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서론 - 지옥에 대한 10가지 질문

    어떤 사람도 자신의 선택으로 태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사람이 짧은 인생을 사는 동안에 자신의 어리석은 선택과 판단으로 인하여 범한 죄악 때문에 만일 천년, 만년, 수백만년, 수억만년, 아니 영원한 세월동안 죽지도 못하고 펄펄 끓는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고통받는다면, 그것을 공정한 심판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사랑과 자비의 하나님이라고 믿는 그분은 그토록 잔인 무도한 분인가? 구원받지 못한 우리의 어린 자녀들과, 부모들이 영원토록 불구덩이 속에서 고통당하는 모습을 하나님은 만족스럽게 바라보실까? 예수 재림 때에 부활하여 하늘에 간 의인들이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고 있을 가족들과 친구들을 생각할 때에 그들의 마음 속에 진정한 행복과 평화가 있을 수 있을까? 지옥의 영원한 형벌을 생각하는 사람들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악인들을 차라리 죽여서 없애지 않으시고 영원토록 타는 불 속에서 고통당하게 하실까?” 라는 의문과 두려움을 마음 속에서 지우지 못한다.

    그 결과, 어떤 사람들은 지옥불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지 않기 위한 수단으로 교회에 나가기로 억지 결심을 하기도 하지만, 그러한 사람들의 신앙은 하나님께 대한 순수한 사랑과 애정으로 발전될 수 없다. 그와 반대로 어떤 사람들은 “그렇게 무섭고 잔인한 하나님이라면, 나는 그러한 신을 믿지 않을거야!” 라는 말을 하면서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를 떠나간다.

    성경에서 가장 혼돈되고 있는 문제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옥에 관한 문제이다. 이 문제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교회 안에서 변질되어 왔으며, 각종 토속 신앙과 불교나 유교에서 말하는 지옥 또는 내세의 의미가 기독교회 안에서 깊숙히 들어 옴으로써, 성경이 말하고 있는 지옥의 참된 의미가 크게 왜곡되고 손상되었다. 그 결과, 오늘날 교회에 다니는 거의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지옥은 무엇이며, 어디에 있는가? 악인의 최후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사랑의 하나님께서 과연 영원토록 사람들을 불 속에서 고문하시겠는가?” 라는 질문에 성경적으로 정확한 대답을 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러나 성경은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매우 정확하고 합리적인 대답을 제시하고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람은 들어갈 수 있는 천국과, 피할 수 있는 지옥 중 어느 하나에 속하게 된다. 이 우주 어디에도 중간이나 중립지역은 있을 수 없으며,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을 위한 어떤 종류의 두번째 구원의 기회도 없다. 예수께서는 악인들의 최후의 모습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다. “인자가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 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그 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나리라 귀있는 자들은 들으라.” 마태복음 13:41~43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들은 두가지의 최종 목적지(천국과 지옥)를 가지고 있다는 진리를 깨닫는 사람마다, 온 마음과 정성과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과 그분의 진리에 충성하는 거룩한 삶을 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므로 지옥에 관한 여러가지 가르침들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신뢰할 수 있는 유일한 안전책은 예수께서 지옥에 관해서 가르치신 것을 정확하게 이해하는데 달려 있다.

    이번 달에는 지옥에 관한 문제에 대하여 연구해 보기로 하자. 성경의 가르침과는 반대로,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람이 죽을 때에 연기 같은 혼백이 육체를 빠져 나가서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미신같은 이야기를 진리로 받아들이고 있다. 영혼과 죽음에 대해서 오해하고 있는 사람은 지옥에 대해서도 잘못된 가르침을 받아들이게 된다.

지옥에 대한 이야기를 시작하기 앞서, 지옥은 결코 우리를 위하여 준비된 곳이 아니라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해야만 한다. 예수께서는, 지옥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영한 불”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복음 25:41). 만약 우리가 지옥불에 떨어지면, 그것은 우리가 지금까지 범했던 것 중에서 가장 큰 실수가 될 것이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사랑, 성령의 간구, 그리고 수 많은 천사들의 거룩한 영향은 그만 두고라도, 예수 그리스도의 산산히 부서진 육체를 통해서 충분히 지옥의 세력을 극복할 수 있다.

    죄를 범했다고 해서 반드시 멸망받지는 않는다. 어떤 사람이 거짓말을 했고, 도적질을 했으며, 혹은 간음했다고 할지라도, 천국으로부터 떨어져 나가지 않을 것이다. 어느 누구든지 모든 사람들 앞에 주어져 있는 구원을 받지 못하게 되는 유일한 이유는, 모든 불의(unrighteousness)를 용서하고 깨끗케 하시기 위하여 기다리고 계신 사랑의 구세주의 가슴에 자신의 죄를 던져 버리기를 거부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요3:16)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지 않은가?

    자, 그러면 이제부터, 지옥의 정체와 악인의 최후의 운명,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처벌하시는 심판의 과정에 대해서, 성경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를 다음과 같은 10단계로 나누어서 살펴 보도록 하자.

1 지옥은 어디에 있습니까?
2 악인들은 죽는 순간에 형벌을 받습니까?
3 지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가?
4 지옥불은 영원히 계속 타나요?
5 악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불타게 될까요?
6 지옥 후에 오는 세상은 어떤 것일까요?
7 지옥이라는 말로 잘못 번역된
4가지 원어를 아시나요?
8 왜 악인들도 부활해야 합니까?
9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은 몸입니까? 영혼입니까?
10 부자와 거지 나사로 이야기는 실화인가? 비유인가?

 

권두언


강병국 목사

    빛은 진리입니다. 진리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빛이십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진리와 빛을 가지고 있는 자는 하나님께 대한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진리를 오해하고 있으면 그 오해는 우리를 어두움 속에 가두어 놓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시며, 또 어떻게 죄인들을 심판하시며,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인간을 다시 영원히 살 수 있도록 인도하시고 계신지 그 방법을 오해하게 되면 구원을 얻는 일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오해들이 참 많이 퍼져 있습니다. 진리의 원수는 어떻게 해서라도 인간들이 하나님과 하나님의 역사를 잘못 인식하도록 하기 위하여 오랫동안 기만하여 왔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류에게 성경을 주신 이유가 바로 우리를 그러한 원수가 퍼뜨려 놓은 어두움에서부터 해방되어 빛의 왕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대한 오해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지옥에 관한 문제 입니다. 오늘날 기독교에 퍼져 있는 지옥설은 하나님을 히틀러 보다도 더 나쁜 존재로 만들어 놓아 버렸습니다. 히틀러는 600만명 이상의 유대인들을 죽인 악랄한 사람입니다. 그래도 그는 그들을 죽여 없애버렸지 영원히 고통을 주지는 않았습니다. 그런데 많은 기독교인들이 생각하기를 하나님께서는 죄인들을 지옥불에 던져 넣으신 다음에, 죽으려 해도 죽지 못하게 만들어 놓고 영원토록 지글지글 타는 고통을 당하게 하신다고 믿고 있습니다. 얼마나 이상한 일입니까? 과연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이 그러한 분이실까요? 이제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풀어 드릴 시간이 되었습니다. 너무나 오랫동안 우리 하나님께서는 잘못된 오해에 시달려 오셨습니다. 얼마나 답답하셨을까요? 이제 성경으로 돌아가서,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내어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 아버지께서 과연 어떠한 분이신지 자세히 알아 보도록 합시다!

 

1부 - 지옥은 어디에 있습니까?

 
지옥은 어디에 있을까? 우주의 저편 어디쯤에 있는 불구덩이일까? 아니면 영원히 꺼지지 않고 타는 유황불의 바다일까?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다르게 지옥에 대하여 상상한다.

그러나 우리는 지옥에 대하여 그렇게 막연하게 상상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지옥의 위치와, 악인들이 언제 어디서 그리고 어떻게 지옥불에 던져지는가에 대해서 정확하게 설명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이 말하는 지옥의 위치

성경의 저자 중에서 사도 요한처럼 지옥(유황불)이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가를 분명하게 기록한 사람은 없는 것 같다. 사도 요한은 천년기(millennium)가 끝날 때에 일어날 극적인 사건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요한계시록 20:7~9.
요한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악인들)를 소멸”한다고 하였는데, 악인들은 어디서 이 유황불을 받는가? 성경은 악인들이 지구의 표면에서 유황불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저희(악인들)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계 20:9.

그런데 성경은 악인들이 당하게 되는 “둘째 사망”과 “불 못”을 연관시켜서 함께 언급하고 있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우리라” 요한계시록 20:14.
이렇게 요한은 악인들이 “불못”에서 “둘째 사망”을 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그 불못은 이 땅 즉, 이 지구에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베드로가 말하는 지옥의 위치

베드로는 성경에 사도 요한이 말한 “불못”의 위치를 다음과 같이 우리에게 정확하게 지적해 주고 있다.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베드로후서 3:7.
베드로는 활활 타오르는 불로 하늘과 땅 위에 있는 모든 것들을 불사르게 될 하나님의 날이 이 지구에서 펼쳐질 것이라고 묘사하였다. 그는 이 지구가, 악인에게 가해질 최후의 심판과 멸망을 위해서 보존되어 있다고 기록하였다.

이사야가 말하는 지옥의 위치
이사야 선지자도 악인들에 대한 형벌이 이 땅 위에서 있을 것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이것은 여호와의 보복하는 날이요 시온의 송사를 위하여 신원하실 해라 에돔의 시내들은 변하여 역청이 되고 그 티끌은 유황이 되고 그 땅은 불붙는 역청이 되며” 이사야 34: 8, 9.
선지자는 화염 속에 쌓여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을 묘사하였다. 시냇물과 티끌이 역청과 유황의 산화물로 폭발하는 모습을 말하면서, 이사야 선지자는 이것이 “하나님의 보복이” 라고 말하였다.

다윗이 말하는 지옥

다윗도 다음과 같은 말로써 그 증거를 더 확실히 하고 있다.
“악인에게 그물을 내려 치시리니 불과 유황과 태우는 바람이 저희 잔의 소득이 되리로다”시편 11;6.
위의 글들을 보아 다윗이나 이사야 선지자도 요한이나 베드로가 악인의 운명에 대해서 설명한 것과 거의 동일한 표현을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들은 모두, 형벌의 장소(땅 위)와 형벌의 도구(불)에 관해서 동일한 의견을 갖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의 최후 심판의 날에 유황불의 화염 속에 휩싸이는 지구가 지옥이 될 것이라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지옥에 대한 확실한 진리이다.

 

독자에게서 온 편지

 목사님 안녕하십니까? 저는 살아남는 이들 월간지를 애독하고 있는 K집사입니다. 월간지에 실리는 모든 기사들과 목사님의 글과 비디오 테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로 깨닫고 그 숨은 뜻을 발견할 때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정말 감사 드립니다. 특별히 지난 살아남는 이들 56호 월간지에 실렸던 특집, “죽음 너머 저편”은 저에게 신선한 충격과 감동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확신을 가지도 있었으나, 믿지않는 불신자들에게 주님의 복음과 부활을 올바로 전할 수 가 없었던 차에 살아남는 이들이 제게 보여주었던 진리의 말씀은 귀한 보석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Ca에서 M.K.

안녕하십니까? 지난 56호 월간지에 실린 “죽음 너머 저편”은 정말 좋았습니다. 그러나 몇가지 궁금한 점이 있어서 이렇게 펜을 들었습니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살아남는 이들에 실린 글에는 사람이 죽으면 혼백이 몸에서 빠져나가는 것이 아니라, 부활의 순간까지 기다린다는 말씀이 여러 번 나오는데,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에는 그들이 죽은 후에 즉시 천국에 가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나옵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또한 사무엘상 28장에는 사울이 죽은 사무엘 선지자의 혼을 만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것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합니까? 만일 죽은 사람이 세상 끝에 있을 부활의 시간까지 잠을 잔다면, 어떻게 사무엘 선지자가 혼으로 나타날 수 있나요? 너무나 궁금합니다. 답장해 주시면 대단히 감사하겠습니다. AL에서 M.C

2부 - 하나님께서 재판도 하지 않고 형벌하실까요?


악인들은 죽는 순간에 지옥의 유황불 형벌을 받습니까?” 라는 질문에 여러분들은 어떤 대답을 가지고 있는가? 이 질문에 대답하기 전에, 먼저 이해해야 할 사실이 있는데, 그것은 죽는 순간에 사람은 “형벌을 먼저 받게 되는가? 아니면 재판을 먼저 받게 되는가?” 라는 문제이다.

이 문제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 모두에게 중요한 진리를 가르쳐 준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8,29. 이제부터, 성경에 나오는 예수님, 베드로, 욥, 사도 요한, 그리고 다니엘의 말씀을 살펴봄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적인 대답을 찾아보기로 하자.

    예수님의 가르침 :

그리스도께서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에서 이 문제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가르치셨다. 집주인이 밭에 좋은 씨를 심었는데, 얼마 후에 그의 종이 와서 밭에서 가라지가 자라고 있다고 보고 하면서, “가라지가 아직 어릴 때에 뽑아 버릴까요?” 라고 주인에게 물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기를,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두었다가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곡간에 놓으라 하리라.” 마태복음 13:29,30.
이 비유는 무슨 뜻일까? 예수께서는 이 비유의 의미를 다음과 같이 자세히 설명해 주셨다.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요 밭은 세상이요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끝이요 추수꾼은 천사들이니 그런즉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사르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하리라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나라에서 모든 넘어지게하는 것과 또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 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마태복음 13:37-43.
어느 누구도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의 의미를 오해할 필요가 없다. 이것은 너무나 분명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어린 아이라도 그 의미를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다. 예수께서는 가라지는 악한 사람들을 표상하는데, 악인들은 “세상 끝에” 불에 던져질 것이라고 설명하셨다. 또한 알곡과 가라지가 구분이 되는 것은 추수 때인데, 예수님께서 “추수 때는 세상끝” 이라고 분명하게 설명해 주셨다. 그러므로 의인과 악인이 보상을 받거나 형벌을 받는 시간은 “세상 끝”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사람이 죽는 순간에, 악인들은 즉시로 지옥불 가운데 던져지는 형벌을 받는다는 상상은, 악한 자들이 “세상 끝”에 불가운데로 던져진다는 주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어울릴 수 없는 이야기이다.

