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않는 길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그냥 맹목적으로 신앙 생활을 하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누구나 여러 번 갈등에 휩싸인 적이 있었을 것이다. 성경 여러 곳에 육체의 욕심을 따라 살지 말고 성령을 좇아 살라는 내용의 말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쉽게 육체의 욕심을 따라 휩쓸려 가버리는 자신을 발견하며 말이다. 예수님처럼 멸시, 분노, 비난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평화로움 속에서 초연하게 살고 싶은데, 왜 우리들은 외부의 자극이나 다른 사람이 던져 주는 말이나 인상, 혹은 우리 스스로의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감정으로 인해 휘저어짐을 받는 것일까?

생각을 붙잡지 않는 것
 
많은 경우에 죄된 생각이나 육체의 욕망은 순화되지 못한 감정을 통하여 일어난다. 그리고 우리는 그 좋지 못한 감정에 이끌려 가므로 죄의 욕망을 품게 되고 죄를 짓게 된다. 그러므로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온전한 신의 성품, 곧 신성에 참여하기를 원한다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생각과 감정의 실체를 잘 파악하여 알고 있을 필요가 있다.

 외부의 자극 때문이든, 자신의 문제 때문이든, 우리의 마음에는 끊임없이 생각이 일어나고, 그 생각에 따라 감정이 생겨난다. 마치 바다에 파도가 치고 물결이 일듯, 생각과 감정은 늘 우리 마음속에서 일렁댄다. 우리는 감정이 우리 자신의 모든 것이라고 믿는 경향이 있다. 감정은 우리 자신의 모두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타고난 타락한 성향을 지닌 마음에서, 그리고 오랜 세월 동안 우리 속에서 단단히 형성되어 온 에고, 즉 육신의 자아의 기전에서 만들어지는 것일 뿐...

 파도가 끊임없이 일어났다가 사라져가듯이, 좋지 않은 생각과 감정은 잡지 않고 그대로 놔두면 사라져 버린다. 파도가 사라져도 바다가 여전히 존재하듯이, 감정이 사라지면 성령과 함께 사는 우리 자신의 실체는 늘 그대로 존재한다.

 바울은 이것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산 자로 여길지어다(롬 6:11). 좋지 않은 생각과 감정이 계속 일어나 우리를 유혹을 할 때, 우리는 그 감정에 괘념치 말아야 한다. 우리는 그것에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도 말고, 그것을 그렇게 크게 생각하거나 붙잡지도 말고 (그 생각을 붙잡으면, 그 생각은 눈덩이 같이 큰 감정으로 불어나니까), 그 감정에 동정을 보이지도 말고, 그냥 성령께 던져 버려야 한다. 자신을 알아주지 않으면, 거듭나지 않은 육신에서 (마음이 거듭났을지라도 육신은 그대로 있기 때문에) 올라오는 에고, 자아는 자기를 알아 줄 때까지 줄곧 소리를 지를 것이지만...

 그 때,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의 그 생각과 감정을 안고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 주님께 그것을 던져 버리는 포기와 죽음의 의식을 치러야 한다. 하나님! 제가 원하지도 않고, 또 하나님께서 원하시지도 않는 아름답지 않은 생각과 감정입니다. 깨끗이 포기하고 드리니 가져가 주십시오!라고 나직하게 말하며...

자기를 부인한다는 것
 
예수님께서는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눅 9:23)라고 말씀하셨다. 자기를 부인한다는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하나님과 맞지 않는, 거듭나지 않은 육신에서부터 나오는 모든 욕망의 감정이나 생각들을 부인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우리는 우리 자신 스스로를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로, 그리고 하나님을 대하여서는 산 자로 여겨야 한다. 육신에서 올라오는 것들을 마치 내 것이 아닌 것으로 여길 줄 알아야 승리하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기가 쉬워진다.

 이렇게 간주해 보면 어떨까? 우리의 마음은 텅 빈 하늘과 같고, 우리의 생각과 느낌은 그 텅 빈 허공 위에 서로 어울려서 일어났다간 사라지는 구름 같은 것이라고... 하늘이라는 바탕에 구름 같은 한 생각이 일어났다가 사라지고, 그 생각과 연결된 다른 생각이 일어났다간 사라지는...

 생각이나 감정이 우리 자신의 실체 위에 구름같이 떠도는 것일 뿐인데도, 우리는 마치 그것이 우리 모습의 전부인 양, 그리고 그 생각이 마치 나인 것처럼 착각하여 그 생각에 속고 그 생각을 놓지 못해 매달린다. 그래서 생각이 슬프면 슬퍼하고, 생각이 두려우면 두려워하고, 생각이 분노하면 못 참아 하고, 생각이 원망하면 같이 원망하며, 생각에 따라 변화무쌍한 날씨처럼 변한다.

예수님의 초연한 마음처럼
 
예수님께서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으시고도 육체의 소욕을 따라 살지 않으실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육신의 생각이 일어날 때 그것을 부인하시고, 그런 생각과 감정들에 연연하지 않으시고, 성령의 능력으로 그것들을 초월하셨기 때문이었다. 주님께서는 육체에 계실 때, 매일 하나님 아버지께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하셨다. 육신의 소욕을 하나님께 드리고 그 대신 마음 속에 아름다운 하늘의 성령의 사랑이 가득 찰 때까지...

 그래서 예수님은 칭찬에도 의기양양하시지 않고, 비난에도 의기소침하시지 않고, 그분을 둘러싸고 있던 악의 영향과 부정적인 어두움의 그늘 속에서도 마치 태양이 구름 위에서 빛나듯 언제나 기쁘고 초연하게 사실 수 있었던 것이다. 심지어 마지막에 당신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치는 성난 폭도들의 아우성 속에서도, 그리고 못에 박히는 아픔 속에서도 침착함과 온유함을 잃지 않으시고 조용히 기도 하실 수 있었던 것이다.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라고...

 예수님은 마음을 비우셨다. 그분은 하나님이셨지만 하나님과 동등 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않으시고 자신을 비우셨다. 그렇게 자신을 비우신 예수님의 마음에는 육신의 소욕과 욕망의 감정들이 소용돌이 칠 수가 없었다. 늘 성령의 인도대로 성령의 소욕만을 따라 사셨기 때문에...

 우리도 마음을 비워야 한다. 육신의 생각과 감정들이 일어나는 매 순간마다 그것을 기도로 하늘로 올려 보내야 한다. 그리고 대신 우리의 마음을 성령의 사랑이 채우도록 해야 한다. 생각을 비운 마음의 자리는 본래 성령께서 사셔야 할 자리이기 때문에... 파도가 치듯이 육신의 마음 위로 온갖 생각과 감정이 일어날 때, 그것을 붙잡지 말고, 포기하고, 예수님께 바치고, 또 그것이 사라지도록 조용히 놓아두고, 우리는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초연하게 사신 비결이다.

 생각이나 감정을 붙잡지 않고 버리는 연습을 하는 것은 아주 중요하다. 그것은 나의 것이 아니야!라고 간주하고 하나님께 드리는 법을 배워야 죄를 승리할 수 있다.우리가 육신의 생각과 감정들을 하나님께 가져가 드리고 나면, 그 생각에 가려서 알지 못했던 자신을 알게 되고, 그 속에 역사하고 계시는 성령님의 목소리를 더 명확하게 듣게 된다. 늘 육신의 소욕의 떠드는 목소리 때문에 파묻혀 버리곤 하던 성령의 소리를... 더 명확하고 명료하게...

권두언

강병국 목사

 
하나님께서 만들어 놓으신 것들은 자연의 법칙, 즉 창조의 법칙을 따라 성장하여야 열매를 맺게 되어 있습니다. 자연계는 바로 그 법칙을 우리에게 매일 보여주고 있지요.

 우리 개인들의 성장과 교회의 성장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여 놓으신 주님의 뜻과 원칙을 따라서 성장하지 아니할 때에 기형이 되는 것입니다. 범죄한 후에 이 세상에 가시와 엉겅퀴들이 나기 시작한 것처럼 말입니다.

 우리의 교회들 중에서도 성경의 진리의 길을 따라 가르치고 성장하지 아니한 모임들 때문에 많은 혼란함들이 생겨나게 되었습니다. 이상한 사교와 이단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비 성경적인 가르침을 마치 진리처럼 알게 되고 어두움을 빛이라고 부르면서 생활하는 교인들로 넘쳐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혼란한 세상에서 어떻게 하여야 참 진리 교회를 찾을 수가 있을까요? 무엇이 참 하나님의 교회로 하여금 잘못된 오류로부터 따로 떨어져서 우뚝 서 있도록 만드는 것일까요? 여러분들은 참 하나님의 교회를 구별하는 법을 알고 계십니까? 무엇이 하나님께 인정 받는 참된 남은 교회일까요? 무엇으로 우리가 그것을 알아 볼 수가 있는 것일까요?

 이번 호는 이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이 여러분과 함께하시기를 간절하게 바랍니다.


 

서론 - 확인하고 믿는 신앙 습관

 현대 기독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가장 나쁜 신앙 습관을 한 가지만 지적해 보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확인하지 않고 믿는 신앙 습관이라고 단언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믿는 바를 성경으로 확인하는 것이 쉽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전혀 불가능하다고 말해서도 안됩니다. 사도 행전의 저자는 확인하고 믿는 신앙의 모본을 말하면서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행 17:11. 베뢰아 사람처럼 신사적인 그리스도인은 결코 맹목적일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의 모본을 따라야 합니다. 특히 교회 안에 온갖 오류와 귀신의 영들이 난무하는 마지막 시대에는 더욱 더 베뢰아 사람들이 가지고 있던 확인하고 믿는 신앙 습관을 배워야 합니다.

 생애의 빛은 이번 월간지에서 교회를 선택하는 방법을 성경 속에서 찾아보려고 합니다. 자신과 가족들이 매 주말마다 다니는 교회를 선택하는 일은 구원과 직결될 수 있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문제에 있어서도 베뢰아 사람들의 모본을 쫓아야 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가장 많이 던져지는 질문은 어떤 교회를 다녀야 합니까? 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교회를 선택하는 확실한 방법을 알기 원하는 것입니다.

 성경에는 각시대마다 참 교회를 선택하는 방법이 분명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노아의 시대, 엘리야의 시대, 예수님 시대,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그리고 오늘날까지 각 시대마다 진리를 붙잡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참 교회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마지막 시대에는 어떤 교회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참 교회일까요? 그 교회를 찾아낼 수 있는 확실한 성서적 방법은 없을까요? 이번 호에서는 베뢰아 사람들의 모본을 따라서 성경으로 확인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마지막 시대에 등장하는 참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먼저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일어날 것인가 라는 역사적 고찰을 해볼 것이며, 참 교회에서는 어떤 복음이 가르쳐질 것이고, 짐승의 표와 아마겟돈 전쟁에서 어떻게 살아남게 되며, 사단의 미혹과 기적과 거짓 가르침을 어떻게 피하게 되는지를 다음과 같은 순서로 살펴보도록 하겠다.

