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꿈


언젠가 감동적인 사랑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하와이 섬 어떤 마을에 별로 예쁘지 않은 원주민 처녀가 하나 있었다. 검은 피부와 별로 매력적이지 않은 성격을 가진 이 아가씨에게 관심을 두는 남자들은 아무도 없었다.

그런데 키 크고, 잘 생기고, 재력있고, 마음씨 좋은 멋진 한 청년이 그 마을로 신부감을 구하러 온다는 소식이 온 마을에 퍼졌다. 모든 아가씨들은 마음을 설레며 그 남자가 과연 어떤 여자를 고를까 호기심에 찬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마을 입구에 나타난 그 멋진 청년이 별로 예쁘지 않고 매력도 없는 그 아가씨의 집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청년은 그 예쁘지 않은 여자의 아버지에게 당신의 딸을 사랑하니 결혼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하며 그 당시 보통 신부를 데려가기 위해 내는 지참금인 소 한마리 대신 소 열마리를 드리겠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는 얼마 있다 다시 신부를 데리러 오겠노라고 말하며 결혼식 준비를 위해 떠났다. 그 소식을 들은 그 아가씨는 너무 놀라서 그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멋진 남자가 나를 택하다니!... 어쩌면 그렇게 멋진 남자가 나를 사랑하다니!... 그녀는 자신의 가치를 스스로 생각해 보기 시작하였다.

드디어 결혼식날이 되었다. 그런데 그 결혼식 날 사람들은 모두 자기들의 눈을 의심할 수 밖에 없었다. 왜냐하면 그 멋진 남자 옆에 서 있는 신부는 이 세상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의 아름다운 여인으로 변해 있었으므로...

사랑은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사랑은 변하게 만든다. 그것은 가치를 부여하고, 또 가치있게 만든다. 사랑은 새로운 의미를 부여한다. 그리고 모든 것을 새롭게 소생하게 한다.

하나님의 사랑의 힘으로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다. 그 사랑의 하나님은 꿈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를 향한 아름다운 꿈을... 지금은 죄의 결과 때문에 형편없이 망가지고 어그러진 우리 인간들의 모습과 마음이지만 머지않아 아름다운 모습과 아름다운 신의 성품으로 변할 것이라는 놀라운 꿈을...

하나님은 사랑의 눈을 가지고 계시다. 우리의 눈과는 전혀 다른 눈을... 그래서 희망과 용기와 격려의 색채로 아롱지어진 하나님의 눈에는 아직 허물투성이인 우리의 모습이 예쁘고 곱고 아름답게만 비쳐지는가 보다. 아직 미완성인 우리의 모습이 그렇게 가치있고 사랑스럽게... 전혀 정죄함이 없는 하나님의 사랑의 눈에는... 비뚤어진 코도 예쁘게 보이고, 비뚤어진 마음도 곱게 보이고, 마치 사랑에 빠진 사람의 눈에 그 사랑하는 대상이 너무 아름답게만 보이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데는 이유가 없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체를 그냥 그렇게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그냥 사랑의 하나님이시며, 하나님은 사랑 그 자체이시다. 그리고 그 사랑은 큰 힘을 가지고 있다.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고 모든 것을 변하게 만드는...
그렇게 자그만 도토리에서 큰 나무를 볼 수 있는 믿음의 눈을 가지신 하나님의 사랑이 있기에 그 사랑의 힘으로 오늘도 우리는 성장하고 자라가는 과정에 있는 것이리라!

개유하시는 사랑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한 당신의 꿈을 성취시키시기 위해 여러가지 다른 사랑(?)을 사용하신다. 깨닫고 보면 너무나 눈물나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의 사랑을 말이다.