    베드로의 가르침 :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자유민주주의 국가는 죄를 범한 사람은 형벌을 받기 전에 재판을 받아야 한다는 법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논리는 이 세상 법정에서뿐만 아니라, 하늘법정에서도 그대로 적용된다. 그래서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던 것이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며” 베드로후서 2:9.
이것은 너무나 당연하고 합리적인 말씀이 아닌가? 만약 어떤 사람이 절도죄로 기소되어 법정에 서게 되었는데, 판사가 “십년동안 감옥에 쳐 넣으시오, 그 후에 재판하겠소!” 라고 말한다면, 그토록 비논리적이고 비합리적인 재판관이 어디 있겠는가? 인간 재판관도 그런 부당한 재판을 하지 않는데, 하물며 모든 지혜의 근원이신 하나님께서 사람을 재판도 하지 않으시고 천국이나 지옥으로 보내버리는 어처구니 없는 심판을 하실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가? 세상 끝에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보상과 형벌을 주는 심판을 집행하시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법을 근거로 해서 각 사람의 생애와 성품이 재판받게 된다.

이 문제를 성경 속에서 찾아보면 더욱 확실한 진리를 발견할 수 있다. 악한 자의 형벌이 언제까지 보류될까? 베드로는 “심판 날까지” 라고 기록하였다(벧후2:9). 왜 그럴까? 왜냐하면 그 때까지 심판(재판)이 아직 끝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다. 어떤 죄인도 심판을 받기 전에 형벌에 처해질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재판의 결과에 따라서 의인과 악인이 각기 다른 보상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8,29.

얼마나 확실한 진리인가? 예수께서는 선한 자와 악한 자가 각각 생명과 형벌을 얻기 위해서, 그들의 무덤으로부터 나온다고 말씀하셨는데, 이러한 말씀은 그들이 죽은 후부터 부활하는 순간까지는 어떠한 보상이나 형벌도 받지 않는다는 사실을 명백하게 입증해 준다. 의인과 악인 모두는 그들이 무덤에서 나온 후에야, 보상을 받든지 형벌을 받든지 양단 간에 결정될 것이다. 사도 베드로가 말한 것처럼, 그들은 심판 날까지 무덤 속에서 기다리게 될 것이다.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아래 두어 심판날까지 지키며” 베드로후서 2:9.
여기서 “불의한 자는 형벌아래 두어”라는 말씀의 뜻은, 죽는 순간에 미리 지옥불의 형벌을 준다는 뜻이 아니라, 형벌에 처할 심판날까지 지켜둔다는 뜻이다. 그래서 킹제임스 영어 성경에는 “주께서는 경건한 자들을 시험에서 구해 내시고 불의한 자들은 형벌에 처할 심판의 날까지 가두실 것을 아시느니라”고 번역되어 있다(벧후 2:9).

   사도 바울의 가르침 :

사도 바울 역시 위에서 언급한 베드로의 견해에 동의하고 있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 고린도후서 5:10. 모든 사람은 각자의 인생을 마친 후에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들의 생애와 행위에 대해서 심판받은 다음에, 그 결과에 따라서 생명의 부활 또는 심판의 부활로 일어나서 각자에게 주어진 보상 또는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것이 바울의 가르침이다.

    사도 요한의 가르침 :

만약 바울의 가르침보다 더 쉬운 설명이 필요하다면, 누가복음 14:14에 있는 예수님의 설명을 한번 더 보도록 하자.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니라.” 또한 마태복음 16:27절에도 동일한 의미의 말씀이 반복된다.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여기서 “그때는” 언제인가? 예수께서 천사들과 함께 재림하시는 날이다. 그러므로 그분께서 천사들과 함께 오실 때까지는, 결코 어떤 보상이나 상급도 있을 수 없다는 진리가 확실해진다. 이 문제에 대한 성경절이 31개나 있는데, 그것들 모두는 토론할 여지가 없이 명백한 말씀들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주리라.” 요한계시록 22:12. 여기서 사도 요한은 “각 사람”은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 날에 상급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록함으로써, 예수께서 가르치신 진리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진리를 반복하였다.

   욥의 가르침 :

구약성경에 나오는 욥 역시 “악인이 멸망의 날까지 보존되는 것을 알지 못하느냐? 그들은 진노의 날에 불려나가게 되리라” 라고 기록하였다(욥기 21:30, 킹제임스 영문 성경). 악인들은 죽는 순간에 지옥불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멸망의 날까지” 무덤 속에서 보존된다.

   다니엘의 가르침 :

다니엘도 의인과 악인들 모두, 종말에 보상과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다니엘서 12:2. 악인이라고 할지라도, 마지막 날에 심판과 처벌을 받게 될 때까지는 무덤 속에서 지켜진다는 성경의 진리를 다니엘 선지자도 되풀이 하였다.

이 세상에서 사람이 범죄하였을 때에도 죄인에게 그 즉시로 형을 집행하지 않고, 법에 따라서 증인과 증거를 대조하는 사법적 심리 단계를 거쳐서 신중하게 형을 선고하는데, 하물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죄인들을 취급하시겠는가?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서도 사람이 죽는 즉시에 형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충분한 재판을 거치는 공의로운 심판을 하신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말하였던 것이다(히9:26).

지금까지 우리는 베드로, 다니엘, 욥, 사도 요한, 그리고 그리스도 자신의 말씀을 살펴 보았다. 더 이상 길게 설명할 필요 없이 악인들은 죽는 순간에 지옥에 가서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고 의인과 악인들 모두가 세상 끝까지 무덤에서 완전한 무의식의 잠을 자는 상태로 보상 또는 형벌을 기다리는 것이다. (살아남는 이들 제 56호 참조). 모든 사람은 세상 끝에 주어질 천국의 보상이나 지옥의 형벌을 받기에 앞서, 무덤 속에서 부활의 시간까지 그들의 생애와 행위에 대하여 재판받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3부 - 지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가?


지금까지 지옥의 위치는 어디이며, 악인은 죽는 순간 형벌을 받아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후에 있을 심판 날까지 죽은 채로 무덤에 그냥 남아 있는다는 것을 배웠다.

그렇다면 지옥은 언제 어떻게 생겨나며, 세상 끝에 있을 심판 때에는 어떤 일이 일어나며, 악인의 형벌은 언제 어떻게 있게 되는 것일까?

지옥이 생기는 시기를 알기 위하여 우리는 먼저 예수의 재림과 세상 끝, 그리고 천년기에 대하여 연구해야만 한다.
이제부터 성경 말씀을 토대로 하여 체계적으로 연구해 보기로 하자.

 

예수 재림과 세상 끝

    성경에서 세상 끝은 예수님의 재림의 때를 말한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여 하늘로 올라 가시기 전에 다음과 같은 약속을 남겨 주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예수께서는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위하여 있을 곳을 예비하신 후에 준비된 백성들을 데리러 다시 오신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 세상은 끝이 난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와 그 때에 구원받을 의인들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살전 4:16~17)

 

예수 재림과 지구의 황폐

    예수께서 다시 이 땅에 오실 때에 관하여 이미 구약시대에 선지자 다니엘은 예언하기를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의 모든 나라들이 “다 부숴져 여름 타작마당의 겨같이 되어 바람에 불려 간 곳이 없”을 것이라고 하였으며(단 2:35), 성경의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도 이 세상에 칠 재앙이 내릴 때에 “만국의 성들이 무너지”고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다고 기록하였다(계 16:19,20).

    예수께서 재강림 하실 때에 지구는 참혹한 폐허가 되는데, 이 때 모든 의인들은 공중으로 이끌려서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로 승천하지만, 무덤 속에 있던 죽은 악인들은 의인들의 부활에 참여하지 못하고 그대로 무덤 속에 있을 것이며, 예수 재림의 광경을 살아서 지켜보는 살아 있는 악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광채에 의해서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황폐된 이 땅위에는 악인들의 시체들만이 뒹굴게 될 것이다.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과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살후 1:7~10).
    사도 요한도 재림 시에 있을 악인들의 죽음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계시의 장면을 보았다. “천사가 낫을 땅에 휘둘러 땅의 포도를 거두어 하나님의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지매 성 밖에서 그 틀이 밟히니 틀에서 피가 나서 말굴레까지 닿았고 일천 육백 스다디온에 퍼졌더라” (계 14:19,20). 그러므로 예수께서 의인들을 데리시고 하늘로 승천하여 올라가신 후에 죽은 악인들의 시체만 지상에 남게 되는데, 이러한 황폐한 지구의 모습을 요한계시록은 새들이 죽은 악인의 시체들을 뜯어 먹는 것으로 묘사하였다.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를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과 종들이나 무론대소 하고 모든 자들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계 19:17,18).

 

재림과 함께 시작되는 천년기

    요한 계시록 20장에는 천년기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지옥이 생겨나는 시기를 알려면 반드시 천년기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그 이유는 천년기의 언급과 함께 죽은 자들이 심판을 받는 일과 둘째 사망과 불못에 던지우는 사건이 연관되어져서 나오기 때문이다. 앞에서 살펴 본 예수 재림 때의 상황을 배경으로 해서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기에 대해서 공부해 보기로 하자.

    “천년”(millennium)이라는 표현은 성경 전체를 통하여 오직 요한계시록 20장 1~7절에만 6번 언급되고 있는 특이하면서도 범위가 국한되어 있는 주제이다. 그러므로 천년기에 대해서 공부할 때에는 이 성경 구절들의 앞뒤 문맥에서 그 의미를 찾는 것이 가장 안전한 해석 방법이다. 특히,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내용임이 확실하므로, 본문을 잘 읽어보면 그 윤곽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러므로 추측과 선입관을 버리고 본문을 주의깊게 읽어 보자.
    요한계시록 19장 후반에는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장면과(11~16절), 재림 시에 악인들이 멸망당하는 장면이 나오며(17~18절), 계속해서 이어지는 20장 초반에는 천년기가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19장과 20장에는 천년기를 전후로 해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순서적으로 기록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0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부터 천년이 지난 후에 악인들이 부활하여 유황불로 심판받게 되는 전과정이 순서적으로 자세하게 그려져 있는데, 보다 정확한 해석을 위하여 한글로 번역된 한글 킹제임스 성경을 사용하여 공부해 보자;

1. 천년기는 언제 시작되는가? (계 20:1~3절)
    “또 내가 보니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 그가 그 용을 잡으니 곧 마귀요 사탄인 옛 뱀이라. 그를 천년 동안 묶어두니.” 1절.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죽었던 의인들이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한다. 그와 동시에, “한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오는데, 어디로 내려오는가? 지구로 내려온다는 것을 문맥에서 알 수 있다.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사단이 천년 동안 지구를 벗어나지 못하도록 결박함으로써, 천년기(millennium)가 시작된다.

2. 의인들의 천년왕국은 어디서 실현되는가?(계 20:4)
    “예수에 대한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사람들의 혼들도 보았는데, 그들은 그 짐승에게나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였을 뿐만 아니라 그의 표를 그들의 이마 위나 손에도 받지 아니하였더라.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을 살면서 왕노릇하더라.” 4절.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의인들은 승천하여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을 살면서 통치하게 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구에서 복천년을 보낼 것이라고 말하지만, 어떻게 엄청난 재난에 의해서 황폐되었고, 수많은 악인들의 시체가 뒹구는 지구에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할 수 있겠는가? 결코 그럴 수 없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부활한 의인들과 살아있던 성도들이 홀연히 변화되어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여 ...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고 기록한 사도 바울의 말을 기억하라(살전 4:17). 의인들은 승천하여 어디에서 주와 함께 있는다고 하였는가?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보라. 예수께서는 요한복음 14:2절에서 “내 아버지 집”이라고 밝혀 주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또한 천년기가 지난 후에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온다는 말씀(계 21:2)을 보아서도, 여기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은 지상에 있는 예루살렘이 아니라 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임을 확신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늘로 승천했던 성도들이 천년 동안 하늘에서 왕노릇할 것이라는 가르침을 성경적인 진리로 받아들이게 된다.
사도 요한은 예수 재강림 시에 있는 의인들의 부활을 가리켜서, 천년기 끝에 있는 악인들의 부활과 대조하여 “첫번째 부활”이라고 불렀다(6절).

3. 악인들은 천년기를 어디서 보내는가? (계 20:5)
    “그러나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천년이 끝날 때까지 다시 살지 못하더라” (5절). 4절에 이어서 계속해서 등장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 나머지”는 누구인가? 예수 재강림 시에 죽었던 의인들은 부활하여 하늘로 승천하는데, 이 때에 지구에 남아 있게 되는 모든 악인들을 가리켜서, 사도 요한은 “죽은 자들 가운데 그 나머지”로 표현하였다. 지구 역사에 존재하였던 모든 의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시에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승천하여 천년 동안 하늘에서 왕노릇 하는 동안에, 모든 악인들은 죽음의 상태로 지상에 있는 무덤 속에 그대로 남아 있게 된다. 즉, 사단이 지구에서 천년 동안 결박당하고, 악인들의 시체가 천년 동안 지구에서 뒹구는 동안, 하늘로 승천한 의인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서 천년 동안 왕노릇하게 된다.

4. 지옥은 언제, 어떻게 생기는가? (계 20:7~10)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20장 초반부에서 “그(사단)를 끝없이 깊은 구렁(무저갱)에 던져서 가두고 그 위에 봉인하여 천년이 찰 때까지는 나라들을 다시는 미혹하지 못하게 하더라 그 후에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게 되리라” 고 말함으로써, 사단이 천년기의 끝에 잠시 동안 풀려날 것에 대한 힌트를 준 다음에(3절), 요한계시록 20장 후반부에 가서는 천년기(millennium)가 끝날 때에 사단이 잠깐 동안 풀려나면서 생기는 극적인 사건을 이렇게 설명하였다.
    “그 천년이 끝나면 사단이 그의 감옥에서 풀려나 땅의 사방에 있는 민족들,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려고 나가서 그들을 함께 모아 전쟁을 일으키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들이 땅의 넓은 데로 올라가서 성도들의 진영과 사랑하시는 도성을 포위하니, 하늘에서 불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리더라” (7~9절).
    천년기가 끝나면서 마귀가 천사의 결박으로부터 다시 풀려나는데, 바로 이 때 모든 악인들이 무덤 속에서 부활하여 나온다. “그 나머지 죽은 자들은 그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5절). 이 때, 사단은 부활한 악인들을 한곳으로 끌어 모은 다음, 하늘로부터 내려온 새 예루살렘 도성을 포위하여 최후의 반격을 가한다. 사단을 선두로 해서 모든 악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려고 할 때 드디어 “하늘에서 불이 하나님께로부터 내려와 그들을 삼켜 버”리게 되는데(9절), 바로 이것이 부활한 악인들에게 죄의 대가로서 주어지는 최후의 유황불 형벌이며 이것이 지옥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이 때 모든 죄의 원흉인 사단 역시 유황불의 형벌 속에서 불타게 된다. “그들을 미혹하던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져지니” (10절).

