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삶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 (요 14:23).
 
사람들은 기도할 때 하늘을 향해 기도합니다. 그리고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요? 까마득히 먼 우주 저편 어떤 곳, 우리와 멀리 떨어진 어떤 곳에 계실까요? 우리가 먼 곳에 있는 사람에게 전화를 걸듯이, 하나님께서도 기도로밖에 만날 수 없는 먼 거리에 계실까요?

 흔히 기독교에서 가르치는 하나님의 주소는 우리와 너무 멀리 떨어진 감이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는 아주 가까이, 바로 우리 마음속에 함께 계신데, 가까이 할 수 없는 하늘 먼 곳에만 계신 것처럼 사람들은 말하고 있습니다.  요즈음 인간은 타락한 죄인이고 하나님으로부터 버림받아 멀리 떨어져 있기 때문에 주님 앞에 나와 회개해야 한다고 가르쳐 주는 교회는 있지만, 하나님을 만나 회개하고 거듭난 후, 우리 마음속에 사시게 된 하나님과 어떻게 계속 하나가 되어 살아가야 하는지, 또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 어떻게 죄를 승리하는 삶이 될 수 있는지, 그리고 하나님과 지속적으로 함께 살 때에 우리의 삶이 장성하고 열매 맺는 얼마나 아름다운 삶이 될 수 있는지 강조하고 가르쳐 주는 교회는 거의 없습니다.

기독교가 가르쳐주지 않는 진리
 
사람들은 마치 교회에 중독된 듯이 신앙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매주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께 사랑을 받고, 연금을 많이 드려야 축복을 받고, 목사님을 잘 섬기고 교회의 직책을 맡아 봉사해야 영생을 얻는다는 생각에 열심히 교회를 다닙니다. 그러나 그렇게 열심히 교회에 다니는 많은 교인들이 꼭 체험하고 알아야 할 중요한 진리에 대하여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진수이자 마지막 목표이기도 한 그 진리를 말입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삶을 통하여 우리 생애에 나타나는 죄를 승리하는 경험과 하나님의 온전한 성품의 재현입니다.  만일 신앙이, 타락한 죄인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닮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리고 그분의 사랑을 충만히 반사하게 만들지 못한다면, 그래서 끝내 하나님의 얼굴과 대면하여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변화시키지 못한다면, 그런 신앙이 무슨 쓸 데가 있을까요!

승리하는 삶의 비결은
 
수많은 교인들의 기도가 매일 그리고 매 주일 집에서 교회에서 하늘로 드려지고 있습니다. 수많은 회개와 통회의 기도가 드려집니다. 그러나 죄를 승리하고 하나님의 성품으로 변화되는 장성한 믿음에 대하여 가르침을 받지 못한 어린 교인들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 변화 없는 똑같은 신앙 생활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매너리즘에 빠져, 지루하고 생기 없는 신앙 생활을...  예수님께서 세상을 떠나가시기 바로 전에 하신 중요한 말씀들 중 한 장인 성경 요한복음 14장과 15장은 우리가 어떻게 죄의 세력에서 벗어나 승리하고 살 수 있는지, 그리고 어떻게 성령의 열매를 맺는 장성한 믿음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아주 단순한 비결에 대하여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 비결은 바로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요 14:20)입니다.

 이 두 장들을 계속 읽어 보면 거기에는 아름다운 약속의 말씀들이 나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약속은 성령께서 이미 우리와 함께 거하시고 우리 속에 함께 계신다는 약속이며, 또한 예수께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와 아주 함께 사신다는 약속입니다. 곧,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고 그 약속 안에 사는 우리 속에 내가 네 안에, 네가 내 안에, 곧 우리와 거처를 함께 하시는 하나님과의 삶이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요 14:16,17,20)고요... 그리고 또 약속하시기를,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계명)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하나님과 예수)가 저(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요 14:23)고요...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삶
 
당신은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치셨나요? 그렇다면 이 아름답고 감격스러운 약속은 당신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와서 거처를 함께 하시겠다는.... 이제 당신의 속에는 성령께서 거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속으로 거처를 함께 하시려고 이사를 오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누가 말하는 것처럼 그렇게 멀리 계신 분이 아닙니다. 우주의 어느 먼 곳에 계신 분이 아니라, 당신의 마음 속에 좌정하고 사시는 분이십니다.  만일, 우리가 이 놀라운 사실, 곧 하나님께서 멀리 계신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속에서 거처를 함께 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깨닫는다면, 우리의 삶과 삶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는 얼마나 달라질까요? 만일, 우리 속에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머리를 통해서 생각하시고, 우리의 눈을 통해서 보시고, 우리의 입을 통해서 말씀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우리의 삶은 얼마나 깨끗하고 아름다운 삶이 될까요!

 생각해 보십시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눈을 가졌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과 귀를 가졌다면 세상을 보는 관점이 얼마나 다를 것인가를.... 보는 것마다 아름답고 사랑스러울 것이고, 듣는 소리마다 감격과 환희일 것이며, 느끼는 것마다 이해와 자비일 것임을.... 육신의 생각이 언뜻 올라올 때도 있겠지만, 내 속에 거처를 정하신 하나님의 뜻에 의지를 얼른 복종시키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며 사는 삶은 얼마나 행복한 것일까요?

 
하나님과 함께 사는 참된 그리스도인
 
하나님과 함께 사는 그리스도인은, 나는 죄인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참된 그리스도인은 죄의 세력에 매여 종 노릇하며 사는 노예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며 악한 것이 저를 만지지도 못하는 승리의 경험을 합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죄를 짓고 용서받고, 또 똑같은 죄를 짓고 용서받고, 그렇게 같은 죄를 반복하며 변화 없이 사는 사람이 아닙니다. 참된 그리스도인은 마음이 완전히 거듭나 마음의 동기와 의도가 전혀 새로운 사람으로 바뀐 사람입니다.  그래서 악한 것을 생각하거나 도모하는 일에, 또 다른 사람을 미워하거나 해를 끼치는 일에, 공허함을 안겨주는 잠시뿐인 세상의 쾌락을 추구하는 일에 전혀 흥미나 재미가 없어진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사람이 어떻게 남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단 말입니까?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사람이 어떻게 악한 것을 좋아 할 수 있단 말입니까? 누구나 마음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을 잘 알고 있는데 말입니다.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속에는 계명이 쓰여있습니다.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사람의 생각 속에는 계명이 쓰여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어울려 사는 사람의 삶 속에서는 계명을 지키지 말라고 해도 저절로 계명이 지키는 것이 가능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거처를 함께 하는 사람의 마음속은 온통 사랑뿐이니까요!

권두언

강병국 목사
 
추수 할 때에 흔히 볼 수 있는 광경이 있는데, 흔드는 일입니다. 겨와 쭉정이들을 걸러 내기 위하여 체로 흔들고 키로 까불어 알곡이 아닌 것들을 바람에 날려 보내는 일입니다.

 알곡이 박혀있지 아니한 쭉정이들과 가라지들이 구름 떼처럼 바람에 날려 가는 모습을 보노라면 하나님의 심판의 역사를 보는 듯한 생각이 들어 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의 역사를 농사에 비유하여 설명하시었습니다. 씨 뿌리는 비유와 농작물이 자라고 가시와 엉겅퀴와 잡초를 제거하는 일, 그리고 추수 때에 가라지를 골라내어 불에 태우는 장면들이 바로 우리의 구원의 역사들을 설명해 주시기 위한 실물교훈들이지요.

 하나님께서 심판 하실 때에 하나님의 집인 교회 안에서 먼저 행하신다고 성경은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심판이란 단어는 생소한 말로 다가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도 재판하지 않고서는 형을 집행할 수가 없는 것처럼, 하늘의 법정에서도 온 우주와 천사들의 참례 하에 각 개인들의 생애가 먼저 조사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피조물들이 하나님의 심판과 결정이 공정하고 의롭다는 사실을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행하여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아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조사 할 필요가 없으십니다. 성경이 인간의 생애를 기록하는 기록 책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은 이러한 부분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각 개인의 믿음을 심판하시는 과정에서 시련과 핍박을 허락하시고, 또한 오유들과 심지어는 이단의 가르침들이 일어나는 것을 통하여서도 그 사람이 과연 진실된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정말로 성경 말씀의 진리대로 믿고 있는지를 스스로 드러내도록 섭리하시는 것입니다. 자기의 귀를 즐겁게 하는 오류를 믿는 사람은 진리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기의 취향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또한 충분한 빛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진리를 찾지 아니하는 마음의 태도를 드러내게 되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흔들어서 그 사람이 진짜 그리스도인인지를 시험하십니다. 이번 호에서는 이 흥미 있는 문제를 다루고 있습니다.

서론 - 참 교회를 만드시는 하나님의 방법

흔들림과 체질
1).  흔들림과 체질을 아십니까?
 
혹시 어린 시절 시골의 추수 마당을 목격한 적이 있는가? 거기에는 늘 흥미있는 풍경이 연출되는데, 그것은 체질과 키질을 하여 쭉정이들을 알곡으로부터 흔들어 떨어져 나가게 하는 모습이다. 풍성한 알곡들을 거두기 위해서는 반드시 쭉정이 곡식들을 알곡으로부터 흔들어 분리시키는 일이 필요하다. 사람의 손으로 키질을 하든, 기계로 하든, 한순간에 쭉정이들이 휙 바람에 날려가는 모습은 수확의 계절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때에 당신의 참 교회인 참 백성을 소유하실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참 교회와 참 백성을 탄생시키시기 위해 사용하시는 특별한 정화 방법을 가지고 계시다. 그것은 바로 흔들림과 체질이다. 마치 알곡에서 쭉정이를 분리시키기 위해 체질과 키질이 필요한 것처럼, 영적으로 쭉정이 신자인 가라지를 하나님의 참 자녀인 알곡으로부터 골라내기 위해, 또 충실한 알곡을 골라내어 보존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흔들림과 체질을 이용하신다. 내가 맹렬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만국 중에 체질하기를 곡식을 체질함같이 하려니와 그 한 알갱이도(완전한 알갱이)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아모스 9:9).

2).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나타난 흔들림과 체질
 
예수께서 말씀하신 비유 가운데에도 흔들림과 체질의 이야기들이 많이 등장한다.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는, 즉 가라지인 쭉정이 신자들을 알곡인 당신의 신실한 백성으로부터 골라내어 분리시키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 이야기(마 13장), 충실하고 신실한 당신의 참 백성들을 불충실한 사람들로부터 골라내시는 좋은 물고기와 나쁜 물고기의 비유 이야기(마 13장), 양과 염소의 비유(마 25장), 그리고 미련한 처녀와 슬기있는 처녀의 비유 이야기(마 25장) 등등이 그런 내용이다. 이 비유들은 영적으로 하나님께서 당신의 참 백성이 아닌 쭉정이들을 당신의 참 백성들로부터 골라내시고 분리시키시는 것에 대한 상징으로 말씀하신 비유들이다. 그런데 흥미 있는 것은, 비유 가운데 보면 흔들림과 분리는 세상 끝날에 있을 것이라고 언급되어 있다는 것이다. 지금은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운 때이다. 그러므로 마지막이 가까운 이 때에,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정화방법인 흔들림과 체질을 사용하셔서 당신의 참 자녀들을 쭉정이로부터 골라내시고, 또한 당신의 충실한 백성을 단련시키셔서 마지막 때에 증인으로 사용하시려고 계획하고 계신 것이다.

