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기사 2부_예수님의 자취를 따라서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골 4:6).
예수님의 삶은 그리스도인의 모본이 되는데, 그 중에서도 예수님께서 사용하셨던 말은 우리가 따라야 할 귀한 모본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심령에 내리는 이슬이나 부드러운 보슬비와 같았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께서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아실 수 있도록” 그분의 입술에 은혜가 부어졌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저는 벤 풀에 내리는 비 같이, 땅을 적시는 소낙비 같이 임하리니”(시 72:6).
예수님의 생애에 나타났던 태도와 말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볼까요?

 

1) 말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온화하고 친절하고 인정 깊으셨던 예수님께서는 진리의 말씀을 하나라도 숨기지 않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결코 무례하거나 함부로 가혹하게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도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말씀하실 때 사람들의 약점을 비난하지 않으셨고, 진리를 말씀하시되 항상 사랑으로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거짓과 불신과 죄를 책망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분의 음성에는 슬픔과 사랑이 스며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성 예루살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그 성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구세주를 받아들이지 않고 배반하였지마는 그분은 그들을 따뜻한 동정심으로 대하셨습니다. 그분의 말은 항상 사려깊고 친절하셨기 때문에, 예민하고 여린 마음의 소유자들을 결코 근심하게 하거나 상하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사랑의 말이 예수님으로부터 그렇게 흘러나올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님의 사랑의 강물이 하나님의 마음에서 그분의 아들을 통하여 흘러나왔기 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생애는 하나님의 품성을 그대로 나타내 보여주신 생애였고, 자애로우시고 긍휼하신 구주 예수님은 “육신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이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가 동료들에게 나타내는 말과 태도에 의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 마 25:40). 그리고 우리가 이웃에게 하는 말의 중요성에 대해서도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아무 까닭 없이 자기 형제에게 화를 내는 자는 심판의 위험에 처하게 되고 누구든지 자기 형제에게 라가라 말하는 자는 공회의 위험에 처하게 되거니와 누구든지, 너 어리석은 자여, 하고 말하는 자는 지옥 불의 위험에 처하게 되리라.”(흠정역, 마 5:22).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속을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선물로 주심으로, 각 영혼들을 얼마나 귀중하고 높이 평가하시는지 보여 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에게 서로 경멸하는 말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자유를 주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창조를 통한 소유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의 지불을 통한 소유, 이렇게 이중적 소유권을 가지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모든 사람들을 심지어 가장 타락한 사람들까지도 존경과 친절로써 대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한 영혼을 모독하는 한 마디의 말에 대해서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책임을 물으실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도 모세의 시체에 관하여 사탄과 싸우실 때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유 1:9)셨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만일 그렇게 하셨을 것 같으면 그것은 사탄의 방법과 뜻을 반영하는 것이 되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비방은 악한 자의 무기이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 사탄은 “형제들을 참소하던 자”(계 12:10)로 불립니다. 예수님은 사탄의 무기를 하나도 이용하려고 하지 않으시고, 다만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리라”(유 1:9)는 말씀으로 그를 대항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모본은 우리를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원수와 싸울 때에라도, 보복의 정신을 가지고 말을 하거나 욕하고 비난하는 말을 사용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대변자로 서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사탄과 싸우실 때 사용하지 않으시는 말을 쓰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는 판단하고 비난하는 일을 하나님께 맡겨야 할 것입니다.

 

2) 예수님의 태도와 말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사람들의 지친 심령에 원기를 주고 슬픔에 싸인 마음에 용기를 주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의 짐을 나눠지고 하나님의 사랑과 인애와 선하심에 대하여 여러 번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사람도 무가치한 존재로 지나쳐 버리지 않고 각 영혼에게 구원의 치료제를 주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어떤 무리 가운데 있을지라도 때와 환경에 적절한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분은 형편없고 난폭하고 희망이 없어 보이는 자들에게도 소망을 고취시켜 주고, 그들도 흠 없고 순결한 하나님의 자녀의 성품을 가질 수 있다는 보증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분은 종종 사탄의 지배 아래 휩쓸려 들어가서 그의 올무에서 벗어날 힘이 없는 사람들을 만나셨을 때에, 이런 낙망하고 병들고 시험에 빠지고 타락한 자들에게 가장 부드러운 동정의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이렇게 도움을 받은 자들은 그들이 완전히 신뢰할 수 있는 한 분이 계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그들이 당신의 동정하는 귀에 고백하는 비밀을 결코 누설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주위에는 분별이 없고 난폭하고 버릇없는 자들 곧, 부정한 세리, 무모한 탕아, 불의한 사마리아 사람, 이방 나라의 군인, 거친 농부, 잡된 무리들도 모여들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런 사람들을 한 번도 업신여기거나 함부로 대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동정하는 가운데, 매 순간이 영원한 결과를 초래하게 되므로 매 순간을 소중하게 가치 있게 살도록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심령뿐만 아니라 육신도 고치시는 분이셨습니다. 그분은 자신이 목도하는 온갖 고통에 관심을 가지고 그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도와주셨으며, 그분의 친절한 말씀은 그들의 마음을 진정시키는 향유와 같았습니다. 어떤 사람도 그분이 이적을 행하셨다고 정확히 말할 수는 없었지만, 늘 치료하는 사랑의 능력이 그분으로부터 흘러나와 고난당하는 자들과 병자들을 치유하셨습니다. 그것이 그처럼 많은 사람이 예수님의 말씀을 즐겨 들은 까닭이었습니다.

가장 훌륭한 웅변은 사랑과 동정 가운데 발하는 말들입니다. 이러한 말은 혼돈된 마음에 빛을, 또는 낙담된 자에게 빛을 가져감으로 그들의 전망을 환하게 비춰줍니다. 이런 말을 발하기 위해, 예수님의 모본을 따르려면 우리는 예수님의 사랑과 성령의 역사가 필요합니다. 이 일에는 성화된 힘과 열성과 또 가장 부드러운 동정과 사랑이 요구됩니다. 불행을 확장시키는 말이 아닌, 믿음과 희망을 고무시키는 말이 우리 입에서 울려 나와야 합니다. 우리들은 예수님께서 하셨던 동정의 말로써, 용기와 격려하는 말로써, 우리 주위의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해주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품성과 생애를 바라보고, 그분의 말씀을 묵상하며, 그분의 교훈을 실천하는 산 선교사가 될 것입니다. 그들의 말은 아로새긴 은쟁반에 금사과와 같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