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녀_서로 다른 형제, 푸름이와 푸른이

 

저는 얼굴도, 이름도 비슷하지만, 성향은 완전 다른 푸름, 푸른 두 아들 맘입니다. 아직은 어리지만 두 아들을 주님 안에서 키우며 고민하고 또 고민했고 하지만 또 힘들었던 상황을 잘 해결했던 일들을 여러분과 함께 얘기해보려 합니다.

저희 가정은 첫 아이를 낳았을 때 하나님을 믿는 가정으로써 주님 안에서 성경적으로 아이를 키우기를 바랐습니다. 그래서 뱃속에 있을 때부터 기도로써 매일 아이와 교제하였고 음식이며 모든 행동을 조심하였습니다. 아이가 태어나서는 항상 가정에서는 어린이 찬송이 흘러나왔고 아이에게 음식을 먹이기 시작했을 때는 철저히 자연식으로 현미를 이용한 이유식부터 시작하여 어릴 때부터 모든 음식들에 철저한 절제와 규제를 시켰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감사드리는 점은 이러한 저희 나름의 교육방침에도 큰 아이는 부모의 모든 말에 순종하는 온유한 아이로 자라났습니다. 첫아이가 초등학교에 들어가면서 모든 고기류 뿐만 아니라 우유, 달걀까지 먹지 않는 철저한 채식주의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그전까지는 성경에서 허락된 고기는 먹고 있었습니다. 문제는 급식이었습니다. 선생님께는 미리 부탁드린 상황이었지만 전학년 학생들 중에 푸름이 혼자 고기를 먹지 않게 되었고 다들 맛있게 먹는 아이들 틈에서 저희 아이 혼자 참기란 힘들었을 상황이란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참고로 푸름이는 치킨이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는 아이였죠. 그런데 하루는 학교에 다녀온 아이가 저에게 그러더군요. “엄마, 오늘 급식에 내가 젤 좋아하는 치킨이 나왔어!” “그래서 어떻게 했어?” 라고 물으니 “하나님께 기도드렸어. 치킨 먹고 싶은 마음 없어지게 해달라고... 그랬더니 안 먹고 싶어져서 안 먹었어.”하는 거였습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저는 아이의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지만 무엇보다 이렇게 부모에게 순종적이고 예수님을 닮아가는 아이를 저희에게 주신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저는 둘째 푸른이도 푸름이처럼 키우면 당연히 푸름이와 쌍둥이처럼 온유한 아이로 자랄 거라고 굳게 믿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건 저의 큰 착각이었습니다. 같은 엄마 뱃속에서 나왔고 똑같은 가정환경에서 태어났건만 먹는 것부터 훈련시키는 것까지 모든 게 달랐습니다. 밥을 먹기 시작해서는 밥에 검은 쌀 한 톨만 보여도 먹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결혼해서 흰밥은 거의 해먹지 않았습니다. 입맛에 맞는 음식이 없으면 전혀 밥을 먹지 않아서 처음엔 다른 또래아이보다도 작고 왜소했으며 자기 뜻이 이루어지지 않을 경우에는 뛰어가서 벽에 머리를 박거나 바닥에 머리를 박고 울어대는 까칠하고 고집스러운 아이로 자랐습니다. 저는 첫째 때 볼 수 없었던 둘째의 거친 행동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런 둘째에게는 첫째 때와는 다른 강한 훈육을 시키기 시작했습니다. 무섭게 아주 무섭게 화를 내었고 매질도 그때마다 세게 해보았습니다. 그러나 둘째의 행동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점점 커가면서 고집은 더욱 세어졌고 형과의 다툼까지 생기게 되었습니다. 저는 그런 푸른이를 보면서 “형은 이런 적 없는데 너는 왜 그러니?” 라며 비교까지 해가며 질책하고 더욱 혼을 내었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요? 전 분명히 첫째와 똑같이 교육시켰다고 생각하는데요.

