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어떤 향기


    아름다운 호숫가였다. 어제 내린 비로 충만한 호수는 바람이 불 때마다 출렁이며 빛살 고운 무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찬연한 호수의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말없이 바라보고 있는 나를 흔들어 깨우며, 옆에 있는 친구가 느닷없이 던진 말이 귓전을 스쳤다.
“아름답긴 한데...무언가 빠진 것 같애!”
“빠지다니? 얼마나 아름다운데...”
“아름답긴 한데... 냄새가 없어! 마치 향기없는 꽃 같다고나 할까?”
    의미를 몰라 의아해 하고 있는 내게 들려주는 그녀의 설명은 새로운 생각거리를 내게 던져 주었다. 출렁이는 파도와 갯벌 내음이 풍기는 바닷가에서 자란 그 친구는 어디에서든지 일렁이는 물결만 보면 그 물결과 함께, 늘 코를 확 찌르는 갯벌 냄새를 기대하곤 한단다. 그래서 비록 찬란하게 빛나고 있지만 아무 냄새가 풍기지 않는 호수는 그녀에게 그렇게 의미있게 느껴지지 않았나 보다.

    냄새(?)가 없는 호수, 향기가 없는 꽃, 아무 냄새가 풍기지 않는 그리스도인...... 호숫가를 걸으며 내내 이런 생각의 주제들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서로 나누어 주는 향기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의 냄새, 분위기를 가지고 있다. 어쩐지 그 사람 곁에는 오래 머물고 싶고, 어쩐지 그 사람과 있으면 포근하고, 어쩐지 그 사람과 있으면 즐거운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은 아마 좋은 냄새를 가진 사람일께다.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냄새가 있다. 성경에는 그 냄새를 이렇게 표현하고 있다.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우리는 구원 얻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 좇아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고후 2: 14, 15, 16)

    우리가 가지고 있는 ‘냄새’, 분위기는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 주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 왜냐하면 사람은 각각 자신만의 분위기에 둘러싸여 있는데, 그것은 믿음과 용기와 소망으로 가득 찬 달콤한 향기가 넘치는 분위기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불만과 이기심으로 가득 찬 침울하고 쓸쓸한 분위기이거나, 마음에 품고 있는 죄로 인해 몹시 오염된, 유독한 분위기가 될 수 있어서 주위에서 접촉하는 사람들이 우리를 두르고 있는 분위기로 은연 중에 그 영향을 받게 되기 때문이다.
    조약돌을 호수에 던지면 하나의 파문이 생기고, 그 파문이 또 다른 파문을 만들고 그러면 그것에 이어서 다른 많은 파문들이 생기게 되어, 그 파문이 그리는 원은 점점 넓어져 마침내 호수의 가장 자리까지 이르는 것처럼 우리의 풍기는 분위기, 감화도 역시 그렇다. 우리의 감화력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이상으로 멀리 퍼져나가 다른 사람에게 축복이 되거나 저주가 되기도 하며, 선하거나 악하거나 간에 영향을 미쳐 사람이 판단할 수 없는 원대한 결과를 가져온다.
    이렇게 끼쳐지는 감화와 서로에게 전달되는 충동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반드시 수확을 거두게 될 씨앗이 되어, 그 범위를 알 수 없는 삶의 반경의 긴 사슬의 하나의 고리가 된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좋은 감화를 통하여 다른 사람에게 선한 일을 하도록 도와준다면 그것은 곧 우리가 그 사람에게 선을 행할 능력을 주는 것과 같은 것이 되는데, 그때 이 능력을 받은 사람이 그와 똑같은 감화를 다른 사람에게 끼치게 되고, 또 그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좋은 감화를 끼치게 되어 우리가 무의식 중에 끼치는 감화로 인하여 수천의 사람이 축복을 받게 된다.
    그러나 우리의 분위기뿐만 아니라 우리의 말과, 행동과, 의복과, 품행과, 심지어는 안색까지도 각각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지!...

말의 향기
    말에도 분명히 냄새가 있음에 틀림이 없다. 그 사람의 억양과 말소리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라는 것을 너무나 확실히 나타내 줄 뿐 아니라 그 말을 듣는 사람이나 그 말을 하는 당사자에게까지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심리학자들은 말하기를, 우리가 마음에도 없는 부정적이고 비판적인 말을 하면 비록 그런 생각이 없었을지라도 우리 스스로가 한 말에 의해 영향을 받고 인상을 짓게 되어 그 말처럼 부정적인 사람이 된다고 한다. 우리는 말할 때 쾌활하고 긍정적이고 친절하고 예절 있게 말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부드럽고 친절한 말은 사람의 심령에 내리는 이슬과 가랑비 같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곤핍한 자를 말로 어떻게 도와줄 줄을 아는”(사 50:4)사람, 또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하”(골 4:6)는 사람이 되라고 성경을 통하여 말씀하고 계신다. 왜냐하면 특히 우리가 하는 말들은 생명으로 좇아 생명에 이르는 향기가 될 수 있고 사망에서 사망에 이르는 냄새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향기를 낼 수 있는 비밀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노력한다해도 나비나 벌이 찾아 오고 싶도록 만드는 그렇게 달콤한 향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까? 사랑의 기름을 쳐 매끄러워진, 그래서 지친 심령을 시원하게 어루만질 수 있는 부드러운 말을 우리는 왜 늘 하지 못하는 것일까? 아름답지만 향기가 없는 조화같이, 잎만 무성할 뿐 지나는 나그네 목 축여줄 향기로운 열매 하나없는 나무같이 어쩌면 우리는 말뿐인 그리스도인들이 아닐까?
흰 물결 일렁이는 해안을 찾으면 비로소 고향의 품에 안기운 듯 기지개를 펴게 만드는, 갯벌 내음 움씬 풍기는 바다처럼, 모양새는 화려하지 않아도 그 달콤한 향기때문에 행인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작은 들꽃처럼, 우리의 생애가 향기로운 것이 될 수 있게 하는 비결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우리 마음속에 깃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다.
    그리스도를 마음에 받아들이면 충만하신 그의 사랑이 우리 영혼에 깃든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은 깊고 열렬하여 그 사랑을 받아들이는 모든 사람에게 마치 억제할 수 없는 샘물같이 흘러넘친다. 예수께서 우리 마음속에 거하시면 우리의 영혼은 결코 다함이 없는 샘물같은 그의 사랑, 그리스도의 가슴에서 흘러나오는 순결한 사랑의 시냇물을 먹고 자라게 된다. 그분의 사랑에는 이기심이 없다. 하늘에서 난 이 사랑이 우리 마음의 변함없는 원칙이 되면, 이 사랑은 우리와 친한 사람에게 뿐 아니라 우리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절로 알려지게 된다.
    사랑은 충동적이고 상황에 따라 변하는 변화무쌍한 감정이 아니다. 그것은 살아있는 원칙이며 영원한 능력이다. 우리가 “편벽과 거짓”이 없이 서로 사랑할 수 있는 유일한 비결은 우리의 마음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있는 것이다. 우리가 그리스도와 친밀한 교제를 나누면 우리는 진실되게, 진지하게 그리고 있는 그대로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다. 그 사랑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주위에 ‘주의를 끌만한 작은 행동’을 하게 하는데, 곧 남에게 양보하게 하고, 친절하게 하고, 부드러운 말, 진실한 말, 용기를 주는 말을 하게 한다. 그것은 또 동정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동정하게 한다.

그 향기를 소유하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한다는 것은 언제 어디서나 친절한 말과 유쾌한 표정으로 이기심 없는 모습을 보이는 것을 말한다. 이런 것들은 아무 비용도 들지 않는 것들이지만 그것은 영혼을 감싸는 향기를 뒤에다 남긴다.
    그런 향기는 받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뿐 아니라 주는 사람에게도 축복이 된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서로 반응을 나타내며 그 결과는 결코 측량할 수 없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순수한 사랑은 하늘에 근원을 둔 귀한 속성을 지닌 것으로 나누어 주는 정도에 비례해서 그 향기도 더해 가는 것이다.
    만일 이런 사랑을 소유하기 원한다면, 달콤한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되기 원한다면 우리의 마음 속에 늘 그리스도께서 내재하셔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무한하신 자비와 사랑, 그분의 아름다운 품성, 또 우리를 위해서 치르신 그 크신 희생을 매일 깊이 생각하며 열렬하게 명상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늘에 속한 주제들을 계속 명상하면 우리의 믿음과 사랑은 더욱 강해질 것이며 우리가 사모하는 그분과 같이 되고자 하는 영혼의 주림과 목마름이 우리 속에 있게 될 것이다. 우리의 생각이 그리스도께 오래 머무르면 머무를수록 우리는 더욱 그분을 닮고 싶어질 것이며, 구세주에 대한 뜨거운 사랑의 타오르는 열기가 영혼을 감쌀 때 우리는 결코 감출 수 없는 향기를 지닌 사람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매일 주님께 기도해야 한다. 우리의 삶에서 아름다운 향기를 풍길 수 있는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그리고 우리에게서 풍겨나오는 신선하고 달콤한 향기 때문에 시들어가던 영혼들이 소생함을 받아 다시 생기있게 그들의 삶을 이어갈 수 있도록...

 

권두언


강병국 목사

    전쟁터에서 부상당해 누워있는 군인이 찾으며 부르짖는 소리는, 통증을 가라 앉히는 주사보다 “물! 물!” 물을 달라는 것입니다. 구명 보트를 타고 며칠 동안 표류하던 사람들이 외치는 소리는 “음식을 주시오”가 아니라, “물! 물! 물!”입니다.

심지어는 예수께서도 십자가 위에서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라고 부르짖으신 다음에 “내가 목마르다”라고 말씀하신 것을 보게 됩니다. 육체의 목마름은 하나님이 없는 영혼에 대한 좋은 상징이며, 성령의 임재가 결핍된 생애에 대한 표상입니다.

하루는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 마당에 서셔서 큰 소리로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고 외치셨습니다(요 7:37). “이는 그를 믿는 자가 받을 성령을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39절).

우리가 진짜 목마르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어떠한 값을 치르고서라도 물을 구하여 마실 것입니다. 우리는 물이 없으면 결코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성경에 성령은 물로 상징되어 있습니다. 성령께서만이 인간의 영혼 속에 있는 갈증을 채워 주실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이 공허한 마음 속의 갈증을 채우기 위하여 돈과 명예와 쾌락을 찾아 방황하며 거리를 누빕니다. 그러나 성령의 임재 만이 우리의 갈증을 채울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진정한 영혼의 갈증을 느끼십니까? 사막에서 마시는 시원한 냉수처럼 성령께서는 영혼 속에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 주실 것입니다.

그런데 과연 성령은 무엇이며,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오늘날 이 문제에 대하여 깊은 혼돈 속에서 방황하고 있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이번 호의 기사들은 살아 남을 수 있는 신선한 깨달음을 드릴 것입니다.

 

감정, 사단이 그대를 붙잡는 미끼


    이 세상에는 열렬히 믿음생활을 하는 열성적인 그리스도인이 많이 있다. 많은 교인들이 새벽 기도회와 저녁 기도집회, 부흥 성회 등에 열심히 참석하며 영성있는 기도원들을 찾아다닌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신앙이 있다고 하는 많은 교인들의 신앙의 경험이 극히 피상적이며 감정적이라는 것이다. 그런 교인들은 진리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자기의 신앙을 진리에 굳게 뿌리 내리는 대신에 자신의 감정을 살피어 뜨거운 감정 상태가 조금만 식는다고 느껴지면 신앙이 다 식어버린 것이 아닌가 불안해 하고 억지로라도 뜨거운 감정을 자아내려고 노력하며, 또 어려운 시련과 시험이 오면 금방 하나님을 원망하고 낙담에 빠져 버린다. 뿐만 아니라 자신의 신앙 상태를 스스로 점검하여 자신의 믿음을 확증하는 대신에 목사나 권사나 집사를 의지한다. 예수께서는 진리에 굳게 뿌리를 내리지 못한 사람을 비유에 가리켜 말씀하시기를 씨가 ‘돌밭’에 떨어졌으므로 ‘뿌리가 없어...곧 넘어지는 자’라고 말씀하셨다.

사단의 공격 목표는 감정
    성경에 있는 진리에 의존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감정에 의지하게 된다. 그러므로 사단은 기적과 초자연적인 현상을 통하여 사람의 감정을 집요하게 공격한다. 느낌과 감정에 의존하여 신앙 생활을 영위하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사단의 공격으로부터 방어할 수 있는 아무런 보호벽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왜냐하면 사단은 사람의 정신을 흥분시키고 자극하는 방법으로 오류와 거짓을 퍼트리기 때문이다. 진리 안에 존재하는 참된 행복과 만족을 발견하지 못한 그리스도인들은 헛된 감정적 환희를 추구하다가 사단이 만들어 놓은 덫에 걸려 들게 된다.

    사단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감정과 믿음을 섞어 놓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다. 그러므로 감정이 고조되어야만 믿음이 향상되고 있다고 느끼며 구원의 확신을 얻을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은 사단의 전략에 기만당하기 매우 쉬운 형편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사단은 진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그 성품과 생애에 있어서 아직 충분하게 열매 맺지 못하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각종 기적과 거짓 은사를 행사할 수 있는 능력을 줌으로써, 그들의 고조된 감정을 통하여 접근하고 있다. 이렇게 해서 고조된 감정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자신과 특별하게 함께 하신다는 거짓 확신을 갖도록 만든다. 그러나 이러한 경험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변화가 아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들은 어떤 단조로운 말을 빠르게 반복하여 기도함으로써, 이전에 자신이 경험했던 감정적 환희와 만족을 억지로 이끌어 내려고 애쓰지만, 그들의 생애를 이끌어 가는 진리와 신앙의 원칙이 교정되지 않는 한 진정한 변화는 이루어지지 않으며, 새롭게 거듭난 생애도 시작될 수 없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신앙이 감정적으로 만족되지 못할 때마다 깊은 낙담을 맛보게 된다. 그들은 사단에게 속은 것이며, 또한 스스로의 감정에게 속은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의 영적 경험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 이상으로 깊이 들어가지 못한다.

    사단은 광명한 천사로 가장하여 의심을 받지 않을 만한 곳에 그물을 치기 때문에 정직한 마음으로 열심히 성경을 연구하지 않는 한, 누구도 사단의 덫을 피할 수 없다.

당신의 신앙은 감정적인가?
    우리는 스스로 자신이 감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지는 않는가 검토해 보아야 한다. 감정적 신앙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는 무엇인가? 그것은 매우 분명한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뜻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경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그분의 뜻을 밝혀 주셨음에도 자기가 원하는 그와 반대되는 길로 갈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는 억지 기도를 드리는 것이야말로 감정적인 신앙의 대표적 증거이다.
    대개 감정을 중요시 여기는 신앙은 하나님의 진리와 율법의 요구가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성령께서 내게 개인적으로 말씀해 주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그대로 가겠다” 라고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사단은 이러한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이 원하는 감정과 느낌을 줌으로써, 그들의 욕구를 만족시켜 준다. 이러한 과정을 통하여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가 요구하는 바를 저버리고, 자신의 감정과 느낌이 요구하는 바에 따라서 생애함으로써 결국에는 자기 스스로를 속이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셨던 마음과 믿음을 가지고 있다는 표적은 무엇인가? 그것은 자아와 교만이 죽은 생애이며, 자신보다 진리를 높이 여기는 삶이다. 분명하고 예리한 성경 진리를 받아들이기 원치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명백한 진리 대신에 자기의 양심을 진정시키고 감정을 만족시켜 주는 설교를 좋아한다. 극기와 자아희생을 요구하는 그리스도의 진리가 빠져 있는 교리에 큰 호감을 나타내는 것이 감정적 신앙인의 특징이다.