    자, 이제 지옥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성경적인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지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가? 지옥은 예수 재림 사건으로부터 천년이 지나간 후에 지구에서 형성되는데, 사단과 악인들이 하늘에서 내려온 새 예루살렘 성을 공격하려고 할 때에 하늘로부터 유황불이 떨어짐으로써 지상은 불구덩이로 변하는데, 이것이 지옥이다.

 

질문과 답변

첫째 부활과 둘째 부활은 어떻게 다른가요? : 첫째 부활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죽었던 의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하여 다시 살아 나는 것을 말하며, 둘째 부활은 죽었던 악인들이 천년기 이후에 형벌을 받기 위하여 다시 살아나는 것을 말합니다.

첫째 사망과 둘째 사망은 어떻게 다른가요? : 세상에 태어났던 사람들은 누구나 한번 죽습니다. 성경은 이것을 첫번째 사망이라고 하며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잠 자는 것’이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요 11;11절 참조) 둘째 사망이란 천년기 이후 다시 살아난 악인들이 유황불의 형벌을 받아 영원한 사망에 들어가는 것을 것을 말합니다. 다시 말하면 자신이 범한 죄의 대가를 지불하기 위해서 치르는 죽음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온 인류의 죄의 대가를 지불하시기 위해서 죽으셨던 죽음은 바로 이 “둘째 사망”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의 공로와 은혜를 의지하여 그분께 나오는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서 악인들이 당하게 되는 두려운 둘째 사망의 고통을 치르셔야만 했습니다. 죄의 대가는 “둘째 사망 곧 불못”이기 때문에, 사도 바울이 로마서 6:23에 기록한 “죄의 삯은 사망이요”에 나오는 “사망” 은 “둘째 사망”을 뜻합니다.

4부 - 지옥불은 영원히 계속 타나요?


    사람들의 지옥에 대한 생각은 저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그 중에서 한가지 공통된 것이 있는데 그것은 다름이 아니고 지옥은 영원히 계속되는 것이라고 믿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지옥에서 뱀이나 구렁이에 감긴 채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된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들은 이생에서 악하게 살았던 사람들은 죽어서 귀신이 되어 영원히 허공을 방황하게 된다고 말하며, 어떤 사람들은 악인은 죽는 순간에 지옥불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유황불 속에서 지글지글 타는 고통을 당하게 된다고 말한다. 이렇게 사람들이 지옥에 관한 각기 다른 생각들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불교나 각종 토속신앙에서 말하는 지옥에 대한 일반적인 개념을 믿고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도 지옥불은 영원히 탄다고 믿고 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질문을 던진다. “성경에는 악인들을 벌하기 위한 ‘꺼지지 않는 불’이 나오는데 그것은 무슨 뜻입니까? 그 불은 결코 꺼지지 않고 영원히 탄다는 말이 아닌가요?”
    정말 그것이 무슨 뜻일까? 사단과 악인들을 불사르기 위해, 즉 악인들의 형벌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리는 유황불은 과연 영원히 불타는 것일까? 그 지옥의 불은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생각하듯이 영원히 존재하는 것일까? 성경은 이에 대해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가?

먼저 성경 말씀 중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영원한 지옥불”의 개념으로 사용하고 있는 구절들을 찾아 연구해 보자.

 

“ 영원한 멸망의 형벌” 의 의미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데살로니가후서 1:8,9.

    여기에 쓰인 “영원한 멸망의 형벌” 이란 영원토록 중단되지 않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형벌의 결과가 영원토록 유지되어서 악인의 생명이 영원토록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형벌의 결과로서 영원한 멸망, 즉 영원히 멸망되어 완전하게 없어지는 것을 말한다. 이러한 말씀에 비추어 보더라도, 그들에게는 부활이나 생명에 관한 희망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다.

 

“세세토록, 영원토록”의 의미

“마귀가 불과 유황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요한계시록 20:10.

    아마 가장 쉽게 오해 할 수 있는 지옥에 관한 표현은, “세세토록”(forever and ever) 연기가 피어오” 른다고 기록한 사도 요한의 표현일 것이다. 사실상, 성경에 나타난 이런 성경절들을 현대적인 감각으로 해석한다면,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러한 표현들이 어떠한 의미로 사용되었는지를 살펴보면, 그 진정한 의미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신,구약 성경 전체를 조사해보면, “영원, 또는 세세토록”이란 말이 57번이나 나오는데, 이 말이 언제나 “영원토록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성경에 나오는 몇가지 예를 들어 살펴 보도록 하자.

실례 1. 그 노예는 영영히 살았는가?

    출애굽기 21장에 나오는 노예법에는, 노예가 평생토록 주인을 섬기도록 규정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한 법을 이야기 하면서, “송곳으로 귀를 뚫고 그가 영영히 그 상전을 섬기리라” 는 표현이 기록되어 있다(출애굽기 5:6). 그러나 노예가 영원토록 주인을 섬길 수 있는가? 그럴 수 없다. 그렇다면, 얼마나 오랫동안 노예가 그의 주인을 섬길 수 있는가? 물론, 죽을 때까지 밖에 섬길 수 없다. 그러므로 여기서 “영영히” (forever)란 말은 끝이 없이 계속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노예의 생명이 마쳐질 때까지 주인을 섬기라는 뜻이다.

실례 2. 한나의 아들 사무엘은 영원히 살았는가?

    구약성경에 나오는 한나는 그녀의 아들인 사무엘을 하나님의 전으로 데리고 가서 거기서 “영영히 있게”하였다(사무엘상 1:22). 그러나 이어지는 28절에서 “그의 평생을 여호와께 드린다”고 단순하게 설명하고 있다. 물론, “영원” 이란 용어의 일반적인 의미는 무한정한 시간을 뜻한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어떤 사건이 완전히 마쳐질 때까지의 기간을 의미할 수 있다. 그래서 고래 배속에 한동안 머물렀던 요나조차도 자신이 머물렀던 기간을 “오래도록” 즉, 영어로는 “forever”(영원토록) 으로 묘사하였던 것이다(요나서 2:6).

*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반박할 지도 모른다. “하늘에 간 의인들은 영원히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것이라는 말씀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하늘에 간 의인들의 생명도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말입니까?” 물론, “영원토록” 이라는 동일한 표현이 의인과 악인에게 모두 사용되었다. 그러나 두 부류가 처해 있는 상황 사이에는 한가지 뚜렷한 차이점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의인들은 불멸의 생명을 선물로 받았다. 그들의 생명은 하나님의 생명처럼 영원한 것이다. 왜냐하면 불멸은 “죽음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영원”이란 말이 의인들에게 적용되었을 경우에는 불멸의 존재로서 영원토록 생명을 누리는 것으로 해석해야 되지만, 그것이 불멸의 생명을 받지 못한 악인들에 적용되었을 경우에는, 그것은 형벌의 불 가운데서 타서 없어질 그들의 육체와 생명이 살아 있는 동안(기간)만을 의미한다. 결코, 의인과 악인 사이에 존재하는 분명한 차이점을 간과하지 않기를 바란다.

실례 3. 예루살렘 성은 현재 꺼지지 않는 불로 타고 있는가?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반하고 순종치 아니함으로 바벨론의 공격을 받아 예루살렘 성이 꺼지지 않을 불로 삼킴을 당할 것을 예언하였으며(예레미아 17:27), 그 성이 타서 재가 될 것을 예언하였다(역대하 36:19-21). 이 문제를 이해하는 일에 있어서 중요한 열쇠는, 성경에서 “꺼지지 않는다” 라는 표현이 어떻게 사용되고 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다. 그것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생각하듯이 결코 꺼지지 않고 영원토록 탄다는 뜻이 아니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 불은 아무도 끌 수 없으며, 그 불이 태우는 대상들이 완전히 재가 되어 없어질 때까지 탄다는 뜻이다. 예레미야 17:27에 있는 말씀을 보자. “성문에 불을 놓아 예루살렘 궁전을 삼키게 하리니,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리라.” 지금 이 순간에도 예루살렘 궁전이 불에 타고 있는가? 물론 아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의 의미는 예루살렘 성을 완전히 전소시킬 때까지 불이 탈 것이라는 뜻이다. 지옥불은 아무도 끌 수 없는 불이며, 한번 불붙으면 마귀와 악인들을 완전히 불태워 재로 만들어 버릴 때까지 타게 될 것이다.

* 그렇다면, 지옥불을 설명할 때 사용되고 있는 “영원” 이란 말과 “영원토록 지속할” 이란 말에 대해서는 우리가 어떻게 이해해야 될까? 성경 가운데서 그 말의 정의를 찾아 보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성경에 나오는 용어나 표현들이 이스라엘의 신, 구약 시대 당시에 그것들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를 고려하지 않은채, 단지 현대적인 감각에 맞추어서 그것들의 정의를 내리는 실수를 범하고 있다. 이것은 가장 뿌리 깊은 번역상의 잘못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영원한 불이란 결코 꺼지지 않을 불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실례 4. 소돔과 고모라는 아직도 영원한 불로 타고 있는가?

    유다서 7절에는 “영원한 불”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 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
    만일 소돔성이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고 있다면, 지금도 소돔성은 불타고 있어야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중동 땅에 있는 소돔성이 오늘날까지 타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소돔성이 “영원한 불로” 태워졌다는 말의 의미와 그것이 주는 교훈이 베드로후서 2장에 나온다. “소돔과 고모라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베드로후서 2:6.
    바로 이것이 그 의미이다. “영원한 불”의 의미는 영원토록 타고 있을 것이라는 뜻이 아니라, 불로 인한 결과가 영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소돔성을 재가 되게 했던 그 “영원한 불”은 악인들에게 마지막으로 가해질 하나의 표본(샘플)이다. 소돔과 고모라는 오늘날 존재하지 않는다. 소돔과 고모라는 영원히 타고 있는 것이 아니라, 타서 없어졌기 때문에 영원히 존재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를 멸망시킨 것과 똑같은 종류의 불이 악인들을 화염으로 태우게 될 것인데, 바로 그것이 영원한 불이 될 것이다. 그것은 악인들을 재로 만드는 것을 의미하는가? 성경은 그렇다고 말하고 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불 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나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라기 4:1,3.

* 어떤 다른 언어로도 지옥불을 이렇게 분명하고도 힘있게 설명할 수는 없다. 지옥불은 영원히 타는 것이 아니다. 지옥의 불은 영원히 존속될 결과를 남길 때까지 타게 될 것이다. 즉 모든 악의 뿌리인 사단과 그를 추종하던 모든 악인들이 완전히 타서 재가 되어 영원히 사라질 때까지 탈 것이다.
    그대는 정말, 당신의 아들 독생자 예수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보내신 사랑의 하나님이 지옥을 마련해 놓으셨다고 그동안 믿어 왔었는가? 그래서 그분을 사랑의 하나님이 아닌, 영영히 타는 지옥불에 인간들을 쳐 넣으시는 무서운 하나님으로 알고 마음 속으로 고민해 왔는가?
하나님은 그런분이 아니시다. 비록 악인들이 하나님의 그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고 거절하여 자기 스스로 죽음의 결과를 거둬 멸망할 때에라도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눈물을 흘리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겔 33:11 참조)

    우리가 지옥을 묘사할 때, 앞에서 지금까지 배운, 성경의 표현을 그대로 빌려서 지옥불의 광경을 묘사한다면, 얼마나 일관성있고 정확하게 묘사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만일 우리가 지옥불에 대해서 말할 때에, 성경에 없는 단어와 표현을 사용해서 묘사한다면, 우리도 알지 못하는 사이에 거짓을 말하게 되기가 쉽다. 지금까지 전통적으로 물려받은 상식과 토속신앙의 영향을 받아서 편견을 버리지 않는 사람들은 “그들을 태워 재로 만들 것이라는” 성경 말씀을 보면서도, 여전히 악인들은 영원토록 살아서 고통을 받을 것이라고 고집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 주제를 함께 연구한 독자들은 진리와 편견 사이에서 분명한 선택을 하게 되기를 기원한다! 영영히 불타는 지옥을 만들지 않으신 사랑의 하나님을 찬양하자!

5부 - 악인들은 얼마나 오랫동안 불타게 될까요?


    악한 자의 심판의 날에 이 땅은 유황불의 화염 속에 휩싸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대답해야 할 질문이 하나 남아 있다. 가장 복잡하고 풀리지 않는 의문 중의 하나는, 형벌이 얼마나 오랫동안 지속될 것인가에 대한 것이다.

    얼마 동안이나 악인들이 그 불 가운데서 고통을 받게 될까? 아무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한마디로 정확하게 말할 수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말하기를, 악인들은 그들의 행한 바에 따라서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말했기 때문이다. 요한계시록은 악인들이 그들의 죄의 정도에 따라서 다르게 형벌을 받는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를 내어주며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한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계 20:12~14.

    이러한 사실은, 지옥에는 형벌의 강도가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지옥에 대한 잘못된 오해는 하나님의 사랑을 완전히 훼손시킬 뿐 아니라, 그분의 공의를 왜곡하게 만든다. 그리고 하나님을 무섭고 잔인한 분으로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만든다. 죽음의 순간에, 지옥에 떨어져서 영원토록 유황불 속에서 불탄다는 거짓 가르침 속에는 어떤 위험이 포함되어 있을까? 잠시 함께 생각해 보자.

