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집으로 가는 길에서


    길을 잃어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그 길로 가는 것이 맞는 것같아 그리로 들어섰더니 그 길이 아니고, 또 이 길이 꼭 맞는 것 같아 이 길로 갔건만 맞는 길이 아니어서 한참을 뺑뺑 돌며 헤매었던 경험이 있으십니까?...

    아니, 분명히 일러준 약도대로 갔는데 그 약도가 잘못된 것이라서 당황하고 고생했던 적이 있으십니까? 그렇게 헤매고 있을 때는 정말 가는 길을 정확히 가르쳐 줄만한 사람이 지금 옆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얼마나 절실한지요!... 우리의 인생 길을 가는데 있어서도 누군가가 언제나 옆에서 우리에게 가는 길을 얘기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다시는 길을 잃지 않도록, 다시는 헤매지 않도록, 그래서 우리가 그렇게도 가기 원하는 우리의 영원한 집으로 한번의 길 잃어 버림도 없이 안전하게 도착할 수 있다면...그리고 지금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그 곳에 우리를 위해 마련된 아름다운 보상을 받고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어떤 길
    어떤 길이 있습니다. 정확한 약도와 확실한 안내자를 가진 사람들만이 가는... 결코 방황하지 않아도 되고 길 잃을 염려는 더군다나 없는, 너무나 확실하고 안전한, 결코 돌아가지 않아도 되고 헤매지 않아도 되는 그런 정확한 길 말입니다. 그 길에는 언제나 함께 동행해주는 동반자가 있습니다. 정확한 약도와 함께, 가는 길에 대해 자상하게 일러주는 믿음직한 안내자로서 말입니다. 그 안내자가 일러주는 그대로만 가면 영원한 집으로 가는 길에 절대로 실패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은 너무나 정확하게 그 길에 대해서 알고 있으니까요.
    그러나 그 길을 가는 데는 조건이 있답니다. 그 조건은 바로 그 안내자를 세상의 그 무엇보다 제일 사랑하고 믿고 신뢰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다른 조건은 그 안내자가 충고하는 모든 진실된 얘기(진리)를 다 받아들이고 그가 어디로 인도하든지 그대로 따르는 것이지요. 그래야만 실수하지 않고 안전하게 갈 수 있으니까요 . 성경에는 이것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사람들은...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계14:4) 그렇다면 안내자가 인도해 주는 그 길은 아주 편안하게 갈 수 있는 길이냐고 반문하시겠지요? 그렇다고 그 길이 편안하고 쉬운 길은 아닙니다. 왜 그런지 그 이유를 가르쳐 드리겠습니다.

그 길 위에서
    길을 가는 도중에 어떤 때는 그 안내자의 말을 듣는 것이 쉽지 않을 때가 종종 생긴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그 길을 가기로 선택한 사람들의 마음을 현미경으로 들여다 보듯이 환히 알고 있기 때문에, 그분과 함께 그 길을 가려면 어떤 마음가짐들은 버려야 한다고 말할 때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어떤 충고는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는 것도 있지만 어떤 충고는 받아드리기가 힘들고 기분이 상하는 것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충 고는 길을 가는 사람들의 유익을 위하여, 준비된 영원한 상급을 얻기 위하여 꼭 필요하기 때문에 주어지는 것이지요!
    그분은 사람들을 아주 꼼꼼히 챙기시며 한 걸음씩 한 걸음씩 인도하십니다. 그 안내자는 길을 가는 데 있어서 결코 서두르거나 재촉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와 함께 가는 사람이라면, 그래서 그 영원한 집으로 꼭 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그 길에서 꼭 배워야만 하는, 아주 귀중한 경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곧, 버려야 하고 견뎌야 하고 이겨내야 하는 경험입니다. 가는 모든 여정길에는 각 지점마다 그분의 충고를 받아들이고 버려야 할 것들이 나타납니다. 그분은 항상,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속에 버려야 할 어떤 것이 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하여 각기 다른 처지와 다른 환경으로 인도 하십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길을 가고 있지만 그들이 갖는 경험은 각각 모두 다릅니다. 어떤 사람은 이 지점에서는 잘 견디지만 다음 지점에서는 넘어집니다. 어떤 사람은 한 가지 점을 즐거운 마음으로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그분께서 시험하시는 다른 점을 그에게 제시하면, 그만 위축되어 뒤로 물러섭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자기가 세상에서 제일 좋아하고 있는 어떤 우상을 버려야함을 드러내주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사람들은 자기의 마음속에 그분보다 더 좋아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상급보다 더 소중하게 여기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볼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됩니다. 그들은 그것을 안내자가 제시해 주는 진리보다 더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런 사람들은 그분의 충고를 받아드리고 그분을 따라 갈 준비가 되어 逞?않습니다. 사람들은 누구나 바로 이 지점에서, 그들의 좋아하는 우상을 버리고 희생하며, 참된 안내자의 권고에 따를 것인지 아닌지 결정하기 위하여 일정한 기간동안 시험을 받고 시련을 겪게 됩니다. 그렇게 계속 이어져 가는 모든 지점에서 마음은 시험을 받고, 조금씩 철저하게 연단을 받게 됩니다.

연단을 받는 때
    조금 더 쉽게 갈 수는 없느냐고 물어보고 싶으시겠지요? 그러나 우리가 가는 영원한 집, 그곳은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모든 시험을 견디고, 어떠한 대가도 감수하고 이겨내어 정결케 된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는 곳이랍니다. 연단을 받는다는 것은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 연단받는 과정이 영혼에게는 큰 시험이지만 그러나 이 방법에 의해서만 우리 마음의 찌꺼기가 제거될 수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과정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의 임하는 날을 누가 능히 당하며 그의 나타나는 때에 누가 능히 서리요. 그는 금을 연단하는 자의 불과 표백하는 자의 잿물과 같을 것이라. 그가 은을 연단하여 깨끗케 하는 자 같이 앉아서 레위 자손을 깨끗케 하되 금, 은 같이 그들을 연단하리니...”(말라기 3: 2~3).
    그분께서는 우리가 영원한 본향에 들어가려면 어디를 깨끗하게 해야 할 필요가 있는지 아시기 때문에 우리를 정결케 하시기 위하여 풀무불을 보내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우리가 시련의 풀무 속에서 온전히 다 타서 없어질 때까지 버려두지 않으십니다. 금을 정련하시는 연단자로서 그분은 우리 속에서 그분의 형상이 나타나는 것이 보일 때까지 그 순결케 하는 모든 과정을 지켜 보고 계십니다. 비록 고난의 불길이 우리 주위를 태우고 때로는 그 불이 우리를 완전히 삼키지 않을까 두려울 때에도 그분의 사랑과 관심은, 우리가 승리한 후 그분 안에서 마음이 자유로울 때와 마찬가지로 친절하게 우리를 향하고 있습니다.
    풀무불은 순결하고 세련되게는 하지만 삼키고 멸망시키지는 않습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일은 고통 없이는 성취될 수 없습니다. 그분께서는 불순물을 태우기 위해, 가치 있는 것으로부터 무가치한 것들을 분리시키기 위해, 순수한 금속이 빛을 발하도록 시련의 불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의 진정한 가치를 시험하시기 위해 우리가 차례로 불을 통과하도록 하십니다. 만일 우리가 사소한 시련들을 견디지 못한다면, 더 어려운 환난과 역경의 때에는 어떻게 할까요? 만일 작고 사소한 시련이 그렇게도 많이 우리 마음의 거짓됨과 교만심과 이기심을 드러낸다면, 그분께서 우리를 시험하시려고 큰 역경을 보내셔서 마음의 모든 비밀을 완전히 드러내실 때는 어떻게 하시렵니까?

우리 여정길의 안내자
    우리는 혼자 이 모든 것을 감당하며 길을 가도록 요구받고 있지 않습니다. 그분께서는 어떤 경우에든지 우리를 버리지 않고 같이 가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여정을 인도하시는 사랑스러운 안내자는 이 모든 길을 손수 준비하셨기 때문에 누구보다도 이 과정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뿐 아니라 그분은 우리의 구속주, 우리의 대표자로서 이 시험하는 과정을 먼저 견디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견디도록 요구된 어떤 시련보다도 더 큰 시련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이해하시기 위하여 우리의 연약함을 지시고 모든 면에서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험하고 피나는 고난의 길을 우리보다 먼저 앞서 가셔서, 승리자로서 그 분의 사명을 마치신 그분의 안내를 따라감으로 우리의 여정길을 무사히 마칠 수 있는 것입니다.

여정이 끝나는 때
    그렇다면 이 길고도 간혹 지루하게 느껴지기도 하는 여정이, 그리고 거친 것들을 깎아내시는 연단의 아픈 과정들이 언제나 끝나게 될까요?
그분의 정결케 하고 깨끗케 하시는 일은, 그분을 따라가는 사람들이 겸손해지고 자아에 대해 죽음으로 그들이 그분을 위한 온전한 봉사자들이 될 때, 그리고 그들이 자신은 완전히 잊은 채 그들의 눈이 그분의 영광만을 바라볼 수 있게 될 때까지 계속 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길 위에서 진정으로 싹튼 그분과의 사랑과 그분을 따르고 싶은 뜨거운 열정이 그 모든 여정길의 어려움을 삼켜 버릴 때, 그리고 그분과 함께 나누는 향기로운 교제가 너무 달콤하게 가슴을 적시어 길위의 모든 목마름과 지침과 갈증을 잊어버리게 할 때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것입니다.

    이제 길은 거의 끝나가고 그 영원한 집이 가까워 오고 있습니다. 저편 끝 문어귀 사이로 벌써 찬란한 황금빛이 비쳐나오는데, 누가 과연 그분을 따라 기나긴 여정을 마쳐 준비된 그 아름다운 곳에 들어 갈까요?
    모든 과정을 통과하고, 모든 시험을 견디고, 어떤 대가도 감수하고 이겨내며 끝까지 그분을 따라가는 사람만이 마침내 영원한 집, 그리던 본향에 다다를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은 仄?어떤 길에 서 계십니까?...
 

권두언


강병국 목사

    생각하기에 좀 그렇지마는, 한번쯤은 생각해 보고 지나가야 하는 한가지 질문을 드려 볼까요? 이 지구가 어떠한 식으로 그 마지막 운명을 맞이하게 될까요?

    원자폭탄 같은, 인간들이 발명한 무기들에 의해서 자멸하게 될까요? 아니면 일기의 변화나 또는 커다란 혹성과 충돌하여 파멸 당하게 되는 것일까요? 아니면 그냥 이러한 식으로 영원히 생명이 계속되며 존재하게 되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또 태어나고 죽고 또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고 그들도 또 죽고 다시 다른 사람들이 태어나고 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러한 미래라면 우리에게 희망이 없습니다.

    성경 말씀이 아니더라도 이 지구는 다시 시작하여야 합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여야 할 이유들이 너무나 많이 있습니다. 그 한가지는 이 지구의 환경과 자연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또한 그 가운데 살고 있는 인류들의 고통이 이제는 하늘을 찌를 듯이 심각해져 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과학의 발전과 지식의 증가도 인류의 행복을 증진시키거나 미래를 향한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유일한 희망은 이 지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시 찾아오시는 것입니다. 영적으로서가 아니라 실재로,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입장에서, 이 지구를 원래의 참 모습으로 다시 재 창조해 주시면서 다시 오시는 일이 우리 인류에게 유일한 소망인 것입니다. 본 주인에게 이 지구를 돌려 드려서 다시 새롭게 함을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새롭게 함을 받은 자들만 그 속에 다시 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에는 죽지 않고 영원토록. 성경은 우리에게 너무나 가슴 벅찬 희망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늘의 태양이 사실이고 우리의 호흡이 사실일진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약속도 사실입니다.

    그 창조주의 다시 오심이 과연 언제 일까요? 우리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습니까? 왜 우리가 지금을 말세라고 부르는 것일까요? 이번 호는 여러분들에게 흥미 있는 주제들로 다가갈 것입니다.

 

그대는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인입니까?


    이 기사는, 예수님의 재림을 위하여 어떻게 하면 나의 가정이 영적으로 더 잘 준비될 수 있을지에 대해 고민하고 계신 독자들을 위하여 마련했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잠깐 동안의 시간을 내어서 이 글을 읽으신다면, 여러분은 이 글에 비친 여러분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편집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잠언 16:32

    나는 이 글에서 어떻게 하면 우리가 우리 자신을 제어(self - control)함으로써, 가장 효과적으로 자녀들을 교육시키며, 결혼 생활을 아름답게 이끌어 갈 수 있는가에 대해서 설명하고자 합니다.
    어떤 평화로운 오후에 나는 한 여자 분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녀는 나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 보았습니다. 내가 왜 가족들과 함께 몬타나의 조용한 시골로 이주하였는가에 대해서도 물어 보았습니다. 나는 모든 위선과 가식을 버리고 하나님과 진실하게 동행하기로 결심했던 사실과, 가정 안에서 하나님의 복음이 먼저 실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 나의 경험을 설명해 주었습니다.
    나는 복음전도 사업을 가정 안에서부터 시작하기로 결심했습니다. 가정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서 말하고 행동하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세상으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나갈 수 있겠습니까? 가정 안에서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교회에서 성령의 권능을 받기를 기대할 수 있습니까? 또한 가정에서 아내와 남편 그리고 자녀들에게 진실하고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인정받지 못하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그리스도인이 되고자 애쓸 수 있습니까?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는 방법
    우리가 어떻게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요? 이 문제에 대답하기 위해서, 우리는 먼저 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를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말씀에도 순종하는 사람을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따르라”는 말씀을 믿는 사람들 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은 양심 속에 울리는 조용한 그리스도의 음성에 자기 자신을 복종시키는 사람들 입니다.
    “자아를 굴복한다”(self - government)는 말의 의미는 자아가 그리스도께 지배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나를 지배하실 때에, 나는 그리스도를 통하여 내 자신을 굴복시킬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양심 속에 들려오는 그리스도의 음성을 거절하고 등을 돌릴 때마다, 자아는 나를 정복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은 “나는 날마다 죽노라”라고 말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 역시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굴복하지 않는 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간증하였던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으며, 자아가 그리스도께 지배되지 않는 사람이 어떻게 가정 안에서 참된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을까요? 어떻게 부부지간에 또는 자녀들을 사랑과 인내와 동정으로 대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전혀 불가능한 이야기 입니다. 오늘날, 교회와 세상에서 존경받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가정 안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지 못하고 있는 현실을 보게 됩니다. 우리의 신앙이 가정 안에서 실현되지 못할 때, 신앙은 위선적이고 무능력한 것이 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자아를 굴복한다는 것은 올바른 원칙과 순결한 이성과 양심의 소리에 자신을 굴복시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너무도 자주 우리는 우리 자신의 충동, 감정, 느낌, 습관에 굴복하기로 선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원칙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굴복하기를 원하십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상에서 당신의 성품을 반사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차이
    성경에는 두 종류의 사람들, 즉 자아를 굴복시키는 방법을 배운 사람들과 그것을 배우지 못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아를 굴복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는 말은 자아에게 굴복당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요셉이 노예로 팔려가던 날을 기억하십니까? 그날은 요셉에게 있어서 매우 슬프고 쓰라린 날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하나님께 온전히 헌신하기로 결심하는 선택을 했습니다. 요셉은 자신의 의지력과 선택권을 하나님의 지배 하에 두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완전히 지배하실 수 있도록 그분께 굴복하였던 것입니다. 요셉은 자신이 팔려가던 그날, 자신을 하나님께 굴복한다는 의미를 배웠습니다. 노예로 팔려간 후에도 요셉은 유혹과 시험에 굴복할 수 있는 환경에 수없이 처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때마다 자아를 하나님께 굴복함으로써 하나님께 계속해서 신실하였습니다. 요셉은 후에 자신을 상인들에게 팔아넘긴 형제들을 용서할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아름다움을 보였습니다. 요셉은“자아를 굴복한다”는 의미를 이해했습니다.
    삼손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삼손은 자아를 부인하고 굴복시키는 대신에, 자신의 충동과 느낌과 기질에 굴복하였습니다. 그는 자아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하늘의 원칙을 희생시켰습니다. 그는 거룩한 원칙에 자신을 굴복시키기 보다는 충동적이고 감정적인 본능을 만족시켰습니다. 그 결과, 그는 여인의 유혹에 빠지게 되었고, 급기야는 시력을 잃어버림으로써 적군의 노예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죗된 충동과 정욕과 감정의 노예가 되기로 선택할 때에, 우리는 영적인 눈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삼손은 하나님을 믿었지만, 자신의 충동과 기질과 느낌을 하나님 앞에 굴복시키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삼손은“자아를 굴복한다”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우리 자신에 대해서 생각해 봅시다. 우리는 삼손을 닮은 사람입니까? 아니면 요셉을 닮은 사람입니까? 우리는 충동과 느낌이 요구하는 대로 끌려다니는 노예입니까? 아니면, 우리는 자신의 의무와 거룩한 원칙에 신실한 사람입니까?