믿음과 느낌의 순서
    느낌은 믿음이 아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둘을 명확하게 구별할 뿐 아니라 서로 어떻게 작용하는지를 알아야 한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활용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이 올 때까지 기다린다. 믿음은 요단강이 갈라지는 놀라운 광경을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전진하는 것이다. 믿음으로 물 가운데 발을 디디며 전진했을 때, 그 때에 요단강이 갈라진 것처럼, 영광스러운 감격(감정)과 감사의 정신도 믿음을 활용했을 때 축복으로 받게 되는 것이다. 믿음은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고, 느낌은 믿음을 활용한 결과로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활용없이 어떤 느낌과 감정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인간적으로 애쓰는 것은 순서가 바뀌었을 뿐 아니라, 크게 잘못된 신앙 태도이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허락하시는 감정과 느낌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약속된 축복이 실현되고 느껴지기 전에 그것을 붙잡고 주장하는 것이다. 그러나 말세를 살아가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반드시 유의해야 할 점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자신이 붙잡고 주장하고 있는 것이 진리의 말씀과 일치하는지를 확인하는 것이다. 진리가 아닌 다른 것을 붙잡고 있으면, 마귀가 그 사람의 요구와 기도에 응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축복을 깨닫기 이전이라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축복하심에 대한 감사의 정신(감정)을 소유할 수 있어야 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항상 최선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이다. 바로 이것이 참된 믿음을 소유한 그리스도인이 항상 만족한 감정과 느낌을 가질 수 있는 이유이다. 약속된 축복을 느끼고 그것을 즐기게 될 때에는 이미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느낌이다. 말세에 대한 예언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기 전에 그것이 그대로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며 사는 것이 믿음이다.

믿음이 필요되는 순간
    모든 것이 예상대로 잘 진행되고, 모든 일이 잘 풀려 나갈 때에는 믿음의 참된 가치가 드러나지 않는다. 믿음은 주변 상황이 최악으로 흘러나갈 때에 진정으로 그 가치가 발휘된다. 모든 것이 원만하고 평화로울 때에는 참된 믿음을 소유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이 누구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상황이 변해서 모든 것이 악화될 때에는 참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이 높이 드러나게 된다. 자신의 감정이 잘못된 것을 요구할 때, 자신의 느낌이 건강에 유익하지 않는 음식을 요구할 때, 그리고 자신의 육체가 정욕적이고 세속적인 것을 달라고 외칠 때에 참된 믿음은 그 모든 것을 거절하고 승리한다.

    믿음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은 감정적 신앙을 가지게 된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자신에게 많이 부어질 때에는 큰 믿음을 얻게 되며, 자신이 성령의 큰 능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믿음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령의 결핍을 느낄 때야말로 믿음을 활용해야 할 때이다. 짜증과 속상함이 치밀어 오르고, 허전함과 외로움이 밀려올 때야말로, 우리가 믿음을 발휘하여 하나님께 구조의 손을 뻗칠 때이다. 시커먼 검은 구름이 마음을 덮쳐올 때야말로 산 믿음을 통하여 흑암을 꿰뚫고 구름을 흩어 버림으로써 암흑 저편에서 여전히 나를 바라다 보고 계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쳐다 보아야 할 때이다. 참된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의지하는 것인데, 그 말씀에 순종하는 자들만이 하나님의 말씀이 약속하는 축복을 주장할 수 있다. 바로 이것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는 말씀의 의미이다(요 15:7).

무엇으로 복음을 받아야 하는가?
    우리는 복음을 무엇으로 받아야 하는가? 복음을 이성으로 받아야 하는가? 감정으로 받아야 하는가? 우리는 복음을 양심과 생애로 받아야 한다. 복음을 양심과 생애로 받는 대신에 감정으로 받는 사람들은 결국에는 복음을 버리고 떠나가게 된다. 지금도 수 많은 사람들이 복음을 받고 그리스도께 나왔다가, 다시 복음을 버리고 떠나가고 있다. 복음을 양심과 생애로 받는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평안과 행복을 발견하지만, 복음을 감정으로 받은 사람들은 감정이 식어지면 복음에 대하여 싫증을 느끼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가고 만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성품과 생애를 준비시키고 연단하시기 위하여 계획하셨던 섭리와 역사가 미처 이루어지기도 전에 복음을 버리고 떠나간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진실함을 시험하시는 시간이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말세에 예수께서 곧 재강림하신다는 엄숙하고 두려운 기별이 전해질 때, 그 기별은 듣는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휘저어 놓게 된다. 사람의 마음을 읽으시는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격앙된 감정과 흥분을 보시면서, 그들이 정돈된 마음으로 자신들의 신앙적 입장을 결정할 수 있는 때를 기다리신다.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를 기만하지만 않는다면, 그분께서는 흥분된 감정이 정돈될 때까지 시간을 허락하실 것이며, 그 다음에 당신을 따르는 백성들의 순종과 진실함을 시험하심으로써 그들의 신앙이 어떠한가를 살피신다.

하나님의 은혜인가? 나의 노력인가?
    사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의한 변화를 이야기 하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자신도 모르게 자신의 힘과 의지로 자신의 신앙과 생애를 억지로 변화시키고자 하는 잘못을 쉽게 범하기 쉽다. 오직 거듭난 마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만이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할 수 있고, 진리와 율법에 완전히 합치된 마음에만 완전한 평화가 깃들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얼마나 자주 스스로의 노력으로 마음의 평화를 만들어 내고, 구원의 확신을 얻어내려고 노력하는가?

    변화의 중심은 언제나 마음이다. 우리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계획은 언제나 마음의 중심에서부터 시작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감정을 고조시키는 어떤 기적이나 예식이 아니라, 그분의 생명이다. 그분의 생명이 있는 삶은 언제나 어디서나 풍요롭지만, 생명이 없는 곳에는 언제나 허무와 참담함만이 존재할 뿐이다. 생명이 없는 신앙은 우리를 율법주의나 감정적인 신앙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마음의 만족과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갖기 원하는가? 감정을 끌어 올리려고 애쓰는 대신, 온 마음과 생애를 다하여 그리스도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그 속에 담겨져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아들이라!

교회 안에 “다른 복음”이 존재하는 이유
    복음은 타락한 인간에게 변화를 요구한다. 그러나 만일 복음이 요구하는대로 성품과 생애에 참된 변화가 이루어지지 못하면, 결국에 가서는 자신의 잘못된 경험과 감정의 요구에 맞춰서 복음을 바꾸어 놓게 된다. 복음이 사람을 변화시키는 대신에 사람이 복음을 변질시켜 버리게 된다는 말이다. 사도 바울은 바뀐 복음, 즉 다른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경고하고 있다. “그리스도의 은혜로 너희를 부르신 이를 이같이 속히 떠나 다른 복음 좇는 것을 내가 이상히 여기노라 다른 복음은 없나니 다만 어떤 사람들이 너희를 요란케 하여 그리스도의 복음을 변하려 함이라 그러나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 지어다.” (갈 1:6~8) 성경은 다른 복음에 대해서 이렇게 강력한 경고를 주고 있는데, 오늘날 그리스도 교회 안에 왜 이렇게 여러가지 다른 복음이 존재하게 되었을까? 그 이유를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자신의 잘못된 감정과 경험에 맞추어서 참 복음을 다른 복음으로 대치하였기 때문이다.

    복음을 의도적으로 거절하거나, 복음대로 살아가지 않는 사람의 마음에는 평안이 깃들 수 없다. 이러한 경우에 있어서, 믿음과 원칙 위에 서있지 못하고 감정 위에 자신의 신앙을 세운 사람들은 불편한 양심을 달래고, 마음의 평안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복음을 변질시키게 된다. 복음이 일단 변질되면, 사람은 죄 가운데서도 편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게 된다. 모든 사람은 선천적으로 이기적이고 세속적인 본성을 가지고 태어나기 때문에 항상 “다른 복음”을 더 선호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오직 진정으로 거듭난 그리스도인만이 “다른 복음”이 던지는 유혹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 기만의 위험
    신약 성경에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이 나오는데, 그것은 사도 바울이 기록한 자기 기만에 대한 경고의 말씀이다. “아무도 자기를 속이지 말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이 세상에서 지혜있는 줄로 생각하거든 미련한 자가 되어라 그리하여야 지혜로운 자가 되리라.” (고전 3:18) 어떻게 우리가 스스로 우리 자신을 기만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속일 수 있을까? 때때로 다른 사람들의 거짓말에 의해서 속임을 당할 수는 있지만, 어떻게 자기가 자기를 속일 수 있을까?

    대개의 경우에 있어서, 자기 기만의 과정은 매우 서서히 진행되기 때문에 거의 알아차리기 힘들다. 진리의 빛은 하나님의 말씀과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전달되거나, 혹은 성령의 직접적인 역사를 통하여 사람들에게 임한다. 진리의 빛은 놀라운 힘(power)을 가지고 역사한다.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받아들인 사람은 변화함을 받지만, 진리를 의도적으로 거절한 사람은 더욱 악하게 되거나 강퍅한 마음을 갖게 되는 것이다. 한번 자신에게 임한 빛을 의도적으로 무시하거나 거절하게 될 때, 영적 감각력도 상처를 받아서 부분적으로 마비되기 때문에 두번째 나타나는 빛은 그만큼 식별할 수 없게 된다. 그 결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흑암의 세력은 증가하게 되고 결국에는 영혼이 밤처럼 캄캄하게 된다.

    바로 이것이 자기 기만의 늪으로 빠져들어 가는 과정이다. 자신에게 진리의 빛이 이르러 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했을지라도, 그 빛을 받아들이고 순종하여 그 진리를 자신의 것으로 소유하지 않을 때, 그 사람은 자신이 빛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스스로 믿게 되고, 결국에는 자신이 어둠 속에 있으면서도 스스로 빛 가운데로 걸어가고 있다고 착각하는 깊은 기만 속에 빠지게 된다. 그리스도인이 순종도 불순종도 아닌 중간 상태에서 머뭇거리면서 진리를 앞에 두고 흥정하고 있는 동안, 사단은 그 사람의 마음을 점령해 간다.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은 사람이 진리를 거절할 때, 그는 사단의 포로가 되기로 결정하는 것이다. 이것은 매우 두려운 이야기이다.

마지막 시대에 나타날 기만
    큰 기만이 가까운 장래에 우리 모두 앞에 공개될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은 말세에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서 사람들의 눈앞에서 놀라운 이적을 행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은 마치 하나님과 사단 중간에 서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엄청난 기적이 도처에서 나타나고 짐승의 표가 세계적으로 강요되는 그 날이 오면, 모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배하든지 사단을 경배해야 하는 마지막 선택을 해야만 하는데, 그 때에 세상은 완전히 두개의 진영으로 나누어 지게 된다. 하나님의 참 백성들은 하나님을 경배하게 될 것이고, 사단에게 속한 무리들은 짐승을 경배함으로써 그의 표를 받게 될 것이다. 안타깝게도, 대다수의 사람들은 짐승의 표를 받을 뿐 아니라,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기를 거절하고 그 표를 받지 않는 소수의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고 나아가서는 그들을 죽일 것인데, 바로 이것이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있는 선과 악의 최후의 대쟁투이다.

    그런데, 한 가지 의문 사항은 “이방 종교와 하나님을 믿지 않는 세상 사람들이 어떻게 짐승의 세력에게 미혹당해서 그들과 하나로 연합하여 참된 그리스도인들을 핍박하는데 가세하게 될 수 있는가?” 라는 점이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이 의문에 대한 힌트가 기록되어 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계 13:13,14) 바로 여기서 우리는 사단이 거짓 그리스도인들과 이방 종교인들 그리고 심지어는 신의 존재를 부인하는 세상 사람들까지라도 하나로 끌어 모으는 방법을 볼 수 있는데, 그것은 사단의 대리자들이 행하는 놀라운 “기적과 이적”이다. 사단은 자신의 대리자인 거짓 그리스도인들에게 능력을 줌으로써 온갖 기적을 행하게 하는데,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는 이적을 행함으로써 온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경이로운 마음을 가지고 짐승의 표를 받도록 미혹할 것이다. 그 때 세상은 짐승의 세력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나는 경이로운 기적을 보면서 열광적인 감정의 도가니로 변하게 될 것이다.

    지구 역사의 마지막이 되어 갈 수록 거짓이 진리와 너무나 유사하게 제시되기 때문에 오직 성경 이외에는 그 둘을 분별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든 말과 기적과 행위를 시험하는 일에 있어서 유일한 기준이 되어야만 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리니” (사 8:20)
    하나님의 참 백성이라면 누구나 성경을 거짓 성직자의 영향과 마귀의 영들이 행하는 기만적인 기적에 대항하기 위한 방어책으로 사용하는데 익숙해야 한다. 사단은, 만일 사람들이 성경에 대하여 올바른 지식을 소유하게 되면, 자신의 온갖 속임수가 폭로될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사단은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을 진지한 마음으로 연구하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대는 하나님의 말씀에 나타나 있는 빛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는가? 하나님의 성령께서 들려 주시는 음성에 어떻게 반응하며 사는가? 성령께서 그대를 인도하기 위하여 보내주시는 진리의 빛에 대하여 어떻게 반응하고 있는가? 그대의 반응과 선택 위에 온 세상을 미혹하는 마지막 대 기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이 놓여 있다.
    우리에게 빛을 주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의 변화와 개혁된 삶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고후 13:5)는 말씀을 기억하여 우리 자신을 엄밀히 검토하고 우리의 믿음의 닻이 바른 진리 위에 내려 있는지 아니면 그냥 흘러 떠내려 갈 감정에 기초하여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스스로 기만하지만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성경 진리를 통하여 보다 더 밝은 빛 가운데로 우리를 인도하심으로써, 사단의 기만과 덫을 피할 수 있게 도와 주실 것이다.

한국 기독교인은...


    한국 기독교인은 매우 감정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 신앙이 감정적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리가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확인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이 진리에 의존하기 보다는 자신의 감정에 의존하게 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진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진리를 아는 사람들은 진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려고 하지만, 진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들은 감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애쓰게 된다.

    감정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알려고 애쓴다는 말이 무슨 뜻인가? 그것은 기도나 금식과 같은 종교적 의식을 할 때에 자신의 변화되는 감정 속에서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려고 하는 것을 말한다. 물론 기도와 금식이 매우 좋은 것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뒷받침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러한 것들에 몰두하게 될 때, 자칫 잘못하면 커다란 잘못을 범하게 된다. 복음과 율법이 함께 가듯이 기도나 금식도 진리에 대한 지식과 함께 가야 한다.

    진리를 정확하게 모르기 때문에 기도에 대한 응답이 빨리 오지 않을 때마다, 그리고 그들이 기다리는 기적이 원하는 방법으로 일어나지 않을 때마다 쉽게 실망하거나 불안해 한다. 그리고 기도나 기적에 의존해서 하나님의 뜻과 인도하심을 알려고 애쓰다 보니까 자칫 잘못하면 기도하는 중에 그들 속에서 생기는 감정의 변화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물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기도할 때에 마음 속에 생각을 주시고, 인상을 주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기도할 때에 생기는 모든 감정과 인상과 아이디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일 경우 커다란 문제에 봉착하게 된다. 모든 생각과 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반드시 확인되어야 한다.

