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아름다운 빛

 빛은 아름답다. 빛은 세상의 모든 만물에게 아름다운 색깔을 준다. 아무리 어떤 물체가 아름다운 색을 지니고 있다 해도 빛이 없으면 그 아름다운 색을 나타낼 수가 없다. 늦은 가을, 불타듯이 물든, 장미꽃보다 아름다운 빨간 단풍잎도, 금가루를 뿌려 놓은 듯 눈부신 노란 은행잎도, 빛이 없으면 아무 색을 띠지 못할 것이고, 따라서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아무 색깔도 없는 무색의 재미없는 세상이 될 것이다.

 빛은 신비하다. 빛은 잡힐 듯이 부드럽고 투명하지만 손으로 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삽시간에 지구를 돌고 돌아올 만큼 빠르고 강한 빛이라도 아픔을 하나도 느끼지 않고 손바닥으로 막을 수는 있다. 작은 아기의 손바닥으로도 막아지는 신비하고 부드러운 빛... 빛은 드러내고 투사한다. 그리고 빛은 보게 한다. 빛이 없으면 보지 못하고 보이지도 않는다.

빛이 임하시면
 
이 세상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보지 못하고 있다.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보아도 깨닫지 못한다. 마치 어둠 속에서 길을 잃은 새처럼, 보이지 않는 어두움 속에서 방황하며 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마음에 빛이 없어서이다. 마음에 빛을 가지고 있지 못하면 온 몸이 어둡다. 마음과 몸이 어두움에서 깨어나지 못하는 사람은 몇 년, 아니, 평생을 살아도 아무 변화나 깨달음 없이 태어난 그대로 똑같은 삶을 산다. 같은 길을 몇 번이고 오가며 방황하듯 똑같이 반복되는 삶을...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눈이 나쁘면 온 몸이 어두울 것이니 그러므로 네게 있는 빛이 어두우면 그 어두움이 얼마나 하겠느뇨(마 6:23). 마음에 빛을 가지고 있지 않으면 어두움 속에서 살게 된다. 아무리 빛의 행동을 흉내 내며 살아도, 마음에 빛이 없으면, 그 어두움은 주위를 암울하게 하고 불행하게 만든다.

 인간에게 있던 태초의 빛은 타락으로 말미암아 잃어버렸다. 그러나 인간의 그 잃어버린 빛을 다시 주시기 위하여 빛으로 세상에 오신 하나님(요 1:4)께서는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우리 마음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빛이 되신다. 그리고 그 빛은 항상 우리의 마음을 비추고 투시하고 드러내어, 우리의 참 모습을 보게 하고, 깨닫게 하고, 변화하게 하여 마침내 우리로 빛 그 자체가 되게 한다.

빛이 역사하시면
 
찬란한 아침 햇살이 퍼지며 온 누리의 어두움을 몰아내듯이, 하나님의 빛이 우리에게 임하시면 우리는 어두움에서 깨어나기 시작한다. 그리고 우리가 그 동안 얼마나 어두움 가운데 싸여서 살아 왔는지를 깨닫게 된다. 그 빛은 우리 자신을 보게 하는 눈을 열고, 또 우리 영혼의 깊은 암실까지 비추어 마음 속 깊이 가라앉은 찌꺼기들과 어둡고 부정적이고 악의에 찬 타락한 본성을 몰아낸다.

 누구나 빛을 마음속에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작은 손바닥으로 그 위대한 빛을 막을 수 있는 것처럼, 가장 작은 자아의 고집으로도 빛을 거절 할 수 있다. 우리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마음과 성품으로 고침을 받고 수술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빛을 향해 영혼의 문을 열면, 그 빛은 우리 속에 기꺼이 들어 오셔서 위대한 역사를 시작하신다. 영혼의 정결을 위한 놀라운 역사를... 그러나 그 빛의 역사가 영혼 깊숙이 가라앉은 찌끼들을 투시하여 그 찌꺼기들을 휘저어 올라오게 만들 때, 그래서 자신도 몰랐던 추한 모습이 그 빛에 적나라하게 드러날 때, 우리는 당황하거나 실망과 좌절로 눈물을 흘리게 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눈물과 슬픔을 자아내게 만드는 낙망스러운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하나님의 빛에 비추어보기 시작했다는 매우 고무적인 사실이다.

빛으로 고침을 받으며
 
우리 영혼의 생각과 감정들이 하나님의 빛으로 비춰보아도 섞인 것이 없는 마냥 투명한 순수한 흰 빛이 되기 위하여, 우리는 매일 하나님의 빛으로 자신을 비추어 보고, 우리의 자아를 버려야 한다. 만일 자신을 살펴볼 시간이 없는 사람에게는, 자신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게 하시기 위하여, 모든 불필요하고 분주한 것들과 소중하다고 생각하는 보물들을 주위에서 다 없애버리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섭리가 주어진다.

 자신에게 그렇게 소중하다고 생각되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 애정과 집착의 끈들이 사정없이 잘리어 나갈 때, 그 때에야 비로서 사람들은 허전함과 두려움 속에서 자신의 참 모습을 보게 되고, 그 때에야 자신의 마음을 채우고 있던 혼탁한 어두움, 하나님의 빛이 통과하지 못할 만큼 자신을 가리고 있던 빽빽한 검은 안개 - 교만과 아집으로 가득 찬 자아, 태어나지 못한 아기 같은 미성숙한 자아, 하나님의 빛과 일치하지 않는 거듭나지 못한 자아 - 를 보게 된다. 이것이 하나님의 빛으로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처음 보는 순간이다.

 아무리 작은 구멍이라도 빛이 뚫고 들어와 어두움을 쫓아내는 것처럼, 우리가 우리 영혼의 아주 작은 틈이라도 하나님을 향해 열어 놓으면, 하나님께서는 큰 빛으로 우리 영혼 속에 들어 오셔서 수술을 시작하신다. 마치 레이저 광선이 흔적 없이 어려운 수술을 해내듯, 하나님의 빛은 몇 번이고 우리 영혼의 불필요한 것들을 잘라내고, 깎아내고, 파낸다. 그리고 이 모든 수술이 성공적인지를 증명하기 위하여 우리의 모든 생각과 감정을 자극하는 시험들이 여러 번, 아주 여러 번 보내진다.

 이윽고, 시련과 시험들을 통해 들어난 우리 영혼의 발진들이, 하나님과 같지 않은 생각과 감정들을 잘라내는 하나님의 빛의 검에 의하여 사정없이 다 잘리어 나가고, 시련들을 통해 흐르던 아픔의 눈물이 잔잔히 빛나는 보석처럼 될 때, 그리고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굴복된 마음 속에 잔잔한 평화가 퍼지며 그 시련들이 더 이상 괴로운 시련이라고 느껴지지 않을 때, 하나님의 빛은 영혼을 따뜻하게 아물리시는 축복의 역사로 다가온다.

 우리의 자아가 완전히 죽어 빛으로 새롭게 태어나고, 그리하여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환한 빛으로 흡수되었을 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성품과 마음으로 바뀌어졌을 때, 그리하여 마침내 영혼이 순순한 빛 그 자체가 될 때, 그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아름다운 모습을 투영하게 된다. 그러면 지어내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나오는 것이 어두움을 밝혀주는 빛의 행동이요, 생명을 주는 빛의 말이요, 온통 주위를 환하게 만드는 빛의 분위기이다.  진리의 빛 되신 하나님이 마음에 임재하시고, 그 빛 되신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고, 그리고 그 진리의 빛이 우리 속에서 영혼을 정결하게 하는 역사를 이룰 때, 빛이 모든 만물에게 아름다운 색깔을 주듯이, 우리 영혼에도 아름다운 색깔이 주어지고, 그 때 우리는 아름다운 빛이 될 것이다!

권두언

강병국 목사

 한 세상 살다가 다음 세상으로 영원히 옮겨가지 못한다면, 현세의 삶이란 참으로 허무하기 짝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현세의 쾌락과 재미에만 집착하여 살려고 애쓰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지요.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도 한번 흥미위주로 살아보기 위하여 모으고 준비하는 시간으로 세월을 다 보내다가 막상 즐길만해 지면 병들거나 죽어버리게 되는 안타까운 현실이 우리 인생의 삶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가, 하나님과 진리를 발견하여 영원히 다시 살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하여 잠시 태어나 살다가 죽는 것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죽음 이후에는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영생을 발견 할 수 있는 기회를 얻고 태어난 사람이, 온갖 방법들을 다 동원하여 인간들을 일깨우시고 깨닫도록 힘쓰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드리고 구원의 경험으로 열매 맺게 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 위에 인을 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 얻는 모든 사람들은 다 인을 받아야 합니다.

 그런데, 마지막 날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좀 특별한 인이 쳐지게 되는데, 그들이 통과하게 될 사건들이나 경험들이 특별할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또한 그들은 자기 자신들만 겨우 구원 얻으려고 사는 것보다,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과 그분의 명예를 위해 살게 되는 훌륭한 증인들이 될 것입니다. 그들이 받게 되는 인을 성경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번 호는 이 흥미 있는 문제에 대하여 다루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여러분들과 특별하게 함께하시기를 간절하게 기도 드립니다.

 

친구에게 보내는 새해 편지

 친구야, 우리 생애의 또 다른 한 해가 막을 내렸구나. 지난 한 해 동안 살아온 내 삶의 흔적들을 돌아보면서 나는 지금 깊은 수치와 좌절감에 억눌려 있단다.

 내 옆에 서있는 기록하는 천사가 지난 한 해 동안 내가 하는 말과 행동 그리고 결정들을 듣고 보면서 얼굴을 붉히며 당황했을 모습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그저 어디론가 숨고 싶을 뿐이다. 얼마나 자주 자아를 그 정과 욕심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는데 실패했었는지&. 얼마나 자주 내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굴복하여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운 향기와 분위기를 잃어버렸었는지&. 나의 실패와 넘어짐 때문에 내가 믿는 하나님과 진리가 사람들로부터 조소와 모욕을 당했던 사실을 기억할 때마다 너무나 괴롭구나.

 아! 이제는 영원 속으로 사라져버린 생애의 기록들을 다시 바꿀 수는 없을까?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자비하신 하늘 아버지께 그 모든 것을 아뢰고 그분의 용서하심과 자비를 구하는 것이란다. 지난 날의 죄와 허물들을 되돌아 보면 도무지 얼굴을 들 수 없지만, 그분의 사랑과 자비하신 성품을 기억하면서 다시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있단다. 그분의 용서하시는 은혜는 우리의 마음 속에 평화와 다시 가납 받은 확신을 주기에 충분하다는 사실을 지나간 생애를 통하여 배울 수 있었단다. 그래서 나는 한 해의 새벽을 시작하는 이 시간에 다시 내 자신을 그분께 결정적으로 바칠 것을 결심한단다.