가정에 비쳐진 나의 모습은?
    다시 가정 이야기로 돌아 갑시다. 우리는 사람들의 눈이 많이 있는 교회와 직장에서 요셉과 같은 면모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정에서도 신실한 요셉처럼 말하고 생각하고 행동합니까? 아내나 남편에게 자존심이 상하는 말을 듣고, 부당한 대우를 받으며, 대화 중에 자신의 의견이 관철되지 않을지라도 여전히 상대방에게 신실한 요셉처럼 대하고 있습니까? 자녀들이 귀찮게 굴고, 버릇없이 대할지라도, 짜증을 내거나 거칠게 대하는 대신에 사랑과 공의로서 그들을 대하고 있습니까?
    몇 년 전부터 하나님께서 나의 눈을 열어주셔서, 가정에서 자아를 굴복하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가장 훌륭한 자녀 교육법은 가정에서 부모가 자녀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충동적으로 짜증을 내는 대신에 온유하게 설명을 해주고, 화를 낼 수 있는 상황에서 인내와 겸손을 보여주며, 돈과 명예를 위해서 사는 것이 아니라 봉사와 희생을 위해서 사는 모습을 자녀들에게 보여줄 때, 그들은 작은 예수로 성장하게 됩니다.
충동과 기질과 느낌에 굴복하는 습관은 어렸을 때부터 배양될 수 있습니다. 어떤 일을 하다가 조금만 어려움을 느끼거나 싫증을 느끼는 어린 아이들이 있습니다. 그러한 자녀들을 위한 다음과 같은 경고가 있습니다.
    “어린 아이들은 종종 열심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지만, 그것이 조금 어렵거나 싫증이 나면 다른 새로운 것을 갖기를 원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여러가지를 갖게 되는데, 조금만 어려움을 느끼면 그것을 포기하고 계속해서 다른 것을 찾는다. 결국, 그 아이는 어떤 것도 완전하게 성취하지 못한다. 부모들은 자녀들의 이러한 경향을 고쳐주어야 한다.”Fundamentals of Christian Education
    자녀들 역시 자아를 굴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가정에 세워져 있는 원칙과, 자신의 양심 속에서 들리는 음성에 굴복하는 것을 배우지 못한 자녀들은, 그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에 매우 많은 시련을 겪게 될 것입니다. 순간적인 충동과 감정을 지배하지 못하는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참 교육을 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싸워야 할 싸움
    자아와의 싸움은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 놓여져 있는 가장 큰 투쟁입니다. 그 투쟁에서 승리한 부모와 자녀들만이 하늘을 바라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기는 자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 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게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요한계시록 3:21
    자아가 우리를 정복할 수 있는 상황에서 자신을 하나님의 지배 하에 둘 때, 우리는 자아와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습니다. “자아가 우리를 정복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말이 무슨 뜻 입니까? 그것은 우리의 연약한 본성이 시험과 유혹을 받을 때를 말하는 것입니다. 믿었던 사람에게 푸대접을 받았을 경우, 따돌림을 받았을 경우, 자기보다 못한 것처럼 보이는 사람에게 멸시를 받았을 경우, 남편이나 아내에게 무시를 당했을 경우, 돈이나 재물에 대한 부정직한 유혹을 받았을 경우, 진리로 인해서 외로움과 시련을 받았을 경우, 이러한 모든 경우들이 자아가 우리를 정복할 수 있는 상황들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우리가 우리의 자아를 하나님이 뜻에 굴복시키고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온유와 겸손과 인내로 걸어간다면, 바로 그것이 자아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 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태복음 16:24
    여기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을 따라가는 세가지 계단을 소개하셨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선제 조건은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분을 따르고자 하는 마음이 있어야만 우리는 첫 번째 계단을 오를 수 있는데, 첫 번째 계단은 자신을 부인(굴복)하는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고 굴복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십자가를 져야 하는 두 번째 계단이 나타납니다. 자아를 굴복하지 않고 자기 감정이나 충동대로 살아가는 자들에게는 십자가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실제에 있어서, 그들은 자신들이 져야 하는 십자가를 거절하면서 살고 있는 것입니다. 화를 내고 싶을 때 화를 내고, 거짓말을 해야만 하는 상황에 처할 때 거짓말을 하는 사람에게 십자가가 있을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자신을 부인하는 결과로서 나타나는 십자가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선택해야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자아를 굴복하지 못하는 이유는, 굴복의 결과로 따라오는 십자가를 두려워하기 때문입니다. 두 번째 계단을 올라 섰을 때, 비로소 우리는 주님을 따라서 동행하는 세 번째 계단을 밟을 수 있습니다.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이면
    사랑하는 남편들과 아내들이시여, 그대들은 가정에서의 모든 대화와 생활 중에서 자아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있습니까? 아니면 자신의 거듭나지 못한 성격이 이끄는 대로 말하고 행동하십니까? 만일 우리가 교회에서 아무리 신실한 그리스도인이라는 칭송을 받고 있다고 할지라도, 가정 안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참된 그리스인이 아니라면, 어쩌면 우리는 다음과 같은 경고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복음 7:21-23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기 전에 우리는 가정에서 자아를 굴복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기 전에 우리는 가정에서 자기를 부인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기 전에 우리는 가정에서 성령의 음성에 자아를 복종시키는 참된 그리스도인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바로 이러한 사람들이야말로 주의 뜻을 행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법에 순종하는 자들입니다.
    어떻게 하면 자아를 그리스도의 뜻에 굴복시킬 수 있을까요? 우리가 전적으로 굴복하기로 선택할 때, 주님께서 우리의 감정과 생각을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실 것입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립보서 2:5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마음을 우리에게 주실 때에만, 우리는 자신을 굴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마음을 억지로 변화시킬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기로 선택할 수는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당신께 간절한 마음으로 나오는 단 한명의 영혼도 거절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의에 주린 심령으로 그분께 나아가면, 그분께서는 분노와 짜증과 억울함과 미움이 있는 우리의 마음을 사랑과 동정과 인내와 자비가 풍부한 은혜로운 마음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분의 변화시키는 능력을 바라보면서, 그분께 나아 가십시오. 그분께서는 우리 모두에게 당신의 마음을 선물로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도 그리스도인 입니까? 기억하십시오! 가정에서 그리스도인이 아니면,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사실을 .... 

 

암을 정복하라!


어떻게 하면 암이 유발되는 경로를 차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암을 정복할 수 있을까? 조금 전문적인 이야기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다음과 같은 4가지 방법들은 암에 대하여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

1. 혈액의 순환을 증진시킴으로써, 세포들을 위한 산소 공급을 향상시킨다.
2. 천연 섬유질이 풍부한 식생활로 장내균상(intestinal flora)을 변화시킨다.
3. 고온의 물로 수치료(Hydrotheraphy)를 함으로써, 암세포의 성장과 암 바이러스의 번식을 억제한다.
4. 암에 대한 저항력을 증진시키며, 독소들에 대한 저항력을 향상시키기 위해서, 면역체를 자극, 증진시킨다.

어떻게 하면 위에서 언급한 4가지의 방법을 우리의 실생활에 적용할 수 있을까? 만일 아래와 같은 5가지 요소들이 우리의 실생활에서 실천될 경우, 우리 몸은 자연스럽게 허물어졌던 면역 시스템을 회복하게 되며, 회복된 면역 시스템은 암세포에 대항하여 강력한 전쟁을 치를 준비를 갖추게 된다.

1. 어떤 음식을 어떻게 먹어야 하나?

우리 몸의 세포는 우리가 날마다 섭취하는 음식물에 의해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생명력이 왕성한 신체를 유지하기를 원하는가? 그렇다면, 생명력이 있는 음식을 섭취하라. 무엇을 어떻게 먹는가에 따라서 우리 몸의 건강이 결정된다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a. 어떤 채소와 과일?
모든 종류의 과일과 채소들을 자유롭게 선택하여 섭취하라;
브루셀 스프라웃, 브로컬리, 컬리플라워, 비츠, 홍당무, 아스파라가스, 콜라비 등과 같은 양배추과에 속한 녹색의 채소들이 특히 유익하다. 과일은 진한 노란색 계통이 유익을 준다.

b. 암의 치료를 위한 식단?
첫 3달 동안에는 식사의 50~80%가 요리를 하지 않은 신선한 야채나 과일로 이루어져야 한다. 신선한 레몬이나 포도즙, 홍당무즙은 특별한 유익을 가져온다. 양배추류와 채소들, 잘 익은 토마도, 홍당무, 짙은 노란색이나 짙은 녹색의 채소들, 마늘 등은 항암물질을 함유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단, 한 끼의 식사에 야채와 과일을 함께 섞어서 섭취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으며, 단순한 종류로 구성된 식단이 이상적이다.

c. 항암제로 어떤 것을?
매 식사마다 마늘 1쪽을 먹는다. 마늘의 맛과 냄새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은 증기로 살짝 쪄서 먹어도 된다.

d. 유익하지만 지나쳐서는 안되는 것?
견과류와 씨앗은 유익하지만, 과량을 섭취하지 않는 것이 좋다. 약 반 숫가락 정도의 양이 적당하다.

e. 가장 이상적인 지방?
식용유, 마가린, 야채 쇼트닝을 포함한 각종 쇼트닝, 그리고 동물성 지방을 삼가해야 하며, 이러한 것들 대신에 올리브, 아보카도, 가공되지 않은 신선한 코코넛 등을 섭취할 수 있다.

f. 반드시 제거해야 할 것?
고기, 우유, 치즈, 계란, 버터, 요구르트와 같은 모든 종류의 동물성 식품을 식탁에서 제거해야 한다.

g. 인공보다는 자연 그대로.
정제된 곡식 대신에, 곡식의 표면이 깎이지 않은 현미나 통밀을 사용해야 하며, 이러한 것들로 만들어진 빵, 씨어리얼 등을 음식으로 선택하라. 설탕, 베이킹 소다, 베이킹 파우더 등이 함유된 식품을 삼가해야 한다. 단, 소금의 경우 소량으로 절제하는 것이 좋다.

h. 규제해야 할 것?
콩과식물을 일주일에 5번 이상 섭취하라. 그러나 덜익은 상태로 수확되는 필드 완두 (field pea), 청완두 (green pea)는 일주일에 1~2번으로 규제하라. 왜냐하면 이런 종류의 콩에는 페닐알라닌과 리진이 많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떤 학자들은 페닐알라닌과 리진과 같은 아미노산을 과량 섭취하면, 오히려 암을 성장시킬 수 있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콩류를 섭취할 경우에는 한 번의 식사에 한 종류를 소량 섭취하라. 암환자를 위한 식단을 만들 때에는, 위에서 언급한 두 가지 아미노산 즉, 페닐알라닌과 리진의 양을 규제하는 방향으로 식단을 꾸미는 것이 좋다.

i. 얼마나 익혀야 하나?
한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곡식과 콩 종류를 요리할 때에는 완전히 익혀야 한다(적어도 3시간 정도). 오래동안 가열하기 위해서 슬로우 쿠커(crock pot)를 사용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j. 설탕 대용품?
꿀, 당밀(molasses), 엿기름, 메이플 시럽, 털비나도(turbinado), 흰설탕, 흑설탕(brown sugar), 등을 사용하는 대신에, 음식의 맛을 맞추기 위해서 단맛이 들어 있는 과일을 사용하라. 말린 감, 대추, 말린 과일들을 적당하게 사용하면 음식의 맛을 조절할 수 있다.

k. 하루에 몇끼?
하루에 2~3번 식사를 할 수 있는데, 체중이 매우 많이 미달인 상태가 아니라면, 하루에 2번만 식사하는 것이 최선의 식사법이다. 결코 간식을 하지 말며, 식사와 식사 시간 사이에 어떠한 것도 맛보거나 먹지 말라. 식사는 항상 일정한 시간에 해야한다.

l. 자극성 식품?
다음과 같이 자극적이고, 유해하거나 습관성 성분이 함유된 식품을 삼가해야 한다; 식초, 발효시킨 식품, 몇몇 종류의 버섯, 화학 조미료(monosodium glutamate, 미원, 아지노모도 등), 후추가루, 매운 고추, 생강, 계피, 각종 화학 양념류 등.

m. 금식의 효용성?
일주일에 하루 정도를 금식하는 것을 통하여 유익을 얻을 수 있다. 간암일 경우 금식은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n. 얼마나 빨리, 얼마나 많이?
음식을 천천히 잘 씹어서 먹는 것은 우리가 상상하는 것 이상의 유익을 가져다 준다. 입안에서 죽이 될 때까지 씹어라.

o. 식사와 물?
식사 중에 스프나 음료수를 마시지 말 것. 물론 예외적인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야채즙이나 과일즙으로 식사를 대체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식사 중에 음료수를 마시지 말아야 한다. 커피, 차, 콜라, 쵸코렛으로 만든 음료수는 물론이고, 액체 상태의 약을 마시지 말 것.

p. 식사 시간의 간격?
식사를 끝마친 때부터 다음 식사를 시작하는 시간의 간격이 5시간 이상이 되어야 한다.

2. 어떤 물을 얼마나, 어떻게 마셔야 하는가?

