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기다리는 시간


주님,
오늘도 기다림의 하루를 엽니다. 여러 가을이 지나고 그 수북이 쌓였던 가을 낙엽 위에 흰 눈이 내렸다간 녹고, 그 속에서 여러 번 새 싹이 돋아났었습니다.

언제 오시렵니까?

때로 기다림에 힘이 겨워 눈꺼풀이 졸음에 잠길 때가 간혹 있었어도, 행여 흐트러진 자세로 주님을 맞을까 등을 곧추세우곤 했었습니다.
창 밖의 파랑새가 여러 번 날라와 주위를 맴돌다 갔건만, 한번의 시선의 흐트러짐도 없이 하늘의 반쪽 구름이 나타나기를 기다렸습니다.
주님이 오시는 징조인 반쪽 구름을...

길가에 장미꽃이 흐드러지게 피고 보석처럼 빛나는 예쁜 조약돌들이 넓은 길 위에 널려 있었어도 한눈 한번 팔지 않고, 그 곱디 고운 나비들이 비단 날개를 팔랑거리며 머리 위를 날아 다녀도 쳐다 볼 줄도 몰랐습니다.
언제 오시렵니까?

기다리는 시간이 힘들고 지루하지만, 그 시간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힘은 당신의 사랑입니다.
오늘은 주님의 마음을 저희가 헤아려 봅니다.
“주께는 하루가 천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당신의 마음을...
주님을 기다리기에 우리가 힘든 것이 아니라, 주님께서 우리를 기다리기에 힘이 드시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문득, 아직도 준비되지 못한 가련한 저희의 모습이 서글퍼집니다.
빨리 주님을 보고 싶어하면서도 채 버리지 못한 욕심, 한껏 부풀려진 어깨, 힘을 준 모습이라니요!...

아주 잘 아는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주님을 열심히 기다린 한 사람의 이야기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주님을 너무 보고 싶어했다지요. 그러자 어느 날 꿈에 주님께서 나타나셔서 내가 아무 날 너의 집으로 찾아가리라고 약속하셨지요. 약속 날짜를 기다리며 그 사람은 정말 많은 것들을 준비했겠지요.
집을 깨끗하게 치우고, 맛있는 음식들을 많이 준비하고, 주님이 걸어 들어 오실 길은 아마 온통 아름다운 꽃들로 덮이도록 장식해 놓았을 거구요. 모든 것을 완전하게 갖추고 준비했다고 생각한 이 사람은 그 날이 되자 아침 일찍부터 주님을 기다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 일입니까? 오신다던 그리운 주님은 아무리 기다려도 오시지 않고, 눈이 빠지도록 지평선을 바라보며 기다리던 하루가 뉘엿 뉘엿 지는 저녁 햇살 속으로 사라지려는 황혼 녘, 어디선가 허름한 거지가 주님을 위해 장식된 예쁜 꽃 길을 밟으며 찾아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 사람은 화가 나서 소리쳤지요.
“지금 우리 집에 주님이 오실꺼라구!... 당신을 위한 음식이나 시간이 없으니 썩 비켜가시오!”

기다림에 지친 하루가 지나고 밤이 오자 그 사람은 울며 잠들었지요. 주님을 그렇게 만나고 싶어 했는데, 어쩌면 약속도 안 지키시냐고 야속해 하며... 그날 밤에 주님께서 다시 꿈 속에 나타나셔서 하신 말씀은 우리 모두가 너무나 잘 아는 대답이지요!
“나를 그렇게도 보고 싶어 기다린다기에 어제 너의 집에 갔더니 나를 문전에서 쫓아내더구나!”

주님, 맞습니다.
그 사람의 모습이 또한 주님을 기다린다는 우리의 모습일지도 모릅니다. 모든 것을 철저히 다 준비한다고 했지만, 가장 중요한 “사랑”을 마음에 가지지 못한 채 기다리는 실수를 범하는 우리의 모습 말입니다.

열심히 믿고 너무나 영적이어도 어쩌면 주님과 전혀 산 연결을 맺고 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사실은 우리를 당황하게 합니다.
주님을 기다리는 지나친 열성이 우리를 아집과 편견, 그리고 영적 교만을 가진 사람으로 만들어 다른 사람을 무시하거나 배척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 때로 우리를 두렵게 합니다.
주님을 기다린다며 앞만 보고 달려 온 우리의 열정이 우리로 혹시 다른 사람의 마음과 삶을 상하게 하는 좁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로 만들 수도 있다는 사실이 우리를 염려하게 합니다.
그 열성들은 자칫하면 “자기의 의”를 힘써 이루려는 헛된 노력이 될 수도, 단지 끝도 없이 이어지는 피곤한 시도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언제 오시렵니까?
진정으로 주님의 사랑을 가진 사람으로, 주님의 사상으로 물든 사람으로, 아니, 온통 주님의 마음과 느낌으로 사는 사람으로 당신을 기다리렵니다.
주님께 대한 사랑, 이웃에 대한 사랑 가득하여 감출래야 감출 수 없이 흘러 넘치고 드러나는 사람이 되어...

마음 자리 넓어 누구나 쉬어갈 수 있는 고향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고 싶습니다.
신앙이 틀이 되어 갇히고 막힌 사람이 아닌, 신앙이 그냥 삶 자체가 된 자유로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숨쉬는 것이 신앙이고, 일하는 것이 신앙이고, 사는 것이 그냥 신앙 자체인 물처럼 부드러운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말씀처럼 무한히 자유롭고 행복한... 사랑 안에서 마음껏 자유를 누리는...

주님,
기다린다는 사실보다 어떻게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 지를 아는 것이 지혜로운 것임을 우리는 이제 알 것 같습니다.

마음 속에 또 한 이야기가 떠오릅니다. 어느 마을에 큰 산이 있었지요. 그런데 그 산에는 사람의 얼굴 생김을 닮은 큰 바위가 있었답니다. 사람들은 먼 산에 있는 그 인자한 큰 바위 얼굴을 보며, 언젠가 그들의 마을에 그 바위의 얼굴을 닮은 훌륭하고 인자한 사람이 나타나 마을을 잘 다스려 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 마을에 어니스트라는 소년이 있었습니다. 그도 어릴 때부터 매일 큰 바위 얼굴을 바라 보며 언젠가 그 바위처럼 인자한 얼굴을 가진 훌륭한 위인이 마을에 나타나기를 기다렸지요.

오랜 세월이 흐르는 동안, 스스로 자신이 예언된 큰 바위 얼굴이라며 돈 많고 권세있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났다간 사라졌습니다.
마을 주민들은 처음에 그런 사람들이 오자 많은 기대와 기쁨으로 환영을 했지만, 그 중에 어느 한 사람도 큰 바위 얼굴처럼 인자하게 마을 사람들을 사랑하고 돌보거나 훌륭하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큰 바위 얼굴의 위인을 기다리던 마을 주민들의 부푼 희망이 사라지려 할 즈음, 어느 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얘기하고 있던, 어느덧 장년이 된 성실하고 자애로운 모습의 어니스트를 쳐다보며 누군가 외쳤답니다.
“큰 바위 얼굴이다! 그가 바로 큰 바위 얼굴이다! 보라! 그가 얼마나 큰 바위 얼굴과 닮았는가를!...”
그가 그렇게 기다리며 매일 바라보았던 큰 바위 얼굴과 어느새 똑같이 닮은 얼굴이 되어 어니스트는 마을 사람들 앞에 서 있었습니다.

주님, 맞습니다.
이 이야기는 주님을 기다린다고 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주 중요한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기다리고 있는 사람은 기다리는 사람을 그대로 닮아 있어야 한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다시 생각해 봅니다.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알”것이라는 성경절 말입니다.

정말 그럴까요? 주님이 나타나실 때, 주님을 그렇게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우리의 모습이 정말 주님과 닮아 있을까요?...

권두언


강병국 목사

아시아에 밀어닥친 엄청났던 바닷속 지진 수나미, 점점 심해만 가는 미국의 천연재해들, 특히 이번 겨울 동안에 생겨나고 있는 폭설과, 홍수, 한파의 휘몰아침들, 물론 말할 것도 없이 온 세계를 휩쓸고 있는 재난들과 온난화 현상의 일종인 기후의 변화들…

왜 이러한 일들이 가속화되고 있는 것일까요? 지난 12월 달에 방문한 뉴질랜드의 본토인들까지도 요즈음의 갑작스러운 기후의 변화들을 바라보며 이런 일들은 평생 처음 보는 일들이라고 입을 모아 내게 말해 주었습니다. 제가 여행하는 모든 나라 사람들이 한결 같이, 참으로 이상하다는 듯이, 자연계의 파괴적인 현상들을 바라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있습니다. 왜 이러한 일들이 일어 나는 것일까요?

환경 과학자들은 입을 모아 말하고 있습니다. 만일 우리 인류가 빨리 손을 쓰지 않는다면 앞으로 10년 안에 지구에 대 재앙이 닥쳐올 것이라고 말입니다. 이러한 소식들은 우리들을 불안하게 만드는 것임에 틀림없습니다. 과연 이 지구가 어디로, 어떻게 흘러 가고 있는 것일까요? 무엇이 과연 우리의 문제들을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성경이 현재 이 지구의 형편에 대하여 어떠한 예언의 말씀들을 하고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성경은 우리에게 소망을 주는 책입니다. 이 지구는 곧 그 역사를 마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천연재해나 전쟁으로 마쳐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습니다! 과연 이 지구에 곧 일어 나게 될 가장 놀라운 사건이 무엇인지 이번 호를 통하여서 확실하게 이해하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하여


아름답고 조화된 가정을 이루어 사는 것은 인생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과업이다. 어떤 저술가는 가정에 대해 말하기를 “질서 정연하고 잘 훈련된 가정은 인간이 할 수 있는 모든 설교보다도 그리스도교를 더욱 많이 증거한다. 잘못 단속된 가정의 감화는 널리 퍼지고 온 사회와 국가에 영향을 끼친다”라고 했다.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고 싶어한다. 세월이 가도 변하지 않는 애정을 간직한 채 서로 관심을 가지고 아껴주는 부부, 자녀는 부모가 교육시키고 바라던 이상대로 훌륭하게 자라나 가문을 빛내주며, 또 자녀와 부모가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며 화목하게 지내는 그런 행복하고 이상적인 가정을 이루어 행복과 만족 속에서 오래 오래 살고 싶어한다.

만일 위에 기술한 조건들이 당신이 가지고 싶은 가정에 대한 이상이라면, 그리고 그 이상을 이루고 싶은 것 또한 당신의 소원이라면, 한번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 있다. 다음의 글들을 조용히 읽어보며 나 자신이 정말 그 이상을 이루고 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를 먼저 진단해 보자.