    한국인들은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기준으로 구원과 축복을 확인하려고 한다. 기분이 좋으면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납하신다고 생각하고, 기분이 우울하고 낙담이 될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버렸다고 생각한다. 돈이 많이 벌리면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셨다고 믿고, 사업이 망하고 직장을 잃어버리면 하나님께서 저주하셨다고 믿는다.

    한국 기독교인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구원하셨다는 증거를 감정 속에서 찾으려고 한다. 그러기 때문에 그들은 자신의 감정을 자극하고 흥분시키는 방법으로 예배 드린다. 박수를 치면서 신나게 찬송을 부르며, 팔을 흔들고 마루바닥을 치면서 큰 소리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엄숙해야 할 교회 안에 전자 기타와 드럼과 요란한 조명이 생기게 되었고, 이러한 시설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이 뜨거워지도록 만들어 주어야 교회가 가득 차게 된다. 한국 기독교회 안에서 조용히 울먹거리면서 드리는 회개의 기도와 그 뜻을 깊이 음미하면서 부르는 찬송은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하늘이 주신 선물, 공기


사람은 공기 없이는 살 수가 없다. 밥은 한 끼 굶어도 살 수 있으나 몇 분 동안만 숨을 쉬지 않으면 사람은 죽는다. 이 사실만 보아도 우리가 매 분 아니 매 초마다 숨쉴 때 사용되는 공기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늘이 주신 눈에 보이지 않는 선물인 이 공기에 대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을까? 우리는 늘 공기를 마셔야 하는데, 건강을 위해서는 그냥 공기가 아닌 신선한 공기를 마셔야 한다. 즉 산소의 함량이 충분한 공기를 호흡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폐로 숨을 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있다. 그런데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폐로 숨을 쉬어야 하는 것은 물론, 인체내의 모든 세포가 숨을 쉬어야 한다. 왜냐하면 뇌 세포로부터 발가락 끝 세포에 이르기까지 우리 온 몸의 세포는 산소를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호흡은 우리의 폐에서 시작되지만 적혈구를 통해 신체의 각 부분에까지 미친다. 60초마다 각 혈구는 산소를 전달한 후 폐로 돌아와 재충전을 받는다. 사람이 건강하려면 좋은 피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좋은 피란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깨끗한 피, 즉 몸에 필요한 산소와 영양소를 적당히 함유하고 있는 순수한 피를 말한다. 피는 각 조직과 세포에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하여 생명을 유지시킨다. 그런데 오염된 공기는 피를 더럽히고 적혈구와 백혈구에 산소를 제대로 공급하지 못하게 하며 백혈구를 약하게 하여 인체의 저항력을 낮추어 각종 질병을 발생하게 한다. 반면에 산소가 풍부한 깨끗한 공기는 우리의 피를 깨끗하게 하고 혈액 순환을 도와 우리의 건강을 증진시킨다.

 

산소와 저항력

저항력이란 외부로부터 인체에 침입해서 병을 일으키는 병원체들을 방어하는 인체의 방어능력을 말한다. 우리 몸의 면역구조에는 질병과 싸우는 여러가지 백혈구와 단백질들이 있다. 이들 면역 물질 중에 가장 강력한 물질의 하나가 티(T)임파구인데, 이것을 만들어 내는 과정에는 흉선에서 분비되는 다이모신(Thymosin)이라는 홀몬이 깊이 관여하고 있는 것이 학자들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런데 이 홀몬이 잘 분비되려면 뇌에 있는 시상하부(Hypothalamus)에서 홀몬 분비 촉진 요소가 되는 물질이 잘 나와야 하는 데, 뇌에 산소가 부족하면 이 시상하부가 기능을 잘 하지 못하게 되어 다이모신 분비를 촉진시키는 기능이 감퇴되고 결국 흉선에서 티 임파구를 많이 못만들게 되므로 몸의 저항력이 약해진다. 또 백혈구와 다른 면역세포들이 균을 잡아먹을 때 많은 에너지가 필요한데 산소없이는 이 에너지를 발휘할 수 없으며 오염된 공기는 백혈구의 역할을 전폭적으로 감소시키므로 산소의 함량이 많은 신선한 공기를 몸에 공급하는 것은 우리의 저항력을 높이기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또한 인체의 저항력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엔돌핀이란 홀몬은 사람이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고 감사와 믿음과 기쁨에 찬 생활을 할 때와 신선한 공기를 마실 때 많이 분비되어 저항력을 높여준다고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졌다.

 

우리가 마시는 공기와 만성질환

공기오염이라 하면 우리는 대개 도시의 공장지대나 차량이 붐비는 시가지를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옥외 공기 오염은 우리가 24시간 노출되는 것이 아니고 가끔 또는 일정한 시간만이 노출되는 것이므로 사실 그것보다 더 신경을 써야 하는 것은 실내 공기이다. 많은 학자들이 실내 공기의 오염에 대해서 연구를 하였는데 그것은 예상 외로 만성 질병과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실내 공기 오염의 원인

1. 난방장치 원료의 연소로 인한 가스 ; 난로 (가스, 석유, 석탄, 연탄 난로), 쎈트럴 가스 히팅, 프로판 가스 히팅, 가스 오븐 등의 난방 장치의 연료들은 그것이 탈 때마다 독한 가스나 미립자적인 먼지들을 집안에 가득 채워 실내에 공기오염을 일으키는데, 그것이 우리의 호흡기를 통해서 혈액내로 흡수되면 만성질환을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자연 가스나 프로판 가스, 어느 가스거나 그것에는 하이드로 카본이라는 화학 독성 물질이 들어 있어서 이것이 만성 질환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 독성은 부엌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는 주부들에게 근육통, 우울증, 두통, 기관지염, 천식, 신경정신 증상 등을 초래하게도 한다. 그러므로 환풍에 각별히 신경을 써서 공기 정화기를 사용하거나 창문을 늘 열어두도록 한다. 가스 대신 전기나 증기를 사용하는 더 이상적인 난방 장치를 하는 것이 건강에 좋다.

2. 각종 스프레이와 페인트와 베니쉬 (가구를 빛나게 하는 도료의 일종) ; 머리에 뿌리는 헤어 스프레이, 에어 후레쉬너, 뿌리는 살충제들에는 우리 몸에 해로운 화학물질들이 들어 있으며 가구와 마루에 광택을 내는 각종 왁스들 (Furniture Polishes)과 페인트에는 강한 독성물질이 있으므로 새로 페인트를 칠한 집이나 새 가구가 있는 집, 또는 각종 스프레이를 사용할 때는 반드시 문을 열어 환기를 충분히 시키도록 하고 직접 흡입하지 않도록 한다.

3. 각종 세제와 청소 용품 ; 대부분의 세제에는 클로락스가 섞여 있는데 이것은 클로린보다 더 독하며 암의 원인이 된다. 꼭 필요하여 세탁에 사용할 경우에는 사용후 물에 오래 담가 빨래에서 클로락스가 다 우러나게 한 후 햇볕에 말려 입는 것이 바람직하다. 세탁기에 세탁을 할 때 여분의 남아있는 세제도 몸에 해로우므로 독성이 없는 건강 세제를 쓰며 여러번 헹구어 내도록 한다. 또 에이젝스나 물로 된 청소제들도 인체에 해로우므로 너무 과다하게 사용하지 않도록 조심하며 사용후 물로 잘 씻어내도록 해야 할 것이다. 청소시 창문을 활짝 열어 놓고 하며 에이젝스 등의 청소 용품의 가루를 흡입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카페트를 샴푸할 때 사용하는 화학 약품들에는 포름 알데하이드(Form Aldehyde)가 들어 있는데 이 약품은 카펫 샴푸 후에도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이 약품이 암을 일으킨다는 보고가 있다. 그러므로 카펫 샴푸는 스팀으로 된 샴푸 기계로 하는 것이 좋다. 사실 가장 건강적인 방법은 카펫보다 마루처럼 나무로 된 바닥에서 사는 것이 알러지도 예방되고 제일 좋다.

4. 흡연 ; 한 개피의 담배는 약 6분간의 생명을 단축시킨다. 흡연자는 비흡연자에 비해 약 68%나 빨리 사망한다. 담배로 인한 병 중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암인데, 그 중에서 폐암이 으뜸이다. 담배를 피우면 니코틴(Nicotin)과 타르(Tar)라는 물질이 폐로 들어가서 혈액과 임파계통을 통하여 온 전신에 퍼지고 그리하여 각종 암, 인후암, 대장암, 전립선암 등 각종 암과 폐기종, 동맥경화, 고혈압, 심장병 등 무서운 질병을 일으키는데 담배를 피우는 가족 옆에서 하는 간접 흡연도 이에 못지 않게 위험하다.

5. 곰팡이 ; 곰팡이는 실내외를 막론하고 햇볕이 잘 들지않는 어둡고 침침한 곳에서 자라며 여러가지 독소를 뿜어낸다. 이것을 마이코톡신 (Mycotoxins) 이라고 부르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아플라톡신 (Aflatoxins)은 간암과 간경변을 일으키고 모든 다른 곰팡이들은 혈관벽을 뚫고 들어가 신체 각 부분에 염증을 일으키기도 하며 또 이 곰팡이들은 알러지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샤워장이나 세면대, 조리대와 카펫 밑바닥 등이나 심지어 집안에서 키우는 화초에도 서식하므로 자세히 살펴보고 집안에 통풍이 잘 되도록 하며 하루에 한번 이상 꼭 햇볕이 들도록 창문을 열어 놓는 것이 좋다. 특히 미국의 트레일러 홈(모빌 홈)에는 밑에 스커팅을 두르는데 그 밑에 습기가 많이 차게 되어 곰팡이가 서식하기 알맞으므로 그 곳을 통풍이 잘 되도록 조치를 취하는 것이 좋다.

공기와 관련된 건강법
1. 오염으로부터 벗어난 곳이나 시골에 사는 것이 좋다.
2. 늘 신선한 공기를 호흡하여 피를 깨끗하게 하라.
3. 실내 공기 오염으로 인해 여러 가지 질병에 걸릴 확률이 있으므로 옥외 활동을 많이 하는 것이 좋다.
4. 사무실이나 집안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야 하는 사람들은 실내 공기 오염에 주의하며 통풍과 공기 정화에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5. 올바른 호흡법을 익혀서 일상생활에 적용하라.

당신의 피를 더럽게 하며 저항력을 낮추는 요소들
* 화학물질들 - 집안의 화학물질, 토양과 식품의 화학물질,
* 환경 오염 - 공기 오염, 수질 오염, 담배, 곰팡이, 일광 부족
* 식생활 - 설탕, 정크 푸드(Junk food), 가공 식품, 간식, 과식, 영양 부족,
* 부절제 생활 - 과로, 운동 부족, 불규칙 생활, 음주, 흡연
* 정서적 환경 - 분노와 좌절, 신앙이 없음, 사랑의 불충분, 근심, 걱정, 불안, 초조, 우울

 

건강을 향상시키는 호흡법

우리가 태어날 때 숨을 쉼으로써 인생이 시작되고,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인생이 끝난다. 그런데 태어나서 호흡을 시작하는 때부터 마지막 숨을 거둘 때까지 어떤 방법으로 호흡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건강 상태가 차이가 난다는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올바르지 못한 호흡은 활력을 감소시키고 신진 대사를 약화시킨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지 않고 억제하면 피곤, 무력감, 빈혈, 의기소침 등이 초래된다.

갓난 아기들이 숨쉬는 것을 지켜보라. 숨을 들이마실 때마다 가슴은 거의 늘어나지 않고 그 작은 복부가 팽창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숨을 내쉴 때는 반대 현상이 일어난다. 성인의 호흡을 지켜 본다면 복부 근처의 움직임이 거의 없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대신 가슴이 오르내린다. 대부분의 성인은 출생시에 가졌던 정상적인 호흡 방법을 잊어버렸거나 제한하여 왔다. 그러므로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얕은 호흡을 하여 우리 몸에 충분한 산소가 공급되도록 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우리 몸속에서 나와야 하는, 더러워진 공기 이산화탄소를 밖으로 충분히 뿜어내지 못하고 그냥 몸속에 머물러 있게 함으로 여러가지 좋지 않은 현상을 몸에 일으키게 되는 것이다.
노년기의 환자를 산소량이 약간 증가된 밀실에 모셨을 때 정신 기능이 개선되고 환자들이 한층 더 활동적이 되었다는 연구 보고가 있다. 산소의 보충이 이런 차이를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그 이유는 나이가 들면 뇌동맥 경화증이 생기게 되어 뇌에 운반되는 산소를 제한하기 때문이다. 뇌동맥이 경화되지 않더라도 올바른 심호흡을 하지 않으면 폐가 충분한 공기를 얻지 못하므로 젊은이도 노년기의 증상과 비슷한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즉 올바르게 호흡하지 않으면 우리는 삶의 모든 분야에서 기억력, 창조력, 집중력을 빼앗기게 되며 의지력, 판단력, 식별력 등과 같은 정신 활동을 무디게 만드는 결과를 초래하는 것이다.

정서와 심호흡

또한 심호흡은 정서와 깊은 관계가 있다. 정신과 의사인 알렉산더 로우웬 (Alexander Lowen) 박사는 올바른 호흡을 방해하는 감정의 억제에 대해 연구하였다. 그는 말하기를 ‘정서적인 억제, 즉 감정의 억제와 스트레스는 근육 긴장의 결과를 초래하여 호흡을 제한시키며 이렇게 해서 억제받은 호흡은 결과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호흡 습관을 갖게 한다’고 하였다. 정신 분열증 환자는 윗가슴으로 숨을 쉬는 경향이 있고 반면에 신경증 환자는 겉보기에 횡경막으로 호흡을 한다. 로우웬 박사는 바른 호흡법을 터득함으로써 정신병 환자들이 정상적인 생활을 되찾는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발표했다.

올바른 호흡법

이렇듯 올바르게 호흡한다는 것은 우리의 정신과 건강에 큰 도움을 줄 수 있다. 호흡법을 개선한다는 것은 비교적 쉬운 절차이지만 면밀하고 충실한 청사진이 뒤따라야 한다. 수년 동안 익숙해진 습관을 바꾸기 위해서는 집중, 근면, 인내가 필요하다. 그러면 올바른 호흡법에 대해 알아보자.