성경 호세아 2장 14절에 보면 이런 표현이 나온다. “그러므로 내가 저를 개유하여 거친 들로 데리고 가서 말로 위로하고...” 여기서 “개유”라는 단어는 어떤 뜻일까? 영문 성경에 나타난 이 구절의 뜻은 “내가 그녀를 꾀어내어 그녀에게 다정히 말하고...” 라는 뜻이고, 공동번역에 나타난 뜻은 “그러나 이제 나는 그를 꾀어내어...사랑을 속삭여 주리라”라는 뜻이다. “개유”는 영어로 “allure”라는 단어로서 “꾀어 내다” 또는 “유인하다”라는 뜻의 단어이다. “꾀어 내다”라는 말은 그렇게 좋은 어감으로 들리지 않는 것이 사실이며, 마귀적이며 부도덕한 일과 연관지어져서 사용되는 말 같기도 하다. 그러나 호세아서에서 이 단어는 하나님에게 속한, 그리고 그리스도의 사랑과 연관되어진 단어로 쓰였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너무 사랑하셔서 우리를 당신에게로 이끄시려고 우리를 “개유”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끄시기 위해 매혹적인 사랑으로 역사하시며 심지어 우리를 꼬이기까지 하신다. 우리의 마음을 사시기 위해서, 그리고 우리의 관심을 끄시기 위해서, 어떤 땐 우리의 주의를 끌어 보기 위해 애쓰시며 온종일 우리를 기다리실 때도 있으시다. 왜 일까?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는 사랑하는 대상인 우리에게 대한 꿈을 가지고 계시며, 그 꿈을 실현시키시기 원하고 계시기 때문에... 아직 변화되지 않은 부끄러운 모습이지만 언젠가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변하리라는, 그리고 어디에 내어 놓아도 충분히 떳떳하고 아름다운 사람이 되리라는 꿈을 가지셨기 때문에...

그런데 우리를 개유하셔서(꾀어내셔서) 데리고 가시는 곳이 아주 특별한 곳이다. 그곳은 다름이 아닌 거친 들...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고 그냥 바람소리, 나뭇잎새 스치는 소리, 퍼석거리는 마른 땅에 돌 굴러가는 소리만 들리는 외롭고 거친 들이다. 왜 일까? 아무도, 그 무엇도 위로가 될 수 없는 거친 들에 외롭게 홀로 있을 때에만 비로소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에 귀기울이니까... 휘황찬란하던 모든 것이 시야에서 사라지고 혼자 잠잠히 외로운 곳에 남게 될 그 때에야, 우리를 위로하시는 하나님의 “말”이 우리 귀에 들어 오게 될테니까... 모든 것이 떠나가고 빈, 그리고 모든 희망이 사라진 거친 들에서라야만 우리는 하나님의 위로를 바랄 만큼 겸손해 질 수 있으니까... 그렇게 홀로 외롭게 있을 때에만...

소망의 불을 켜주는 사랑

성경은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롬8:24)는다고 말한다. 우리를 사랑으로 사로잡으신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소망을 건네주신다. 성경에는 할 수 있다는 격려와 될 수 있다는 소망의 말들이 가득하다. 왜 일까?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꿈을 가지고 계시기에... 그리고 우리에 대한 그분의 꿈을 이루시기 위해... 머지 않아 곧 실패의 늪을 벗어나 찬란한 하늘의 영광으로 빛나는 승리의 사람들이 될 것을 믿으시는 그 분의 꿈이 있기에... 그리고 또 그분은 우리 마음 속에 늘 소망의 등불을 켜주시기 좋아하시는 희망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사단이 우리 영혼을 실망시키고 깊은 낙담과 어두움에 빠뜨려 우리 영혼들로 한가닥의 희망의 빛줄기라도 보지 못하게 하려고 힘쓰는 동안,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사 42:3)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 영혼의 마음 속에 항상 소망의 불꽃을 살리려고 애쓰고 계시다. 하나님께서 마음 속에 들려주시는 말이 늘 우리 귀를 울리지 않는가? “너는 할 수 있어!”라는 희망의 목소리가 메아리처럼...