1부 - 사단의 공격 목표가 되는 교회를 찾으세요
2부 - 영원한 복음을 설교하는 교회를 찾으세요
3부 - 창조주를 올바로 경배하는 교회를 찾으세요
4부 -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하지 않은 교회를 찾으세요
5부 - 라오디게아 교회를 치료할 수 있는 교회를 찾으세요
6부 - 누가 진짜 교회인가?

 

1부 - 사단의 공격 목표가 되는 교회를 찾으세요!

 당신이 어떤 교회가 참 교회인가를 찾는 사람이라면, 당신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참 교회의 조건과 특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인 성경이 말하는 참 교회의 조건과 특징에 들어 맞는 교회가 진짜 하나님의 참 교회이기 때문이다.

 성경 요한 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하나님의 참 교회와 그 특성에 대하여 예언하고 있다. 그 교회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와 보호 속에서 마지막까지 보존될 것이며,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이룰 것이다. 그 교회는 하나님의 마지막 산 증인이 될 것이며, 선과 악의 대쟁투에서 하나님을 옹호하고 변호하는 무리들을 생산해 낼 것이다. 그러므로 그 교회는 지구 상의 어떤 교회보다 가장 맹렬한 사단의 공격 목표가 될 것이다. 과연 하나님의 참 교회, 그리하여 사단의 공격 목표가 되는 그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 그리고 그 교회는 언제 어떻게 나타날 것인가? 자, 그러면 지금부터 예언에 나와 있는 참 교회와 그 특징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하자.

1) 예언에 나와 있는 참 교회
1. 참 교회란 무엇인가?
 
참 교회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그것은 어떤 조직이나 교단이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가르쳐 주셨던 진리, 곧 변하지 않는 영원한 복음을 간직하고 가르치는 교회를 말한다. 그리고 또한 참 교회는 노아가 전파하였던 진리, 아브라함이 믿었던 진리, 엘리야가 경고하였던 진리, 다니엘과 사도 요한에게 계시되었던 예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가르쳤던 가르침을 정확하게 보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즉, 남은 무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교회란 참 진리를 보존하고, 그 진리대로 살기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바치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성경에 나타난 역사와 초기 그리스도 교회사와 중세기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항상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전수하며 생애 하였던 하나님의 교회, 즉 남은 무리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과거의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참 교회인 소수의 남은 무리가 항상 존재해 왔듯이,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교회를 가지고 계시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 그 교회는 진리를 사랑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 의해서 계속 이어질 것이다.

2. 예언에 여자로 상징된 참 교회
 
요한계시록 12장에는 참 교회가 소개되어 있다. 12장 1절에서 우리는 여인으로 표상된 참 교회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하늘에 큰 이적이 보이니 해를 입은 한 여자(a woman)가 있는데, 그 발 아래에는 달이 있고 그 머리에는 열 두 별의 면류관을 썼더라.

 이 성경절은 문맥상으로 볼 때, 상징적인 표현임에 틀림이 없다. 성경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상징적 표현 중의 하나는 교회를 여인으로 묘사하는 것인데,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참 백성인 교회를 정결한 처녀로 표현하였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고후 11:2). 또한 선지자 예레미야는 아름답고 묘한 딸 시온이라고 말하였으며(렘 6:2), 이사야는 시온에게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라고 말하였는데(사 51:16), 이것을 통하여 우리는 성경에서 시온은 하나님의 백성을 뜻하는 동시에 아름다운 딸(여인)로 묘사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정결한 처녀=시온=아름다운 딸=여인=하나님의 백성=참 교회)

 이제 요한계시록 12장에 나오는 여인 즉, 교회의 모습을 살펴보자. 이 교회는 해를 입고 있는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그런데, 이 여자가 머리에 쓰고 있는 면류관에 달린 12별은 12사도들을 상징하며, 발 아래 있는 달은 햇빛인 신약의 예수 그리스도를 반사하는 예언을 가진 구약을 상징한다. 그러므로 이것은 구약의 예언을 기초로 한 메시야 예수 그리스도를 가지고 있는, 달을 밟고 해를 입은 신약의 교회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참 교회란 시대와 환경을 초월하여 예수님께 직접 진리를 받은 12제자들의 가르침을 순수하게 보존하고 있는, 그리고 그들이 믿는 진리와 그들의 생애가 하나님의 영광으로 환하게 빛나며 하나님의 성품을 그대로 반사하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을 말한다.

3. 참 교회의 역사
A. 여자와 아이
 요한계시록 12장에는 12사도들의 가르침과 순결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참 교회가 어떠한 시련과 역사를 통과하게 될 것인가에 대한 놀라운 예언적 장면이 소개되어 있다. 이 중세기에 참 교회(여자)가 받았던 핍박의 역사를 공부해 보면, 예언에 나오는 참 교회(여자)가 오늘날에는 어디에, 어떠한 모습으로 있는지를 정확하게 알게 된다.

 요한계시록 12장 2-5절에서, 우리는 아기를 해산하려고 하는 여자(교회)를 발견하게 된다. 이 여자(woman)가 아이를 배어 해산하게 되매 아파서 애써 부르짖더라... 용이 해산하려는 여자 앞에서 그가 해산하면 그 아이를 삼키고자 하더니 여자가 아들을 낳으니 이는 장차 만국을 다스릴 남자라. 그 아이를 하나님 앞과 그 보좌 앞으로 올려가더라.

 만국을 다스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앞으로 올려간 이 아기는 누구일까? 이 성경절을 만족시키는 유일한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 이외에는 없다. 그렇다면 용은 누구이며, 누가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는가? 예수께서 마구간에 태어나셨을 때, 사단 (성경에서 용으로 표상된)은 로마의 헤롯 왕을 통하여 2살 이하의 어린 아이들을 학살함으로써 아기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마리아와 요셉을 애굽으로 피신하도록 하셨으며, 헤롯 왕이 죽은 후에 어린 예수와 함께 나사렛 마을로 돌아와 생애 하셨다. 사랑과 희생의 생애를 마치시고 예수께서 부활하셔서 하늘로 올라가신 사실을 성경을 통하여 알 수 있다.

B. 핍박 받는 여자, 핍박 받는 교회
 계속하여 다음 내용을 보자. 용이 자기가 땅으로 내어 쫓긴 것을 보고 남자를 낳은 여자를 핍박하는지라(계 12:13). 기독교 역사를 보면, 사단의 정신으로 고무된, 용으로 표현된 로마제국은, 그리스도의 추종자들을 극렬하게 핍박하였던 것을 알 수 있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의 교인들은 자신의 목숨을 바쳐야만 신앙을 지킬 수 있었다. 수많은 순교자들의 피가 강을 이루었던 사실을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확인할 수 있다. 이교신을 믿었던 로마제국이 교황권의 세도에 굴복하여 합병된 후,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교황권의 핍박은 더욱 극심해졌다. 역사가들은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죽은 순교자의 숫자가 5천만 명에 달한다고 증거하고 있다.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기 위하여 깊은 산과 계곡으로 피신하였던 참 교회에 대해서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그 여자가 큰 독수리의 두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 받으매(계 12:14). 중세기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기 위해서, 여자(참 교회, 남은 무리)는 알프스의 깊은 산속으로 피신할 수 밖에 없었다.

C. 1260년 동안의 종교 암흑 시대
 그런데 참 교회가 얼마나 오랫동안 광야에서 피신하였다고 하였는가? 하나님의 예언은 말하기를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하였다. 참 교회가 광야에 피신하였던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란 얼마나 긴 기간이며, 그 핍박의 기간은 언제 시작해서 언제 끝나는가? 같은 장 6절에 그 해답이 있다.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 거기서 일천 이백 육십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6).

 참 교회가 광야에 도망하여 피신한 기간을 한 성경절은 1260일이라고 했는데, 다른 성경절은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라고 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성경절의 문맥과 내용으로 보아서, 두 기간은 동일한 기간임을 알게 된다. 여기서 때(time)란 1년을 의미하는 상징적 표현임을 다니엘 11장 13절에서 확인할 수 있다. 북방왕은 돌아가서...몇 때 곧 몇 해 후에 대군과 많은 물건을 준비하였다가; 이로 보아 성경 예언의 기간을 나타내는 상징적 표현에서 때는 곧 해(year)를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즉,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는 1년+2년+반년=3년 반을 의미하는 예언적 기간인데, 이것은 정확하게 1260일이 된다(성경에서 1달은 30일로 계수됨).

97(성경 예언 연구의 원칙; 기간을 상징하는 예언에서 1일은 1년이라는 원칙. 에스겔 4장 6절에서 이 원칙을 뒷받침하는 열쇠를 찾을 수 있다. 내가 네게 사십 일을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또한 민수기 14:34에도 또 하나의 증거가 나와 있다.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그러므로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와 1260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은 공히 1260년으로 환산되어야 한다. 그러나 한 가지 주의해야 할 것은, 이러한 원칙을 성경에 나오는 모든 날짜에 적용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는 예언 해석 원칙은, 날짜가 기간적인 예언을 나타내는 상징어로 사용되었을 경우에만 적용할 수 있다. 이러한 예언 해석법이 올바로 적용되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 우리는 이미 성취된 예언을 역사 속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예언 해석법의 진위를 판단하기 위해서, 중세 시대의 참 교회가 광야에서 1260년 동안 핍박을 받았는가를 역사 속에서 확인해야 한다. 과연,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1260년 동안 교황권의 핍박을 피하여 광야 생활을 하였던 사실을 역사에서 찾을 수 있을까?

 역사는 이 예언이 시작되는 한 시점을 우리에게 가리켜 주고 있다. 우리는 역사 속에서, A.D. 538년에 로마제국의 저스티니안 황제가 로마 교회(교황권)에게 절대적인 종교적 권위를 부여했던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이 때부터 교황권은 종교적인 독재를 휘두르다가, 나중에는 유럽제국들의 왕이 취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교황의 인가를 얻어야 할 정도로 그 세도가 하늘을 찌르게 되었으며, 종교 및 정치에 있어서 절대적인 권력을 행사하게 되었다. 교황권이 이러한 권력으로 그리스도인들의 양심과 신앙을 핍박하였는데, 역사가들은 이러한 시기를 종교암흑시대라고 부르고 있다.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교황권의 핍박이 극렬해지자, 참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 전수 받은 진리를 지키기 위해서, 깊은 산과 계곡으로 숨어 들어 갔다. 특히, 신실한 왈덴스인들과 휴그노와 알비젠스와 같은 그리스도인들은 깊은 산속에 숨어서 수세기 동안 자신들의 신앙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교황권의 압력과 핍박에 대항하였던 사실을 역사에서 볼 수 있다.

4. 미국으로 피신하는 참 교회
 
그러나 126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 내려가서 하나님의 예언의 시계가 1798년을 가리킬 즈음, 유럽은 프랑스 혁명으로 인하여 대변혁을 겪게 되었다. 엄청난 특권을 누리던 성직자들을 향하여 저항하는 농민들의 반란이 일어났으며, 결국에는 나폴레옹이 지휘하는 프랑스 혁명군의 버티어 장군이 로마로부터 교황 피우스 6세를 잡아다가 파리의 감옥에 수감하여 교황을 감옥에서 죽게 하는 역사적인 사건이 일어났는데, 바로 그 해가 1260년이라는 기간의 종점인 1798년이었다. 프랑스 혁명정부는 로마 교회의 교황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고 선언함으로써,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교황권의 핍박 시대였던 종교암흑시대는 역사적인 종말을 고했다.