* 복식 호흡법
1. 허리띠를 풀고 꽉 죄는 옷을 벗어라.
2. 바닥에 반듯이 누워 무릎을 굽힌 채로 몸의 움직임을 주시하기 위해 머리밑에 베개를 두라.
3. 최대한으로 허파를 비우고 입을 통해 숨을 내쉬어라.
4. 코를 통하여 서서히 숨을 들이마시고 배가 공기로 가득 채워진 것처럼 나오게 하라. 복근이 이완되면 횡경막은 복강 쪽으로 더 내려간다. 이렇게 해서 더 능률적인 호흡이 이루어진다.
5. 공기는 항상 횡경막 위의 허파에 머물러 있으며 복부로 내려가지 않는다. 그러나 허리와 다리가 텅 빈 것으로 상상해 보라. 숨을 들이마실 때 공기가 폐뿐만 아니라 복부와 다리, 심지어는 발가락까지 내려간다고 상상해 보라. 그리고 공기를 한 모금 더 마실 수 있을 때까지 계속 들이마셔라.
6. 숨을 내쉴 때는 입술을 통하여 휘파람을 불듯이 입술을 모은 상태로 숨을 내쉬어라. 또 숨을 내쉬는 동안 허리를 굽히고 복부 근육을 꽉 죄어라. 짧고 세게, 서너번 기침을 하면서 숨을 내쉬는 동작을 멈추어라. 최대 효과를 위해 10~15회 반복하라.
7. 앞에 했던 동작을 반복하면서 이번에는 가슴과 복부 호흡을 연결해서 동시에 실시하라. 즉 복부가 반쯤 찰 때까지 숨을 들이마신 후 잠시 멈추는 듯이 하면서 복부 근육을 사용하여 공기를 아래 늑골로 밀어넣고(입이나 코로 공기를 내보내지 않은 상태에서) 늑골을 팽창시켜라. 이 동작이 끝나면 복부 근육은 공기가 약간 빠져나간 것처럼 수축한다. 이때 숨을 더 들이마시고 배를 최대한 팽창시켜라. 모든 공간을 공기로 가득 채우고 입과 코로 숨을 내쉬어라. 이 연습을 10회 반복하라.

이 연습을 아침 저녁으로 적어도 1주일 정도 계속해야 한다. 며칠 쉬었다가 다시 1주일 동안 반복하라. 몇 주가 지나면 큰 차이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 연습들은 당신이 매번 들이키는 공기의 양을 증가시키며, 무의식 세계에 침투하여 특별한 노력 없이도 더 깊은 의식적 호흡을 가능하게 해준다.

이제부터 숨을 쉴 때 자기 자신을 잘 관찰해 보아 만일 자신이 가슴으로 호흡하는 얕은 호흡법으로 숨을 쉬고 있다면 빨리 이 좋지 않은 습관을 고쳐야 한다. 그리고 의식적으로 복식 호흡을 하려고 노력 함으로써 올바른 호흡 습관을 길러 우리 몸에 항상 충분한 산소를 공급하여 육체적으로뿐만 아니라 정신적으로 건강한 삶을 살아가자.

서론 - 성령을 받는 길

   
     삼 년 이상이나 의지하고 믿고 따르던 예수께서 이제 하늘로 떠나가실 시간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열두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은 폭탄보다 더한 충격적인 발표가 아닐 수 없었다.

    그들의 생애의 모든 기대와 소망이 그분께 있었다. 그분 때문에 그들은 모든 집과 농토와 배와 그물들과 생업들을 버렸다. 가족과 친척들과 친구들과 이웃들의 비난과 조소도 아랑곳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따랐던 것이다. 그런데 이제 훌쩍 떠나 버리시고 나면 그들은 어떻게 하란 말인가? “쿠오바 디스(주님 어디로 가십니까?)”라는 베드로의 질문에 “나의 가는 곳에 네가 지금은 따라 올 수 없으나 후에는 따라 오리라”고 하신 주님의 대답은 그들을 더욱 곤경에 빠뜨리게 하였다.

    이렇게 당황하는 제자들에게 마치 다정한 아버지처럼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위로의 말씀을 꺼내시기 시작하셨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예수께서는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셨다. 다시 말하자면, 예수님 자신이 그들에게 보혜사였었기 때문에 이제 떠나가시는 마당에 다른 보혜사를 그들을 위하여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는
것이었다. Comforter(보혜사) 라는 영어 단어가 내포하고 있듯이 “필요할 때에 도움을 주는 조력자”라는 뜻으로서 “항상 곁에 있어서 위로하며 길을 인도해 주는 이”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낱말이다. 성령의 임재는 그들에게 마치 예수께서 항상 그들 곁에 계셔서 가르치시고 깨닫게 하시고 해야 할 일을 알게 하시고 갈길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그와 꼭같은 역할을 해 주실 것이라는 말씀이었다.

    예수님의 말씀의 의미를 아직 확실하게 이해하지 못한 채 어안이 벙벙한 제자들에게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계속해서 차근 차근 설명해 주셨다. “저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이 능히 저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저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터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았고 너희도 살겠음이라. 그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요 14:17-20). 예수께서는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셨다. 진리를 가르치시고 진리로 인도하시고 진리를 깨닫게 하시는 것이 그분의 직분이라는 말씀이다. 같은 장 26절에서 주께서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고 말씀하신 것으로 보아서도 성령의 직분은 예수께서 그들을 위하여 하셨던 그 똑같은 일을 그들을 위하여 해 주시는 것이었다. 예수께서 그들을 생명의 진리의 길로 늘 가르치시고 인도해 오셨던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그들이 고아처럼 내버려질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신 것이었다.

    성령은 영이시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도 영이시다(요 4:24).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동일한 시간에 모든 곳에 존재하실 수 있는 무소부재의 능력을 가지고 계시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등하신 예수께서는 육체로 이 땅에 오시었다. 우리 죄인들과 함께 살면서 가르치시고 보여 주시고 또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제물이 되시기 위해서 사람의 육신을 취하신 채 이 땅에 임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예언대로 모든 사업을 다 이루신 후, 다시 하늘로 올라가시는 시점에서, 불쌍한 제자들을 위하여 놀랍고도 위대한 한가지 선물을 약속해 주시고 계신 것이었다. 육신을 쓰시고 임하신 예수께서는 그들과 항상 어느 곳에서나 동시에 같이 계실 수가 없으셨다. 그래서 이제는 다른 보혜사이신 성령을 그들에게 보내어 주심으로써, 그들이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그들 각자 한 사람 한 사람과 언제나 함께 계시겠다는 엄청난 약속을 주신 것이었다. 이 약속은 제자들뿐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약속이었다. 성령에 대한 약속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실 수 있는 선물 가운데서 가장 크고 좋은 선물이었다. 이제 예수께서 하늘로 다시 돌아가시는 입장이셨으나 그들은 홀로 버려진 바 되지 않을 것이었을 뿐더러, 그들은 더욱 더 놀라운 영적 체험과 주의 영의 인도를 받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러하나 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요 16:7).

    성령에 대한 문제는 기독교회 역사에 있어서 항상 토론과 이견의 주제가 되어 왔다.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있어서 성령의 역사를 마치 능력을 주고 기적을 베풀게 하며 환희의 경험을 가져다 주는 매개체로서만 이해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히려 성령을, 그리스도인들을 진리로 인도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깨닫게 하시는 분으로 설명하셨다. 요한 복음 7:37~39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명절 끝날에 예수께서 서서 외쳐 가라사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 나리라 하시니 이는 그를 믿는 자의 받을 성령을 가르켜 말씀하신 것이라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신 고로 성령이 아직 저희에게 계시지 아니하시더라).” 여기에서 예수께서 아직 영광을 받지 못하셨다는 의미는 아직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았다는 의미이다. 예수께서는 우리들을 위하여 희생하시는 당신의 고통스러운 죽음을 오히려 영광이라고 생각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표현하신 것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부터 승천하시기 전까지 당신의 제자들과 함께 보내신 약 40일간의 황금같은 시간동안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성경이 주님 자신에 대하여 기록한, 즉 메시야에 대하여 예언하고 설명하여준 성경 말씀들을 찾아서 설명하여 주시는 일로 대부분 시간을 보내셨다. 누가복음 24:25-27의 말씀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간접적으로 시사해 주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가라사대 미련하고 선지자들의 말한 모든 것을 마음에 더디 믿는 자들이여 그리스도가 이러한 고난을 받고 자기의 영광에 들어가야 할 것이 아니냐 하시고 이에 모세와 및 모든 선지자의 글로 시작하여 모든 성경에 쓴 바 자기에 관한 것을 자세히 설명하시니라.”

    그러므로 제자들이 메시야의 사명과 사역에 대한 성경에 기록된 진리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들은 성령을 받으시고 직접 체험하셨던 예수께서 성령을 이해하시는 것처럼 성령에 대하여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요한복음 7:39은 저희에게 아직 성령이 계시지 아니했다고 기록한 것이다. 성령께서는 항상 이 세상에 존재해 오셨다. 십자가 이전에도 성령께서 계셨었다. 창세기 1:1절에 하나님의 신이 수면에 운행하셨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인간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이해하고 올바로 받아들이기 전까지는 그들을 통하여 능력을 행하실 수가 없는 것이다. 예수께서 성령에 대하여 설명하시면서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요 16:8)고 말씀하시었다. 그 말은 과거에 지은 죄들과 현재에 의롭게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의 생활, 그리고 미래에 받을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양심에 자각을 주는 일을 하실 것이라는 뜻이다. 다시 말해서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그리스도인이 죄를 떠나서 의롭게 살아가도록 촉구 하신다는 뜻이다. 사람이 십자가 앞에 나아가 죄를 회개하고 버리고, 하나님의 진리대로 개혁하여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인도하고 감화하시는 분은 하나님의 영 즉, 성령이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성령을 받고자 원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충만함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 먼 길을 마다하고 매일 새벽 기도회에 참석하여 성령을 달라고 정성껏 기도하는 교인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러나 우리들에게 문제가 하나 있다. 많은 경우에, 사람들은 성령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성경적으로 알지 못하면서 성령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성령께서 무엇을 원하고 계신지에 대하여 심각한 오해를 가지고 있으면서 막연히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 뜻대로 순종하지는 않으면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굴복하려고 하지는 않으면서 성령의 능력과 현시만을 원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품성을 닮지 않은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는 것은 교회나 그 당사자에게 있어서 커다란 위험을 초래하게 된다. 성령이란 인간 편의 욕심에 따라서 주어지는 장식품이 아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무엇을 구할 때에는 하나님의 뜻대로 구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령을 주시는 이유는 위에서 살펴 본 것처럼, 우리들을 진리로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해서이다. 또한 죄를 깨닫고 의롭게 살도록 양심을 일깨우시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나아가서 다른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품성과 진리를 대변하는 증인이 되도록 하시기 위하여 성령을 주시는 것이다(사도행전 1:8참조). 우리가 성령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이다. 당신께서 원하시는 뜻대로, 그리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방법과 시기에 따라서 행하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우리를 향한 성령의 뜻을 알기 위해서 기도하기 보다는 우리가 성령을 사용하여 어떠한 일을 행하기를 간구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어떤 교인들은 어떠한 능력이나 기적을 행하는 정도에 따라서 성령을 받은 증거나 하나님의 인정을 받은 표로 삼으려고 애를 쓰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이해 때문에 방언하지 못하는 사람은 마치 성령을 받지 못한 사람으로 간주되는 일을 종종 보게 된다.

    그렇다면, 성령을 어떻게 받을 수 있을까? 사도행전 5:32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고 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과 그 뜻을 순종하는 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도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는 자는 내 아버지께 사랑을 받을 것이요, 나도 그를 사랑하여 그에게 나를 나타내리라”(요 14:21)고 말씀하셨고, 같은 장 23절에는 “사람이 나를 사랑하면 내 말을 지키리니 내 아버지께서 저를 사랑하실 것이요 우리가 저에게 와서 거처를 저와 함께 하리라”고 말씀하심으로써, 하나님과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임재가 순종하는 자들에게 임하신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과 그의 계명들을 순종하고 그분의 뜻에 순복하는 것이 성령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이해할 수 있다.

    조금 늦은 감이 있긴 하지만, 흔히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에 대하여 오해하고 있는 한가지 점을 밝혀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꽤 많은 사람들이 성령을 마치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 기운이나 힘, 내지는 능력 같은 비 인격적인 존재로서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성령을 하나의 인격체이신 분으로 소개하셨다. 주님께서는 성령님을 “그가”, 또는 “저가”라고 호칭하시며 당신 자신과 동등한 인격을 갖추고 있는 개체로 말씀하셨다. 고린도 후서 3:17에서 사도 바울은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 하여 주의 영, 곧 성령을 한 인격체로 말씀하신 사실도 보게 된다. 또한 베드로도 “네가 성령을 속이고..”(행 5:3)라고 말씀하여 성령님을 인격체로 언급한 사실을 알게 된다. 히브리서 9:14은 “영원하신 성령”이라고 호칭하고 있는가 하면, 시편 139:7은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성령께서는 신성의 속성을 가진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우리는 깨닫게 된다. 또한 예수께서 침례 받으실 때에,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하늘 위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의 기뻐하는 자라”고 말씀하고 계셨고, 예수께서는 요단 강 물에 서 계셨으며, 성령께서는 비둘기 모양으로 주님 위에 임하셨던 사실로 성령께서도 하나님의 속성에 속하는 삼위 일체 가운데 한 분이시라는 사실을 미루어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께서는 우리가 새로운 믿는 자들을 얻게 될 때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주라고 분부하셨던 것이다. 이러한 이해는 우리가 성령님을 어떻게 취급하여야 할지에 있어서 큰 도움을 주게 된다. 성령님도 인격적인 하나님이시다. 예수께서 인격적인 개체를 가지신 하나님이신 것처럼 말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떻게 하면 성령의 능력을 받을 수 있는가를 알려고 애쓰기 보다는, 어떻게 하면 성령님께 쓰인 바 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에 대하여 많이 명상하여야 된다. 성령께서는 순종하는 자들 속에 임재하신다.

 

1부 - 독자와 함께 하는 성경 연구, 성령


성령이란 무엇인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문제는 성령의 운동에 관한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어느 교계에서나 날이 갈수록 성령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다 성령의 충만함과 성령의 은사를 갈구한다.

    그러나 성령의 은사를 바라며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먼저 필요한 것은 성령에 대한 올바른 지식을 갖는 일이다. 왜냐하면 성경에 기초한 올바른 지식만이 우리를 건전하고 올바른 성령의 부흥운동으로 인도해 줄 것이기 때문이다. 성령이란 무엇인가? 성령에 대해서 성경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우리는 성경으로 돌아가서 다른 인간의 가르침이 아닌 오직 성경이 말하고 있는 성령에 대한 가르침을 연구해 보도록 하자.
성령에 대한 올바른 가르침을 알고 성령을 올바로 구할 때 우리의 신앙에 큰 부흥이 올 것이다. - 편집실 -


Ⅰ. 성령의 개성
성령은 어떤 존재인가? 성령은 성부 하나님과 성자 하나님 사이에서 나오는 하나의 ‘능력’이나 ‘감화력’, 또는 추상적인 ‘힘’이나 ‘기운’이 아니고 능력을 소유하신 인격적인 존재자요 개성을 가진 존재자이다. ‘개성’이란 용어의 개념은 지력, 감정, 의지의 세 요소를 소유한 인격적인 속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면 성령이 개성을 가진 인격적인 존재자라는 성서적인 근거는 무엇인가 연구해 보자.

1. 인격적인 속성을 소유하고 있다.
* 지력을 소유하고 있다.
고전 2:10 -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성령은 모든 것 곧 하나님의 깊은 것이라도 통달하시느니라.
사 11:2 - “여호와의 신 곧 지혜와 총명의 신이요 모략과 재능의 신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신이 그 위에 강림하시리니”

* 감정을 소유하고 있다.
롬 8:26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롬 15:30 - “형제들아 내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고 성령의 사랑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기도에 나와 힘을 같이하여 나를 위하여 하나님께 빌어”

* 의지를 소유하고 있다.
고전 12:11 -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시느니라.”
행 16:6~7 -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무시아 앞에 이르러 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지 아니하시는지라.”