믿음을 북돋아 주시는 무궁한 사랑

사랑은 항상 믿음을 동반한다. “그러나 내가 너를 위하여 네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기도하였노니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눅 22:32). 하나님의 사랑의 화신이었던 예수님은 항상 그분의 제자들의 믿음을 북돋아 주셨다. 이제 앞으로 곧 당신을 부인할 베드로를 정죄하거나 비웃지 않고 담담히 믿음을 북돋아 주시던 사랑!... 돌이킨 후에 네가 네 형제를 굳게 할 것을 나는 안다고 믿어주시던 사랑!... 지금도 우리에 대하여 아직 변하고 있는 과정에 있으므로 그리고 아직 끝을 보지 못했음으로, 아무도 남을 판단하거나 정죄하지 말라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그 사랑은 오늘도 우리를 위해, 우리의 믿음이 떨어지지 않기를 위해 기도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귀에 “내가 무궁한 사랑으로 너를 사랑하는고로”(렘31:3) 라고 속삭이신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알 수 없다. 다만 그것은 우리에게 신비하고도 큰 비밀(엡5:32)일 뿐... 우리가 야비하고(렘 3장) 보기 싫은 사람이었어도, 우리가 죄인이고 사랑스럽지 못한 사람이었어도, 누더기 옷을 입고 모든 영적인 헌데로 몸이 깨끗하지 못하였을 때에라도, 그분은 우리를 사랑하시고 믿음을 북돋아 주셨다. 그냥 사랑이 아닌 무궁한 사랑으로... 왜 일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에 대한 아름다운 꿈을 가지고 계시기에... 결국에는 우리를 당신의 아름다운 신부로 만드시고 우리와 결혼하시려는 꿈을 가지고 계시기에...

하나님께서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우리를 사랑하실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우리를 향해 가지신 그 꿈 때문이리라! 우리에 대해 그렇게 오래도록 참으실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우리에 대해 품으신 그 아름다운 꿈 때문이리라!
우리에게 대하여 가지신 하나님의 그 아름운 꿈과 사랑 때문에 언젠가 우리가 온전히 변화될 것을 믿으시기 때문에...

권두언


강병국 목사

온 세계가 하나로 연합해야 한다는 무드가 지배적인 21세기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국가들이 연합하고 종교들도 연합하고 교회들도 연합하여야 한다는 세계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는 교통, 문화, 경제에 있어서 세상이 하나가 된 것처럼 느껴집니다. 세상 어디에서나 같은 텔레비젼과 같은 영화, 같은 책들을 읽고 같은 음식물을 먹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국과 러시아에 사는 사람들도 동일한 미국 프로그램들을 TV를 통해 즐기며 웃고 살고 있는 이상한 세상이 되었습니다.

여러 나라들을 여행해 보면서, 그 각기 나라들의 풍습과 문화들은 달라도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다 같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됩니다. 세계화는 우리에게 커다란 편리함을 제공합니다. 그러나 기억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이렇게 하나가 되면서, 세상 역사는 어두운 말세에 대한 성경 예언을 성취하게 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하나로 뭉친다는 일이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들의 사명은 오히려 진리로 하나가 되기 위하여 애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이 사람들의 이론이나 눈 앞에 보이는 번영보다 먼저 앞서야 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하는 좁은 길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하나님의 진리와 명령보다는 인간적인 성공을 더 좋아하며, 진리대로 살기 보다는 세상의 인정을 더 추구하는 위험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번호는 여러분들에게 참 성경적인 신앙생활에 대한 신선한 충격을 드릴 것입니다.

아름다운 어른이 되는 길


“나를 늙은 때에 버리지 마시며 내 힘이 쇠약한 때에 떠나지 마소서...” (시 71:9).

누군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슬픈 일은 꽃이 시드는 것과 사람이 늙는 것”이라고... 한 때 아름답고 활기차고 현명했던 사람이 아름다움을 잃고 힘 없고 우둔한 노인으로 늙어 간다는 것은 매우 슬픈 일임에 틀림이 없다. 아름답고 팽팽하던 얼굴에 하나, 둘 주름이 생기고, 눈꺼풀이 늘어지면 사람들은 잃어가는 젊음이 안타까워 주름살을 펴고 싶어 하고, 심지어 주름 제거수술을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얼굴에 주름이 지고 얼굴이 늙고 변하는 것보다 더 심각하고 슬픈 일이 있다면 그것은 마음에 주름이 지는 것이다. 우리는 얼굴보다 마음에 주름이 더 많이 진 사람들을 본다. 심지어 아직 나이가 들지 않았어도 마음에 주름이 많은, 마음이 늙은 사람들을 우리 주위에서 볼 수 있다.