여자가 광야로 도망가매 거기서 1260일 동안 저를 양육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예비하신 곳이 있더라(계 12:6). 여자가 큰 독수리의 날개를 받아 광야 자기 곳으로 날아가, 거기서 그 뱀의 낯을 피하여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양육받으매(계 12:14).

 1260년 간의 종교암흑시대가 끝나갈 무렵,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하나님의 참 교회를 보존하시기 위하여 주님께서 한 땅을 준비하는 예언의 장면이 나온다. 여자의 뒤에서 뱀이 그 입으로 물을 강같이 토하여 여자를 물에 떠내려 가게 하려 하되 땅이 도와 그 입을 벌려 용의 입에서 토한 강물을 삼키니 (계 12:15-16). 1260년간의 종교암흑시대 말엽에, 그 당시의 참 교회였던 유럽의 청교도들은 정치적, 종교적 핍박을 피하여 신대륙인 미국으로 피신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용의 핍박으로부터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미국이라는 새로운 대륙을 사용하셨던 것이다. (미국의 출현에 대한 예언은 살아남는 이들 48호를 참조할 것)


2) 참 교회의 특징

1. 참 교회인 남은 자손
 
하나님께서 미국이라는 신대륙을 통하여 당대의 참 교회였던 신실한 청교도들을 구원하시자, 사단이 분노하는 모습이 12장의 마지막 절에 그려져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12:17).

 이 성경절은 성경에 나오는 예언 중에서 가장 중요한 예언 가운데 하나이다. 왜냐하면 이 예언은 중세기 암흑시대 이후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마지막 시대, 곧 미국의 출현 이후부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까지의 참 교회의 정체를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여자의 남은 자손인 참 교회를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표현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그러므로 18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참 교회의 특징을, 성경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묘사하고 있다.

A. 남은 무리란?
 요한계시록 12장 마지막 절인 17절에 나오는 성경절에서, 우리는 사단이 여자의 남은 무리(remnant)와 전쟁을 벌이려고 한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여기서 남은 무리(remnant)란 무엇을 의미하는 말일까? remnant의 원어의 의미를 살펴보자. 옷감을 파는 집에 가면 천을 큰 두루마리로 말아놓은 것이 있는데, 그 두루마리의 마지막 남은 조각을 remnant라고 부른다. Remnant는 두루마리의 첫 번째 천과 동일한 천으로써, 맨 마지막에 남는 조그만 천 조각을 의미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남은 무리는 초기 사도시대의 교회가 가지고 있던 가르침과 동일한 변질되지 않은 가르침을 그대로 전수하고 있는 참 교회,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B. 남은 무리의 특징
 하나님의 영원한 진리, 변질되지 않은 복음을 가르치는 참 교회, 하나님의 남은 무리의 특징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다.

2.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교회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가 강요된다는 사실을 믿고 있다.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짐승의 표가 모든 사람들에게 강요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계 14:11). 사도 요한은 계시 속에서 마지막 시대에 전세계적으로 강요되는 짐승의 표를 보면서 두려움과 엄숙함으로 떨었을 것이다. 그러나 계속 이어지는 계시에서 그는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승리하는 참 교회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바로 여기에 짐승의 표를 피하는 참 교회의 모습이 나와 있다.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다.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에서, 우리는 하늘에 들어갈 마지막 참 교회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될 것인가에 대한 결정적인 대답을 발견할 수 있다. 마지막 시대에 누가 끝까지 살아남아 영생을 누리는 자들이 될까?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요한계시록 22:14, (한글 성경에는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킹 제임스 영어 성경과 성경의 원문에는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역자주).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하늘에 들어가는 자들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킨다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주목해야 한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를 묘사하면서, 참 교회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오늘날, 과연 누가 사도 요한을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그리스도의 예언을 부인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현실을 살펴보면, 너무나 많은 목사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계명은 십자가에서 폐해졌다고 설교하고 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마지막 시대에 사단이 분노하여 전쟁을 벌이는 상대는 오직 여자의 남은 자손 외에는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의 계명이 폐하여졌다고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사단의 공격대상에서 제외될 것이며, 그들은 짐승의 표를 받고 오히려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세력에 가담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는 당신이 계명을 폐하기 위해서 이 땅에 오신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5:17-18.

 참 교회의 교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또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며 지키는 변화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지셨던 똑같은 믿음으로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구원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18세기 이후에 나타나는 참 교회의 교인들을 설명하면서 3번이나 반복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한복음 14:15

3. 예수의 증거를 가진 교회
 
계시록 12장 17절에 보면, 남은 무리는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이라고 나온다. 예수의 증거란 무엇인가? 우리는 그 대답을 성경절에서 찾을 수 있다. 요한 계시록 1장 1~3절을 보자.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라 이는 하나님이 그에게 주사 반드시 속히 될 일을 그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그 천사를 그 종 요한에게 보내어 지시하신 것이라. 요한은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을 다 증거하였느니라.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기록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때가 가까움이라.

 2절과 3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증거 곧 자기의 본 것 이라는 구절과 이 예언의 말씀이라는 구절이 나온다. 그러므로 예수의 증거란 요한이 본 계시, 곧 계시로 예언된 하나님의 말씀을 가리킨다. 또 다른 성경절을 보자. 요한 계시록 19장 10절에는 내가 그 발 앞에 엎드려 경배하려 하니 그가 나더러 말하기를 나는 너와 및 예수의 증거를 받은 네 형제들과 같이 된 종이니 삼가 그리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께 경배하라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라 하더라.

 위의 성경 구절도 예수의 증거가 무엇인지 확실하게 말해 주고 있는데, 예수의 증거는 대언의 영이며, 영어로는 spirit of prophecy, 예언의 신이다. 그러므로 마지막 남은 교회의 특징은 예수의 증거인 예언의 말씀, 곧 예언해석을 가지고 있어야만 한다. 그러므로 참 교회는 사도 요한이 계시록에 기록해 준,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교회의 위험과 오류들의 함정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교회, 그래서 선지자의 증거들을 잘 순종하는 교회이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예언의 증거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진리의 길로 인도하시고 보호해 오셨다. 그러므로 이 마지막 교회는 진리의 배도에서 순결하게 보호함을 받는 교회이다.

È 참 교회를 찾고 있는가? 하나님의 계명에 대하여 올바르게 가르치므로, 또 마지막에 대한 올바른 예언 해석을 가지고 있으므로, 사단의 확실한 공격목표가 되고 있는 교회를 찾으면, 그 교회가 참 교회일 것이다.

2부 - 영원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으세요!

 당신은 어떤 교회를 원하는가? 귀에는 듣기 좋고 부드럽지만, 영생으로 인도하지 않는 가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를 원하는가? 아니면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지만, 가장 성서적이고 영생을 가져오는 영원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를 원하는가?

 마지막 짐승의 표의 환란과 아마겟돈 전쟁에 승리하여 영생을 얻게 하는 영원한 복음, 인간의 유전의 가르침을 떠난 성서적인 참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를 찾는 것과 그 참된 복음이 무엇인지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성경은 태초부터 변하지 않은, 하나님의 불변의 진리인 영원한 복음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그 영원한 복음이야말로 하나님의 교회 참 백성을 만들어 내는 복음이다. 함께 공부해 보자.

1)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복음
 
요한 계시록 14장 6절에는 영원한 복음에 대하여 나온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위의 성경구절을 보면, 이 세상에 전할 마지막 기별을 전파하기 위하여 첫 번째로 날아 가고 있는 천사가 모든 사람들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이 영원한 복음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영원한 복음이란, 아담이 타락하자마자 에덴 동산에서 하나님께서 인간을 어떻게 구원하시겠다는 구속의 방법에 대해 계시하셨던 바로 그 복음을 가리키며, 또한 아브라함이 이해하고 믿었던 그 구원의 복음을 말하는 것이고, 사도 바울이 깨닫고 설명한 바로 그 똑같은 복음을 말하는 것이며, 현재는 물론 미래까지 영원히 동일하며 변치 않는 바로 그 복음을 말하는 것이다. 쉽게 말해서 영원한 복음이란,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유일한 구속의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서, 그 방법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시종 일관하는 복음이라는 의미이다.

2)  짐승의 표를 이기는 참 교회
1. 십사만 사천으로 묘사된 하나님의 참 교회
 
요한 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으로 상징된 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중요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내가 보니 바다에서 한 짐승이 나오는데(1절) ...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11절) ...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저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15,16절).

 그리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계시록 14장에는 짐승의 표를 이기고 승리하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의 모습이 하늘 시온산에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서있는 십사만 사천의 모습으로 묘사되어 있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계 14:1). 요한 계시록 14장 1절부터 5절까지는 십사만 사천의 정체와 품성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고, 6절부터는 십사만 사천, 즉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전하는 기별이 세 천사가 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2. 셋째 천사의 기별의 요지
 
요한 계시록 14장 6절부터 12절에 나오는 세 천사의 기별 중, 마지막 짐승의 표의 환란에 대하여 언급된 셋째 천사의 기별의 요지를 보면, 짐승의 표를 받지 말라! 짐승의 표를 받으면 멸망할 것이다.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인내로 견디는 무리가 있는데, 그 사람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가진 사람들 뿐이다!라는 것이다. 성경절을 함께 보자.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가로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9~11, 12).

 셋째 천사는 짐승의 표를 받지 말고, 그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고 외치고 있으며, 이 기별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 곧 인내를 가지고, 생명의 위협 앞에서도 짐승의 표 받기를 거절하는 마지막 성도들이 여기에 있다고 외치면서 끝을 맺고 있다.

3)  참 교회 참 백성을 만들어내는 복음
 
그렇다면 위에서 언급된, 짐승의 표를 이기고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고 승리하는 마지막 백성이 되려면 어떤 복음을 믿고 알아야 하는가? 어떤 복음이 마지막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고, 예수 믿음으로 승리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양산해 내는가? 현재 기독교에서 전해지고 있는 대부분의 복음은 변질된 반쪽 복음이다. (기독교의 반쪽 복음에 대한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30호, 45호, 72호를 참조 하세요) 변질된 복음은 우리로 온전한 영적인 경험을 하지 못하도록 인도하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의 환란을 이기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기 어려우며, 결국 우리로 영생에 이르게 하지 못한다. 성경이 말하는 올바른 복음에 대하여 연구하여 보자.

1. 영원한 복음, 참 복음

 
이 세상에 은혜의 시기가 마치기 전에 짐승의 우상이 서게 될 것이고 또한 짐승의 표가 강요될 것인데, 하나님의 참 교회인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짐승의 표 대신 하나님의 인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인은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히 순종하고 품성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자들에게만 쳐질 것이다. 그런데 영원한 복음을 믿음으로 체험한 사람만이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품성을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사실, 짐승의 표의 환란과 선과 악의 마지막 대쟁투의 초점인 아마겟돈 전쟁의 기본적인 투쟁은 하나님의 계명을 전적으로 순종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느냐 없느냐 하는 투쟁이다. 인간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할 수 있는가? 타락한 죄의 성향을 타고난 사람은 본성적으로 하나님을 순종할 마음이 없다. 그러나 거듭남을 체험한 사람, 그리고 예수의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사람이 될 수 있다.