2. 인격적인 활동을 하신다.
* 가르치신다.
요 14: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 증거하신다.
요 15:26 -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 중보하신다.
롬 8:26 -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 말씀하신다.
딤전 4:1 -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 명령하신다.
행 13:2 -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3. 인격적인 취급을 받으신다.

* 모욕을 당하신다.
히 10:29 - “하물며 하나님 아들을 밟고 자기를 거룩하게 한 언약의 피를 부정한 것으로 여기고 은혜의 성령을 욕되게 하는 자의 당연히 받을 형벌이 얼마나 더 중하겠느냐 너희는 생각하라.”

* 속임을 당하신다.
행 5:3 - “베드로가 가로되 아나니아야 어찌하여 사단이 네 마음에 가득하여 네가 성령을 속이고 땅값 얼마를 감추었느냐”

* 훼방을 당하신다.
마 12:31~32 -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의 모든 죄와 훼방은 사하심을 얻되 성령을 훼방하는 것은 사하심을 얻지 못하겠고
또 누구든지 말로 인자를 거역하면 사하심을 얻되 누구든지 말로 성령을 거역하면 이 세상과 오는 세상에도 사하심을 얻지 못하리라.”

* 근심하신다.
엡 4:30 - “하나님의 성령을 근심하게 하지 말라 그 안에서 너희가 구속의 날까지 인치심을 받았느니라.”


4. 인격적인 신분으로 소개되었다.

* 증인(Witness)
히 10:15 - “또한 성령이 우리에게 증거하시되” 영문성경(KJV)에는 “성령은 또한 우리에게 한 증인이 되신다”고 기록되어 있다.

* 보혜사(Comforter)
보혜사란 말은 영어로 comforter(위로자)이다. 헬라어로는 파라클레토스, 즉 ‘곁에 있도록 부르심을 받은 자’라는 뜻인데 신자곁에서 위급한 일을 당할 때마다 도와주시는 분으로서, 분명하게 인격적인 존재로 묘사되어 있다.

요 14:16, 26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BR> 요 14: 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요 15:26 -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6:7 - “그러하나?내가 너희에게 실상을 말하노니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이라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가면 내가 그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5. 인칭대명사로 지칭되어 있다.

신약성경 가운데서 성령을 묘사하는 여러 경우에 남성 대명사가 사용되어진 것을 발견할 수 있다.
* 요 15:26 -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 요 16:7, 8 - “내가 그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 요 16:13, 14 -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이상의 모든 증거들을 살펴볼 때 성령은 단순한 능력이나 감화력 자체가 아니라 무엇을 알고 느끼고 행하는 인격적인 존재자요, 개성을 가지신 제 3위의 하나님이심을 명백하게 알 수 있다.


Ⅱ.성령의 거처

성령 하나님은 무소부재하시므로 어느 곳에나 거하실 수가 있다. 그러나 성령께서 특별히 거하시기를 원하는 거처가 있다. 그러면 오늘날 성령께서 특별히 어느 곳에 거하시는가?

1. 그리스도인 회중 가운데 거하신다.
요 14:16, 17 -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 그러나 너희는 저를 아나니 저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 이 말씀속에 “너희와 함께”라는 말은 그리스도인 회중을 뜻한다.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이는 곳에 함께 거하신다.

2. 그리스도인 마음에 거하신다.
고전 3:16 -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성령께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 거하신다는 사상을 갖게 될 때 우리는 우리의 마음과 몸을 깨끗하게 보존할 뿐아니라 우리의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함을 기억하게 된다.


Ⅲ. 성령의 역사

성령께서는 각 시대마다 인간들을 위해 역사해 오셨다. 오늘날에도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통하여 크게 역사하고 계시다. 그러면 오늘날 성령께서 특별히 개인을 위해서 하시는 일들 은 무엇인가?

1.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신다.
요 15:26 - “내가?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
요 16:14 - “그가 내 영광을 나타내리니 내 것을 가지고 너희에게 알리겠음이니라.”
* 성령의 첫째 직무는 죄인들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일이다. 하나님의 성령의 임재함이 없이는 마음이 감명을 받을 수도 없고 한명의 죄인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없다. 성령의 모든 역사는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어 있으며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하는 것이 성령의 하시는 일이다. 개인의 마음속에 직접적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에 의해서만 구주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밝히 깨닫게 된다.

2. 죄를 책망하신다.
요 16:8 -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성령께서는 죄를 책망하시는데 특히 하나님의 아들을 믿지 않는 불신의 죄를 책망하신다.

3. 죄를 깨닫게 해주신다.
행 2:37 -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가로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 사람으로 하여금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해주고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죄인임을 깨닫게 해주는 것은 성령의 하시는 일이다.

4.죄를 회개케 하신다.
행 2:38 - “베드로가 가로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고 죄 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니”
* 우리는 그리스도없이 죄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신이 우리의 양심을 깨우쳐 주시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다. 진정한 회개는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5. 거듭나게 해주신다.
요 14:26
-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하나님의 성령이 사람의 마음을 사로잡을 때 거기에는 생애의 변화가 일어난다. 우리의 생애의 방향을 완전히 전환시켜 주시고 새롭게 해주시는 분은 곧 성령 하나님이시다. 더 나아가 우리의 품성을 변화시켜 주심으로 신의 성품에 동참하게 해 주시는 분도 성령 하나님이시다.

6. 진리를 깨닫게 해주신다.
요 14:26
-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 아무도 성령의 도우심이 없이는 성경을 이해할 수 없다.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된 것이므로 성령께서 성경의 저자이시다.

7. 죄에 대하여 승리케 해주신다.
롬 8:2 -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갈 5:16 -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 죄에 대한 모든 유전적이며 후천적인 경향을 이기게 하는 힘을 주시는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시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죄에 대하여 승리케 해주신다.

8. 거룩한 품성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신다.
갈 5: 22 -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어떻게 죄에 익숙한 인간이 거룩한 신의 성품을 맺을 수 있는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불가능하지만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주관하실 때는 가능하다. 그러므로 성령 하나님께서 마음과 생애를 주관하시도록 그에게 내맡겨야 한다.

9. 능력있는 증인이 되게 하신다.
행 1:8 -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
고전 2:4~5 - “내 말과 내 전도함이 지혜의 권하는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남과 능력으로 하여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하였노라.”
* 능력이 있는 증인이 되는 요소는 무엇인가? 그것은 성령의 능력을 받는 것이다. 우리가 성령의 능력을 받을 때만 능력있는 증인으로 세상 앞에 설 수 있다.

 

2부 - 성령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일


혹시, 자신은 이미 잃어버린 바 되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가? 낙심할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각자를 구원하시기 위한 놀라운 계획을 준비하고 계신다.

그분께서는 우리의 더럽고 추한 죄를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새롭고 깨끗한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 또한 공급해 주신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를 향한 그분의 계획을 발견함으로서, 그분의 뜻에 협력하는 것이 필요하다.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빌립보서 2:12,13.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강제적으로 이루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이루는데에 있어서, 우리의 협력을 필요로 하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이성과 양심 속에서 말씀해주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은혜를 베푸실 수 있겠는가? 또한 우리가 그분의 진리를 무시하거나 거절한다면, 어떻게 하나님께서 우리를 진리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실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시는 하나님과 협력해야만 하는 것이다.

여러분 중의 어떤 사람들은 복음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는 것을 들었을 것이다. “구원에 대해서 걱정하지 마십시요. 예수께서 그대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모든 것을 다 해주셨습니다. 그대는 그저 십자가를 믿기만 하면 됩니다.” 오늘날, 우리 모두는 교회에서 점점 더 이러한 소리를 많이 듣게 된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해야 할 선택과 결정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성령께서 우리 양심에 호소하실 때, 우리는 스스로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회개를 하기로 결정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 속에는 인간인 우리의 선택과 결정이 포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대신하여 결심해 주시거나 우리가 마땅히 해야 할 의무를 대신 해주지 않으신다. 물론, 하나님의 영은 우리의 이성과 양심 속에 역사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결심케 하시며, 그분께 우리의 생애를 바치도록 호소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결코 우리의 헌신과 결심을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신다. 우리 모두는 완전한 자유 속에서 하나님과 사단 중에서 누구를 섬길 것인가를 선택해야 한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의 대원칙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의지를 당신의 뜻과 계획에 굴복시키도록 호소하고 계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께 바치고 그분의 뜻대로 순종할 것을 결심한다면, 그분께서는 우리의 그러한 헌신을 받으시고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 마음 속에서 변화의 역사를 이루실 것이다. 그리하면 우리의 본성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게 되어서 모든 생각과 감정은 아름답고 고상하게 변화된다. 우리 스스로의 힘으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충성의 마음을 만들어 낼 수 없지만, 하나님을 사랑하기로 선택할 수는 있다. 우리의 선택과 결심 자체에는 아무런 공로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선택과 결심을 취하여서 우리의 마음과 생애에 놀라운 변화를 이루어 놓으실 수 있다.

사람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와 협력할 때, 그것은 굉장한 능력을 발휘하게 된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립보서 4:13. 우리가 그리스도께 전적으로 굴복할 때에 성령의 초자연적인 능력이 우리의 마음을 새롭게 창조하게 된다. 그 때, 우리 스스로는 도저히 성취할 수 없는 놀라운 변화가 일어난다. 인간의 마음이 변화되는 것이야말로 기적 중에 가장 큰 기적이다. 이와 같이 하늘의 능력에 의해서 채워진 영혼은 사단의 어떠한 공격 앞에도 함락되지 않는다.

우리 모두는 두 세력의 투쟁 사이에서 살고 있는데, 그것은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서 벌어지고 있는 선과 악의 쟁투이다. 우리 모두는 그 두 세력 중의 어느 한편에 속해 있다. 흑암의 왕자인 마귀의 세력에 가담하기 위해서 일부러 그를 섬기기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 단지, 빛의 왕인 그리스도와의 관계를 등한히 하기만 하면 된다.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구원의 계획에 전적으로 협력하지 않는다면, 사단이 우리의 마음을 점령하게 될 것이다. 악에 대한 유일한 방어는 그리스도의 진리와 그분의 영을 마음에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스스로의 힘으로 마귀와 싸워 이길 수 없다. 그러나 우리가 마음을 열어서 성령의 음성을 받아들이기로 선택한다면,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주관하시는 강력한 성채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이 하나님과 협력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인가? 우리의 마음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대하여 나타내는 우리의 선택과 결정을 의미한다. 다음에 나오는 것들은 우리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역사와 그것에 대하여 나타내는 우리의 반응을 단계적으로 설명한다.

A. 하나님께서 히시는 일

1.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이끄신다.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겠노라.” 요한복음 12:32. 인간을 구원하시는 가장 첫단계로서,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확증하신 당신의 사랑을 근거로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인류를 당신께로 이끌고 계신다. 그분의 사랑을 쳐다보는 사람마다 그분께 이끌림을 받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바람과 같이 보이지 않는 능력으로 사람의 마음에 끊임없이 역사하고 계신다. 사람은 자신이 인식하지 못하는 동안에도 영혼이 조금씩 그리스도께 이끌리게 된다. 그러다가 성령께서 당신의 섭리를 통하여 그 영혼에게 보다 직접적으로 호소하시면, 그 영혼은 마음을 활짝 열고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게 된다. 사람들은 이것을 갑작스런 회개라고 말하지만, 사실상 그것은 하나님의 영께서 오랜 시간과 긴 과정을 통해서 꾸준히 그 영혼의 마음문을 두드리신 결과이다.

A. 우리가 해야 할일

1. 하나님의 이끄심에 저항하지 말라.
“너희는 삼가 말하신 자를 거역하지 말라. 땅에서 경고하신 자를 거역한 저희가 피하지 못하였거든 하물며 하늘로 좇아 경고하신 자를 배반하는 우리일까보냐.” 히브리서 12:25.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진리를 보여주시고, 또한 당신의 음성을 우리의 마음에 들려 주심으로 우리를 당신께로 이끄실 때, 우리가 해야할 일이 무엇인가? 저항하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나는 이미 구원받았다”는 막연한 자기만족에 빠져 있으면, 그분의 이끄심에 저항하게 될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점에 있어서 크게 잘못 생각하고 있다. 자신의 생활과 마음 속에 자신이 알고 있는 죄와 죗된 습관들을 그대로 품고 있으면서도, 자신은 하나님과 구원의 관계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치명적인 기만이다. 성령께서 우리의 죄를 지적하시면서, 회개의 역사를 시작하실 때에 그분의 음성에 저항하지 말라. 성령께서 성경을 깊이 연구하라고 그대에게 속삭이실 때, 그분의 음성에 저항하지 말라. 하늘은 죄인의 협력을 기다리고 있다.

B.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2. 하나님께서는 성령을 통하여 우리의 죄와 더러움을 보여주시고, 의와 심판에 대하여 우리를 깨닫게 하신다.
“그(성령)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한복음 16:8.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이끄심에 저항하지 않는다면, 하나님께서는 두번째 단계로서 우리 자신의 죄와 허물을 보여주신다. 우리로 하여금 죄를 깨닫게 하시고 용서의 필요를 느끼게 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성령께서 영혼의 마음에 감동을 주시지 않는다면, 어떠한 말과 논리로도 그 영혼의 마음을 열 수 없다. 오직 자신의 죄를 통회하는 자만이 용서를 받을 수 있는데, 우리로 하여금 죄를 통회할 수 있도록 회개의 정신을 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이다. 죄는 마땅히 죄라고 불리움 받아야 한다. 평안하고 듣기 좋은 기별만을 전하는 성직자는 신자들을 치명적인 기만 속으로 몰고 가게 된다. 죄의 사슬에 묶여 있는 자들이 필요로 하는 기별은 심령을 진리의 검으로 쪼개는 영감적인 말씀이다. 그들로 하여금 죄의 사슬을 끊고 나오도록 호소하는 강력한 기별이 전해져야 한다. 만일 목사가 영혼들을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하나님의 심판과 의에 대한 정확한 진리를 신자들에게 설명해 줌으로써,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도우심의 필요를 절실하게 느끼게 해야한다. 목사가 성령의 감동하심으로 설교를 할 때, 신자들은 하늘을 향하여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라고 외치게 될 것이다.

B. 우리가 해야 할 일

2. 자신의 죄악을 깨닫고 그분의 의를 간구하라.
“너는 오직 네 죄를 자복하라.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를 배반하였고.” 예레미야 3:13. 성령께서 우리에게 죄와 더러움을 보여 주실 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 정직한 마음으로 죄를 고백하는 것이다. 참된 자복은 자신이 무슨 일을 했는지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이다. 어떤 사람은 단지 하나님께만 죄를 고백하면 될 것이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자신이 손해를 입힌 사람에게 찾아가서 잘못을 했다는 고백을 해야할 경우도 있다. 죄를 고백할 경우에는 반드시 그 죄를 구체적으로 지적하여 고백해야 하는 것이 참된 고백을 하는 사람의 자세이다. 자신에 대한 변명의 정신은 사단의 정신이다. 참된 자복의 정신이 없는 사람은 자신의 죄를 겸손하게 고백하는 대신에, 다른 사람이나 환경에게 죄의 책임을 돌리는 비난의 정신을 나타낸다.