가정 구성원의 기본요소는 나

가정은 혼자서는 이룰 수 없다. 가정에는 구성원이 있기 마련이다. 그 가정의 구성원을 이루는 기본 요소는 나 자신이다.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위해서는 가족 구성원의 기본 요소가 되는 나 자신이 먼저 행복하고 올바른 사람이 되지 않으면 안된다. 아름다운 신앙과 믿음으로 다져진 올바른 개개인의 성품은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중요한 요소이다.

그러면 이제부터 가정 구성원의 기본 요소가 되는 나 자신과 가정의 구성원인 부부와 부모의 문제점들을 진단하여 반성해 보며 우리 자신 하나하나가 바른 사람이 되어 행복하고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도록 노력해 보자.

가정의 구성원; 아내와 엄마

종교 저술가 엘렌씨는 그리스도인 가정에 관한 그의 저술에서 아내와 어머니에 대해서 이렇게 표현했다.

“어머니는 가정의 여왕이다. 어머니는 자녀들의 품격을 형성하여 더욱 고상하고 내세에 올 영생에 합당하게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 이 사명은 천사의 사명보다도 높은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왜냐하면 어머니의 직무는 현세와 영원한 나라를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가정에서 아내와 어머니의 감화는 영원에까지 미친다... 선에 대한 어머니의 능력은 하나님 다음 가는 것으로서 지상에서 알려진 능력 가운데 가장 강력하다. 그리고 그 감화가 항상 정의의 편에 끼쳐진다면 자녀들의 성품은 어머니의 도덕적 열성과 가치를 증거할 것이다... 아내와 어머니의 미소와 격려는 북돋우는 힘이 될 것이다. 아내이자 어머니인 여성은 가정에서 사랑의 말과 다정한 웃음과 미소로써 남편과 자녀의 마음을 밝게 만들어 줄 수 있을 것이다. 그 가정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일은 대부분 아내에게 달려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했다.

위의 언급된 내용뿐만 아니라 이즈음 책방에는 가정의 구성원인 아내와 어머니의 의무와 할 일에 대해서 기술된 훌륭한 책들이 많이 나와 있다. 그러나 아무리 훌륭하고 감명적인 책을 읽는 다고 해도 아내이자 어머니 당사자인 여성이 그 사명을 실천할 만큼의 열심과 의욕과 믿음과 사랑의 마음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올바른 가족 구성원이 되어 행복한 가정을 가꾸어 가는 것을 방해하는 현 시대의 보편적인 아내와 어머니의 심리 상태를 진단해 보자.

아내와 엄마가 쓴 안경 ; “욕심”, “지나친 기대”

이 세상의 엄마와 아내들은 자신도 알지 못하는 가운데 스스로가 만든 어떤 안경을 쓰고 있다. 그 안경은 “엄마의 욕심”, 혹은 “아내의 욕심”이라는 이름의 부정적인 짙은 색깔의 안경이다. 그리고 그 안경을 쓰고 있는 아내와 엄마들의 특징은 “핑계”와 “비교”와 자기식대로의 “판단”이다. 이것은 마치 옛날 우리의 선조 아담과 하와가 범한 첫 번째 범죄 이후의 특징처럼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그것을 대신 상대방에게 핑계대고 씌우려는심리상태와 같은 것이다.

이런 아내와 엄마들은 자신 스스로가 아주 부정적이며, 자녀나 남편에게 지나친 욕심과 기대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가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 남편이 하는 모든 일과 태도, 자녀들이 하는 모든 행동들이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된다. 곧 그런 엄마와 아내의 눈에는 못마땅하고 나쁜 점들만 보이기 쉽다는 것이다. 또한 이런 안경을 쓴 아내나 엄마들의 특징은 가정에서 어떤 일이나 상황이 발생했을 때, 특별히 자녀에게 어떤 일이 일어났을 때, 다음과 같은 말과 태도를 보인다.

“당신 때문에...” 혹은 “당신을 닮아서...”, 또는 “당신이 이렇게 해서...”
또한 자주 자녀나 남편을 남과 자주 비교한다. “니 친구 아무개를 좀 봐라!”, “저 집 남편 좀 봐요!” 그리고 못마땅하여 자녀와 남편에게 늘 잔소리를 한다.

만일 위에 언급된 “실례“들이 당신의 말과 상황을 대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면, 지금부터라도 당신의 안경을 벗어 그 안경에 낀 잘못된 먼지들을 닦고, 상대방에게 바라기 전에 자신이 먼저 올바른 가정의 구성원인 아내와 엄마가 되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그 일은 하나님의 사랑과 하나님의 마음의 눈으로 상대방과 자녀를 볼 수 있는 변화가 먼저 아내와 엄마에게 생겨야만 가능하다.

가정 구성원; 남편과 아빠

남편과 아버지의 올바른 정의는 “가정을 매는 띠”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는 아버지, 어머니, 자녀들로 구성된 가족 사회가 하나의 단체로 이 세상에 존재하도록 계획하셨다. 가정을 행복하게 만드는 책임은 어머니들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들도 담당해야 할 중요한 역할이 있다.

요즈음의 사회현상을 보면 자녀 교육이나 가정을 이끌어 가는 역할의 대부분, 아니 거의 모든 전반적인 일이 아내나 어머니에게만 맡겨지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올바르고 행복한 가정을 이끌어 나가는 일에는 아버지의 몫도 상당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남편과 아버지는 가정의 머리이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과 동정을 바라며, 자녀들을 양육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구한다. 자녀들은 어머니의 자녀임과 동시에 아버지의 자녀이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자녀들의 행복에 어머니와 똑같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야 하며, 동시에 남편으로서 아내에게 든든한 정신적인 후원자가 되어야 한다. 남편과 아버지는 가정을 꾸려 나가는데 필요한 생활력과 감화력과 교제에 대하여 올바른 견해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 중요한 것은 먼저 자신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마음과 그분의 말씀의 교훈으로 지배를 받음으로 가정과 아내와 자녀들의 발길을 옳은 길로 인도할 수 있어야 한다.

아내와 어머니의 믿음도 중요하지만, 그 가정의 영적인 상태를 잘 이끌고 나가는 데는 아버지의 몫도 대단히 중요하다. 아버지는 산 믿음으로 자기 자녀들을 하나님께 붙들어 매야 한다. 또한 남편이나 아버지는 균형 없이 자라고 훈련받지 못한 소년으로서가 아니라 남성다운 성격과 정욕을 제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서 그의 가정의 머리에 서야 한다. 그는 올바른 도덕관을 가져야 한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결코 가정에서 전제군주적 정신을 보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남편이나 아버지가 쓴 안경; “이기심”, “가족에 대한 무관심”

이 세상의 남편과 아버지들이 보편적으로 쓰고 있는 안경은 “이기심”과 “가족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안경이다. 어떤 면에서 아버지와 남편들은 아내보다 더 이기적일 수 있다. 남자들은 다른 가족의 일원들이 원하는 것보다 가장인 자신을 위주로 맞추는 생활방식을 요구한다. 특히 가부장적이고 유교적인 사고방식을 가진 한국 아버지들은 더 고집이 세고 이기적이기 쉽다. 왜냐하면 특히 한국 남자들은 자신의 의견만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많기 때문이다. 이런 아버지나 남편들은 많은 경우에 아내와 자녀에게 너무 많은 것을 기대하며, 생활방식의 전반적인 것에 걸친 모든 것을 자신을 위주로 한 패턴으로 살고 싶어한다.

또 가족에 대한 무관심이 아버지나 남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현상이다. 진행과정이나 문제된 상황의 해결에는 무관심하다가 결과만 따지는 것, 즉 좋지 않은 결과만을 따지고 질책하는 태도가 이런 아버지들의 특징이다. 이런 아버지들은 아내나 자녀들이 잘한 것을 칭찬해주기보다는 자주 무시하고 책망을 잘 한다. 이런 “이기심”과 “가족에 대한 무관심”이라는 안경을 쓴 남편과 아버지들이 자주 하는 행동과 말은 다음과 같다.

“당신 지금까지 뭐 했어!” 혹은 “너 지금까지 뭐했어!” 또는 “내가 이렇게 하랬잖아!”, “얘가 이렇지 않았었는데...”
그리고 늘 상대방이 자신의 의견을 따라주기를 바란다. “너는 이렇게 해야 돼!” 또는 “당신은 이렇게 해야 돼!”

만일 위에 언급된 “실례”들이 당신의 말과 태도라면, 잘못된 시각을 주는 안경을 벗어버리고 다시 자신을 반성하고 기도하여 올바른 구성원인 아버지와 남편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이 일에는 많은 기도와 노력이 필요하며, 더욱 성숙된 인격이 필요하다.

함께 협력하여 시키는 자녀 교육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조건 중에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자녀교육이다. 그러나 이것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이 일은 부모 둘이 함께 협력해야 하는 평생의 과업인 것이다. 올바른 자녀 교육을 위한 기본적인 지침을 다시 한번 생각해 보자.

1. 바람직한 교육관을 가지자.
먼저 자녀를 바르게 키우기 위해서는 부모가 자녀에 대한 건전한 생각을 지니고 있어야 한다. 무엇을 가르치고 자녀를 어떻게 기를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방향 의식이 없이 그저 ‘남들이 그렇게 하니까’라는 것이 자녀교육의 주된 방침이 되어서는 안된다. 자녀를 어떻게 키울 것인가에 대해 나름대로의 뚜렷한 주관이 있어야 한다. 또 혼란기를 살아온 부모들이 자신들의 체험에서 터득한 출세주의나 금전 만능주의를 자녀교육의 목표로 삼아서는 안된다. 자녀들은 부모가 살다 남은 인생의 찌꺼기를 사는 것이 아니며, 부모가 못다 이룬 꿈을 이루어 주는 대리만족의 대상도 아니다. 자녀 개인의 인생을 존중해주며 올바른 사람이 되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바람직한 교육관이라고 할 수 있다.

2. 올바른 가치관을 심어주자.
자녀에게 모든 일에 자신을 가지고 자신이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을 가지게 하여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자아관을 심어주는 것이 자녀교육에 있어 매우 중요하다. 부모들은 자녀를 키우면서 그들이 올바른 결정을 내릴 수 있도록 가르쳐 주고 또 좋은 생각과 넓은 시야가 형성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 부모들은 자녀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점을 함께 풀어 가며 자녀들이 올바른 품성을 지니고 바른 행동을 하도록 지도해 주어야 한다.

3. 대화하는 부모가 되자.
“말 안 듣는 아이 뒤엔 말 못 듣는 부모가 있다”는 말이 있다. 좋은 부모, 성숙한 부모가 되려면 자녀의 이야기를 잘 들을 줄 알아야 하며, 자녀와 대화할 줄 아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부모와 자녀 사이의 대화는 대등한 관계에서 서로 마음을 주고받는 쌍방 통행이어야 한다. 다시 말하면 부모와 자녀가 동등한 입장에서 서로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를 나누며 이를 통하여 서로간에 이해하는 바탕이 생겨야 자녀는 부모를 신뢰하고 존경하게 된다. 부모와 대화하며 자란 아이는 문제아가 될 수 없다.