물은 몸안의 불순물을 밖으로 청소해 내는 역할을 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충분한 물을 마셔야 한다. 가정 주부들이 소량의 물로서 설겆이를 제대로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 몸의 내부를 청소하는 데에도 충분한 물이 필요된다. 우리가 충분한 물을 마시지 않을 때, 우리 몸은 적당한 기능을 발휘할 수 없게 된다. 우리 몸에 수분이 부족할 경우, 우리 몸은 기능을 중단하는 대신에 기능을 변경함으로써 체내의 수분을 보존, 유지하려고 한다. 예를 들면, 체내에 수분이 부족할 경우, 우리 몸은 소화된 음식에서 나온 쓰레기를 저장하는 장소인 장(腸)으로부터 수분을 뽑아내어, 그것을 정화시켜서 필요한 곳으로 순환시킨다. 이럴 경우, 장의 배설물에 수분이 부족하게 되고 건조하게 되며, 그 결과로 변비 현상이 생겨서 배설물을 원할하게 배출할 수 없게 된다.

하루에 깨끗하고 순수한 물을 6~10컵 마셔야 하는데, 아침에 따뜻한 물을 두 잔 마시는 것은 건강에 대단히 유익하며, 일반적으로 물은 식사 1시간 전이나 후에 마시는 것이 좋으며 식사 중에는 마시지 말아야 한다. 식사 중에 물을 마시면 위장의 소화액이 수분에 의해서 묽어지게 되기 때문이다. 가장 좋은 음료수는 순수한 물(pure water)인 연수(soft water)인데, 증류수나 빗물이나 역삼투압에 의해서 여과된 물 등이 이에 속한다.

물은 몸의 외부를 씻어내는 역할도 한다. 피부는 체내의 쓰레기를 몸밖으로 버리는 가장 큰 기관이므로 항상 청결을 유지해야만 한다. 몸 안에 있는 수많은 불순물들이 피부를 통하여 나와서 내의를 더럽히게 된다. 이러한 체내의 배설물들이 피부나 의복에 그대로 남아있게 되면, 그것들은 다시 몸 안으로 재흡수될 수 있으며, 이러한 경우에 우리 몸은 다시 들어온 쓰레기들을 처리하기 위하여 불필요한 부담을 가지게 된다. 날마다 몸을 청결하게 씻고 옷을 갈아입는 일은 우리 몸이 갖게 되는 불필요한 부담을 막아주는 방어 역할을 한다. 암환자들의 경우, 수치료(水治療, Hyrdrothermia treatment)를 적절하게 적용함으로써 면역시스템에 활력을 줄 수도 있다.

3. 어떤 휴식이 가장 효과적인 치료제인가?

휴식은 여러가지 면에서 중요하다. 여기서 말하는 휴식은, 몸과 마음의 쉼을 의미한다. 휴식은 신체의 신경과 근육이 안정되고 이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휴식은 우리의 의지력을 정상적으로 회복할 수 있게 도와주기 때문에, 여러가지 유혹을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을 우리에게 가져다 준다.

많은 사람들은 휴식에 대한 올바른 개념을 가지고 있지 못하다. 우리가 취해야 할 휴식은 우리의 몸과 마음이 모두 쉬는 휴식이어야 한다. 무엇보다도 우리의 양심이 죄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를 얻어야 한다. 가족과 친지들과 이웃들과의 문제를 해결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양심에 어떠한 수치나 불편함이 없도록, 진정한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 용서를 간구하라. 하나님 안에서 몸과 마음이 취할 수 있는 완전한 휴식은 특별히 환자들에게 놀라운 치유의 결과를 가져다 준다. 가장 중요하고 효과적인 휴식은, 몸과 마음과 생애를 하나님께 맡김으로써 얻을 수 있는 쉼이다.

4. 참된 절제의 의미?

부절제한 사람은 결코 건강을 소유할 수 없다. 부절제는 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일어날 수 있다. 예를 들면, 식사, 수면, 운동, 일 등과 같은 분야에서의 절제는 건강의 유지와 회복을 위하여 매우 긴요하다. 참된 절제는 해로운 모든 것을 삼가하고, 건강에 유익한 것을 적당하게 사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어떤 사람들은 부절제 하는 자신의 습관을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자신을 관대하고 포용력이 많은 사람으로 착각하는 반면에, 엄격하게 절제하는 사람을 편협한 사람으로 취급한다. 그러나 참된 지혜는 참된 절제를 선택하도록 이끈다. 사람의 입맛과 식욕을 절제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제하기를 원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극복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실 것이다. 간식, 해로운 것들을 탐하는 습관(담배, 술, 마약), 빗나간 성욕, 욕구 불만 등을 극복하고 새로운 생활습관을 형성하는데에는 본인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린도전서 9:25.

5. 그대가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을 찾아라!

건강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건강 법칙을 따라서 생활 할 때에, 우리는 그분께서 허락하신 건강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도덕법인 십계명을 주셨으며, 육체적 건강과 마음의 평화를 위해서 건강 법칙을 주셨다. 우리가 온 마음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우리 몸처럼 사랑할 때, 우리는 그분의 법칙을 따르는 것이 된다.

잠언 17:22에 말씀하시기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broken sprit)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고 하셨다. 우리가 죄의 짐을 예수님의 발 아래에 내려 놓을 때, 우리는 몸과 마음을 회복시키는 완전한 평화를 소유할 수 있다. 모든 질병의 90%는 마음에서 시작된다는 현대 의학의 통계는 잠언의 말씀이 진리 임을 증명하고 있다. 즐거운 마음(순결한 마음)은 좋은 약과 같으며, 심령의 근심(죄책감, 악한 생각, 후회, 분노, 미움, 원한등)은 뼈를 마르게 만든다. 하나님께서 수 천년 전에 말씀하셨던 것을 인간의 과학은 요즈음에 이것을 말하기 시작하고 있다. 사람이 행복하고 즐거울 때에 뇌에서 생성되는 분비물은 건강을 회복시키는 일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반대로 인간의 마음이 죄책감, 미움, 증오심, 질투, 투기 등과 같은 부정적인 생각들을 품고 있을 때, 우리 몸에선 좋지 않은 홀몬이 분비된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의 마음에 어떤 것을 품고 생각하며 계획하는가에 따라서, 우리의 건강도 그것에 맞추어서 형성되어 간다. 만일 우리가 어떠한 환경과 조건 하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생각하기로 선택한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는 완전한 평화가 깃들 것이며, 마음과 몸과 영혼의 전체적인 건강이 회복될 것이다!

6. 치료를 가져오는 기도!

마지막으로 한 가지 빠뜨리지 말아야 할 사실은, 기도야말로 지금까지 언급한 천연치료 계획을 성공으로 이끌 수 있는 열쇠라는 것이다. 우리는 전능하신 분께 질병의 회복을 위해 간구 해야 한다. 그러나 비록 하나님께서 전능하다고 할지라도, 그분께서 항상 기적적으로 즉시 응답하실 것이라고 기대해서는 안된다. 이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많은 경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실수들을 통해서 또는 우리의 무지로 인하여 고통과 질병을 갖게 된다. 많은 경우에 있어서, 하나님께서는 먼저 우리가 과거에 무엇을 잘못했었는지를 보여 주시고, 그 다음에 질병의 회복을 위하여 우리가 그분과 연합하기를 기다리신다. 그러므로 먼저, 우리는 잘못된 습관들을 버리기로 결심하고 이러한 악습들을 이길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가 전능하신 분의 팔을 의지 할 때,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이길 수 있는 힘을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따라 순종하면서 전진할 때,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라 우리를 회복시켜 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우리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우리의 생각보다 무한히 높기 때문에 때때로 그분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모든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사실을 믿어야 한다(로마서 8:28). 우리가 이 말씀을 믿을 때, 우리는 소망과 기쁨 속에서 깊은 평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고, 사망의 두려움에 대해서도 승리할 수 있게 된다. 이러한 믿음은 암을 정복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매주 많이 나타나는 특징이다. 그대의 식생활을 개혁하고 암을 억제하고 극복하기 위해서, 그대의 환경을 고요하고 아름다운 시골 환경으로 바꾸어 보라. 그런 후에는 그대를 위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계획과 섭리를 믿는 신뢰심 속에서 그대보다 못한 이웃과 형제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봉사하라! 바로 이것이 회복을 위한 가장 강력한 치료제가 될 것이다.

서론 -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말씀 중에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 있는데 그것은 지난 여러 해 동안 많은 사람들이 이해하려고 분분하던 주제로서, 마태복음 24장 34절에 있는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는 구절이다.

    도대체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신 때부터 재림하실 때까지를 한 세대라고 볼 수 없지 않은가? 2000년 동안이나 살아온 사람들이 없지 않은가? 그렇다면 "이 세대"란 도대체 어떤 세대를 말하는 것일까?

    예수께서 당신께서 다시 오실 때의 사건들을 징조별로 분류해 말씀하신 것을 볼 수 있는데 마태복음 24장, 마가복음 13장, 누가복음 21장에 그 말씀이 잘 기록되어 있다. 마태복음 24장을 살펴 보기 전에 이 말씀을 말씀하시게 된 배경을 살펴보도록 하자. 마태복음 23장에서 예수께서는 유대 교회를 향해 탄식하고 계셨다. 그 교회는 하나님의 교회 즉, 그 당시 유일한 하나님의 교회였다. 그들은 메시야의 초림을 사모하고 있었으며, 계명을 지키고, 선지자를 가지고 있었고, 언약을 소유했으며, 성소 제도를 포함하여 진리의 모든 것을 전부 갖추고 있었지만 하나님의 아들의 임재를 알지 못하였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그에 대해 탄식하시면서 종교, 정치, 사회 등 모든 사회 전반에 걸쳐 "화있을 진저..."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암탉처럼 그들을 그의 날개 아래 모으려 했으나 그들이 거절했다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은 이미 그 당시 회당에서 모두 출교 당한 상태에 있었으면서도 그 하나님의 교회가 버림 받을 것이라는 사실은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유대 교회의 은혜의 시기가 곧 끝날 것이라는 사실을 상상조차 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현대 교회는 여기서 중요한 교훈을 배워야 한다.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계셨을 때, 제자들이 다가와 그분의 주의를 아름다운 성전으로 돌렸다. 예루살렘 성전은 흰 대리석으로 덮여 있었고, 성전 앞의 다섯 개 기둥은 흰 상아로 씌워 있었다. 또한 이 상아 위에는 포도나무가 조각되어 있어서 너무나 아름답게 보였다. 제자들은 말했다. "보십시오, 주님!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 밖에 없는 교회의 모습입니다. 탄식하실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모두들 그 웅장함에 다 감탄하고 있는데요..."
    마태복음 24:1, 2절을 읽어보자. "예수께서 나와서 가실 때에 제자들이 성전 건물들을 가리켜 보이려고 나아오니,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않고 다 무너뜨리우리라." 원래 전쟁할 때 문화재는 파괴하지 않는 법이다. 그래서 타이터스 장군이 예루살렘 성전을 파괴하지 말라고 당부했지만, 군인들이 실수로 불을 지르게 되었고, 또한 그들은 그 성전 안의 벽에 있는 금들을 뜯어 내고 또한 벽돌들 사이에 녹아 들어간 금들을 캐내기 위하여 '돌 하나도 돌 위에' 남기지 않고 다 들쳐내어 버린 것이다. 그렇게 하여 예수님의 예언이 그대로 성취되었다. 그러나 제자들에게 있어서 예루살렘의 멸망은 온 세상의 멸망과 같은 것이었기 때문에 이 성전의 멸망에 대한 예언을 들었을 때에 그들은 깜짝 놀랄 수 밖에 없었다.

    마24:3을 보면 "어느 때에 이런 일이 있겠사오며 또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라고 제자들은 물었다. 그때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 이런 일이 있어야 하되 끝은 아직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그 때에 많은 사람이 시험에 빠져 서로 잡아 주고 서로 미워하겠으며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이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 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그러므로 너희가 선지자 다니엘의 말한 바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읽는 자는 깨달을 진저) 그 때에 유대에 있는 자들은 산으로 도망할지어다."(마24: 4~14)

    제자들은 세상의 멸망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동일한 것으로 생각하였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멸망하게 내버려 두실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예루살렘이 멸망한다는 사실은 세상 끝이 되었다는 것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제자들의 질문이 우리에게 이중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지만 그들에게 있어서는 동일한 질문과 다름이 없었다. 그러므로 현 시대를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마태복음 24장을 읽을 때에 거꾸로 읽기가 쉽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실 때에 재림의 징조들을 그 당시 유대인들에게 먼저 적용시키시어 말씀하신 것인데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 말씀을 말세인 우리 시대에만 적용시킴으로써 오해를 빚기가 쉬운 것이다.

    그러면, 제자들의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의 초점이 누구인가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 물론 현대에 살고 있는 우리까지 감안해서 말씀하신 것은 사실이지만 그 당시 예수께서 말씀하신 포커스는 그 당시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우선이었다. 그 포커스가 우리 시대에까지 와서 우리에게도 재적용되는 것 뿐이지 실상 예수께서는 그 당시에 살고 있는 그 세대에게 먼저 적용시키어 말씀하신 것이다. 그리고 제자들이 마지막 때에는 어떠할 것이냐고 물었기 때문에 마지막 징조도 말씀하여 주신 것이다.

    그렇다면 마24:14은 어디에 중점을 두고 하시는 말씀일까? 지금인가 아니면 그 당시인가? 물론 그 당시이다! 그리고 또한 마지막 시대에도 재적용될 것이다.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는 말씀은 초대 교회의 사도들에게 하신 말씀이었다. 예루살렘의 멸망이 오기 전에 먼저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는 일이 먼저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마24:17~28은 제자들의 시대에 일어난 일들이었고 그렇기 때문에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렇게 보면 마 24:29~35 후반부는 현재 우리에게 하신 말씀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예수께서 이 말씀들을 하실 때 일차적으로 어느 시대에 적용을 시키셨는가를 문맥적으로 따져볼 때에 제자들의 세대에게 하신 말씀에 틀림이 없다. 한 세대를 약 40~50년으로 생각해 볼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AD 31년부터 예루살렘 성이 로마 군대에 멸망당한 해인 AD 70년 까지를 한 세대로 말씀하신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모든 징조들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러면 제자들이 살던 그 당시의 사건들을 살펴보기로 하자.

1. 거짓 그리스도의 미혹: AD 31~70년까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까지 많은 거짓 그리스도들이 나와 자기가 메시야라고 말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였음.
2. 난리와 전쟁의 소문들 : 로마의 황제인 시이저들을 암살하려는 음모, 로마가 유대에 쳐들어온다는 전쟁의 소문들과 각 나라들의 혁명과 전쟁에 대한 소문들이 자자 했었음.
3. 각종 온역들 : 온역의 뜻은 전염병( Disease without cure- 치료될 수 없는 병들을 말함)을 말하는데, 그 당시에도 온역들이 많이 있었다.
4. 지진들과 기근들 : AD 44년에 있었던 유대 지방의 큰 기근, 40년도의 크레테 섬의 지진, 50년도의 대 로마 지진, 60년도의 밤빌리아의 지진, 66년도의 브리기아의 지진.
5. 핍박과 순교 : 그 당시 그스도인들에게 큰 핍박이 있었으며 특별히 야고보와 스데반을 시작으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순교를 당하였다.