 복음이란 흔히들 기쁜 소식이라고 설명하지만, 그 이상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믿고 있던 영원한 복음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롬 1:16). 복음이란 단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통하여 우리 인간들의 죄를 용서하시고 구원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복된 소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그 복음 속에 있는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힘, 다시 말해서, 타락하기 이전 상태로 죄인들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의 능력, 곧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파워 그 자체를 말하는 것이다.

 복음이란 기별이나 진리 그 이상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것은 죄인을 변화시키어 에덴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게 만드시는 하나님의 재창조의 기적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참 복음, 영원한 복음은 짐승의 표의 환란을 이기게 하고, 죄를 승리하게 하여, 불순종하고 악해진 죄인들을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의인들로 변화시키시어, 죄가 없는 하늘에서 타락하지 않은 자들과 하나님과 함께 살 수 있도록 회복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을 말하는 것이다.

2. 예수 믿음
 
마지막 성도들이 가져야 할 예수 믿음이란 무엇인가? 예수 믿음이란 예수께서 가지셨던 믿음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인성을 입으시고 이 땅에 사셨지만, 그분은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믿고 의지하시므로 죄를 승리하는 생애를 사셨다. 그분은 하나님의 능력과 영원한 복음의 능력을 믿으셨다. 우리도 우리를 재창조하시고 온전히 변화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의 복음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우리가 예수 믿음을 가지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온전한 의를 얻게 된다. 그것을 믿음으로 얻는 의라고 부른다.

 예수께서는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지심으로 우리가 그분의 의를 가질 수 있게 하시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충분하게, 완전하게, 전적으로 구원하실 수 있다는 그리스도의 능력을 믿는 믿음이 예수의 믿음이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는 우리 죄를 사하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온전하게 지킬 수 있는 사람으로 회복시키시는 능력을 가지고 계신데, 우리가 그것을 믿을 때에 주께서는 우리를 완전하게 구원하실 수가 있는 것이다.

3.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게 하는 복음
 
죄인이 회개할 때, 그는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로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는다. 그것을 칭의라고 부른다. 그러나 완전한 복음은 칭의에서 끝나지 않는다. 그것은 구원의 시작일 뿐이다. 죄인이 거듭날 때에 그는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새 마음을 받았으므로 죄를 미워하게 되며 다시는 그 죄를 짓고 싶은 마음이 없어진다. 설사 다시 죄를 짓고 싶은 욕망이 육신에서 올라올지라도 그는 자신의 육체의 소욕을 부인하고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치며, 자아가 날마다 죽는 경험을 하며 하나님과 함께 동행하는 삶을 살게 되는데, 이것을 성화라고 한다. 그리고 성화의 열매는 죄를 승리하며,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게 하는 품성을 이루게 한다.(성화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68호와 79호를 참조 하세요)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구세주를 믿고, 용서 받은 경험이 충만한 죄인이 사랑에 감동되어 이루어지는 성령의 열매인 것이다. 자기가 매일 죽고 그리스도께서 자기 속에 사시는 경험을 통하여, 항상 내재 하시는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계명들을 순종하여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히 반사하는 사람들, 곧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만이 짐승의 표의 환란을 이기고 하나님의 인을 받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자들이 바로 믿음으로 의로워진 사람들이다.

 의로운 자들은 의롭게 사는 사람들이며, 그 의의 척도는 하나님의 계명인 것이다. 의롭게 사는 자들은 순종하는 자들이며,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그들 마음 가운데 하나님께 대한 온전한 사랑이 없는 사람들이다. 사단은 사람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주장 하였다. 또한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형상을 취하시고 이 세상에 오사 당신의 완전한 순종을 하심으로써, 신성과 인성이 연합될 때에 하나님의 모든 법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셨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에, 그는 그리스도의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도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은 그분의 품성의 사본인 동시에 모든 품성의 표준이 된다. 그리스도께서 사신 지상 생애는 하나님의 법을 완전히 표현한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같은 품성을 가지게 될 때에는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가르치면서 성화나 순종을 강조하지 않는 복음, 하나님의 계명에 대한 온전한 순종을 가르치지 않는 복음, 온전한 거듭남을 통해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품성을 이룰 수 있다는 것을 가르치지 않는 복음, 이런 것들은 영원한 복음이 아니다. 우리가 영원한 복음을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이룬 사람들에게 쳐지는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할 것이고, 짐승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영생에 이르게 하는 영원한 복음을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고, 이런 복음을 전파하는 교회를 찾는 것 또한 매우 중요하다.

È 참 교회를 찾고 있는가? 영원한 복음, 변질되지 않은 올바른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가 참 교회이다.

3부 - 창조주를 올바로 경배하는 교회를 찾으세요!

 요한계시록 14장 6절과 7절에는 첫째 천사가 외치는 기별이 나온다.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그가 큰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첫째 천사는,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고 외치며, 심판의 시간이 이르렀으니 하늘과 땅과 바다를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경고하고 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가 무엇일까? 또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의미는 무엇일까? 올바른 신관(神觀)을 가지고, 올바른 방법으로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교회를 찾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이 문제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보기로 하자.

1)  변질되어 가는 예배방식
 
우리가 하나님을 우리의 창조주로 믿고 섬기며 경배한다는 것을 표현하는 것이 하나님께 드리는 우리의 예배이다. 예배는 가장 엄숙하고 경건하고 하나님 앞에 우리 자신을 최대로 겸손하게 낮추는 방법으로 드려야 한다. 우리를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께 우리는 연약한 피조물이요, 찬송과 존귀를 받으셔야 할 분은 하나님이라는 것을 시인하고, 경건하고 엄숙하게 마음을 다해 드리는 예배를 하나님은 기뻐 받으신다. 예배는 진리 안에서 신령과 진정으로 드려야 한다.

 현대 기독교의 예배 방식을 보면, 점점 엄숙함과 경건함을 잃어버리고, 대신 세속적인 음악이나 악기들을 시끄럽게 사용하여 지나친 감상적인 분위기에 빠지도록 이끄는 경향이 많다. 겸손하게 회개하고 자복하는 마음을 일으키는 대신, 지나치게 감정을 흥분시키거나 자신만의 감정에 도취되도록 조장하는 음악을 사용하는 예배는 올바른 예배가 아니다. 그런 예배는 조용한 가운데 역사하시는 성령의 감화와 역사를 방해하여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살피지 못하게 하므로 진정한 회개와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도록 우리를 인도하지 못하며, 감정적인 흥분에만 몰두하게 하게 하므로 올바른 예배 방법이라고 할 수 없다. 초대 교회가 가지고 있던 경건한 예배 형식을 가진 교회를 찾는 것이 중요하다. (자세한 내용은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86호를 참조하세요)

2)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라는 의미는 무엇인가?
 
요한 계시록 14장 7절에 보면 첫째 천사가 날아가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고 외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리라라는 뜻이 무엇일까? 성경에서 두려워하라는 뜻은 우리들이 흔히 생각하는 개념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두려워한다는 뜻은 경외한다는 뜻이다. 다음의 성경 절들을 읽어 보도록 하자.

인자와 진리로 인하여 죄악이 속하게 되고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악에서 떠나게 되느니라 (잠 16:6).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 도에 행하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시 128:1). 곧 너와 네 아들과 손자로 평생에 네 하나님 여호와를 경외하며 내가 너희에게 명한 그 모든 규례와 명령을 지키게 하기 위한 것이며(신 6:2). 위의 성경 절들은 하나님을 경외, 즉 하나님을 두려워한다는 것은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고 죄를 멀리하는 것을 의미하고 있다 (욥기 1:1 참조).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여 독자 이삭까지 아낌없이 제사로 바치려는 순간,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네가 네 아들 독자라도 내게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두려워)하는 줄을 아노라 (창 22:12).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무슨 뜻을 의미하고 있는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말은 우리의 생애에서 그리스도의 성품을 나타낸다는 뜻이다. 데살로니가후서 2장 13,14절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가르치신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너희를 택하사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과 진리를 믿음으로 구원을 얻게 하심이니 이를 위하여 우리 복음으로 너희를 부르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그 앞을 지나치시면서 당신의 형상을 보이시면서 자기의 이름을 선포하시었다.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주께서는 오히려 당신의 성품의 특성을 열거하신 사실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출 33, 34장 참조). 그러므로 쉽게 말해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며, 죄를 멀리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어 속히 그의 품성을 우리 속에 온전히 이루라는 경고의 기별이다.

 첫째 천사가 외치는 기별은 시간을 불문하고 언제나 진리이지마는, 이 기별을 새삼스레 급하게 경고하는 이유는, 그의 심판 하실 시간이 이르렀기 때문이다. 또한 이 기별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 즉 창조주를 경배하라는 진리를 포함하고 있다. 마지막을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완전히 순종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생애로 온 세상에 나타내어야 한다. 이것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영광을 돌린다는 의미이다.

3)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라
1.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한다는 의미
 
첫째 천사가 외치는 기별을 보면,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 즉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을 경배하라는 경고가 담겨있다. 우리가 하나님을 경배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요한 계시록 4: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창조주를 경배한다는 의미는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순종하며 따라간다는 의미로 쓰여진 것이다. 믿기만 하면 다 된다는 식의 변질된 복음을 가지고 있는 마지막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의 명령들 중에서 네 번째 계명은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출 20:8-11,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2. 삼위일체 하나님
 
구약 성경에서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을 지칭하는 하나님이라는 말은 히브리 말로 엘로힘인데, 이 말은 복수(復數)이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모세를 통하여 계시하시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신 6:4)라고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이란 단어는 엘로힘, 즉 복수 명칭이다. 그 복수 명칭을 쓰시는 하나님이 곧 오직 하나인 여호와이신 것이다. 여기서, 오직 하나라고 한 히브리 말은 에하드로서, 복합적 단일을 나타내는 말이다. 그래서 복수 명칭인 엘로힘이신 그분이 바로 지존자이신 오직 하나, 곧 에하드이신 여호와이시다.

 여호와라는 말의 뜻은 스스로 있는 자라는 것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러므로 여호와 하나님은 신약 성경에서 계시해 주신대로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삼위로 계시는 엘로힘이신데, 그 엘로힘이신 아버지, 아들, 성령은 다 지존자시라는 말이다.

 3세기에 일어난 아리우스주의는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한 분뿐이요, 아들은 최초의 피조물이며, 성령은 하나님의 감화력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천지와 만물은 최초의 피조물인 하나님의 아들을 통하여, 즉 아들을 시켜서 창조하였다고 주장하였다. 지금도 이 사상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이 있다. (더 자세한 내용은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96호를 참조하세요)

 이사야 44장 24절에는 여호와 하나님 자신이 친히 그 입으로 이렇게 선포하신 말씀이 나온다. 네 구속자요 모태에서 너를 조성한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 이 선언은 바르게 인식되어야 한다. 여호와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실 때 그분과 함께한 다른 분은 결코 없었다. 그분은 홀로 하늘과 땅을 만드시고 만물을 지으셨다. 만일, 예수님이 창조된 피조물이라면, 그는 창조에 참여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그는 여호와 곧 지존자가 아니요,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3. 신약의 예수님은 구약의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심
Æ 구약: 여호와는 구속주;...여호와여 주는 우리의 아버지시라 상고부터 주의 이름을 우리의 구속자라 하셨거늘(사 63:16). 누구든지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니...(요엘 2:32).