4. 좋은 습관이 큰 인물을 만든다.
자녀에게 좋은 습관을 갖도록 훈련시키자. 가정은 부모로부터 좋은 성품과 행동을 훈련받는 최초의 수업 장소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몸소 실천하는 부모의 본이 가장 중요하다. 가정에서 부모의 일거수 일투족 자체가 본이 된다. 부모가 먼저 좋은 습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5. 예절은 가정교육의 으뜸이다.
자녀의 바람직한 성장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가정 교육이 중요하다. 가정은 인간이 태어나서 처음 접하게 되는 장소이며, 처음으로 배우는 장소이다. 어른을 공경하거나 고운 말을 쓰는 것, 인사를 잘 하는 것은 사회 생활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예절로서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꼭 지켜야 할 예절이다. 가정 교육의 첫걸음은 예의를 갖춘 인사 잘 하는 자녀로 키우는 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인사는 상대방을 존경하고 반가움을 나타내는 방법이며, 사람으로서 마땅히 지켜야 할 예절이다. 또 부모는 자녀들 앞에서 태도나 말씨를 올바르게 해야 한다. 상스럽고 천한 말을 쓰지 않도록 해야 한다. 자녀교육에 관심이 없는 뿌리없는 가정에서 자란 아이는 상대에게 함부로 말을 하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것은 부모의 모본을 그대로 따른 결과이다. 예절은 아름다운 마음을 표현하는 행동의 시작이다. 사람이 서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따뜻한 인간관계가 예절을 통해서 이루어지며, 나아가 밝고 건전한 사회 생활의 기본이 된다. 자녀에게 기본 예절을 가르치므로 예의 바르고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아이로 키우도록 하자.

6. 사랑과 신뢰로 키우자.
아이가 속임수와 모욕감과 비인격적인 취급을 받고 자라면 회의적이고 적개심과 분노와 불신감을 가진 성격이 형성된다. 사랑과 존경과 신뢰를 많이 받고 자라면 또한 그러한 사람이 된다. 신뢰를 받은 아이는 부모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이며, 사랑을 많이 받은 아이는 다른 사람을 사랑할 수 있게 된다.

7. 신앙을 가진 아이로 키우자.
이 세상에서 자녀에게 물려줄 수 있는 유산 중에 가장 위대한 유산이 있다면 그것은 신앙의 유산일 것이다. 신앙은 강요할 수 없다. 부모가 가정에서 먼저 신앙으로 살고 먼저 신앙을 실천할 때, 자녀는 자연스럽게 신앙있는 아이로 자랄 것이다. 무엇보다도 신앙으로 변화된 부모의 좋은 인격과 성품은 자녀에게 매우 강력한 영향을 끼칠 것이다. 모든 그리스도인 부모의 자녀교육의 이상은 자녀들을 하나님의 성품을 가진 훌륭한 아이로 키워 친 부모 되시는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기도와 실천하는 노력으로 이 일을 이루자.

가정은 자녀에게 최선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최선의 교실이다. 가정이라는 학교는 칠판도 백묵도 없는 조그마한 교실을 가지고 있지만 자녀를 교육시킬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장소가 된다. 또한 부모가 된다는 것은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스승이 됨을 의미한다. 부모가 되는 순간 그들은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창조 사업에 뛰어들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교육은 어떤 의미에서 또 하나의 재창조의 과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 자신들이 먼저 올바른 가정의 구성원이 되고 그렇게 된 부모가 협력하여 자녀를 교육한다면 아름답고 행복한 가정을 이루어 살 수 있을 것이다. 이 축복이 독자 여러분의 것이 되기를 바란다.

골다공증을 염려하십니까?


요즈음 매스컴이나 신문 광고에는 골다공증에 관한 기사가 심심찮게 실리는 것을 볼 수 있다.

남자든 여자든 어느 정도 나이가 든 사람들 사이에, 또는 갱년기를 전후로 하는 여성들 사이에 골다공증은 흔히 발견 되고 있는 질병 중에 하나이며, 약해지는 뼈에 관하여 많은 사람들이 막연하게 걱정하고 있는 실정이다. 골다공증에 대한 우려가 높아지자 사람들은 흔히 이런 얘기를 한다. “나이가 들면 뼈가 약해져. 그러니 지금부터 열심히 칼슘을 섭취하자구!” 정말 그럴까? 칼슘만 부지런히 섭취하면 골다공증을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것일까? 골다공증에 대해 알아보자.

* 골다공증이란?

골다공증이란 뼈의 조직이 감소됨으로써, 뼈가 약해지는 질병을 말하는데, 이것은 뼈 조직의 생성과 파괴의 비율이 균형을 잃어버리는 결과로 생기는 현상이다. 다시 쉽게 말하면, 골다공증은 뼈에 구멍이 숭숭 뚫린 상태를 말한다. 골다공증의 가장 일반적인 증세는 뼈의 통증, 뼈의 변형, 그리고 뼈가 쉽게 부러지거나 깨지는 것이다. 50-70세의 남성들에게도 발병되지만, 폐경기 이후의 여성들에게 가장 많이 일어나는 질병 중의 하나이다. 골다공증에 걸리면 작은 충격에도 뼈가 쉽게 부러지고 부러진 뼈가 잘 재생되지도 않는다. 보다 큰 문제는 혈액과 관련된 것으로 혈액은 뼈에서 만들어지는데 뼈가 약해지면 당연히 혈액을 제대로 만들어내지 못해 빈혈이나 혈액 관련 질환에 걸릴 수도 있다.

골다공증은 특히 폐경기에 접어든 여성들에게 발병할 확률이 높다고 해서 중년여성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중 하나이기도 하다. 그러나 호르몬의 영향으로 인해 여성들에게 상대적으로 많이 발병할 뿐 남성들도 이 질병으로부터 안전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요즈음 골다공증으로 진단 받은 남성환자들이 속출하고 있다.

그렇다면 골다공증은 나이가 들면서 생기는 자연스러운 노화현상의 하나일까? 절대로 그렇지 않다. 사람의 뼈는 30대에 최고로 단단한 정도에 이르렀다가 40대 이후부터 골 밀도가 점차 떨어져 약해지게 되어 있다는 것이 의학적인 상식이지만 꼭 나이가 뼈의 강도를 결정짓는 척도는 아니다. 같은 나이라도 뼈가 단단한 사람이 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이는 원래 단단하거나 약한 뼈를 타고 태어났기 때문이 아니라 생활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 골다공증이 생기는 이유

골다공증은 간단히 말해 뼈를 구성하는 성분 중 칼슘이 부족해서 생기는 병이다. 뼈를 구성하고 있던 칼슘성분이 부족해지니 뼈가 약해지고 구멍이 뚫리는 것이다. 그러면 뼈를 구성하고 있던 칼슘성분은 왜 부족해지는 것일까? 이것을 이해하려면 먼저 뼈의 구성원리를 알아야 한다. 우리는 그저 뼈를 그 자체로 인식할 뿐 뼈도 결국 뼈세포로 구성돼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뼈세포는 뼈를 가장 튼튼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뼈 속에 어떤 성분이 있어야 하는지 정확하게 조절하고 있다. 콘크리트를 만들려면 시멘트와 모래, 자갈이 필요한 것처럼 뼈도 단백질, 인분, 석회질이 잘 배합돼야 튼튼해진다. 이 성분들 중 골다공증의 첫번째 원인이 되는 것이 바로 석회질이다. 석회질은 칼슘을 원료로 해서 구성되는데 음식을 통해 들어간 칼슘이 혈액 중에 흡수되면 뼈세포가 칼슘을 받아들여 석회질로 사용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뼈세포가 혈액 중의 칼슘을 제대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골다공증 염려는 없는 셈이다.

그렇다면 골다공증은 뼈세포가 제 일을 다하지 않아서 골다공증에 걸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뼈세포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 분명한 것은 뼈세포가 이렇게까지 된 것은 결코 뼈세포의 잘못이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 몸의 세포들은 도저히 견딜 수 없는 한계상황에 이르기까지 최선을 다해 몸을 보호하려고 노력한다. 뼈세포도 마찬가지여서 마지막 순간까지 뼈를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필요한 물질들을 배합하고 뼛속의 성분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몸부림친다. 그렇다면 무엇이 뼈세포가 더 이상 임무를 수행할 수 없도록 지치게 하고 포기하게 만들까? 바로 세포의 주인인 나 자신이다.

우리 몸의 세포는 모두 필요에 의해 활동한다고 했다. 뼈세포도 뼈가 튼튼해져야 할 필요가 있을 때 활발하게 혈액 중의 성분들을 받아들여 배합하는 일을 지속할 수 있다. 결국 뼈세포가 칼슘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래야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칼슘을 열심히 받아 들여 뼈를 튼튼하게 만들어봤자 쓸모가 없으니 활동을 게을리하는 것이다. 사실 현대인의 일상을 들여다보면 도대체 뼈가 튼튼해져야 할 필요가 전혀 없다. 걷는 대신 자동차로 이동하고 계단을 오르는 대신 엘리베이터나 에스컬레이터 타는 일을 당연시하는가 하면 바쁘다는 핑계로 운동조차 제대로 하지 않는다. 결국 골다공증은 현대문명이 낳은 질병 중 하나인 셈이다.

이렇게 몸을 움직이지 않고 살면 뼈 속으로 칼슘이 들어가지 못해 골 밀도가 점차 떨어진다. 칼슘이 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이미 뼈 속에 있던 칼슘도 밖으로 빠져 나오기 때문에 뼈에 구멍이 뚫린다. 사람이 꼼짝도 않고 3∼4일만 누워있어도 소변에서 칼슘성분이 검출되기 시작하는데 이것은 뼈 속의 석회질이 혈액 속으로 녹아 나와 콩팥을 거쳐 소변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골다공증에 걸리면 뼈가 점점 약해지고 작아져 키마저 줄어드는 것이다.

* 잘못 알려진 골다공증 예방법

* 다량의 칼슘섭취? : 사람들은 골다공증을 예방하기 위해, 혹은 치료하기 위해 칼슘이 많이 들었다는 뼈째 먹는 생선, 칼슘제제를 듬뿍 먹는다. 그러나 이것은 골다공증의 원인을 전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앞에서도 설명했듯 골다공증이란 칼슘섭취가 부족해서가 아니라 뼈세포가 칼슘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해서 생기는 병이다.