마음의 주름 - 자기 밖에 생각할 줄 모르는 욕심으로 똘똘 뭉쳐진 사고방식, 더 움켜쥐고 더 갖고 싶어서 안달하는 성격, 갖고 있는 것을 잃어버릴까봐 두려워 하고 노심초사하는 마음, 성격이 갑자기 이상하게 변하는 것, 자제력과 인내심이 없어지는 것, 변덕스러운 성질, 자신의 지나온 경력과 경험만을 지나치게 고집한 나머지 다른 사람의 충고나 의견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는 옹고집장이가 되는 상태 등등 - 이 많은 사람을 보는 것은 얼굴에 주름이 많은 사람을 보는 것 보다 우리를 더 슬프게 하는 것 같다.

다윗의 기도

그래서 유명한 시인 다윗은 그의 시 시편 71장에 자기가 늙을 때 자기를 버리시지 말라고 하나님께 간절히 간구하는 시를 쓰게 된 것이다. 그가 그런 시를 쓰게 된 데는 이유가 있었다. 그는 주변의 노인들이 대부분 행복하지 못한 것과, 특히 나이가 더 들어감에 따라 불행한 성격의 특성들이 더해 가는 것을 보았다. 그는 사람들이 혈기 왕성한 장년기에는 의로웠지만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자제력을 잃어버리는 것을 보았다.

다윗은 또 왕과 귀족들이 젊을 때와 장년기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나이가 들자 가장 친한 친구들과 친척들을 시기하며, 불안해 하고 불만스러워 하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친구들이나 자녀들이 그들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이 이기적인 동기때문일 것이라고 두려워하거나 또 그들이 자신의 지위나 재산을 차지하기 위하여 자신이 죽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하는 등 이상하게 성격이 변하는 것을 보았으며, 자기의 쇠약해 가는 판단에 아무도 동의해 주지 않기 때문에 더욱 성격이 괴팍해 지고 변덕스러워 지는 것을 보았다. 그는 또 나이 든 사람들이 하나님께 버림을 당하고 사람들의 비웃음 거리가 되는 것을 보고 낙망되었고, 층격을 받았으며, 그래서 그가 나이를 먹어야 할 때를 바라보고 낙담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시고 그가 목격해 온 다른 노인들처럼 그도 성격이 이상하게 변하고 불행해 질까 두려워 하게 되어 이렇게 열렬하게 기도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여 내가 늙어 백수가 될 때에도 나를 버리지 마시며 내가 주의 힘을 후대에 전하고 주의 능을 장래 모든 사람에게 전하기까지 나를 버리지 마소서” (시 71:18).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신의 책임(?)

이 말은 너무 많이 들어서 새로운 말이 아니지만, 변하지 않는 진리인 것 같다. 40세 이후의 어떤 사람을 만나면, 우리는 그 사람의 얼굴과 인상에서 그 사람의 됨됨이를 읽을 수 있다. 그 사람이 40년 동안 어떤 마음가짐으로 인생을 살았는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삶을 살아 왔는지, 이기적이고 욕심사나운 삶을 살았는지, 아니면 남을 배려하고 용서하고 베푸는 착한 삶을 살았는지, 그 얼굴에 다 써 있다. 그것은 사람이 아무리 지어내려고 해도, 또 꾸며내려고 해도 할 수 없고, 화장으로도 커버할 수도 없는 것 같다. 사람들은 아무도 이 면에서 거짓말을 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 그 사람의 인상과 얼굴이 자신이 어떤 사람임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흥미있는 것은 40대가 넘어선 사람들의 얼굴에서는 얼굴의 주름 뿐만 아니라 삶의 굴곡, 곧 마음의 주름까지 나타나는 것을 볼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동안 살아 온 삶을 통해 형성된 그 사람의 성격과 인격이 다 밖으로 드러나기 때문이다.

