음식을 피하고 외부도 늘 따뜻하게 해 주어야 하지요. 치료의 일환으로 온열치료를 하는데 평소 햇빛 아래서 유산소 운동도 하지만, 종양부위는 근적외선 조사기를 사용하여 집중적으로 쬐어주고 있습니다. 한여름에 온열을 해주어야하니 차라리 땀이라도 줄줄 흐르면 괜찮을 텐데, 사용초기에는 땀이 제대로 배출 되지 않아 힘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그에 비하면 송골송골 땀도 나고 땀과 함께 노폐물 및 독소를 배출해주기에 사용하는 느낌은 훨씬 좋아졌지요.
그날도 여느 날처럼 온열치료를 하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종양부위를 손으로 마사지 해주며 근적외선을 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날따라 딱딱한 종양의 느낌이 참 낯설게 느껴지더군요. 딱딱한 종양을 마사지하며 제 마음까지도 굳어져버리는 느낌이랄까요. 왜 내 몸에 이런 게 생겼을까. 먹는 것, 입는 것, 생활하는 것 나름대로 관리하며 살고 있는데 다시 겪어야하는 이 증상이 좀 버겁게 느껴졌습니다. 평소 말하지 않으면 누구도 환자로 보지 않을 만큼 씩씩했던 저에게도 어두운 감정이 엄습해 온 것이죠. 천연치료로 방향을 잡고 1년 몇 개월을 지내오면서 여러 가지 증상들이 개선되어 삶의 질은 평범하게 유지되고 있었습니다. 다만 가장 확연한 증상인 종양의 크기에는 아직 큰 변화가 없기에 조금은 지친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그런 감정에 이어 걱정과 두려움이 스며들기 시작하더군요. 천연치료라 해도 어느 정도의 비용은 늘 들어가고, 귀농 후 아직 경제적인 정착이 되지 않은 상황이다 보니 여러 가지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기 시작했습니다. 그 마음이 저녁까지 이어져 애꿎은 남편에게 안 좋은 감정을 고스란히 전달하고 말았던 것입니다. 제 마음에서 투쟁했던 감정들을 남편에게 털어놓고 나니 남편은 저를 꼭 안아주며 이야기 합니다.
“여보, 그랬구나. 나는 여보가 정확히 어떤 부분을 염려하는지, 또 내가 어떤 부분이 잘못되어서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감을 못 잡겠더라고... 다그치니까 나도 좀 감정적으로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고. 여보답지 않게 너무 걱정하고 힘들어하니 나도 좀 당황스러웠지만 왜 그랬는지 알고 나니까 이해가 되네. 하지만 여보도 알다시피 이런 일은 우리에게 영향을 줄 수 없는 것들이고, 지금까지 하나님 은혜로 이겨왔듯이 앞으로도 잘 이겨낼 수 있을 거예요. 여보의 병이 하나님의 뜻 안에서 나을 수 있을 거라고 믿고 있으니까 힘내요. 내가 옆에 있잖아. 그리고 앞으로 근적외선 할 때마다 마사지는 내가 해줄게.”
마음을 이해하고 보듬어주는 따뜻한 위로에 남편의 품에 안겨 어린애마냥 한참을 펑펑 울었습니다. 때로는 힘이 들어 지쳐 우는 연약한 저에게 남편의 위로는, 이러한 저를 긍휼히 여기시는 주님의 위로를 생각하게 했습니다. 또한 염려와 걱정이 주님을 신뢰하지 못한 죄된 본성의 영향이라는 것을...... 하지만 저는 언제든 그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러한 저의 아픔까지도 보듬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을 묵상하니 조용한 감사가 흘러나왔습니다. 내게 임한 상황들이 주님의 구원의 섭리 속에 가장 최선의 길임을 믿으며,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감사하고 자족하며 이 생애를 살아내길 기도합니다. 어떤 상황이나 환경이 나를 지배할 수 없는 것은 내 안에서 일하시는 그리스도의 살아계심을 믿고 그분께 의뢰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마음에 담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초조하게 하고 피곤하게 만들 뿐, 시련을 견디는 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근심과 걱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우리의 행복이 이 세상 사물로 이루어져 있는 양, 미래의 필요를 대비하는 일을 우리의 생애의 중요한 추구 대상으로 삼게 만드는 하나님께 대한 그러한 불신을 조금도 품지 말아야 한다. 당신의 백성이 근심에 눌리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다. 그러나 우리 주께서는 우리의 길에 위험이 전혀 없다고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주께서는 그분의 백성을 죄악 세상에서 데려가시겠다고 제의하지 않으시고, 우리에게 결코 실패함이 없는 피난처를 가르쳐 주신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고 초정하신다. 그대가 손수 그대의 목에 걸어 놓은 근심과 세속적 염려의 멍에를 벗으라. 우리의 염려를 다 주께 맡겨 버리고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안식과 평화를 찾을 수 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시고 있기 때문이다.]

며칠 전 여름휴가로 기차를 타고 가까운 곳에서 도시 데이트를 했습니다. 시골에 살다보니 몇 분만 가면 계곡, 저수지, 산들이 있으니 역으로 도시에 한 번씩 가는 것이 휴가일 때도 있답니다. 하지만 사람 많고 차 많고 복잡한 도시보다는 시골이 좋은 부부는 ‘역시 시골이 좋다. 그치?’하면서 돌아옵니다. 서로를 보면 늘 웃음이 번지는 짝꿍을 주심에 감사합니다. 근심과 걱정이 삶을 지배할 수 없는 힘은 오직 예수그리스도께 있음을 경험할 때, 지금 이 순간, 주어진 하루는 축복이며 완전한 쉼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