뼈가 튼튼해져야 할 필요성은 전혀 부여하지 않은 채 칼슘만 많이 섭취하면 어떻게 될까? 다량 섭취된 칼슘이 채 뼈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혈액 중에 있다가 콩팥의 사구체를 통과해 소변으로 빠져나가는 것이다. 이때 콩팥이 걸러야 할 칼슘의 양이 너무 많고 지방질 섭취량까지 많아지면 칼슘과 지방이 결합해 결석이 되는 것이다.

이처럼 병의 원인은 제대로 모른 채 어떤 음식이나 영양소가 몸에 좋다고 무작정 많이 먹으면 오히려 해가 된다. 칼슘을 아무리 많이 먹어도 뼈세포가 받아들이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고 적은 양의 칼슘을 섭취해도 뼈세포가 잘 받아들이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따라서 진정한 골다공증 예방법은 운동이다. 운동은 하지 않은 채 칼슘섭취량만 늘리면 골다공증과 함께 신장결석까지 부추길 수 있으므로 절대로 골다공증의 초점을 칼슘섭취에 두어서는 안된다.

* 홀몬제 투여? : 칼슘섭취와 마찬가지로 마치 골다공증의 특효약처럼 믿는 것이 에스트로젠이다. 여성호르몬인 에스트로젠은 폐경기를 맞아 골밀도가 급격히 떨어진 여성들에게 효과가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이 호르몬은 골다공증과 심장질환, 치매증 등을 예방하는데 효과가 있다. 그러나 96년도로부터 요즈음에 이르기 까지 발행된 의학 과학 잡지에는 이 호르몬제에는 유방암과 자궁암을 유발하는 부작용이 있어 에스트로젠 투여를 중지하라는 경고가 발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서 잠깐 갱년기 여성을 위한 에스트로젠 홀몬제에 대해 곁들여 말하자면, 에스트로젠을 대체할 수 있는 자연식품들이 요즈음 시중에 많이 있으므로 에스트로젠 홀몬제 대신 대체식품을 사용할 것을 권한다. 에스트로젠이 부족해 생기는 골다공증도 젊은 시절부터 뼈를 튼튼하게 하는 생활을 한다면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하다.

운동과 골다공증

일단 골다공증이 진행되면 의학적으로는 별다른 치료방법이 없다. 그래서 아직까지 골다공증 환자가 의학적인 처치로 완치된 사례도 없는 것이다. 골다공증의 가장 확실한 예방법과 치료법은 운동 밖에 없다. 여러 가지 연구를 통하여, 운동은 뼈의 형성을 도와주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령이 높아짐에 따라서, 일반적으로 운동량이 감소하게 되는데, 바로 이것이 노인층에게 골다공증이 많이 생기는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이다. 규칙적으로 운동을 해주면 뼈세포가 뼈를 튼튼하게 해야 할 필요를 느끼므로 뼈에 필요한 영양소들을 끌어 모아 단단한 뼈를 유지하려고 노력하게 된다.

어떤 운동이 좋을까?

* 걷기 ; 미 항공우주국의 고문으로 일했던 도날드 위든 박사는, 뼈의 무게를 유지하기 위한 최선의 운동은 뼈에 중력 방향의 힘을 가하게 되는 운동, 즉 걷거나 뛰는 것이라고 발표하였다. (줄넘기 같은 운동도 좋다) 따로 운동할 시간을 낼 수 없다면 엘리베이터를 타는 대신 계단을 걸어서 오르내리고 가까운 거리는 걸어 다니는 습관을 기르면 된다. 골다공증이 진행돼 조금만 심하게 몸을 움직여도 골절이 일어나는 환자라면 몸에 무리가 가지 않을 정도의 가벼운 운동부터 시작하면 된다. 운동의 정도나 양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꾸준히 뼈세포를 자극하는 것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운동으로 활동을 중지하고 있던 뼈세포를 먼저 깨운 다음 칼슘을 적절히 섭취해야 결석이 생기지도 않고 뼈 속으로 잘 흡수된다.

* 규칙적인 운동과 활동 ; 뼈에 물리적인 힘을 가하는 정도에 따라서 뼈의 크기와 밀도가 증가된다. 날마다 정상적으로 하는 활동을 통해서도 뼈의 무게는 증가될 수 있다. 한꺼번에 많은 운동을 하는 것보다는 적당한 운동을 규칙적으로 자주 하는 것이 훨씬 더 효과적이다. 육체적인 일을 많이 하는 중국이나 만주 여인들은 운동량이 부족한 서구의 여인들보다 골다공증에 걸리는 위험도가 낮다. 이것은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그렇지 않는 사람들보다 뼈의 밀도가 높다는 것을 증명한다.

(실험) 1 : 양로원에 살고 있는 69-95세의 노인 여성들을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에게는 하루에 30분씩 일주일에 3번 적당한 운동을 시켰고, 다른 그룹에게는 운동을 시키지 않았다. 실험이 끝나갈 무렵에 두 그룹을 비교 검사한 결과, 운동을 한 노인 여성 그룹이 운동을 하지 않은 그룹보다 뼈의 손실률이 낮은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다.

(실험) 2 : 갱년기를 맞은 여성들을 9명씩 두 그룹으로 나누었다. 한 그룹은 1년 동안 하루에 한 시간씩 일주일에 3일간 운동하였으며, 다른 그룹은 평상시의 활동량을 그대로 유지하였고, 두 그룹 모두 그들의 일상적인 식단으로 식사를 하였다. 운동을 규칙적으로 한 그룹에 속한 여성들의 총 칼슘량이 증가된 반면, 다른 그룹은 저하되었다.

금해야 할 것

* 카페인 음료 ; 골다공증 환자들에게 가장 나쁜 음식이 카페인 음료다. 커피나 콜라가 대표적인데 이런 카페인 음료를 많이 마시면 칼슘이 뼈 속으로 흡수되는 것을 방해한다. 그래서 골격이 형성되는 유년기와 청소년기에는 카페인 음료가 대단히 해롭다고 하는 것이다. 성년이 된 다음에는 괜찮을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나이 든 다음 골다공증에 시달리지 않으려면 철저히 주의하는 것이 좋다. 카페인 음료를 잔뜩 마셔대면서 몸을 위한다고 아무리 칼슘을 섭취해봐야 정작 뼈 속으로 흡수되는 양은 얼마 되지 않기 때문이다.

* 술과 담배, 지나친 다이어트 ; 실제로 술과 담배를 많이 하는 남성, 굶는 다이어트를 자주 하는 젊은 여성들에게서 골다공증 증세가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한 연구 보고서는 골다공증에 시달리는 중년 남녀들을 조사한 결과, 그들의 흡연량이 매우 많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고 발표하였다. 여성 흡연가들의 경우, 담배가 결과적으로 난소의 파손을 가져오기 때문에 갱년기를 일찍 맞이하게 된다.

음식과 골다공증과의 관계

* 단백질과 골다공증 : 단백질의 섭취량은 체내의 칼슘 수치에 영향을 미친다. 위스컨신 대학에서 있었던 실험 결과를 통하여, 고단백질 식사가 칼슘의 손실을 가져온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현대인들은 육식을 많이 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에, 단백질을 과다하게 섭취하게 된다. 식사가 거의 육식으로 구성되어 있는 에스키모인 노인들은 같은 나이의 백인들보다 뼈의 무기질 함유량이 심각할 정도로 낮다.
60-90세 사이의 채식가와 육식가를 상대로 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육식가의 뼈 속 무기질 함유량이 35% 감소된 반면에, 채식가는 단지 18% 감소되었다. 동일한 실험을 나이가 젊은 채식가와 육식가에게 시도한 결과, 거의 유사한 결과를 얻었다. 그러므로 뼈 속 무기질의 감소율은 어떤 것을 먹느냐에 따라서 달라지는 것으로 결론내릴 수 있다.

고기에 함유되어 있는 과량의 인은 단백질로 하여금 체내로부터 더 많은 칼슘을 빼앗아가도록 도와 주는 역할을 한다. 인이 많이 들어 있는 식품을 동물에게 섭취시킨 결과, 골다공증이 생성되는 실험 결과를 얻었다. 동물성 단백질과 소다수는 다량의 인을 함유하고 있으며, 산-재 식품(acid-ash food)으로 알려져 있다. 플럼(plum), 크랜베리, 자두(푸룬)을 제외한 대부분의 채소와 과일은 알칼리-재 식품(alkaline-ash food)이다.

* 지방과 골다공증 : 늙은 쥐와 햄스터(쥐의 일종)를 대상으로 한 9차례의 실험을 통하여, 칼슘의 손실은 지방의 섭취량과 직접적으로 관련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고지방식은 저지방식보다 칼슘의 손실을 4배 이상 높여 준다. 지방의 경도(hardness)는 칼슘의 배출량에 영향을 미친다. 소기름은 옥수수 기름보다 몸 밖으로 배출되는 칼슘의 손실량을 훨씬 더 증가시킨다.

* 일광과 골다공증 : 태양욕에 의해서 생성되는 비타민 D는 골다공증의 예방에 매우 중요하다. 1일 권장량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양의 칼슘을 섭취하는 사람들일지라도 비타민 D를 적당하게 공급 받는다면, 골다공증에 시달리지 않을 수 있다. 태양빛을 받는 시간과 골다공증의 발병률은 역비례 관계에 있다. 그러나 비타민 D 정제를 계속해서 과량으로 먹을 경우, 오히려 뼈에 문제가 생길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 채식과 골다공증 : 비타민 C가 풍부한 신선한 과일과 날 채소를 많이 섭취하면 골다공증에 좋다.

1부 - 가까워 온 예수 재림과 그 징조


영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눈을 떠서 보면, 요즈음 세상에 일어나는 많은 사건들과 일들은 우리에게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워 왔음을 말해 주고 있다.

그 중에서도 특히 2004년도 미국의 대통령 선거에 나타난 현상들과 또 2004년 말, 인도네시아와 동남아 일대를 강타한 지진과 해일의 대 참사의 재앙들을 보면 성경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재림의 징조들과 요한 계시록에 쓰여진 예언들이 현저하게 성취되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예수님의 재림이 가까웠다. 현 시대에 일어나는 미국의 정치적인 사건들을 재림 전에 이루어질 요한 계시록의 마지막 예언 성취의 징조들과 함께 연관지어 조명해 보면서, 그리고 천연 재해들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가까워 온 재림에 대해 연구해 보도록 하자.

“마지막 때”의 징조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단 12:4.

먼저 우리는 이 시대가 왜 마지막 때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왜 지금이 마지막 때인가? 그것은 성경이 말하고 있는 “마지막 때”에 대한 예언의 성취를 보면서 알 수 있다. 하나님께서 다니엘에게 주신 예언 다니엘서에 보면 “마지막 때”에 대하여 언급되어 있다. 위의 성경구절처럼 마지막의 특징은 “빨리 왕래” 하는 것과 “지식의 증가”이다.

