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3부_말,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는 나의 증인 나의 종으로 택함을 입었나니”(사 43:10).

언어는 하나님께서 주신 달란트입니다. 이 달란트는 모든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사용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증인들입니다. 그런데 무엇으로 하나님을 증거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의 말과 행실입니다. 우리는 올바른 말과 행실로 정당하게 주님을 대표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의 혀가, 우리의 말과 언어가 거룩하게 성화되어야 합니다.

 

1) 말이 증거함

“또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다 주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골 3:17).
말을 할 때 우리는 항상 그 말이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는 것임을 기억하고 경우에 합당하고 유익될 말을 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엇보다도 우리의 말로 주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성경은 “네 말로 의롭다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마 12:37)고 선언합니다. 입에서 발한 말로 인해 큰 잘못이 저질러질 때가 많습니다. 말이 모든 일에 원인이 됩니다. 우리는 말로써 우리 자신의 품성을 남에게 재현시키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말로 다른 사람의 마음 가운데 그들을 거짓 길로 인도하게 만드는 많은 생각의 노선들을 불러일으킵니다. 자신은 믿음의 길을 걷고 있다고 자부할지 모르나 자신이 던진 말이 때때로 다른 사람의 마음 밭에 해독을 끼치고 있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위한 표준을 높이 들어 우리의 모든 말들을 소금으로 고르게 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이 정신과 말과 태도로써 그 이름을 높이기를 원하십니다. 그들은 생각과 말과 행동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같이 되어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자처하지만 자신의 생애에 그리스도의 품성의 미덕을 나타내지 않는 사람들은 구세주를 반대로 대적해서 증거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로 하여금 공공연하게 수치를 당하게 함으로써 그분께 욕을 돌리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자처하면서도 그분의 은혜를 나타내지 않는 자들은 그들의 주장이 거짓됨을 스스로 알아야 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저속하고 값싸고 야비하고 무의미한 말, 악한 의도를 가진 말과 과장하여 하는 말을 싫어하십니다. 이런 악하고 어리석은 말은 불협화음을 일으키고 어떤 사람에게도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영성을 저해시키는 말을 하는 사람들은 사망에 이르게 하는 냄새를 풍기는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를 그의 제자로서 삼으실 수 없고 증인으로 삼으실 수 없습니다.

 

2) 잘 증거하기 위하여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엡 4:1).
우리를 부르신 부르심에 합당하게 되기 위해, 주님을 잘 증거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의 혀와 언어를 잘 훈련해야 합니다. 언어의 재능은 귀중한 달란트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는 동역자로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말과 행동으로써 나타내어야 합니다. 

만일 영혼들을 예수님께 인도할 목적으로 사람들과 교제하게 될 때에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리인이라는 것을 항상 기억하여 가볍고 가치 없고 값싼 말은 일절 입에서 나오지 않게 해야 합니다. 영혼의 가치를 깊이 생각하는 가운데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해 우리가 하나님과 더불어 일하는 동역자요 증인됨을 증거해야 합니다. 가치 없는 경박한 말과 세속적인 대화와 경솔한 말을 함으로 자신을 세상의 불신자의 수준과 동일한 수준으로 끌어내려서는 안 됩니다.
우리는 말로 성경의 진리의 원칙들을 명확하게 제시해야 하지만, 그러나 동시에 그리스도와 같은 사랑을 나타내면서 그리스도의 종교를 매력 있게 나타내야 합니다. 세상에서 방황하는 자에게 부드러운 애정을 나타내고 그리스도의 정신으로 말하고 행동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온유함으로써 옷 입고 하나님과 더불어 날마다 교제함으로써 우리의 입술에서 아름답고 유쾌하고 희망적이고 용기와 격려를 주는 말이 나가게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마음속에 좌정하여 계실 때에 말로써 모든 길에 사랑과 친절의 씨를 뿌릴 수 있습니다. 우리의 혀는 하늘의 영광을 말하고 예수님의 비할 데 없는 사랑을 이야기하기 위하여 교육을 받고 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먼저 역사할 때에 우리는 그 성령의 변화시키는 감화와 협력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주님을 잘 증거하게 될 것입니다.
유쾌하고 명랑한 말은 불유쾌하고 우울한 말을 사용하는 것보다 더 많은 값이 들지 않습니다. 날카로운 말은 영혼을 상하고 해합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싸워야 할 난관을 가지고 있고 슬픔과 낙담을 만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의 생애에 소망의 햇빛을 가져다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남을 도와주고 축복하는 말들을 함으로써 그들을 격려해야 하지 않을까요? 이런 말은 다른 사람에게뿐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꼭 같이 축복이 될 것입니다.

 

3) 성화된 혀와 대화

“경우에 합당한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니라”(잠 25:11).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다른 이들에게 도움이 되고 권장이 될 만한 말을 해야 합니다. 어떤 이는 과오를 범하여 수치와 낙담 속에 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과오와 잘못을 계속 바라봄으로써 드디어 절망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이 때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망하고 정죄하고 비판합니다. 그러나 정죄와 가혹한 말은 그 사람을 돌이키거나 회개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오히려 위로와 이해하고 용서한다는 한 줄기 햇빛 같은 따뜻한 말은 상한 심령에 향유가 되어 실수와 과오를 범한 사람을 돌이키게 합니다. 우리의 말이 마음 가운데 자라나는 부드러운 희망을 꺾어서 파괴시키는 황폐의 우박처럼 되지 않게 해야 합니다. 우리가 부드럽고 용기를 주는 말을 하지 않은 까닭에 많은 영혼들이 아무 도움 없이 외로운 가운데 굶주리게 될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경우에 합당한 말은 이슬처럼 부드럽게,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처럼 영혼의 마음을 주님께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인 우리는 현재 우리가 하고 있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영적인 귀중한 사물에 대해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에 대하여, 또한 구주의 비할 데 없는 사랑에 대하여 우리는 더 많이 자주 말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말은 찬송과 감사의 말이 되어야 합니다. 만일 정신과 마음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다면 그것이 우리의 대화에 나타날 것입니다. 위대한 신앙의 사상, 주님을 닮고자 하는 고상한 포부, 진리에 대한 명백한 이해, 사욕이 없는 의욕과 열심, 경건과 성결에 대한 갈망 등은 우리의 말 속에 열매를 맺어 우리의 마음속에 있는 것이 어떠한 것임을 드러내고 증거 할 것입니다. 이렇게 함으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말 가운데 나타나시게 되어 그 말이 사람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능력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