Æ 신약: 예수 그리스도는 구세주;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수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행 4:12).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행 5:31).
저에 대하여 모든 선지자도 증거하되 저를 믿는 사람들이 다 그 이름을 힘입어 죄 사함을 받는다 하였느니라(행 10:43).

Æ 구약: 여호와는 창조주; ...나는 만물을 지은 여호와라 나와 함께한 자 없이 홀로 하늘을 폈으며 땅을 베풀었고(사 44:24).

Æ 신약: 예수님은 창조주;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요 1:1~3).

 앞에 언급된 구약과 신약의 비교를 보아도 예수 그리스도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이신 것이 확실하다. 그러므로 마지막 심판의 시간이 이르러 오는 이 때에, 창조주 하나님을 올바로 알고, 올바른 방법으로 예배하며, 우리의 성품과 생애로 하나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중요하다.

È 참 교회를 찾고 있는가? 그 교회가 하나님에 대한 올바른 신관((神觀)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을 바른 성경 진리 가운데서 올바른 방식으로 예배 드리는지, 그리고 생애와 성품의 변화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가르치는지를 잘 살피고 숙고하여 찾아야 할 것이다.

4부 - 바벨론의 포도주에 취하지 않은 교회를 찾으세요!

 요한계시록 13장에는 두 짐승으로 상징된 세력이 전 세계적으로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장면이 나오고 계속해서 이어지는 계시록 14장에는 짐승의 표를 이기고 승리하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 즉 십사만 사천의 모습이 나온다.

 새 노래를 부르니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인 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 그 입에는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니라 계 14:3~5.
 십사만 사천인, 그들은 더럽혀지지 않은 순결한 진리를 붙들고 사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이다. 계시록 14장 1절부터 5절까지는 십사만 사천의 정체와 품성에 대한 묘사가 기록되어 있고, 6절부터는 십사만 사천 즉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전하는 기별이 세 명의 천사가 전하는 모습으로 나타나 있다. 6절과 7절에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전하는 첫 번째 기별이 나오며, 계시록 8절에는 제4부에서 다루고자 하는 두 번째 기별이 기록되어 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여기에 나오는 천사는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는 참된 그리스도인들 즉 참 교회를 뜻한다.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는 바벨론과 바벨론이 사람들에게 먹이는 진노의 포도주의 정체를 드러내는 설교와 가르침을 전파한다.
 
 요한계시록 18장에도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이 전파하는 곧바른 기별이 나오는데, 그들은 바벨론에 속해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 곳으로부터 불러 내는 역할을 한다. 이 일 후에 다른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을 보니 큰 권세를 가졌는데 그의 영광으로 땅이 환하여지더라.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그 음행의 진노의 포도주를 인하여 만국이 무너졌으며 또 땅의 왕들이 그로 더불어 음행하였으며 땅의 상고들도 그 사치의 세력을 인하여 치부하였도다 하더라. 또 내가 들으니 하늘로서 다른 음성이 나서 가로되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계 18:1~4.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전하는 기별로 인하여 바벨론은 그 정체가 폭로되어 무너지게 되는데, 참 교회는 부디 바벨론의 죄에 참여하지 말하는 간곡한 호소의 말씀을 전한다. 그렇다면 바벨론은 무엇이며, 그들이 사람들에게 먹여서 취하게 만드는 음행의 포도주는 무엇인가? 이러한 말씀들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해야만 참 교회를 구별할 수 있으며 또한 참 교회가 전하는 기별을 듣고 바벨론에서 나와 그 죄에 참여하지 않을 수 있다.

1) 바벨론이란 누구인가?
 
요한계시록 17장에는 바벨론의 모습이 다음과 같이 묘사되어 있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 17:5. 여기서 사도 요한은 바벨론에 대한 또 다른 호칭을 음녀라고 부르고 있는데, 그 음녀는 또한 자신을 따르는 자녀들의 어미로 묘사되었다. 바벨론의 또 다른 호칭인 음녀는 무엇인가? 음녀와 반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정결한 처녀(여자)의 성서적 의미를 이해하면, 음녀가 가지고 있는 정확한 의미를 알게 된다. 성경에서 여자 또는 정결한 처녀는 하나님의 진리를 가지고 있는 참 교회를 상징한다.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라 고후 11:2.

 그러므로 정결한 처녀(참 교회)와 반대 의미를 가지고 있는 음녀는 거짓 가르침과 교리를 가지고 있는 바벨론 교회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음녀는 간음을 행하는 창녀를 말하는 단어이다. 그러므로 영적으로 오류와 간음을 범하는 교회를 음녀라고 성경은 지목하고 있는 것이다. 이 기사의 서두에서 살펴 보았던 것처럼, 요한계시록 14장 앞부분에는 음행을 범하는 바벨론 교회와 완전히 대조되는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가 나오는데 그들이 바로 십사만 사천인이다. 그들은 음녀(바벨론 교회)가 가르치는 음행한 교리들에 의하여 더럽혀지지 않았으며 순결한 진리를 끝까지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계 14:4. 그들에 의하여 바벨론의 정체가 폭로되고 하나님의 백성이 바벨론으로부터 빠져 나오게 된다.

 한 가지 알아두어야 할 사실은,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바벨론은 영적인 세력이라는 점이다. 예레미야서에 기록되어 있는 예언, 즉 구약시대의 고대 바벨론 제국이 무너지고 다시는 건국되지 못할 것이라는 말씀을 볼 때, 계시록에 등장하는 바벨론은 실제적인 바벨론 국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세력, 즉 타락한 교회(음녀)를 말하는 것이다. 말하기를 바벨론이 나의 재앙 내림을 인하여 이같이 침륜하고 다시 일어나지 못하리니 그들이 쇠패하리라 하라 하니라 예레미야의 말이 이에 마치니라 렘 51:64.

 바벨론의 또 다른 이름인 음녀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세력이라고 계시록은 말하고 있다. 또 일곱 대접을 가진 일곱 천사 중 하나가 와서 내게 말하여 가로되 이리 오라 많은 물 위에 앉은 큰 음녀의 받을 심판을 네게 보이리라 땅의 임금들도 그로 더불어 음행 하였고 땅에 거하는 자들도 그 음행의 포도주에 취하였다 하고..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계 17:1,2,6. 요한계시록에는 두 종류의 여자가 등장하는데, 하나는 하나님의 참 교회를 상징하는 정결한 여자이고, 다른 하나는 바벨론 교회들을 상징하는 음녀이다. 바벨이라는 단어는 혼잡을 뜻하는 말로서 진리에다 오류를 뒤섞어 놓은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이 말은 이미 구약에 설명해 놓은 말씀들을 영적인 세력에 인용하여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의 우상 숭배의 이교 가르침에 취해 있는 상태에서 나와야 한다고 구약에 이미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다.

 대저 이스라엘과 유다가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자를 거역하므로 죄과가 땅에 가득하나 그 하나님 만군의 여호와에게 버림을 입지 아니하였나니 바벨론 가운데서 도망하여 나와서 각기 생명을 구원하고 그의 죄악으로 인하여 끊침을 보지 말지어다 이는 여호와의 보수의 때니 그에게 보복하시리라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케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바벨론이 졸지에 넘어져 파멸되니 이로 인하여 울라 그 창상을 인하여 유향을 구하라 혹 나으리로다 렘 51:5-8.

2) 취하게 하는 음행의 포도주
 
바벨(babel)이란 말의 어원이 가지고 있는 의미는 혼잡함 또는 섞임(confused)이다. 바벨론이란 단어 자체에서도 우리는 성서적 진리와 거짓 가르침이 섞여 있는 상태를 확인할 수 있다. 바벨론은 시대를 막론하고 그 특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가르쳐준다. 바벨론은 여호와의 수중의 온 세계로 취하게 하는 금잔이라 열방이 그 포도주를 마시고 인하여 미쳤도다 렘 51:7. 포도주는 포도즙이 발효된 것이기 때문에 냄새가 나고 취하게 하는 성질을 가지게 있다. 우리에게 활력을 주는 포도즙이 발효되어 취하게 하는 술이 된 것처럼 하나님의 진리가 오류와 섞이면 우리는 취하게 만드는 바벨론의 포도주가 되는 것이다. 바벨론에 속한 교회들이 전하는 거짓 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영적으로 취하게 되어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거짓 복음과 거짓 교리에 취한 사람마다 하나님이 구원의 역사를 진리를 분명하게 식별하지 못하여 결국에는 재앙을 받게 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는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 고 강력한 호소를 하는 것이다(계 18:4).

 옛날 고대 바벨론 시대에 시작된 이방 종교의 가르침들은 중세기에 1200여 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서 교황권에 서서히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초대 그리스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순결한 진리에 이방 종교의 가르침들을 섞은 혼합된 교리를 가짐으로 바벨론 즉 음녀의 어미가 되고 말았다. 중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천주교회가 이방종교로부터 받아들인 많은 가르침들을 개혁하였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오류와 이설들이 개신교회들 속에 남아 흘러 내려오고 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바벨론을 음녀와 그를 따르는 자식들로 규정하고 있는 것이다. 그 이마에 이름이 기록되었으니 비밀이라, 큰 바벨론이라, 땅의 음녀들과 가증한 것들의 어미라 하였더라 계 17:5. 비록 개신교회가 교황권으로부터 빠져 나왔지만, 여전히 그 어미인 교황권의 취하게 하는 포도주(거짓 교리)를 전하고 있다면 그러한 개신교회는 음녀의 딸이라고 불리울 수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음행의 포도주가 마지막 시대까지 전하여져서 수많은 교회들을 취하게 만들 것이라는 사실을 일곱 교회의 예언(계 2장과 3장)을 통하여 분명하게 경고해 주셨다(살아남는 이들 제14호, 54호를 참조하기 바람).