1. “빨리 왕래함“

마지막 때의 특징인 “빨리 왕래”함과 “지식이 더하리라”는 예언의 성취가 지금보다 더 현저하게 이루어진 때는 아마 없었을 것이다. 빨리 왕래한다는 의미는 교통의 발달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물론 지금처럼 인간이 빨리 왕래할 수 있었던 때는 과거에 없었다.

말 한 마리가 끄는 느린 속도로 오랜 세월을 보내던 인간문명 사회에 1800년 경에 자동차가 발명되어 등장하게 된 이래, 인간의 운송능력은 날로 발전하여 지금은 평균 시속 300km를 달릴 수 있는 초고속 전철(일본의 신간센, 프랑스의 TGV, 독일의 ICE, 스페인의 AVE 등)까지 등장하였다. 그리고 1930년대부터는 군사용으로만 주로 쓰이던 비행기가 민간용으로 전용되기 시작하면서 항공기술은 발전에 발전을 거듭하여 인간이 원하는 곳이면 세계 어느 곳이든지 짧은 시간 안에 갈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이제는 비행기뿐 아니라 인공위성까지 공중에 띄우게 되어 현재 지구 상공에는 5,300여 개의 인공위성이 돌고 있으며 우주정거장까지 건설되었다. 그 동안 400명 이상이 우주 비행을 했으며 12명이 달에 다녀왔다.

그리고 조만간 마하 2.2의 초음속 여객기인 콩코드보다 작고 훨씬 빠른 초음속 비행기도 나와 미국 뉴욕에서 호주 시드니까지 2시간이면 주파할 전망인데, 그것은 보잉사가 개발하고 있는 차세대 초고속 여객기로서 콩코드보다도 더 빠르며 세계에서 가장 빠른 여객기가 될 전망이어서 “빨리 왕래”하리라는 예언의 성취는 우리 눈 앞에서 더 이상 이루어질 것이 없는 듯 보인다.

이렇게 인간은 과거에는 전혀 생각하지 못할만한 속도로 빨리 왕래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세계는 한 울타리 안에 속하게 되었다.

2. “지식의 증가”

빠르게 왕래하는 교통수단은 세계를 한 마을(Global) 시대로 만들었는데, 이것은 또한 놀라운 지식의 발달을 가져왔다. 요즈음처럼 세계의 통신이 하나로 연결된 적은 과거에 없었던 것 같다. 옆의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은 바로 옆집에서 일어나는 사건처럼 빠르고 정확하게 우리에게 뉴스로 전달되고 있으며, 특별히 인터넷의 발달은 세계 통신망을 순간에 하나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한국의 인터넷의 발달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며, 한국의 인터넷 사용률은 세계에서 1위이다. 미국의 초고속 인터넷 보급률과 사용률은 25 가구 당 1이고, 일본은 10 가구 당 1인데 비해 한국은 4.5 가구 당 1로서 이것도 벌써 옛날 통계가 되어 가고 있는 실정이다. 또한 요즈음 한국에서 새로운 컴퓨터 칩이 발명되었는데, 그 작은 컴퓨터 칩은 1초에 신문 30년간의 분량을 전송할 수 있다고 하니 놀라운 문명과 지식의 발달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빠른 통신과 인터넷의 발달은 세계를 하나로 묶고 있으며, 이로 인한 지식의 발달과 보급은 놀라울 정도로 빠르고 광범위하다. 이것은 다니엘 서에 언급된 마지막 때의 “지식이 더하리라”는 예언을 놀랍게 성취시키고 있다. 그런데 특별히 이 통신의 발달로 복음전파와 예언의 지식이 더 빨리 그리고 더 널리 전파됨으로써 예수님의 재림이 촉진되고 있다.

정치적 징조

1. 미국과 마지막 예언의 성취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 저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 땅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1~15).

예수께서 오시는 재림의 징조의 가장 중요하고도 현저한 마지막 예언의 성취는 “짐승의 표”의 강요와 “짐승의 우상”의 세워짐이다. 이 예언은 예수께서 오시기 바로 전, 즉 세상 끝 제일 마지막에 이루어질 예언이다. 그 동안 계속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을 구독한 독자들은 계시록에 예언된 “짐승의 표”에 대한 예언을 몇 번 연구할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짐승의 표”가 강요되려면 정치적으로 종교적으로 모든 상황과 환경이 준비되어야 한다. 곧, 어떤 종교를 정치의 힘을 빌어 강요할 수 있는 정치적, 사회적 여건이 준비되어야 하는 것이다. 요즈음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이 심상치 않은 것 같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예언과 함께 요즈음 우리를 둘러싸고 일어나는 미국의 정치적 상황과 사건들에 대하여 알아보자.

요한계시록 13장 11~18절에는 예수 재림 직전에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할 한 나라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고 있다. 이 나라의 출범과 또한 이 나라를 통하여 나타날 짐승의 우상과 짐승의 표의 강요는 그리스도의 재림의 결정적인 징조를 이룰 것이다. 마지막 “짐승의 표”의 강요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등장하는, 요한 계시록에 예언된 나라는 미국이다. (월간지 “살아남는 이들” 48호 참조할 것).

위에 언급된 성경절에 나오는 것처럼 미국은 처음에는 “새끼양” 같으나 나중에는 “용처럼” 말하는 무서운 세력이 되어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세력이 될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말한다. “아니, 이렇게 종교의 자유가 보장된 미국 같은 나라에서 어떻게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일이 일어날 수가 있어!”라고... 과연 그럴까? 지금처럼 종교와 각 개인의 자유가 보장된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은 짐승의 표를 강요할 핍박의 세력으로 변하기에 불가능한 국가일까? 하나님의 예언은 정확히 이루어진다. 과거에 모든 예언이 정확히 성취된 것처럼 앞으로도 정확히 성취될 것이다.

미국이 정말 요한 계시록 13장에 예언된 대로 짐승의 표를 내리는 세력이 될 수 있을지, 그래서 마지막 예언이 어떻게 이루어질 수 있을지 잠깐 미국의 정치적 동향에 대해 살펴보자.

2. 용처럼 말하는 미국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새끼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더라”(계 13:11).

요즈음 전 세계적으로 미국이 세계 최강국이라는 것을 부인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특히 9.11사태 이후로 이라크를 공격한 미국을 견제할 힘을 세계 어느 국가도 가지고 있지 못함이 드러났으며, U.N 조차도 미국의 눈치를 살펴야 하는 입장이 되었다. 타임지는 벌써 오래 전에 이구동성으로 미국을 “이 세계에 남아 있는 유일의 초대강국”으로 호칭하는 온 세계의 시사 평론가들의 논평을 보도하였으며, 시사 평론가 찰스 크라우트해머에 따르면 미국은 초강대국일 뿐만 아니라 “곧 이 세계에는 미국에 경쟁할 국가가 나타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위의 성경절에 언급된 것처럼, 처음에 “새끼 양”으로 표상된 순하던 미국은 “용처럼” 말하는 강대국으로 변할 것이며, 벌써 변하고 있다. 그런데 이 말은 종교적인 뜻을 내포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는데, 성경에서 용”은 사단을 뜻하며 또한 사단의 정신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두 뿔, 즉 정치와 종교의 분리의 이념을 가지고 종교의 자유를 가진 나라로 일어난 이 나라가 나중에는 정치와 종교가 연합하여 짐승의 우상을 세우고 짐승의 표를 강요하는 세력의 국가로 변할 것이라는 것이다. (짐승의 우상 ; 월간지 33호를 참조할 것). 이 말은 곧 이 어린양처럼 생긴 짐승으로부터 나온 종교, 정치적 방침이 전세계의 정치권을 장악할 것이며, 세상 어느 곳에 살던지 이 나라가 추구하는 종교를 따르지 않았을 때에는 죽임을 당할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바로 중세 암흑시기 때에 나타났던 정치적 현상이었다. 중세 종교 암흑시기에는 왕이 한 종교를 무력을 통하여 지킬 것을 강요하였으며, 이러한 암흑의 탄압을 피하여 도망한 청교도들에 의하여 종교자유국가의 표상인 미국이 탄생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일이 앞으로 또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인가? 그리고 정말 미국이 그들의 국가를 탄생하게 했던 “종교의 자유와 종교와 정치의 분리”라는 그들의 건국이념을 잃어버리고 중세기 때에 존재했던 종교탄압과 같은 일을 앞으로 할 것인가? 그렇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그리스도의 강림 직전, 마지막 때에 모든 사람들이 짐승의 표를 받도록 강요하는 일이 일어날 터인데, 곧 전 세계가 거짓 선지자들을 따라서 적그리스도의 종교를 강요할 것인데, 그 일을 앞장서서 추진하고 시작하는 일을 미국이 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다. 또한 마지막 때, 곧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웠음을 가리키는 징조 중 하나가 바로 종교와 국가의 연합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그런데 이러한 징조가 지금 종교의 자유를 목표로 건국된 미국 안에서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벌써 미국은 “용’처럼 말하기 시작하였다. 계속하여 미국의 정치의 동향을 살펴보자.

3. 2004년 미국의 대통령 선거

“저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요한계시록 13:15).

요즈음의 기독교인들은 예언의 빛과 예언적인 안목이 거의 없기 때문에 미국이 종교적인 색채를 띠우는 것을 볼 때 오히려 잘된 일처럼 생각하며 환영한다. 그러나 이것은 올바른 시각이 아니다. 옛날 중세기 때처럼 핍박은 항상 교회와 정치가 그 힘과 세력을 합할 때에 생겨난다. 곧 교회가 정치의 힘을 빌려 자신의 세력을 구축하려고 할 때 핍박이 생겨나는 것이다. 핍박의 거의 대부분은 믿는 자들이 다른 믿는 자들을, 즉 잘못 믿는 자들이 자신들이 믿는 오류가 진리인줄 알고, 잘못된 가르침에 열성을 다하다가 잘 믿는 사람을 핍박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이 일은 앞으로 또 다시 반복될 것이다. 교회가 성경의 진리를 떠나 세속적 목적을 위해 국가와 연합할 때 진리를 믿는 사람들은 억압을 받게 되어 있다. 하나님은 사회개혁운동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사회정화운동을 통해 이 세상이 변하는 것이 아니며, 이것은 강요로 되는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개인의 마음이 거듭나고 변화되기를 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변화는 마음의 변화이지 사회개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종교가 정치의 힘을 빌어 그들의 세력을 어떻게 행사하려고 하는지에 대한 뚜렷한 표본이 되고 있다. 이번 선거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A. 미국의 선거가 주는 의미 - 도덕과 종교가 쟁점이 됨

이번 미국의 선거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아주 의미심장한 사건이 되고 있다. “작비”라는 미국의 유명한 여론조사기관은 이번 미국의 선거가 민주당 후보 쟌 케리의 승리로 돌아갈 것이라고 예측하였다. 부시와 케리 두 후보의 여론조사 결과는 48%대 48%로 마지막까지 막상 막하였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이번 미국의 선거에서 누가 당선되었는가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그러나 어떻게 당선되었는가를 아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마지막 예언의 성취의 중심 마당이 될 미국의 정치와 선거는 예수님의 재림의 중요한 징조가 되기 때문이다.