    예수께서는 이 모든 것이 그들의 세대에 일어날 것을 말씀하셨다. 예수를 믿은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은 성전이 멸망당할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므로 이것이 세상의 끝이 아니라 재난의 시작인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 당시에 평안을 예언하는 거짓 선지자들이 편만했다. 곧 예루살렘의 멸망이 닥쳐오고 있는데도 그들은 평안하고 안전하다는 설교들을 하였다. 성전은 아름다웠고 지도자들도 있었지만 유대 교회 안에 불법, 즉 죄악이 성하였고 그 결과로 사랑이 식었다.

    그런데 한 가지 중요한 징조에 대하여 이해하여야 하겠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그 당시 한 세대 안에 과연 천국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었었는가 하는 것이다. 그런데 놀라웁게도 골1:23에 보면 "천하 만민에게 이 복음이 전파된 바요"라는 말씀을 발견하게 된다. 이것은 약 AD 60년에 바울이 기록한 말씀이다. 복음이 그 당시에, 오순절 성령을 받은 사람들에 의하여 한 차례 온 세상에 이미 전파되었었다. 이것은 마지막 시대에도 적용되지만 그러나 일차적으로 사도 교회에 먼저 적용이 된 것이다.

    또 "멸망의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보거든" 도망하라고 하신 말씀도 그 당시에 이미 이루어 졌다. 군대가 둘러싸는 것을 보거든 즉시로 도망하라(눅 21:20)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게 순종했기 때문에 예루살렘 성이 멸망당할 때에 한 명도 죽지 않았다. AD 70년에 로마 군대가 일차로 쳐들어 왔다가 유대인들의 완강한 저지에 잠시 후퇴한 동안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었던 사람들은 다 산으로 도망하여 멸망을 피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 한 세대가 살아 있는 동안 이 예언들이 다 성취되었다. 그러면 마지막 시대, 여자의 남은 교회 시대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대에도 이 예언들이 다시 적용되고 또 성취될 것인가? 그렇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재림의 징조 가운데 가장 강력한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온 세상에 천국 복음이 다 전파되는 것이다. 그 때에야 끝이 온다고 말씀하셨다. 그제야 드디어 세상의 끝이 오게 되는 것이다. 마24장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세대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도 옛날 초대 교회 때처럼, 위로부터 오는 성령의 부어 주심을 받은 후에야 이 징조가 성취될 것이다. 복음을 속히 전하게 하기 위하여 집사 빌립을 순식간에 다른 곳으로 이동 시키신 것처럼, 베드로에게 천사를 통하여 어디에 가서 진리를 전해야 한다고 장소를 지시해 주신 것처럼, 주께서는 마지막 세대에도 하나님의 성령의 능력과 기적들을 통하여서 마지막 복음 사업을 신속하게 마치게 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천국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는 일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징조 중의 하나로 말씀하신 것이지 우리의 힘으로 성취해야 할 목표로 말씀하신 것이 아니다. 오늘날 매일 이 세상에 태어나는 신생아의 숫자만 해도 330,000명인 지금 천국 복음을 온 땅에 다 전파하는 일이란 인간적인 안목에서 볼 때 불가능한 것이다. 이것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한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복음을 전파하라고 하셨지만 이것은 늦은 비 성령을 받는 경험이 있어야 가능한 것이며, 성령을 받고 나아가 천국 복음 사업을 마치는 기적 같은 일이 다시 한 번 이 세상에 있게 될 것인데 바로 그 것이 재림의 가장 강력한 징조가 되는 것이다. 이 일은 초대 교회 시대에 한 번 있었고 우리 시대에 곧 다시 한 번 재현될 것이다. 어떤 의미에서 천국 복음은 벌써 온 세상에 전파되어 있다. 어디에 있던지 원하면 복음을 듣거나 볼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라고 하셨지 모든 사람들이 다 회개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시지는 않았지 않은가!

    마 24:29~34, "그 날 환란 후에 즉시 해가 어두워지며 달이 빛을 내지 아니하며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리라.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 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 무화과 나무의 비유를 배우라. 그 가지가 연하여 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을 아나니 이와 같이 너희도 이 모든 일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이루리라." 이러한 징조들이 이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마 24:4-28까지 하신 말씀은 그 말씀을 듣고 있던 그 세대가 지나가기 전에 다 성취되었다. 그리고 환란 이후에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신 사건들은 중세기 환란 직후에 살고 있던 그 한 세대 동안에 다 이루어졌던 사실을 우리는 미국의 역사를 통하여 알 수가 있다.

1260년간의 중세 암흑시대의 환난이 끝날 무렵에 리스본 대지진이 있었는데 그것은 미국 동북부에까지 그 여파가 미치는 강한 지진이었다. 그것을 시발점으로 1789년도에 미 동북부에서 해가 대낮에 갑자기 어두워 지는 현상이 나타났고 그날 밤에는 달이 핏빛처럼 변하는 놀라운 현상이 생겼다. 그리고 1833년도에는 예수께서 예언하신대로 별들이 하늘에서 떨어지는 진귀한 일이 있었는데, 기록상으로 역사상 가장 많은 유성들이 떨어지는 놀라운 사건이었다. 그 당시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미국 동북부에 살고 있었기에 그 곳에 징조를 보여 주신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재림의 징조는 전세계적인 것이어야 하는데 그렇게 국부적으로 일어난 조그만 일이 예언의 성취가 될 수 있단 말입니까?" 라고. 그렇다면 물어보자. 예수님의 초림이 대단한 일이었는가? 물론이다. 성경 예언상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그 중요한 사건을 목격하였는가? 또한 십자가의 사건은 우리 구원의 초점이 되는 중요한 예언의 성취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일이 온 세상이 보는 앞에서 진행되었는가? 아니다. 아주 소수의 사람들이 보았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아주 국부적인 사건이었다. 그러나 이 사건은 진리를 알려고 하는 사람들에게는 다 알려지게 된 일이었다. 그러므로 예언의 성취가 꼭 전세계적이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그러한 이유에서 해, 달, 별의 징조들이 그 당시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살고 있던 미국 동북부에서 일어난 것이었다.

    마24:29에 보면 해, 달, 별에 대한 예언 다음에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린다는 예언이 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음성에 의해서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는 일이 있을 것을 말하는데 바로 예수께서 오시기 전, 하늘에서 중보사업을 마치시고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실 때에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게 될 것을 말씀하신 것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선포하고 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3:10~14)

    "일곱째가 그 대접을 공기 가운데 쏟으매 큰 음성이 성전에서 보좌로부터 나서 가로되 되었다 하니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큰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없더라. 또 중수가 한 달란트나 되는 큰 우박이 하늘로부터 사람들에게 내리매 사람들이 그 박재로 인하여 하나님을 훼방하니 그 재앙이 심히 큼이러라." (계16:17~18; 20~21)

    로마군대가 성을 포위한 것은 곧 예루살렘 성이 멸망한다는 표징이었다. 이것은 로마 교황권의 세력이 말세에 하나님의 교회를 포위하는 것으로 상징할 수가 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24장 전반부의 예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의 세대인 약 40년 안에 다 이루어졌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도 마찬가지로 로마 군대가 예루살렘을 포위하는 징조가 이루어지는 때, 즉 로마 교황권이 하나님의 교회를 포위하는 세대에 세상의 멸망이 이르러 오게 되는 것이다. 지금 현대 종교 연합 운동을 통하여 개신교회가 다시 로마교회의 수중으로 돌아가고 있으며 특히 교황권의 박해에서 피난하여 도망해 옴으로 시작된 미국에 있는 기독교회가 다시 로마 교회와 밀접하게 연합하여 함께 일하고 있는 모습을 우리들이 현재 보고 있지 않는가!

    "또 보니 다른 천사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하는 자들 곧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계 14:6 ) 성경은 이 마지막 세대에 온 세상에 전할 천국 복음이 있다고 선포하고 있다. 그것은 영원한 복음이라고 명칭되었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영원히 변하지 않는 복음이라는 뜻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 가짜 복음들이 들어와 많은 혼돈을 일으키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우리는 원래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참된 복음을 세상에 전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다. 믿는 자를 순종케 만드는 능력의 복음, 믿는 자를 변화시키어 거룩하게 만드는 참된 복음을 전파하여야 한다. 이 일은 우리의 힘으로 불가능한 것이다. 오직 위로부터 임하시는 성령을 받아야 가능한 일이다. 옛날 초대 교회 당시에 있었던 오순절의 경험처럼 말이다. 많은 교회들 안에서 판을 치고 있는 거짓 성령 운동 같은 감정적인 경험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역사하시는 진짜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짧은 시간 동안에 복음 사업은 마치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진리의 빛을 받게 될 것이고 자기들의 운명을 결정 짓게 될 것이다. 그러한 일을 목격하는 그 마지막 세대, 바로 그 한 세대 안에 이 모든 예언들이 다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바로 그 세대(Generation)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세대에 살고 있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1부 -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의 출현


    마태복음 24장 34절에 있는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이 모든 일이 다 이루리라”는 구절은 과연 무슨 뜻인가? 유대인들은 세상 끝과 예루살렘의 멸망을 동일한 사건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세상 끝에 대하여 이러한 이해를 가지고 있던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말씀을 듣고 있던 제자들의 세대, 바로 그들의 세대 안에 말세의 징조들이 한번 다 이루어지면서 예루살렘이 멸망될 것이라는 예언을 하셨던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말세에도 한 세대 안에 그와 똑같은 징조들이 일어나면서 세상 끝이 올 것인데, 곧 예수께서 말씀하셨던 말세의 징조들이 일어나고 그 징조들을 눈으로 보는 그 사람들의 세대에 이 모든 일들이 다 이루어 지고 세상 끝이 오리라는 말이다.

    그 당시에 말세의 징조로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거짓 그리스도가 일어나 사람들을 미혹했고, 난리와 전쟁의 소문들이 있었고, 온역들이 있었고 지진들과 기근들, 그리고 핍박이 있었다. 그리고 그 징조들이 일어났던 그 세대안에 예수님의 말씀대로 모든 것이 다 이루어졌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 세상 끝의 징조들이, 그 당시에 일어났던 말세의 징조들이 지금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가? 그리고 그것들이 우리에게 말세가 가까왔다고 말해주고 있는가? 우리의 시대인 지금 현재, 어떤 말세의 징조들이 일어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리고 그 징조들이 정말 이 시대 안으로 다 이루어지며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깝다고 말해주고 있는지 살펴보자. -편집실-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나는 그리스도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케 하리라” 마태복음 24: 4~5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마태복음 24:11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마태복음 24:24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때에 사단이 기적을 이용하여 사람들을 미혹할 것을 미리 보시고, 이러한 일들이 말세의 한 징조로서 나타날 것을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24~27).

    요한계시록 13:13절에도 다음과 같이 예언되었다: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요한계시록 13:12,13).

거짓 가르침들의 나타남

    요즘같이 거짓 가르침이 많은 때도 없었던 것 같다. 그런 거짓 가르침들 중 하나인 그리스도의 비밀 강림설을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들이 믿고 있다. 그리스도의 비밀 강림설은 거짓 선지자들과 거짓 그리스도가 출현할 수 있는 문을 열어주고 있다. 그들은 마태복음 24:41절에서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고 한 말씀을 인용하여 의인들의 휴거가 아무도 몰래 비밀리에 일어난다고 믿고 있다. 그러나 성경은 이 문제에 대하여 명백히 설명하고 있다. 만약 이러한 가르침을 모든 사람들이 믿는다면 결과적으로 거짓 선지자와 적그리스도의 출현이 사람들 앞에 자연스럽게 보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 1:7은 우리 모두가 우리의 눈으로 직접 그의 오심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그의 오심은 번개가 하늘에서 번쩍임같이 모든 사람이 볼 수 있는 것이며, 몰래 오시는 것이 아니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마태복음 24:27). 재림은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사건이다. 죽었던 의인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던 의인들이 그들과 함께 하늘로 들어올려짐을 받는 것은 비밀리에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데살로니가전서 4:16,17).

    “버려둠을 당한 자”라는 말씀의 뜻은 살아있는 채 버려둠을 당한다는 것이 아니다. 누가복음 17:26~37은 버려둠을 당한다는 말씀의 뜻이 무엇인지를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노아의 때에도 지금처럼 두 종류의 사람들이 있었다. 어떤 이들은 방주에 들어가 구원함을 입고 살았으며, 어떤 이들은 홍수가 나서 다 멸망당하였다. 의인들은 살았지만, 버려둠을 당했던 악인들은 의인들이 구원받은 그 때에 홍수로 다 멸망당하였다. 롯의 때에도(28절부터) 그러하였다. 한 부류의 사람들은 소돔에서 빠져 나와서 구원을 받았지만, 나머지는 모두 그 성과 함께 멸망당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26절)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34)는 말씀에서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는 뜻은 바로 노아의 때와, 롯의 때처럼 멸망 받을 것이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성경은 한번도 버림받은 악인들이 구원받을 수 있는 또 다른 기회를 얻을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았다. 버림을 받는다는 것은 바로 죽음을 의미했다.

    누가복음 17:37절에서 “주여 어디오니이까”라고 버려둠을 당할 곳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그리스도께서는 “주검 있는 곳에 독수리가 모이느니라”고 하셨다. 즉 버려둠을 당했다는 의미를 죽는 것으로 설명하였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비밀리에 오실 것이라는 가르침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가를 깨달을 수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비밀리에 오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다가, 여기 저기서 사단과 그의 악한 천사들이 그리스도를 모방하여 기적들을 행하고,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고, 병든 자들을 고친다면 그런 거짓된 가르침을 믿는 사람들은 사단의 속임수에 다 넘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벌써 우리 주위에 이상한 기적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으며, 시간이 갈 수록 이러한 일들은 더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들을 속일 것이다. 이것이 말세의 한 징조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오시는 장면에 대한 미혹 뿐만 아니라, 구원에 대한 가르침 또한 심하게 왜곡되어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하여 사람들이 올바로 준비되지 못하고 있다. 사단은 주로 사람의 게으르고 죗된 본성에 만족과 즐거움을 주는 가르침들을 교회 안에 뿌려 놓는데 성공하였다. 예를 들면, “믿기만 하면 순종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식의 거짓 구원론, 사람들이 어느 정도 죗된 삶을 살아도 구원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제시해 주는 “부끄러운 구원과 영광스런 구원론” 등의 가르침들은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에 잘못된 안전감을 심어주는 위험한 가르침들이다. 이러한 가르침들 때문에 가장 깨어서 경성해야 할 마지막 시대의 교인들이 가장 깊은 잠을 자게 되었다. 이러한 모습이야말로 교회 안에 존재하는 가장 분명한 말세의 징조라고 할 수 있겠다.