    5000년 전에 살았던 사람이 있는데, 그가 자신이 지은 어떤 죄를 회개하지 않고 마음 속 깊이 간직한 채 죽었다고 가정해 보자.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믿는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의 영혼은 즉시로 영원히 고통당할 유황불 가운데로 떨어져 타고 있을 것이다(성경적으로 볼 때, 이런 일은 결코 일어날 수 없음). 그런데, 수백만의 사람들을 잔혹하게 죽인 장본인인 아돌프 히틀러의 죽음을 생각해 보자. 일반적으로 사람들이 믿고 있는 바에 의하면, 히틀러의 영혼 역시 영원한 지옥불 속으로 떨어졌을 것이다. 이 두 사람의 경우를 비교해 볼 때, 어떤 평범한 죄로 인해서 구원을 받지 못했던 그사람은 히틀러보다 5000년이나 더 오랫동안 유황불 속에서 고통당해 왔을 것이다. 그때 유황불 속에서 5000년 동안 고통당한 그 사람이 자신보다 엄청나게 많은 죄를 범하고 방금 지옥불로 들어온 히틀러를 보고 억울한 마음이 생기지 않겠는가? 그런 심판을 어떻게 정당하고 공정하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하나님께서 과연 그러한 방법으로 인간들을 취급하실까? 아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각 사람의 행위대로” 형벌을 받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오늘날, 악인들이 받게 되는 형벌에 관련된 두가지의 극단적인 견해들이 있다. 하나는 보편주의(Universalism)라고 불리우는데, 이것은 하나님께서는 너무 관대하시고 자비로우시기 때문에, 어떤 악인이라도 멸망하도록 허용치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고, 나머지 다른 하나는, 악인은 영원토록 고난의 어두운 미로 속에서 끝없는 고통을 겪게 된다고 믿는 끔찍한 견해이다. 두번째 견해를 받아들인 사람들은, 성경이 선언하고 있는 “죄의 값은 사망”이라는 분명한 진리를, “죄의 값은 영원한 고통”이라고 해석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왜냐하면 악인이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한다면, 그것은 영원한 고통이지 사망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앞에서 언급한 두가지 견해 모두 성경으로 증명될 수 없는 가상적인 인간의 견해에 불과하다. 진리는 그 두가지 사이에 있다.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의 행위에 따라 형벌을 내리실 것이며, 자신들이 받아야 할 형벌이 마쳐질 때에 몸과 생명이 영원히 사라지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 있는 수많은 정직한 영혼들이 지옥에 관한 올바른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지 못함으로, 하나님의 품성에 대해서 그릇된 오해를 가지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며, 결국에는 하나님께 대하여 자원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충성과 사랑과 희생의 신앙 생활을 하지 못한 채 방황하고 있다. 그들은 타당한 이유없이, 끝없는 고통 중에 있어야 하는 악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에 대하여 의심과 회의를 가질 수 밖에 없다. 그래서 그들은, 악인들이 받는 형벌은 하나님의 잔인한 복수심에서 나온 것이라고까지 생각하게 되었다. 지옥에 대한 잘못된 가르침을 믿으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을 결코 온전하게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들이 그분의 품성에 대해서 그렇게 오해하는 것을 좋아하실까? 생애의 빛에서 제공한, 지옥에 관한 성경의 진리를 공부한 한 교인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는 다시 하나님을 믿기로 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나는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악인들을 고문하시는 분으로 생각해 왔기 때문에 교회를 거의 등질뻔 했지만, 이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께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충성을 다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지옥불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지옥불의 형벌은 죄값에 따라서 다르며 유한하다는 성경 진리는 한 영혼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에 충분한 능력을 발휘하였다.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시다. 자비와 사랑과 의로움의 하나님이시다. 모든일에 공평하시고 공의로우신 분이 우리의 창조주 하나님이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6부 - 지옥 후에 오는 세상은 어떤 것인가요?


    이제 지옥에 관한 문제들에 대해서 성경적인 답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는 앞에서 지옥은 언제, 어디서, 어떻게 시작되는지, 지옥은 영원토록 존재할 것인지에 대하여 배웠다.

    그렇다면 지옥불이 휩쓸고 간 후에 이 지구는 어떻게 되는가? 그 황폐된 지구에 무슨 일이 생길 것인가? 같이 성경을 연구해 보자.

천년기 이후의 세계

    천년기 이후에, 즉 유황불이 내려와 그 지옥불에서 마귀와 모든 악인들이 타서 소멸된 후, 하나님께서는 이 땅을 새롭게 다시 창조하실 것이다. 그리하여 이 지구는 태초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것과 똑같은 상태로 회복될 것이다. 모든 죄의 결과가 영원히 추방될 것이며, 죄도 없고 죄인들도 없고, 유혹하는 사단과 악도 없을 것이다.
“또 내가 새 하늘과 새 땅을 보니 처음 하늘과 처음 땅이 없어졌고 바다도 다시 있지 않더라.” 요한계시록 21:1.
사도 요한은 미래의 영광스러운 장면을 계시 가운데서 보면서, 다음과 같이 묘사하였다.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더라.” 요한계시록 21:4.

그 후에 있을 세상

    재창조함을 받은 이 땅에는 더 이상 눈물이나 고통이 없다고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다. 새롭게 회복된 아름다운 땅에서 그 어떤 사람이 고통을 겪겠는가?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악인들은 우주의 어디엔가에 있는 지옥에서 영원토록 고통당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겠는가? 아니면 인간의 추측을 따르겠는가? 성경이 말하는대로 이 우주 가운데에 더 이상의 고통이나 눈물이 존재하지 않기 위해서는, 영원한 지옥도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이 두가지 말은 서로 상충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다시는 죄의 고통이 없는 새 세상! 우리는 온 세상의 고통을 종결지으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려야 한다. 새 하늘과 새 땅에는 사단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며, 지옥의 유황불도 없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시는 당신의 새 왕국에는 어떠한 고통의 그림자도 결코, 결코 드리우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 사건들의 순서

마지막 시대: 현재 ~ 예수 재강림
1. 짐승의 표가 강요됨 (요한계시록 13:16,17 ; 14:9~11)
2. 마지막 7재앙이 시작되고 일곱째 재앙 때에 대격변이 일 어남(요한계시록 16장)

예수 재강림과 첫번째 부활
3.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공개적으로 재림하심( 마태복음 24:30).
4. 죽었던 의인들이 부활하며, 살아있는 성도가 홀연히 변 화되어 하늘로 승천함(데살로니가전서 4:16,17 ; 고린도 전서 15:51~54 ; 요한복음 14:2~3)
5. 첫째 부활 - 죽었던 모든 의인들이 부활(요한계시록 20:6)
6. 악인들은 죽임을 당함(데살로니가후서 1:7~10 ; 요한계 시록 14:19~20 ; 누가복음 17:34~37))
7. 7재앙과 그리스도의 재림의 영광으로 인하여 악인은 죽 고 땅은 황폐하게 됨(요한계시록 16장, 요한계시록 14:19,20 ; 다니엘 2:35)

천년기
8. 모든 구원받은 성도들은 하늘에서 천년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 함(요한계시록 20:6)
9. 악인들의 시체가 황폐한 지상에 남아있음 (계시록 19:18)
10. 사단과 악한 천사들이 황폐된 지구에 갇혀서 속박을 당 함(요한계시록 20:1~3)

둘째 부활과 마지막 심판: 마지막 심판과 지옥불
11.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함께 왕노릇하였던 성도들이 새 예루살렘 성과 함께 하늘에서 이 땅으로 내려옴(요한계 시록 21:2)
12. 둘째 부활 - 죽었던 모든 악인들이 부활(요한계시록 20:5, 8)
13. 사단의 속박이 풀리고 활동이 재개되며, 부활한 악인들 을 충동하여 하늘에서 내려오는 새 예루살렘성을 공격
하려고 함(요한계시록 20:3,7~9)
14. “크고 흰 보좌” 앞에서 악인들이 최후의 심판을 받음(요 한계시록 20:11~15, 누가복음 13:28)
15. 사단과 악한 천사들과 악인들이 유황불 못으로 변한 지 구에서 불로 사루어짐(요한계시록 20:9,15 ; 베드로후서 3:7 ; 이사야 34:8~10)
16. 둘째 사망 - 영원히 소멸됨(요한계시록 20:9,14 ; 21:8, 말라기 4:1)

새롭게 창조된 지구: 새 하늘과 새 땅
17. 지구가 불로 사르어져서 정결하게 된 후에 “새 하늘과 새 땅”이 다시 창조됨(요한계시록 21:1)
18. 다시는 죄의 저주가 없음(요한계시록 22:3 ; 21:3~5)
19. 그리스도와 사단 사이에 있었던 대쟁투는 영원히 종결되 고 의인이 땅을 차지하여 영원히 거함(요한계시록 21:3 ; 마태복음 5:5)

7부 - 지옥이라는 말로 잘못 번역된 4가지 원어를 아시나요?


구약성경에서 “음부”로 번역된 “스올”

    구약성경에 65번 나오는 “sheol(스올)”이라는 히브리어는 “보이지 않는 세계”(the unseen world)를 뜻하는 말인데, 한글 성경에는 주로 “음부”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어서, “저승”이라는 인상을 주기 때문에 마치 죽은 사람의 영혼이 가는 곳처럼 느껴진다.

    17세기에 번역된 흠정역 영어 성경을 보면, 번역하는 사람의 주관에 따라서 31번은 무덤으로, 31번은 지옥으로, 3번은 구덩이로 번역되어 있기 때문에 읽는 사람에게 혼란을 주고 있다.

    그러나 20세기에 들어와서 새로운 연구를 거치는 동안, “지옥”으로 번역된 “스올”이 문맥과 전체적인 의미에 맞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지게 되자, 새국제역(NIV)은 “지옥” 대신에 “무덤”으로 번역함으로써 잘못된 번역을 수정하였다. “음부”로 번역된 “스올”이란 말은 “무덤”이란 뜻으로 이해해야만 된다는 사실이 다음과 같은 성경 구절에서 분명하게 밝혀진다. “스올”을 지옥이라는 뜻으로 해석한다면, 다음에 소개하는 야곱, 욥, 다윗과 같은 의인들이 죽어서 지옥에 내려갔다는 엉뚱한 결론이 생기기 때문이다;
1) 신실하게 산 야곱도 자신이 죽으면 갈 곳이 스올이라고 하였다 : 창 37:35 ; 42:38,44
2) 의로운 욥도 죽으면 스올로 내려간다고 하였다 : 욥 14:13 ; 17:13~16
3) 다윗도 죽으면 갈 곳이 스올이라고 하였다 : 시편 18:4,5 ; 30:3

신약성경에서 지옥이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 3가지

신약성경에는 지옥(hell)으로 번역된 말이 모두 23번 나오는데, 그 가운데 10번은 “하데스”(hades), 12번은 “게헨나”(gehenna), 그리고 나머지 1번은 “타르타루스”(tartarus)라는 헬라어가 지옥으로 번역되었다.

A. 신약성경에서의 “음부”인 “하데스”
    “하데스”는 구약성경의 “스올”에 해당하는 말이다. 소아시아의 무덤에 있는 묘비를 보면, 지금도 묘비 위에 기록된 “ooo의 무덤”이라는 글에서 “하데스”라는 단어가 “무덤”이라는 뜻으로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 종종 “지옥”이라고 번역된 “하데스”는 죽은 악인들의 영혼이 불타는 지옥이 아니라, 죽으면 우리 모두가 가게 되는 “무덤”이나 “죽음” 자체를 뜻한다는 사실을 성경의 본문만 주의깊게 읽어보아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20세기에 번역된 성경들은 “하데스”를 “무덤” 또는 원어 그대로 “하데스”로 표현함으로써, “하데스”를 “지옥”으로 번역할 때에 생기는 문맥상, 그리고 신학상의 혼란을 피하고 있다.

B. 어두운 구덩이 - “타르타루스”
    지옥을 가리키는 것으로 오해되고 있는 또 다른 헬라어인 “타르타루스”의 원래의 의미는 무엇일까?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지옥(타르타루스)에 던져 어두운 구덩이에 두어 심판 때까지 지키게 하셨으매.” 베드로후서 2:4. 베드로 후서 2장에서는 “지옥에 던져”로 번역된 “타르타루스”가 유다서에서는 “흑암”이라는 말로 번역되어 있다. “자기 지위를 지키지 아니하고 자기 처소를 떠난 천사들을 큰 날의 심판까지 영원한 결박으로 흑암(타르타루스, a dark abyss, 어두운 구덩이)에 가두셨으며.” 유다서 6절. 베드로후서 2장에서는 지옥으로 번역되었던 “타르타루스”가, 유다서에서는 흑암(어두운 구덩이)로 번역됨으로써, 혼란을 일으키고 있다.
    그런데, 범죄한 악한 천사들을 심판의 날까지 가두어 놓은 이 흑암의 구렁텅이는 어디일까? 요한계시록에 그 대답이 나와 있다. 사도 요한은 요한계시록 12장에서 사단과 악한 천사들이 하늘에서 범죄하여 지구로 쫓겨난 사실을 이렇게 기록하였다. “하늘에 전쟁이 있으니 미가엘과 그의 사자들이 용으로 더불어 싸울새 용과 그의 사자들도 싸우나 이기지 못하여 다시는 하늘에서 저희의 있을 곳을 얻지 못한지라. 큰 용이 내어 쫓기니 옛 뱀 곧 마귀라고도 하고 사단이라고도 하는 온 천하를 꾀는 자라 땅(지구)으로 내어 쫓기니 그의 사자들도 저와 함께 내어 쫓기니.” 요한계시록 12:7~9. 그러므로 하나님께 범죄한 사단과 악한 천사들이 던져져서 심판의 날까지 흑암 가운데 가두워진 곳은 바로 지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요한계시록 20장에 나오는 천년기에서도 이와 같은 사실을 재확인 할 수 있다. 요한계시록 20장 1~3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이후에 천년기가 시작되면서, 한 천사가 사단과 그의 천사들을 천년 동안 “무저갱”(abyss, 어두운 구덩이)에 결박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여기에 나오는 “무저갱”(abyss, 어두운 구덩이)도 “지구”를 뜻한다는 사실을 앞에서 이미 배웠다. 그러므로 베드로후서 2:4에 “지옥”으로 번역되었고, 유다서 6절에 “흑암”(abyss)으로 번역된 “타르타루스”는 지구를 뜻한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C. 신약성경의 지옥 - “게헨나”
    신약성경에서 게헨나(gehenna)는 모두 12번 “지옥”이란 말로 번역됨으로써, 가장 많은 횟수를 차지하고 있다. 게헨나는 12번 중에서 단 한번(약 3:6)을 제외하고는 모두 예수께서 친히 사용하셨던 특이한 표현이다. 그 중에서 마가복음 9장에 나오는 말씀은, 지옥에 대해서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대표적인 성경절이다.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마가복음 9:48. 그런데 여기 나오는 게헨나는 지옥이 아니라 지명이라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2가지로 증명할 수 있다.