 친구야, 만일 너의 지나간 생애가 실패였다고 생각한다면, 이제 해가 바뀌어서 새로운 해를 맞았으니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 페이지 위에 아름다운 기록들이 기록되도록 노력하자.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되는 2007년에는 사람들과 천사들 앞에 활짝 펼쳐놓아 공개해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그런 기록들로 하늘 기록책을 채우고 싶구나. 올 해에는 나의 생애를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숨기는 비밀을 꼭 배우고 싶구나. 그리스도와 그분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 내 인생의 최우선이 되는 한 해를 만들어 가고 싶구나. 친구야, 우리가 세우는 모든 목표, 우리가 관여하는 모든 일, 우리가 즐기는 모든 일 속에서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실 수 있게 되기를 기도하자.

 금년에도 사단은 우리를 공격할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때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피 묻은 깃발 아래에서 숨을 곳을 찾을 것이다. 마귀는 중간에 서있는 자들을 공격한단다. 그러므로 너와 나의 신앙적 입장을 아무도 오해하지 못할 정도로 확고하게 하자. 결정적인 결단이 없이는 아무런 일도 하지 못한단다. 하나님을 나의 힘으로 삼고 확고한 목적을 가지고 전진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인생은 결국 실패로 돌아가게 될 것이다. 아무런 생각 없이 땅만 바라보고 살다가 가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인생이라는 시간이 너무나 귀하고 짧단다.

 친구야, 우리는 하나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수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해야 한다. 우리는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 있든지 아니면 사단의 편에 서게 된단다. 나와 함께 아니하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요 나와 함께 모으지 아니하는 자는 헤치는 자니라 마 12:30. 지난 해를 돌이켜 볼 때, 확고한 결심과 결단 없이 살아갈 때에는 언제나 마귀의 유혹에 넘어졌었던 기억이 나는구나. 마음에 찔림을 받고 양심이 하나님의 음성을 분명하게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아를 완전히 굴복시키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바치는 지점까지 결심하지 않기 때문에 영적인 전쟁에서 패배했던 적이 얼마나 많았는지&. 세상과 우상을 버리되 완전히 버려야 한다. 중간에 서있는 자들은 결국 실패와 좌절과 멸망 속으로 걸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한 대가로 그분께서 주시는 조용한 평안을 얻을 수만 있다면 무엇이 아깝고 무엇이 두려울 것인가!

 세상을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모든 시간과 노력을 아끼지 않으면서 하나님을 위한 일에 있어서는 언제나 중간에서 머뭇거리는 것이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지고 있는 영적 수준이다. 절반은 세상 사람이고 나머지 절반은 그리스도인이라는 말은 완전한 세상 사람을 뜻한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의와 참된 거룩함을 체험하고자 하지만, 그것이 단순한 소원에서 그쳐버리고 말기 때문에 잠시 마음 속에 머물러 있다가 사라지고 만다. 이러한 사람들의 영적 경험은 감정 이상으로 발전하지 못한다. 그들은 모래 위에 그들의 신앙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환난과 두려움의 홍수가 닥치면 믿음은 쉽게 무너져 내리고 만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정적인 결심과 헌신을 가지고 우리의 소원을 실행에 옮기도록 하자. 친구야, 마지막 시대에 하늘을 위하여 준비하는 자들은 진리 때문에 당하는 고난과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자들이란다. 순종의 입구에 서서 두리번거리지만 결코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순종하기로 선택하지 않는 사람들, 바로 그들이 중간에 서있는 자들이다.

 그리스도인이란 말 속에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깊은 의미가 담겨 있다. 온순함, 착함, 부드러움 등은 좋은 특성이지만 그리스도인은 그것 이상의 성품을 지녀야 한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당신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정해주신 길은 좁은 길, 극기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 길 위에 놓여 있는 어려움과 낙망을 뚫고 전진하는 데에는 부드럽고 온순한 것 이상의 품성이 요구된다. 친구야, 우리는 힘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가만히 앉아서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순탄해지고 모든 장애물이 제거되기를 기다리지 않는 사람, 슬픔과 낙망으로 인하여 지쳐서 앉아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친절과 용기를 줄 수 있는 사람, 바로 이런 사람들이 힘있는 사람이다. 어떠한 환경 속에서도 쉽게 포기하지 않고 쉽게 우쭐거리지 않으며 쉽게 매수되거나 겁을 내지 않을 만큼 자신이 걷고 있는 길에 대하여 확신이 가득 찬 사람이 힘있는 사람이다. 친구야, 나는 금년에는 꼭 힘있는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고 싶구나. 너도 그렇게 하지 않으련?

 이제 우리의 머리 위에도 하얀 서리가 조금씩 내리고 있구나. 우리 앞에 조금 남아 있는 시간을 부주의하게 소모해 버린다면, 우리는 후회와 가책으로 인생의 마지막 황혼기를 보내게 될 것이다. 친구야, 나는 결코 그렇게 되고 싶지 않다. 앞에는 내가 들어갈 무덤이 열려 있고, 뒤에는 죄와 방탕함으로 인생의 대부분을 낭비한 삶을 살고 싶지 않다. 나름대로 행복을 찾기 위하여 몸부림쳤지만, 게으름과 잘못된 선택으로 인하여 참된 행복과 진리를 찾지 못한 채 삶의 종지부를 찍게 되는 노인이 되고 싶지 않다. 인생을 다 산 후에 내가 얻은 것은 단지 후회와 절망 뿐이다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 비록 몸은 늙어서 쇠약할지라도, 마음 속에는 진리와 진리에 대한 확신으로 가득 찬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다. 친구야, 인생은 매우 짧다. 중간에 서서 서성거리기에는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이 너무나 짧구나. 마지막 날에 잘 했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라는 구세주의 칭찬을 듣는 순간까지 우리의 헌신과 결심이 유지될 수 있도록 서로를 위하여 기도하도록 하자. 어떤 값을 치르고 어떤 희생이 지불될지라도 너와 나는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좁은 길을 끝까지 함께 걸어가도록 하자.

 친구야, 우리가 그리스도께 온전히 돌아가는 데에는 때때로 특별한 노력과 투쟁이 요구된단다. 죄를 버리고 악에서 돌아서는 일은 우리 스스로가 해야 할 의무란다. 하나님의 은혜가 베드로에게 그물을 버리고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요구했던 것처럼 그리스도의 피로 얼룩진 은혜는 오늘도 너와 나에게 세상과 자아를 버릴 것을 요구하고 있단다. 우리가 하는 말과 행동, 계획과 생각은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을 반사하고 있니?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하나님의 아들의 죽음이 치러졌다는 진리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우리의 말과 행동은 전혀 새로운 것으로 변화될 것이며 더 이상 중간에 서서 머뭇거리지 않게 될 것이다. 친구야, 이 해가 다 가고 또 하나의 새로운 해가 시작될 무렵에는 너와 내가 지금보다 더 높은 영적 경험 속에 있게 되기를 기도하자. 하나님의 은혜가 너와 네 가정에 항상 충만하기를 바라면서&.

미국 조지아의 시골 친구가

 

교회를 떠난 이유와 돌아온 이유

 나는 모태로부터 교회에 다녔다. 사람들은 나 같은 사람을 모태 교인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대부분의 모태 교인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심각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교회에 나가는 분명한 이유와 목적이 없다는 것이다.

 유모차에 실려서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어머니 등에 업혀서 주일마다 교회에 나갔던 사람들이 모태 교인이다. 나의 부모님 역시 비싼 돈을 들여서 나를 교회 학교에 보냈고, 주말마다 주일 학교에 출석시켜서 성경을 배우도록 했다. 이런 생활을 하는 동안, 나는 참 신앙을 배우는 대신, 내가 어떻게 해야 부모님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가를 배우게 되었다. 그래서 어려서부터 잘 믿는 사람흉내를 내는 일에 매우 능숙하게 되었다. 경건한 모습으로 찬미를 부르고 조금 떨리는 음성으로 기도를 하고 그리스도인처럼 말하는 기술을 일찍부터 터득하였다. 부모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 위하여 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다.

 교회 안에 있는 교인들이 다 비슷한 수준에 있었기 때문에, 나는 참된 신앙이 가지고 있는 진정한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기회를 얻지 못했다. 내 주변 사람들이 다 비슷한 믿음과 비슷한 신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좀 더 깊은 신앙의 경지와 경험으로 들어가야만 하는 필요를 절실하게 느낄 수가 없었다. 성경에 대한 얕은 지식과 메마른 신앙 고백, 그리고 정기적인 교회 출석으로 구원이 보장되는 듯한 분위기에 나는 너무나 익숙해 있었다. 나는 교회 안에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느낄 수 없었으며 의식과 전통 그리고 무의미하게 반복되는 기도에 너무나 익숙해 있었다. 그런 교회로부터 나는 교회를 계속 다녀야만 하는 분명한 이유를 발견할 수 없었다.

 성장하여 부모의 간섭과 영향력으로부터 독립할 수 있는 나이가 되자, 나는 교회를 포기하고 떠났다. 어렸을 때부터 늘 한쪽 마음 속에 숨어 있었지만 주변의 눈치 때문에 표현하지 못했던 것들을 마음껏 해보고 싶었다. 내가 좋아하는 생활과 취미를 즐기면서 살고 싶었다. 교회에서 사귀었던 친구들을 버리고 세상에서 만난 친구들과 어울리기 시작하였다. 어떤 면에 있어서, 마음으로는 세상을 그리워하면서 겉으로는 그렇지 않은 척하면서 살아가는 교회 친구들보다 자신이 생각하고 믿는 그대로 살아가는 세상 친구들이 더 정직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대학에 가서 새로운 삶을 맛보면서 나는 더욱 더 세상 깊은 곳으로 들어가게 되었다. 대학을 마치고 좋은 직장을 가지게 되자, 나는 내가 꿈꾸던 모든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였다. 세상에서 잘 나가는 사람이라는 말을 듣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웠던지&. 나는 가진 것이 많아야 인생이 재미있고 행복하다는 말을 진리처럼 믿었다. 지혜의 사람 솔로몬은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도다라는 말로 인생을 요약하였지만(전 1:2), 나는 그 말을 이해할 수 없었고 동의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인생의 쾌락은 그 진정한 모습을 서서히 드러냈다. 오랜 기간의 부절제는 건강을 상하게 하였고, 마음은 피로와 참된 행복이 결여된 삶으로 인하여 피폐해졌다. 나는 내 인생이 심각하게 잘못되어 가고 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낮에는 격무로 인생의 허망함을 잊었고, 저녁에는 친구들과의 한 잔 술로 마음의 텅 빔을 채울 수 있었지만, 밤에 어두운 사원 아파트 방에 들어와 침대에 눕는 순간, 허무와 외로움이 밀려왔다. 그러던 어느 날부터 마음 한 쪽 깊은 곳에서 한 음성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점점 분명하게 들려온 그 음성은, 내가 다시 너에게 기회를 주마였다. 나는 하나님께서 줄곧 내게 가까이 계셨음을 느꼈다. 어쩌면 마지막이 될지 모르는 그 기회를 결코 놓칠 수가 없었다. 나는 내 삶이 싫었다. 쾌락도 싫었고, 돈도 싫었고, 모든 것이 무의미하게 느껴졌다. 나는 실로 오랜 만에 기도를 하게 되었다. 내가 드린 기도는 예전에 부모님과 선생님이 시켜서 형식적으로 드렸던 그런 기도가 아니었다. 내 기도는 하나님을 간절히 찾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 차 있었다. 성경을 읽을 때에도 내 마음은 쿵쾅거렸고 흥분되었다. 성경은 내게 전혀 새로운 책이 되었다. 값비싼 옥합을 깨뜨려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씻겼던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었고, 애굽 왕의 자리를 포기하고 광야 생활을 하기로 결심했던 모세의 마음이 내 마음이 되었으며, 성경에 등장하는 모든 위대한 사람들의 말과 심령이 너무나 내 마음에 와 닿았다. 그렇다. 내 마음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자, 성경은 더 이상 어렵거나 이상한 책이 아니었고, 기도는 더 이상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것이 될 수가 없었다. 나는 드디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다!