2부 - 난리와 전쟁의 소문들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듣겠으나 너희는 삼가 두려워 말라...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마태복음 24:6~7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의 성취 조건들 중에 가장 현저한 성취중의 하나라고 볼 수 있는 ‘난리 소문’과 민족과 나라간의 전쟁은 이즈음 더욱 빈번히 일어나는 사건으로 과거 어느 시대보다 ‘세상 끝’이 가까왔음을 말해주고 있는 사건들 중의 하나이다. 만일 우리가 바쁜 일상에서 눈을 떠서 지금 세계 각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간의 분쟁과 전쟁의 소식에 눈을 돌린다면 손가락으로 일일이 꼽을 수 없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난리들과 난리의 소문 때문에 우리의 마음은 놀라움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민족간의 분쟁

    우리는 이 세상을 살면서 자기 자신에게 직접적인 영향이 미치지 않는 일은 별로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거나 관심을 돌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누구든지 성경의 예언의 성취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이라면, 바로 우리 곁에서 일어나지는 않을 지라도, 세계 어디선가 지금도 계속 충돌되어 일어나고 있는 민족간의 분쟁의 빈번도와 그 양상을 주시하면서 지금이야말로 마태복음 24장에 언급되어 있는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리라’는 예언의 성취가 눈 앞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 민족간의 분쟁이 일어나고 있을까? 지면이 할애하는 대로 간략하게 줄여 살펴보기로 하자.

* 아시아 지역

1. 네팔 내분
분쟁지역; 아시아 원인: 정쟁, 이념 (모택동주의)
분쟁상황: 왕정과 공산주의지들간의 분쟁.

2. 미얀마 분쟁
분쟁지역: 아시아 원인: 민족/분리/정쟁
분쟁 상황 : 미얀마의 군사정권과 반군간의 분쟁

3. 필리핀 내전
분쟁지역: 아시아-동남아 원인: 종교/ 이념/ 민족/ 분리
분쟁 상황: 필리핀 정부와 반군세력들, 즉 공산계 반군인 신인민군(NPA)과 회교도 분리 운동 집단인 모로 민 족해방전선(MNLF), 모로 이슬람해방전선(MILF), 이 슬람 근본주의 아부 사야프(Abu Sayyaf)들 사이의 분 쟁

4. 스리랑카 내전
분쟁지역: 아시아-서남아
원인: 영토/종교/민족/분리/식민유산
분쟁상황: 스리랑카 정부의 차별 정책에 반발하여 일어난 민족간의 분쟁 (다수 불교계 싱할라족(74%)과 소수 힌두계 타밀족(18%)이 정부로 부터 분리 독립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5. 카슈미르 분쟁
분쟁지역: 아시아 원인: 영토/종교/민족/분리/개입/패권추구/식민유산
분쟁 상황: 종교적 갈등으로 인한 대표적인 분쟁 (인도와 파키스탄간의 분쟁과 카슈미르내 분리운동이 상호 연 계됨)

6. 러시아-체첸 분쟁
분쟁 지역: 중앙 아시아 원인: 분리/종교
분쟁 상황: 체첸이 소련 연방 해체기에 러시아 연방으로 부터 분리 독립을 선포하자, 체첸의 탈 러시아를 묵과 할 수 없는 러시아연방이 개입하면서 비롯된 분쟁이다.

* 중동 지역

7. 이스라엘-시리아 분쟁
분쟁 지역: 중동 원인: 민족/영토/식민유산
분쟁 상황:이스라엘과 시리아 사이에 계속 되고있는 영 토로 인한 분쟁

8. 팔레스타인 분쟁
분쟁 지역: 중동 원인: 민족/영토/종교/분리/식민유산
분쟁상황 : 유태인들이 팔레스타인지역에 이스라엘 국가 를 수립하면서 비롯된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의 분쟁

*유럽

9. 마케도니아 내분
분쟁 지역: 유럽
원인: 민족/탈냉전/정쟁
분쟁 상황 : 마케도니아 정부의 차별화 정책에 대한 알바 니아계의 반발로 인한 분쟁

* 미주 지역

10. 콜롬비아 내전
분쟁 지역: 미주-남미 원인: 정쟁/이념
분쟁 상황: 우익을 표방한 정부 및 극우 단체와 이에 대항 하는 좌익 게릴라 단체간의 내전

*아프리카

11. 수단 내전
분쟁 지역: 북아프리카
원인: 민족/종교/정쟁/분리/식민유산/이념
분쟁 상황: 남부 지역에 대한 차별과 소외로 인한 남부 세 력(기독교계)과 정부와의 분쟁

12. 르완다 내전
분쟁지역: 아프리카 원인: 민족/정쟁/식민유산
분쟁 상황: 소수파 지배층인 투치족과 다수파 피지배계층 인 후투족간의 정권 쟁탈을 둘러싼 갈등

13. 우간다 분쟁
분쟁 지역: 아프리카 원인: 민족/정쟁
분쟁 상황: 권력쟁취를 둘러싸고 악화된 부족간의 정쟁

14. 앙골라 분쟁
분쟁 지역: 흑아프리카 원인: 이념/정쟁
분쟁 상황: 현 앙골라 정부와 반 정부 앙골라 민족동맹 (UNITA)간의 이념 대결에서 시작된 분쟁

15. 소말리아 내전
분쟁지역: 흑아프리카 원인: 정쟁/민족/종교/식민유산
분쟁 상황: 통일 소말리아회의(USC)가 1991년 쿠테타에 성공한 후, 정권 쟁탈을 위해 3대 무장 군벌인 아이디 드, 모하메드( Mahdi파), 아토 등이 주축이 되어 시작 된 내전

이 외에도 아시아 지역의 인도네시아 분쟁, 방글라데시 내분, 인도 분리운동, 유럽지역의 북 아일랜드 분리운동 내전, 마게도니아 내분, 코소보 독립 분쟁, 아프리카 지역의 부룬디 내전(우간다, 탄자니아, 부룬디간의내전), 시에라 레온 내전, 라이베리아 내전, 나이지리아 내전, 챠드 분쟁, 알제리 내분, 콩고 분쟁, 케냐 분쟁, 중동 지역의 이란 내분, 터키의 크루드족 분쟁, 레바논 내전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이 수많은 민족간의 분쟁들이 현재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다.

 

나라간의 전쟁

1. 미국-아프간전쟁
지역: 서남 아시아
원인: 이념/종교(반미 이슬람 원리주의자의 학살 테러 도발에 대한 응징보복)
전쟁 상황 : 2001년 9월 11일 오사마 빈 라덴의 국제 테러 조직(알카에다)이 미국 본토에서 대량 학살 테러를 감행한 데 대해 미국이 자위권 발동 차원에서 빈 라 덴 비호세력인 아프가니스탄 탈레반 정권에 대해 보 복 공격으로 대응한 신종 국제 무력전쟁

2. 미국, 영국-이라크 전쟁 (걸프분쟁)
지역: 중동
원인: 영토/개입/패권 추구
전쟁 상황: 이라크와 미 영간의 분쟁은 걸프전쟁 이후 사 담 후세인 정권과의 지속적인 갈등으로, 특히 후세인 이라크 정권이 이라크내 대량 살상무기 제거를 위한 UN 무기사찰단 활동을 방해하면서 악화된 전쟁

3. 이라크 전쟁(‘충격과 공포’)
지역: 중동
전쟁 상황: 2003년 3.20일~4,17일까지 치루어진 미국과 이 락간의 전쟁. 이라크가 ▲대량살상무기를 개발하며 ▲그 무기를 테러집단에 넘길 수 있으며 ▲테러집단 을 도와 다시 9.11 테러 같은 일이 재발할 수 있게 한 다는 이유에서 미국이 이라크와 벌인 전쟁.

 

전쟁의 소문

요즘처럼 전쟁의 소문이 심심찮게 나도는 때가 없었던 것 같다. 어떤 전쟁의 소문들이 흘러나오고 있는지 주의를 기울여 보도록 하자.

소문 1. 북한의 핵 문제
북한이 제네바 협정을 이행하지 않은 채, 플루토늄을 이용해 핵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으므로 미국이 북핵 문제 해결을 시도하는 과정에 더욱 심각한 위험이 제기될 수도 있다는 전망이다. 영국의 국제전략문제연구소(IISS)는 미국과 우방국들이 북한의 핵무기 개발 시도에 대한 공동 대책을 마련하는데 실패함으로써 아시아에 최악의 안보위기가 초래되고 있다고 2003년 5월 13일 밝혔다.
    보고서는 이어 “그 결과는 플루토늄이나 핵 무기 또는 핵 개발 기술을 테러 집단이나 불량국가에 수출할 준비를 마쳤을지도 모르는, 예측이 불가능한 매우 위험한 국면을 맞게 되는것”이라고 말했다. 보고서는 “미국은 북한이 핵 개발을 포기하고 핵 사찰을 받아들이는 조건으로 훨씬 더 많은 경제적 원조를 제공하겠다는 제의를 할 수도 있을것”이지만 “문제는 북한의 의도가 불명확하다는 점”이라고 시사했다. 이로 인하여 미국의 강경파들은 북한의 핵 문제는 이라크보다 오히려 시급한 문제이므로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한 봉쇄나 선제 공격을 조속한 시일내에 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 문제는 우리 한국인들에게 참으로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북한의 핵 문제는 우리 민족에게 뿐만 아니라 아시아와 내지는 전 세계에 큰 영향을 미칠 뜨거운 이슈로 부상하고 있다.

소문 2. 이란 문제
이란의 핵 개발 의혹을 둘러싸고 미국과 이란의 대립이 심화되어 가고 있다. 이라크에 신 정부를 구성하는 도중에 있는 미국은 이라크에 대한 이란의 영향력에 제재를 가하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에 이란을 다음 공격 목표로 삼을 수 있다는 설도 나와 있다.

소문 3. 시리아 문제
이라크 전쟁 때 미국을 도운 나라들은 일등 공신으로 올라선 반면 미국에 대한 지원을 거부했던 나라들 중에 하나인 시리아는 암암리에, 이란과 함께 이라크 다음의 공격 대상으로 알려지고 있다. 최근에 미국이 해체한 이라크의 바트당은 아랍권의 우의와 단결을 목표로 만들어졌던 당인데 시리아에서 창설되었다. 그뿐 아니라 시리아는 테러 지원국으로 지명됨으로 인해 미국의 미움을 받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에 고개를 숙인 시리아는 요즈음 그 공격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는 실정이다.

소문 4. 테러 문제
요즈음 신문 지상을 자주 장식하는 기사중에 하나는 테러에 대한 기사이다. 테러는 각 나라를 막론하고 일어나고 있는데, 얼마전 사우디 아라비아에서 저질러진 알 카에다의 자살폭탄 테러로 인해 많은 인명피해가 있자, 미국의 부쉬 대통령은 ‘테러리스트를 비호하고 지원하는 세력은 끝까지 찾아내어 반드시 응징하겠다’ 고 밝힌 바 있다. 또 딕 체니 부통령은 이번 사건은 향후 테러와의 전쟁의 방향을 예고한 것’ 이라고 말했다. 테러는 끝없는 전쟁을 낳게 하는 또 다른, 위험스런 전쟁의 소문중의 하나이다. 만약 알케에다 같은 테러 조직들의 손에 WMD(대량 학살 무기) 같은 폭탄들이 입수된다면 그리고 그러한 것들이 미국의 어느 대 도시 한 가운데 사용된다면 그 결과는 감히 상상하기가 어렵다. 이 테러 분자들이 일으키는 테러 전쟁이야 말로 이 세상 전쟁 역사에 있어서 과거에 보기 드물었던 새로운 도전으로 부상되고 있다.

3부 - 처처에...온역이 있겠고


“처처에 큰 지진과 기근과 온역이 있겠고...” 누가복음 21: 11

    온역 즉, 전염병은 세상 끝의 징조들 중에 가장 의미심장한 것 중에 하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수께서 ‘온역’이라고 말씀하실 때 예언의 안목으로 혹시, 지금 우리 시대를 내다보시지는 않으셨을까? 우리가 잘 알다시피 얼마전 괴질 ‘사스’ (sars: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 가 중국을 기점으로 아시아와 서방 세계에 빠른 속도로 번져 세계의 주민들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 넣었었다. 그러나 그렇게 공포를 주던 괴질도 날씨가 따듯해지자 기세가 꺾여 W.H.O 에서는 이제 사스가 퇴조되었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런데 이것은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학자들이 기후가 따듯해지고 겨울이 지나갔기 때문에 ‘사스’가 수그러들었지만, 다시 겨울이 오고 날씨가 추워지면 그 ‘사스’균이 어떻게 변형된 새로운 균이 되어 우리 앞에 나타날지 모르기 때문에, 만일 그렇게 되면 그때는 더 심각한 사태를 초래할 수 있으므로 더욱 우려된다고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사스’란 과연 어떤 질병이었기에 온 세계가 그 앞에서 그렇게 떨었는가? 그리고 얼마나 신속하게, 또 얼마나 광범위하게 그 영향을 미쳤는가? ‘사스’에 대해 알아보기로 하자.


전 세계를 공포로 몰아 넣었던 괴질 ‘사스’

‘사스의 확산을 막아라!’
“멈추시요! 이 병동에 한번 발을 들여놓았던 사람은 누구든지 다시 나갈 수 없소!”
갑자기 들이 닥친 일단의 경찰과 군인들이 병원 입구에서 소리쳤다. 순간 병원 문을 통해 밖으로 나가려던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며 군인들과 함께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난데없는 비상 명령에 격리된 사람들은 병원 대문의 철장을 부여잡은 채 웅성거리며 놀란 눈동자로 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들의 입에는 저마다 하얀 마스크가 씌워 있었다. 그러나 공포의 진정한 싸인은 침묵이었다. 북경의 거리에는, 흔히 보던 바쁜 군중들과 꽉 찬 버스들, 그와 함께 뒤엉켜 이어지던 긴 자전거의 행렬은 간 곳이 없고 식당과 쇼핑쎈타의 문들과 유리창은 굵은 체인의 셔터가 내려진 채 정적만이 감돌고 있었다. - 이것은 얼마전 사스가 휩쓸고간 중국, 북경의 한 시민의 눈에 들어온 거리의 모습이었다.

괴질 사스(sars)란 무엇인가?

세계보건기구(WHO)에서는 얼마전 중국 및 동남아에서 발생해 유럽, 북미 등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던 급성 호흡기 계통의 ‘괴질’을 ‘중증 급성 호흡기 증후군(SARS; Severe Acute Respiratory Syndrome)’이라고 공식 명명하고 전세계 의료진 및 정부에 비상 경계령을 내렸었다. 이와 함께 미국 질병통제국(CDC)에서도 공식적인 경계령을 발동했었다.

(1) 사스의 증상
1. 갑작스럽게 시작되는 38도 이상의 고열; 38도 이상의 고열에 오한이 오면서 마른 기침이 나온다.
2. 기침과 함께 호흡 곤란등의 증상이 나타남; 환자의 10~20%에게서 인공호흡기를 사용할 정도로 호흡곤란 증세도 나타난다. 심할 경우 폐렴이 진행되면서 사망할 수도 있다.
3. 호흡기 증상 이외에도 두통 근육통 식욕부진 피로감 발진 설사 등이 발생할 수 있다.