증거 1: 게헨나는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ge)와 인명인 “힌놈”(Hinnom)이 합성되어 생긴 “힌놈의 골짜기”란 뜻의 지명인데, 구약성경에는 “힌놈의 골짜기”라는 이름으로 여러번 등장한다(여호수아 18:16).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게헨나는 실제적인 지옥이 아니라, 예루살렘 남쪽 비탈 아래의 계곡을 가리키는 지명이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있어서 “힌놈의 골짜기”(gehenna)는 저주와 살륙을 의미하는 장소였다. 구약시대에는 그곳에서 자식들을 몰렉신에게 불살라 제사하였다. “아하스가 ... 이스라엘 열왕의 길로 행하여 힌놈의 아들 골짜기에서 바알들의 우상을 부어 만들고 ... 그 자녀를 불사르고.” 역대하 28:1~3. 예레미야 선지자는 이 골짜기가 장차 살륙의 골짜기로 불려지게 될 것을 예언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 도벳 사당을 건축하고 그 자녀를 불에 살랐나니 ... 살륙의 골짜기라 칭하리니 ... 이 백성의 시체가 공중의 새와 땅 짐승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을 쫓을 자가 없을 것이라.” 예레미야 7:31~33.
    이러한 역사적인 배경 때문에 게헨나 곧, 힌놈의 골짜기라고 불리웠던 예루살렘 성 밖의 남쪽 골짜기는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장차 메시야를 거절하는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게 될 장소로 상징되었다. 예루살렘 성에 사는 사람들은 그곳을 일종의 쓰레기 처리장으로 사용하였다. 그 골짜기에는 항상 처형당한 죄인의 시체와 죽은 동물의 시체와 쓰레기들이 타고 있었기 때문에, 뿌연 연기가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다. 그 파괴적인 화염 속으로 어떤 것이 떨어지게 되면, 순식간에 구더기에 덮혀서 없어져 버렸다.
    바로 이러한 역사적, 지리적 배경을 아신 예수께서는 악인들이 최후의 심판날에 “게헨나” 즉 “힌놈의 골짜기”에 던져질 것이라고 경고하셨던 것이다. 이스라엘 성벽 아래서 전개되는 완전한 파멸의 장면을 가리키면서, 예수께서는 지옥불의 완전한 파괴에 대한 예증을 들었던 것이다. 구더기와 쥐들이 계속해서 각종 동물의 시체들을 뜯어먹는 장면을 지적하시면서, 지옥의 완전한 멸망의 모습을 설명하셨던 것이다 “한 눈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두 눈을 가지고 지옥(게헨나, 힌놈의 골짜기)에 던지우는 것보다 나으리라.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 마가복음 9:48.

증거 2: 만일 이 성경절에서 지옥이라고 번역된 “게헨나”가 유황불이 영원히 불타고 있는 진짜 지옥이라면, 어떻게 구더기가 그곳에서 죽지 않고 영원토록 살 수 있겠는가? “거기(지옥)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어떤 사람들은 여기에 나오는 구더기들을 사람의 혼(soul)으로 해석하는데, 그러한 해석은 예수님의 의도와 일치하는가? 결코 아니다. 성경 전체에서 구더기를 사람의 혼으로 표현하거나 상징한 곳이 있는가? 단 한군데도 없다. 구더기와 지옥의 유황불은 결코 함께 어울릴 수 없는 단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벌레들이 우글거리고, 쓰레기와 죽은 시체를 태우는 불길이 밤낮 타오르던 게헨나(힌놈의 골짜기)를 가리키시면서, 마지막 심판 날에 악인들을 태울 불길을 “영영한 불”로 표현하셨던 것이다(마 25:41). “영영한 불” 이란 영원토록 중단되지 않고 타는 불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불로 인한 결과가 영원할 것이라는 뜻이다. 즉, 영원한 멸망을 뜻한다.
    “게헨나”는 신약 성경에서 모두 지옥이란 말로 번역되었지만(마 5:22, 29, 30 ; 10:28 ; 23;33), 사람이 죽은 뒤 몸을 떠난 혼백이 영원토록 불 가운데서 고통받는 곳을 뜻한 경우는 단 한번도 없다. 그 대신, 장차 있을 재림과 연관된 심판의 때에 육신이 유황불에 소멸되는 곳으로 묘사되었다(마 5:22 ; 25:41 ; 마 10:28 ; 5:29, 30).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게헨나) 불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5:22. “...온 몸이 지옥(게헨나)에 던지우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 마태복음 5:30.

8부 - 왜 악인들도 부활해야 합니까?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한복음 5:28,29.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이 죽는 즉시로 지옥불에 던져서 없애 버리지 않고 심판의 날까지 무덤 속에 지키셨다가 부활시키실까?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공의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은 악인이 죽으면, 즉시로 지옥불에 떨어진다고 믿는다. 만일 죽는 순간에 즉시로 천국과 지옥을 각각 그 보상으로 받는다고 믿으면, 그렇게 믿는 사람은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자기 모순에 빠지게 된다. 그렇게 믿는 사람에게 있어서, 부활은 무슨 의미가 있는가? 모든 사람이 이미 천국 또는 지옥에 가있는데, 그 사람들을 다시 불러다가 부활시켜야 할 필요가 어디에 있는가? 모든 사람들이 죽는 순간에 이미 그들의 영원한 운명이 결정된다면, 세상 끝에 있을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는 부활은 한갖 삼류 쇼에 지나지 않는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러므로 사람이 죽는 순간에 즉시로 지옥이나 천국에 가지 않고 무덤 속에서 부활을 기다려야 하는 이유는, 매우 합리적이고 논리적인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에서 그 근거를 찾아 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의인에게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보상으로 주거나, 악인에게 형벌을 베풀기 위해서 심판의 부활을 베풀기 전에, 먼저 그들의 생애와 성품을 조사하시고 심판하신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도 심판받기 전에는 결코 처벌받지 않는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하나님의 공의는 악인에게 형벌을 주기 전에 먼저 심판하는 과정을 요구한다.

하늘 법정에 계류되어 있는 피고

    사단은 모든 인류들을 하늘 법정에 고소하였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은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기간이 끝나서 호흡이 끊어지는 순간에, 자신의 죄와 생애를 기록한 서류가 하늘 법정에 올려지게 되는 피고인들이다. 그래서 유다서에는 모세의 시체를 놓고 천사장 미가엘과 사단이 서로 자기의 소유물이라고 다투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이다. “천사장 미가엘이 모세의 시체에 대하여 마귀와 다투어 변론할 때에 감히 훼방하는 판결을 쓰지 못하고 다만 말하되 주께서 너를 꾸짖으시기를 원하노라.” 유다서 9절.
    다니엘 7장에는 책들을 펴놓으시고 심판을 베푸시는 장면이 묘사되어 있다. “심판을 베푸시는데 책들이 펴놓였더라.” 단 7:10. 하나님께서는 에덴 동산 이후부터 예수께서 재강림하실 때까지의 모든 사람들에 대한 사단의 고소 내용을 여기에 나오는 “책”을 토대로 검토하신다. 모든 피고인들의 생애와 품성과 동기를 아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죄인들의 생애에 나타난 열매들을 참된 회개의 증거물로 채택하신 다음, 당신 자신이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와 대속의 죽음을 하늘 재판관인 하나님 앞에 제시하시면서, 회개한 죄인들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호소하는 변호사로 중보하고 계신다.
    그러므로 죽은 자들이 받게 될 보상과 형벌은 그들에 대한 재판이 하늘 법정에서 끝날 때까지 보류될 수 밖에 없다. 그러나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실 때에는 각 사람에 대한 심판의 결과를 가지고 오실 것이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계 22:12. 예수께서 재강림하실 때에 의인들은 생명의 부활과 영생을 보상으로 받을 것이며, 악인들은 천년기 후에 심판의 부활로 일어나서 유황불을 그 대가로 받게 될 것이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29

재판의 시작 날짜

    베드로 후서 2:9에도 악한 자들이 무덤 속에서 부활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이유가 나타나 있다. “주께서는 경건한 자들을 시험에서 구해내시고 불의한 자들을 형벌에 처할 심판의 날까지 가두실 것을 아시느니라.” (킹제임스 영어성경역). 악한 자들은 언제까지 그들의 형벌을 기다려야 하는가? “형벌에 처할 심판의 날까지” 기다려야 된다. 왜 그런가? 왜냐하면 사람이 죽는 순간은 재판이 끝나는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허용하신 은혜의 시간이 마쳐지는 시간이기 때문에 그렇다. 죽음은 재판의 끝이 아니라, 그가 어떤 생애를 살았는가에 대하여 심의하는 재판이 시작되는 날이다. 악인들 역시 지옥의 형벌을 받기 전에 정확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비록 악인일지라도 재판이 끝나는 날까지 기다려야 한다. 의인이 심판을 통하여 천국에 들어가는 것처럼, 악인들도 심판을 통과하여 지옥불에 들어간다.

재판에 참석해야 하는 악인들

    요한계시록 20장 후반부에는, 죽은 악인들도 천년기가 지난 다음에 잠깐 동안 부활하여 왜 자기들이 구원받지 못했는지를 공정하게 심의받은 다음에 유황불로 멸망당하게 되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다. “또 내가 크고 흰 보좌와 그 위에 앉으신 자를 보니 땅과 하늘이 그 앞에서 피하여 간데 없더라. 또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그 보좌 앞에서 섰는데 책들이 펴 있고, 또 다른 책이 펴졌으니 곧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에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또 사망과 음부도 그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각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곧 불못이라.” 요한계시록 20:11~14. 하나님께서는 악인들을 심판하시는 과정에서까지도 공의로우신 하나님으로 인정받게 되실 것이다. 그러므로 영원토록 이 우주에는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의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게 될 것이다.

    독자 여러분들은 공의와 사랑의 하나님께서 악인을 재판하지도 않으신 채, 죽는 순간에 즉시로 그 영혼을 지옥으로 보내버릴 것이라고 생각하는가? 심판은 하나님을 위한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각 사람의 생애와 품성을 아시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 자신을 위해서는 심판이 필요없다. 그러나 인간과 우주에 있는 모든 천사들, 심지어는 사단까지도 하나님의 심판이 완전히 공의롭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에 공정하고 공개된 심판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랑과 자비와 동정의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공의로운 분이시다. 그분은 결코 비합리적이거나 비논리적인 분이 아니다. 이 세상에 있는 어떤 사람도 성경에 기록된 율법에 의거하여 공정한 재판을 받기 전까지, 천국이나 지옥에 갈 수 없다. 하늘 법정에서 영원한 운명이 결정되고,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그 순간까지 무덤 속에서 기다려야 한다. 바로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참된 부활 신앙이다.
    요한계시록 5장에서도, 하늘에서 책을 펴시고 심판하시는 어린양에 대한 이야기와 그 주위에서 그분께 세세토록 찬송을 돌리는 천사들의 모습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구에서 치르어진 길고 긴 선악간의 대쟁투는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심판으로 종결짓게 된다. 사단은 불에 타서 죽임을 당하게 되고, 하나님의 명예와 의로우심이 영원토록 변호받게 된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악인들이 부활하여 심판을 받는 일이 선제한 후에야, 이 지구가 영원히 정결케 되어 새 하늘과 새 땅이 될 수 있는 것이다.

9부 - 지옥불에 던져지는 것은 몸입니까? 영혼입니까?


이것은 악인들의 운명에 관하여 가장 많이 오해되고 있는 이야기 가운데 하나이다. 지옥에 관한 가르침 중에서 가장 널리 퍼지고 있는 오류는, 악인이 죽는 순간에 불멸의 혼백이 육체에서 빠져나가서 지옥불에 떨어진다는 것이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가르침을 성경과 대조하는 일없이 무분별하게 받아들임으로써, 성경이 말하는 지옥과, 불교나 이방 종교에서 말하는 지옥을 혼동하게 되었다. 그러면 이 문제에 대한 성경의 바른 가르침은 무엇인가 공부해 보자.

 

예수께서 가르치신 진리

    예수께서는 사람이 죽었을 때에 그 사람의 망령이 육체로부터 빠져나와서 분리된다고 말씀하신 적이 단 한번도 없으며, 악한 자가 죽는 순간에 즉시로 영원한 지옥불의 고통 가운데로 들어간다고 말씀하신 적도 없다. 예수님께서는 이 문제를 매우 단순하게 설명하셨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 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 하라” 마태복음 10:28. 주님의 이러한 말씀은 지옥불에 들어가는 것은 어떤 신비스러운 혼이 아니라, 육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설명해 준다. 마태복음 5:30에서도, 예수께서는 “온 몸이 지옥에 던지우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경고하셨는데, 이 말씀은 육체의 손, 발, 눈, 그리고 그 밖의 모든 지체를 가지고 지옥불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의미한다.

    물론, 성경에 지옥에 던지우는 것을 혼으로 표현한 곳이 몇군데 있지만, “혼”이란 말의 원어(히브리어, 헬라어)를 살펴보면, 그 말의 의미가 연기같이 형체가 없는 어떤 존재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분명한 형체를 가지고 있는 “생명체”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지난 살아남는 이들 제 56호에서 상세하게 확인하였다. 영혼에 대한 잘못된 사상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자신의 견해에 맞추어서 성경을 번역하다가, “생명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는 원어(“네페쉬, 프쉬케”)를 사람이 죽었을 때에 몸에서 빠져나가는 귀신같은 존재로 오역함으로써 빚어진 혼란이 교회 안에 깊숙히 들어와 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몸과 영혼이 지옥의 유황불에서 함께 멸하여질 것에 대해서 거듭 경고하셨다. 그런데 감히 누가 악인들의 혼이 영원토록 불멸할 것이라고 주장할 수 있는가? 성경은 인간이 죽은 후에 몸으로부터 영혼이 살짝 소리없이 빠져나간다는 사실을 시종일관 부인하고 있는데, 사단은 바로 이 점에 있어서 진리를 크게 왜곡시켰다. 그리하여 사단의 악한 천사들이 온갖 형태의 귀신 및 악령 또는 죽은 자의 혼백으로 위장하여 나타날 수 있는 신학적 기반이 마련되게 되었다. 만일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무덤 속에서 자는 잠”이라는 단순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한다면, 사단은 더 이상 사람들 앞에 죽은 자의 혼백으로 나타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사단이 사람들 앞에 죽은 자의 혼백으로 위장하여 나타날 경우, 사람들은 그것이 죽은 자의 혼이 아니라 사단이 위장하여 나타난 것인지를 금새 알아차릴 수 있기 때문이다.
생명을 선물로 주실 수 있는 유일한 분인 예수께서는, 어떤 형태로든지 악인들이 지옥에서 계속 살 수 있는 가능성을 부인하였다. 생명은 영원히 없어질 것이며, 몸은 유황불의 화염 속에서 소멸될 것이다.

 

참고 성경절

    지옥불에 타서 연기가 되어 없어질 육체: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되어 없어지리로다” 시편 37:20.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 시편 37:10. 
    지옥불에 타서 재가 되어 없어질 육체: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극렬한 풀무 불같은 날이 이르리니 교만한 자와 악을 행하는 자는 다 초개 같을 것이나 그 이르는 날에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로되 ... 또 너희 발바닥 밑에 재와 같으리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말라기 4:1,3.