C. 우이가 해야 할 일

3.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회개의 정신을 나누어 주신다.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죄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사도행전 5:31. 성령을 통하여 자신의 죄와 더러움을 깨닫고 그리스도의 깨끗하신 의를 사모하는 영혼에게 하나님께서는 세번째 단계로서 회개의 심령을 선물로 주신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독생자를 십자가에 내어주시는 사랑을 보여주시면서, 당신의 성령을 통하여 우리에게 회개하라고 호소하고 계신다. 회개는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선물이다. 우리 스스로 억지로 회개하는 심령을 만들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기 전에, 먼저 성령을 통하여 그 죄인의 마음을 감동시켜서 회개케 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명상할 때 그런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 죄인들로 하여금 죄를 회개하고 그분께로 돌아오게 만드는 원동력이 된다.

C. 우리가 해야 할 일

3. 죄를 자복하여 버리고, 그분께 마음을 바쳐라.
“자기의 죄를 숨기는 자는 형통치 못하나 죄를 자복하고 버리는 자는 불쌍히 여김을 받으리라.” 잠언 28:13. 하나님께로부터 회개의 심령을 받은 사람은 죄를 자복함과 동시에 그분께 온 마음을 바치게 될 것이다. 우리가 자신이 범한 죄를 인정하고 그 죄를 버리기로 결심하는 순간, 인간의 영혼과 구세주 사이에 가로막혀 있던 장벽은 완전히 무너져 내린다. 그리스도께서는 믿음으로 당신께 나아오는 모든 자들을 죄로부터 온전히 구원하신다. 그러나 만약 죄인이 자신의 죄를 고집하고 포기하지 않으면, 그는 구원받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의는 회개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어떤 죄도 가리워주거나 덮어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회개하고 버린 의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지, 죄를 그대로 품고 있으면서 고집하는 죄인을 결코 의롭다고 선언하지 않으신다. 죄를 미워하는 자는 죄를 버릴 것이요, 죄를 사랑하는 자는 죄를 그대로 품고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안에서 당신의 역사를 이루시기 위해서, 우리의 모든 것을 요구하신다. 우리가 그분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것을 그분께 드릴 때, 비로소 우리는 토기장이의 손에 맡겨진 진흙처럼 당신의 뜻대로 빚어지게 된다.

D.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4. 우리를 용서하시고, 심령을 깨끗하게 회복시켜 주셔서 거룩한 생애를 살 수 있게 변화시키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 요한일서 1:9. 하나님께서는 죄를 자복하여 버리고, 마음을 하나님께 바치기로 결심한 사람의 심령을 새롭게 변화시켜 주신다. 로마 병정이 십자가에 매달려 있는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찔렀을 때, 두가지의 액체가 흘러 나왔다. 한가지는 피였고 다른 한가지는 물이었는데, 피는 믿는 자들의 죄를 씻어주심을 표상한 것이고, 물은 예수께서 믿는 자들에게 새로운 생명을 주는 생명수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으로 나오는 영혼마다 죄의 용서 뿐만 아니라, 마음의 변화를 경험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용서는 많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님의 용서는 단순히 우리를 정죄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사법적인 행위가 아니다. 그것은 죄를 용서할 뿐만 아니라 죄로부터 완전히 돌아서고자 하는 마음의 소원을 주며, 또한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준다. 죄인이 십자가에 이끌려 그리스도 앞에 부복할 때에 그는 새로운 창조를 경험하게 된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을 통하여 새로운 마음과 새로운 정신으로 지음을 받게 된다.

D. 우리가 해야 할 일

4. 하나님과 성령의 역사를 믿고 받아 들여라.
“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한복음 3:14. 만일 우리가 자신의 죄를 고백하였고, 죄를 마음에서 버리기로 결심하였으며, 우리 자신을 온전히 하나님께 바치기로 헌신하였다면, 이제 그리스도께 가서 죄의 용서와 함께 새로운 마음을 달라고 간구하는 믿음의 기도를 드려야 한다. 그런 다음에는 그분께서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렇게 해주실 것을 믿음으로 받아 들이라. 비록 죄인들이 스스로를 구원할 수는 없다고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얻기 위해서 해야 할 일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께 나아가야 하며, 그분께서 주시는 용서와 창조의 능력을 믿음으로 받아 들여야 한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그 믿음을 행사하는 선택과 결정은 우리가 해야 할 몫이다. 믿음이란 죄인이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은혜와 자비를 붙잡기 위해서 손을 뻗치는 것을 말한다. 그리스도인이라고 공언하는 많은 사람들이 구원에 있어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인 어린아이와 같은 단순한 믿음을 행사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그들은 영혼을 치료해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받기 위해서 손을 뻗치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께 자신을 바칠 때, 인간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초자연적인 능력이 자신에게 임한다는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E.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

5. 우리 마음 속에 거하셔서 승리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로마서 1:16.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 권세는 사람이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는 권세이다. 사람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일 때, 그는 그리스도와 같은 생애를 살 수 있는 권세도 함께 받아 들인다. 우리 자신의 힘으로는 아무런 선도 행할 수 없다. 그러나 늙은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아들을 선물로 받은 것처럼, 우리도 믿음으로 하나님의 능력을 간구할 때에는 의로운 생애를 살 수 있는 능력을 받을 수 있다.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의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 에베소서 3:16. 포도나무의 생명이 줄기와 포도송이를 돌아서 가장 낮은 실뿌리에서 가장 높은 잎사귀까지 전달되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이 우리의 영혼 속에 거하시면, 우리의 모든 말과 행동과 생각과 계획이 아름답고 신선하게 변화된다.

E. 우리가 해야 할 일

5. 매 순간마다 믿음을 통하여 많은 열매를 맺으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갈라디아 2:20.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것을 우리의 것으로 받아들일 때, 예수께서는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의 마음 속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생각과 사상과 행동을 지배하신다. 그리하여 이제 살아 있는 것은 우리 자신이 아니요, 우리 속에 거하시는 그리스도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우리 자신이 죽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가 되신다는 의미이다.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살 때에 성령의 열매가 우리의 생애 가운데 나타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 계셔서 계속해서 영양분을 공급하여 주시면, 우리는 그분께서 만드시는 열매를 맺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마음에 계실 때는 하나님의 사랑으로 인하여 마음이 부드러워지고 너그러워진다. 초조해하고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고 논쟁하는 정신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계시면, 그분의 감화력은 우리의 말과 행동을 통하여 흘러나가게 될 것이다. 마음 속에 있는 은혜는 반드시 밖으로 흘러나가게 되어 있다. 마음 속에 있는 의는 겉으로 나타나게 된다. 마음이 의로운 사람은 의로운 말과 행동을 하면서 이 세상에 빛을 전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열매가 없이 말로만 공언하는 신앙은 아무런 가치가 없다.

 

성령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성령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성령은 성령의 열매로 준비된 자에게 내려집니다.

성령은 하나님께 떼를 써서 받아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거짓을 말하는자, 진실하지 못한 자,
돈에 매매되는 자에게 결코 내리지 않습니다.

성령은 말과 생활 속에서 예수를 부인하는 자에게
결코 내리지 않습니다.

성령은 예수를 닮은 자에게 내립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완전하신 목적과 선하신 섭리를
성취하기 위해서 내려 집니다.

성령은 회개를 위하여 내려 집니다.

성령은 성경 연구와 진리의 깨달음을 위하여
내려 집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 내려 집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에게 내려 집니다.

성령은 방언과, 병고침과 기적을 위해서도 내려지지만, 그러한 기적들이 하나님의 성령을 받았다는 완전한 증거는 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장 21~23절

그러므로 기적을 행하거나 주의 이름을 부른다고 천국에 다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3부 - 십자가에서 오순절까지


이 기사는 위대한 성령의 능력과 은사를 갈망하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서 준비된 기사이다. 만일 그대가 성령 받기를 소원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제자들이 십자가 이후부터 오순절까지 50일 동안에 겪었던 경험을 이해해야만 한다.

왜냐하면 그 50일의 기간은 제자들이 성령을 받기 위하여 자신들을 준비시켰던 기간이었기 때문이다. 성령을 소낙비 퍼붓듯이 충만이 받고 싶은가? 성령 받기 위해서 기도하기 전에, 성령을 받기 위해서 준비한 제자들의 경험을 연구하라!


제자들의 경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서 돌아가신 이후, 제자들은 완전한 낙담에 빠져 있었다. 제자들의 희망의 태양은 사라졌고, 깊은 밤이 그들의 마음에 자리 잡았다. 그들은 다만 “우리는 이 사람이 이스라엘을 구속할 자라고 바랐노라” 라는 말만을 되풀이 할 뿐이었다(누가복음 24:21).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지상 왕국을 세우시려 오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은 당신의 백성들을 죄에서 구원하시는 메시아로서 오신 것이었다. 그분께서는 고난을 당하실 것이었고, 부활하실 것이었다. 그러나 잘못된 메시아의 개념을 가졌던 제자들은 예수께서 전에 여러 번 장차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를 말씀해 주셨지만, 그분께서 하신 말씀에 대해서 이해하지도, 기억하지도 못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을 때에 제자들은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믿지 아니하였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께서 삼일만에 부활하시리라는 것을 분명하게 말씀하셨지만, 제자들에게 있어서 그 말씀은 너무나 어렵게 들렸다. 그들에게 있어서 그분의 말씀은 신비하고 모호한 것으로 들려졌다. 그리하여 그들의 신앙은 사단이 그들 앞에 뿌려 놓은 안개 저편을 꿰뚫어 보지 못하였다. 예수께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라” 라고 말씀하시면서 성령이 그들에게 임할 것과 그 임하는 목적에 대해서 설명해 주셨다(요한복음 16:8,13). 그러나 실망과 슬픔과 낙담에 빠진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모든 설명과 약속을 잊어버린 채 다락방에 함께 모여 문을 굳게 닫고 그들이 사랑하던 주님의 죽음이 자신들의 운명이 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으로 떨고 있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바로 그러한 상태에 있던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던 것이다.


1. 가장 중요한 첫단계,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

    그리스도께서는 왜 제자들에게 다시 나타나셨을까? 왜 부활하신 이후 하늘로 곧 바로 승천하지 않고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을까?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 전체의 복음 전파 사업을 12명의 제자들 어깨 위에 올려 놓으셔야만 하셨다. 그래서 그분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당신의 제자들을 마지막으로 교육시키는 일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들은 아직 복음 전파사업을 위해서 준비되어 있지 못했다. 그들은 그리스도 교회의 진리에 대해서 아직 어두웠으며, 그분께서 주신 예언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그들을 그러한 상태 가운데 남겨두고 떠나실 수가 없으셨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전해야 할 복음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없었다. 그러한 상태의 제자들에게 어떻게 위대한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주어질 수 있었겠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당신의 뜻과 목적에 따라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진리를 충분히 이해하고 있으며, 깊은 회개를 통하여 모든 죄를 버렸고, 성품에 거룩한 특성들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게만 성령의 위대한 능력을 맡기실 수 있기 때문이다. 그분께서는 부활 후 40일 동안 세상에 머물러 계시면서 그들 앞에 놓인 위대한 사업을 위하여 그들을 준비시키고자 하였다.
    무엇보다도 먼저,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이 당신 자신에 관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게 되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초림과 유대인이 당신을 거절할 것과 당신의 죽으심에 관하여 구약성경에 기록해 두신 예언들을 말씀해 주시면서, 그러한 예언들의 모든 세목이 성취된 것을 보여 주셨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죽음과 부활에 대한 예언의 이해는 제자들의 신앙에 강력한 확신과 보증이 되었다. “이에 저희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게 하시고 또 이르시되 이같이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고 제 삼일에 죽은 자 가운데 살아날 것과 또 그의 이름으로 죄 사람을 얻게 하는 회개가 예루살렘으로부터 시작하여 모든 족속에게 전파될 것이 기록되었으니 너희는 이 모든 일의 증인이라.” (누가복음 24:45~48)

    제자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보낸 40일 동안, 그들은 전혀 새로운 영적 경험을 얻게 되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구약 성경이 말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였을 때, 그리스도에 대한 그들의 신앙은 더할 수 없이 굳건하게 되었다. 제자들의 신앙은 “나의 의뢰한 자를 내가 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경지에까지 이르게 되었다(디모데후서 1:12). 제자들은 자신들에게 맡겨진 사업의 성질과 범위를 깨닫기 시작했으며, 세상에 선포하기 위하여 그들에게 위임된 진리의 위대함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분의 죽으심과 부활과 같은 사건들을 천년 전부터 미리 지적하여 왔던 구약 성경의 예언들, 구속의 오묘한 경륜, 죄를 사하시는 예수님의 능력과 같은 진리들을 매우 분명하고 정확하게 이해하는 일이, 오순절의 성령의 역사를 앞둔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2. 진리에 일치하는 경험을 소유함

    그리스도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당신의 제자들에게 온 세상 사람들의 영혼을 맡기셨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남겨두신 영생을 위한 진리의 전달자들이 되어야 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하여 진리를 나누어 주는 사람들이 받게 되는 시련과 희생을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죽이려고 달려들던 사람들에게 나타내었던 그분의 동정과 사랑을 보았다. 또한 “이것을 너희에게 이름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려 함이라.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라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해야만 하였다(요한복음 16:33). 어떠한 어려움 가운데서도 인내하면서 좌절하지 않았던 그리스도의 모습을 잊지 말아야 하였다.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사업을 전진시켜야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는 모든 말과 행동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생명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였다. 그들의 신앙과 생활은 능력의 근원되시는 그리스도께 집중되어야 하였다. 그리스도의 이름은 그들의 표어요, 그들을 구별시키는 표요, 그들의 계획과 행동의 방향을 결정하는 권위가 되어야 하였다. 그들은 모든 영혼들을 그리스도 교회로 불러들여야 하였다. 복음 사업은 희생과 사랑으로 전진되어야 하는데, 거기에는 단순한 믿음이 수반되어야 하였다. 허식과 자랑을 적게 하면 할수록 사람들에게 미치는 감화는 크게 된다는 사실을 배워야만 하였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전하기에 앞서,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구원에 관한 진리를 배워야 했으며, 그리스도의 정신과 마음을 소유해야만 하였다.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순종에 대해서 가르치기 전에 먼저 그들 자신이 순종하는 법을 배워야만 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렇게 변화된 제자들에게 비로소 성령의 위대한 능력과 은사를 안심하고 위탁할 수 있으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사업이 쉬우리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들은 그들을 대항하기 위하여 일어서는 거대한 악의 세력과 맞부딪쳐야만 하였다. “정사와 권세와 이 어두움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혼”들과 싸워야만 하였다(에베소서 6:12). 그러나 그들은 홀로 싸우도록 버려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들에게 방패가 될 것이고, 그들은 다만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 그분의 진리에 순종하고, 그분의 영과 연합하여 일하는 한 실패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제 그리스도께서 가르쳐 주신 진리는 더 이상 이론이 아니라, 그들에게 생활과 신앙의 전부가 되었다. 드디어 그들은 진리와 일치하는 삶을 살게 되었다.

3.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을 소유함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께로 올라가실 때가 되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베다니로 인도하셨다. 감람산 위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축복하시면서 서서히 하늘로 승천해 올라가셨다. “축복하실 때에 저희를 떠나 하늘로 올리우”셨다(누가복음 24:51). 제자들이 승천해 올라가는 예수님을 보기 위해서 열심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두 천사가 나타나서 다음과 같은 약속의 말씀을 전하였다.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사도행전 1:10~11)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약속은 제자들의 마음 속에 항상 살아있어야 하였다.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고 한 그리스도의 약속은 환난과 시련을 앞둔 제자들에게 있어서 가장 큰 희망이 되었다.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 전에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신앙을 굳게 해야만 하였다. 그들은 재림을 기다리면서 복음 사업을 촉진시켜야 하였다. 그들이 먼저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이해해야만, 그들이 앞으로 만나게 될 가난하고 시련 속에 있는 영혼들에게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진리를 설명해 주면서 위로를 줄 수 있지 않겠는가!