(2) 사스의 원인균
* 일반감기 바이러스 가운데 하나인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종- 즉, 유전적으로 변이를 일으킨 제4의 코로나바이러스( 미국 CDC- 국립질병통제예방센터의 보고)
* 줄리 거버딩 CDC 국장은 기자회견에서 괴질 환자들의 조직에서 코로나바이러스와 같은 형태의 병원균이 검출되었다고 밝혔다.

(3) 사스의 잠복기: 2~7일(최대 14일)

(4) 사스의 치사율: 15%~20%

(5) 사스 예방 및 치료법
* 예방 백신이나 뚜렷한 치료법은 아직 없다.
* 문제는 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계속 변이를 일으키므로 그 때마다 그 바이러스에 해당하는 치료제가 있어야 하므로 치료에 상당한 어려움이 예고됨.
* 효과적인 예방법은 각 개인의 면역력과 저항력을 기르는 길 밖에 없다.
* 호흡기를 통해 감염되는 것으로 추정되는 만큼 의심스러운 환자와 접촉하지 않는 것이 현명하다.

(6) 전염 경로
* 공기(호흡기 감염)
; 환자가 재채기나 기침을 할 때 나오는 작은 침방울들이 공기에 섞여 이에 의해 전염될 가능성이 크며 전염성이 매우 높은 것으로 보인다.

* 배설물도 주된 감염 경로로 밝혀짐. (5월 5일 WHO Update)
; 대량의 2차 전염을 막기 위하여 병원이나 환자가 있는 아파트 등에서는 인체 배설물들에 의한 공기 전파를 매우 조심하여야 한다. 사스 바이러스는 인체 밖으로 나오는 경우 3시간 정도 살 수 있다고 처음에 알려졌지만 최대 4일까지 살 수 있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 배설물에 있는 변형 코로나 바이러스는 상온에서 적어도 1-2일 정도 안정하며, 설사 환자들에서 나온 변기 안에 있는 경우 pH가 높기 때문에 더욱 안정하여 최대 4일까지 바이러스가 살 수 있다.

괴질 사스를 해부한다

(1) 최초의 사스 환자
2월1일 광동성의 한 어류 도매상인이 비정형 급성 폐렴으로 병원에 입원하였다. 첫 사스 환자로, 흉부 X선상에 비정형적인 폐렴 증상이 있었던 그는 호흡 곤란으로 죽기 직전이었고 그를 응급 처리한 의사를 포함한 여러명의 병원 의료진을 감염시켰다. 기적적으로 그는 치료되었지만 같은 병원의 호흡기 질환의 전문의사인 64세의 Liu Jianglun교수를 감염시켰다. 그러나 그 교수는 본인도 모르게 사스에 감염된 채 친척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하여 홍콩을 방문하였고 2월 16일 메트로폴 호텔에 투숙하였다. 그는 그 곳에서 그 호텔에 투숙한, 여러 나라에서 온 사람들에게 사스를 전염시키고 죽고 말았다. 캐나다, 월남 등의 최초의 사스 환자는 모두 그 호텔에 투숙한 사람이었다. 그 호텔이 사스를 전 세계로 전염시킨 사스의 실질적인 근원지가 된 셈이다.

(2) 대량 전염환자(super spreader)
* 대량 전염환자는 대량의 바이러스를 생산, 전파하므로 매우 위험하다. 싱가폴에서는 1명의 여자 승무원이 100명에게 전염시켰고, 북경에서는 1명의 악성 환자가 70명의 의료진을 감염시켰다. 홍콩의 아모이 가든 아파트에서는 1명의 환자가 321명의 아파트 주민을 감염시켰다.
* 홍콩 아모이 가든 아파트의 대량 전염환자는 33세의 남자로 밝혀졌는데, 그는 홍콩 Prince of Wales 병원의 신장병 환자였으며, 병원에서 사스에 감염되었다. 그는 3월14일 사스 증상을 보였고, 특이하게 설사 증상도 있었으며 3월14일과 19일 형이 사는 아모이 가든 아파트 E동에 방문하여 화장실을 사용하였다. 형과 형수 그리고 두 명의 간호원이 그로부터 감염되었으며, 아파트 주민 320명 이상이 감염되었다.
* 홍콩 보건 당국은 화장실의 결함이 있는 U자 트랩과 배기 팬의 증폭 효과, 균열이 간 하수도 배기 파이프, 화장실 창문이 열려 있는 곳, 우물에서의 공기 역학적인 효과 등에 의하여 사스가 전파된 것으로 믿고 있다.
초기에는 아모이 가든 아파트 E동의 비교적 적은 숫자의 거주자들이 공기에 의하여 옮겨지는 바이러스에 의하여 감염되었고, 나머지 동의 감염자들은 감염된 사람과의 직접 접촉이나 엘리베이터, 계단 등의 공동 시설물에서 감염된 것으로 보고 있다.

(3) 사스의 진원지 중국의 사스 일지
* 이렇게 살인적인 감염 확산의 힘을 가진 사스의 진원지는 중국 어디였을까? 그리고 이 병이 최초로 보고된 것은 언제였을까? 그 사스의 경로를 해부한다.

* 사스의 경로 일지
2002년 11월 16일: 이상한 질병이 중국 남쪽 광동성을 휩쓸다.
2003년 2월 초: 중국 같은 지역에서 5명 사망, 300명 감염.
2003년 2월 21일: 중국에서 온 64세의 의사가 홍콩에 이 질병을 퍼뜨림(3월 4일 사망)
2003년 2월 26일: 처음으로 홍콩에서 사스라고 보고됨. 이 사스환자를 치료하던 의료팀들이 환자로부터 감염됨.
2003년 3월 12일: W.H.O 에서 전 세계 사스 비상령 내림.
2003년 4월 2일: W.H.O 에서 홍콩과 광동지역 여행 주의보 내림. 홍콩에 격리 수용소 설치됨.
2003년 4월 8일: 중국 당국의 거짓 보고-사스 통제 및 무발 병률 주장-가 제기됨.
2003년 4월 20일: 중국 의료장관과 북경시장 해고당함.
북경에 사스에 감염된 환자 339명이 있다고 발표.
2003년 4월23일: 홍콩에서 1,458명의 사스 환자중 105명 사망 집계됨.
2003년 4월 24일: (W.H.O 발표) 중국 사스 감염자 수; 2,422명 사망; 125명 2003년 4월 25일: 북경대 인민 병원(의료진 3,000명 거주)봉쇄. 북경의 모든 주요 건물들, 학교, 도서관, 시내 4,000여개의 건설 현장, 백화점 봉쇄등 사스 바이러스가 침투한 시내 모든 지역과 건물들 완전히 폐쇄.
2003년 5월 7일: * 중국 난징 주민 10,000명 격리. (사스 확산 방지 일환)

(4) 카나다의 사스 현황
* 전염 경로 ; 캐나다의 경우 대량 전염환자는 40대의 Tse Chi Kwai라는 중국계 캐나다인이었다. 그는 홍콩을 방문한 가족으로부터 사스가 전염되어 토론토에 있는 스카보로 그레이스 병원의 의료진을 포함 총 138명을 감염시켰고, 20명을 사망하게 하였다. 그는 78세 된 어머니로부터 전염되었는데 어머니는 홍콩을 여행하였고 사스 최초 대량 전염원인 홍콩의 Metropole Hotel에 2월 17일 투숙하였다. 그의 어머니는 집에서 죽었기 때문에 대량 2차 감염은 시키지 않고 가족인 아들에게만 ‘사스’를 옮겼으나 그의 아들이 ‘사스 대량 전염자’가 되어 병원에 있던 환자나 의료진을 감염시켰으며, 온 캐나다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은 후 그 역시 사망하고 말았다. 간호원 한명은 필리핀을 방문하여 필리핀도 사스에 감염시켰기 때문에 WHO는 캐나다를 여행 위험 국가로 분류하게 되었다.
* 캐나다에서 유의하여 볼 사실은 이것인데 병원에서 환자 옆에 있은 사람은 병에 걸리지 않았지만 복도 건너편에 있었던 사람은 병에 걸렸다는 점이다. 당국은 대량 2차 감염이 일어난 홍콩 아모이 가든 아파트와 마찬가지로 화장실이 병균 전파에 큰 역할을 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 홍콩의 아모이 가든 아파트와 캐나다의 경우를 보아 사스 대량전염환자는 신장에 이상이 있을 것으로 추측된다. 그 이유는 다량의 변형 코로나 바이러스가 화장실에서 검출되었기 때문이다.

(5) 대만의 사스 현황
* 전염 경로(5월3일자 WHO 46 Update)
; 첫 발병은 3월26일 홍콩 아모이 가든에 살았던 한 대만인에 의하여 시작되었다. 그는 사스에 감염되어 대만을 방문하였고, 기차 편으로 대만 타이충에서 열리던 청명 축제에 참석하러 가면서 동행한 남자의 형과 기차에 탔던 다른 한 승객도 감염시켰다. 그 남자의 형은 사망하여 대만 최초의 사스 희생자로 기록되었으며, 4월 26일까지 27명의 추정 환자가 발생하였다. 병원 두 곳에서 의료진이 감염되었으며, 4월 마지막주 까지 환자 수가 계속 증가되었다. 대만 당국은 4월28일부터 중국, 홍콩, 싱카포르, 마카오, 토론토에서 오는 모든 여행객에게 14일간 강제 격리 조치를 시행하는 극단의 조치를 취했다.
* 주민 10,000명이상 격리 조치.

(6) 각 나라별 사스 통계
* 중국 감염 환자; 5,163명 사망; 271명
* 홍콩 감염 환자; 1,703명 사망; 234명
* 대만 감염 환자; 264명 사망; 34명
* 싱가폴 감염 환자; 205명 사망; 28명
* 카나다 감염 환자;149명 사망; 24명
* 베트남 사망; 5명
* 말레이지아, 필리핀, 태국 사망; 각 각 2명씩
*전 세계 감염자 ; 7,600명 사망 ; 602명
( 2002년 5월 15일 홍콩,베이징 AP, AFP 연합 뉴스 통계)

(7) 사스의 후유증과 심각성
* 중국, 중문의대 선쭈야오 교수는 ‘사스’를 앓다가 퇴원한 환자의 5~10%가 폐기능이 손상되었으며 사스를 앓고난 많은 환자들중에 기억력이 감퇴되고 달리기를 못하는 현상이 나타났다고 말했다.
* 그러나 무엇보다 가장 심각한 후유증은 중국을 위시하여 많은 나라에 사스로 인해 한동안 심각한 경제적 마비상태가 초래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동남 아시아권 나라들의 항공과 관광산업에 막대한 손해와 지장이 초래되었으며 아직도 그 후유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8) ‘온역’편을 마치면서
이제는 기후가 따듯해져서인지 다행히 사스가 퇴조 되었고 더 이상 사망자나 감염자가 생기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 아직 안심할 수 는 없는데, 그 이유는 그 무서운 사스 바이러스가 다음 겨울에는 또 다른 형태의 변형된 바이러스, 곧 더 퇴치하기 어려운 형태의 균으로 다가올 때는 어떻게 할것인가 하는 문제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자연 치유력을 거스르는 항생제의 남용으로 내성이 생긴, 이 땅의 바이러스균의 반란일지도 모른다고 혹자는 말하고 있다. 
지금 세계는 한 울타리 안에 있다. 그러므로 다시 사스가 온다면, 아직 사스를 치료하거나 예방할 수 있는 백신이 발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그리고 이번의 경우를 볼때 한 줌의 적은 바이러스가 세계의 광대한 지역을 얼마나 위협했는가를 알기 때문에 사람들은 미래에 대하여 안심하지 못하고 있다. 
예수께서 세상 끝에 대해 언급하신 중에 있는 ‘온역’이란 말의 뜻은 ‘전염병’, 즉 ‘치료될 수 없는 전염병’이란 뜻이다. 어쩌면 이번 ‘사스’사건은 앞으로 온 세계적으로 더 크게 생길지도 모르는 ‘온역’에 대한 본보기가 아니였을까? 그리고 세상에 어떤 무서운 전염병이 돌 때 그동안 쌓아온 인간의 과학이, 지식이 얼마나 보잘것 없는가를 단적으로 보여준 사건이 아니었을까? 그것도 아니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우시기 위해, 더욱 정신을 차려 주님을 기다리라고 허락하신 하나의 말세의 징조가 아니었을까? 이런 심상치 않은 사건들을 볼 때에 우리는 신실한 주의 종들이 되어 세상 끝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머리를 들자! 우리의 구속의 시간이 가까왔다.

 

중국에서 온 편지

* 이 편지는 ‘생애의 빛’의 전도를 받고 하나님께 헌신하게 된 한 미국 간호사가 선교사업을 하기 위하여 중국에 가서 겪은 ‘사스’전염병의 위험속에서 보내온 편지입니다.

친애하는 강 목사님께

“ 나의 의의 하나님이시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항쪼우에서의 지난 3일은 제가 사랑하는 하늘 아버지께 무엇이든지 간구할 수 있다는 놀라운 특권과 확신을 뼈저리게 느끼게 해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지금 제 주위에서 번지고 있는 공포스런 상황과 비상 상태는 저를 다른 사람들처럼 벌벌 떨며 무서워 하게 만들기 아주 쉽습니다. 시편에 기록된 하나님의 진실된 약속들이 지금 저에게 얼마나 절실하게 느껴지는지요! 그 말씀을 얼마나 애타게 붙잡으며 또 맛보고 있는지요!
어제 아침, 중국에 온 외국 간호원인 저와 두 세명의 의사가 일할 병원의 병동을 돌아보았는데 이 병원은 외국인 중에서 ‘사스’에 걸린 사람이면 누구든지 입원시키는 병원이 되어 버렸습니다. 치료 과정등 모든 것이 미국과는 너무나 다르지만 저의 미국에서의 의료 경험들은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4월 20일 일요일, 이 도시에 살던 한 가정의 네 식구가 모두 ‘사스’환자로 판명된 후 이 도시에 사는 6백만 인구에게 공포가 엄습했습니다. 가게마다 마스크가 날개 돋친 듯이 팔려나갔구요.
어제 4월 21일 오후 4시반, 병원의 전 직원들을 소집하여 응급 비상회의가 열렸습니다. 병원장이 ‘사스’에 대한 정부의 방침과 이 병원의 응급 치료방안에 대해 발표했습니다.

매일 오전 8시와 오후 4시 두 차례에 걸쳐 15분씩 이 병원과 또 다른 병원 사이에 그리고 정부 당국사이에 긴밀한 연락이 취해져 치료과정의 연합전선을 구축하며 일하고 있습니다. 온 병원 빌딩안에는 아주 독한 소독개스가 뿌려지고 있고 청소하는 사람들은 소독하느라고 난리입니다.