 인생이 재미있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지 않는다. 인생의 허무를 느끼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을 필요를 느끼지 않는다. 돈이 좋은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이 존재하지 않기를 바라게 된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은 내게 시작이고 끝이 되셨다. 마음은 행복과 기쁨과 감사로 가득 차게 되었으며 어두운 밤에도 외로움과 허무함을 전혀 느끼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포근한 수면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가난한 사람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주고, 병든 사람의 귀에 위로를 들려 줄 수 있으며,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의 길을 드디어 발견하였다. 솔로몬 왕의 말대로 인생은 허무한 것이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기회와 축복을 발견할 수 있으며, 그것들을 붙잡고 예수님을 만나기 위하여 하늘 나라로 가게 된다! 정말 정말 감사합니다. 나의 하나님!

 

기억과 추억을 지우는 치매

 현대 의학이 발달됨에 따라서 인간의 평균 수명은 눈에 뜨이게 늘어나고 있다. 노인으로 접어드는 대부분의 장년들은 80세 이상의 장수를 기대하고 살아가고 있다.

 평균 수명이 연장됨에 따라서 한가지 뚜렷하게 증가되는 추세의 질병이 있는데 그것은 치매이다. 치매라고 불리우는 치명적인 질병에 대한 염려와 관심이 크게 증대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망각은 신이 인간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그러나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모든 추억과 기억이 망각 속에 감금당하고 결국에는 자기 자신의 존재조차 잃어버린 채 인생을 하직하게 만드는 질병이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노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두려운 질병이 될 것이다. 전 세계적으로 65세 이상 노인들의 약 10%가 치매에 시달리고 있으며 80세 이상의 노인 5명 중에서 1명은 치매로 고통당하고 있다.

 우리의 뇌가 정상적으로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신경세포가 정상적으로 활동을 해야 하는데 어떤 원인에 의하여 신경세포가 죽고 뇌조직이 점점 줄어들게 될 경우, 치매나 혼돈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치매에는 알츠하이머가 40%를 차지할 정도로 가장 많고 혈관성 치매가 35% 정도인데 이것은 동맥경화로 인하여 뇌혈관이 막히거나 터져서 뇌조직의 기능을 상실하기 때문에 유발되는 치매이며, 그밖에 원인으로 인한 치매가 25%를 차지한다.

노인성 치매, 알츠하이머
 
알츠하이머는 미국의 전 대통령인 로날드 레이건으로 인하여 일반 대중에게 널리 알려지게 된 치매인데, 뇌세포가 자연적으로 파괴되면서 발병된다. 이런 경우에는 치매가 왔다고 할지라도 평균 8~10년은 생존하게 된다. 알츠하이머 병은 독일인 의사인 알로이스 알츠하이머 박사의 이름을 따서 붙인 병명이다. 그는 기억을 상실하는 병을 앓다가 사망한 여인의 뇌조직에서 특징적인 병리소견을 발견하였다. 알츠하이머는 뇌 속에 두가지 종류의 독성 단백질이 과다하게 축적됨으로써 신경세포들이 죽어가게 되는 질병이다.

 알츠하이머의 첫번째 증상은 가벼운 건망증이다. 병이 진행됨에 따라서 언어구사력, 이해력, 읽고 쓰는 능력 등의 장애가 발생된다. 이런 장애는 결국 정신적인 문제로 발전되기도 하여 환자들은 불안해 하기도 하고 매우 공격적이 될 수도 있으며 집을 나와서 길을 잃어버리고 거리를 방황할 수도 있다. 치매 환자는 기억력이 떨어지기 때문에 자신에게 이미 치매 증상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가족들의 세심한 관찰이 반드시 필요하다.

혈관성 치매
 
혈관성 치매는 뇌혈관이 막히거나 좁아진 것이 원인이 되어 나타나며 반복되는 뇌졸증에 의해서도 유발된다. 혈관성 치매는 인지 능력 등 정신 능력이 조금 나빠졌다가 회복되고 또 갑자기 악화되는 식의 단계적인 악화 양상을 보이곤 한다. 또한 팔다리 등에 마비가 오거나 언어장애, 구동장애 또는 시각장애 등도 흔히 나타난다. 치매는 반드시 나이 많은 노인에게만 찾아오는 병이 아니다. 병원을 찾는 치매 환자의 비율을 보면 50대 9%, 60대 30%, 70대 44%, 80대 15%이며, 65세가 넘으면 10명 중 한 명이 치매에 걸린다고 볼 수 있다. 혈관성 치매의 경우, 채식으로 이루어진 건강한 식생활과 운동을 통하여 그 증상이 회복될 수 있으며 예방이 가능하다.

치매와 술과 담배
 
술과 담배가 치매에 직접적인 원인이 된다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간접적인 영향을 주는 것은 확실하다. 특히 술은 뇌세포를 파괴하기 때문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다. 오랜 기간 동안 과음하는 사람들은 알코올성 치매에 걸리기 쉽다.

치매와 건망증
 
건망증 환자는 자신이 어떤 기억을 상실했다는 사실을 잘 인식한다. 그러나 치매 환자는 자신의 기억력이 상실되었다는 사실을 모른다. 치매와 건망증을 초기에 구별하기란 매우 어렵지만, 일반적으로 치매는 과거에 자신이 경험했거나 일어났던 일에 대한 기억을 전반적으로 광범위하게 잊어버리지만, 이에 반해서 건망증은 기억된 것의 일부를 선택적으로 잊어버리는 것으로 구분 할 수 있다. 치매는 인식하는 능력과 판단력에 전반적으로 장애를 가져오지만, 건망증은 인식능력과 판단력이 대부분 온전하게 보존된다. 그러나 심한 건망증 환자들의 경우 뇌조직에 알츠하이머와 같은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치매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초등학교 수준의 산수문제를 꾸준히 푸는 두뇌훈련도 유용한 효과를 나타낸다. 치매에 걸리면 신경세포 가지가 점점 없어지는데 이럴 때 머리를 쓰면 마치 운동으로 근육이 단련되듯이 신경세포 가지가 많이 생겨나기 때문에 신경세포의 사멸로 인한 손실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치매의 예방과 치료
1. 건강한 식생활을 통한 예방이 무엇보다도 중요하다. 지금까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혈관과 혈액을 건강하게 잘 관리할 경우, 노인성 치매의 위험률도 저하된다고 한다. 그러므로 치매의 예방에 있어서 풍부한 과일과 채식으로 이루어진 식생활은 매우 중요한 방법이 된다.

2. 규칙적인 운동으로 뇌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 치매를 예방하는데 있어서 가장 좋은 운동, 그중에서도 신경정신과 의사들이 가장 권하는 운동은 걷기이다
. 걸으면 뇌의 집중력이 자극되기 때문에 뇌조직이 줄어드는 것을 막아주고 뇌세포의 노화를 방지해 준다. 실제로 치매에 걸린 노인들에게 꾸준한 걷기운동을 시켰더니 그 증상이 놀라울 정도로 호전된 경우들이 많이 있다. 치매의 예방과 치료에 있어서 운동은 종종 기적을 낳는다. 운동을 하면 뇌세포가 활성화되고 혈류량도 늘어나게 되며 뇌 안에 신경세포를 보호하고 기능을 활성화시키는 생장인자가 많이 늘어나는 것을 실험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3. 엽산이 함유된 식품을 많이 섭취해야 한다.
치매의 원인 중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관리하지 않는 고혈압과 비만이다. 치매 판정을 받은 환자들의 혈액검사를 해보면 혈액 속의 호모시스테인 농도가 높은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호모시스테인은 콜레스테롤이나 흡연처럼 혈관을 손상시키는 물질이다. 이 물질이 혈중 내에 증가될 경우 치매에 걸릴 확률은 증대된다. 혈관성 치매의 중요한 위험인자인 호모시스테인을 쉽게 낮출 수 있는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비타민 B군인 엽산을 섭취하는 것이다. 엽산의 하루 권장량은 0.2~0.25g 인데 많이 먹어도 소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에 염려하지 않아도 된다. 대부분의 한국 사람들은 엽산의 섭취율이 매우 낮은 식사를 하고 있는 것이 문제이다. 엽산은 아주 짙은 색깔의 시금치, 근대, 아스파라거스, 브로콜리 같은 녹색의 채소에 많이 함유되어 있고, 콩종류에는 강낭콩과 완두콩에 많으며, 과일 중에는 오렌지나 바나나에 다량 함유되어 있다.

4. 활발한 여가 활동, 적극적인 지적 활동, 적절한 체중관리, 효율적인 당뇨치료, 금연, 금주는 모두 치매 예방에 매우 절대적인 관계를 가지고 있다.

5. 너무 늙어서 육체의 힘과 뇌의 기능이 저하되기 전에, 아직 젊고 힘이 있을 때에 하나님을 경외하라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이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 전도서 12장 1절

 

1부 - 하나님의 인이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인은 성경에 많이 언급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구원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꼭 받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하나님의 인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았다. 유익한 연구가 되기를 바란다. - 편집실 -

 하나님의 인이라고 하면 그리스도인들에게 생소하고 조금 어렵게 느껴질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인을 쉽게 표현하여 하나님의 표라고 하면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을 것이다. 곧, 하나님께서 당신의 소유로 인정하시는 표, 또한 하나님의 권위의 표로서의 인을 생각하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인에 대하여 함께 연구하여 보자.