 그러므로 마틴 루터와 같은 위대한 종교 개혁자들이 시작한 진리의 회복 운동은 예수 그리스도와 열 두 제자들이 전했던 진리가 완전하게 회복될 때까지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한다. 이 바벨론의 포도주는 사람들로 하여금 취하여 이성을 잃게 만들어서 참 하나님과 그 분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도록 비틀거리게 만드는 거짓 교리들이다. 교황권이 중세기 동안에 몰래 들여 온 취하게 하는 음행의 포도주들은 다음과 같다. (바벨론과 포도주에 대하여 보다 자세한 내용을 공부하기 원하는 분들은 살아남는 이들 제90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 원죄설
 
A.D. 4세기경, 기독교계는 종교암흑시대를 돌입하면서 깊은 신학적 혼란 속에 빠지게 되었다. 마리아가 중보자로 등장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구세주로서의 위치가 흔들렸으며, 그리스도와 사도들에 의해서 가르쳐지던 원래의 진리가 거의 사라져갔다. 수많은 종류의 교리들이 그 원래의 의미를 잃어버리고 방황하게 되었다. 교회는 여러 차례의 회의와 결의문을 통해서 정설을 정립하려고 했지만, 그러한 것들은 교회를 점점 더 그리스도의 단순한 복음으로부터 멀어지게 하였다. 이러한 신학적 혼돈 속에서 한 사람이 강력한 영향력을 미치면서 나타났는데, 그의 이름은 어거스틴이다. 그는 당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신학자였으며, 천주교회가 가지고 있는 신학적 오류 중의 상당 부분이 그에 의해서 시작되었거나 수립되었다. 슬픈 사실은, 그의 가르침과 신학적 영향력의 그림자 특히 원죄에 대한 그의 가르침은 오늘날까지 기독교 전체에 드리워져 있어서 수많은 교회들을 어둡게 만들고 있다.

 어거스틴은 성(sex)을 원죄라고 주장하였는데, 그의 그러한 주장은 자신의 죄된 생활을 합리화하기 위한 것이었다. 그는 사생아를 낳음으로써 불법적인 아버지가 되었는데, 이것은 그의 사생활이 경건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어거스틴의 생활 속에 있는 이러한 약점은 그로 하여금 자신의 죗된 생활을 합리화 시킬 수 있는 신학적 핑계를 찾도록 유도하였다. 자신의 생애에서 죄에 대한 승리의 삶을 살지 못했던 어거스틴은 원죄의 폭을 점차적으로 넓혀서 다른 문제에까지 적용하기에 이르렀다. 즉, 태어나기를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죗된 생활을 살 수 밖에 없다는 생각이 그의 신학을 지배하게 되었다. 어떤 목사나 신학자도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것 이상의 설교와 신학적 이론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사실을 어거스틴의 생애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어거스틴은 육과 영 사이에 무서운 투쟁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그는 영이 육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을 때에 생기는 마음의 놀라운 변화 즉, 거듭남의 경험을 이해하지 못하였다. 마음이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죄에 대한 승리는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죄에 대한 승리의 경험을 하지 못했던 어거스틴, 참된 거듭남의 경험을 소유하지 못했던 어거스틴은 자신의 죄된 경험에 맞추어서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타락하고 이기적인 본성 자체를 죄로 생각하였던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죄는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죄란 우리가 태어날 때에 이어받는 타락한 본성 자체를 죄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인류가 아담이 범죄했을 때에 함께 범죄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리도 아담의 범죄의 책임을 물려 받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범하지 아니한 조상의 죄들로 말미암아 정죄를 당한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것을 우리는 원죄 사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죄란 우리가 태어나는 죄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마음과 행위로 범하는 불순종을 말하며, 성령께서 양심 속에서 들려주시는 조용한 음성을 거절하면서 선택하는 부도덕한 결정을 말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죄를 승리하고 정복하는 순종의 생애를 살 수 있다. 성령께서 인도해 주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의로운 선택과 의로운 결정을 통해서 말이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30호에는 오늘날 기독교회에 존재하는 구원에 대한 오류들이 망라되어 있습니다. 꼭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2. 성체들-Sacraments
 
화체설, 미사, 고해 성사, 성지 순례 등과 같이 믿는 신자에게 구원의 공로를 준다고 가르치는 예식들과 마리아 숭배 같은 비성서적인 의식들이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천주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다.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7호, 14호, 54호에서 자세하게 다루었습니다.)

3. 우상 숭배 (성모, 성자들 숭배)
 
카톨릭 교회는 그들의 공식적인 서적에서 자신들이 성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의 석상과 그림의 숭배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그들에게 드리는 경배는 그들이 대표하고 있는 대상들에게 속한 것으로 본다. 그리하여 우리는 입맞추는 석상들을 통해서, 또 그 앞에서 우리가 머리에 쓴 것을 벗고 무릎을 꿇으며 그리스도를 찬양하고 그 성상이나 성화들과 닮은 성인들을 존경한다 카톨릭 백과사전 7권, 636페이지 우상 숭배항.

 중세기 때에 태양신 숭배는 로마 제국에서 인기 있는 종교였었다. 그래서 천주교회와 로마제국은 태양신을 믿던 이교도인들을 수용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태양신전에 세워져 있던 석상들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기독교회 건물 속에도 석상과 그림들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태양신을 믿던 이교도인들이 기독교로 개종할 때에 편안하게 느끼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 안에 우상을 세워놓음으로써, 로마 제국은 태양신을 믿던 이교도와 천주교 사이에 불목이 없어져서 사회가 안정되어 좋았고, 천주교회는 새로 개종하는 이교도들에게 그들이 익숙한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십계명은 여전히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출 20:3~5.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14호와 54호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4. 고해 성사 (신부 제도)
 
한국 카톨릭 대사전의 설명을 먼저 살펴 보자. AD 1215년 교황 이노센트 3세에 의하여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대신에 신부에게 고백하는 제도가 라테란 종교 회의에서 제정되었다. 고해성사는 참회자가 양심적으로 성찰하여 지은 죄를 생각해 내고 그 죄를 깊이 뉘우치는 통회를 하며 다시는 이 같은 죄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서 고해 신부 앞에 나아가 죄의 고백을 하면 고해신부는 죄를 용서하고 보속을 정해준다. 고해신부는 찾아오는 참회 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재판으로서 또 영혼의 의사로서의 역할을 하며 죄의 용서를 베풀게 된다 한국 카톨릭 대사전 고해성자, 고해신부 참조. 성경은 죄를 중보하고 속죄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는 중세기에 교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신부에게 죄를 속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14호와 54호를 참조하기 바랍니다.)

5. 영혼 불멸설
 
1513년 교황 레오 10세는 클레멘트 5세에 의하여 채택된 영혼 불멸 사상을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교리로 선포하였을 뿐 아니라 영혼 불멸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정죄하고 이단으로 규정하고 징벌하였다. 영혼 불멸 사상은 중세기에 천주교회에서 이교도에서 받아들인 가르침으로 영혼은 육체와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육체는 죽을지라도, 영혼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교리. 죽는 순간에 즉시로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서 천국, 지옥, 또는 연옥으로 가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는 이 가르침은 오늘날 개신교회 속에도 깊이 들어와 있는데, 사단은 이 가르침을 이용하여 마지막 시대에 각종 이적을 일으키고 있다. (이 문제는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 56호에서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꼭 참조하기 바랍니다)

6. 연옥설
 
교황 그레고리 1세(AD 590~604)에 의하여 카톨릭 교회의 교리로 인정되었는데, 그리스도교 대사전은 천주교회가 중세기에 받아들인 잘못된 교리 연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연옥이란 죄의 보상을 다 치르기까지 영혼이 괴로움을 받아서 그것에 의하여 깨끗함을 받는 곳이다 & 이 세상에서 작은 죄를 범하고 그 보상을 완전히 치르지 않은 영혼이 죽은 뒤 죄를 깨끗이 씻을 때까지 머무르는 일시적인 죄의 상태 또는 죄를 받는 장소이다. 성경 어디에도 연옥에 대한 언급은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은 천주교회가 믿는 자신의 행함과 고행을 통하여 스스로 죄 값을 지불할 수 있다고 가르치는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와 죽음과 영혼에 대한 오류로 인하여 생성된 가르침이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 56호와 62호에서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꼭 참조하기 바랍니다.)

7. 지옥설
 
어떤 사람도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과 판단으로 인하여 범한 죄악 때문에 천년, 만년, 수백만 년, 수억 만년, 아니 영원한 세월동안 죽지도 못하고 펄펄 끓는 유황불 속에서 고통 받는다면, 그것을 공정한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 믿는 그분은 그토록 잔인 무도한 분인가? 구원받지 못한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부모들이 영원토록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 당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만족스럽게 바라보실까? 예수 재림 때에 부활하여 하늘에 간 의인들이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영원토록 고통 당하고 있을 가족들과 친구들을 생각할 때에 그들의 마음 속에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생각하는 사람들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악인들을 차라리 죽여서 없애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타는 불 속에서 고통 당하게 하실까? 라는 의문과 두려움을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한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 당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에 나가기로 억지 결심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과 애정으로 발전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하나님이라면, 나는 그러한 신을 믿지 않을 거야!라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과 진리를 떠나간다.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하여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62호에서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꼭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8. 경외서들
 
트렌트 공의회(서기 1545~1563년) 에서 전통을 성경과 동등한 권위가 있다고 공식적으로 천명하였다. 트렌트 공의회 이전에는 성서의 어떤 책에 대해서는 그 경전의 경전성 여부에 대하여 의심하기도 하였다. 영감을 받아 기록되었다고 인정되는 책을 흔히 제 1경전이라고 하고, 한 때 경전으로서의 자격에 대하여 의심을 받은 책을 제2경전이라고 한다. 카톨릭 교회에서는 제1경전이나 제2경전이나 모두 동일한 가치를 가지는 것으로 본다 & 카톨릭에서는 그리스어 번역 성서(70인역)에 들어 있는 일곱 권의 책을 추가하여 제2경전이라고 부른다. 일곱 권의 제2경전이란 토비트서, 유딧서, 지혜서, 시라크, 바룩서, 마카베오서 상하 등이다 한국 카톨릭 대사전 경전. 카톨릭 교회는 현존하는 성경 66권 외에도 7권의 책을 추가함으로써 성경이 말하는 가르침과 다른 사상들을 교회 속으로 들여오게 되었다. 그들은 경외서에도 하나님의 영감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경외서의 가르침이 성경의 가르침과 상반되는 경우에도 경외서의 가르침을 믿음의 일부분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9. 거짓 기적들
 
죽음과 영혼 문제, 그리고 지옥에 대한 잘못된 교리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단은 기독교회 안에 온갖 거짓 기적들을 일으킬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22호-천사와 악령을 구별하는 방법-와 38호-방언 문제-에서 이 문제를 특집으로 다루었습니다. 기독교회 안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짓 기적을 꼭 공부하시기 바랍니다.)

10. 일요일 성수 제도
 
로마 교회의 교황권은 계명 중 넷째 계명을 바꾸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교회의 권위로 바꿀 수 있다고 선포한 것이었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이다. 천주교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행된 문서와 서적들을 통하여 이 문제의 진실을 살펴보도록 하자.

Ç 카톨릭 미러, 1984년 9월 23일 :
카톨릭 교회는 개신교회가 존재하기 천여 년 전에 이미 교회의 거룩한 사명에 의하여 그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꿨다.

Ç 카톨릭 신앙에 관한 교리 문답서 :
¶ 질문 : 오직 성경에 포함되어 있는 교리들을 믿는 것만으로 충분한가?
¶ 답변 : 아니다. 우리는 전통도 믿어야 한다 & 예를 들면, 만약 우리가 전통 없이 오직 성경만을 참고했더라면 지금도 우리는 일요일 대신 유대인과 함께 토요일을 거룩하게 지켜야 할 것이다.
¶ 질문 : 하나님의 십계명 외에도 그리스도인들이 지켜야 할 다른 계명이 있는가?
¶ 답변 : 그렇다. 교회의 계명들을 지켜야 한다 &
교회의 첫째 계명에 의하여 교회가 제정한 일요일과 성일들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것이다.