또 나이가 들면서 성격이 현저하게 바뀌는 경우도 흔하게 본다. 물론 남자나 여자를 불문하고, 나이가 들면 홀몬의 변화(갱년기 같은) 를 경험하므로 그렇게 되기도 한다고 항간에는 말들을 하지만, 아뭏튼 그렇지 않던 사람이 나이가 먹으면서 이상하게 그리고 전혀 다른 성격의 사람으로 변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천성적으로 편협하고 탐욕적인 사람들은 나이가 많아지면 그 좋지 않은 성질들이 가장 더 불쾌하게 나타나게 되는 것을 보게 되고, 그리고 만일 사람이 질투심이 많고 변덕스럽고 조급하면 나이가 들면 더욱 더 그렇게 되는 것을 본다. 우리 모두는 그런 사람들을 볼 때 나는 저렇게 늙지 않으리라고 다짐을 해 본 경우가 있을 것이다.

늙는 것은 축복(?)

사람들은 누구나 늙어 간다. 그러나 사람들은 늙는 것이 늙지 않는 것에 비해 축복이라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고 나이 드는 것을 혐오하는 경우가 있다. 늙는다는 것은 축복이다. 젊었을 때는 자기 밖에 모르고 또 자기만의 세계에 안주하여 나누어줄줄도 모르고 받아들일줄도 모른 채 이기적인 삶을 바쁘게 살아간다. 그러나 연륜이 쌓이고 인생의 여러가지 경험을 겪으며 세월을 지낸 어른은 젊은이들이 볼 줄 모르는 것을 볼 수 있는 지혜와 여유를 가지게 된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 대해서, 다른 사람의 인생에 대해서 생각하고 존중할 줄 아는 능력을 가지게 되며, 그동안 자신의 연륜을 통하여 얻은 지식과 지혜들을 다른 사람에게 나누어줄줄 알게 되는 것이다. 이 얼마나 아름답고 여유있는 삶인가!

만일 나이를 먹을 때, 그동안 그렇게 바쁘게 달려 온 속도를 슬슬 늦추어 걸으면서 다시 한번 인생을 여유롭게 즐기고 반추하고 의미를 찾는다면 늙음은 젊음보다 훨씬 매력적이고 즐거운 것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늙지 않는 것은 중요한 것이 아니다. 어떻게 아름답게, 혐오감을 주지 않고 늙을 수 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어차피 늙는것, 우아하고 아름답게 늙는 법을 배우면 어떨까?

여기 당신을 아름다운 어른으로 만들 수 있는 작은 힌트가 있다.

아름답게 늙는 방법

1. 이상과 꿈을 가져라
나이를 먹는다고 해서 사람이 늙는 것이 아니라 이상과 꿈을 잃어버릴 때에 늙는 것이다. 새로운 계획과 결심과 꿈과 목표를 세우라.
비록 작은 소망과 꿈일지라도 그 꿈을 이루고 성취하기 위해 사는 사람은 쉽게 늙지 않을 것이며, 혹시 외모는 늙는다 해도 마음의 젊음을 늘 간직할 수 있게 되므로 신선한 감동을 주위에 주게 될 것이다.

2. 늘 배우려는 마음으로 살라.
인생은 오랜 기간을 자신의 의지와 싸우는 고귀한 과정이다. 따라서 인생을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로 구분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이다. 승리와 패배, 성공과 실패, 이 모든 것은 우리를 가르치고 우리의 팀구심을 촉진시키는 잠재력을 갖고 있다. 넓은 마음과 트인 눈으로 모든 사물을 바라 보면 우리 인생에는 적이 없다. 우리를 끊임없이 괴롭히고 우리의 단점만을 들춰내는 사람마저도, 적이 아니라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도움을 주는 사람임을 잊지 말자. 다른 사람은 나를 비추는 거울이다. 남의 실수에서 나 자신을 보고, 다른 사람의 미덕을 보고 본받는 겸손한 사람이 되자. 그러면 마음의 젊음을 잃지 않을 것이다.