미국의 선거 200년 사상 이번 선거처럼 도덕적인 문제가 대선의 이슈, 쟁점이 된 적은 과거에 없었다. 이번 선거의 쟁점은 이라크 전쟁 문제보다, 실업자와 직장문제보다, 경제문제보다, 도덕적인 문제, 즉 종교적인 문제가 가장 큰 쟁점이었다. 영적인 안목과 예언적인 안목을 떠서 이번 미국의 선거를 잘 살펴보면, 짐승의 표의 환란을 불러들일만한 정치풍토 환경이 지금처럼 잘 조성된 적이 없었던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선거는 1968년 이후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투표에 참여하였고 죠지 부시의 큰 승리로 끝났다. 선거 전날까지도 많은 여론조사기관들과 사람들은 부시의 승리를 예측하지 못하였을 뿐 아니라, 여론 조사 결과도 두 후보의 지지율이 거의 같아서 누가 당선될지는 무척 불투명한 것이었다. 선거 전 대통령 토론 대회가 끝난 후 사람들은 민주당의 쟌 케리가 승리할 것을 예상했으며, 만일 부시가 이겨도 근소한 차이로 이길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투표 결과는 예상을 뒤엎는 것이었다. 부시는 예상을 뒤엎고 승리를 했는데, 그것은 근소한 차이가 아닌 큰 승리를 얻었다는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되었는가? 그것은 부시가 종교와 도덕적인 문제를 선거의 쟁점으로 삼았기 때문이다.

B. 부시 대통령의 선거 전략

출구조사(Exit Poll: 투표하고 나오는 사람들에게 물어보아서 하는 여론조사)에서 7시부터 10시까지는 쟌 케리가 이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오후 1시가 되자 부시 진영은 승리를 예견하고 여유를 보였다. 부시 진영의 유명한 선거전략 참모 위원장 “칼 로브”씨는 투표가 반도 이루어지지 않은 도중에 기자들이 질문하자, “걱정하지 않는다. 우리는 이미 이겼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말했으며, 기자들이 그 이유를 묻자, 그는 “그것은 우리가 미국에 있는 기독교 보수파 기독교인들을 화나게 하는 일에 성공했기 때문입니다” 라고 대답했다. 그것은 무슨 뜻이었는가? 계속 읽어 보자.

C. 기독교 보수파의 활동과 부시의 승리

선거 이틀 전 뉴욕 타임지에는 “이번 선거는 믿는 자들과 믿지 않는 자들 사이에 있는 전쟁이다”라는 기사가 실렸다. 미국의 보수파 기독교인들은 빌 클린턴 대통령의 재임시절부터 미국이 도덕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타락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기독교 보수파 단체인 “크리스챤 코올리션(Christian Cohollition)” 같은 단체가 탄생하게 되었는데, 이 단체는 그들의 모체라고 할 수 있는 “모랄 모저리티(Moral Majority : 제리 포웰을 리더로 했던 기독교 단체로서 기독교가 정치에 참여하고, 정치의 힘을 빌어 미국을 도덕적인 부패에서 구하여 내고 종교적인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는 목적으로 생긴 단체)가 힘이 모자라 하지 못한 일을 끝마치려는 야심을 가지고 있는 한 단체이다.

이 단체는 기독교인들만으로는 그들의 정치적인 힘을 발휘하기에 역부족인 것을 알고 천주교에 도움과 협조를 구하여 정치 요직에 자신들의 목적에 찬성하는 기독교, 혹은 천주교인들을 앉혀 정치적인 힘을 조성하여 미국을 도덕적 타락에서 구하고 기독교 국가로 만들려는 아젠다를 가진 단체이다. 그리하여 종교 연합 운동은 가속화되고 구교인 천주교와 개신교인 기독교 사이에 “구원에 관한 교리”의 차이나 “믿는 방법”의 차이는 더 이상 그들에게 문제가 되지 않고 있으며, 그들의 정치적인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만 혈안이 된 가운데 이제 그들은 서로 “우리는 한 형제”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옛날에 가졌던 “프로테스탄트 정신(개신교가 천주교의 잘못된 신앙으로부터 저항하여 종교개혁을 하게 한 저항정신)을 잃어버린 채, 지금 미국의 기독교 보수파는 그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수단을 가리지 않고 “연합”만을 외치고 있는 실정이다.

이들은 주로 낙태 반대, 동성 결혼 금지, 금주 금연 운동 등 좋은 사회활동들을 내세워 하고 있고, 겉으로 볼 때 이 단체의 활동은 눈부시고 훌륭하다. 그러나 그들의 이념은 성경의 원칙과는 상반되는 것을 알 수 있는데, 그 이유는 그들은 자신들의 사상이나 목적을 이루는데 하나님의 원칙인 신앙의 힘에 근거하지 않고 정치적인 권력을 빌어 그 일을 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종교가 정치의 힘을 빌어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려고 할 때, 이 일은 양심을 억압하여 강요하고 종교의 자유와 개인들의 선택의 자유를 빼앗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하며, 결국 자신들의 신념에 맞지 않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세력으로 사용될 것이 분명해진다. 기억할 것은 미국은 어떤 개인이 종교를 믿든 안 믿든, 또는 어떤 종교와 신념을 가지든지 간에 그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종교의 자유를 가지고 시작한 나라이다. 그러나 정치의 힘을 빌어 일하고 있는 기독교 보수파들의 활동은 자신들의 신념을 정치적으로 밀어 부치고 이에 찬성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무언의 압력을 가하는 세력으로 부상하여 있다. 많은 정치인들은 기독교 보수파 집단의 표와 세력을 의식하고 그 단체에게 아첨의 미소를 보내며, 그들의 눈치를 살피고 있는 현실이다. 참고로 하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절대로 신앙을 강요하시지 않는다는 것을 기억하자.

한때 이 단체의 디렉터로 있었던 랄프 리드는 선거 전 NBC 방송국 탐 부로커와의 기자회견에서 “우리는 수백만의 기독교 보수파 교인들을 동원하여 전화하게 하는 선거운동을 이루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뜻은 많은 보수파 기독교인들이 “민주당의 쟌 케리를 뽑으면 미국에서 낙태와 동성결혼이 합법화 되어 미국이 더 도덕적으로 타락하게 될 것이므로 부시를 뽑아야 한다”고 서로 친구나 친지들에게 열심히 전화하고 선거에 참여하게 함으로 부시의 승리를 불렀다는 뜻이다. 그리고 앞서 언급했던 부시의 선거 참모인 “칼 로브”씨의 말대로 공화당은 이 기독교 세력을 적당히 잘 이용했던 것이다.

이 세력은 이번 선거를 종교적인 쟁점으로 몰고 갔으며, 이것은 미국 국민들에게 실업문제보다, 직장문제보다, 이라크 전쟁보다 도적적 문제를 더 중요하게 여기도록 만들었던 것이다. 민주당의 쟌 케리는 천주교인이지만, 낙태반대를 하지 않는 개방적인 자유파이고, 또 그는 “우리는 교황의 말을 듣지 않을 것이다”라고 공공연하게 말을 했으므로 모든 천주교인들과 적극적인 보수파 기독교인들이 부시를 뽑은 것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선거가 끝난 후, 부시 대통령은 “나는 이번 선거에서 많은 국민들의 지지에 의해서 중요한 자본을 얻었습니다. 나는 이것을 기독교인들이 원하는 대로 쓸 것입니다”라는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D. 예언 성취를 위해 기여할 기독교 극우파의 운동

미국에는 현재 기독교 극우 보수파들의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미국이 도덕적으로 타락했으므로 옛날의 신앙을 회복해야 한다”는 그럴듯한 명제아래, 정치권의 힘을 빌려 그들의 종교적인 주장을 펼치려고 기독교 극우 보수파들이 추진하고 있는 일들은, 과거 중세기 때 교황권이 행하던 행적과 같은 성격의 것으로서, 이것이 나중에 핍박의 세력으로 변하여 종교를 강요하고 짐승의 우상을 세워 하나님의 참 백성들을 핍박할 것을 유추해 낼 수 있다. 그러므로 그들의 행보와 움직임을 주시해 보는 것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는데, 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그들의 활동과 힘이 현저하게 과시된 것을 알 수 있다. 미국의 극우 보수파 기독교인들은 새로운 그리스도인 권리(New Christian Right) 라는 단어를 많이 쓰고 있는데, 이 새로운 그리스도인 권리(New Christian Right) 란 기독교 교리를 정치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연합하고 있는 미국 기독교 극우 보수파 종교적 정치 단체들을 말한다. (살아남는 이들 월간지 63호 참조)

옛날에 초대 교회가 복음의 단순성을 떠나 이교의 제의와 관습을 수용하자, 교회가 부패하여 하나님의 성령과 권능을 상실하게 된 것처럼, 그리하여 사람들의 양심을 지배하기 위하여 교회가 세속적인 권력의 지원을 구했던 것처럼, 그래서 생긴 결과가 교황권이었던 것처럼 오늘 날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국가의 권력을 지배하고 그 권력을 교회의 목적, 특별히 자신들이 ‘이단’이라고 생각하는 신실한 사람들을 처벌하는 데에 사용한 교회가 교황권이었다. 미국이 짐승의 우상을 만들기 위해서는 종교적 권력이 정부를 지배하여, 교회가 그 자신의 목적을 수행하는 데에 국가의 권위를 사용할 수 있게 되어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정확히 새로운 권리 세력들, 기독교 보수파 교인들이 하고자 하는 일이다.

요한 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의 우상은 개신교회들이 자신들의 교리를 강요하기 위하여, 정부의 권력의 지원을 요구하게 될 때 생기게 될, 배교한 개신교회를 말한다. 즉, 참 그리스도의 정신을 떠난 배교한 개신교회가 정부의 힘을 빌어 그들의 종교를 강요할 때 세워질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교회와 국가의 분리를 없애고 하나로 통일시키려고 애쓰는 것이다. 자신들이 지향하는 바가 어떤 일을 초래할지도 알지 못한 채...