    이러한 말씀들은, 지옥의 유황불은 그것이 몸이든지 혼이든지 간에 모든 것을 태워서 재가 될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인간의 언어 중에서 가장 힘있고 단호한 단어들이 지옥의 멸망을 표현하는데 사용되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성경의 저자들이 말하고 있는 “파괴(destroy), 도말(consume), 태워 없애버림(burn up), 집어삼킴(devour), 죽음(death)” 과 같은 단어들은, 그것들이 뜻하는 바가 정말로 “죽음과 파괴와 태워 없어짐과 도말과 죽음” 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단어들이 어떤 신비하고 비밀스런 뜻을 가지고 있는가? 성경적으로 볼 때, 우리가 그렇게 생각해야 할 이유가 전혀 없다. 잘못된 기독교 신학에 물들은 우리의 편견과 선입관이 단순한 말들을 어렵고 신비한 뜻으로 해석하도록 만들었을 뿐이다.
    잘못된 기독교 신학에 의해서, 하나님은 히틀러보다도 잔인한 분으로 받아들여지게 되었다. 아무리 히틀러가 사람들을 고문하고 실험하는 잔인성을 보였다고 하지만, 결국에 사람들은 개스실에서 죽거나 집단 화장터에서 태워져서 재로 되었다. 그러나 어떤 목사들과 성직자들은,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영혼들이 영원토록 신음하고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는 것을 보실 수 있도록, 그들을 살아 있게 하신다고 주장한다. 그런 신학자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을 히틀러보다도 잔인한 분으로 만들고 있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해야만 한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에 관한 진리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성품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게 되어서,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감사함 때문에 그분의 말씀에 충성하는 것이 아니라, 지옥불 속에서의 영원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서 억지로 복종하게 된다.

 

독자들의 질문에 대한 답변

1. 죽은 자들이 무덤 속에서 잠자고 있는 것이라면, 하늘로 승천해 간 에녹과 엘리야 같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 것입니까?

답: 성경은 에녹과 엘리야가 죽음을 맛보지 않고 승천하여 하늘에 가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영광스럽게 변화된 살아있는 몸을 그대로 가지고 하늘에 가있다는 말이지요(고전 15:51 참조). 성경은 하나님께서 거하시는 하늘이 실제적으로 있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요 14:1-3 참조). 그래서 엘리야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서 지상 생활을 하실 때, 변화산에서 예수님 곁에 내려와 실제적으로 주님과 대화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마 17장 참조). 엘리야와 대화를 나누었던 예수님께서도 실제적인 몸을 가지시고 대화하고 계셨던 것처럼 말입니다.


2. 변화산에 내려왔던 모세와 엘리야는 어떻게 된 것입니까?

답: 위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엘리야는 죽음을 경험하지 않고 살아있는 상태로 하늘로 승천하였으며, 모세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여 하늘에 가 있다가 십자가의 고난을 앞두고 고난당하시는 예수님을 위로하기 위하여 잠간 내려 왔던 것입니다. 두사람 모두 어떤 혼백으로 내려 온 것이 아니라 변화된 영광의 몸으로 내려 왔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모세, 엘리야, 그리고 그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던 예수님까지도 빛나는 몸을 가지고 있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마 17장 참조). 아담과 하와도 타락하기 이전에는 천사처럼 빛나는 영광의 몸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범죄 이후에 그것을 잃어버리게 되었기 때문에, 갑자기 벌거벗은 수치를 느꼈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창 2:25, 3:7 참조).

3. 모세의 시체를 두고 천사와 사단이 싸웠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유다서 9절)?

답: 유다서 9절에는, 하나님께서 미가엘 천사를 통하여 모세를 부활시키려고 하실 때에, 고소자 사단이 모세가 부활하여 영생을 얻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러나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승리하셔서 모세를 불멸의 몸으로 부활시키셔서 하늘에 승천시킬 수 있으셨습니다. 변화산 위에서 예수님 곁에 내려 왔던 모세에 대한 기록을 보아서도 우리는 그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성경은 그 외에도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신 후 삼일만에 부활하셨을 때에도 주님을 따라 여러 성도들이 함께 실제적으로 부활하여 무덤에서 나왔다는 사실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크게 소리 지르시고 영혼이 떠나시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고 땅이 진동하며 바위가 터지고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마 27:50-53).

4. 고린도후서 12장에 나오는 바울의 체험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답: 바울이 세째 하늘에 올라갔었다는 경험은 특별한 초자연적인 계시의 경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하늘은 지구의 대기권을 말하고 있고, 둘째 하늘은 해 달 별들이 있는 우주 공간을 말하고 있는 것이며, 세째 하늘은 하나님께서 계시고 천사들이 거하고 있는 곳을 가르키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사람이 살아있는 동안에 어떤 영이나 혼이 육체를 빠져나간다고 암시하는 말씀이 전혀 없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말씀은 바울이 살아있는 동안에 계시를 통하여 하늘을 보았던 사실을 은유적인 표현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일 뿐입니다.

    다니엘 선지자가 계시를 받는 장면을 통해서, 계시는 뇌(brain)로 받는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다니엘이 침상에서 꿈을 꾸며 뇌속으로 이상을 받고” 단 7:1. 그러므로 다니엘이 그의 “뇌속” 계시를 보았던 것처럼, 바울 역시 그의 “뇌속”으로 하늘의 장면을 보았다고 이해해야 합니다. 죽지도 않은 바울의 혼이 육체를 빠져나가서 하늘로 날아가 하나님께로부터 계시를 받았던 것이 아니라,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만 하실 수 있는 기적적인 역사를 통하여 바울의 뇌속에 하늘의 모습을 보여주셨던 것입니다. 이러한 사실은 바울 자신이 스스로 표현했던 다음과 같은 말 속에서도 엿볼 수 있습니다. “몸 안에 있었는지 몸밖에 있었는지 나는 모르거니와 하나님은 아시니라.” 바울 자신 역시 이러한 신비스러운 하나님의 기적의 역사를 잘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렇게 표현할 수 밖에 없었던 것입니다(살아남는 이들 제 56호 22~24 페이지를 참조할 것 ).

5. 사울이 사무엘 선지자의 혼을 불러낸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됩니까?


    살아남는 이들 제 56호의 30~31 페이지에 그 답변이 나와 있습니다. 지난 56호에서 상세하게 다루었듯이, 사람이 죽었을 경우, 혼백이 육체로부터 빠져나온다는 가르침은 고대 희랍 종교에서 유래된 오류입니다. 사람은 죽었을 경우, 무덤 속에서 “생명의 부활” 또는 “심판의 부활”을 기다리는 상태로 깊은 무의식 상태에서 “잠”을 잔다는 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이 신접한 여인을 찾아가서 보았던 사무엘 선지자는 사무엘 선지자의 죽었던 혼백이 나타난 것이 아니라, 사무엘의 혼백으로 위장한 사단의 악령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죽은 자의 혼을 불러내는 일을 단호히 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혼을 불러내어 죽은 자와 접촉하려고 시도할 때에 사단의 천사들에게 기만당할 것을 아셨기 때문입니다. “진언하는 자나 신접자나 박수나 초혼자(혼을 불러내는 사람)를 너희 중에 용납하지 말라. 이런 일을 행하는 자를 여호와께서 가증히 여기시나니.” 신명기 18:11,12.

10부 -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는 비유인가? 실화인가? (1)


    예수께서 말씀하신 누가복음 16장 19~31절에 나오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를 문자 그대로의 실제적인 예화로 이해해야 합니까? 아니면 비유로써 이해해야 합니까?

    이 질문은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서 많은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다. 대체적으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해석하는 입장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견해가 있다.

1.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실화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견해 : 이들은, 이 이야기는 사람이 죽어서 사후 세상에 가면 실제적으로 어떤 것들이 존재하며,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가를 말해 주고 있는 실제적인 예화라고 생각한다.

2.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비유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견해 : 이들은, 이 이야기는 지옥과 천국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예수께서 전혀 다른 교훈을 주기 위해서 말씀하신 비유라고 말하면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과 전혀 반대되는 내용의 성경절들을 그 증거로 제시한다.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서 지옥에 대한 견해가 완전히 달라지게 된다. 그런데 한가지 안타까운 사실은, 오늘날 많은 교회들에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이야기가, 믿지 않는 사람들이나 신앙이 부족한 사람들의 마음에 공포심을 넣어주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현상이 생기는 이유는, 예수께서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왜 하셨으며, 어떤 교훈을 주기 위해서 하셨는가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생겼기 때문에 그렇다. “부자와 나사로”에 대한 이야기를 잘못 해석할 경우, 지옥에 대한 공포심으로 인하여 일시적인 “회개(?)”가 생길지는 모르지만, 하나님의 품성과 지옥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생기기 때문에, 결과적으로는 신앙 생활에 커다란 상처를 가져다 준다.

 

이 비유는 그 당시의 유명한 민화였음

    본론으로 들어가기에 앞서, 한가지 분명하게 초점을 맞추어서 연구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 이야기가 진실로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는 것과 예수께서 이야기를 말씀하신 이유와 그 배경이 무엇인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 당시, 가난하고 멸시받는 서민들과 아이들이 부자들에게 당하는 그들의 설움을 노래 가사로 만들어 즐겨 부르던, 사람들 사이에 잘 알려진 민화였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누구에게나 친근하고 잘 알려진 서민들의 노랫말을 이용하심으로 주시고자 하시는 교훈이 사람들의 마음에 더 가까이 느껴지도록 하신 것이다. 이 노랫말을 이용하셔서 하신 이 비유의 이야기는 예수님 주위에 둘러 서서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들, 남녀 노소를 불구하고 모두에게 아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는 말씀이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배경에 대한 이해를 가질 때, 우리는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에게 들려주시고자 하는 예수님의 교훈이 무엇인지를 더 잘 알 수 있게 될 것이다.

 

비유의 정의

    먼저, 비유의 정의에 대해서 알아보도록 하자. 램덤 하우스 대학사전에는 비유의 정의를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비유: 진리나 도덕적인 교훈을 전달하기 위해 고안된 간단하고 풍유적인 이야기.” 우리는 성경의 저자들이 비유 가운데 사용하고 있는 상징(예를 들어, 사사기 9:15에 나오는 나무들이 가시나무에게 왕이 되도록 요구하는 비유)과 실제의 상황을 잘 구별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유가 어떤 형태로 되어 있든지 간에, 그것은 어떤 교훈을 가르치기 위한 도구일 뿐이라는 사실을 성경 안에서 수없이 발견하게 되기 때문이다.

 

비유를 사용하신 이유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가르치실 때에 비유의 가치를 인식하셨다. 그분께서는 사람들이 당신께서 주시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고 명상할 수 있는 영적인 자극을 주기 원하셨다. 만일 그분께서 어려운 문어체의 말을 하신다면, 청중들 중의 어떤 이들은 흥미를 잃어버리거나 그 말씀의 내용을 잊어버리게 될 것을 아셨다.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 중 어떤 것은 어떤 특정한 사람들에게 혹독한 비난과 반대를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아셨다. 그리하여 뱀처럼 지혜롭고 비둘기처럼 순결한 방법으로 복음을 전파해야 할 것을 말씀하시면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비유를 사용하시는 이유를 설명해 주셨다. “가라사대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다른 사람에게는 비유로 하나니 이는 저희로 보아도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누가복음 8:10.
    쿠루던즈 용어 해설집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되어 있다. “복음을 전하실 때에 주님께서는 자주 비유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진리를 자원하는 마음으로 알고자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진리를 가리우기 위하여 비유를 사용하셨다. 진리를 진정으로 갈급하는 사람들은 그 의미를 발견할 때까지 쉼이 없을 것이다.”

 

누구를 대상으로 하신 말씀인가?

    그럼 이제, 예수께서 이 이야기를 누구에게 적용시키고자 하셨는지를 알아 보도록 하자. 예수님은 어떤 부류의 사람들을 그 대상으로 다루고 계셨는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나오는 누가복음 16장에는 처음부터 비유의 말씀 즉, 돈과 재물을 사랑하는 자들에 대한 경고인 청지기의 비유가 나온다. 그 다음에 이어지는 14절에는,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자라. 이 모든 것을 듣고 비웃거늘”이라는 말씀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러한 문맥을 볼 때, 예수께서는 돈과 재물을 사랑하던 그 당시의 탐욕적인 바리새인들을 지적하면서 말씀하셨던 사실을 알 수 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가르치셨던 진리를 거절하던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대할 때에는 더욱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다루셔야만 하셨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바리새인들의 죄와 이기심을 지적하는 말씀을 하실 경우에는, 비유과 풍자를 사용하시는 것이 가장 안전한 방법이었다. 그래서 “귀있는 자들”만이 예수께서 비유를 통하여 주시는 교훈을 알아들을 수 있었다.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가르침 중에서 많은 것을 이해하지 못했는데, 그 증거가 누가복음 10장 21절에 있는 예수님의 기도 가운데에 나타나 있다. “이때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뻐하사 가라사대 천지의 주재이신 아버지여 이것을 지혜롭고 슬기있는 자들에게는 숨기시고 어린아이들에게 나타내심을 감사하나이다 옳소이다 이렇게 된 것이 아버지의 뜻이니이다.” 또한 마가복음 4장 33,34절은 예수께서 많은 경우에 비유를 사용하여 중요한 교훈을 주셨던 사실을 말해 준다.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저희가 알아들을 수 있는 말씀을 가르치시되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 담겨진 5가지 교훈

    무엇보다도 우리는, 예수께서 그 이야기를 통해서 주시기 원하셨던 진정한 기별이 무엇인지를 확실하게 알아야 한다. 이제부터, 누가복음 16장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의 진정한 의미를 함께 연구해 보도록 하자;

    “한 부자가 있어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고 날마다 호화로이 연락하는데 나사로라 이름한 한 거지가 헌데를 앓으며 그 부자의 대문에 누워 부자의 상에서 떨어지는 것으로 배불리려 하매 심지어 개들이 와서 그 헌데를 핥더라” 누가복음 16:19~21.