1) 인 (seal)
 
인(seal)이란 무엇인가? 고대에는 여러 가지 중요한 문서들이나 자신의 소유에 봉인을 하는 일이 많았다. 이것을 가리켜 인(seal)이라고 했다. 고대 사람들은 개인은 물론, 정부 관리들, 사업 단체들이 인으로써 도장을 사용했는데, 도장에는 주인의 이름이 새기어져 있었고, 때로는 이교 신들이나 이상한 짐승들의 모양을 새기기도 했다. 인이 쳐지면, 그것은 그 인을 친 사람의 소유라는 것이 인정되었고, 또 인을 친 사람의 권위가 인정되었다. 또한 인(seal; 도장, 봉함)은 법적인 문서와 관계 있는 용어이다. 모든 공식적인 문서에는 항상 그 문서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사람의 인이 찍혀져야 한다. 각 국가의 정부마다 법적인 문서에 찍을 수 있는 인을 가지고 있다. 인을 찍는 목적은, 인이 찍혀진 문서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함이다. 특히, 국회에서 통과된 나라의 법규 문에는 반드시 국가 수뇌인 대통령의 인이 찍혀져야 하는데, 왜냐하면 법 조항의 권위와 집행력을 대통령이 보장하기 때문이다.


 인에는 반드시 다음과 같은 3가지의 내용이 담겨 있어야 한다:
1. 통치자의 이름 
2. 통치자의 칭호 
3. 통치 구역

 미국 대통령의 인에는 무엇이 새겨져 있는지 살펴보자. 미 합중국 대통령 죠지 부시의 인(印)은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1. 죠지 부시 (통치자의 이름) 
2. 대통령 (통치자의 칭호)
3. 미합중국 (통치 구역)

 대통령의 인이 어떤 공식 문서에 찍힐 때, 그것은 대통령의 권위에 의해서 실시될 것을 보장하는 것을 의미한다.

2) 하나님의 인
1.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
 
하나님의 인에 대하여 중요하게 쓰여진 성경의 장은 요한계시록 7장이다. 계시록 7장을 보면, 천사가 구원 받을 백성들, 곧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치려는 장면이 나온다. 함께 성경절을 보며 연구하여 보자.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2~3).

 이 성경 구절에는 하늘에서 다른 천사가 내려오며 땅을 멸망시키려고 하는 천사에게 큰 소리로 말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진 천사는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들의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아 안전하게 될 때까지 세상을 해하지 말라고 외친다. 이것은 계시록 14장 1절에 나오는 144,000(십 사만 사천인), 곧 시온산에 어린 양과 함께 설 사람들의 이마에 쓰여진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과 관련이 있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이것이 과연 무슨 뜻인가? 이것은 구원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쳐지는 하나님의 인으로서,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그들의 성품이 하나님의 성품, 곧 십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과 똑같이 변화함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의 소유라고 인침을 받는 것을 뜻한다. 그들의 이마에는 구원 받을 하나님의 자녀들이 받는 표인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 쳐지므로 멸망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

 그런데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그리스도인이 회개하고 거듭날 때에 받는 성령의 인과는 다르다. 에베소서 1:13에 설명하는 성령의 인은 구원 얻을 자들이 모두 다 받아야 할 인으로서 성령의 거듭남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지만, 계시록 7장이 말하고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성격이 좀 다르다. 그것은 사방 바람이 놓이기 직전에 쳐지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 환란이 닥쳐오는 세상 종말에 살고 있는 자들이 받게 되는 경험임에 틀림이 없다.

 또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란, 회개 하여 성령의 인을 받고 나서 계속하여 자아가 죽고 성령께서 내재하시는 경험을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열매를 맺은 성도들에게 쳐지는 것이다. 구원 얻는 모든 성도들은 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살고 있는 마지막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모든 죄를 극복하여 늦은비 성령을 받을 준비를 갖추고, 위로부터 내리는 능력을 받아 바벨론을 향하여 큰 소리 외침에 참여할 준비를 갖춘 자들 위에만 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계명을 지키는 경험을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마음으로 하는 경험이며,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죄를 승리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2. 하나님의 권위의 표
 
인은 소유를 나타내는 동시에 또 권위의 표도 된다. 세상의 법이 최고 통치권자의 인에 의해서 그 권위가 보장되어 있는 것처럼, 하나님의 법도 하나님의 인에 의해서 그 권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법(계명)과 하나님의 인 사이에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 이사야 8:16을 읽어보자: 너는 증거의 말씀을 싸매며, 율법을 나의 제자 중에 봉함(seal; 인을 치라)하라. 실제적으로, 하나님의 법은 제자들, 즉 하나님을 신실하게 따르는 사람들에게 봉함된다(인이 된다).

 그런데, 하나님의 법이 제자들의 어디에 봉함될까(인이 쳐질까)? 히브리서 10:16은 율법이 봉함되는(인쳐지는) 장소를 말해준다: 주께서 가라사대 그 날 후로는 저희와 세울 언약이 이것이라 하시고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 바로 이것이, 새 언약 하에서 하나님의 율법이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에게 봉함되는 방법이다. 하나님의 율법이 마음에 기록되는 사실을, 성경은 이마에 기록되는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러면 하나님의 법 중에서 어떤 부분이 하나님의 인의 역할을 하는가? 우선 하나님의 법, 계명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과 권위를 포함하고 있는 법을 찾아보자. 한 국가의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의 직책에 의해서 권한을 수행한다. 하나님께서도 온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로서의 권한에 근거해서 당신의 권위를 주장하신다. 예레미야 10:10-12 절에는오직 여호와는 참 하나님이시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한 왕이시라 ... 너희는 이같이 그들에게 이르기를 천지를 짓지 아니한 신들은 땅 위에서, 이 하늘 아래서 망하리라 하라. 여호와께서 그 권능으로 땅을 지으셨고, 그 지혜로 세계를 세우셨고 그 명철로 하늘들을 펴셨으며. 또한 시편96:5에 나오는 말씀을 보자:만방의 모든 신은 헛 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이사야 40:25-26에 역시 하나님의 창조와 권위를 증거하고 있다;거룩하신 자가 가라사대 그런즉 너희가 나를 누구에게 비기며 나로 그와 동등이 되게 하겠느냐 하시느니라. 자, 너희는 눈을 높이 들어 누가 이 모든 것을 창조하였나 보라.

 참 신을 구별하는 유일한 증거는, 창조의 권능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진리이고 유일신이라는 사실을 창조에 근거하여서 주장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창조의 권능을 사람들이 언제나 기억함으로써, 사람들이 참 하나님을 구별할 수 있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하여 그분께서는 당신 자신이 창조주이심을 증거하시고 그분의 권위를 나타내시는 표를 태초의 창조 주일에 만들어 놓으셨다. 하나님의 지으시던 일이 일곱째 날이 이를 때에 마치니 그 지으시던 일이 다하므로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일곱째 날을 복 주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이 날에 안식하셨음이더라창세기 2:2-3. 주의 날, 안식일은 하나님과 다른 잡신들을 구별케 하는 창조의 권능을 기념하는 기념일이다.

3. 계명 속에 들어 있는 인
 
하나님의 법은 하나님의 인에 의해서 그 권위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런데 계명 중에서 어떤 것이 하나님의 권위를 나타내는 것일까? 인에는 반드시 통치자의 이름과 직위와 통치 구역이 포함되어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기록하여 주셨던 영원 불변의 십계명을 살펴보면, 오직 한 계명이 인의 조건을 충족시킨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 그 계명에는 인을 구성하는 3가지 요구 조건들이 모두 들어 있다.

 십계명의 중심부에 하나님의 창조 능력을 기념하는 법이 있는데, 그 계명에 바로 인의 3가지 구성요소가 들어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1. 통치자의 이름)의 안식일인즉&&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2. 통치 구역)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3. 창조주, 통치권자의 직위),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출애굽기 20:8-11.

 넷째 계명인 안식일 계명은 하나님의 율법에서 인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며, 지구를 통치하는 유일한 신, 세상을 창조하신 신이 누구인가를 증명하는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십계명의 넷째 계명에 당신의 인을 기록해 놓으심으로써, 나머지 모든 계명도 동일한 하나님의 권위로 보장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계신다.

 주의 날, 하나님의 성일을 지킨다는 뜻은, 하나님은 창조주이시고,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이며, 모든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권능과 능력에 의지하여 우리가 죄를 그치며 안식하는 경험을 가지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앞에서 배운대로 하나님의 인이란 하나님의 특별한 소유물이라는 표이며, 또 하나님의 권위의 표로서 하나님의 인은 그분의 계명에 나타나 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의 인정의 표로서 사단의 모든 시험을 통과하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것을 이긴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들이 받는 표인 것이다.

2부 - 누가 하나님의 인을 받을 것인가?

 하나님의 인은 성경에 많이 언급되어 있는 아주 중요한 주제이다. 왜냐하면, 마지막에 구원을 받을 하나님의 백성들이 꼭 받아야 할 것이 하나님의 인이기 때문이다. 이번 호 신앙 기사에서는 하나님의 인에 대하여 집중적으로 다루어 보았다. 유익한 연구가 되기를 바란다. - 편집실 -

 ¶¶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의 실례들ÀÀ
1)  에스겔 9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표를 받는 사람들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에스겔 9장 4절).  성경 에스겔서 9장을 보면, 천사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표, 즉 하나님의 인을 치는 일에 대한 상징적인 묘사가 나온다. 1절부터 보면, 인치는 천사가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표를 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자세히 읽어보면 어떤 사람들에게 인을 치는가(표를 하는가)를 알 수 있다.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인(표)을 받는가?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은 예루살렘 중에 행하여지는 가증한 일을 인하여 탄식하는 사람들이다. 예루살렘에서 행해지는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운다는 것이 무슨 뜻일까? 그것은 바로 자신의 부족과 죄악과 허물을 인하여 울 뿐 아니라, 이 땅에 가득한 죄악상과 특히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공언하며 말하는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에 가득 차 있는 죄악을 보고 안타까워 탄식하며 슬퍼한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은 회개한 사람들이다. 그들은 땅에서 일어나는 죄악들 때문에 탄식하며 주께 부르짖는다. 그리고 또 말할 수 없는 슬픔으로 그들 자신의 범죄 때문에 주님 앞에 스스로를 낮춘다. 그들이 자신이 심히 죄스러움을 그렇게 분명하게 깨닫는 것은 그들이 그리스도께 더욱 가까이 이끌려 가고 있고, 그들의 눈이 그분의 완전한 순결을 주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족을 인하여 하나님을 슬프시게 한 죄를 깨달은 사람은 자기의 죄를 미워하여 버리고, 어떻게 하면 아버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까 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깨닫고,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거듭나서 새로운 생애를 사는 체험에 대하여 다른 영혼들에게 전하여 주며,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며 마음대로 사는 사람들에게 눈물로써 호소한다.

 그리고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사랑을 이웃과 형제들에게 나누어 주며 하나님의 뜻과 진리를 전하는 일에 온 힘을 다하게 된다. 그리고 그들의 소망을 이 세상에 두지 않고 저 영원한 본향인 하늘에 두며, 그들의 세속적인 모든 욕망을 포기하고, 감사하는 가운데 하나님과 매일 동행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그들의 이마에는 사람이 식별할 수 없는 하나님의 표가 쳐지고 그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이 된다.

2)  스가랴서 3장에 나타난 인을 받는 사람들
 
대제사장 여호수아는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섰고 사단은 그의 우편에 서서 그를 대적하는 것을 여호와께서 내게 보이시니라.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 하실 때에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섰는지라(스가랴 3:1~3).