이번 선거를 통해 우리는 새로운 권리 세력( New Christian Right )들인 기독교 보수파 단체들이 해낸 일을 주목해 볼 수 있었다. 그들은 이제 더욱 정치의 힘을 등에 업어 목소리가 커졌으며, 이제 어떤 사건들, 곧 천연재해나 경제파탄, 또는 다른 테러들이 일어날 때, 더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여 이 미국에 짐승의 표가 강요되고 마지막 예언이 성취되는 일에 한 몫을 단단히 할 것이다. 이런 일들을 통해 우리는 미국에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는 것을 본다. 짐승의 우상이 세워지는 것을 보면 머지 않아 짐승의 표의 강요가 다가올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 짐승의 표의 강요가 올 때 목숨을 바치면서까지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지킬 사람들은 과연 준비되어 가고 있는가? 누가 과연 끝까지 하나님께 충성하는 무리에 속할 것인가?

천연 재해와 재림의 징조

1. 2004, 12월의 지진. 해일의 대 참사

“예수께서 감람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종용히 와서 가로되 우리에게 이르소서...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사오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 24:3,7).

지난 해 말, 동남아 일대를 휩쓴 인도네시아의 지진과 해일의 대 참사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영적인 눈을 뜨게 하는 사건이 되기에 충분했다. 지난 2004년 12월 26일 오전 8시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에서 리히터 규모 9.0의 강진이 발생했다. 원인은 환태평양 지진대 상의 1천 km에 걸친 안다만 단층선에 균열이 생김으로 발생한 것이었다. 그런데 이 바다 속에서 생긴 강진이 만들어 낸 거대한 해일(쓰나미-지진 해일)이 인도네시아와 스리랑카, 몰디브, 방글라데시, 인도, 태국, 말레이시아, 소말리아 등 여러 나라를 덮쳐 대 참사를 빚어낸 것이었다.

CNN방송은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 및 지진해일(쓰나미) 대 참사에 따른 사망자 수가 15만 6천명을 넘어섰다고 2005년 1월 3일에 발표했으며, 얀 에겔란트 유엔 인도지원담당 사무차장 겸 유엔 인도지원 조정국장은 기자들에게 “사망자 중 상당수는 인도네시아 반도 아체 지역의 사람들”이라면서 “하지만 이 지역은 접근 상의 문제가 있기 때문에 피해가 제대로 조사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사상자 수는 더 늘어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정확한 최종 사망자 수 집계는 불가능할 것이라면서 “그냥 사라져 버린 마을들과 어부들이 많이 있기 때문에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집계할 수 없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인도네시아 보건 당국은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북부를 강타한 지진과 해일로 인한 인도네시아의 공식 사망자 수만 10만 명에 육박하고 있다고 발표했다(2005, 1.3). 그러나 피해가 가장 심한 아체주 생존 주민들은 정부가 확인하지 못한 시신이나 실종자를 포함하면 사망자가 최소한 2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 외에도 상상을 초월하는 이번 남아시아의 대 재앙, 쓰나미로 인해 생긴 이재민은 180만 명에 이른다고 UN은 집계했는데, 인도네시아 100만, 스리랑카에만 70만 명이다. 그러나 참사 후 그들 이재민들을 괴롭힌 배고픔과 목마름보다 그들이 가장 두려워했던 것은 전염병에 대한 공포였다. 폐허가 된 마을의 더러운 물웅덩이와 무더위, 모기를 통한 콜레라, 말라리아, 폐렴의 창궐을 예고하고 있으며, 전 세계에서 구호물자가 도착하고 있으나 도로와 다리가 끊긴 섬들에는 도로와 교량이 모두 파괴돼 구호식량은 물론 구조대조차 접근할 수 없는 상태인 곳이 많아 더 많은 인명피해를 내었다.

2. 지진의 빈도와 재림의 징조

이번 남아시아를 강타한 지진은 최근에 이르기까지 일어난 지진 중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지진이었으며, 1960년 대에 있었던 알라스카의 대지진 이후 가장 큰 지진이었다. 한 외신은 반다 아체를‘씻겨나가 평평해진(washed out and flattened) 도시’라고 표현했다. 이번 쓰나미로 인해 생긴 지축의 변형으로 세계지도를 다시 작성해야 하는 필요까지 생기게 될 형편이다. 이번 지진은 일본의 고베 지진의 1700배의 위력을 가진 것이었으며, 해일을 동반하여 여러 섬들을 자취도 없이 사라지도록 파괴함으로 수백 개의 핵폭탄을 터뜨린 것보다 더 많은 파괴를 가져왔다.

그런데 그뿐이 아니고 계속 되는 여진이 생기고 있던 중, 동남 아시아 각국에 해일 피해를 입힌 대지진의 진앙지였던 인도네시아 수마트라 섬 연안 해저에 리히터 규모 7.0의 강진이 또 발생했으며(2005,1.2), 이 대형 지진과 해일로 피해를 본 인도 니코바르 제도 인근 바다에서 리히터 규모 6.2의 강진이 또 발생(2005,1.3)했다. 그리고 2005년 1월 2일 저녁부터 3일 새벽 사이에 러시아 캄차카 반도 지역에서 4시간 간격으로 진도 4.6의 지진이 2차례 발생한 것을 비롯하여 수 차례의 여진이 계속되었다.

워싱턴에 있는 자연사 박물관에 가면 세계 각처에서 일어나고 있는 지진의 상태와 상황을 나타내고 있는 지진분포도가 있는데, 현재 지진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는 불이 켜지게 되어 있다. 그런데 지금 세계 각처에서 발생하고 있는 지진의 연속으로 그 지진분포도에는 계속 불이 켜져 마치 불꽃놀이를 보는 것 같을 정도로 이 세상에 지진이 많이 일어나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주목할 것은 1900년도까지 발생한 지진의 숫자보다 작년 한 해에 발생한 지진이 훨씬 많다는 것이다. 또한 모든 지진의 80% 이상이 환태평양 조산대에서 일어나는데, 이에 속하는 나라는 일본, 필리핀, 인도, 미국서해안, 동남아시아 등등이며, 이번에 일어난 쓰나미를 보며 환태평양조산대에 속한 나라들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고 또한 안전지대는 아무 곳에도 없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 형편이다.

예수께서 재림 하시기 전 마지막 징조로 말씀하신 지진과 천연재해가 지금처럼 활발히 일어나던 때도 없었던 것 같다. 예수께서 오시는 재림의 징조가 속속히 이루어지고 있는 것을 우리는 본다. 예수께서 속히 오실 것이다!

2부 - 하나님과 타락한 인류가 만나는 날, 어떠한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인가?


예수님의 재림! 이것은 너무나 오랫동안 기다려 온 인류의 소원이다. 이 만남이야말로 가장 오랜 기간을 기다려온 만남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그분의 자녀들이 헤어져 있던 기간이 인간의 역사만큼이나 길기 때문에 그렇다.

이 재림 때 이루어질 상봉은 죄로 인하여 하나님 앞을 떠났던 인류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의 계획을 통하여 다시 하나님과 재 결합함으로 이루어 질 것이다. 이 재림 때 이루어질 재회는 정말 재회중의 재회라고 말 할 수 있다. 바로 이 날을 기다리면서 얼마나 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죽어 갔으며, 순교장의 이슬로 사라져 갔는가? 이 하나님께서 믿는 자들을 데리시러 이 땅에 다시 강림하시는 날이야말로 인간의 역사에서 가장 장엄하고, 가장 복스럽고 기쁜 날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많은 사람들이 이렇게 중요한 사건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는 듯이, 아니면 잘 모르는 상태에서, 가르치지 않거나 아니면 강조하지 않는 입장에서 지나쳐 버리며 살아 가고 있다. 이유들이 있겠으나 가장 큰 연유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과 그 오시는 방법에 있어서 성서적인 이해가 적기 때문에 그러한 것이 아닐까? 이 “재림”의 중요한 사건이 어떻게 펼쳐질지에 대한 성경의 올바른 가르침을 알아 보기로 하자.

1. 첫 번째 ; 번개가 치는 것처럼 임하심

“그 때에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 보라 내가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 그러면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 24:23~27).

예수께서는 마귀와 악한 영들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도무지 흉내 내거나 가장 할 수 없는 장엄한, 전 세계적인 광경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볼 수 있는 방법으로 강림하실 것이다. 이 일은 절대로 비밀스러운 일이 될 수가 없다. 번개가 번쩍이는 것은 비밀스러운 일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어두운 밤에 번개치는 모습은 공개적으로 누구나 볼 수 있는 일인 것처럼 예수께서도 세상 이 끝에서 저 끝까지 다 볼 수 있는 방법으로 임하시겠다고 말씀하셨다.

2. 천사들과 함께 오심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 (마 16:27).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마 25:31).
예수님께서는 천사들의 호위 속에 오실 것이다. 천사 한 명이 나타났을 때에 아시리아 군대 18만 5천명이 죽었었는데(열왕기하 19:35), 천천 만만의 천사가 예수님을 호위하며 임할 때에 과연 그 영광이 국부적인 일로 그칠 수가 있겠는가?

3. 나팔을 부는 것처럼 오심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살전 4:16).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는 천사들의 나팔 소리와 함께 오신다고 하셨다. 우리가 알다시피 나팔을 부는 일은 몰래 할 수 없는 일이다. 그것은 온 누리에 알리기 위하여 부는 것인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도 그러할 것이다. 예수님의 재 강림의 광경과 소리는 죽은 자들이 깨어서 무덤에서 일어날 정도로 굉장한 일인 것이다. 그 외치는 음성과 나팔 소리는 해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들릴 것이다.

4.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임하심

“볼지어다 구림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계 1:7).

5. 예수께서 오실 때 일어나는 사건들

그뿐만 아니라 이 지구 표면에 일어나는 다른 사건들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예언하여 주고 있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 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 각 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계 16:18,20).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며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 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 6:14-17).
“이로 말미암아 그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 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6,7,10).

위에 언급된 성경절들을 보면 예수님의 재림 때는 온 지구가 지진으로 흔들리고 섬들과 산들이 무너져 내려 앉게 되며 땅의 표면이 불에 타 녹아 버리면서 대기권이 타 버리는 엄청난 물리적인 사건들이 발생할 것을 알 수 있다. 이 때에는 하나님을 섬기며 준비된 사람들만 그 날에 살아남게 될 것이다. 그 날에 여러분은 “오 주여 어서 오시옵소서! 내가 주의 오심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모릅니다!”라고 부르짖을 것인가, 아니면,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또한 너무나 무서워서 차라리 바위가 머리 위에 떨어지라고 소리칠 만큼 두려운 날이 될 것인가?

6. 죽었던 의인들이 모두 부활하여 다시는 썩지 아니할 몸으로 일어난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라”(고전 15:51-53).