    이 이야기 가운데 나타나 있는 부자는 누구인가? 여기에 나오는 부자는 영적으로 유대인들을 상징한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인류에 대한 하나님의 구속사업을 아는 지식으로 인해서 놀라운 축복을 받아 왔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양자됨과 영광과 언약들과 율법을 세우신 것과 예배와 약속들”을 받았던 사람들이다(로마서 9:4). 이 이야기의 뒷 부분에 나오는 부자의 말처럼, 유대인만이 “아버지 아브라함이여”라고 부를 수 있는 특권을 부여받은 선택된 민족이었다.
    이와 반대로, 나사로는 영적으로 가난한 모든 사람들 즉, 이스라엘 사람들이 받은 영적 유산을 나누어 주어야 했던 이방인들을 상징한다. 구약시대의 이사야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지고 있는 의무와 특권에 대해서 이렇게 기록하였다. “내가 또 너로 이방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 이사야 49:6.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대인들은 그들의 영적인 부유함을 이방인들에게 나누어 주는 대신에, 이방인들을 마치 주인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에도 만족하는 “개들”로 생각했다(21절). 이러한 사실은, 예수께서 가나안 여인의 믿음을 시험하실 때에 사용하셨던 비유에서도 잘 나타난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치 아니하니라.” 이에 여자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 마태복음 15:26~27.

1.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진리를 가지고 있었지만, 이기적이고 영적인 교만이 마음에 가득 차 있던 바리새인들을 책망하기 위한 말씀이다.

    영적으로 부유한 유대인들은 진리를 나누어 주지 않은 채 보관하여 왔으며, 그렇게 함으로서 그들은 교만과 이기적인 정신에 의해서 스스로 붕괴되어 왔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시기 앞서, 바리새인들의 영적인 교만을 책망하셨던 것이다. “너희는 사람들 앞에서 스스로 옳다하는 자이나 너희 마음을 하나님께서 아시나니 사람 중에 높임을 받는 그것은 하나님 앞에 미움을 받는 것이니라” 15절. 이러한 유대인들의 교만의 결과는 무엇이었는가? 예수께서는 다시 비유를 통해서 가르치셨다.
“이에 그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도 죽어 장사되매, 저가 음부에서 고통 중에 눈을 들어 멀리 아브라함과 그의 품안에 있는 나사로를 보고 불러 가로되, 아버지 아브라함이여 나를 긍휼히 여기사 나사로를 보내어 그 손가락 끝에 물을 찍어 내 혀를 서늘하게 하소서, 내가 불꽃 가운데서 고민하나이다. 아브라함이 가로되 얘 너는 살았을 때에 네 좋은 것을 받았고 나사로는 고난을 받았으니 이것을 기억하라 이제 저는 여기서 위로를 받고 너는 고민을 받느니라. 이뿐 아니라 너희와 우리 사이에 큰 구덩이가 끼어있어 여기서 너희에게 건너 가고자 하되 할 수 없고 거기서 우리에게 건너올 수도 없게 하였느니라.” 22~26절.

2.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유대인들의 최후의 운명을 경고하기 위한 말씀이다.

    유대인들은 지상에 있는 동안 영적으로 “좋은 생활”을 즐기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이웃을 부유케 하거나 축복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더 이상의 어떤 보상도 주어질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지옥에서 고통당하는 부자의 모습을 통해서 영적으로 부유한 유대인들의 운명에 대해서 경고하셨던 것이다. “그러나 화 있을진저 너희 부요한 자여, 너희는 너희의 위로를 이미 받았도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배부른 자여 너희는 주리리로다. 화 있을진저 너희 이제 웃는 자여 너희가 애통하여 울리로다” 누가복음 6:24, 25.

3.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부자는 하나님께 복을 받아서 부자며, 가난한 자는 저주를 받아서 가난하게 되었다는 유대인들의 잘못된 사상을 지적하는 말씀이다.

4. 이 비유에는, 결국에는 나사로라는 이름으로 영적으로 마음이 가난한 자들이 하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교훈이 포함되어 있다.

    외적으로는 부요해 보였으나 영적으로 가난했던 유대인들과는 대조적으로, 나사로란 이름으로 상징된 영적으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은 하늘의 왕국을 물려 받을 것이다. 영적으로 굶주리고 목마른 이방인들이 부유한 유대인들의 자리를 대신 채울 것이다. 예수께서는 독선적인 바리새인들에 의해서 업신여김을 받는 “개들” 과 죄인들이, 하늘에 들어가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기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21:31.

5.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는, 진리를 거절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의 기적도 소용이 없다는 교훈이 담겨져 있다.

    이 비유는 부자가 그의 형제들에게 자기와 같은 운명을 당하지 않도록 호소하는 것으로 끝난다. 부자는 이러한 임무를 위하여 나사로를 유대인 형제들에게 보내 달라고 아브라함에게 부탁하면서 이렇게 외친다. “만일 죽은 자에게서 저희에게 가는 자가 있으면 회개하리이다” 30절. 아브라함이 대답하기를 “모세와 선지자들에게 듣지 아니하면 비록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는 자가 있을지라도 권함을 받지 아니하리라” 31절.
아브라함의 대답을 통해서, 예수께서는 초자연적인 기적으로도 “모세와 선지자들” 의 가르침을 계속해서 거절했던 사람들의 마음을 변화시키지 못한다는 사실을 지적하시면서, 진리의 말씀을 거절하는 바리새인들을 책망하셨다. 실제로 예수께서는 죽었던 나사로를 살리심으로써, 당신께 대한 유대인들의 믿음을 불러일으키고자 애쓰셨지만, 교회 지도자들과 바리새인들은 회개하지 않았다.

 

비유일 수 밖에 없는 4가지 이유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지옥과 천국에 간 두 사람 사이에서 오고간 이야기라고 오해하고 있다. 그러한 잘못된 해석에 근거해서, 그들은 악인들은 죽는 순간에 그 영혼이 지옥의 유황불 속으로 던져져서 영원토록 불타게 된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그러한 잘못은,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던 이유와 목적을 깨닫지 못한 채, 비유에 나타나 있는 장면에 모든 초점을 맞춤으로써 빚어진 실수이다. 그래서 그러한 해석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지금도 진실한 그리스도인이 죽으면 천국에 있는 아브라함의 품안에 안겨진다고 믿게 된다. 그들은 아브라함의 혼백이 천국에 가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죽은 의인들의 영혼은 죽는 순간에 천국으로 간다고 생각하게 된다.

1. 아브라함이 아직 하늘에 가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비유에는 아브라함이 하늘에 올라가 있는 것으로 묘사되어 있다.

    성경은 아브라함이 아직 천국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을 증거하고 있다. “다윗은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였으나 ... 형제들아 내가 조상 다윗에 대하여 담대히 말할 수가 있노니 다윗이 죽어 장사되어 그 묘가 오늘날까지 우리 중에 있도다.” 사도행전 2:29~34. 베드로는 그 당시 이미 죽은지 700년 이상이나 되는 다윗에 대해서 말하기를 그가 아직 하늘에 올라가지 못하고 무덤 속에 있다고 말하였다. 만일 다윗과 같은 의인이 아직 천국에 가지 못하였다면, 아브라함 역시 아직 무덤 속에서 부활의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생각해야 되지 않겠는가? 그렇다. 바울은 히브리서 11장에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 등의 믿음을 소개하면서 “이 사람들이 다 믿음을 따라서 죽었으나 약속을 받지 못하였으되” 라고 말함으로써, 아브라함과 같은 믿음의 조상도 아직 천국에 들어가는 약속을 보상받지 못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하였다.
    그러면 아브라함은 언제 천국에 들어가게 될까? 다음과 같은 예수님의 말씀은 이 문제에 대한 분명한 대답을 준다. “의인들의 부활시에 네가 갚음을 받겠음이라.” 누가복음 14:14. 그렇다면 의인들은 언제 부활하는가? 다시 예수님의 대답을 들어 보자.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대로 갚으리라.” 마태복음 16:27. 이제 모든 것이 분명해 졌다. 아브라함 역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세상 끝날에 모든 의인들과 함께 천국에 들어가는 약속을 보상으로 받는다는 것이 성경이 말하는 진리이다.
    그런데,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에는 아브라함이 이미 천국에 들어가 있는 것으로 나와 있으니, 이것이 어떻게 된 일인가? 바로 그러한 이유 때문에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는 결코 실화로 생각할 수 없으며, 지옥 문제가 아닌 다른 교훈을 주기 위한 비유로 생각해야 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잘 아는 아브라함과, 가난하지만 신실했던 나사로의 이름을 빌려서 그들에게 교훈을 주고자 했던 것이다.

2.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다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있을 수 없다.

    만일 천국에 간 의인들이 실제적으로 아브라함의 품에서 쉼을 얻는다면, 아브라함은 누구의 품 안에서 쉼을 얻고 있는가? 만일 예수께서 나사로가 정말 천국에 간 것을 표현하신 것이라면 아브라함의 품 대신 하나님의 품에 안겼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을 것이다.

3. 천국과 지옥에 있는 사람들이 서로 마주 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늘에 있는 의인들이 지옥에서 불타고 있는 가족 친지들을 보면서 행복을 느낄 수 있겠는가?

    정말 이 이야기에 나오는 것처럼, 천국과 지옥 사이에 실제로 깊게 갈라진 계곡이 있어서 서로 마주보면서 대화를 나눌 수 있다면, 어떻게 하늘에 있는 의인들이, 지옥의 유황불 속에서 아우성치고 있는 악인들의 모습을 보면서 천국의 안락함과 기쁨을 즐길 수 있겠는가? 그리고 천국이 지옥과 어떻게 그렇게 가까이 있을 수 있겠는가? 그러므로 비유는 비유로서 해석해야만 한다. 비유를 비유로서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이상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4. 비유에 나오는 부자와 나사로가 모두 육체를 가지고 천국, 또는 지옥에 간 것으로 묘사되어 있는데, 그렇다면 부자와 나사로의 무덤 속에는 그들의 시체가 없다는 말이 된다.

    이 이야기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인해서 야기되는 또 다른 딜레마는 “빈 무덤의 신비” 이다. 이 이야기를 실제적인 예화로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이 엉뚱한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부자와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 그들은 무덤에 장사되었을 것이다. 그리고는 무덤에 들어간 나사로의 시체를 즉시로 천사들이 받아서 아브라함의 품에 안겨 준다. “거지가 죽어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22절. 그리고는 곧 이어서 지옥에 있는 부자가 그의 눈을 치켜 뜨고 천국에서 아브라함의 품 안에서 쉬고 있는 나사로의 손가락으로부터 떨어지는 물한방울로 그의 혀를 시원하게 하기를 갈망하는 장면이 나온다.
    만일 이 이야기가 실제적인 예화라면, 우리는 이 장면을 근거로 해서 그 두 사람이 몸 전체 즉, 손가락과 혀와 갈증을 느끼는 육체를 가지고 천국과 지옥에 갔다고 믿어야 한다. 손과 발이 없고 형체를 알 수 없는 연기 같은 혼백이 간 것이 아니고, 육체가 천국에 간 것이기 때문에, 즉 부자와 나사로가 사후에 육체를 가지고 천국과 지옥에 갔기 때문에, 두 사람 모두 무덤 속에서 누워 있지 않고 사라졌다는 희안한 결론이 내려지게 되는 것이다. 두 사람 모두 육체를 가지고 천국과 지옥에 갔다면, 두 사람의 무덤은 그 주인을 잃어버린 채 비어 있어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 모두는 죽은 몸이 무덤에 묻혀진 직후에 천국이나 지옥으로 옮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중국과 이집트의 고대 왕실의 무덤을 발굴해 보면 지금도 여전히 시체가 발견되고 있지 않는가!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가 실제적인 예화라면, 사람이 죽으면, 종국에는 흙먼지가 되었다가 세상 끝날에 하나님의 재창조의 능력을 통하여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는 성경의 가르침과도 정반대로 어긋나게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10부 - 영적 청지기(2)


    누가복음 16장 전반부는 물질과 재물의 청지기 직분이며, 후반부에 이어지는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는 하나님의 진리를 맡은 부자 청지기인 유대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소홀히 할 때, 그들이 아무리 아브라함 자손이라고 주장할지라도 결국에는 지옥불의 형벌을 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한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이다.

    예수께서는 사후에 즉시로 육체적인 몸을 가지고 천국이나 지옥에 간다는 사실을 설명하기 위해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지 않았다. 비유를 통해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에게 맡겨진 청지기로서의 책임과 그들이 가지고 있는 기별을 나누어 받기를 열망하는 이방인들의 모습을 설명하고자 하셨던 것이다. 사실상, 누가복음 16장 전체는 청지기의 직분에 관한 내용이다. 누가복음 16장 전반부는 물질과 재물의 청지기 직분에 대한 말씀이며, 후반부는 하나님의 진리와 복음의 영적인 청지기 직분에 대한 말씀이다.

    16장 1절에서부터, 예수님은 금전이나 재산의 청지기 직분에 관한 비유를 주셨다.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1절. 전반부에서 물질에 대한 청지기 직분을 설명하신 후에, 후반부에서 예수께서는 유대인들이 진리를 부여받은 문제를 설명해 주셨다. 전반부에 나온 어떤 청지기가 주인이 자신에게 맡겨준 물질적인 부를 불성실하게 관리함으로써 주인에게 책망받았던 것처럼, 후반부에 부자로 표상된 청지기(유대인들)도 자신에게 맡겨진 영적인 부를 불충실하게 취급할 경우, 결국에는 부여받은 특권을 잃어버리게 될 것이라는 교훈이 담겨져 있다. 예수께서는 당시에 부자는 천국에 가고, 가난한 자는 저주를 받아서 지옥에 간다는 잘못된 통념을 깨뜨리고, 반대로 부자는 지옥에 가고, 가난한 나사로는 천국에 갔다는 예화를 말씀하셨는데, 하나님의 진리를 맡은 부자 청지기인 유대 지도자들이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와 사명을 그들이 얼마나 소홀히 여겼는지를 비유를 통해서 날카롭게 지적한 말씀이 부자와 나사로의 이야기이다.

    그러므로 지옥에 대한 잘못된 견해를 입증하기 위해서, 부자와 나사로의 비유를 지옥과 천국의 실제적인 모습으로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예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도와 초점에서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다. 성경은 지옥에 대해서 명백하게 설명하고 있다. 성경의 어느 곳에도 악인이 영원한 세대를 통해서 끊임없이 고통당할 것이라는 가르침이 없으며, 오히려 악인들은 완전히 멸망될 것이라는 사실을 반복해서 말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이 비유의 의미도 그러한 성경 말씀들과 위배되어서는 안된다.