 스가랴 3장에는 스가랴 선지자가 본 이상(異像)이 나와 있다. 선지자 스가랴는 대제사장 여호수아가 더러운 옷을 입고(슥 3:3) 여호와의 사자 앞에 서서 큰 고통 중에 처한 그의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자비를 간구하고 있는 것을 본다. 그런데 사단은 그를 대항하기 위하여 그의 오른편에 서 있는 것을 1절을 보아 알 수 있다. 여호수아는 크신 천사께 그의 자신의 죄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하며 간절하게 용서를 간구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 사단의 대적(고소)을 받으며,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총을 간구하고 있는 것이다.

 그 때, 여호와 하나님께서 명령을 내리신다. 여호와께서 자기 앞에 선 자들에게 명하사 그 더러운 옷을 벗기라 하시고 또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 하시기로 내가 말하되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소서 하매 곧 정한 관을 그 머리에 씌우며 옷을 입히고 여호와의 사자는 곁에 섰더라(슥 3:4~5).

 비록 사단이 그와 백성들의 죄를 들추어내어 고소하고 비난할 지라도,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고 간절히 회개한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보장하시고 그 표로서 정한 관을 머리에 씌워주신다. 이 정한 관은 옛날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소제도에서 찾을 수 있는 의미의 단어인데, 이것은 이스라엘 백성의 대제사장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때 입던 제사장의 예복 중, 제사장이 머리에 쓰던 관을 가리킨다. 출애굽기 39장 30절에 보면 그들이 또 정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인을 새김같이 그 위에 여호와께 성결이라 새기고라는 말씀이 나온다. 옛날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쓰는 관은 흰 세마포 두건으로 만들었으며 거기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새긴 금관이 청색 끈으로 매어져 있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성결을 뜻했는데, 특별히 모든 죄로부터 정결함을 받았을 뿐 아니라, 모든 죄를 승리한 것을 의미했다. 머리에 정한 관을 씌운다는 의미는 이마가 정결하다는 표를 받는 것을 뜻하며, 이것은 상징적으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받는 것을 뜻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받을 사람들은, 스갸랴 3장에서 여호수아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위해 탄원하고 있었던 것처럼, 통회하는 마음과 열렬한 기도로써 예수님께 용서와 구원을 위하여 탄원하는 사람들이다.

 시험하는 자(사단)가 여호수아를 대적하기 위하여 곁에 서 있던 것처럼, 사단은 지금도 하나님의 백성들을 비난하기 위하여 곁에 서 있다. 그(사단)는 그들의 더러운 옷, 그들의 결점 많은 품성을 지적한다. 그리고 구속주의 이름을 더럽혀 온 그들의 약점과 어리석음, 그들의 배은망덕의 죄, 그리스도를 닮지 않은 그들의 모습을 제시한다. 그는, 그들의 상황이 절망적이며, 더러워진 그들의 오점은 결코 정결해질 수 없다는 생각을 넣어주며 영혼을 위협하려고 노력한다.

 사실 하나님의 백성들은 많은 점에서 매우 결함이 많다. 그러나 그리스도를 따르는 사람들은 죄를 지었을지라도 그들 스스로를 악의 지배에 맡기지는 않았다. 그들은 그들의 죄를 슬퍼하고 버리며, 겸손하고 통회하는 마음으로 주님을 찾았다. 거룩한 중보자께서는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탄원하신다. 그들의 배은망덕 때문에 가장 크게 모욕을 받아 오신 분, 그들의 죄와 그들의 회개까지도 아시는 분께서는, 사단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내가 이 영혼들을 위하여 나의 생명을 버렸다! 그들은 죄를 슬퍼하며 회개하고 죄를 버렸으며 나의 피로 그들의 모든 죄는 정결하게 함을 받았다. 나는 그들을 나의 손바닥에 새겼다!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이 그분 앞에서 그들의 심령을 괴롭게 하고 마음의 순결을 위하여 탄원하고 있을 때, 그들에게 흠 없는 그리스도의 의의 옷이 입혀진다. 그리고 머리에 정한 관 - 곧 여호와께 성결 - 이라는 뜻의 정한 관이 씌워진다. 곧 머리에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들의 죄는 용서받고 가납되었을 뿐 아니라 하나님께 대하여 제사장이 된다. 그리하여 그들의 이마에 아버지의 이름이 쓰여진(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이 되는 것이다.

3)  계시록 14장에 나타난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요한계시록 14:1,4,5).

 이 성경절을 보면, 마지막 구원을 받아 어린 양과 함께 시온산에 설 사람들에 대한 묘사가 나오는데,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아버지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말의 뜻이 무엇일까? 앞서도 언급했지만, 이마에 어린 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있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똑같이 닮은 성품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다. 곧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들이라는 것이다.

 출애굽기 3장과 34장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당신의 성품을 말씀해 주시는 장면을 발견 하게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동일어이다. 마지막 시대, 재림 전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것은 그들의 생애가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이루고 반영하는 삶을 사는 것을 가리킨다. 이것이 하나님의 이름이 이마에 기록 된 것으로 설명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을 닮은 품성을 소유한 자들 위에 쳐지는 특별한 인이다. 어린양의 이름은 특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셨을 때에 아버지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거룩한 성품을 말하는 것이다. 그것이 어린양의 품성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받을 사람들은 모든 죄를 회개하고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들이며, 성령을 통하여 예수께서 항상 마음 속에 임재하시는 경험을 하고, 마음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사단의 모든 공격과 시험을 통과한 사람들이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말이다. 그리하여 이렇게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이기고 승리한 마지막 하나님의 증인들에게 하나님의 인정의 표로서 하나님의 인이 찍혀지는 것이다.

 이 사람들이 마지막에 나타날 14만 4천이다. 그들은 앞으로 하늘에서 땅에서 구속받은 14만 4천명 외에는 아무도 배울 수 없는 노래를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부를 것인데, 그 노래는 자신들을 기이한 섭리로 인도하신 하나님의 지혜와 사랑에 대한 간증과 경험의 노래이기 때문에 모세와 어린양의 노래가 되는 것이다. 이 사람들은 &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4, 5).

3부 - 어디에 하나님의 인을 받는가?

 제3부에서는 하나님의 인은 어디에 받는가에 대하여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한다.

 요한계시록 7장에는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백성들이 인을 받는 것에 대한 예언이 묘사되어 있다. 7장 3절에는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는 말씀이 나온다. 이것은 네 천사가 이 땅에 임할 재앙의 바람을 놓으려고 할 때 다른 천사가 나타나 외치는 소리이다. 그런데 그 천사는 외치기를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라고 하고 있다.

1)  앞 이마에 받는 하나님의 인
 
위의 성경절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는다고 말하고 있다. 왜 이마에 받는 것일까? 그것은 마치 옛날 이스라엘의 대제사장이 머리에 쓴 관에 여호와께 성결이라고 써 있었던 것처럼, 앞 이마가 성결하고 정결한 사람이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는 뜻이다. 앞 이마가 정결하다는 뜻이 무엇일까? 우리의 앞 이마 뒷부분에는 전두엽이 자리잡고 있다. 전두엽에서는 이성, 판단, 결정, 의지를 통제 관할한다. 그리고 전두엽에서 이루어지는 중요한 기능은 영성, 도덕성, 의지이다.

 성령께서는 우리의 전두엽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죄의 유혹이 올 때, 그리고 사단이 우리가 죄를 짓도록 유혹할 때, 사단의 말을 듣고 사단의 편을 택하여 죄를 짓든지, 아니면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께 굴복하여 죄의 유혹을 물리치든지 선택하는 것은 우리 자신의 의지에 달려있다. 요한계시록은 하나님을 아는 데에 있어 앞 이마(전두엽)가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2장 4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다. 그의 얼굴을 볼 터이요 그의 이름도 저희 이마에 있으리라.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그분의 성품을 의미한다. (출 33:18~23 참조). 계시록 22장 4절은 하나님의 이름, 곧 성품이 우리의 성품 안에 재현되는데, 그것은 우리의 앞 이마(전두엽)에 재생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 뜻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성령께 지속적으로 굴복된 의지를 갖는 것을 뜻한다. 곧 거듭난 마음을 계속 유지하고, 매 순간 성령과 교통하므로 죄를 이기며, 사단의 유혹이 올 때 매번 올바른 편(성령의 음성을 듣는 편)을 지속적으로 선택하므로 영성과 도덕성과 의지력이 온전하게 꼴 지어져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게 된다는 뜻이다. 그것이 앞 이마가 정결하다는 뜻이고, 그런 사람의 앞 이마에는 하나님의 인이 쳐 질 것이다.

2)  과학적으로 살펴 본 두뇌; 전두엽
1. 앞 이마와 뇌의 기능과 성격의 관계
 
1848년 9월 13일, 25살의 로버트 게이지는 그날도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산간지역에 철도를 건설하기 위하여 거대한 바위들을 폭파하는 일을 하였다. 그러나 숙련되지 못한 조수의 실수로 인하여 폭약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엄청난 폭발을 일으켰다. 그 폭발로 인하여 폭파용 쇠막대기가 그를 향하여 날아가 그의 왼쪽 턱 위를 뚫고, 왼쪽 눈 뒤를 지나서 뇌를 뚫고 나왔다. 놀랍게도, 그는 치명적인 감염을 피하여 살아나 육체적인 건강은 거의 완벽하게 회복되었으나, 그의 왼쪽 눈이 시력을 잃었고, 왼쪽 볼에 상처가 남았다. 그렇지만 한 가지 큰 문제가 있었다. 그는 더 이상 로버트 게이즈가 아니었다.

 사고 전, 로버트는 자상한 남편이었고 책임감 있으며 유능한 직업인이었다. 그는 도덕적으로 높게 평가받고 있었으며, 독실한 기독교인으로서 인정받고 있었다. 그러나 이 사고 이후에 도덕적 낙후 증상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는 매우 감정적인 사람으로 변하였고, 쉽게 화를 내었다. 사고가 난지 얼마 되지 않아 그는 교회와 영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완전히 흥미를 잃고 안 좋은 일에 쉽게 빠져들었다. 그는 무책임한 사람이 되었다. 이러한 문제점들 때문에 그는 더 이상 자신이 맡은 책임을 행할 수 없었으므로, 직장으로부터 해고당하였다. 그가 앞 이마에 받은 치명적인 사고는 그의 개성과 도덕적 기준과 가족과 교회와 사랑하는 사람들을 잃게 만들었다. 이 역사적인 사건에 대한 연구는 유명한 과학지인, Science 가 이 사건을 표제기사로 다루었던 1994년까지 계속되었다. 과학자들은 컴퓨터와 X-레이를 이용하여 로버트의 뇌의 어느 부분이 상처를 받았는지를 면밀히 조사하였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로버트 게이지는 그의 앞 이마에 위치한 뇌의 양쪽부위(전두엽의 왼쪽과 오른쪽 부위)에 손상이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앞에서 읽었듯이, 뇌는 특유의 기능을 가진 여러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앞 이마의 뒷부분에 있는 뇌를 전두엽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뇌의 가장 큰 돌기로서 판단과 논리, 지능과 의지를 통제하는 곳이다. 이 곳에서 우리의 존재, 즉 자아를 제어하는 기능이 이루어진다. 이런 연유로 일부 과학자들은 이 부분을 두뇌의 면류관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전두엽에서 이루어지는 3가지 중요한 기능들은 영성, 도덕성, 의지인데, 영성, 성격, 도덕성, 또한 의지는 사람의 독특한 개성을 이룬다. 그러므로 전두엽이 손상을 입은 사람은, 비록 그 모습은 전과 같을지라도 전혀 다른 사람으로서 행동을 하게 된다.