3).  흔들림과 체질의 목적
 
앞에서도 언급하였지만, 하나님께서 흔들림과 체질의 방법을 사용하시는 데는 목적과 이유가 있다.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처럼, 현재 교회 안에는 알곡과 가라지, 양과 염소, 좋은 고기와 못된 고기, 미련한 처녀와 슬기로운 처녀들이 섞여 있다. 즉 진짜 하나님의 백성들과 가짜 백성들이 섞여 있으며, 진리와 오류가 섞여 있고, 거짓 복음과 참 복음이 섞여 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정결하게 하셔서 당신의 참 교회, 참 백성들을 만드시는 것이다. 그리고 그 정결하게 하시는 정화 방법이 흔들림과 체질이고, 이 방법을 통하여 마지막 백성, 곧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계 14:12)들을 만들어내시는 것이다.

4).  흔들림과 체질의 방법
 
키질이나 체질을 할 때 충실하지 못한 곡식과 좋은 알곡이 드러나듯이, 하나님께서는 흔들림과 체질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하여 충실한 믿음과 충성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을 드러내신다. 모든 독자들이 충실한 알곡이 되어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사람들이 되기를 원하면서, 이번 호 신앙 기사에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시는 정화방법들인 흔들림과 체질의 방법을 네 가지 단계로 나누어 조명해 보았다. 이제부터 계속되는 기사를 함께 연구해 보면서 우리가 쭉정이인지 알곡인지 스스로 살펴보고 생애에 큰 영적 부흥이 오기를 바란다.

È 흔들림의 단계
1. 교회 안에 이설과 오류가 침입하여 들어옴으로 인해 흔들림이 온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10).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여러가지 오류와 이설들이 들어오도록 허용하신다. 교회 안에 존재하는 오류와 이설과 극단과 광신에 의해, 교인들은 자신이 명목상 말뿐만의 그리스도인, 곧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는 자(살 후 2:10)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진리를 알고 그것에 굳게 선 사람인지 구별된다.

2. 참된 복음과 곧바른 가르침에 의하여 흔들림이 온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3). 거짓 평안과 안전의 기만적인 거짓 복음을 믿다가 성경의 곧바른 가르침에 따른 참된 복음이 제시될 때 흔들림이 오고, 그 곧바른 가르침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사이에 분리가 생긴다. 그리고 이것에 의해 참 교회, 참 백성과 거짓 교회와 거짓 백성들이 구분된다.

3. 세속과 재물, 쾌락에 의해 흔들림이 온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쫓아 온 것이라(요일 2:15.16).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 13:22).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정화시키시기 위하여 세상의 재물과 유혹을 허락하신다. 세속과 재물과 세상 쾌락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보다 그것들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과 이 세상의 모든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람들 사이에 분리가 생긴다.

4. 핍박과 박해에 의해 흔들림이 온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 13:20,21).  곧바른 가르침이 제시되어 이를 받아들이게 되면, 핍박을 받게 된다. 그러나 이 핍박과 시련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단련시켜 더 정결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섭리가 되기도 한다. 또한 마지막으로 짐승의 표가 하나님의 신실한 백성들에게 강요될 때, 즉 짐승의 표의 환난이 올 때, 마지막으로 큰 핍박이 오며, 하나님의 참 백성과 거짓 백성 사이에 마지막 분리가 생긴다.

이제부터 흔들림과 체질에 대하여 더 구체적으로 연구해 보자.

1부 - 오류와 이설들을 통하여 흔들림이 온다!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살후 2:10).

 흔들림과 체질에 대하여 서론에 언급되었듯이,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기 위해서, 쭉정이로부터 알곡을 골라내시기 위해서 교회에 흔들림이 오도록 허락 하신다. 그런데 첫 번째 흔들림은 오류와 이설들에 의해서 온다. 곧 비성서적인 가르침, 참 진리가 아닌 오류들이 교회에 들어오도록 허락하심으로 오는 것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오류와 이설들이 올 때, 그 거짓된 가르침에 의해 흔들리지 않고 바른 진리 위에 굳게 서지만, 쭉정이 신자들, 곧 말로만 신실하게 믿는다고 공언하던 사람들은 오류에 휩쓸려 영적으로 흔들려 나감으로 그들 스스로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자들인 것을 드러낸다. 흔들림을 가져오는 오류와 이설들에 대해 함께 연구하여 보자.

1)  교회에 들어온 바벨론의 오류들
 
현대 기독교에는 원래의 성서적인 가르침에서 벗어난 비성서적인 가르침들이 침투해 들어와 편만하게 퍼져 있다.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믿는 교리가 비성서적인 것인지 미처 알지도 못한 채 맹목적으로 교회를 다니고 있는 것이다. 요한은 계시록에 이 사실을 이렇게 예언해 두었다. 또 다른 천사 곧 둘째가 그 뒤를 따라 말하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하더라 (계 14:8).

 마지막 시대에 일어날 일들을 예언해 놓은 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교회 안에 바벨론의 포도주, 즉 사람을 취하게 하는 진노의 포도주인 잘못된 가르침과 복음, 그리고 오류와 이설들이 전파되어 사람들을 취하게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바벨론의 거짓 교리를 받아들이는 사람마다 영적으로 취하게 되어 진리와 오류를 분별하지 못하게 된다. 또한 거짓 복음과 거짓 교리에 취한 사람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와 진리를 분명하게 식별하지 못하게 되며, 결국에는 영생을 잃어버리게 된다.

 옛날 고대 바벨론 시대에 시작된 이방 종교의 가르침들은 중세기에 1,200여 년이라는 긴 기간에 걸쳐서 천주교의 교황권에 서서히 흘러 들어가게 되었다. 그래서 천주교회는 초대 그리스도 교회가 가지고 있던 순결한 진리에 이방 종교의 가르침들을 섞은 혼합된 교리를 가짐으로 바벨론, 즉 음녀의 어미가 되고 말았다. 중세기가 끝나갈 무렵에 종교개혁자들이 일어나 천주교회가 이방 종교로부터 받아들인 많은 가르침들을 개혁하였지만, 여전히 여러 가지 오류와 이설들이 개신교회들 속에 남아 흘러 내려오고 있다. 이 바벨론의 포도주는 사람들을 취하게 하여 하나님의 참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만드는 거짓 교리들이다. 그런데 이 잘못된 교리들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영적인 경험을 올바로 하지 못하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의 구원이 확정되었다는 기만 속에 빠지게 되어 구원에 합당하지 못한 사람이 되고 만다.

2)  바벨론의 포도주
 
그렇다면 사람들에게 먹여서 취하게 만드는 음행의 포도주인 바벨론의 포도주는 무엇이며, 어떻게 이것에 의해 교회에 흔들림이 오며, 교회가 정결하게 되는가? 함께 연구해 보자.

1. 원죄설
 
원죄설이란 인간이 태어날 때 아담의 죄를 그대로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그 조상의 죄의 영향을 받고 태어난 죄된 본성 자체를 죄라고 믿는 설이다. 원죄설은 어거스틴에 의하여 창설되었는데, 이교도인 아버지와 기독교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교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성(性)적인 문제에 대하여 연약성을 지니므로 죄를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했던 어거스틴은 인간은 태어나기를 악하게 태어났기 때문에 죄된 생활을 살 수밖에 없다는 주장을 하게 되었다.

 어거스틴은 위대한 참회록을 기록한 훌륭한 신학자였지만, 그는 영이 육을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사랑을 보았을 때에 생기는 마음의 놀라운 변화인 거듭남과 장성한 믿음에 이르는 경험을 이해하지 못했고, 또 마음이 새롭게 거듭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죄에 대한 승리는 너무나 자연스런 결과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죄에 대한 승리를 알지 못했고, 그런 경험을 하지 못했던 어거스틴은 자신의 죄된 경험에 맞추어서 자신의 신학을 발전시켜 나갔다.

 사람이 태어나면서 유전적으로 물려받는 타락하고 이기적인 본성 자체를 죄로 생각하였던 어거스틴에게 있어서, 죄는 결코 이길 수 없는 것이 되어 버렸다. 그리하여 그는 우리가 태어날 때에 이어받는 타락한 본성 자체를 죄라고 정의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모든 인류가 아담이 범죄했을 때에 함께 범죄한 것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우리도 아담의 범죄의 책임을 물려받고 태어난다고 믿었다. 그러므로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우리가 범하지 않은 조상의 죄 때문에 정죄를 당한 상태에서 태어나는 것이라고 가르쳤다. 그것을 원죄 사상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성서적인 가르침은, 죄란 우리가 태어나는 죄된 상태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선택에 의해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마음과 행위로 범하는 불순종을 말하며, 양심 속에 들려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고 악을 선택하는 것을 죄라고 한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치고 성령의 능력을 힘입으면서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죄를 승리하고 정복하는 순종의 생애를 살 수 있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원죄설
 
원죄설을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자체를 죄라고 여기기 때문에, 죄를 승리할 수 있다는 성경의 가르침과 또 죄를 이기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않게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또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반사하는 성화의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것을 믿지 않으므로,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지도 않고, 노력하지도 않게 되므로, 그냥 죄짓고-사는 방식의 변화 없는 신앙생활을 살게 된다. 그렇게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참 교회의 정결한 백성,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가진(계14:12)이가 될 수 없고, 또 마지막 환난에서 승리할 수 있는 사람이 될 수 없으므로, 결국은 하나님과 진리로부터 흔들려 떨어져 나가기 쉽다.