오늘 아침 8시를 기하여 외래 진찰실에 오는, 열을 동반한 기침증세를 보이는 환자는 누구나 특별 병동에 즉시로 입원시키고 있는데 평균 30명이던 환자가 어제로 120명으로 뛰어 올랐습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할지어다.”

시간차에 적응이 안된 은혜스러운 이유 때문에 아주 일찍 깨는 저는 이른 아침마다 시편 4장을 읽고 또 읽고 묵상하며 마음속에 주님으로부터 저의 필요에 대한 힘을 얻고 용기를 가지고 있습니다.

새벽 6시, 이른 아침 햇살이 부드럽게 저를 감쌀 때 저는 자전거를 타고 짧은 통근길을 출근합니다. 벌써 봄기운이 완연히 느껴지고 있네요! 마스크를 쓴 일단의 자전거를 탄 무리들과 섞여 새들이 부르는 달콤한 노랫소리를 들으며 자전거를 타고 가는 이 순간, 나의 사랑하는 창조주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가는 이 순간이 얼마나 향기롭게 느껴지는지요!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

지금 저는 제 사무실에 있습니다. 아침 근무는 전염병 통제분야에서 합니다. 이 전염병에 대비하여 철저한 위생 실습이 필요되고 있는데, 우리의 교사인 미쎄스 웰치에 의하면 이 전염병이 적어도 일년은 계속 되리라고 전망하고 있습니다.

사실 결핵과 간염이 많다는 것을 알면서도 저는 이 중국에 오기로 결심하였기 때문에 지금, 비록 무서운 전염병 ‘사스’가 창궐하여도 저는 이대로 남아 이 곳에 있는 중국사람들을 위해 일하며 교육시키기 원합니다. 정말 마스크가 필수가 되고 있어요. 그러나 그것이 저를 무서운 전염병으로부터 구원하지 못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답니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내가 과연 하나님께서 주신 건강법칙을 잘 지키고 있는가? 적당한 수면과 알맞은 영양섭취, 또 충분한 물을 마시는 것과 적당한 운동을 하고있는가?’ 하는 것이지요. 저의 동료 간호사들은 저의 건강 설교를 너무 잘 들으며 좋아하고 있답니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건강법칙에는 아주 효과적인 예방법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거하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시니이다. 

목사님!
저를 안전하게 거하도록 하는 것은 중국 천연약초도 아니요, 중국정부의 보호도 아니요, 착용하면 4시간만 효과있는 거즈 마스크도 아니라는 것을 잘 알고 계시지요?
이곳에 있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주님의 선교지인 중국 땅에서 미력하나마 바치는 저의 수고가 큰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

중국에서 주님을 위해 섬기는 종 __ 로 부터

4부 - 지진들과 기근들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이 재난의 시작이니라” (마 24: 7~8)

예수께서는 전쟁과 전쟁에 대한 소문과 연결하여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겠다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어쩌면 매일 풍성한 식탁을 대하며 맛있는 음식을 충분히 먹을 수 있으므로 이 세상에 먹지 못하고 굶주려 죽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 지를 생각해 볼 여지를 가지지 못하는 것 같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 얼마나 많은 기근들과 가뭄과 기아가 존재하며 이로 인한 고통이 얼마나 극심한지를 모르고 지낸다. 또한 해가 거듭할 수록 심해지고 있는 지진은 어떤가? 지구상에 있는 나라들 여기 저기에서, 심지어 한국에서까지 크고 작은 지진들이 땅을 흔들며 우리를 영적인 잠에서 깨우고 있다. 우리는 눈을 떠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말세의 징조들이 지금 세계 각처에서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 살펴볼 줄 알아야 겠다.

기근과 식량난

1. 세계 인구에 대한 개발도상국의 인구 비율이 1960년대에는 68.3%, 1980년대에는 75%, 2000년대에는 80%를 육박할 것으로 예측된다. 그러나 세계 곡물 생산의 60% 이상은 세계 인구의 30%를 차지하고 있는 선진국에서 생산되고 있다.

2. 세계적으로 식량을 증산하기 위하여 계속적인 투자가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급증하는 인구, 심각해져 가는 오염으로 인한 생태계의 파손, 기상 이변, 그리고 급격하게 저하되고 있는 토양의 생산능력으로 인해서 개발도상국의 식량부족량은 1969-1971년에는 평균 1,600만 톤에서, 1985-1990년에는 7,600-8,500만 톤으로 증가되었다. 또한 이들 지역에서의 영양부족 인구는 1970년에는 4.6억에서 1983년에는 7,5억으로 급증하고 있는 실정이다.

3. 지구 환경에 대한 오염과 파괴가 나날이 가속되어 가고 있다. 유엔 환경 연구소는 지구 환경 오염을 핵 전쟁과 함께 인류 생존의 최대 위협 요소로 인식하고 있다. 기준치의 100배를 넘는 강산성비, 지구의 온실화 현상과 기상 이변, 오존층의 파괴, 유해 화학물질의 증가 등에 의한 부작용이 이미 세계 여러 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대기 오염과 이에 따르는 막대한 토지의 황폐화와 곡물 생산의 감소는 세계 기아 인구의 증가를 가져오고 있다.

4. F.A.O (유엔 식량 농업 기구)는 현재 세계의 기아 인구를 12억으로 추산하고 있으며, 세계 인구 7명 중 1명이 먹거리가 부족하며 기아인구의 대부분이 남아시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에 집중돼 있다고 지적했다. 지금 아프리카 대륙에서는 극심한 가뭄과 흉작으로 인하여 2000만의 인구가 굶주림에 허덕이고 있으며, 하루에 수만명씩 죽어 가는 금세기 최악의 비극이 벌어지고 있다.

지진

601. 지난 50년 간의 지진의 횟수는 과거 4000년 동안에 일어난 지진의 횟수보다 훨씬 많다. 매년 전 세계적으로 1000만번 이상의 크고 작은 지진들이 일어나고 있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지진의 횟수 뿐만 아니라 강도에 있어서도 급격한 상승을 보이고 있다.

2. 세계 지진 연표에 의하면, 1만명 이상의 사람이 죽은 대지진은 1300년대에 1건, 1500년대에 1건, 1600년대에 1건, 1700년대에 6건, 1800년대에 4건, 1900년대에 16건으로 증가되고 있다.

3. 미국 지질학회의 보고서에 의하면, 1990년 한해 동안에 지진으로 사망한 사망자 수가 1980년대 10년 동안에 죽은 사람의 숫자와 대등하였다.

4. 1900년도 이전의 인간 역사가운데는 6.0 이상의 지진이 10번 미만이었으나 1900년도 이후부터는 6.0 이상의 지진이 수십번 이상 일어났다. 최근 2천년 대에 들어서는 지진의 발생이 더욱 빈번해지고 있으며 강도 6도 이상의 지진이 세계 각지에서 여러번 일어났다.

지진은 역사적으로 매 시대마다 매년 수천번 이상 일어나고 있었다. 그러나 문제는 지진의 빈도 수와 위력이 점점 강해져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는 대 도시에 큰 지진이 일어나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지금처럼 지진이 많아지고 강해진다면, 이제 곧 전 세계가 지진으로 대 혼란을 겪을지도 모른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조만간 역사이래 없는 대지진이 있을 것을 과학자들은 예상하고 있다. 올해 들어 연속해서 일어나고 있는 강진들은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경고하고 있으며 우리가 빨리 회개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께 진정으로 돌아오기를 촉구하고 있는 것이다.

5부 - 핍박과 순교


    "그때에 사람들이 너희를 환난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 (마태복음 24:9)

    예루살렘의 멸망, 즉 제자들의 세대의 끝이 이르렀을때, 그리스도인들에 대하여 많은 핍박들이 일어났던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알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는 어떠할까? 그런 핍박들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정말 일어날 수 있을까?  요한계시록 13장 11~18절에는 예수 재림 직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한 나라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 나라의 출범과 또한 이 나라를 통하여 나타날 짐승의 우상은 그리스도의 재림의 결정적인 징조를 이룰 것이다. 이 성경절에서 “새끼양과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는 짐승은, 성경에 나오는 다른 나라들과 달리, 정치적 세력이면서 또한 종교적 세력임을 알 수 있다. 12절을 보면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경배”는 종교적인 단어이다. “경배”는 단순히 교통법규를 지키는 종류의 사회질서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종교적인 신으로서의 복종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종교적인 적그리스도의 세력은, 또한 정치적인 세력임을 밝히고 있다.

    성경 예언에서 짐승은 “나라”를 상징한다. 다니엘서 7:23에는 “넷째 짐승은 곧 땅의 넷째 나라인데”라고 하였으며, 같은 장 17절에는 “그 네 큰 짐승은 네 왕이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3:11절에 나오는, 종교적인 세력은, 하나의 교회로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국가로서 나타날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 어린양처럼 보이는 짐승은 전 세계를 움직일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는 강대국으로, 이 나라는 국가와 교회가 합하여진 종교적 정치를 할 것을 말하고 있다.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13:15)  이 말씀은 곧 이 어린양처럼 생긴 짐승으로부터 나온 종교와 정치적 방침이 전세계의 정치권을 장악할 것이며, 세상 어느 곳에 살든지 이 나라가 추구하는 종교를 따르지 않았을 때에는 죽임을 당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중세 암흑시기 때에 나타났던 정치적 현상이었다. 중세 종교암흑시기에는 왕이 한 종교를 무력을 통하여 지킬 것을 강요하였으며, 이러한 암흑의 탄압을 피하여 도망한 청교도들에 의하여 종교자유국가의 표상인 미국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이 앞으로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렇다. 요한계시록 13장은 그리스도의 강림 직전, 마지막 때에 전 세계의 나라들이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종교를 강요할 것을 예언하고 있다. 마지막 때가 가까웠으며,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가리키는 징조 중 하나가 바로 종교와 국가의 연합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징조가 종교의 자유를 목표로 건국된 미국 안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미국의 부시 행정부는 “charitable choice”라는 슬로건을 내세워 국가가 정치적인 차원에서 종교단체들을 후원할 것을 말하였다. 이 슬로건은 하나의 사회복지의 혜택을 줄 수 있다는 이유로 정부가 종교단체에 경제적인 후원을 한다는 것이다. 비록 이것은 정부가 종교단체들이 하는 사회봉사를 도와서 사회의 도덕적 기강을 재확립한다는데 그 목표를 두고 있지만, 이러한 방침은 결과적으로 정부가 후원하는 한 종교를 만들게 될 것이기 때문에 결국 종교와 정치가 하나로 결속되어 또 한번의 종교 암흑시기를 만들게 될 것이다.

    실제적으로 이러한 방침은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미국 헌법에 위배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미 국가가 인정하지 않는 소수의 종교단체들은 후원하지 않을 것을 정부가 표명하고 있으며, 어떤 주에서는 정단과 이단문제를 주지사가 직접 나와서 설명하는 일도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안정을 이유로 끔찍한 종교핍박을 자행하였던 중세 종교암흑기의 정신이 미국에서 부활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사단은 국가와 종교의 연합을 유도할 것이며, 이 일이 완성되면, 전 세계 나라들을 한 종교와 한 국가의 힘 아래 통합하여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빈궁한 자나 자유한 자나 종들로 그 오른손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려 할 것이다. 이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끝까지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자들은 사단에게 핍박을 당할 것이나, 만주의 주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예수께서는 그들의 생명을 끝까지 보호하실 것이다.

천국 복음의 전파와 끝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재림의 징조로서 “천국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마태복음 24:14)고 말씀하셨다. 지금 대부분 모든 나라들에 하나님의 복음이 들어가 있다. 동유럽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대부분의 공산권 나라들에 종교적 자유가 이루어졌고, 현재 러시아를 비롯한 동유럽 국가들에서는 복음의 물결이 휘날리고 있다. 중국에서는 현재 기독교인들의 숫자가 엄청나게 불어나고 있으며 북한에서도 비밀리에 가정 교회들이 우후 죽순격으로 생겨나고 있다는 사실을 알만한 이들은 다 알고 있다. 겉으로 볼 때는 북한만이 열리지 않은 채로 남아있는 것 같지만, 지하에서 벌써 복음은 속속히 전파되고 있고, 탈북자 문제와 국제 정세로 보아 북한이 곧 개방될 것도 같다. 그러나 그렇다해도 천국 복음이 온 세계 끝까지 전파되고 증거되는 일은 아무리 인간이 노력한다 할지라도 불가능한 것이다. 때가 되면, 즉 하나님을 증거할 마지막 백성들이 준비되면 하나님께서는 늦은비 성령을 폭포수 같이 부어주셔서 삽시간에 이 일을 가능케하실 것이다.

이 세대 안에 다 이룰것인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던, 그 당시에 있었던 말세의 징조가 지금 우리 눈앞에 똑같이, 아니 그 때보다 더 현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본다. 그 당시 일어났던 징조들을 보았던 그 사람들의 세대안에 모든 것이 다 이루어지고 그들에게 끝이 왔듯이, 이 모든 말세의 징조들을 보고 있는 우리의 세대안으로도 이 모든 것이 이루어지고 끝이 올 것이다.

    정말 세상 끝이 가까웠다. 주님께서는 속히 오실 것이다. 왕 중의 왕이 그의 군대를 거느리시며 승리의 구주로서 이 땅에 속히 재림하실 것이다. 비록 우리가 지금은 약하고 병든 몸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지금은 힘들고 어려움 가운데 있을지라도, 외롭고 고독한 가운데 있을지라도, 비록 죽음으로 잃어버린 가족들과 친구들과 친척들이 있을 지라도 영원한 생명과 행복을 가지고 오시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다가왔음을 보며 기뻐하자.

    자신들의 믿음을 포기하지 않고 모든 어려움들을 참고 견딘 의인들은 주님의 재림의 날에 그리스도를 기쁨으로 만날 것이며, 그가 바로 우리의 구주시라고 외칠 것이다.  “그 날에 말하기를 이는 우리의 하나님이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그가 우리를 구원하시리로다 이는 여호와시라 우리가 그를 기다렸으니 우리는 그 구원을 기뻐하며 즐거워하리라” (이사야 25:9). 그의 오심은 영광스러운 사건이다. 그는 우리 모두에게 주실 상을 가지고 오실 것이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16:27)

재림을 위한 준비

     우리는 언제나 깨어서 재림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 날과 그 시를 알지 못”(마태복음 25:13)한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마태복음 24:42). “이런 일이 되기를 시작하거든 일어나 머리를 들라. 너희 구속이 가까웠느니라” (누가복음 21:28).

    우리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를 알지는 못하나 징조들을 통하여 그 때가 가까웠는지를 알 수 있다. 바울은 이러한 재림의 징조를 보고 “너희가 이 시기를 알거니와 자다가 깰 때가 벌써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다. “이제 우리의 구원이 처음 믿을 때보다 가까웠음이니라. 밤이 깊고 낮이 가까웠으니 그러므로 우리가 어두움의 일을 벗고 빛의 갑옷을 입자.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 (로마서 13:11~14).