    예수께서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를 말씀하셨던 배경과 실질적인 강조점을 놓침으로서, 비유를 통하여 말씀하고자 하는 바를 올바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예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셨던 진짜 이유와 목적을 상실하게 된다. 부자와 거지 나사로의 비유에 나타난 교훈처럼,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져 있는 구원의 기별을 다른 사람들에게 전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가? 우리는 우리 주변 사람들을 위한 순수한 사랑을 가지고 있는가? 그리고 우리의 영적인 유산을 나누어 주기 위해서 그들을 가정과 그대 주위로 초청하고 있는가? 만일 우리가 우리의 영적 부유함을 사장시킨다면, 옛날의 유대인들처럼, 우리는 스스로의 자만에 빠져서 결국에는 파멸에 이르게 될 것이다. 활동적인 사랑의 봉사를 통해서, 우리가 접촉하는 사람들의 관계 뿐만 아니라 예수님과의 관계도 더욱 강하여 질 것이며, 한층 더 깊고 고상한 신앙 생애를 살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청지기 경험에 대한 귀중한 교훈을 무서운 지옥의 이야기로 만드는 대신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놀라운 사랑과 축복들을 감사하면서, 우리에게 주어진 이 놀라운 영적인 축복들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는 충실한 청지기가 되자!

 

11부 - 지옥에 나타난 십자가


그대가 마음속으로, 혹은 소리를 내어 “하나님!” 하고 부를 때 그대의 생각 속에 하나님은 어떤 모습으로 떠오르는가?

무한하신 능력으로 끝없는 우주의 별세계들을 운행하시지만, 한마리 작은 참새도 떨어지지 않도록 붙드시는, 고사리 같은 손을 모으고 드리는 작은 어린 아이의 기도를 들으시는, 다정하고, 자상하시고 눈물겹도록 따뜻한 하나님의 모습이 그대의 눈 앞에 떠오르지 않는가?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시고, 참혹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게 하시어 우리의 죄를 용서하신 하나님!... 흑암의 구름으로 자신을 감추시고 십자가 곁에서 아들 하나님과 함께 고통을 당하신 하나님!...집나간 탕자를 기다리듯이 오랜 세월동안 우리를 참으시고 무한히 기다리시는 사랑의 아버지 하나님!...

그런데 여기까지는 쉽게 상상이 되지만, 불타는 지옥불 속에 악인들이 형벌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는 하나님의 모습 사이에는 풀어야 할 쉽지 않은 과제가 있는것 같다. 사랑의 십자가와 형벌의 지옥, 과연 이 두가지가 사랑의 하나님의 모습 안에 어떻게 조화를 이룰 수 있을까?

십자가에 나타난 하나님의 속성

    우리 인간들이 이렇게 은혜의 시간을 가지고, 하나님과 또한 값없이 주시는 구원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 받아 살고 있는 것은 갈바리의 십자가의 구속의 은총 때문이다. 십자가에는 인류의 죄를 대신 지시고 그 죄값을 갚으시기 위하여 치르신 주님의 고통이 나타나 있다. 십자가에는 인류가 당하여야 할, 처참하고도 자비가 섞이지 않은 멸망의 죽음 곧, 둘째 사망의 영원한 멸망의 죽음을 우리를 대신하여 지불하신 하나님의 어린양의 놀라운 희생이 나타나 있다. 아니, 십자가에는 멸망 당하는 인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실 수가 없어서 절규하시며 돌아오라고 탄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의 결정체가 녹아 들어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을 알려면 십자가 밑에 나아가 그곳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을 바라보아야 한다.

공의는 또 다른 하나님의 속성

    그런데 성경은 말하기를, 하나님은 사랑이시지만 또 공의의 하나님이시라고도 말하고 있다. “긍휼과 진리가 같이 만나고 의와 화평이 서로 입마추었”으며,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 (시 85:10, 97: 2). 하나님은 의로우신 공의의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시며, 하나님의 법은 변할 수 없는 것이다. 깊이 한번 생각해 보자. 왜 십자가가 필요하게 되었을까?
계명은 하나님의 성품의 특성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에, 타락한 인류에게 맞추기 위하여 일점 일획이라도 변경할 수 없다. 인간이 하나님의 법을 어김으로 죄의 삯인 사망을 받아 죽게 되자, 의로우신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한 면을 충족시키시기 위하여 당신의 독생자를 보내셔서, 계명을 어긴 죄값을 대신 치르게 하심으로 공의를 실현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사랑은 그분의 자비에 못지 않게 그분의 공의에도 표현되어 있다. 공의는 그분의 보좌의 초석이며 그분의 사랑의 열매이다. 진리와 공의로부터 자비를 분리시킬 수 없다.
다시 강조한다면, 그리스도께서 타락한 인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당신의 생명을 희생해야 할 필요가 있었다는 사실은 하나님의 계명은 죄인을 율법의 요구에서 면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한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죄지은 우리 인류를 위하여 죄의 삯을 담당하심으로 율법의 정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해주셨고, 하나님의 법을 폐함 없이 모든 대가가 치르어 진 것이다. 그러므로 십자가에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 이 두가지가 다 충족되었다.

심판은 사랑의 또 다른 한면

    그런데, 십자가와 자비와 인자와 관용과 오래참으심이 하나님의 사랑의 속성이라면, 오래 참으심 끝에 은혜와 자비를 거절한 악인들을 형벌하시는 심판 또한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이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위해 더 하실 수 없을 만큼 크신 사랑과 희생을 보여 주셨다.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성령을 통하여 매일 죄를 이길 수 있는 능력을 주시며, 오래 참으시는 인내와 인자하심으로 넉넉히 회개할 수 있는 은혜의 시간도 주신다. 그러나 더 주실 수 없을 만큼 크신 하늘의 선물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반응하지 않고, 그 애절한 사랑을 거듭 배반하며, 성령을 통해 호소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에 굴복하지 않고 계속 자기의 길을 고집하면,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그런 사람들을 위해 아무것도 하실 수 없다.
    심판이란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한 자들이 저희가 심은 것을 거두는 것이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다. 하나님을 선택하지 않고 죄를 섬기기로 선택한 사람들은 하나님께로부터 분리되어 스스로 생명에서 끊어지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저희가 자기들의 성격을 개발시켜 그 본질을 드러낼 때까지 그들을 생존하도록 허락하신다. 그것이 다 이루어진 후에 그들은 자신이 선택한 것의 결과를 거두게 된다. 사단과 그와 연합한 모든 자들은 자기들의 반역의 생애를 통해서 하나님과 조화될 수 없는 곳에 자기 자신을 둠으로 인해 하나님의 임재는 그들에게 삼키는 불이 될 것이다. 그래서 마지막에 하나님께서 죄를 태우실 때, 죄를 회개하여 버리지 않고, 죄와 함께 하기로 고집한 사람들은 죄와 함께 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사랑이신 그분의 영광의 임재가 죄를 회개하고 미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살리시는 생명이 되시지만, 죄를 고집하고 무한한 자비를 거절한 죄인들에게는 “소멸하는 불”이 된다.

죄의 고통은 빨리 끝나야 한다

    하나님께서 회개하지 않는 죄인들을 위해 더 이상 아무일도 하실 수 없는 때가 곧 올 것인데, 우리는 그 때를 은혜의 시간이 마치는 때라고 부른다. 그 때에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사랑과 보호를 계속 거절하는 사람들을 더 이상 보호하실 수 없으시다. 그분께서는 할 수 없이 그들에게서부터 떠나실 수 밖에 없는데 그때가 바로 그들에게 영원한 파멸이 이르는 때이다. 그분의 눈물어린 호소를 끝내 거절한 사람들을 버려두고 눈물을 머금고 떠나시는 하나님의 모습!...이제는 그들이 스스로 거둔 결과들을 거두게 하시고, 죄의 세상에서 오랫동안 주님께 탄원하고 고통당했던 의인들을 신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의 죄의 역사를 마치셔야만 하는 것이다.
    수천 년이라는 너무나 오랜 시간 동안, 이 세상뿐만 아니라 온 우주에 죄로 인한 고통이 있어왔다. 어쩌면 하늘은 인간이 죄를 지은 후에 더 이상 행복한 곳이 아니었으리라. 왜냐하면 인간의 죄의 결과로 인해 빚어지는 모든 슬픔과 고통을 해결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매일 마음 아파하시며 애쓰고 계실 테니까 말이다. 한 사람도 멸망에 이르지 않게 하시기 위하여 오래 참으시는 하나님의 자비때문에 이 세상에 은혜의 시간이 연장되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본다. 그러나 죄의 역사가 더 지속되면 될 수록 이 세상에 있는 의인들과 선한 사람들은 더 많은 고통을 당한다. 그리고 심판이 더디 오므로 더 담대하게 악을 행하는 사람들이 늘어나며 이 세상에 불행과 고통도 더해간다. 이런 것들을 볼 때, 이 세상에 심판이 오는 것은, 고통이 빨리 마칠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에, 어쩌면 그것은 하나님의 크신 사랑이 아닐까?

    우리는 아무도 멸망 받기로 선택할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 크시기 때문이다. 천년기 이후에 하늘에서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내려올 때, 우리는 성밖에서 내리는 유황불 지옥에서 탈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함을 받아 성안에서 안전하게 거할 수 있을 것이며, 이 땅이 완전하게 연소된 후,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에서 눈물을 씻기시고 새롭게 창조하신 땅을 보라고 하실 때 환호성을 지르며 아름다워진 새 땅을 밟으며 기뻐할 사람들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의 구원을 위해 이루어 놓으신 하나님의 사랑의 역사는 너무 커서 우리를 구원하시기에 넉넉하시기 때문이다.

    그대는 심판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을 보는가?...죄를 버리지 않고 고집하므로, 죄를 태우시는 하나님의 불이 나타날 때, 할 수 없이 죄와 함께 불살라질 죄인들의 운명과 앞으로 영원한 불이 아닌, 태운 후에는 잠시 후에 꺼질 지옥을 생각해 보면서, 그대는 그것에 나타난 하나님의 공의를 보는가?...
    마침내 죄의 역사가 다 끝난 뒤, 하나님께서 먼저 당신의 얼굴에 흐르는 눈물을 씻으신 후, 우리의 눈에서 영원히 눈물을 씻으실 때 그대는 그대의 면류관을 그분께 벗어드리며 이렇게 노래하지 않으려는가?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이시여! 하시는 일이 크고 기이하시도다! 만국의 왕이시여! 주의 길이 의롭고 참되시도다...주여 누가 주의 이름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영화롭게 하지 아니하오리이까? 오직 주만 거룩하시니이다...주의 의로우신 일이 나타났으매 만국이 와서 주께 경배하리이다” (계 15: 3~4).

다시 찾은 평화


흠 없이 아름다운 어울림, 기쁨의 노래, 행복에 찬 얼굴, 깊고도 잔잔한 평화 거기 있었지.
빛으로 두른 가슴속의 설레임 에덴에 번지고, 기다려 지는 시간...그리운 하나님!...

하나님 말씀 못 믿어 뱀의 말을 믿었지. 주님의 사랑 의심하며 내 지혜만 믿었네. 그 열매 내 입에 넣을 때 다가올 결과 알지 못한 채...
뛰는 가슴, 밀려오는 두려움,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피네. 수치, 죄책감, 잃어버린 빛난 옷, 그리고 잃어버린 평화!...

나뭇잎으로 나를 가려볼까? 떨리는 마음, 하나님께 들킬까 나무 그늘이 날 숨겨주기 바랄 때
다가오시며 내 이름 부르시는 변함없는 그 음성!
난 대답했네. “하나님, 다 당신 때문입니다.”

유난히 반짝이는 털을 가진, 오늘 아침 내 가슴에 꼭 안았던 귀염둥이 어린양, 털을 비비며 날 쳐다보는 순진한 어린양.
그 때 엄숙한 주 명령 들렸네. “그 양을 쳐라!” 파르르 떨면서 말없이 피 흘리며 죽어가는 가엾은 양.
그 때 난 깨닫고 소리쳤네.
“아, 우리가 이렇게 가엾게 죽어야 합니까?”

끝없는 절망 영혼을 압도하는 죄책감 속에서 한 가닥 희망의 빛도 볼 수 없었네.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신 주의 말씀 생각하며 무서운 저주와 영원한 형벌의 선고를 기다릴 때
포근한 양털 옷으로 날 감싸주시며 전능하신 하나님, 우주의 통치자께서 말씀하셨네.
“내가 너희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리라!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 이로다!”

아 아, 그 높으신 하나님의 아들이 나의 죄 때문에 죽으셔야 하다니! 죄는 내가 지었는데...아 아, 내가 지은 죄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 죽으셔야 한다면, 결코 결코 죄를 짓지 말 것을!

아! 하나님의 어린양, 정녕 나의 것인 죄와 형벌 대신 취하시고 당신의 생명 주신 어린양,
“난 너희를 이~만큼 사랑한다” 하시며 십자가 위에서 두 팔 벌리셨네.

다시 찾은 평화! 또 다시 잃지 않고자 나 이제 영원히 주를 의뢰하네.

 

주님께서 당신 집에 오신다면...


주님께서 당신 집에 오신다면 당신은 과연 어떻게 하시렵니까?

문 앞에 서서 두 팔 활짝 벌려 천국에서 오신 손님을 맞이하겠습니까?
아니면 주님께서 집으로 들어오시기 전에 옷부터 갈아 입으려고 서두르실 것입니까?
부끄러운 잡지책들을 숨겨두고 그 대신 성경책을 놓아 두시렵니까?
시끄러운 유행가 책들을 감춰두고 그 대신 찬송가를 놓아두시렵니까?

과연 주님께서 당신과 하루 이틀을 지내실 수 있을는지 궁금하군요.
당신이 매일 하던 일(습관)들을 주님 앞에서도 그대로 계속 할 수 있겠습니까?
당신이 매일 사용하던 말들을 주님 앞에서도 그대로 사용할 수 있겠습니까?
과연 당신의 생활이 전과 같이 그대로 진행될 수 있겠습니까?
그 동안 당신이 가고 싶어했던 여러 곳들을 주님과 함께 갈 수 있겠습니까?...

어쩌면 주님 때문에 당신의 계획을 바꿔야 할지도 모르겠군요.
주님께서 당신의 친한 친구들을 만나 보시게 기꺼이 소개할 수 있을 까요?
아니면 주님께서 돌아가실 때까지 당신의 친구들을 주님으로부터 숨겨놓아야 하겠습니까?
당신은 주님께서 당신 집에 영원히 거하시기를 정말로 원하십니까?
혹 주님께서 가시면 당신은 그제야 안도의 한 숨을 쉬게 되지는 않을까요?

만약 주님께서 친히 당신 집에 찾아 오셔서 잠시나마 당신과 함께 살기를 원하신다면 당신은 정말 어떻게 할지.....

궁금하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