2. 영혼 불멸설
 
영혼 불멸 사상은 중세기에 천주교회가 이교로부터 받아들인 가르침으로 영혼은 육체와 분리될 수 있기 때문에 육체는 죽을지라도, 영혼은 의식을 가지고 있는 상태로 영원히 존재한다는 교리이다. 1513년 교황 레오 10세는 클레멘트 5세에 의하여 채택된 영혼 불멸 사상을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교리로 선포하였을 뿐 아니라 영혼 불멸을 믿지 않는 사람을 정죄하고 이단으로 규정하고 징벌하였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 즉시로 영혼이 몸으로부터 분리되어서 천국, 지옥, 또는 연옥으로 가서 영원히 존재하게 된다는 이 가르침은 오늘날 개신교회 속에도 깊이 들어와 있는데, 사단은 이 가르침을 이용하여 마지막 시대에 각종 기만적인 이적을 일으키고 있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영혼 불멸설
 
사람이 영혼 불멸설을 믿게 되면, 이상한 오류와 이설들에 빠지기 쉽고 사단의 기만에 속게 된다. 마지막 때에 사단은 죽은 영들이 살아난 것처럼 가장하며, 마치 빛의 천사처럼 나타나 이적을 행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거짓 교리를 믿게 하여 택하신 자라도 미혹하려고 할 것이다. 그러므로 영혼 불멸설을 받아들이고 믿는 사람들은 사단의 미혹에 넘어가게 될 것이다. 사단의 기만에 넘어가게 되므로 하나님의 마지막 참 교회, 백성이 되는 일에 실패하고 흔들려 떨어지게 된다.

3. 지옥설
 
성경을 깊이 있고 올바르게 연구해보면, 영원히 타는 지옥불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지옥에 대한 자세한 연구는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62호를 참조하세요)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잠깐의 어리석은 선택과 판단으로 인하여 범한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천년, 만년, 수백만 년, 수억만 년, 아니 영원한 세월동안 펄펄 끓는 유황불 속에서 고통받게 하신다면, 그런 하나님을 공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을까? 그리고 그것을 공정한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으로 믿는 그분은 그토록 잔인한 분인가?

 예수 재림 때에 부활하여 하늘에 간 의인들이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고 있을 가족들과 친구들을 생각할 때에 그들의 마음속에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구원받지 못한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부모들이 영원토록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당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만족스럽게 바라보실까?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생각하는 사람들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악인들을 차라리 죽여서 없애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타는 불 속에서 고통당하게 하실까? 라는 의문과 두려움을 마음속에서 지우지 못한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 당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에 나가기로 억지 결심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과 애정으로 발전될 수 없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지옥설
 
지옥설을 믿게 되면,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깨닫지 못하게 되며, 하나님의 진정한 사랑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면, 그 사랑에 반응하여 자라나는 우리의 믿음이 자라지 못하게 되며, 강하게 되지 못한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실하게 깨닫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을 두려움으로 섬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가 성립되지 못함으로 인해, 우리 생애에 하나님의 온전하신 성품을 이루는 일과 장성한 믿음, 열매 맺는 믿음을 이루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 그러므로 지옥설을 믿는 사람들은 진리에 바탕을 둔 참된 믿음에서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되고, 결국에 마지막 하나님의 참 백성, 하나님의 이름과 성품이 이마에 기록되어 있는 십사만 사천이 되는 일에 실패하게 되는 것이다.

4. 예정론
 
예정론은 기독교 안에 깊이 침투해 들어와 있는 교리 중에 하나이다. 중세기의 천주교회 신학자였던 어거스틴은 우리의 자유 의지를 사용하여 선과 악 중에 어떤 하나를 택할 수 있다는 성서적 사상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아버지가 가졌던 이교의 영향으로 인하여, 하나님을 절대적이고 독재적인 신으로만 이해했던 어거스틴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택의 자유를 허락하신다는 사상을 받아들이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이었다. 그는 성경에서 어떤 사람은 구원을 받고, 어떤 사람은 구원을 얻지 못하는 모습을 보면서, 이러한 장면을 자신이 가지고 있던 신학적 개념에 끼워 맞추기 시작하였는데, 바로 이것이 예정론의 시작이 되었다.

 태초 이전에 하나님께서 이미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 당하도록 예정해 놓으셨다는 이론인 예정론은 어거스틴의 생존하고 있을 당시에도 많은 도전을 받았는데, 어거스틴은 도전에 대한 응답으로서 누가 구원을 얻든지 간에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일 뿐이며, 연약한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심판과 공의에 대해서 질문할 자격조차 없다고 주장하였다. 그는 자신의 이러한 주장을 합리화시키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구원을 지정해 놓으셨으며, 어떤 사람에게는 영원한 저주 가운데 있도록 지정해 두셨다는 예정론을 세울 수 밖에 없었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예정론
 
예정론을 믿을 때, 정말 이상한 현상들이 나타나기 쉽다. 자신이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사람이라고 스스로 기만적인 확신을 하거나 그런 가르침을 받고 나면, 자신의 의지나 노력과는 상관없이 어떤 행동이나 일을 해도 결국에는 구원과 영생을 얻을 것이라는 위험한 사상에 빠지게 되므로,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는 성경 말씀에 위배되는 생활을 살게 될 뿐 아니라, 우리의 구원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에 협력하는 올바른 영적인 경험을 가질 수 없다. 더구나 예정론을 믿게 되면, 택하심을 받은 사람과 받지 못한 사람 사이에 있게 되는 공정하지 못한 운명론 때문에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성품을 바로 알지 못하게 되고, 예정론이 말하는 거짓 안전감 속에 있게 되므로 올바른 신앙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된다. 이렇게 믿는 사람들은 바른 기별이 올 때, 인간의 유전을 오랫 동안 믿어왔으므로 참된 복음의 기별을 받아들이기 어렵게 되고 그리하여 참된 신앙에서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되어 마지막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는 일에 실패하게 된다.

5.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라는 가르침
 
예정론의 오류는 논리적으로 또 다른 오류를 만들어 내었다. 즉, 예정론은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게 된다는 개념(once saved, always saved)을 만들어 내는 기초석이 되었다. 예정론은 절대적인 군주인 하나님께서는 누구를 구원할 것인가를 독단적으로 결정하신다. 그러므로 한번 구원받은 사람은 결코 잃어버림을 당하지 않는다는 논리를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사상은 현재 전 기독교계를 강타하고 있는 사상과 교리로서, 많은 사람들이 이 사상을 받아들여 믿고 있다.

§ 흔들림을 가져오는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가르침
 
이러한 잘못된 가르침과 오류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자신의 구원에 대해서 거짓 안전감에 도취하게 된다. 이 가르침은 현재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비도덕적인 죄된 생활을 살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구원받았다는 깊은 자기 기만 속에 빠지게 만든다. 예정론은 복음을 전파하는 면에 있어서도, 설명할 수 없는 여러 가지 의문을 제기한다. 만일 모든 사람들의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결정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었다면, 복음을 전파해야 할 이유가 어디 있는가? 전도를 해야 하는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이러한 질문에 대해서, 예정론을 받아들인 사람들의 대답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라는 궁색한 설명을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고 선언하고 있다(디모데전서 2:4).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게 되기를 원하시지만, 인간인 우리의 죄된 선택과 이기적인 결정으로 인하여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는 것이다.

 한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는다는 오류는 예수를 믿기만 하면 죄된 생활을 살면서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이론으로 발전되어 나갔다. 이러한 오류를 받아들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구원과 죄에 대한 승리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문제가 되며, 경건한 그리스도인의 삶 역시 더 이상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 그리하여 비록 그리스도인이 거듭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 안에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죄를 이길 수는 없다고 주장하게 되는 것이다. 이 거짓된 가르침을 믿게 되면, 마지막 하나님의 백성에게 나타나야 할 특징인 장성한 믿음의 성품의 재현이 불가능해지므로 결국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되는 것이다.

6. 흔들림을 가져오는 그 외의 가르침들
A. Sacraments-성체설
 화체설, 미사, 고해 성사, 성지 순례 등과 같이, 믿는 신자에게 구원의 공로를 준다고 가르치는 예식들과 마리아 숭배 같은 비성서적인 의식들이 중세기의 종교암흑시대 동안에 천주교회에 들어오게 되었는데, 이 비성서적인 가르침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참된 구원의 역사에 눈 멀게 하므로 결국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B. 우상 숭배 (성모, 성자들 숭배)
 중세기 때에 태양신 숭배는 로마 제국에서 인기있는 종교였었다. 그래서 천주교회와 로마제국은 태양신을 믿던 이교도인들을 수용하고 그들의 비위를 맞추기 위하여 태양신전에 세워져 있던 석상들의 분위기를 만들어 내기 위하여 기독교회 건물 속에도 석상과 그림들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그렇게 함으로써 태양신을 믿던 이교도인들이 기독교로 개종 할 때에 편안하게 느끼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교회 안에 우상을 세워놓음으로써, 로마 제국은 태양신을 믿던 이교도와 천주교 사이에 불목이 없어져서 사회가 안정되어 좋았고, 천주교회는 새로 개종하는 이교도들에게 그들이 익숙한 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러나 한 가지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십계명은 여전히 우상을 만들거나 섬기지 말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리아와 성자의 성상들을 숭배하는 것들은 예수님의 중보사업을 희석시킨다.

C. 고해 성사 (신부 제도)
 한국 카톨릭 대사전에는 이런 설명이 나온다. AD 1215년 교황 이노센트 3세에 의하여 하나님께 죄를 고백하는 대신에 신부에게 고백하는 제도가 라테란 종교 회의에서 제정되었다. 고해성사는 참회자가 양심적으로 성찰하여 지은 죄를 생각해 내고 그 죄를 깊이 뉘우치는 통회를 하며 다시는 이 같은 죄에 빠지지 않기로 결심하고 나서 고해 신부 앞에 나아가 죄의 고백을 하면 고해신부는 죄를 용서하고 보속을 정해준다. 고해신부는 찾아오는 참회자들에게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재판으로서 또 영혼의 의사로서의 역할을 하며 죄의 용서를 베풀게 된다. 성경은 죄를 중보하고 속죄하는 분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라고 선언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천주교회는 중세기에 교회의 권위를 높이기 위하여 신부에게 죄를 속할 수 있는 권리를 주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중보와 죄를 이기게 하시는 능력을 불신하게 하고 부인하게 하므로 흔들림을 가져 온다.

D. 연옥설
 연옥설은 교황 그레고리 1세(AD 590~604)에 의하여 카톨릭 교회의 교리로 인정되었는데, 그리스도교 대사전은 천주교회가 중세기에 받아들인 잘못된 교리 연옥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연옥이란 죄의 보상을 다 치르기까지 영혼이 괴로움을 받아서 그것에 의하여 깨끗함을 받는 곳이다 & 이 세상에서 작은 죄를 범하고 그 보상을 완전히 치르지 않은 영혼이 죽은 뒤 죄를 깨끗이 씻을 때까지 머무르는 일시적인 죄의 상태 또는 죄를 받는 장소이다. 연옥에 대한 가르침은 성경 어디에도 없는 것으로, 천주교회는 그들이 믿는 교리인 자신의 행함과 고행을 통하여 스스로 죄 값을 지불할 수 있다는 오류를 전파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가르침을 믿게 되면, 또 다시 구원과 영생을 얻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있다는 기만적인 생각을 갖게 하므로 이생에서 하나님께 온전히 마음을 바치는 헌신을 유보하게 만들며, 참된 신앙의 경험을 하지 못하게 함으로 참된 신앙에서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한다.