2. 전두엽에 관련된 중요한 연구
 
전두엽에 관한 연구들은 전두엽이 우리의 성격형성에 가장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있다. 상처난 전두엽은 손상된 성격을 형성한다. 자제, 신뢰, 신용, 정독, 추론, 개인관계 등은 모두 건강한 전두엽이 행하는 복잡한 기능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제는 오늘날 일어나고 있는 대부분의 전두엽 상해문제가 산업재해나 수술 등으로 인한 것이 아니라,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형성되는 올바르지 못한 생활습관에 기인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잘못된 생활습관 때문에, 사고를 당하여 받는 뇌 손상과 똑같은 결과를 초래한다.

 건강한 전두엽은 우리가 인생을 살아나가는데 있어서, 그리고 올바른 신앙 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곧, 내가 건강한 선택을 할 때 나의 전두엽의 기능이 개선되고, 개선된 전두엽은 우리의 다른 나쁜 습관을 통제함으로 건강한 나를 만드는 것이다. 전두엽의 가장 큰 기능 중 하나는 바로 의지의 힘을 발휘하는 것이다. 전두엽이 건강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는 전두엽의 기능에 좋은 것들과 좋지 않는 것들에 대하여 알아야 하는데, 건강한 전두엽을 유지하려면, 불필요한 약품 - 불법약품들(마약), 다른 사교적 약품들, 알코올, 카페인, 니코틴, 과도한 처방약품 - 의 사용을 피해야 한다. 어떤 약품들은 중심신경계를 둔하게 만드는데, 가장 큰 영향을 받는 부분이 바로 전두엽이다. 많은 사람들이 필요 이상으로 오랫동안 제조약물을 복용하고 있으며, 이러한 약물 남용이 그들의 성격과 개성을 바꾼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또한 정제된 식품(흰 쌀, 흰 밀가루, 흰 설탕)을 먹는 것, 과도하게 TV를 시청하는 습관 등이 전두엽을 약하게 만든다.

3)  하나님께서 이마에 인치시는 이유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구원 받도록 그분께서 하실 수 있는 모든 일을 이미 다 하셨다. 그러나 우리 인간 편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고 우리의 할 일을 다 하지 않으면 완벽한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마저도 속수무책이 될 수 밖에 없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그분의 능력으로만 이루어진다. 그러나 인간이 그 은혜를 받아들이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는 일이 더 이상 없다. 우리가 믿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일 때 구속의 경륜에 동참하고 하나님과 협력하는 것이다. 이 믿음은 바로 두뇌에서 활동하는 세 가지 기능들의 투쟁 끝에 얻어지는 결실이다.

1. 두뇌와 우리의 의지
 
일단 우리의 뇌 속에 어떤 정보가 들어가면 세 가지 기능들이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 세 가지는 지성, 감성, 그리고 의지이다. 우리가 복음을 받아들이고 진리를 믿고 따르기로 결심할 때, 바로 이 세 가지들이 그 결심을 만들어 내는 주역들인 것이다. 앞 이마에 자리한 이 세 가지 중요한 기능들은 입력된 정보에 재빨리 반응한다. 그리하여 분석하고 판단하여 무엇을 선택할지 결정한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다른 신체 부위가 아닌 앞 이마에 인을 치라고 하신 것이다. 지성이란 이해하고, 인식하고, 판단하며, 분별하는 기능이다. 또한 감성이란 소원하며, 느끼며, 충동하는 감수성의 기능을 말한다. 사람이 유혹을 받을 때, 지성과 감성은 각각 자신들의 의견을 내놓는다. 그러나 지성과 감성이 느끼고 말하는 것을 판단하고 나서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것은 바로 의지이다. 우리 뇌에 있는 이 세 가지 기능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의지이다. 왜냐하면 의지의 선택이 없이는 한 인간의 인생 방향이 결정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의지가 하나님의 음성을 선택하면 그는 의로운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게 되지만, 그것이 육체의 음성을 붙잡고 그것에 복종하여 살면 악인의 길을 걷게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앞 이마에 당신의 소유임을 확증하는 인 (seal)을 치시겠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초신자가 처음으로 예수님을 받아들일 때, 신앙생활에서 많은 갈등을 느끼게 된다. 그 이유는, 그의 지성은 옛날 습관대로 하려는 그를 저지하고 예수를 따라야 한다고 촉구하는 반면, 그의 감성은 이제까지의 습관을 버리기를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죄의 습관을 버리지 않고서는 결단코 거듭날 수가 없다고 말하는 지성과 옛 습관대로 살려는 감성 사이에 전쟁이 생기게 된다.

2. 거듭난 의지
 
이렇게 뇌 속에서 지성과 감성이 전쟁을 하고 있다면, 과연 어떻게 해야 이 싸움을 해결할 수 있겠는가? 해결 방법은 단 한 가지 뿐이다. 의지가 판단하여 결정을 내리도록 하는 것이다. 의지의 결정은 너무나 중요하다. 조그만 의지의 선택들이 모여져 큰 결정을 만들고 결국에는 우리의 영생도 결정짓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우리는 또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알아야 하는데, 그것은 인간이 구원받기 위해 사용할 자유 의지가 죄로 인하여 몹시 약화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즉,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의지는 마귀의 뜻에 사로잡혀 있다.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인간은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에 내어 맡겨질 수 밖에 없다. 인간의 의지는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에 너무 약하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구원하시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셔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질문하고 있다. 어떻게 하여야 내 자신을 굴복하여 의심과 마귀의 올무인 죄의 습관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라고. 과거의 실수들과 작심삼일이었던 결심들을 기억하면서 인간들은 절망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여기에 희망이 있다. 예수께서 저희를 보시며 가라사대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 하나님으로는 그렇지 아니하니 하나님으로서는 다 하실 수 있느니라 막10:27.

 우리는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다. 그것이 구원의 은혜인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로 선택하고 하나님께 우리의 의지를 바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신비한 능력으로 우리의 의지에 놀라운 힘을 주신다. 누구든지 죄의 습관들과 세력에서 헤어나오기를 간절하게 원하기만 하면, 성령께서 능력을 주셔서 새로운 생애를 살수 있게 된다. 그것이 거듭난 의지를 갖게 되는 비결이다. 우리는 이렇게 기도해야 한다. 주님, 죄의 힘으로 연약하여지고 비뚤어진 나의 의지를 주님께 드립니다.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힘이 없습니다. 나의 뜻과 나의 의지를 굴복하오니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하나님의 인은 어디에 받는가? 하나님의 인은 앞 이마에 받는다. 전두엽에 있는 우리의 의지가 하나님의 은혜로 거듭나고, 또한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의 의지가 계속 하나님의 편을 선택할 때에, 우리 속에서 하나님의 성품을 재현하게 되고, 그 때에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는 것이다.

4부 - 하나님의 인을 어떻게 받는가?

 우리는 하나님의 인을 앞 이마에 받는다는 것을 앞에서 공부하였다. 그리고 앞이마, 곧 앞 뇌의 전두엽에 있는 의지가 올바른 편을 선택함으로 이 일이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도 배웠다. 그렇다면 어떻게 의지가 올바른 편을 택할 수 있게 되는 것일까?

1)  양심의 목소리를 듣는 것
 
어떤 개구장이 어린아이가 정원에서 놀고 있다가, 작은 거북이 한 마리가 연못 밖에 나와 앉아 있는 것을 보고 돌을 들어서 내리 치려고 했다. 그 때, 갑자기 그 아이의 마음 속에서 그러면 안돼!라고 말하는 분명한 음성을 듣게 되었다. 한번도 그런 음성을 들었던 적이 없는 그 아이는 깜짝 놀라서 엄마에게 달려가 엄마, 내가 거북이를 돌로 치려고 하는데, 갑자기 내 마음 속에서  그러면 안돼 라는 커다란 말소리가 들렸어요. 그것이 누구의 음성이죠? 엄마는 눈물을 글썽이면서, 사람들은 그것을 양심이라고 부르지만, 엄마는 그것을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믿는단다. 네가 그 음성에 순종하면 그 음성은 점점 분명해지게 되고 너를 올바른 의의 길로 인도해 줄 것이란다. 그러나 네가 그 음성을 듣지 않고 불순종하면 점점 그 소리는 들리지 않게 될 것이고, 너는 어두움 속으로 빠지게 될 것이란다. 너의 생애는 너의 마음 속에서 들리는 그 작은 소리를 듣는데 달려 있단다 라고 대답해 주었다. 이것이 우리 모두가 가지고 있는 양심의 소리이다.

1. 성경이 말하는 양심
 성경은 양심을 나타내는 말로 가득차 있다. 물론, 구약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양심이라는 단어가 나오지 않지만, 양심을 의미하는 말씀은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잠시 그 실례를 살펴보도록 하자. 창세기 3장에는 범죄한 아담과 하와가 두려워서 숨은 이야기가 나온다. 그들은 왜 숨었는가? 왜냐하면 그들이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이다. 잠언 28장 1절은 우리에게 매우 중요한 교훈을 가르쳐 주고 있다. 악인은 쫓아오는 자가 없어도 도망하나 의인은 사자같이 담대하니라 주님 안에서 양심이 정결해진 사람은 담대함을 가질 수 있지만, 악인은 쫓아오는 사람이 없어도 불안해서 도망치게 된다. 왜 도망가는가? 바로 양심의 소리 때문에 그렇다. 신약성경에는 양심이라는 단어가 40번 이상이나 등장한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행할 때는 이 사람은 율법이 없어도 자기가 자기에게 율법이 되나니 이런 이들은 그 양심이 증거가 되어 그 생각들이 서로 송사하며 혹은 변명하여 그 마음에 새긴 율법의 행위를 나타내느니라 로마서 2:14, 15. 내게 큰 근심이 있는 것과 마음에 그치지 않는 고통이 있는 것을 내 양심이 성령 안에서 나로 더불어 증거하노니 롬 9:1. 양심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통로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양심 속에서 속삭이시는 성령의 음성을 듣고 그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

2. 문제가 생긴 양심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가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질병은,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의 양심에 문제가 생긴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죄인지도 모른다. 너무나 양심이 무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는 너무나 엉뚱하고 파렴치한 죄 가운데 있으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해서는 매우 민감하게 정죄하면서, 자신은 동일한 죄에 빠져 있으면서도 양심 속에서 죄에 대한 책망의 음성을 듣지 못한다. 왜 양심 속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올바로 들을 수 없는가? 양심이 병에 걸렸기 때문이다. 성경은 질병에 걸린 양심을 약한 양심과 더럽혀진 양심과 화인 맞은 양심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다.