    우리는 비록 썩어져 가는 이생의 나그네일지라도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되어 불멸의 옷을 입고, 영원히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행복을 누리게 될 것이다. 그대는 세상 끝을 위하여, 그 영광스러운 재림의 날에 주님을 만나기 위하여 준비하고 있는가?

6부 - 누룩과 그리스도인


세상 끝이 가까왔음을 알리는 두려운 사건들이 주위에서 일어나는 것을 볼 때 사람들이 나타내는 반응은 천차만별이다.

지난 9.11 테러사건 당시 사람들의 태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람들의 첫 번째 반응은 공포이다. 그 주일은 교회가 차고 넘쳤고 수 많은 사람들이 기도회 모임에 참석한 것을 우리는 안다. 많은 사람들이 불안에 떨었고 정말 말세가 되었다고 모두들 입을 모았다. 그러나 시간이 흐른 지금 사람들의 반응은 어떠한가? 그 공포의 기억은 까맣게 사라지고 또 다시 변함없는 일상생활을 똑같이 영위해가고 있다. 말세라고 생각하며 주님의 오심을 기다린다고 말하며 믿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세상 끝’을 위해 준비하는 올바른 태도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할까?

제일 우선 순위가 되어야 하는 점검은 무엇보다도 마음을 철저하게 살피는 일이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백번 오신다 해도 내 자신이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우리는 그 날에 주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날을 위한 가장 효과적인 준비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거듭남’이다. 마음의 ‘거듭남’... 예수께서는 말씀하시기를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고 하셨다. 그러면 과연 거듭남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누룩의 비유에서 깨달음을 얻어보자.

거듭나지 못한 까닭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흔히 듣는다. 하나님을 믿노라고 주장하는 데도 그들의 말과 정신과 품행에 전혀 변화를 볼 수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데 그 까닭이 무엇인가? 또 자기의 목적과 계획에 대한 반대를 참지 못하고 거룩하지 못한 품성을 나타내며 말이 거칠고 거만하고 툭하면 성을 잘 내는 자들이 많이 있는데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들의 생애에서도 세상 사람들의 생애에서 볼 수 있는, 자기를 사랑하는 일과 이기심과 급한 성미와 성급한 말을 볼 수 있다. 그들은 진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자들처럼 자만하기를 잘 하고 선천적인 못된 성격을 그대로 가지고 있고 괴벽한 품성을 자주 나타내는 것을 본다. 그 이유는 그들이 거듭나지 못한 까닭이다.

누룩의 비유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믿으며 천국에 들어가기를 소원하는 사람들을 위해 아주 흥미있는 비유를 말씀해 주셨다. “천국은 마치 여자가 가루 서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마 13:33) 이 비유 가운데서 누룩은 하늘 나라의 상징으로 사용되었다. 이것은 영혼을 소생시키고 동화하게 하는 하나님의 은혜의 능력을 말하고 있다. 이 능력이 역사할 수 없을 만큼 그처럼 극악하고 타락하고 저속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성령의 역사에 굴복하는 사람속에는 새로운 생명소가 심어져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이 다시 회복된다.

그러나 사람은 자신의 의지로써 자기 자신을 변화시킬 수 없다. 사람은 이러한 변화를 일으킬 능력을 갖지 못했다. 전적으로 밖에 있는 요소-누룩-을 가루에 넣어 섞지 아니하면 기대하는 변화가 생길 수 없다. 이와같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지 아니하면 죄인은 영광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을 이룰 수 없다. 이 세상이 줄 수 있는 차원 높은 모든 교양과 교육을 가지고도 죄인을 하늘의 자녀로 변화시킬 수 없다. 변화하게 하는 능력은 하나님께로부터 받아야 한다. 그 변화는 오직 성령의 역사로 말미암아서만 이룰 수 있는 것이다. 빈부 귀천을 막론하고 구원을 얻고자 하는 모든 사람은 이같은 성령의 역사에 복종하지 않으면 안된다.

누룩-하나님의 은혜- 이 하는 일

가루 속에 넣은 누룩이 속에서부터 부풀게 하는 작용을 일으켜 점차 밖으로 나오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의 생애를 변화시키는 역사도 먼저 마음속이 새로워짐으로 이루어진다. 외적인 개선만으로는 우리를 하나님과 화목케 하기에는 충분치 못하다. 이런 악습, 저런 악습을 교정함으로 품성을 개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나 이러한 방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바라는 사람들은 출발부터가 잘못된 것이다. 우리의 출발은 먼저 마음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

신앙을 고백하는 것과 마음속에 진리를 간직하고 있는 것은 전혀 다른 것이다. 진리를 아는 것만으로는 넉넉지 않다. 우리가 진리를 안다고 하면서도 우리의 생각의 방향을 바꾸지 않을 수 있다. 마음이 먼저 변화되고 성화되어야 한다. 가루 속에 감추인 누룩은 사람이 모르는 사이에 그 모든 가루를 부풀게 만든다. 이와같이 진리의 누룩도 사람이 모르게 조용히, 끈기 있게 마음을 변화시킨다. 타고난 본성이 부드러워지고 억제된다. 새로운 사상과 감정과 동기가 심어진다. 그리스도의 생애가 새로운 품성의 표준으로 세워지게 된다. 마음이 변하고 재능이 새로운 방면으로 활동하게 된다. 사람이 새로운 기능을 받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가지고 있던 기능들이 성화되고 양심은 각성 된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께 봉사할 수 있는 특성을 받게 된다.

오랜 시간동안 예수를 믿었지만 전혀 그리스도인답지 않은 행동과 말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진리의 누룩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있지 않다. 그 누룩이 작용할 기회를 갖지 못하였다. 그들의 선천적 또는 후천적인 나쁜 성벽이 누룩의 변화시키는 능력에 굴복되지 않았다. 그들의 생애는 그리스도의 은혜의 결핍 즉 품성을 변화시키는 그분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나타낸다.

진리의 누룩-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말씀은 그것을 연구하고 지키면 마음 속에 작용하여 모든 거룩하지 못한 성벽을 복종시킨다. 성 령께서 오셔서 죄를 깨닫게 하시고 마음 속에 생긴 믿음이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역사하게 되어서 우리의 몸과 영과 혼이 그리스도의 형상과 일치하게 된다. 성경의 진리는 사람의 가장 큰 필요인, 믿음으로 말미암는 심령의 거듭남을 이루게 해 준다. 그렇게되면 우리에게 주신 능력은 우리의 속에서 역사(役事)를 시작하여 밖으로 나오게 되며 그것이 우리로 하여금 받은 바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게 한다.

그 진리의 생생한 감화는 사람의 경험 속에 짜여져야 한다. 진리가 우리 생애의 크고 작은 온갖 일에 침투되어야 한다. 진리의 누룩을 마음 속에 받아들이면 그것은 우리의 욕망을 통제하고 우리의 사상을 순결하게 하고 우리의 성미를 부드럽게 할 것이다. 진리의 누룩은 사람 전체를 변화시켜서 거친 행동은 세련되고 난폭한 기질은 온순해지며 이기심은 관대하게 된다. 또 그것은 우리의 정신력을 소생시키고 심령에 힘을 불어넣어 줄 것이며 우리의 상상력과 사랑하는 능력을 넓혀 줄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갖는 인간 가족들과의 모든 교제에 거룩한 감화를 끼쳐야 한다.

진리의 누룩은 경쟁심이나 야심이나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갖게 하지 않는다. 하늘로부터 온 참된 사랑은 이기적이거나 변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이 사랑은 사람의 칭찬에 의존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자들의 심령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그리스도께서 위하여 죽으신 영혼들에 대한 사랑으로 충만하게 되고 자기 자신을 내세우려고 애쓰지 않는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기쁘게 해주거나 자기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기 때문에 감사히 생각해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그리스도의 피로 산 소유물이기 때문에 사랑한다. 그들은 자신의 동기와 말과 행동이 오해를 받거나 오전(吳傳)된다 할지라도 화를 내지 않고 묵묵히 자기의 길을 따라간다. 그는 친절하고 사려 깊고 자신에 대해 겸손해 하면서 항상 하나님의 긍휼과 사랑을 신뢰하고 소망에 가득 차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가 우리의 성정과 음성을 주관해야 한다. 그같은 은혜의 역사를 우리는 형제 사이에 나타나는 예의와 부드러운 관계 중에서 찾아볼 수 있고 친절한 말과 격려의 말 속에서 엿볼 수 있을 것이다. 사랑은 친절과 온유와 인내와 오래 참는 일을 통해 나타난다. 그리하여 그의 용모는 변하고 마음 속에 내재하시는 그리스도께서 그분을 사랑하고 그분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의 얼굴에서 비쳐나오게 될 것이다. 진리가 그들의 용모에 기록되고 하늘의 평화가 그 위에 나타날 것이다.

진리의 누룩-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은혜

진리의 누룩-하나님의 변화시키는 은혜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순결치 못한 자가 어린양의 피에 씻음을 받아 깨끗하게 된다. 생명을 주는 능력으로 말미암아 진리가 모든 사람의 마음과 뜻과 힘을 신령한 생애와 일치되도록 해줄 것이다. 그리하여 인성을 가진 사람이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이러한 우리의 성품의 아름다움과 완전함을 통해서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시게 된다. 이런 변화가 생기는 것을 보고 천사들은 말할 수 없이 기쁜 노래를 부르게 되고 하나님과 그리스도께서도 그분의 품성을 닮은 영혼들을 인하여 몹시 기뻐하시게 된다.

그대는 거듭났는가?... 그대에게도 이런 변화가 생겼는가?... 그렇다면 당신은 가장 효과적으로 ‘세상 끝’ 즉 주의 오심을 위해서 준비한 사람이다!

가족 제단의 중요성


"네가 단 위에 드릴 것은 이러하니라 매일 일년 된 어린양 두 마리니 한 어린 양은 아침에 드리고 한 어린양은 저녁 때에 드릴찌며… 이는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 회막문에서 늘 드릴 번제라 내가 거기서 너희와 만나고 네게 말하리라” (출 29: 38 - 42).

고대의 하나님의 백성에게 있어서 제사는 그들의 삶의 전부였다. 그들이 애굽을 나온 목적 중 하나가 하나님께 제사드리기 위함이었다(출5:3). 고대의 제사 제도는 오늘날 예배로 바뀌었다. 제사에는 번제(헌신, 굴복)와 화목제(감사, 결심), 속죄제(회개와 자복), 속건제(화해)등이 있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루 일과를 시작하기 전에 아침 제사에 참여함으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고 그 날 하루에 필요한 모든 은혜를 구하였다. 저녁 제사 때도 그 날 하루를 인도해주심을 감사 드리며, 그들의 모든 죄들을 사해 주시기를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제사드릴 때에 그들을 만나시고 그들과 말씀하시기로 약속하셨다(출29:42). 제사를 통하여 그들은 모든 죄를 용서받을 뿐 아니라 죄를 이길 힘을 받았다. 그들이 자신들을 위하여 죽어가는 어린양을 생각할 때에 그들의 마음은 죄에 대한 증오심과,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찬양, 그분께 대한 경외로 가득 차게 돼 있었다.

사단의 계략
인간이 타락했을 때 죄에 대한 해결책으로 주어진 것이 제사(예배) 제도였다. 하나님께서는 제사를 통하여 그들을 받으시고, 그들에게 임재하시고, 그들과 교통하셨다. 이 제도는 그들의 신앙과 가정을 지켜줄 것이었다. 그래서 사단은 이 제도를 무효화 되게 하려고 하였다. 그는 그것을 형식화하고, 그 참 의미를 잊어 버리게 하였다. 그래서 예배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게 만들었다. 신앙 생애가 사업의 염려에 흡수되어 버리고, 그들의 마음이 사업에 몰두되어 성경을 읽을 수 있는 시간을 갖지 못하고, 은밀한 기도를 드리고, 아침과 저녁에 희생의 제단 위에 찬양과 감사의 제물을 계속해서 태울 수 없게 될 때 사단의 목적은 성공을 거두게 된다. 이러한 사단의 간계를 깨닫는 자들이 얼마나 적은가!

오늘날의 형편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침과 저녁에 예배 드리지 않고 있다. 혹 드리고 있다 해도 대부분 너무 바쁜 나머지 그냥 빨리 해치우려고 한다. 짧은 찬미, 짧은 말씀, 짧은 명상으로 마치 예배 드리는 시간이 아까운 것처럼 생각한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위해 무한한 축복, 그 날을 위한 긴요한 축복을 주고자 하시나 그들은 그냥 지나쳐 버린다. 하나님의 임재하심이 없이, 승리를 위한 힘을 받지 못한 채 그들은 하루 일과를 시작한다. 그분의 음성을 들을 시간과 그분의 귀중한 말씀을 명상할 시간과, 그분의 큰 축복을 감사할 시간이 없다. 잠깐 있다 없어질 이 땅의 쾌락과 부와 명예를 위하여 하늘의 영원한 부를 상실한다. 그들은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는 말씀을 잊었는가? 그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목적을 잊어버렸단 말인가?

예배를 통해 얻는 유익
예배 시간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심으로 거룩한 시간이다. 거룩한 시간 속에서 우리는 거룩하게 된다. 예배 시간에 우리는 우리 죄들을 서로 고하며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양에게 죄를 내려놓는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예배 시간에 결심한 것을 유혹이 올 때마다 생각나게 해 주신다. 예배를 통하여 가족들은 연합될 수 있다. 조석 예배의 원칙이 잘 지켜졌다면 가정의 수많은 불화와 악들이 방지되었을 것이다. 각 가정에서는 조석 예배를 일정한 시간에 드려야 한다. 하루 생활을 시작하기 전, 부모들이 그 자녀들을 모으고 밤 동안의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감사하며 낮에도 도와주시고 인도하시며 지켜 주시기를 구하는 것은 그 얼마나 합당한 일인가? 또한 저녁이 되어 부모와 자녀들이 함께 모여서 다시 한 번 그날 하루의 축복들을 인하여 하나님께 감사 드리는 일은 얼마나 바람직한 일인가?     우리의 하나님은 친절하고 자비하신 아버지이시다. 그분을 위하여 일하는 것은 행복한 경험이 되어야 한다. 주님께 경배하고 그분의 사업에 동참하는 것은 하나의 기쁨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 주셨으므로 그분께서는 우리가 당신을 까다로운 주인으로 생각하기를 원치 않으신다. 그분은 우리의 가장 좋은 친구이시다. 우리가 그분께 예배 드릴 때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계시며 우리를 축복하시고자 하신다. 그분은 우리의 마음을 기쁨과 사랑으로 채워 주기를 원하신다.

부모님들께
하나님의 벗인 아브라함의 생애는 기도의 생애였다. 그가 장막을 치는 곳에는 언제나 그 곁에 제단을 만들고 그 위에 조석으로 희생을 드렸다. 그리스도인의 가정도 세상에서 이처럼 빛이 되어야 한다. 그들에게서 아침 저녁으로 기도가 향연처럼 하나님 앞에 올라가야 한다. 그리하면, 하나님의 자비와 축복은 간구 하는 자들 위에 마치 아침 이슬처럼 내릴 것이다.

“아침에 나로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시 143: 8).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을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시 14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