E. 거짓 기적들
 죽음과 영혼 문제, 그리고 지옥에 대한 잘못된 교리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사단은 기독교회 안에 온갖 거짓 기적들을 일으킬 수 있는 사상적 기반을 가질 수 있게 되었다. 참된 진리를 알지 못하고 진리에 기반을 둔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할 때, 많은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거짓 기적들에 관심을 쏟게 된다. 눈에 보이는 현시에만 중점을 둔 사람들은 참된 성령의 역사를 식별하지 못하고 거짓 이적들에만 초점을 두기 때문에 사단의 기만에 넘어가기 쉽고 참된 진리 안에 정착하지 못하게 되므로 결국 흔들려 나가게 된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22호, 38호를 참조하세요)

F. 일요일 성수 제도
 로마 교회의 교황권은 계명 중 넷째 계명을 바꾸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계명을 교회의 권위로 바꿀 수 있다고 선포하였다. 다시 말해서 교회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 보다 더 위에 있다는 것이다. 천주교회의 공식적인 문서와 서적들을 보면, 카톨릭 교회는 개신교회가 존재하기 천여 년 전에 이미 교회의 거룩한 사명에 의하여 그 날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바꿨다 (카톨릭 미러, 1984년 9월 23일)고 되어 있고, 또한 카톨릭 신앙에 관한 교리 문답서에도 그렇게 밝혀져 있다. 놀랍게도 천주교회는 스스로 하나님의 계명을 바꾸었다고 인정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의 전통은 하나님의 말씀 성경 위에 군림한다고 믿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권위보다 사람의 권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하도록 이끌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에 대한 중요성을 경감시키므로 하나님을 믿는 참된 신앙에서 멀어지게 만든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제16호, 52호, 54호를 참조하세요)

3) 오류나 이설에 의하여 흔들림을 받는 사람들의 유형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사단이 오류와 이설들을 퍼뜨리도록 허용하시는데, 그렇게 하시는 목적은 앞에서도 밝혔듯이 당신의 교회를 정결하시고 가라지와 알곡을 분리하시려는 목적으로 그렇게 하신다. 오류는 참된 가르침보다 인간이 믿기에 훨씬 쉽고 안이하기 때문에, 넓은 길로 가는 것이 편한 것처럼, 진리를 믿기 위해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아도 많은 사람들로 편하게 신앙 생활을 하게 한다. 그러나 바른 가르침이 오고 참된 복음이 다가올 때, 그것은 신자들의 마음을 흔들고 믿는 자들의 동기와 본심을 드러낸다. 그때 가라지 신자들은 편안한 복음, 주님을 따르기 위해 세상의 아무 것도 포기하지 않아도 되는, 그리고 자아를 굴복시키지 않아도 되는 편하고 넓은 길을 택하는 반면,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진리를 알아보고 세상을 버리며, 진리에 자아를 굴복하고 하나님의 편, 올바른 참 복음의 편을 택하게 된다.

 그럴 때에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는 사람들은 진리로부터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되고, 그때 하나님의 참 백성과 가짜 백성들 사이에 분리와 연합이 생기게 된다.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그들끼리 함께 연합하게 되고 한 성령의 인도를 받게 될 것이며, 가라지들은 그들끼리 모여 세상과 연합하여 살다가 멸망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그 신자가 진정으로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사랑하고 있는지, 진리의 사랑을 받는 사람인지 아닌지, 또 그 신자가 하나님의 참 백성인지 아닌지를 가려내기 위하여, 오류가 교회 안에 들어오도록 허용하시며 그것으로 인해 흔들림을 당하게 하신다. 이 때 흔들림에서 벗어나는 자가 참 하나님의 백성인 것이 증명되는 것이다.

2부 - 참된 복음과 곧바른 가르침에 의해 흔들림이 온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3).

1) 곧바른 가르침이란 무엇인가?
 
독자에게 익숙하지 않은 단어들일지는 모르지만, 흔들림과 체질, 그리고 곧바른 가르침이라는 말은 공통된 의미를 가지고 있다. 곧바른 가르침이란 곧바른 증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 곧바른 증언이란 교회에 들어와 있는 오류와 이설에 대하여 지적하고, 그 대신 참 복음을 제시하여 사람들에게 영적인 각성과 회개와 개혁과 부흥을 가져 오는 기별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작용하여 영적인 수준을 높이고, 진리로 온전히 성화 되도록 이끄는 기별이다. 또한 이 곧바른 증언은 세상을 버리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해, 또 다가오는 마지막 환난을 위해 영적으로 깨어 철저히 준비하라는 기별이기도 하다. 이 증언은 태초부터 변하지 않은 영원한 복음의 기별이고, 이것을 받아들인 사람들을 영적으로 높은 표준으로 끌어올려 마지막 하나님의 남은 백성,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을 만들어 낸다.

2) 곧바른 증언이 말하는 복음의 요지
 
곧바른 증언에는 변질되지 않은 성서적인 복음, 참된 복음, 영원한 복음이 들어있다. 참된 복음과 곧바른 증언이 말하는 복음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생애를 살아야 하며, 또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는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것,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본성을 입으셨지만 자신을 비우시고 하나님 아버지를 온전히 의지하고 그 뜻을 순종하시므로 죄 없는 생애를 사신 것같이 우리도 그분의 모본을 따라 그렇게 살 수 있다는 것, 구속사업은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그때부터 시작된다는 것, 그리고 성령으로 거듭난 후, 계속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드리고 마음 속에 임재하시는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거룩한 성화의 생애를 살 수 있다는 것, 그리하여 결국에는 하나님의 품성을 온전히 반사하는 생애의 변화를 이룬 마지막 하나님의 참 백성인 십사만 사천인이 탄생된다는 복음 등이 포함되어 있다.

3) 곧바른 증언이 어떻게 흔들림을 가져오는가?
 
우리 인간의 육신의 마음은 귀에 듣기 좋은 부드러운 말을 듣기 좋아한다. 그러나 이 곧바른 증언은 육신적인 생각과 마음과 생애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실상을 낱낱이 공개하며 이에 따른 회개를 촉구하기 때문에,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세상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거나, 영적인 교만과 편견에 사로잡힌 좁은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이 증언을 받아들이기 어렵다. 즉 마음이 가난하지 않고 겸손하지 않은 사람은 이 곧바른 증언을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때가 이르리니 사람이 바른 교훈을 받지 아니하며 귀가 가려워서 자기의 사욕을 좇을 스승을 많이 두고 (딤후 4:3). 그러므로 이 곧바른 증언이 발해질 때, 자기의 귀에 듣고 싶지 않은 기별이 전해지는 것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겨나 교회 안에는 큰 흔들림이 형성된다.

 세상과 자아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가 좋아하는 죄를 그대로 품고 천국에 가기 원하는 사람들, 우리 인간은 연약하기 때문에 죄를 이길 수 없다고 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불신하는 사람들, 새로운 참 복음이 제시될 때 자신의 신앙의 경력과 평판을 내세우며 거절하는 겸손한 믿음을 갖지 않은 사람들, 믿는다고 공언하지만 실제 생활에 있어서 하나님을 모르고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않으므로 진리로 성화되는 경험을 하지 못하는 말뿐만의 신앙을 하는 사람들, 죄짓고 살다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으로 어느 날 홀연히 변화되어 하늘에 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은, 곧바른 증언이 전파될 때 이 기별에 대항하여 일어날 것이며, 이 증언이 자신이 듣고 싶은 육신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편안한 기별이 아니기 때문에 반대할 것이다. 그리하여 이 곧바른 증언을 받아들이는 사람과 이것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 사이에 분리가 생기게 된다.

 곧바른 증언을 들을 때, 진리를 사랑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은 이 증언을 받아들이고 회개하여 높은 영적인 수준에 이르고 하나님의 참 백성의 자격을 갖추게 되지만, 진리를 사랑하지 않는 가라지 신자들은 이 바른 증언을 오히려 이설이라고 반박하며 이 증언을 따르지 않고 반대하므로 하나님의 알곡으로서의 자격을 갖추지 못하게 되며, 결국 하나님의 참 백성의 무리에서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된다.

4)  곧바른 증언을 대항하는 사람들의 유형
 
참된 복음, 곧바른 증언이 전해질 때, 거듭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이 곧바른 증언에 대항하여 일어날 것인데, 사람들은 이 기별을 극단적이고, 광신적이며, 율법주의라고 부를 것이다. 육신적인 마음을 가진 대부분의 사람들은 값싼 은혜에 매달려서,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이 아닌, 생애를 변화시키지 않는 가짜 믿음을 가질 것이며, 스스로 의롭다는 정신 아래 회개와 개혁이란 말을 좋지 않은 개념으로 생각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께 굴복하기 위한 인간의 어떤 노력, 곧 세속을 극복하고 자아를 버리기 위해 애쓰는 노력,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를 믿는 믿음으로 그들의 뜨뜻미지근함과 우상들을 버리려는 노력들을 십자가의 공로를 믿는 믿음의 결핍 때문에 생기는 행위들이라고 주장할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른 바 죄짓고-사는신학(sin and live theology)인 신신학을(New Theology) 기쁘게 받아들이며, 육신의 귀를 즐겁게 하는 말만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이다. 이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묶고 있는 성령의 끈을 거절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참 백성의 무리에 들 수 없고, 결국 흔들려 떨어져 나가게 된다.


5)  곧바른 증언
1. 귀에 듣기 좋은 말만 들을 때가 아님
 지금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곧바른 증언을 받아들이고 깨어나 예수님의 재강림을 위하여 준비할 때이다. 귀를 즐겁게 해주는 수많은 주제의 설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부드러운 것들만 듣고 있기에는 주님의 재림하시는 때와 환난의 때가 너무 가깝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교인들에게는 더 이상 부드러운 기별들이 필요 없다. 지금은 잠에서 깨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옛날 침례요한이 전한 기별이 너무 강하고 노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곧바른 증언이 전해질 때, 당신도 대항하여 일어설 것이다.
지금은 모든 기독교인들이 곧바른 증언을 받아들이고 깨어나 예수님의 재강림을 위하여 준비할 때이다. 귀를 즐겁게 해주는 수많은 주제의 설교들이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부드러운 것들만 듣고 있기에는 주님의 재림하시는 때와 환난의 때가 너무 가깝다. 영적으로 잠들어 있는 교인들에게는 더 이상 부드러운 기별들이 필요 없다. 지금은 잠에서 깨야 할 때이기 때문이다. 만일 당신이 옛날 침례요한이 전한 기별이 너무 강하고 노골적이라고 생각한다면, 곧바른 증언이 전해질 때, 당신도 대항하여 일어설 것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기 바로 직전인 이 마지막 때에 하나님의 충실한 전도자들은 침례 요한이 전했던 것보다 더 예리한 증언을 해야만 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귀에 듣기는 좋지만, 생애에 진정한 개혁을 가져오지 못하는 부드러운 기별만을 전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으실 것이다. 고대에, 엘리야가 백성들에게 전할 하나님의 기별을 가지고 왔을 때에도 백성들은 그 경고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백성들은 엘리야가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회개를 촉구했을 때, 그가 지나치게 혹독하다고 생각했다.