3. 마음가짐을 잘 가지라.
이 시기는 생각이 깊어지는 때이기도 하다.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는 성숙함과 경험의 결합만큼 도움 되는 것이 없다. 몸은 시들기 시작할지 몰라도, 정신 만큼은 최고조에 달할 수 있다. 행복과 성공을 성취한 사람들과 불행한 사람들의 차이는 마음가짐의 차이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자. 늘 긍정적이고 좋은 마음가짐을 가지려고 노력하자. 부정적인 생각과 당신이 부리는 혈기는 주위를 어둡고 슬프게 만들 것이다. 자제하고 화를 내지 말라. 온유하고 따뜻한 마음과 밝고 긍정적인 사고방식은 주위에 있는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이 될 것이다.

4. 늘 즐거운 회상을 하자.
즐거운 회상은 누구나 배우고 연습해야 하는 중요한 기슬이다. 자신의 삶을 돌아 보고 자기가 현재의 위치에 이르도록 도와주었던 사건이나 사람들을 기억해 보고 감사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원망과 불만을 간직하는 사람의 세포는 빨리 늙을 뿐만 아니라 병들게 된다는 것이 과학적으로 속속히 밝혀 지고 있다. 행복은 무엇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인생을 어떤 눈을 가지고 보느냐에 달려 있다.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회한과 욕심, 불만으로 삶을 불행하게 만들지 말고 아미 가진 것에 대해 감사하고 즐기는 법을 연습하자.

5. 다른 사람에게 관심을 가지자.
나이가 들면 자기 밖에 모르게 되기 쉽다. 사람들이 조금 모이기만 하면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경청하기 보다는 늘 자기 얘기밖에는 할 줄 모르는 미성숙한 사람들이 많다. 다른 사람을 제대로 알고 관심을 가지려면 공감이라는 귀한 미덕에 대하여 알아야 한다. 공감이란 다른 사람이 느끼는 것을 그대로 느끼는 능력을 뜻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의 인생에만 신경을 쓴다. 어떻게든 성공하려고 안깐힘을 쓰는 나머지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시간이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든 것이 빠른 속도로 돌아가는 사회에 살고 있다. 다른 사람에 대해서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 주려면 속도를 늦출 수 밖에 없다. 다른 사람의 삶의 중요성에 대해서 알아 주고 관심을 가지는 여유를 기르자. 그런 사랑의 마음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행복을 가져다 줄 것이다.

6. 남에게 늘 작은 희망이 되어 주라.
세상에는 자기보다 불행하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많다는 것을 기억하자. 남을 도와주려고 찾아 보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자기보다 외로운 사람, 친구를 간절히 원하는 사람, 구제받을 길이 없는 사람, 도움이 필요한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들에게 희미한 작은 등불이 되어 주라. 그들에게 희망을 주고 앞으로 나아 가야 할 길을 제시해 주라. 기도해 주고 격려해 주며 당신이 가지고 있는 믿음의 소망에 대하여 이야기 해주라. 다른 사람을 위로하는 동안 당신이 더 행복해짐을 느낄 것이다.

7. 늙음을 재촉하는 4가지의 지름길 - 두려움, 노여움, 이기심, 지지않고 해보려는 마음을 버려라. 이것은 노화를 촉진하는 지름길이다. 이기적인 마음으로, 욕심으로 자기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은 늙음을 부른다. 그동안 자기가 형성해 온 고정관념과 집착을 버리라. 욕심과 잃어버릴까봐 걱정하는 마음은 우리의 생명을 멈춰버리게 하고 질식하게 만드는데, 이것이 노화이다. 사랑, 평화, 용서, 베풂은 인생을 풍요롭게 하고 그것을 베풀고 실천하는 사람의 삶을 젊게 한다.

8. 영적으로 거듭나라.
신앙으로 잘 영글고 인격이 성숙한, 경건한 어른을 보는 것처럼 우리를 흐뭇하게 하는 것이 없다. 인생의 모든 지혜를 터득하고 있을 것 같은 어른의 모습을 보면, 젊은 사람들은 선망을 가지고 다가가 함께 대화를 나누며 그 지혜를 얻고 싶어 한다. 결코 조급하지 않고 자제력 있는, 신앙이 투철하고 굳세지만 균형잡힌 사랑과 이해를 가진, 인생의 고난을 잘 견디어 냄으로 얻은 풍요로운 지혜로 미성숙하고 부족한 젊은이들을 부드럽게 조언해 줄 수 있는 어른... 마음에 거듭남의 비밀을 터득하고 있으므로 늘 평화와 행복한 모습으로 단장해 있는 아름다운 노인... 그런 어른이 될 수 있는 길은 마음에 오래도록 간직되고 연습된 신앙의 힘 밖에는 없을 것이다.