    마지막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재림에 관한 진리는 매우 중요한 진리가 된다. 왜냐하면 재림이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사단은 재림에 대한 진리를 왜곡시킴으로써 사람들을 기만하기 때문이다.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 (마태복음 24:3~4) 그리스도의 재림을 사모하지 않으며, 재림에 대한 진리를 믿지 않거나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마지막 시대에 퍼부어질 놀라운 성령의 능력과 은사가 허락될 수 있겠는가?


4. 오순절 직전의 경험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제자들은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예루살렘에서 성령의 부어주심을 기다렸다. 그들은 “늘 성전에 있어 하나님을 찬송하”였다. (누가복음 24:53) 또한 그들은 하늘에 자신들을 중보하는 한 대표자를 가졌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이해하였기 때문에 깊은 경외심을 가지고 머리 숙여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아버지께 구하는 것을 내 이름으로 주시리라. 지금까지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무것도 구하지 아니하였으나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 (요한복음 16:23) 그들은 굳센 믿음을 가지고 하늘 아버지께 손을 뻗을 수 있게 되었다.

    제자들은 약속이 성취되기를 기다리면서 참된 회개로 그들의 마음을 겸비하게 낮추었고, 그들이 과거에 예수님을 괴롭게 하였던 불신을 자복하였다. 그들은 구세주의 사업의 목적을 오해하고, 그들의 사랑하는 주님앞에 믿음 없는 행동들을 보였던 자신들을 스스로 책망하였다.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자아희생의 생애의 장면들이 그들 앞에 지나갔다. 그들은 만일 그들 자신의 생애로 그리스도의 품성의 아름다움을 그대로 증거할 수만 있다면, 너무나 힘들어서 못할 수고가 없으며, 너무나 커서 못할 희생이 없다고 생각하였다. 그들은 자신들이 지나간 3년을 예수님과 다시 함께 살 수만 있다면, 얼마나 다르게 행하고 말할 것인가를 생각하였다. 만일 그들이 다시 한번 예수님을 곁에서 모실 기회를 얻는다면, 그들이 주님을 매우 깊이 사랑한다는 사실을 나타내 보이기 위해서 얼마나 열심히 노력할 것인가를 생각해 보았다. 구세주의 마음을 아프게 하였던 자신들의 말과 행동을 되돌아 보면서, 그들은 깊은 회개 가운데로 들어갔다. 자신들의 죄가 용서함을 받았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커다란 위로가 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십자가 앞에서 그리스도를 부인하였던 일을 생각하면서, 앞으로는 가능한한 담대하게 주님을 세상 앞에서 인정함으로써 자신들의 죄를 조금이나마 속죄하리라고 생각하였다.

    제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기에 적합한 사람이 되기 위하여, 그리고 죄인들을 그리스도께 인도할 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였다. 모든 불화와 높아지고자 하는 욕망은 사라지게 되었으며, 고상하고 아름다운 그리스도인의 교제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 이 준비의 날들은 깊이 마음을 살피는 날들이었다. 제자들은 자신들이 영적으로 충전되어야 할 필요성을 깊이 느끼면서 영혼 구원사업을 위한 지칠줄 모르는 정열을 달라고 주께 부르짖었다. 그들이 구하였던 것은 자신만을 위한 축복이 아니었다. 그들은 영혼 구원에 대한 부담으로 짓눌렸다. 그들의 마음은 세상에서 죽어가는 영혼들에 대한 동정으로 가득찼다. 제자들은 그들 자신을 위해서라기 보다는 세상에 있는 영혼들을 위하여 성령을 간구하였다. 그들에게 있어서 자신에 대한 애착심은 더 이상 찾아볼 수 없었으며, 오직 그리스도께서 위탁하신 복음 사업에 대한 부담만이 그들의 마음과 영혼을 누르고 있었다.

    오순절이 되어 제자들은 약속받은 성령의 선물을 간절한 마음으로 탄원하였을 때,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영적 상태에 확신을 가질 수 있으셨다. “오순절 날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급하고 강한 바람같은 소리가 있어 저희 앉은 온 집안에 가득하”였다. 놀라 어찌할 바를 모르는 제자들은 “사랑은 여기 있”다고 부르짖었다. 제자들은 나누어 주신 하늘의 선물을 붙잡았다. 그리고 그 일 후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성령의 역사에 우쭐하여져서 그것을 자랑하거나 광고하였는가? 아니다. 오히려 겸손과 인내와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일에 그들의 생애를 불태웠다. 성령의 놀라운 역사를 통하여 제자들은 하루에 수천명을 회개시키면서 그리스도 교회의 초석을 놓았다.


5. 조건이 있는 선물

    성령의 약속은 어떤 시대나 어떤 족속에게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의 거룩하신 감화가 세상 끝날까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지금도 자신을 주님과 그분의 사업에 완전히 헌신한 모든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주시고 계신다. 그러나 하나님의 모든 다른 약속들과 마찬가지로 성령에 대한 약속에도 조건이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을 간구하는 마음이 하나님의 거룩한 영의 지도에 다스림을 받지 않거나 진리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거나 잘못 오해하면, 그리고 자신이 알고 있는 빛에 일치하는 생활을 살지 않으며, 알고 있는 죄를 회개하고 버리지 않는다면, 성령의 선물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은 결코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이 증거하는 바이다.

    성령의 선물을 받고 싶은가? 성령을 받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마다 제자들의 경험을 이해해야 한다. 그들의 경험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스도를 향한 그들의 사랑이, 영혼 구원에 대한 제자들의 부담이, 그들이 했던 회개가, 그리고 제자들의 마음 속에 있던 헌신과 충성이, 오늘날 성령을 간구하는 우리 자신의 마음 속에도 존재해야 한다. 성령의 선물을 받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 자신의 마음과 생활을 준비시켜야 한다. 그리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바라보아야 한다.

    지금, 온 하늘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대표할만한 사람을 찾고 있다. 성령의 은사를 간구하기 전에 성령의 열매가 자신의 성품에 맺히기를 기도하자.

 

성경에 기록된 성령 은사의 종류

성경에는 여러 가지 종류의 은사가 기록되어 있다. 어떤 은사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과 탈렌트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용될 때,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서 권능과 능력을 부여해 주심으로써, 성령의 은사로서 활용될 수도 있다. 그러나 어떤 은사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능과는 전혀 관계없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에 따라 부여하신다. 예를 들면, 봉사하는 은사, 가르치는 은사, 사람을 다스리는 은사는 기존에 자신이 가지고 있던 재능을 하나님께서 축복해 주심으로써, 은사로서 능력 있게 사용될 수도 있지만, 예언하는 은사나 기적을 행하는 은사 같은 것들은 우리가 가진 재능이나 노력과는 전혀 별개의 것으로서, 이러한 은사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고유 권한에 속한 은사이다. 성경에 기록된 은사의 종류를 살펴봄으로써, 성령의 은사에 대하여 좀더 폭넓은 이해를 갖도록 하자.


고린도전서12:7~10

지혜
지식
믿음
병고치는 일
능력을 행함
예언
영들을 분별함
방언
방언을 통역함

 

에베소서 4:11

사도
선지자들
복음전하는 자
목사
교사

 

로마서 12:6~8

예언을 함
섬기는 일
가르치는 일
권면하는 일
구제하는 일
지도하는 일
자비를 베품

 

고린도전서 12:27~28

사도
선지자
교사
능력 행함
병고치는 일
돕는 일
다스리는 일
방언

4부 - 성령에 대한 6가지 질문


1. 성령의 역사는 신약시대의 오순절 때부터 시작되었습니까?

성경은 하나님의 창조 사업 시에 성령께서 함께 동참하셨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the Spirit of God, 하나님의 영)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창세기 1:1~2

태초부터 하나님께서는 타락한 인류에 대한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키시기 위하여 인간이란 도구들을 통하여 당신의 성령으로 역사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시대인 광야 교회에도 당신의 “선한 신을 주사 저희를 가르치”셨다(느혜미야9:20). 성령을 통하여 갈렙과 여호수아에게 용기와 믿음을 주셨으며, 사도시대에는 처음 시작하는 그리스도 교회에게 힘을 주시기 위하여 성령의 크신 능력을 허락하셨다.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에는 성령께서 수많은 순교자들에게 역사하여 종교 개혁의 길을 예비하였으며,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 성경을 모든 국가와 민족의 방언으로 번역한 것도 성령의 역사의 결과이다.

오늘날에도 동일한 성령께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고, 감동시킴으로써, 그들의 시선을 갈바리로 이끌고 계신다. 사람들의 마음에 진리를 깨닫게 하시고, 모든 종류의 편견과 불신의 벽을 무너뜨리며, 죄를 범하였을 때에 양심의 가책을 주심으로써, 진정한 회개의 정신을 갖도록 유도하고 계신다.


2. 성령을 받을 때에 어떤 느낌이나 감정을 갖게 됩니까?

성령을 받는 모든 사람들의 느낌과 감정이 동일할 수는 없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 받은 증거로써 감정의

극치를 기대하지만, 성경은 오히려 다음과 같이 성령께서 역사하시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요한복음 3:8) 우리는 바람을 보지 못하지만 바람이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있다. 비록 우리가 바람을 보지 못한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가 될 수는 없다. 우리는 하나님의 성령이 마음에 역사할 때에 그것을 볼 수 없지만, 그분의 능력은 조용한 가운데 새로운 생명을 가져다 준다. 비록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보거나 만지지는 못할지라도, 그분께서 해놓으신 결과를 볼 수는 있다. 만일 우리의 마음이 성령의 역사에 의해서 변화된다면, 우리의 생애가 성령의 임재하심을 증거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임재는 우리의 느낌이나 감정에 의존하여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성령의 임재하심은 오직 변화된 생애를 통해서만 분명하게 확증할 수 있다. 만일 우리가 온전히 자신을 비우고 마음 속의 우상과 죄를 버린다면, 그리스도의 영께서 우리의 마음 속을 충만하게 채우실 것이다. 오직 이러한 사람들만이 성령의 선물을 받을 수 있는데,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자랑치 아니할 것이며, 오직 모든 영광을 하나님께 돌릴 것이다. “오직 하나님이 성령으로 이것을 우리에게 보이셨으니” “우리가 세상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 온 영을 받았으니 이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들을 알게 하심이라.” (고린도전서 2:10,12)

우리가 하나님의 영을 받았을 때에, 우리는 어떤 황홀하고 자극적인 느낌을 얻기 보다는, 오히려 침착함과 예리한 판단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는 일에 생애를 바치게 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정서와 생애를 생각해 보자. 그분처럼 성령이 충만하였던 사람이 있는가? 그분의 생애는 감정적 환희와 흥분으로 차있는 생애가 아니었다. 오히려 희생과 봉사로 점철된 생애였다. 그분께서는 죄와 불의를 거절하셨으며, 병자들과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고 치료해 주시는 생애를 사셨다. 그분께서는 성령이 충만하신 결과로 거룩한 삶을 사셨던 것이지, 자신에게 성령이 임하셨음을 증명하기 위해서 구제와 치료를 베푸신 것이 아니었다. 그분께서는 단 한번도 자기 자신을 위하여 성령의 능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으며, 오직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일에만 성령의 능력을 구하셨다. 그리스도에게 있어서 성령 충만함은 하늘 아버지의 뜻을 조용하면서도 진지하게 행하는 순종의 삶으로 표시되었다. 그분의 삶은 사랑과 희생과 극기와 자아부인으로 꼴지워졌다. 마찬가지로 진실한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도, 이성적인 분별력과 하나님의 진리가 감정과 느낌을 지배해야 한다. 진리는 건전한 상식 위에 세워지며, 질서 있는 가정생활을 통하여 다른 영혼들에게 가장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성령의 은사를 허락하시는 가장 중요한 목적은 복음의 효과적이고 신속한 전파이다. 성령의 은사가 개인의 신앙적 만족감을 얻는 수단으로 사용되서는 안되며, 자신의 구원에 대한 확신감을 얻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정해 주신다는 마음의 안정감을 얻기 위한 도구로 사용되어서도 안된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성령의 은사를 교회에게 허락하신 이유는 구제와 봉사를 통해서 복음의 효과적인 전파를 위해서 주셨기 때문이다.

끝으로 이 질문과 관련있는 사도 바울의 권면을 들어보자. 바울은 고린도전서 14장에서 잘못 사용되고 있는 성령의 은사에 대해서 교훈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린도 교회의 교인들에게 충고하고 있다. “모든 것을 덕을 세우기 위해서 하고 ... 하나님은 어지러움의 하나님이 아니시요 ...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 (고린도전서 14:26,33,40)


3. 나는 방언의 은사와 병고치는 은사를 받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와 같은 질문은 그 질문 자체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그러므로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찾기 앞서, 우리는 “같은 한 성령이 그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다는 중요한 원칙을 잊지 말아야 한다(고린도전서 12:11). 우리가 받기 원하는 성령의 은사를 스스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복음의 전파를 위한 당신의 뜻과 섭리에 따라서 각 사람을 도구로서 사용하시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는 우리가 우리 자신의 필요에 따라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께서 당신의 필요와 목적에 따라서 준비된 인간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우리가 성령을 부리는 것이 아니고, 성령께서 우리를 부리신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성도들을 통하여 기적을 행하신다. 우리는 성령의 기적과 은사를 간구하는 기도를 드릴 수 있다. 그러나 기적이나 은사의 필요성과 그것이 행하여 지는 장소와 시간과 환경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뜻과 계획에 달려 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기적이 행사되어야 하는 최적의 시간과 장소와 환경을 알 수 없다. 언제, 어느 때, 어떠한 환경에서 하늘 아버지의 기적이 이루어져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우리에게는 하늘이 주시는 능력을 시기에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는 영적 지혜가 부족하며, 또한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가 이기적인 것이 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기적과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를 구할 때에 예수께서 하셨던 기도를 본받아야 한다. “주님, 당신의 영광을 위하여 성령의 은사를 간구하는 저의 소원을 들어 주시옵소서 ... 그러나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아멘.”


4. 나는 기적을 행하였고 경험하였는데, 그것은 내가 구원받았다는 증거가 아닌가요?

어떤 기적이나 은사도 그리스도인의 믿음과 구원을 평가하는 절대적인 증거나 기준으로 사용되어서는 안된다. 기적을 행하였고 경험하였던 사람들 중에서도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과 반역적인 삶을 산 결과로 인하여 멸망받았던 예를 성경에서 얼마든지 찾아볼 수 있다. 그러나 너무나 많은 경우에 있어서, 우리는 어떤 은사가 누구에게 발견되느냐에 따라서 서로의 영적 상태를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 한가지 이상한 것은 어떤 교회에는 방언하는 사람들만 가득하고, 또 다른 어떤 교회에는 병고치는 은사를 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이다. 성령의 은사가 마치 유행처럼 교회 안에 그룹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방언을 하지 못하고 안수해서 병을 고치지 못하는 사람은 영적 열등감마저 느끼게 되는 것이 오늘날의 교회 형편이 아닌가? 사도 시대의 고린도 교회에도 이와 같은 문제가 있었는데,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은 말로 고린도교회의 교인들을 훈계하였다. “너희는 그리스도의 몸이요 지체의 각부분이라. 하나님이 교회 중에 몇을 세우셨으니... 다 사도겠느냐, 다 선지자겠느냐, 다 병고치는 은사를 가진 자겠느냐, 다 방언을 말하는 자겠느냐, 다 통역하는 자겠느냐” (고린도전서 12:27~30) 모든 사람이 다 동일한 은사를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이 바울의 설명이다. 우리 몸에는 지체가 있어서 서로 협력하면서 몸을 유지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들도 각기 다른 은사와 재능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해야 한다.