 교회 안에서 영적으로 잠든 사람들을 위로하는 것은 친절이 아니다. 사람들은 사무엘 당시의 엘리 제사장처럼 매우 부드럽고도 사랑이 많은 사람을 좋아하지만, 그의 확고부동함의 결핍이 그를 하나님으로부터 거절당하도록 한 것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엘리는 부드럽고 사랑이 많으며 친절한 사람이었으며, 하나님께 신실하게 봉사하는 제사장이었다. 그러나 그는 죄를 견책하고 죄인에게 공의를 행사하는 확고부동한 성격이 결핍되어 있었으므로, 이스라엘을 순결하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그를 의존하실 수 없으셨다. 그는 그의 믿음에 용기를 더하지 않으므로 적당한 때와 적당한 장소에서 안 된다고 말할 능력이 없었다.

 지금은 교회 안에서 곧바른 증언과 참된 복음이 가르쳐져야 하며, 영적으로 깊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이 진리의 말씀을 듣고 깨어나 참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이 일어나야 한다. 곧바른 증언은 알곡과 가라지를 나누는 기별이며, 하나님의 백성들과 사단의 백성 사이에 연합과 분리를 만들어 낼 것이다.

2. 교회에 곧바른 증언이 필요한 이유
A. 원죄설을 믿는 사람들을 위해;
 앞에서도 공부하였지만, 지금 교회 안에는 많은 오류의 가르침이 들어와 있다. 그 오류들은 교인들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영적인 경험들을 하지 못하도록 영적인 성장을 막고 있으므로,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참 백성의 무리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 곧바른 증언이 교회 안에 전해져야 할 첫 번째 이유는 교회에 들어와 있는 근본적인 오류, 옛날 어거스틴이 설정한 교리 원죄설 때문이다. 원죄설 때문에, 아담의 자손인 태어나는 모든 아기들은 죄를 물려받을 뿐 아니라 천국에 가기에는 너무 부패한 성정을 가졌으므로, 인간이 결코 죄를 안 지을 수 없다는 가정이 마련되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범하는 것이 어쩔 수 없는 유전인자와 호르몬을 가진 탓으로 돌려 문제를 합리화시키는 기초를 놓게 되었다.

B. 죄를 승리할 수 없다고 배운 사람들을 위해;
 원죄설은 또 다른 진리의 곡해를 초래했다. 만일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그의 죄를 물려받는 것이라면 예수님께서도 탄생하시자마자 그 죄를 물려받으신 것이 된다. 물론 그런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그분은 아무도 구원하실 수 없기 때문에... 그분 자신이 죄인인데 어떻게 남을 구원하실 수 있겠는가? 그런데 천주교회는 동정녀 마리아는 아담의 죄를 물려받지 않았다는 무염시태의 교리를 창안함으로 그 문제를 말끔하게 처리해 버렸다. 요즈음의 신신학자(새로 들여온 사상을 믿는)들은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이나 다윗이나 마리아의 타락한 속성 대신에 아담의 타락하지 아니한 속성을 지니고 태어나셨다는 천주교의 입장을 받아들인 옛날 개신교회의 주장을 단순하게 따르고 있는 것이다.

 그러한 주장은 수많은 성경절의 진술과 상반될 뿐 아니라 아담의 모든 후손들이 죄를 이길 희망이 없도록 만들었다. 또 그 주장은 아담의 범죄 후 태어난 사람 중 어떤 사람도 완전한 순종의 모본을 보인 경우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 우리와 완전히 다른 속성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고는... 그리하여 그들은 예수님을 우리와 아주 다른 본성을 가진 분으로 만들고, 그분은 우리의 모본이 되실 수 없으며,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님처럼 죄를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없다는 가르침을 들여왔다.

C. 십자가에서 모든 것이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
 신신학자들은 예수님의 본성을 인간과 아주 동떨어진 분으로 만들면서도, 그분이 십자가에 달리셔서 죽으신 속죄의 죽으심을 통해 그분의 순종과 그분의 거룩한 생애의 모든 공로들을 죄인들에게 입혀주실 수 있다는 주장을 했다. 이 신신학은 그리스도의 이 입혀주시는 공로를 가리켜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고 부르지만, 중요한 성화의 문제는 고의적으로 제외시켜 버렸다. 그들은 집요하게 주장하기를, 순종은 구원의 요구 조건에서 완전히 분리된 것이며, 오직 입혀 주시는 칭의의 공로를 받아들이는 것이 하나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데 요구되는 유일한 행위들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은 구원의 경험에 있어서 해도 좋고 안 해도 좋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입혀주신 의에 초점을 맞추면서 십자가 위에서의 예수님의 속죄의 죽으심이 구속사업을 마치신 것으로 여기며, 그러므로 그분께서 온전한 순종을 포함한 모든 것을 우리를 위해 해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해야 하는 전부는 그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것뿐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구속사업이 십자가에서 끝이 났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놓으셨으니 믿기만 하라고 외친다.

D. 지금도 진행 중인 구속사업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은 온전한 희생제물이 되시고 흠 없는 어린 양을 드리는 일로 영원히 끝났지만, 최종적인 구속사업은 그분의 보혈이 지성소에 뿌려져서 죄악의 기록들이 도말 되기까지는 완성되지 않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히브리서는 예수님께서 이 땅의 성소에서 수행되던 표상을 성취하시려고, 그분 자신의 피로 봉사하시기 위해 하늘 성소로 돌아가셨다는 것을 분명히 말해준다. 구속 사업은 지금도 진행 중에 있다. 그 사업에 포함된 것이 무엇이며, 어떻게 그 사업이 지상 성소에서 수행되었던 사업을 능가하도록 중요한 것인가?

 지상 성소의 봉사는 오직 죄에 대한 용서만을 제공할 수 있었지 죄짓기를 멈추게 하는 능력은 결코 제공되지 않았다. 어린양과 염소들을 제사로 드리는 것이 사람을 결코 완전케 할 수 없었다. 율법은...해마다 늘 드리는바 같은 제사로는 나아오는 자들을 언제든지 온전케 할 수 없느니라. (히 10:1) 그와 반면에, 바울은 하늘 성소에 계신 참 대제사장이 죄들을 제거하시고 사람들을 온전케 하신다고 말했다. 저가 한 제물로 거룩하게 된 자들을 영원히 온전케 하셨느니라(히 10:14).

 여기에 하늘에서 대제사장의 일을 하고 계신 예수님의 사업이 그렇게도 중요하고 필요한 것으로 나타나 있다. 죄들을 정결케 하기 위해서는 기록책에서뿐만 아니라 사람들의 생애로부터 죄를 정결케 하는 일이 요구된다. 신신학은 구속사업이 십자가에서 끝났으며, 이제는 더 이상 매년마다 지성소에서 하는 하늘의 대제사장의 봉사는 적용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주장은 성도들이 성화되어야 한다는 어떤 필요성이나 성화나 완전을 위해 하나님과 협력하는 우리의 노력과 헌신을 완전히 부인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의 경험에서 성화가 필요 없다는 주장이 나오게 된 것이다.

È 곧바른 증언은 흔들림을 가져 올 것이다. 참된 복음과 곧바른 증언이 제시될 때, 그것은 육신적인 마음과 신앙 상태를 가진 사람들이 누구인가, 가짜 신앙을 가진 가라지가 누구인가, 교회 녹명책에 이름만 기록되어 있을 뿐 하나님과 아무런 산 관계를 맺고 있지 않으므로 실제로는 하나님과 아무 상관이 없는 사람이 누구인가를 드러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다 흔들려 하나님의 참 백성의 편에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그러나 참된 복음이 제시될 때 그 복음을 받아들이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 사이에는 한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연합이 생길 것이다.

3부 - 세속과 재물, 쾌락에 의해 흔들림이 온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 쫓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쫓아 온 것이라(요일 2:15.16).

 가시떨기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리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치 못하는 자요(마 13:22). 어떤 사람이 복음의 능력을 알고 체험하였어도, 그 마음속에 세속과 재물, 그리고 쾌락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마음이 있으면, 결국 그 세속적 욕망은 그 사람을 이기게 되어 하나님과 복음의 편에서부터 그 사람을 흔들어 떨어져 나가게 만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을 정화시키시기 위하여 세상의 재물과 유혹을 허락하신다. 그것은 그 사람의 신앙의 동기와 욕망을 드러내는 효과적인 수단이 된다. 마치 가시떨기 밭에 뿌려진 씨앗처럼 복음은 그런 사람의 마음 속에 자리잡을 수 없다.

1)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통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주셨다. 세상 재물과 세속의 쾌락은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가 자라지 못하는 것처럼 복음과 신앙의 감화력을 삼켜버린다. 세상의 염려와 술취함과 방탕함에 대하여 예수님께서는 오래 전에 우리에게 경고해 주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복음의 씨는 가끔 가시떨기와 잡초 속에 떨어지는 수가 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 도덕적 변화가 일어나지 않고, 종래의 습관과 행위와 죄된 생애를 버리지 않고, 또한 사단의 특성들을 심령 속에서 끊어 버리지 않는다면, 발아된 씨는 질식될 것이다. 가시가 돋아나서 그 곡식을 덮어 마침내 다 죽게 만들 것이다.

 귀한 진리의 씨를 받기 위해 항상 준비되어 있는 마음속에서만 그리스도인의 신앙이 잘 자라날 수 있다. 죄의 가시떨기는 어떤 땅에서든지 자란다. 가시떨기는 가꾸어 줄 필요가 없다. 그러나 곡식은 반드시 잘 가꾸지 않으면 안 된다. 찔레와 가시는 언제나 빨리 자라게 됨으로 제초하는 일이 늘 계속되어야 한다.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의 지배하에 두지 않거나, 성령이 끊임없이 품성을 세련시키고 고상하게 하지 않으시면 옛 습관은 우리의 생애 속에 저절로 나타나게 될 것이다. 사람들이 비록 복음을 믿는다고 고백할 수 있으나 복음으로 말미암아 성결되지 않으면 그 고백은 아무런 유익이 없다. 죄를 이기지 않으면 죄가 저희를 이기게 된다. 가시떨기를 잘라 버렸을지라도 뿌리가 뽑히지 않고 그대로 있으면 그것이 다시금 속히 자라서 그 덩굴이 영혼을 덮게 된다.