 놀랍게도 천주교회는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바꾸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 위에 군림한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누가 보더라도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리에서 떠난 배도의 행위이다. 다니엘서 7장에는 중세기에 교황권이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라는 예언이 기록되어 있다. 우리는 이 예언을 연구함으로써 일요일 성수제도에 대한 예언적 이해를 가질 수 있다. (보다 상세한 연구를 위하여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16호, 52호, 54호를 꼭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11. 거짓 복음
Ï 예정론 : 중세기의 천주교회 신학자인 어거스틴은 의지를 자유롭게 사용해서 선과 악 중에 어떤 하나를 택할 수 있다는 성서적 사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가졌던 이교의 영향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절대적이고 독재적인 신으로만 이해했던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은 받아들이기에 너무나 어려운 사상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장면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학적 개념에 끼워 맞추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예정론의 시작이 되었다.

 태초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 당하도록 예정해 놓으셨다는 이론인 예정론은 어거스틴의 생존하고 있을 당시에도 많은 도전을 받았는데, 어거스틴은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서 누가 구원을 얻던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며, 연약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에 대해서 질문할 자격조차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구원을 지정해 놓으셨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도록 지정해 두셨다는 예정론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Ï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가르침 : 어거스틴이 세운 잘못된 견해는 예정론을 만들어 내는 데에서 그치지 않았다. 예정론의 오류는 논리적으로 또 다른 오류를 만들어 내었다. 즉, 예정론은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게 된다는 개념(once saved, always saved)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초석이 되었다. 예정론은 절대적인 군주인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를 독단적으로 결정하신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러한 오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거짓 안전감에 도취되게 된다.
 현재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비도덕적인 죄된 생활을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구원받았다는 깊은 자기 기만 속에 빠지게 만든다. 예정론은 복음을 전파하는 면에 있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만일 모든 사람들의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결정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었다면, 복음을 전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전도를 해야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예정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대답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궁색한 설명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선언하고 있다(디모데전서 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인 우리의 죄된 선택과 이기적인 결정으로 인하여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오류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된 생활을 살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론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한 가지 오류에 대한 믿음이 또 다른 오류를 받아들이도록 만든 것이다. 이러한 오류를 받아들인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구원과 죄에 대한 승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가 되며,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비록 그리스도인이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죄를 이길 수는 없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오류들은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선택의 자유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이단적 견해에 근거를 둔 어거스틴의 주장으로부터 나온 망상에 불과하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30호와 54호를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È 참 교회를 찾고 있는가? 바벨론의 포도주가 섞이지 않은 성서적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를 찾는 것이 참 교회를 찾는 방법이다.

5부 -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을 치료할 수 있는 교회를 찾으세요!

1). 라오디게아 교회란?
 
성경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부터 세상 종말까지를 일곱 시대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일곱 교회 예언이 나오는데, 그 중에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우리들은 지금 일곱 교회 중 마지막 시대의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 속해 있다. 흥미롭게도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의 교회가 어떤 특징과 성격을 띨지를 아시고 그 교회들의 성격과 증상들에 대하여 사도 요한을 통해 미리 예언해 주셨다. 그런데 그렇게 예언을 통해 경고를 주신 이유는, 각 시대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이 자신의 교회에 주어진 충고를 받아들여서 고침을 받고 구원을 얻도록 하시기 위해서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바로 직전에 있는 교회들과 교인들의 형편을 잘 말해주고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은 아주 심각하기 때문에, 만일 우리들이 그 교회의 증상에 함께 참여하고 있다가는 마지막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되지 못할 것이며, 또한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참 교회인 하나님의 참 백성의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게 되고 구원을 잃어버릴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시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운 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인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를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이 무엇인지를 잘 연구하고, 경고를 받고 고침을 받아 예수님의 재림을 맞이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어야 할 뿐 아니라, 침례 요한이 예수님의 초림을 위해 사람들을 준비시킨 것처럼, 예수 재림을 맞기 위해 영혼들을 준비시키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다.

 당신은 이 시대에 참 교회를 찾고 있는가? 그렇다면,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을 알아내고, 그 심각한 증상을 치료하는 교회를 찾아내는 일이 아주 시급할 것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과 처방에 대해 함께 연구해 보자.

2)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에 대하여 진단하고 예언해 놓으신 말씀을 성경에서 찾아보자. 물론, 그 증상들은 영적인 신앙 상태에 대한 것들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요한 계시록 3:14~17).

증상 1: 차지도 더웁지도 않고 미지근하다
증상 2: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고 주장한다
증상 3: 자신이 곤고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한다

 위의 기록을 보아 라오디게아 교회는 심각한 증상을 가지고 있다. 사실 병을 고치려면 자신의 병든 상태를 시인하고 또 병의 증상을 알아야 치료를 받기가 쉬운데, 라오디게아 교회의 심각성은 자신이 병든 상태인 것을 모른다는 데에 있다. 그 뿐 아니라 자신은 아무 문제도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의 증상들은 현대 기독교의 상태를 낱낱이 들춰내어 보여 주고 있다. 요즈음 많은 기독교인들의 영적인 상태가 이렇지 않은가? 뜨뜻미지근한 상태, 세상 사람의 삶인지, 그리스도인의 삶인지 구분할 수 없을 만큼 세속과 뒤섞인 현대 그리스도인들의 삶과 신앙 상태, 그러면서도 자신이 잘 믿고 있다고 자부하고 있는 말만의 그리스도인들의 상태, 그것이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이다. 또한 생애에 진정한 거듭남과 변화를 체험하지 못하고, 타성에 젖어 교회만 왔다 갔다 하는 늘 똑 같은 신앙 상태, 미지근한 상태를 잘 예언해 놓은 말씀이다.

3)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주어진 충고와 경고
경고 1: 차든지 더웁든지 하라
경고 2: 내가 입에서 토하여 내치리라

 라오디게아 교회는 경고를 받고 있다. 이 충고와 경고를 주신 이유는 이것을 잘 받아들여 자신의 상태를 알아내어 고침을 받으라는 것이다. 경고를 받아들이고 고침을 받아 새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아무리 겉으로 훌륭한 그리스도인 같아 보이고, 또 자신이 아무리 잘 믿는다고 공언을 하고, 아무 부족한 것이 없다고 주장을 해도 그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경고와 충고를 잘 받아들이는 것이 치료를 받는 지름길이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께서 너무나 역겨우셔서 토해 내치실 수 밖에 없는 교인과 목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차라리 그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차가워져서 교회 밖으로 나가버리면 성령께서 그들의 양심에 간절한 음성을 들려줄 수도 있으련만, 그들은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설교하면서 그들 마음 속에 비밀스런 우상을 품은 채 살기 때문에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는 가련한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자기 기만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 차라리 아예 믿지 말든지(차든지) 아니면 믿으려면 철저하게 진리대로 믿든지 둘 중에 하나를 하라고 주님께서는 말씀하고 있다. 뜨뜻 미지근한 교인들은 가장 나쁜 영향을 미치는 자들이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은 아무리 죄와 세속에 빠져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거짓 교리를 강력하게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가장 인기리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러한 거짓 구원론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만적인 신학적 덫이 되고 있다.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련하며 눈멀었고 벌거벗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부자고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교회, 바로 그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그러므로 이 상태를 고침을 받아 새롭게 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입에서 토해냄을 당할 것이라는 경고를 받고 있다. 자, 그렇다면, 이런 심각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상태를 벗어나는 치료방법은 무엇인가 함께 알아보자.

4)  라오디게아 교회에 처방된 치료방법
 
예언에 나타나 있는 이런 참담한 상태의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매우 희망적인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을 고치기 위하여 예수께서 주시는 치료제가 있다는 것이다. 이 치료제는 원하기만 하면 누구든지 값없이 얻을 수 있으며, 자신이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지 이 치료제를 자신에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 치료제를 사용하여 고침을 받은 사람만이 예수님의 재림을 맞기 위한 준비를 갖추게 될 것이며, 마지막 하나님의 참 교회, 즉 참 백성이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마지막 증인으로 쓰임을 받게 될 것이다.

 치료방법의 말씀을 보자.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여기에는 3가지의 치료제가 나온다. 3가지 치료제에 대하여 연구하여 보자.

치료제 1: 불로 연단한 금
치료제 2: 흰 옷
치료제 3: 안약

1.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라 (계 3:18).

 예수님께서 첫 번째로 주시는 치료제는 불로 연단한 금을 사라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불로 연단한 금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갈 5:6)을 상징한다. 그것만이 우리의 심령과 믿음을 부요하게 만들 수 있다. 금은 참된 믿음과 사랑의 상징인데, 불로 연단한 금이란, 단련을 받아 더욱 순수해진 빛나는 믿음을 가리킨다. 어떤 환경에도, 어떤 역경에도 변하지 않는 하나님께 대한 참된 사랑을 가진 믿음, 단련을 받아 더욱 굳세어진 믿음을 말하는 것이다.

 때때로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연단하시기 위한 섭리로써 시련을 허락하신다. 스스로 좋은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던 사람들에게 그들의 믿음을 연단시키고 순결하게 하기 위한 시련이 주어지면, 어떤 사람은 금이 아닌 불순물로 판명된다. 신앙적인 위기가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유혹에 넘어진다. 번영의 때에는 믿는다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크게 증가하지만, 역경은 그들을 신앙 밖으로 추방한다. 더욱이 말씀으로 인해 환난과 핍박이 일어나게 되면 많은 사람들은 실족하게 되어 하나님을 떠나간다. 그들의 신앙은 견고하지 못하다는 것이 드러난다.

 우리들에게는 굳센 신앙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불로 연단한 금을 예수님에게서 사야 한다. 세상의 부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인 우리의 결함을 제거하는 데 무력하며, 또한 그 비참한 형편을 고칠 힘이 없다. 믿음과 사랑은 진정한 부이다. 예수님의 마음에 있는 사랑과 똑같은 사랑이 없으면 우리는 예수님과 한 가족이 될 수 없다. 우리는 금을 사야 한다! 금을 사라고 하신 이유는, 우리가 대가를 치러야 얻을 수 있다는 것을 뜻하는데, 우리 자신들과 세상을 포기하고 하나님께 바침으로, 상한 심령을 주님께 제사로 바침으로 믿음을 얻고 사야 한다는 뜻이다. 흔들리지 않는, 시험을 당하면 당할수록 그 광채가 더욱 빛나는, 시련과 역경의 시험을 견디게 해 줄 참된 은혜로 둘러싸인 금을 주님께로부터 사야 한다.

2. 흰 옷을 사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라 (계 3:18).

 두 번째 치료제는 흰 옷이다. 흰 옷의 의미는 무엇인가? 우리는 그 의미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예복의 비유 가운데서 찾을 수 있다. 그 비유에서 예복을 입지 않고 잔치에 왔던 사람은 구원을 받지 못하고 밖으로 쫓겨났다. 흰 옷은 그리스도의 참된 백성들이 갖추어야 할 순결하고 흠이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 그것은 바로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계 19:8)와 티나 주름 잡힌 것(엡 5:27) 이 없는 것으로 묘사된 품성을 말하는 것이다. 성경에는 이 세마포는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쓰여 있다.