영적으로 성숙하고 온전히 변화된 아름다운 신앙을 가진 어른으로서 불안하고 의지할 곳이 필요한 젊은이들의 마음의 고향이 되어 줄 수 있다는 것은 이 세상과 온 인류에게 무한한 축복인것 같다. 그렇게 되려면 젊었을 때보다 더 하나님과 깊이 동행해야 한다. 왜냐하면 판단력이나 지적인 능력이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쉬임없이 더 하늘의 지혜와 능력을 구하며 늘 성령의 지배를 받고, 더 열렬히 기도함으로 그런 어른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럴 때 주위 사람들로부터 자연스럽게 존경과 찬사를 받게 될 것이며, 많은 미숙한 젊은이들에게 큰 도움과 유익을 끼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당신은 노화의 길로 들어 섰는가? 비록 얼굴에 주름은 없을지라도 마음에 주름이 많다면 당신은 아름답게 늙지 않은 늙은 사람이다. 만일 당신이 ‘노화’의 길로 이미 접어들었다면, 그리고 마음의 주름이 벌써 많이 생겼다면, 신앙과 지혜로써 이 길에서 벗어 날 수 있다. 자기의 독선적인 판단이나 비판의 정신을 접어 두고, 욕심과 집착으로 힘이 들어간 마음의 근육을 풀며, 온전히 마음을 열어 무조건적 이해와 사랑의 마음으로상대를 보고 그런 이해심을 가지고 앞으로 세상을 살아간다면 젊어지는 지혜와 함께 하늘의 평화를 맛보게 될 것이며, 보내는 시간 시간들이 더욱 하늘을 위하여 성숙되는 행복한 시간이 될 것이다. 우리 모두 아름답게 늙어 가는 사람들이 되었으면 하고 바래 본다.

치료를 위한 장소, 천연계


아담과 하와의 거처

창조주께서는 우리의 첫 조상들을 위하여 그들의 건강과 행복에 가장 적합한 환경을 택해 주셨다.

서론 - 어떻게 구원을 얻는가?


이 세상에 있는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중요하고 가장 중대하고 가장 심각한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어떻게 해야 영생을 얻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일 것이다.

1부 - 전진할 수 없는 반쪽 믿음


정말 믿음으로만 구원을 얻는 걸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말하며 예수를 믿고 있다. 또한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고 “입으로 주를 시인”했기 때문에 벌써 구원을 받았으니 그 구원을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2부 - 은혜로 구원을 얻는다는 뜻은 무엇인가요?


은혜의 의미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와 내 잃었던 귀한 생명 이제야 찾았네...” 은혜에 대한 아름다운 찬송은 늘 우리의 마음을 감동으로 넘치게 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은혜”라는 단어만큼 친숙한 단어는 없을 것이다.

3부 - 정말 율법은 십자가에서 폐했나요?


“우리를 거스리고 우리를 대적하는 의문에 쓴 증서를 도말하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그러므로 먹고 마시는 것과 절기나 월삭이나 안식일을 인하여 누구든지 너희를 폄론하지 못하게 하라” (골 2:14,16).

4부 - 한 번 구원받으면 영원히 구원받나요?


“구원 받은 이후에는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없어지나요?

“나는 작년 12월 21일에 구원 받았습니다”라고 확신있게 말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5부 - 구원받은 사람이 멸망받기로 선택할 수 있나요?


버림 받을 수 있는 위험을 아시나요?

사도 바울은 육체적 죄의 성향을 재갈먹이지 않는다면, 결국 버림받게 될 것이라는 사실을 잘 깨닫고 있었다. “내가 내 몸을 쳐서 복종케함은 내가 남에게 복음을 전파한 후에 자기가 도리어 버림이 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 9: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