또한 사도 바울은 특별히 “방언은 ... 믿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하는 표적” 이라고 말하였다. 사도 시대에 복음은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던 무식한 제자들에 의해서 언어가 다른 각 민족들에게 전파되어야 하였는데, 언어의 장벽으로 인하여 그 일이 어렵게 되자, 하나님께서 복음의 신속한 전파를 위해서 방언의 선물을 제자들에게 내려 주심으로써, 복음이 모든 민족과 족속에게 전파될 수 있게 섭리하셨다. 또한 성령의 은사를 목격하는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 신앙에 대한 확신을 심어줄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방언이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한 전도용이 아니라, 이미 믿음을 받아들인 사람들 사이에서 자기 확신용으로 사용됨으로써, 그 용도가 변경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우리의 신앙과 믿음을 판단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시험 기준을 살펴보자. 예수께서는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고 말씀하셨다. (마태복음 7:20)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다. (갈라디아 5:22,23) 성령의 열매는 증오가 아니라 사랑이며, 불만과 낙담이 아니라 희락이고, 분냄과 근심과 스스로 지어낸 불화가 아니라 화평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풍성하게 맺은 자들에게 하늘은 하나님의 뜻과 섭리에 따라서 성령의 은사를 풍성하게 내려주신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5. 기적이 모두 성령의 은사인가요?

우리는 성령의 은사를 위해서 기도해야 한다. 왜냐하면 성령의 은사는 오늘날 이 시대에도 나누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영적 은사를 분석하고 사용할 때에 한가지 잊어서는 안될 것이 있다.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사단이 진리에 굳게 닻을 내리지 못한 사람들을 혼동시키기 위해서 성령의 역사를 위조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사단의 활동은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으로 특징지워질 것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데살로니가후서 2:9) 사단의 활동이 매우 기만적인 이유는 “자기를 그리스도의 사도로 자칭하” 고 있으며,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기 때문이다.(고린도후서 11:13,14) 그 기만이 너무나 놀라운 것이기 때문에 성경은 “택하신 자들”까지도 미혹당할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마태복음 24:24)

이러한 말씀들은 성령 은사를 추구하는 교회나 성직자들을 모두 피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는 말씀인가? 아니다. 이 말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교회와 모든 종교적 체험, 그리고 모든 기적을 시험해 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바울이 말했듯이 “범사에 헤아려 좋은 것을 취”하기 위해서 말이다.(데살로니가전서 5:21) 이 문제에 대해서 우리에게 주는 사도 요한의 또 다른 충고를 들어보라.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나 시험하라. 많은 거짓 선지자가 세상에 나왔음이니라.” (요한일서 4:1)

그렇다면, 성경은 영을 시험하는 판단 기준으로서 어떤 것을 제시하고 있는가? 하나님의 말씀은 다음과 같은 5가지 성경절을 제시하고 있다.

1)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이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 아침빛을 보지 못하고.” 이사야 8:20. 성령의 참 은사를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는 삶을 살 것이며, 자신이 믿는 바가 성경의 진리에 일치해야 한다. 성경의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영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2) “선지자는 그 예언자의 말이 응한 후에야 그는 진실로 여호와의 보내신 선지자로 알게 되리라.” 예레미야 29:9. 어떤 사람이 예언하는 은사를 받았으면, 그가 예언하는 바가 정확하게 성취되어야 할 것이다.

3)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20. 어떤 사람이 성령의 은사를 받았다면, 그의 성품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대표자로 설 수 있을 만큼 풍성한 성령의 열매를 맺고 있어야 한다. 가정에서 부부 싸움을 하고, 자녀들에게 짜증을 내며, 모든 금전 문제에 있어서 엄격한 정직을 유지하지 못하는 그리스도인이 방언을 하고 병 고치는 은사를 행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하늘에서 내려온 은사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그러한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할 때, 그를 잘 알고 있는 믿지 않는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어떤 감화를 끼칠까? 아마도 사람들은 그가 가지고 있는 두가지의 다른 양면을 보면서 하나님의 복음에 대하여 이상한 혼돈을 갖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그러한 사람에게 성령의 은사를 내려 주심으로써 복음을 전파하고 증거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그러한 사람은 혹시 자신이 다른 영을 받았을 가능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하늘은 위대한 성령의 능력을 받기에 적합하게 준비된 사람들에게만 하늘의 거룩한 선물을 준다. 거룩하게 변화된 성품을 소유하지 못한 사람에게 하늘의 위대한 능력을 위탁하였을 때에 복음 전파사업에 어떠한 혼돈과 위험이 따르게 될지를 생각해 보라.

4) “하나님의 영은 이것으로 알찌니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요. 예수를 시인하지 아니하는 영마다 하나님께 속한 것이 아니니 이것이 곧 적 그리스도의 영이니라.” 요한일서 4:2~3.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우리와 같은 육체로 오셔서 시련과 고통 중에서 승리하셨던 것처럼, 진실한 그리스도인들도 그분의 모본을 따라서 죄와 시험을 승리할 수 있다는 가르침이 영을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이 된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마땅히 죄와 유혹에 대하여 승리하는 생애를 살아야 하며, 그러한 가르침을 믿고 받아들이는 사람이어야 한다. 거룩한 생애를 사는 그리스도인에게 거룩한 하늘의 선물이 내려지게 된다.

5)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계시록 14:11,12. 사도 요한 역시 앞에서 이사야가 말했던 영의 구별법에 동의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짐승의 표를 받지 않고 인내로서 고난을 통과하면서 나오는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에 관한 계시를 보면서, 사도 요한은 그들의 신분을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들이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것은 영을 분별하는 분명한 기준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모든 기적과 은사를 무조건 하나님의 영의 은사라고 보아서는 안된다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해서 성경이 말하는 대답이다. 성경이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내는 충고는 모든 기적과 은사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험하고 판단하여 유익을 얻으라는 것이다.


6. 현재, 성령의 은사와 기적을 체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가장 유의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진리 자체는 영원 불변하지만, 진리를 이해하는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잘못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경우, 사람들은 자신의 잘못된 지식과 경험을 토대로 진리를 검증하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진리를 기준점으로 해서 우리가 가진 지식과 경험을 판단해 보아야 한다. 즉, 우리의 지식과 경험으로 진리를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진리로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을 시험해야 한다.

그러나 사단은 경험을 진리 위에 놓으려고 애쓴다. 우리의 경험은 그것이 올바른 진리의 테두리 안에서만 가치있는 것이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같은 사건을 관찰했을 때, 각기 다른 경험을 이야기하게 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우리의 지식과 경험은 우리가 어떤 교단에 속했으며, 어떤 사람에게 성경을 배웠느냐에 따라서 크게 다를 수 있다. 그러나 진리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항상 동일하다.

성령의 은사를 체험하고 있다는 사람들 중에 많은 사람들이 다음과 같이 자신의 경험을 설명한다. A) 나는 어떤 놀라운 기적을 경험하였다. B) 그런데, 나는 나의 경험과 매우 흡사한 경험을 성경에서 발견하였다. C) 그러므로 나의 경험은 진리이다. 이와 같은 3단 논법에 의해서 그들은 자신들의 경험을 성령의 은사로 받아들인다. 이러한 논리의 전개는 매우 설득력 있게 들리지만, 자신의 경험이 초대 교회의 경험과 비슷하다고 해서 자신들의 경험이 진리 안에 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사단도 기적을 일으킬 수 있으며, 성령의 역사를 위조할 수 있고, 사람의 감정을 조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경험이 최고의 증거라고 믿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진리는 아무런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게 된다.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한 “영”에 의해서 진리를 척량하려고 한다. 바울은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의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데살로니가후서 2:10,11) 하나님의 진리인 성경 말씀을 깊이 연구하라. 그것만이 마지막 시대에 펼쳐지는 사단의 대기만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다.

아무리 그리스도를 믿고 사랑한다고 공언할지라도, 진리의 말씀에서 벗어나거나 그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 사람의 영적인 위치는 매우 위험하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랑과 진리는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사랑만을 강조하면서 진리를 무시하는 사람은 감정적인 신앙을 갖게 되며, 진리를 주장하면서 사랑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은 율법주의자가 되기 쉽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사람은 진리를 끝까지 따라가야 하며, 진리를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사랑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 성경은 사랑과 진리를 함께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 성령이 주어진다고 설명하고 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성령)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니라.” (요한복음 14:15~17) 사도 요한은 여기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그분의 계명(commendment, 명령)을 순종할 것인데,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러한 사람들에게 성령을 주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리에 대한 순종이야말로 자신의 경험을 시험할 수 있는 최종적인 판단 기준이며, 동시에 성령을 받을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자신의 경험과 느낌, 그리고 자신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지식이 어떠하든지 간에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바를 단순한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순종의 생애를 사는 것이야말로 그 사람을 지배하는 영을 분별하는 최고의 기준이다.

기적과 은사는 하나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주시는 표적이지만, 마귀도 그것을 매우 흡사하게 모방함으로써 신실한 그리스도인을 미혹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유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질문에 대하여 주시는 매우 명백한 교훈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 보자. “그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태복음 7:20~23) 아무리 주님을 사랑한다고 말할지라도, 아무리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였다고 할지라도,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많이 내쫓았다고 할지라도, 그리고 아무리 주의 이름으로 기적을 행하였다고 할지라도, 그것이 우리가 그리스도의 영을 소유했으며, 구원받았다는 결정적인 증거가 되지는 못한다. 그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과 은사같이 보이는 것들을 행하였지만, 그들은 결국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는 멸망의 선언을 받았다. 왜 그런가? 이 성경절의 서두에 그들이 구원받지 못하는 이유가 기록되어 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니라. 그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마태복음 7:19~20) 그들의 품성과 생애에 아름답고 거룩한 열매가 맺히지 못했던 것이 그들이 불에 던지우게 되는 결정적인 원인이 되었다. 그들은 깨끗하지 못한 마음과 불의한 생활 가운데서 성령의 은사를 간구했으며, 그때 마귀는 그들에게 접근하여 자신의 힘과 능력을 줌으로써 그들을 매우 깊은 기만 가운데로 끌어갔던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 본 성령에 대한 기사들이 성령에 대하여 새로운 깨달음을 줌으로써 우리의 생활에 성령 충만함과 큰 영적 부흥이 오기를 바란다.

5부 -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가장 큰 성령의 은사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령을 받고 싶어하고, 또 성령의 큰 능력을 행사하고 싶어한다. 방언을 말하고, 병을 고치고, 능력있게 외치는 것 같은... 이 모든 것들은 위대한 일이다.

    그러나 성경을 가만히 연구해 보면, 예수께서는 우리가 어떤 위대한 일을 많이 하는 것보다 우리의 성품과 생애에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을 가장 기뻐하시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 바울은 성경 고린도 전서 12장에 여러 가지 성령의 은사들을 주욱 열거한 후, 31절에 “너희는 더욱 큰 은사를 사모하라 내가 또한 제일 좋은 길을 너희에게 보이리라”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앞에서 언급한 여러가지 은사들 중에 가장 좋은 은사를 소개하고 있는데, 그것이 바로 다음 장, 고린도 전서 13장에 나오는 그 유명한 “사랑”의 은사이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고전 13:4).
그는 너무나 확실하게, 성령의 은사들 중 가장 큰 은사는 어떤 위대한 능력이 아니라 ‘사랑’과 같은 성품의 열매, 즉 우리의 생애에 나타나는 성령의 열매들인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이것을 볼 때 우리의 성품에 아름다운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를 알 수 있다.

성령의 열매를 맺으려면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의 생애에 성령의 열매를 많이 맺을 수 있을까? 예수께서는 “저가 내 안에 내가 저 안에 있으면 이 사람은 과실을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요 15:5) 고 말씀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 그분은 우리와 주님과의 관계를, 포도나무의 비유로 말씀하셨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연결되어야 과실을 맺을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혼자서 과실을 맺을 수 없다. 예수께서는 내가 참 포도나무라고 말씀하신다. 그분께서는 우리가 교회를 다니거나, 어떤 종교에 연결되었다고 해서 우리들이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자가 되고 그분의 약속의 상속자들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분께서는 오직 나를 통하여서만 영적 생명을 받을 수 있다고 하신다. 마치 어린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 접붙혀져 섬유질(纖維質)과 섬유질이, 엽맥(葉脈)과 엽맥이 연결되어 이것이 포도나무 줄기로 자라는 것처럼 허물과 죄로 죽은 영혼이 그리스도와의 연결을 통하여 생명을 얻는다. 그리스도를 개인의 구주로 믿음으로 연합은 이루어진다.
    죄인이 그의 결점을 그리스도의 장점에, 그의 텅 빈 것을 그리스도의 충만하심에, 그의 연약함을 그리스도의 놀라운 능력에 연합시킬 때 그는 그리스도의 정신을 가지게 되며, 그리스도의 인성이 우리의 인성에 감응되고 우리의 인성이 신성에 감응된다. 이와 같이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인간은 예수님의 거룩한 품격을 나누어 가지는 자가 된다.

단단한 연합
    한번 이루어진 이 그리스도와의 연합은 지속되어야 한다. 이 연합은 우연한 접촉이거나 또는 분리와 연결이 무상한 그런 결합이 아니다. 가지가 산 포도나무의 한 부분이 되어 뿌리에서 가지로 생명과 힘이 끊임없이 전달되는 것처럼, 우리도 그리스도에게 연결되어 그에게서 힘과 능력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포도나무 가지가 산 포도나무에서 수액(樹液)을 계속적으로 빨아올리는 것처럼, 우리도 매일 예수께 매달려서 믿음으로 능력과 그분의 품성의 완전하심을 그분에게서 받아야 우리의 생애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예수께서는, 포도나무에 붙지 않은 가지는 살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나를 떠나서는 살 수 없으며, 너희가 나에게서 받은 생명은 계속적인 교통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고, 내가 없이는 너희는 단 하나의 죄도 이길 수 없고 조그마한 유혹이라도 물리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 그리스도 안에 거한다는 것은 그분의 성령을 계속적으로 받아들여 그분을 섬기는 일에 전적으로 복종하는 생애를 의미한다. 교통의 통로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에 계속적으로 열려 있어야 한다. 영혼이 그리스도께 연결되어 있는 한, 그 사람은 열매를 많이 맺을 것이며 결코 시들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대가 당신의 품성의 거룩함과 자비와 동정을 나타내기를 원하신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 마음에 계속적으로 거하시도록 해야 하며, 그분께로부터 생명을 받아야 한다. 그럴 때에 그대들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생명은 그대로 하여금 많은 열매를 생산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살고, 그리스도에게 부착되어, 그리스도로부터 공급을 받으며, 그리스도에게서 영양분을 흡수한다면 그대들은 그리스도와 같은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이다. 그대는 열매를 많이 맺고 싶은가? 그렇다면 먼저 그리스도안에 거하라! 그러면 그대의 생애에 자연스럽게 많은 성령의 열매가 맺힐 것이다.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갈 5: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