 그리스도께서는 심령을 위태롭게 하는 일들에 대하여 주의를 주셨다. 마가는 그것들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욕심과 다른 모든 물욕이라고 말했고, 누가는 이 세상의 염려와 부와 쾌락을 열거하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막고 영적 씨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이다. 사람의 심령이 그리스도께로부터 양분을 섭취하지 않으면 그의 영성은 사멸해 버린다.

2) 세상의 염려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막론하고 세상의 염려로 시험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고역(苦役)과 빈곤과 궁핍의 염려가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또 무거운 짐이 된다. 그러나 부자에게도 재물을 잃어버릴 염려와 여러 가지 근심 걱정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들의 꽃에서 배우라고 주님께서 당부하신 공과를 잊어버린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보호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의 짐을 그리스도께 맡기지 아니하므로 그분은 저희의 짐을 지실 수 없다. 그리하여 생활의 염려가, 그들을 그리스도께 가서 도움과 위안을 얻도록 하는 대신에 오히려 그들을 예수님에게서 떠나게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많은 열매를 맺힐 수 있는 사람들이 재물을 모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로 그들의 모든 정력을 그들의 사업에 바치게 되어 자연히 영적 사물을 등한히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희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지게 한다. 성경은 부지런하여 게으르지 말(롬 12:11)라고 명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의 도움이 요구되는 자들을 위하여 응분(應分)의 일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리스도인들은 일을 해야 하고 사업에도 종사하여야 한다. 저희는 죄를 짓지 않고서도 이 일을 능히 할 수 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업에 너무나 열중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도, 성경을 연구할 시간도 없고 하나님을 찾아 섬길 시간도 없다.

 때때로 그들의 심령이 성결하게 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떠나 장엄하고 위엄 있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다. 영원한 사물은 부차적이 되고 세속적인 사물이 으뜸으로 삼아진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의 씨가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그 이유는 심령의 활력이 세속의 가시떨기를 자라게 하는 데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들과는 전혀 같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과오에 빠진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지만 저희의 임무가 너무 무겁고, 책임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할 시간이 없을 만큼 분주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신 말씀을 잊어버린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떠남으로 인해 저희의 생애에 그분의 은혜가 결핍되어, 자기 자신의 특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봉사는 남보다 높고자 하는 욕망과 제어되지 못한 거칠고 추악한 성벽으로 인하여 더럽혀진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봉사가 실패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이며, 사업의 결과가 미미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3) 재리의 유혹
 
재물에 대한 사랑에는 사람을 호리고 기만시키는 힘이 있다. 흔히 세상 재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저희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린다. 그들은 내 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신 8:17)고 말한다. 저희의 재물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는 대신에 저희 자신을 높이게 한다. 그들은 자기들의 삶이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다는 생각을 잊어버리는 동시에 저희 동포들에 대한 의무감마저도 잊어버린다. 저희 재물을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향상을 위하여 주어진 달란트로 여기는 대신에 그것을 자신들을 섬기는 방편으로 삼고 있다. 그렇게 사용된 재물은 사람 속에 하나님의 특성을 계발시키는 대신에 사단의 특성을 조장한다. 그리하여 말씀의 씨는 가시떨기에 덮이어 기운이 막히게 된다.

4)  쾌락을 사랑함과 흔들림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 이생의 일락, 자기 자신만을 즐겁게 하기 위하여 추구하는 오락에는 위험이 있다. 체력을 약화시키고, 정신을 흐리게 하며, 영적 식별력을 마비시키는 모든 방종의 습관은 영혼을 거스려 싸우는 육체의 정욕(벧전 2:11)이다. 무엇이든지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부터 떠나게 하는 것과 그리스도께 대한 애정을 빼앗아가는 것은 영혼의 원수가 된다.

 많은 사람들이 한 입으로 그리스도와 세상을 동시에 찬양하고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재물의 신 앞에서 그들의 머리를 숙이고 있다. 세상과 그리스도 사이에는 어떠한 종류의 연결도 있을 수 없다. 사도 요한은,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치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속에 있지 아니하니 (요일 2:15)라고 말했다. 야고보는 이것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아보고 또 자기를 지켜 세속에 물들지 아니하는 이것이니라. 약 1:27.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이 세상의 어떤 것도 우상 숭배이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의복, 세상적인 교제, 오락 그리고 운동 경기를 우상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모든 것들은 흔들림을 가져오는 일이 될 것이며 참된 거룩함을 막는 벽이 될 것이다. 세상을 사랑하는 일과 세상의 평판을 사랑하는 일, 그리고 재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거듭나지 않은 마음을 가진 것이 드러난다. 주님께서는 세상의 재물과 여러 가지 다른 것들을 허락하심으로 그 사람의 신앙의 동기와 마음의 여부를 시험하신다. 하늘로 가는 쉽고 편안한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자들, 세상과 하나님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 일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결코 큰 흔들림을 견디지 못하게 될 것이다.


5)  마지막은 노아의 때와 같음
 오락을 사랑하기를 배우는 사람들은 유혹의 홍수의 문호를 개방하는 것이다. 그들은 사교적인 향락과 무모한 환락에 빠져 버린다. 그들은 이런 형태의 방탕에서 다른 방탕에로 끌려 다니다가 유용한 생애에 대한 욕망도 자격도 상실하기에 이른다. 그들의 신앙적인 동경은 냉각되고 그들의 영적 생애는 어두워진다. 영혼의 보다 고상한 모든 능력들, 사람을 영적 세계와 연결시키는 모든 것들은 저하된다.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교인들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은 세상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에 금지된 세속적이고 퇴폐적인 오락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이와 같이 하여 그들은 하나님과의 연결을 끊고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대열에 가담한다. 홍수 이전에 살던 사람들과 평원의 두 도성을 파멸시킨 죄들이 오늘날에도 존재하고 있다. 기독교 신앙을 하는 일반 신도들 중에서뿐만이 아니라 인자의 오심을 고대한다고 공언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존재한다.

 흥분과 재미있는 환락에 대한 욕망은 하나님의 백성들과 특히 청년들에게 하나의 시험이요 올무이다. 사단은 곧 있을 예수님의 재림에 대비하는 엄숙한 일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끌어내기 위한 유인물을 끊임없이 준비하고 있다. 사단은 세속에 속한 자들의 힘을 빌려서 방심한 사람들을 세속적인 쾌락에 동참하도록 유혹하며, 계속적인 흥분을 유지시킨다. 흥행과 강연과 세상에 대한 사랑으로 이끌도록 계획된 수많은 오락들이 있는데, 사람들은 이런 오락에 참여함으로써 그들의 믿음을 약하게 한다.

È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참 백성의 무리에 속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나뉘어진 마음, 두 마음으로 당신을 섬기는 사람을 하늘나라에 들이실 수가 없다. 하늘은 죄 많은 우리 인간들을 대속하기 위해 가장 값진 선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주셨다. 우리는 우리의 최고의 애정을 하나님께 바쳐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쾌락과 제물과 세상의 염려들이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마음을 빼앗아 가는지 아닌지를 시험해 보고 계신다. 세속의 부와 명예와 일락의 유혹이 올 때, 하나님의 참 백성이 아닌 가라지들은 바람에 흔들려 다 떨어져 나갈 것이다.

 

4부 - 핍박과 시련에 의해 흔들림 온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핍박을 받으리라 (딤후 3:12). 돌밭에 뿌리웠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즉시 기쁨으로 받되,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마 13:20,21).

 교회에 곧바른 증언이 제시되고 전해지면, 하나님의 참 백성과 가짜 신자 이 두 무리 사이에 현저한 분리가 나타나게 된다.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그 가르침을 알아보고 기쁨으로 받아들이지만, 사단의 정신을 가진 가라지인 가짜 신자들은 참된 가르침과 복음이 전해질 때 육신의 마음을 건드리는 곧바른 증언을 싫어하여 반대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곧바른 증언과 참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면, 예로부터 그래왔듯이 경건하게 살려는 그들에게 핍박이 오게 된다.

 핍박과 박해는 믿음이 굳세지 못하고 하나님을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마음을 갖지 못한 연약한 사람들에게는 흔들려 떨어지게 만드는 요인이 되지만, 하나님을 죽도록 사랑하는 그분의 참 자녀들에게 핍박과 시련은 그들을 단련시켜 더 정결하게 만드는 하나님의 섭리가 되기도 한다. 마지막으로 올 큰 핍박과 박해는 짐승의 표의 환난이다. 짐승의 표가 강요될 때 마지막 핍박이 오며, 그때 하나님의 참 백성과 거짓 백성 사이에 마지막 분리가 생길 것이다. 더 자세하게 연구해 보자.

1)  흔들림의 원인이 되는 핍박과 시련
 
예수께서는 핍박과 시련이 올 때 흔들려 떨어지는 신자를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돌밭에 떨어진 씨앗으로 표현하셨다. 복음의 씨가 뿌려진 돌밭은 흙이 깊지 못하다. 싹이 곧 나기는 하나 그 뿌리가 돌을 뚫고 들어가 필요한 양분을 섭취할 수 없으므로 얼마 안 가서 말라 죽는다. 믿노라고 공언하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이 돌밭 청중이다. 선천적인 이기심이 땅속에 깔린 바위처럼 그들의 선한 욕망과 포부의 밑바닥에 깔려 있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하는 마음을 정복하지 못하였다. 죄가 얼마나 흉악한지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죄를 자각하고 겸손해지지 않는다. 이런 사람들은 쉽사리 진리를 확신하고 겉으로는 유망한 신자처럼 보이나 그들이 가진 믿음은 피상적일 뿐이다.

 이 돌밭에 뿌려진 씨에 적용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즉시 받기는 하지만 거기에 드는 비용을 생각하지 않는 자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를 생각해 보지 않는다. 그들은 자기들의 모든 생활 습관을 하나님의 말씀과 대조하여 보고 자신을 전적으로 그 말씀의 지배에 맡기지 않는다. 식물의 뿌리는 땅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눈에 보이지 않으나 그 식물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양분을 빨아들여 식물 각 부분에 보낸다. 그리스도인들도 이와 같다. 영적 생명이 영양 공급을 받는 것도 믿음을 통해서 사람의 심령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연합을 유지함으로 되는 것이다. 그러나 돌밭 청중은 그리스도 대신에 자신을 의지한다. 그들은 저희의 행실과 순간적인 선한 생각을 의뢰하고 스스로 의롭다는 생각이 강하다. 그들은 주님 안에서 강하지 못하며 그의 굳센 능력 안에서 강건하지 못하다. 이러한 사람들은 그 속에 뿌리가 없다. 왜냐하면 그들이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뜨거운 여름 햇볕은 튼튼한 곡식은 강하게 하고 잘 익게 하지만 뿌리가 깊지 못한 곡식은 시들게 만든다. 이와 같이 뿌리가 없는 자는 잠시 견디다가 말씀을 인하여 환난이나 핍박이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진다. 많은 사람은 복음을 받지만 그들이 죄에서 구원을 얻기보다는 고통을 피하는 방편으로 받아들인다. 그들은 종교가 저희를 고난과 시련에서 벗어나게 해줄 것이라는 생각으로 얼마 동안 기뻐한다. 그들은 생활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동안은 진실한 그리스도인처럼 보일지 모르나 풀무불의 연단과 같은 어려운 시험을 받게 될 때에는 엎드러지고 만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능욕을 견디지 못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이 품고 있는 어떤 죄를 지적하거나 그들에게 극기와 희생을 요구하게 될 때 그들의 감정은 몹시 상한다. 핍박과 시련은 그들을 넘어지게 하고 흔들려 떨어지게 한다.