A. 약한 양심 ;
그러나 이 지식은 사람마다 가지지 못하여 어떤 이들은 지금까지 우상에 대한 습관이 있어 우상의 제물로 알고 먹는고로 양심이 약하여지고 더러워지느니라 고전 8:7. 그 당시, 시장에서 파는 고기들은 대부분 이방 신전에서 제사를 드렸던 제물들이었다. 사도들의 권면에도 불구하고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고기를 우상에게 바쳤다고 해서 변질되거나 부패되지는 않는다고 변명하면서 과거의 습관대로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었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사람들의 양심을 약한 것으로 표현하였다. 물론, 고기를 먹는 것이 죄는 아니지만, 하나님을 섬기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우상에게 바쳤던 고기를 먹음으로써 양심을 약하게 만들지 말라는 것이 사도 바울의 충고였다. 어떤 것이 직접적인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성경의 교훈을 무시한 채 자신이 원하는대로 결정하고 즐기는 사람은 약한 양심을 가지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예민하게 다듬어 질 필요가 있다.

B. 더러워진 양심 ;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나 더럽고 믿지 아니하는 자들에게는 아무 것도 깨끗한 것이 없고 오직 저희 마음과 양심이 더러운지라 디도서 1:15. 똑같은 그림을 보고서, 어떤 사람은 참 이 그림 정말 아름다운데!라고 감탄하지만, 어떤 사람은 그 그림을 보면서 과거에 자신이 보았던 추한 장면을 연상한다. 죄의 습관들로 더럽혀진 마음을 지닌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리스도의 피로 양심을 씻어내는 일이 필요하다. 더러워진 양심을 가진 사람은 자신의 양심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신뢰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 아니라, 육체의 죗된 욕구일 수 있기 때문이다. 더러워진 양심은 진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정결하게 씻어질 필요가 있다.

C. 화인 맞은 양심 ;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4:2. 이 말씀은 양심에 화인을 맞아서 아무런 양심의 가책도 없이 거짓을 말하고 행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2)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방법
1. 거듭난 양심을 가져야 한다
 우리는 모두 양심을 가지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령께서는 우리의 양심을 통해서 역사하신다. 우리 마음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따라 언제나 올바른 선택을 하며,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삶을 사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이것이 곧 어떻게 하나님의 인을 받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의 마음은 우리의 두뇌 속에 있다. 우리의 두뇌는 치열한 전쟁터이며, 우리의 매일의 생애가 승리하는가 아니면, 실패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의 두뇌 속에서 벌어지는 전쟁을 우리가 어떻게 치르는가 하는 것에 달려 있다.

너희가 우편으로 치우치든지 좌편으로 치우치든지 네 뒤에서 말 소리가 네 귀에 들려 이르기를 이것이 정로니 너희는 이리로 행하라 이사야 30:21.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역사하셔서 목소리를 들려 주신다. 그런데, 마음 속에 역사하는 하나님의 성령의 음성을 뚜렷이 식별하려면 우리의 양심이 거듭나야 한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타락한 육체와 양심을 가지고 이 땅에 살게 된다. 정직한 양심은 본성적으로 이어받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나야만 신뢰할 수 있는 음성을 발할 수 있다.

2. 양심의 소리에 굴복하라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마찰을 일으킬 때,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자아의 목소리와 뜻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 신실하다고 공언하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죄를 승리하지 못하고 좌절하는 까닭은, 그들이 하나님의 음성에 자아를 굴복하는 일에 실패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선을 행할 능력은 없지만, 그러나 올바른 편을 선택할 힘은 있다. 우리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대립될 때, 그리고 사단이 육체의 정욕을 통해 우리에게 강한 유혹으로 다가올 때,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의 편을 택하고 싶지만 육신이 연약하여 할 수 없을 때, 우리는 힘센 대장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께 도움을 요청할 수 있다. 우리가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올리자 마자,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초자연적인 능력을 주셔서 우리로 올바른 편을 선택할 힘을 주신다.


3) 하나님의 인을 받기 위하여

 자신이 거듭난 그리스도인인가 아닌가를 알아 보려면, 매 순간 자신이 자아의 고집을 따라 살기를 원하는가, 아니면 하나님의 뜻을 행하기를 즐겨 하는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그것이 곧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사는가,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가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살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살 능력을 주시기 위하여 모든 준비를 다 갖추어 놓으셨다. 사람이 회개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화로 역사하시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께 마음을 바치고 거듭나는 것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역사이다. 그리고 한번만 거듭남을 체험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매 순간 자아가 죽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로 태어나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역사이다. 그러나 우리 인간 편에서의 노력도 중요하다.
 
 하나님께서 은혜와 능력으로 모든 것을 마련해 놓으시고 주시기를 원하지만, 자아를 하나님께 굴복하고, 의지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은 우리 인간이 할 일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분의 임재 속에서 매일 생활하고, 우리의 마음 속에 펼쳐지는 전쟁에서 늘 하나님의 편을 택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성품을 그들의 생애에서 이룰 것이다. 거룩함이란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것을 뜻한다. 자신의 전체, 곧 마음과 뜻과 생각을 늘 하나님께 바치고, 자아를 부인하는 일과 성령의 소욕을 따라 사는 일이 거의 습관이 된 사람들은 거룩한 품성을 가지게 되고,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이다.

 

5부 - 하나님의 인은 왜 받아야 하는가?

 예수님의 재림과 세상의 마지막이 가까워 오는 시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인을 왜 받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아주 중요하다. 하나님의 인은 왜 받아야 하는가?

 성경에 예언되어 있듯이, 마지막에 선과 악의 전쟁이 절정을 이루게 될 때에, 하나님의 백성과 사단의 백성이 현저하게 나누어질 것이다. 짐승의 표의 환란이 올 때, 그리고 하나님께서 구원받을 당신의 증인들을 고르실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의 명예를 위해 충성할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이다. 이 하나님의 인을 받은 하나님의 참 자녀들은 이 세상과 우주에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은혜와 사랑의 성품을 증거하는 사람들이 될 것이다. 물론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면 마지막 환란 때에 구원을 얻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왜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는 우리 영생과 직결된 매우 중요한 관건이다.

 그런데, 만일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진정한 복음, 곧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죄를 이기고 승리하며, 성령의 역사와 임재하심을 통하여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이룰 수 있다는 진정한 복음의 가르침을 모를 뿐만 아니라, 그 복음을 실생활에서 체험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인을 받을 수가 없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받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올바른 복음을 알고 믿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복음을 믿으면서 구원을 얻었다는 기만 속에 살고 있다. 올바른 복음을 알고 믿는 것이, 그리고 그 바른 가르침이 우리가 하나님의 인을 받도록 이끄는 길인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인을 받도록 우리를 인도하는 참된 복음과 우리를 거짓 안전과 기만 속에 빠뜨리는 잘못된 복음에 대하여 함께 연구하여 보자.

1)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게 하는 복음
 
기독교 안에서 한 하나님을 믿고 있다고 하지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른 복음을 믿고 있다. 곧 기독교 안에 서로 다른 복음, 다른 가르침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사단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인을 받고 구원을 얻기를 원하지 않으므로, 사람들을 기만하여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 하게 하고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오류를 믿게 함으로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잘못된 복음을 기독교회 속에 밀어 넣고 있다. 같이 살펴보자.

1. 율법주의
 
사단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할 때도 그랬듯이 그는 교묘하게 성경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혼돈시킨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요한계시록 22:14(영문 킹제임스 성경 번역). 사단은 이 성경절을 언급하면서인간이 구원 받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계명에 순종하는 것이다. 만일 우리가 계명에 잘 순종하기만 하면,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받게 될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많이 들을 수 있는 말이 아닌가? 어떤 면에 있어서 이러한 주장은 진리이다. 사실상, 계명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주장 속에 매우 치명적인 오류가 섞여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어떤 사람도 구원을 얻기 위하여 스스로 계명을 지킬 만큼 선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대개 이러한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율법주의자라고 부르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 세워 놓으신 구원의 계획과는 매우 상반된 것이다. 자신이 한 순종과 희생의 대가로 구원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사상이다. 이러한 율법주의는 모든 이방 종교 가르침의 밑바탕을 이루고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인들 중에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사단의 기만적 가르침에 속임을 당하고 있다.

 우리가 아는 것과 같이, 에덴 동산에서 인류의 시조가 죄를 범한 이후에 인간의 본성에는 매우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다. 아담은 오늘날의 우리보다 훨씬 순종하기 쉬운 상태의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순결하였으며, 타락하지 않았고, 죄로 기울어지는 경향이 없는 본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받은 모든 유혹은 밖으로부터 오는 유혹뿐이었다. 그러나 우리가 물려받은 본성은 타락한 본성이며, 우리 안에 가장 큰 유혹의 샘이 있는 본성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단은 하나님께 순종하기 위해서 좀 더 열심히 노력함으로써 죄를 피할 수 있다고 수백만의 사람들을 설득시키고 있다.

 그리하여 사단의 기만적 주장을 믿는 사람들은 스스로의 힘으로 죗된 성향을 조절하기 위해서 애쓰지만 실패에 실패를 거듭할 뿐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 속에 자신도 모르게 어떤 행위로 하나님의 은총을 사려는 율법주의적인 복음이 자리잡고 있다. 그래서 어쩌면 겉으로 들어나는 행위 - 많은 연금을 바치는 것, 열심있는 선교활동, 새벽 기도회에 참석함 - 등으로 하나님의 은혜와 의를 얻어보려는 시도를 하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율법주의는 실망과 좌절을 안겨줄 뿐, 우리를 하나님의 인을 받게 하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으로 변하게 하는 복음이 되지는 못한다.

2. 값싼 은혜의 복음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이끄는 복음 중에 또 다른 것은 값싼 은혜의 복음이다. 사단은 값싼 은혜의 복음을 내세워 이렇게 주장한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 받을 수 없다. 우리는 행함에 의해서 의롭다고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한 불필요한 것이다. 그냥 믿기만 하면 은혜로 다 구원해 주신다.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도록 그리스도인들을 이끄는 복음 중에 또 다른 것은 값싼 은혜의 복음이다. 사단은 값싼 은혜의 복음을 내세워 이렇게 주장한다: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율법을 지킴으로써 구원 받을 수 없다. 우리는 행함에 의해서 의롭다고 인정 받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한 은혜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다. 우리는 율법 아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은혜 아래에 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한 불필요한 것이다. 그냥 믿기만 하면 은혜로 다 구원해 주신다.