 그런데 이 세마포는 믿음으로 예수를 개인의 구주로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들에게 입혀 주는 흠이 없는 품성을 표상한다. 이 순결한 흰 두루마기는 본래 인간의 시조가 거룩한 에덴에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입혀 주셨던 것이다. 그 때 그들은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한 생애를 살았고, 그래서 아름답고 부드러운 하나님의 빛이 그 거룩한 부부를 늘 둘러싸고 있었다. 이 빛의 두루마기는 하늘의 순결한 영적 옷의 상징이었다. 만일 그들이 하나님께 충실했더라면 그 빛의 두루마기가 언제까지나 계속해서 그들을 두르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죄를 지음으로 인해 하나님과의 연결이 끊어지게 되고 그들을 둘렀던 빛의 옷은 사라지게 되었다.

 우리는 하늘의 두루마기가 필요하다. 범죄한 후 인간은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에 응할 만한 자신의 의를 조금도 가지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할 길을 열어 주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인간이 당하는 것과 같은 고난과 시험 가운데서도 죄 없는 생애를 사신 후,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하여 죽으셨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고 마음을 온전히 바치는 사람들 누구에게나 그분의 의를 주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예수님께 바칠 때에, 우리의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과 연합되고, 우리의 뜻은 그분의 뜻에 합쳐지고, 우리의 정신은 예수님의 정신과 하나가 되고, 우리의 생각은 그분께 고정되어 마침내 우리는 그분과 똑같은 생애를 살 수 있게 된다. 이것이 바로 의의 흰 옷을 입는 방법이며, 또 그것은 주님과 내가 혼연일체가 되어 함께 산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3. 안약을 사라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세 번째 치료제는 안약이다.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들 중 거의 대부분이 영적으로 눈 멀어 있는데도, 자기들은 잘 본다고 생각한다. 안약은 영적으로 소경된 것을 고치고, 바로 보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다. 또한 안약은 선악을 식별할 수 있게 하고 아무리 가장된 죄라도 분별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을 갖게 한다. 우리에게는 성령의 안약이 필요하다. 영적인 안약을 눈에 발라야 우리 자신의 결점들과 성품의 결함들을 알 뿐 아니라, 사단의 간계와 거짓 영의 역사도 밝히 알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안약을 양심에다 적용시키면 그것은 우리의 양심을 예민하게 만드는데, 그 이유는 그 말씀이 죄를 깨닫게 하기 때문이다.

5)  이기는자
 
결국, 라오디게아 교회에 주신 3가지 처방으로 치료를 받게 되면, 순결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깨끗한 의를 옷 입어서 성품이 변화되고 의로운 생활을 살며,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진리를 분별하는 영적 눈을 가지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죄를 승리하고 이기는 사람들이며, 그렇게 이기는 경험을 하는 자들에게만 구원의 특권이 주어진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3:21~22.

 라오디게아 교회의 증상을 치료받은 사람은 그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는 경험을 하는 자들이다. 그런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임재가 그들의 마음과 생활 속에 항상 이루어지며, 또 그들은 예수님과 늘 동행하는 삶을 살므로 마지막 재림을 위한 준비를 갖춘 사람이 된다. 그러므로 세 가지 처방과 치료제를 통해 치료를 받아 거듭나고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생애를 사는 사람들은 죄를 이기게 되고, 그들이 결국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마지막 성도들이 되는 것이다.

È 참 교회를 찾고 계십니까?
 오늘날 많은 교파와 교단이 있다. 그러나 그 교회들 중 과연 어느 교회가 뜨뜻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별을 전하고 있는가? 어느 교회가 죄와 세속에 대하여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 승리의 기별을 가르치고 있는가? 어느 교회가 짐승의 세력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는가? 어느 교회가 바벨론의 잘못된 가르침들을 폭로하고 영원한 복음을 가르쳐 줌으로써 사람들을 구원 얻게 하는가? 어느 교회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의 특성과 올바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설교를 하고 있는가? 참 교회를 찾고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이러한 질문들로 교회를 검증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6부 - 누가 진짜 교회인가?

"교회란 무엇인가? 건물인가? 조직인가? 교단인가? 교회란, 어떤 조직이나 교단이나 건물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태초에 아담과 하와에게 가르쳐 주셨던 진리, 곧 변하지 않는 영원한 복음을 이해하고 믿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참 자녀들이 교회이다.

 교회는 노아가 전파하였던 진리, 아브라함이 믿었던 진리, 엘리야가 경고하였던 진리, 다니엘과 사도 요한에게 계시되었던 예언,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제자들이 가르쳤던 가르침을 정확하게 보존하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 즉 남은 무리를 의미한다. 그러므로 참 교회란 참 진리를 보존하고, 그 진리대로 살기 위해서 자신의 생애를 바치는 그리스도인들을 의미한다.

1)  교회는 남은 자손이다
 성경은 마지막에 사단의 공격 목표가 될 하나님의 참 교회, 즉 참 백성에 대하여 이같이 말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성경은 마지막에 사단이 교회와 싸우려고 한다고 표현하지 않는다. 사단은 바로 하나님의 남은 자손과 최후의 전쟁을 벌리려고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성경에 나타난 역사와 초기 그리스도 교회사와 중세기의 역사를 살펴볼 때, 우리는 항상 성경의 진리를 그대로 전수하며 생애 하였던 하나님의 교회, 즉 남은 무리가 면면히 이어져 내려왔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각 가정에 족보가 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도 엄연히 족보가 존재한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남은 자손들이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진짜배기 자손들이 있다는 말이다. 그 사람들을 성경은 남은 자손이라고 부른다.

2)  남은 자손과 그 역사
 
우리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범죄 한 후에, 그들이 이제 죽을 수 밖에 없다는 선고를 내리신 즉시부터 하나님께서는 여자의 자손과 뱀의 자손들이 서로 원수가 될 것에 대하여 말씀하셨다. 서로 원수가 될 것이라는 말씀의 의미는 하나님께서 그들 사이에 적개심을 두시겠다는 뜻이다. 이 세상 역사는 항상 하나님의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 사이에 끊임없는 전쟁이 있어 온 사실을 여실하게 드러내 주고 있다.

 사단은 범죄한 인간을 구원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을 알아차리고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죽이려고 사력을 다하여 싸워 왔다. 성경의 역사를 살펴 보면 우리는 그 사실을 금방 알게 된다. 먼저 사단이 가인을 통하여 아벨을 죽인 역사를 보자. 사단은 여인의 후손, 즉 하와의 아들인 가인을 자기의 자손으로 삼아, 하나님께 충성하며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는 동생 아벨을 미워하여 죽이게 하는 일에 성공하였다. 가인은 여인의 자손이었으나 실상은 뱀의 후손 즉, 마귀의 후손으로 바뀐 것이다. 이렇듯이 뱀의 후손과 여인의 후손 사이에는 전쟁이 항상 있었다.

 그 후에 아담은 셋을 낳고 기뻐하였으며 셋은 아벨을 대신하여 여인의 후손 즉, 참 하나님의 교회가 된다. 그 후로 셋의 후손들과 가인의 후손들은 서로 떨어져서 살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인의 후손들로부터 오염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창세기 6장에 가서 슬픈 역사가 기록되어 있는데 그것은 마귀가 셋의 후손과 가인의 후손들이 서로 섞이게 만드는 일에 성공했다는 사실이다.

 마귀는 여자의 남은 자손들 즉,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다 죽일 수 없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래서 그가 간구해낸 묘책이 바로 하나님의 백성들 속에 들어와 그들을 타락시키는 것이었다. 그는 셋의 후손들이 가인의 딸들과 결혼하게 함으로 하나님의 자녀들을 타락시키는 일에 성공하였다. 그 결과 비참한 노아 홍수가 임하게 된 것이다. 노아 홍수 후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백성들을 구별하여 놓으셨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바로 아브라함을 부르신 것이었다.

 우상 숭배가 만연했던 갈대아 우르 지방에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로 삼으신 것을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신 이유를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창 18:19). 그것은 곧 아브라함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키는 의로운 백성으로 삼으시려는 하나님의 의도였다. 이것이 여자의 후손 곧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구별하여 두시는 이유다.

 노아에게 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보자.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여호와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보았음이니라.(창 6:22-7:1). 하나님께서 당신의 백성들을 남겨 두시는 이유가 얼마나 꼭 같은가!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따르는, 즉 계명을 순종하는 한 백성을 가지시기를 원하신다. 선과 악의 대 쟁투에서 하나님의 의로움을 변호하고 증인이 될 하나님의 성품을 닮은 한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필요로 하신다.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계시록 12장이 여자의 남은 자손들의 특징을 설명하고 있는 것을 우리는 알 수 있다.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계 12:17).

3)  남은 자손의 특징
 
성경은 마지막에 사단이 싸우려고 하는 남은 자손의 특징을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이 바로 여자의 남은 무리, 하나님의 참된 남은 자손들이다. 그 사람들은 예수를 그저 머리로만 믿는 자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순종하는 자들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그들의 생애에서 가장 중요하게 삼는 사람들이며, 또한 주님의 말씀을 듣고 이해만 하는 자들이 아니라 그 말씀대로 따라 사는 자들이다. 자기의 목숨을 잃어 버리게 되는 상황에 처하게 될지라도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더 높이는 자들, 하나님의 명령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자들, 먹고 사는 일보다 주님의 명령이 더 중요한 자들, 그러한 자들이야 말로 참된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이 아니겠는가!

 또한 하나님의 남은 자손들의 결론적 표현은 14만 4천이란 단어로 계시록에 표현되어 있는데, 그들은 여자, 즉 음녀로 더불어, 다시 말하면, 바벨론의 오류의 가르침들인 바벨론의 포도주에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다. 바벨론의 잘못된 가르침들은 하나님을 오해시키고 잘못 이해하게 만드는 취하게 하는 가르침들이다. 참 교회인 초대 교회의 후손들은 이러한 음녀의 가르침으로 더럽히지 않은 자들이며, 그러한 가르침들에서 나온 자들이다.

 과거의 모든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의 참 교회인 소수의 남은 무리가 항상 존재해 왔듯이, 마지막 시대에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참 교회인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신실한 무리를 가지고 계실 것이다. 그들은 그들의 생애에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들어내고 반사하며,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하여 그 사람들은 선과 악의 대 쟁투에서 하나님을 증거하는 산 증인들이 될 것이다. 성경은 마지막에 구원 받을 하나님의 남은 자손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이사야가 이스라엘에 관하여 외치되 이스라엘 뭇 자손의 수가 비록 바다의 모래 같을지라도 남은 자만 구원을 얻으리니(롬 9:27).

남은 사람들이 돌아올 것이다. 야곱의 자손 가운데서 남은 사람들이 전능하신 하나님께 돌아올 것이다(사 10:21, 표준 성경).

È 당신도 하나님의 참 교회, 남은 무리가 되지 않으려는가? 하나님의 참 교회가 되는 독자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