2)  핍박과 시련의 축복
1. 경건하게 사는 사람이 당하는 핍박
 
우리는 하늘이 아닌, 사단이 다스리는 이 땅에서 살고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고 그 뜻대로 사는 것은 많은 핍박과 박해를 초래한다. 아벨이 가인에게 죽임을 당했듯이, 그리고 세상에서 하나님의 경건한 종들과 선지자들이 핍박을 받았듯이,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은 많은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곧바른 증언, 참된 복음을 받아들이는 데는 많은 희생과 고통과 외로움이 따르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사람들을 위하여 주시는 예수님의 격려의 말씀이 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요 16:33; 마 5:10-12)고 하셨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당하는 시련과 곤란에 놀라도록 버려 두지 않으신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모든 것들에 대해서 이미 말씀하셨으며 또한 시련이 임할 때에 낙담하거나 불안해 하지 말 것도 말씀하셨다. 가장 견디기 어려운 시련은 우리의 형제들이나 친밀한 친구들에게서 오는 것으로, 이런 시험일지라도 인내함으로 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요셉의 새 무덤에 누워 계시지 않으신다. 그는 부활하셔서 하늘에 올라가시고,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중보하고 계신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죽으실 만큼 우리를 사랑하신 구주를 모시고 있다. 주님께서는 그대가 부르짖을 때에는 언제든지 그대를 능히 도우실 수 있으며, 또 즐거이 도와 주신다

 하나님의 영광 곧 그분의 품성은 당신께서 택하신 사람들에 의해 시련과 핍박을 통해 나타난다. 세상의 미움과 핍박을 받는 하나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의 학교에서 교육을 받고 훈련을 받게 된다. 그들은 세상의 좁은 길을 걸으며, 고난의 도가니에서 정결하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동안 쓰라린 투쟁을 경험한다. 그들은 극기를 감내해야 하며 처절한 실망을 맛보기도 한다. 그러나 그들의 고통스러운 경험은 죄의식을 일깨워 주고 죄로 인한 비애를 그들에게 가르쳐 주므로, 그들은 죄를 가증하게 보게 된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 또 그분의 영광에 참예하는 자가 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장애와 핍박과 난관을 허락하시되 저주로서가 아니라 우리 생애의 가장 큰 축복으로 허락하신다. 우리가 대항한 모든 시험과 우리가 용감하게 견딘 모든 시련은 우리에게 새로운 경험을 주며 거룩한 품성을 형성하게 한다. 그러므로 시련이 아무리 심할지라도 낙담하지 말고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기도를 드리는 가운데 자신을 하나님의 지도에 맡기며 안전한 길로 인도해 주시도록 구해야 한다.

2. 핍박과 시련은 하나님의 단련시키시는 도구
 
하나님이 인생으로 고생하며 근심하게 하심이 본심이 아니시다(예레미야 애가 3장 33절). 그분께서 시련과 환난을 허락하시는 것은 우리의 유익을 위하여 그의 거룩하심에 참예케 하시(히 12:1)기 위함이다. 감당하기 심히 어렵고 가혹하게 보이는 시련이라도 일단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축복임이 판명될 것이다. 세상의 쾌락을 앗아가는 혹독한 재난이 오히려 우리의 눈을 하늘로 향하게 하는 수단이 될 것이다. 슬픔을 당하여 예수님 안에서 위로를 구하는 일이 없었더라면 결코 그분을 알지 못했을 사람들이 많이 있다.

 인생의 고난은 우리 성품에서 불순물과 거친 것을 제거해 내는 하나님의 일꾼들이다. 이들에 의해 채석되어 깎이우고, 끌로 새기어지고, 갈리고 다듬어지는 것은 고통스런 과정이다. 또, 회전 연마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도 힘든 일이다. 그러나 그 속에 들어간 돌은 하늘 성전의 제자리를 채우는데 부족함이 없게 준비되어 나온다. 쓸모 없는 물건을 위해서는 주께서 그처럼 신중하고 철저한 작업을 하지 않으신다. 오직 그분의 보석만이 궁전의 식양대로 다듬어진다.

 주께서는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계3:19)고 말씀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통회하는 마음에 힘을 주시고 슬퍼하는 심령을 고결하게 하심으로 마침내 당신께서 거할 수 있게 만드신다. 우리는 시련이 유익이 됨을 배우며, 주님의 징계를 경시하지 말고, 하나님께 책망받을 때 낙심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께 징계받는 자에게는 복이 있나니...하나님은 아프게 하시다가 싸매시며 상하게 하시다가 그 손으로 고치시나니 여섯 가지 환난에서 너를 구원하시며 일곱 가지 환난이라도 그 재앙이 네게 미치지 않게 하시며(욥 5:17~19).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말 못할 슬픔과 아프고 상한 마음으로 짓눌려 있도록 버려 두지 않으신다. 그분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눈을 들어 당신의 자애스러운 모습을 바라보게 하신다. 거룩하신 구주께서는 눈물로 앞이 가리워 당신을 알아보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 곁에 서 계신다. 그분의 마음은 우리의 슬픔과 비애와 시련을 향하여 열려 있다. 그분은 영원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며, 자애로운 손길로 우리를 감싸 주신다. 우리는 마음을 그분께 바치고 온종일 그분의 자애를 명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의 영혼이 매일 당하는 슬픔과 어려움에서 벗어나 평화 가운데서 살게 해주실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함으로써 장차 나타날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그분과 함께 일하고 그분과 함께 슬픔의 잔을 마심으로 우리는 그분의 기쁨에도 참여하게 된다. 예수께서 위로의 봉사를 하신 것은 고난을 통해서였다. 그분은 인류가 당하는 모든 고난을 같이 당하신다.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히 2:18, 사 63:9). 그리스도의 고난이 우리에게 넘친 것같이 우리의 위로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넘치는도다(고린도후서 1장 5절). 주께서는 시련과 고통을 당하는 자에게 줄 특별한 은혜를 가지고 계시며, 그 은혜의 능력은 마음을 부드럽게 하고 영혼을 구원하게 될 것이다. 그분의 사랑은 상하고 터진 마음에 통로를 열어 주며 슬퍼하는 자들에게 치유의 유향이 된다.

3)  짐승의 표의 환난과 다가올 핍박
 
하나님의 교회로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흔들어 내기 위한 사단의 노력은 마지막 짐승의 표를 강요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핍박과 박해가 올 때 그 절정을 이루게 될 것이다. 짐승의 표가 강요될 때, 수많은 신실한 성도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지키기 위하여 짐승의 표를 받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은 사람들로서, 짐승의 표를 받는 대신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할 것이다.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놀라운 믿음으로 핍박을 이길 것이며, 그들의 생명을 포기하여 순교자가 되는 것을 겁내지 않을 것이다. 또한 단 한마디의 말이나 행동으로도 하나님을 부인하지 않는 놀라운 믿음을 증거해 보일 것이다. 그 때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신앙으로 인해서 투옥당하게 될 것이다. 짐승이나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은 사거나 팔지 못하게 하는 법령이 포고될 것이다 (계 13:16-17 참조).

 이때 흔들림은 최고 정점에 도달하게 되며, 흔들릴 수 있는 모든 것들은 흔들리게 될 것이다. 바로 그때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교회를 마지막으로 정결케 하실 것이다. 알곡과 가라지는 천사들에 의해서 완전히 분리될 것이며 하나님의 교회에는 오직 그분께 신실했던 사람들만이 남게 될 것이다. 그때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무리에 무리를 지어 서로 모일 것이며, 말뿐이던 가라지 신자들은 모두 하나님의 편을 떠날 것이다. 신실한 사람들이 남녀들을 바벨론으로부터 하나님의 남은 양무리로 불러내는 요한 계시록 18장의 큰소리 외침을 하게 될 때, 그것은 세상 역사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이 될 것이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계 18:4.

 핍박과 박해가 너무나 극심하기 때문에 흔들림의 첫 단계, 즉 교회 안으로 들어온 잘못된 이설과 오류에 휩쓸리지 않고 견디었던 자들이라 할지라도 이때에는 흔들려서 떨어져 나갈 것이다. 또한 교회와 하나님의 백성 가운데에 있는 죄를 지적하는 기별인 곧바른 증언에 의한 흔들림의 두 번째 단계에서 견딘 사람들 중의 많은 사람들이 이때 흔들려서 떨어지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때에는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충성을 증거하기 위해서 그들의 생명을 요구 받기 때문이다.

 마지막 때의 핍박과 박해의 시험은 너무나 극심하여서 하나님의 교회 안에는 단 한 사람의 신실하지 않은 사람도 남지 못하게 될 것이다. 그때 끝까지 남아있는 사람들은 구속함을 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모든 단계의 시험을 통과한 모든 사람들은 하늘에 거할 수 있는 그들의 적합성을 증명하게 될 것인데, 왜냐하면 하나님께 온 마음을 다하여 충성하고 모든 죄와 사단의 모든 기만을 극복한 사람들은 이 흔들림의 모든 단계로 되어있는 시험을 통과하기 때문이다. 이때 이사야 4장의 예언은 정확하게 성취될 것이다. 그 날에 여호와의 싹이 아름답고 영화로울 것이요 그 땅의 소산은 이스라엘에 피난한 자를 위하여 영화롭고 아름다울 것이며 시온에 남아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 곧 예루살렘에 있어 생존한 자 중 녹명된 모든 사람은 거룩하다 칭함을 얻으리니 이는 주께서 심판하는 영과 소멸하는 영으로 시온의 딸들의 더러움을 씻으시며 예루살렘의 피를 청결케 하실 때가 됨이라. 사 4:2-4.