 사단의 이러한 논리 중에서 어떤 부분은 진리이다. 그러나 그 속에 위험한 오류와 기만이 숨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직시해야 한다. 물론, 우리가 행함에 의해서 의롭다 하심을 받지 않는다는 말은 진리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 말이 우리가 순종의 의무로부터 면제 받았다는 뜻은 아니다.

 여러 교파와 교단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한결같이 이렇게 말한다. 순종은 옛날 구약시대에나 요구되던 것이다. 지금은 법을 강조할 필요가 없다. 우리는 행함에 의해서 구원 받는 것이 아니고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 우리는 지금 은혜 아래에서 살고 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이 우리에게 구원을 가져다 줄 수 없다.율법주의에 회의와 실망을 느낀 나머지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반대편에 도사리고 있는 또 다른 기만인 값싼 은혜 속으로 끌려 들어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법이 폐지되었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에, 그리고 우리는 죄 가운데 태어나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것을 아시기 때문에 그냥 믿고입으로 주를 시인하기만 하면 은혜로 다 구원해 주신다고 믿는 것, 그리고 믿음에 따르는 참된 순종이나 변화된 생활과 성화를 강조하지 않는 것이 값싼 은혜의 복음이며, 이것은 온전한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어 하나님의 인을 받는 일에 우리로 실패하게 만들기 때문에 위험한 거짓 복음이다.

2)  하나님의 인을 받게 하는 참된 복음
 요즈음 기독교 안에서 성경적으로 명확한 참된 복음에 대한 가르침이 너무나 적다. 참된 복음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데, 그 이유는 참된 복음과 올바른 가르침은 우리를 참된 신앙과 믿음을 갖게 만들며, 결국에는 하나님의 인을 받도록 인도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믿음에 대한 오해가 많이 퍼져 있다. 우리는 그냥 막연한 믿음이 아닌 우리 자신의 영혼을 구원할 수 있는 믿음을 소유해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신앙 속에는 믿음과 행함이 반드시 균형지게 이루어져야 한다.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고 성경에는 쓰여있지만, 또 다른 말씀, 곧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마 7:21)는 말씀도 있다. 사실 하늘 아버지의 뜻(성경 말씀)과 그것에 대한 순종(행함)에 대한 설명없이, 믿으라, 믿으라, 그리스도를 믿기만 하면 구원을 얻는다라고 외치는 것은 매우 위험천만한 가르침이다. 그것은 그저 반쪽 믿음일 뿐이다.

 우리의 신앙은 믿음과 행함이라는 노를 가지고 저어 나가는 항해와 같다. 만일 두 가지를 균형 있게 움직이지 않는다면, 배는 제자리에서 원을 그리면서 맴돌게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의 신앙 생활이 전진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맴돌고 있는데, 그 이유는 구원에 관한 두 가지 중요한 면들이 올바르고 균형 있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믿음과 행함은 서로가 부딪치거나 투쟁하는 것이 아니며, 서로가 분리될 수 없는 것으로 협력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은 항상 순종이라는 선한 행위를 생산해 낸다. 성경은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고 선언하고 있다(야고보서 2:26).

1. 참된 믿음
 
그렇다면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행함과 순종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반쪽 믿음이며, 참된 믿음은 행함이 따르는 믿음이라는 것을 알지만, 우리에게는 순종할 힘이 없는데 어떻게 행함이 따르는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있다는 걸까? 믿음, 곧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그분께서 나의 구원을 위해 이미 이루어 놓으신 역사를 믿는다는 뜻이다. 성경에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자. 그는 나이가 많아 자식을 갖는다는 것이 도무지 불가능해 보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밤하늘의 별을 보이시면서 앞으로 네 자손이 이렇게 많아지리라고 약속하셨다. 이 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보면서 자신에게 자손을 주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실 것을 믿었다. 왜냐하면 저 많은 별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자신과 같은 늙은이에게 자식을 생산할 수 있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을 넉넉히 지키실 수 있음을 믿었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아브라함의 믿음이었다. 아브라함이 믿었을 때 하나님께로부터 약속을 받았던 것처럼, 우리가 예수를 믿을 때도 우리에게 약속을 주신다. 그 약속은 곧 우리에게 힘, 능력을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2. 복음의 능력
 
로마서 1장 16절에 보면 이런 믿음에 관하여 말씀한 아주 중요한 구절이 하나 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로다. 이 성경절에 나오는 능력이라는 단어는 다이너마이트 라는 뜻인데, 헬라어의 두나미스에서 유래된 말이다. 그런데 이 능력이라는 단어는 주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묘사하기 위하여 성경에서 자주 사용하는 수식어 중의 하나이다. 바울은 복음을 소개하며 말하기를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두나미스)이라고 했다.

 만약에 바울의 말이 사실이라면, 복음을 믿고 소유한 그리스도인은 놀라운 능력으로 가득차 있어야 한다. 즉, 율법을 행할 능력을 충만히 갖춘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말로만 입으로만 믿는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행동과 행실까지 믿음과 완전히 일치되는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말이다. 우리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복음의 폭발적 능력에 대하여 얼마나 이해하고 있는가?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하는 대신에 실망과 패배가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지는 않는가?

 오늘날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거짓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복음의 능력을 잃어버렸다. 복음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넘어지게 되며, 자신들의 연약한 믿음으로 해낼 수 없기 때문에 성경에 있는 진리들을 반쪽만 언급하며 그냥 믿기만 하라고 외치고 있다. 성경은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있는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고 받아들이는 순간,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에 임하셔서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순종의 열매를 우리의 삶 속에서 생산해 내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이 믿음이 없고, 믿음을 가진 사람이 행함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말이고 어딘가 잘못된 믿음이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고 로마서 8장 9절에서 말하고 있다.

3. 율법의 요구를 이루는 믿음
 
우리가 아무리 믿는다고 공언해도 우리 속에 성령께서 오셔서 하나님의 진리와 율법을 사랑하는 마음을 생산해 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참된 믿음을 가질 수 없다. 믿는다고 하면서 율법에 어긋나는 행동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참된 믿음이 아니다. 바울은 율법의 요구를 이루되, 그것을 자신의 노력과 우리의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율법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을 강조하고 있다. 이것이 갈라디아서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요약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가 효력이 없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 뿐이니라 (갈5:4-6). 예수님 안에서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은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 율법의 요구를 온전히 이루는 삶을 살게 한다. 우리의 신앙의 동기는 사랑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성일을 지키는 것도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남의 것을 훔치지 않는 것도 그 이웃을 사랑하기 때문에가 동기가 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기 때문이다 (롬 13:10).

 우리에게는 이기적인 사랑은 있으나 순수한 하나님의 사랑은 없다. 소망이 부끄럽게 아니함은 우리에게 주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 바 됨이니 (롬 5:5). 하나님의 사랑이야말로 계명을 지키는 근본 정신인데, 성령께서 이 사랑을 우리 마음 속에 부어주셔야만 우리가 드디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있게 된다. 성령을 통하여 받은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의로운 생애를 살 수 있다. 우리의 생애가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을 받는다. 참된 믿음을 갖게 하는 올바른 복음을 알고 믿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는 것이다.

 

6부 - 하나님의 인은 언제 받는가?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1~3).

 위에 언급된 요한 계시록 7장의 예언을 보면, 천사가 사방의 바람을 붙잡고 땅이나 바다나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는 장면이 나온다. 성경은 예언하기를, 앞으로 이 세상, 곧 땅과 바다와 나무 (지구의 모든 것들과 사람들)에 큰 환란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지구는 엄청난 천연재해들로 커다란 위기를 맞게 될 것인데, 과거에 없던 더 큰 규모의 지진, 해일 등 가공할 만한 천연재해들과, 또한 엄청난 무기와 폭탄들의 폭발 등의 인재들이 일어날 것이다.

 그런데, 세상을 해할 권세를 받은 천사가 사방의 네 바람을 놓아 이 세상의 끝과 환란이 오게 하려고 하는 순간, 또 다른 천사가 외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천사는 우리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 치기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인은 언제 받는가?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반사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들은, 사방의 네 바람이 놓이기 직전, 곧 이 세상의 환란이 오기 바로 전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될 것이다.

 성경은 지금 우리가 인치는 시기에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다. 앞으로 사방 네 바람이 놓이게 되면 엄청난 환란이 오게 될 것이다. 천사가 사방바람을 놓게 되고, 우리가 지금까지 보고 들어 온 것들은 아무 것도 아닐, 우리가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없는 엄청난 재난이 이 땅에 올 때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만 거룩한 천사들의 보호를 받게 될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은 자들만 환란을 통과하여 구원 얻게 될 것이다.

È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앞에서 언급했듯이, 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우리가 거듭날 때에 받는 성령의 인과는 조금 다르다. 물론 하늘에 가는 모든 사람들은 다 거듭남과 성령의 은혜를 경험해야 한다. 그것을 인이라고 부른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 즉 우리가 앞으로 환란을 통과하기 전에 받아야 할 인은 그것과는 다르다. 그것은 마지막 시대에 사는 사람들에게 해당되는 인이며, 하나님의 특별한 인정을 받게 되는 인이다. 성경 이사야 26:20,21에는, 내 백성아 갈지어다. 네 밀실에 들어가서 네 문을 닫고 분노가 지나기까지 잠깐 숨을지어다. 보라 여호와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사 땅의 거민의 죄악을 벌하실 것이라. 땅이 그 위에 잦았던 피를 드러내고 그 살해 당한 자를 다시는 가리우지 아니 하리라라는 말씀이 있다. 이 세상에 심판의 재앙이 떨어질 때에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받는 표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다.

È 마치면서
 
성경은 말하기를 구원 받는 자들은 누구나 다 이마에 인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한 성경은 구원 얻는 자들 뿐만이 아니라 구원 받지 못하는 사람들도 이마에 멸망의 인을 받게 된다고 언급하고 있다. 다시 말하면, 앞으로는 누구나가 다 이마에 모종의 인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구원의 인, 아니면 멸망의 인을... 하나님의 인, 아니면, 짐승의 표를...그것은 눈에 보이는 인이 아니고 하나님과 천사들만 식별 할 수 있는 인이다.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능력과 은혜로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사랑의 아름다운 성품으로 온전히 꼴지워진 거듭난 사람들이 받을 것이다. 매일 매 순간 자아가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죽고,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굴복하는 사람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인이 쳐 질 것이다. 말로만 믿는다고 말하지 성품이나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으로 변하지 않은 사람은, 아무리 교회를 오래 다니고, 아무리 선교사업을 많이 하고, 아무리 헌금을 많이 바쳤어도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다. 오직 마음이 정결하고 예수님처럼 온유하고 겸손하고 사랑이 풍부해진 사람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분의 법이 마음 속에 새겨진, 아름다운 사랑의 마음을 가진 사람들만이 하나님의 인을 받고 구원 받는 사람들의 무리에 속하게 될 것이다. 성경은 마지막에 나타날 그런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우리 모두 하나님의 인을 받는 사람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