SOSTV 선교센터에서 발행된 [교육]이란 책에 이런 놀라운 내용을 발견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에 대하여 각각 개별적인 경영을 가지고 계신다. 각 사람은 그가 받은 재능을 최대한으로 신장시켜야 한다. 그가 받은 재능이 크든지 또는 작든지 간에, 그 재능을 계발하는 일에 신실함으로 그는 존경을 받을 만한 자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 가운데에는 이기적인 경쟁을 할 여지란 있을 수가 없다. “자기로서 자기를 헤아리고 자기로서 자기를 비교하”(고후10;12)는 자는 “지혜가 없”(고후10;12)는 자이다.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벧전 4;11)할 것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고 사람에게 하듯 하지 말라 이는 유업의 상을 주께 받을 줄 앎이니 너희는 주 그리스도를 섬기느니라”(골3;23,24) 이러한 원칙을 실행함으로 행한 봉사와 습득된 교육은 귀중한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행하여지고 있는 교육은 이와는 얼마나 크게 다른가? 아주 어린 시절로부터 질투심이 배인 경쟁과 겨루는 일에만 전념하는 교육을 받아 일만 악의 뿌리인 이기심이 길러진다.”

맞습니다!! 푸른이의 잘못이 아니라 그저 첫째와 같을 거라는 착각으로 둘째의 성향이나 개성을 인정해주지 않고 그저 순종하지 않는다고만 다그쳤을 뿐입니다. 아이의 마음은 상관이 없었습니다. 그저 신앙 안에서 예수님 닮은 아이로 키우고 싶은 저의 마음이 먼저였을 뿐 저의 마음에도 역시 예수님은 안 계셨습니다. 하나님처럼 각각 개별적인 경영을 하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저와 남편은 무릎 꿇고 저희 아이를 위하여 기도하였습니다. 그리고 저희들의 잘못된 행동들에 대하여 크게 회개하였습니다. 첫째와 똑같은 환경에서 양육했다고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잘 따르는 첫째 중심으로 양육하게 되었고 둘째에 대해선 더 사랑으로 예수님을 나타내는 부모가 아니라 더 엄하기만한 부모로써 형과 비교까지 해가며 자존감마저 무너뜨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걸 깨닫게 된 전 푸른이의 잘못된 행동을 보았을 때 화를 내기 전에 온유한 목소리로 “사랑하는 우리 푸른이, 무슨 일이야? 왜 화가 났을까?” 하고 다가가 안아주고 아이의 마음을 먼저 알아주고 이해해주려 노력하였습니다. 그 후에 잘못된 행동에 대해선 확실하게 잘못된 행동임을 알려주고 스스로 잘못된 행동이라는 걸 깨닫게 하였습니다. 그러한 일이 한 번, 두 번, 세 번 횟수가 늘어남에 따라 아이의 행동은 점점 변화하기 시작했습니다. 짜증내는 아이, 떼쓰는 아이, 고집부리는 아이, 엄마를 힘들게만 했던 푸른이는 어느덧 막둥이다운 개구장이 모습도 가졌지만 애교 많고, 밝고 활기찬 우리집 보배가 되었답니다. 또한 지금은 저녁마다 갖는 가정 기도시간에 남을 위해 스스로 기도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준 푸른이가 얼마나 사랑스러운지요.

“모든 가르침에 있어서 개인지도는 매우 중요한 원리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개인적으로 지도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열 두 제자를 훈련하실 때에도 개인적인 접촉과 교제를 통해서 가르치셨다. 사랑은 의무라는 쌍둥이 형제를 가지고 있다. 사랑과 의무는 서로 나란히 서있다. 의무를 등한히 하면서 사랑하는 것은 아이들을 완고하고 괴팍스럽고 비뚤어지고 이기적이고 불순종하게 만든다. 만일 부드럽게 해주며 마음을 끄는 사랑이 없이 준엄한 의무만 강조한다면 유사한 결과를 빚어낼 것이다. 자녀들이 합당하게 훈련 받게 하기 위하여는 의무와 사랑이 혼합되지 않으면 안 된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모든 자녀들을 하나하나마다 사랑하신 것처럼 부모도 자녀를 사랑과 견고함으로 교육시켜야 한다는 걸 우리 아이들을 통해 알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푸름, 푸른이를 키우면서 많은 실수를 했습니다. 지금도 또 앞으로도 실수할 때도 있겠지만 사랑스런 아이들은 내 소유물이 아닌 주님 가족의 어린 식구라는 걸 생각하고 하늘의 형상을 반사하도록 인도하는 방법으로 가르치고 교육해야 한다는 걸 꼭 기억하는 부모가 되길 간절히 소망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