5부 - 흔들림을 견디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 참 교회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성경에는 마지막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모든 흔들림과 환난을 통과하고 승리하는 하나님의 참 교회인 마지막 남은 무리의 특성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되어 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12).  지금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분의 교회를 정결하게 하시고 마지막 당신의 백성들을 골라내시기 위하여 허용하신 흔들림에 대하여 공부해보았다. 또 이 모든 흔들림은 당신의 참 교회, 참 백성을 만드시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인 것을 알게 되었다. 모든 흔들림을 견디고, 죄를 승리하는 한 백성, 마음이 거듭나므로 사랑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한 백성, 그리하여 마지막 하나님의 성품을 우주에 변호하고 산 증인이 될 하나님의 참 백성이 탄생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그런 백성들이 준비되어야, 즉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이 쳐져야 예수께서 재림 하실 수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참 백성이 준비되는 일은 매우 중요한 관건이 아닐 수 없다. 그 참 백성, 즉 남은 무리의 특징에 대해 함께 공부해 보자.

1)  남은 무리의 특성
 
요한계시록 7장에는 마지막에 승리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설 남은 무리, 14만 4천인에 대하여 묘사되어 있다. 그들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있었다. 요한은 계시에서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승리하는 참 교회의 모습을 보았는데,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었다. 성경의 마지막 장인 요한계시록 22장에도 하늘에 들어갈 마지막 참 교회는 어떤 사람들로 구성될 것인가에 대하여 쓰여 있다.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은 복이 있나니 이는 저희가 생명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요한계시록 22:14 (한글 성경에는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킹 제임스 영어 성경과 성경의 원문에는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기록되어 있음).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승리하여 하늘에 들어가는 하나님의 참 백성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하나님의 계명을 신실하게 지킨다는 표현을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참 교회를 묘사하면서, 참 교회는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구성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는 것이다. 참 교회의 교인들은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 아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고, 또 마음이 새롭게 거듭나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에,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며 지키는 변화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지셨던 똑같은 믿음으로 죄를 승리하는 경험을 하며 사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성경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을 분명히 알면서도 그것을 지키지 않고 계명이 폐했다고 주장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아직 구원을 경험하지 못했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요한계시록은 참 교회의 교인들을 설명하면서 3번이나 반복하여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2)  하나님의 참 백성의 사명
 
마지막의 큰 환난을 통과하고 승리할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사하는 자들로서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성경은 그 사람들을 14만 4천인이라고 말하고 있다. 남은 무리 하나님의 참 백성은 아주 중요한 사명을 띠고 있는데, 그 사명은 하나님의 공의로우심과 구속의 능력을 사단과 우주에 변호하는 사명 때문인 것이다. 사단은 하나님의 율법에는 결함이 있고 하나님은 불공평하신 분이라고 비난하였다. 대쟁투는 최초로부터 하나님의 계명에 관한 것이었다. 또한 마귀는 하나님의 율법은 순종할 수 없고 그 율법을 폐기하지 않고서는 죄인이 용서받는 일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하였다.

 사단은 아담과 하와가 범죄하였을 때 그들의 범죄는 하나님의 계명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이라고 기뻐 날뛰었다. 그 때에 예수께서 인간이 되시어서 이 땅에 오셔서 우리 죄인의 육체를 입으시고 같은 시험과 유혹들을 모두 싸워 이기시는 승리자가 되신 것이다. 당신의 생애와 죽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의 공의는 당신의 자비를 파괴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죄는 용서받을 수 있고 율법은 의로우며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밝히셨다. 하늘에서 시작된 하나님의 율법을 대항하는 전쟁은 세상의 종말까지 계속될 것이다. 한결같이 사람은 시험을 받을 것이다. 순종 혹은 불순종은 온 세계가 결정해야 할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구속의 역사의 끝에, 예수님께서 보이신 온전한 순종의 모습을, 당신의 보혈의 능력으로 죄에서부터 구속하시고 회복시키신 최후의 한 무리들을 통하여 재현시켜 보이셔야만 한다. 그런 무리들을 통하여 드디어 온 우주는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작정하신 자들, 죄인이었다가 회복된 그 인간들을 다시 죄 없는 하늘로 맞아들이기에 안전하다는 것을 보게 되는 것이다. 이 사명은 아무나 성취할 수 없으며, 오직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반사하는 사람들만이 성취할 수 있다.

3)  승리하는 교회
 
환난이 오고 짐승의 표가 강요될 때, 목숨을 내놓고까지 라도 하나님을 위해 충성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을 우주는 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될 때, 드디어 온 우주는, 하나님의 계명을 목숨을 내걸고 순종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반사하고, 하나님의 품성과 그분의 율법을 옹호하며 사단이 틀렸다는 사실을 제시하는 살아있는 마지막 세대, 한 충성스러운 성도의 무리를 보게 되는 것이다. 마귀가 아무리 유혹하고 위협해도 그들은 그것에 굴하지 않는다. 그들의 원동력은 자신들의 구원에 대한 집념이 아니다. 오히려, 너무나 좋으신 하나님의 누명을 벗기어 드려서 영원토록 아무런 의심이나 불평 없이, 온 우주가 하나님께 존귀와 영광과 찬송을 드리게 하겠다는 거룩한 동기가 그들의 헌신의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요한은 어린양이 시온산에 서 있고 그와 함께 14만 4천이 하나님 아버지의 이름을 이마에 받고 같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늘의 인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였고 거룩한 자의 빛과 영광으로 충만하였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인을 우리 위에 가지려고 한다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모든 죄악들로부터 분리시켜야 한다. 우리는 모든 악한 길들을 버리고 우리 자신들과 우리의 모든 입장들을 그리스도의 손에 맡기어야 한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요한계시록 14:12). 우리는 하나님의 참 백성이 되기를 원하는 사람들로서, 이 성경절의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여야 할 때가 되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는 사람들! 예수께서 이 땅에 사실 때 가지셨던 그 믿음, 십자가 위에서 둘째 사망까지 경험하시면서도 범죄치 않으시고 끝까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순종의 본을 보이신 믿음, 바로 그 예수의 믿음을 똑같이 가지고 있는 사람들, 그래서 하나님을 우주에 변호해드릴 수 있는 성품과 믿음을 가진 사람들! 그 사람들이 마지막에 나타나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인 것이다.

 우리는 마지막 하나님의 남은 백성의 무리에 들어가기를 얼마나 사모하여야 하겠는가? 하나님의 인을 받은 십사만 사천,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사람들,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사람들! 이런 사람이 되는 것이 바로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께서는 모든 흔들림과 체질을 이겨내는 한 백성을 가지실 것이다. 우리모두 굳건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남은 백성의 무리에 들어가도록 기도하자!

6부 - 흔들림을 견디고 승리하는 참 백성이 되기 위한 준비

 지금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참 백성들을 모으고 계시는 때이다. 모든 흔들림과 시험과 시련을 견디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정결한 백성이 되기 위해 준비해야 할 때이다.  모든 흔들림을 견디고 승리하여 구원받게 될 하나님의 참 백성, 곧 마지막 남은 무리가 되기 위해서 우리는 어떤 준비를 해야 될까? 그 준비에 대해 함께 공부하여 보자.

준비1. 하나님께서 지금 우리에게 주시는 모든 시험에서 승리해야 한다:
 
이러한 시험들은 우리가 앞으로 가질 시험과 시련의 날에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굳게 견디도록 하는데 필요한 완전한 성품을 준비시키기 위해서 허락된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모든 점에 도달하고 모든 시험에 견디고 승리하는 자들은 늦은비 성령을 받고 승천을 위해 적합하게 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적은 시험에 신실하지 못하고 용기를 잃고 낙망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충성에 대한 최고의 시험을 견딜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음을 알 수 있으며,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사람만이 사거나 팔 수 있을 때, 그 시험에 굴복하는 것은 거의 틀림없는 사실이 될 것이다. 더구나 짐승의 우상에 경배하지 않는 자들을 죽이라는 사형 명령이 내려지는 때, 우리가 타협하고 굴복하는 것은 너무도 명백한 사실이 될 것이다 (계 13:15-16).

준비 2. 우리는 지금 우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   
 너희의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 너희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며 너희를 악하게 이용하는 자들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 마 5:44. 예수께서는 이 점에 있어서도 우리에게 완전한 모본을 보여 주셨다. 아버지여, 저희를 사하여 주옵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눅 23:34. 첫 번째 순교자인 집사 스데반은 그를 살해하는 자들을 위해서 놀라운 용서를 보여주었다. 주여,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마옵소서. 행 7:60. 이와 같은 진실함과 신실함을 갖고 기도할 수 있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의 마음과 영혼을 채워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한 승리를 하고 있는 모든 사람들의 경험이 될 것이다.

준비 3. 믿음과 용기:
 
우리에게는 용기와 순교자의 믿음이 필요하다. 지금은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나 있거나 우물쭈물 하는 태도를 취할 때가 아니다. 지금 하나님께서는 모든 시련에 견디고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쫓나니 라는 말씀을 실증해 보일 수 있는 용기를 키울 것을 요구하고 계신다 (요일 4:18). 진리대로 살기 위해 망설이는 사람들과 믿음이 불확실한 사람들과 하나님보다 인간을 두려워하는 겁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뽑아서 선택한 사람들 가운데에 끼이지 못하게 될 것이다. 신실한 사람들은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소유하게 될 것인데, 그들은 아무리 어둡고 암울한 환경 가운데일지라도 그들의 믿음을 발휘하는 데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특성들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자연스럽게 생기지는 않는다. 그래서 자비의 하나님께서는 우리 속에 이러한 위대한 특성들을 개발하고 강화시키기 위해서 당신의 백성들을 시험과 시련을 통해서 준비시키시고 계신 것이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그러한 시험과 시련에 견딜 만큼 신실하고 강건한 자들이 되기를 원하셔서 우리를 단련시키실 뿐 아니라, 시련의 그날까지 우리 곁에서 함께 하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가장 큰 시련의 기간에 당신의 자녀들에게 베푸시는 당신의 사랑은 그들이 가장 번영하던 때의 주신 것과 똑같이 강하고 부드럽다.

 오늘도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늦은비 성령을 받고 환난을 통과하기 위하여 필요한 하나님의 성품을 이루는 일과 영원한 하늘에 살 수 있는 적합성을 이룩할 수 있는 모든 기회를 당신의 백성들에게 부여하고 계신다. 그분의 무릎 위에 앉아있는 가장 약한 성도일지라도 사단에게 있어서는 감당하지 못할 적인 것이다. 온 마음을 다하여 자신의 생애와 의지를 예수께 굴복시킨 어떠한 사람도 마지막 위기와 시험의 날에 결코 실패하지 않을 것이다.

È 하나님께서는 흔들림과 체질을 통하여 알곡으로부터 가라지들을 분리시키시고 당신의 참 백성을 모으고 계신다. 흔들림과 체질의 시기 동안에 복음에 굳게 서서 하나님께 흔들리지 않는 충성을 입증하는 사람들만이 진리와 의가 연합한 정결한 하나님의 참 교회를 구성하는 참 백성이 될 것이다. 하나님의 참 백성의 무리에 들어가는 독자들이 되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