지구 창조 이후로 태어나 살던 사람들 가운데 하나님을 믿고 구원 얻은 의인들이 예수님의 재 강림 날에 다시는 죽지 아니 할 불멸의 몸을 가지고 한꺼번에 모두 일어나게 될 것이다. 얼마나 장엄한 광경이 될 것인가?
그렇다면 그 두려운 날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 남을 수 있을까?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호소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베드로 후서 3:11-14)

여러분들은 이 가장 중요하면서도 가장 등한시되고 있는 이 사건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는가?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의 마음에 살아 계신가? 여러분은 매일 거듭나는 경험과 매일 주님과 동행하는 경험을 하고 있는가? 재림의 문제를 연구하며 우리 자신들을 다시 살펴 보도록 하자.

3부 - 비밀 휴거, 정말 있는가?


예수님의 재림은 너무나 중요한 사건이기에, 신약성경에만 331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과거나 현재 또는 미래에 있어서 이보다 중요한 사건은 없다.

예수께서는 아무도 의심하거나 혼돈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분명하게 재림의 약속을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리라”(요한복음 14:2-3).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구속의 계획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를 하늘로 데리고 올라가실 때까지는 완전하게 성취되지 않는다. 재림은 지상 최대의 사건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께서 어떻게 재림하시는 지에 그 방법에 대한 명확한 성경적 지식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요하다.

오늘날, 주의 재림에 대한 심각한 오해가 기독교계에 들어와서 수백만 그리스도인들에게 아무런 검토없이 받아들여지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께서 비밀리에 공중 재림하실 것이라는 소위 “휴거(rapture)”라는 가르침이다. 휴거설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예수께서 환란이 전에 의인들만 비밀리에 살짝 들어 올려가셔서 그들이 환란을 통과하지 않게 해 주신다고 말한다. 그래서 휴거설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은 앞으로 지구에 일어날 엄청난 충돌 사고들을 예상하고 있다. 비행기 조종사와 버스와 자동차 운전기사들이 갑자기 들리어 올라가게(비밀 휴거) 되면 굉장한 사고들이 연발하여 일어나게 될 것이라는 공상 소설 같은 이야기이다. 그러나 실제로 그렇게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꽤 많이 있다는 사실에 우리는 놀라지 않을 수 없다.

휴거론은“세대주의(dispensationalism)”또는“미래주의”를 지지하는 목사들에 의해서 전파되고 있는 예언 해석과 접목되어서 여러가지 모양의 오해와 혼란을 빚어내고 있다. 비밀 휴거에 대하여 함께 분석하여 보자.

휴거는 아무런 소리없이 조용히 일어날까요?

* 조용한 비밀 휴거가 아닌, 가장 떠들썩한 승천 :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 4:15-17).

이것은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휴거 또는 성도들을 모으는 사건을 설명하면서 사용하는 가장 대표적인 성경절이다. 살아있는 성도들이 죽은 자들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할 것이며, 죽은 성도들이“먼저 일어날”것이라는 사실을 주목하라. 죽었던 자들이 무덤에서 나오면서 기쁨으로 소리치고, 감사의 찬송을 부르는 장면이 이 성경절 속에 그려져 있지 않은가? 이 성경절은 매우 비밀스럽고 조용한 장면을 나타낸다기 보다는 오히려 매우 커다란 소리들이 울려 퍼지는 장면을 묘사하고 있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 성경 구절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이 비밀리에 이루어지는 장면을 발견할 수 있는가?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호령(shout)”과 “천사장의 소리(voice)”와“하나님의 나팔(trumpet)”이 온 천하에 울려 퍼진다. 그것은 죽은 사람을 깨워서 일으킬 수 있을 만큼 큰 소리이어야 한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 24:31).

무덤이 열려서 죽은 의인들이 부활하고 살아있는 성도들이 변화되어 승천하는 일이 어떻게 비밀스럽게 일어날 수 있는가? 그 사건은 아무런 소리없이 이루어지는 비밀 강림이 아니라 극도로 떠들썩한 재림이 될 것이며, 비밀 휴거가 아니라 가장 떠들썩한 승천이 될 것이다.

* 도적같이”란 말의 의미 :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이 성경절을 이용하여 예수께서는 도적이 비밀리에 조용히 남의 집 담을 넘어가는 것과 같은 방법으로 재림하신다고 설명한다. 과연, 이 성경절이 의미하는 바는 예수께서 도적처럼 비밀리에 조용히 오신다는 것인가? 성경의 다른 곳에 나오는 이와 유사한 성경절이 그 의미를 분명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형제들아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음은 주의 날이 밤에 도적 같이 이를 줄을 너희 자신이 자세히 앎이라...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살전 5:1,4).

여기서 바울은 주께서 오시는 “때와 시기”에 대하여 언급하면서“도적 같이”오신다는 말을 사용하였다. “도적 같이”라는 말은 예수께서 오시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시는 “때”에 대한 묘사라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예수께서 도적처럼 “갑자기”오실 것이라는 사실을 표현했던 것이다.

“도적 같이”라는 표현에 대한 또 다른 설명이 베드로후서 3:10에도 나와 있다.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여기에 나오는 “도적같이”의 뜻은 “소리없이, 아무도 모르게”라는 뜻이 아니라, “갑자기”라는 의미임을 알 수 있다.

휴거는 보이지 않게 일어날까요?

휴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휴거가 다른 사람들의 눈에 뜨이지 않게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다. 정말 그런가? 성경이 그 문제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살펴보자.

“그 때에 인자가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보리라. 또 그 때에 저가 천사들을 보내어 자기 택하신 자들을 땅 끝으로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가복음 13:26-27). 여기서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들이 그분이 영광 가운데서 오시는 모습을 볼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밝히셨다. “그 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 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여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저가 큰 나팔소리와 함께 천사들을 보내리니 저희가 그 택하신 자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리라”(마태복음 24:30-31).

“볼지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들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요한계시록 1:7).

성경은 오직 의로운 사람들만 예수의 재림을 볼 것이라고 말하였는가? 아니다. 각인 즉, 각 사람의 눈이 그분의 오심을 볼 것이라고 하였다. 또한 악인들이 주께서 재림하시는 장면을 볼 때, 그들은“그를 인하여 애곡”하게 될 것이다.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27). 밤하늘에 치는 번개보다 우리들의 눈에 잘 보이는 것이 있는가? 모든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오시겠다는 사실을 이것보다 더 분명하게 설명할 수 있는가?

휴거 후에 악인들은 살아서 지상에 남아 있게 될까요?

* 노아와 롯의 때 : 비밀 휴거론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입증하기 위해서 문맥을 무시한 채 다음의 성경절을 사용한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도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39).

이 성경절에서, 예수께서는 노아의 때와 재림 사이에 존재하는 유사점을 비교 설명하셨다. 노아의 때에 방주에 들어간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으며, 방주에 들어가기를 거절한 사람들은 밖에 버려짐을 당하였다. 왜 그런가? 또 다른 기회를 주기 위해서? 아니다. 그들은 홍수에 휩쓸려 멸망당하였다. 마찬가지로, 믿음으로 재림을 준비한 사람들은 마지막 멸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을 것이며,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멸망당하게 될 것이다.

* 죽은 상태로 버려둠을 당함 : 비밀 휴거론자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성경절은 누가복음 17:34-35 일 것이다.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비밀 휴거론자들은 이 말씀의 뜻을 두사람이 함께 있다가 한 사람이 상대방도 모르는 사이에 감쪽같이 하늘로 사라지는 것을 말한다고 주장한다. 또한 그들은 말하기를, “성도는 하늘로 데려감을 당하고, 악인은 지상에 남아서 적그리스도를 만나게 되며, 적그리스도와 함께 환란을 통과하게 된다”라고 한다. 정말 그런가? 아니다. 마태복음 17장에 나오는 두 남자와 두 여자에 대한 비유는,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까지는 외적으로는 아무런 구분없이 어울려 살지만, 재림하실 때에는 본인의 준비 여부에 따라서 운명을 달리하는 영원한 분리가 이루어짐을 강조한 말이다. 한 무리는 예수님과 함께 하늘로 데려감을 당할 것이고, 다른 한 무리는 멸망을 위해서 버려짐을 당하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의인들은 그분과 함께 승천할 것이며, 악인들의 시체는 땅 속에 묻히지도 못한 채 온 세상에 널리게 될 것이다. 요한계시록 19:17-18에는 한 천사가 악인들의 죽은 시체를 먹으라고 새떼들을 초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한 천사가 해에 서서 공중에 나는 모든 새들을 향하여 큰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와서 하나님의 큰 잔치에 모여 왕들의 고기와 장군들의 고기와 장사들의 고기와 말들과 그 탄 자들의 고기와 자유한 자들이나 종들이나 무론대소하고 모든 자의 고기를 먹으라 하더라.”

재림 후 적어도 7년간은 악인들에게 은혜의 집행유예가 계속된다는 가르침은 도대체 성경의 어디에 기록되어 있는가?

하나님께서는 의인들에게 환란을 면제해 주실까요?

비밀 휴거를 믿는 세대주의자들은, 진실한 그리스도인들은 마지막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지상으로부터 하늘로 휴거당하기 때문에, 환란을 모면하게 된다는 이른 바 전 환란설(Pretribulationism) 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성경 어느 곳에도 이러한 주장을 뒷받침하는 말씀이 없다. 예수님의 감람산 설교를 살펴보면, 성도들은 오히려 환란을 당할 것이며, 하나님께서 환란 가운데서 그들을 지켜주실 것이라는 약속의 말씀이 나와 있다. “그 때 사람들이 너희를 환란에 넘겨 주겠으며,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가 내 이름을 위하여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으리라”(마태복음 24:9). 예수님의 마지막 기도에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란을 당하나 담대하라”고 하신 말씀은 마지막 날에도 적용된다.

* “면케하리니”의 의미 : 비밀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마지막 환란이 오기 전에 의인들이 비밀리에 휴거할 것이라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다음과 같은 요한계시록 말씀을 매우 자주 인용한다. “내가 나의 인내의 말씀을 지켰은즉 내가 너를 지키어 시험의 때를 면케하리니 이는 장차 온 세상에 임하여 땅에 거하는 자들을 시험할 때라”(계 3:10). 이 말씀을 잘못 해석하여서, 성도들은 마지막 대환란이 시작되기 전에 휴거하여 지상을 떠남으로써, 환란을 모면하게 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말씀을 지켰은즉... 면케하리니”로 번역된 헬라어(tereo...ek)가 그러한 뜻이 아니라는 사실이, 동일한 단어가 사용된 요한복음 17장 6,15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내가 비옵는 것은 저희를 세상에서 데려가시기를 원함이 아니요, 오직 악에 빠지지 않고 보전하시기(tereo...ek)를 위함이니이다.” 여기에 예수님의 뜻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 3:10에 나오는 “면케하리니”라는 말의 의미는 악한 세상에서 살 수 밖에 없는 그리스도인들을 죄와 악의 세력으로부터“보전하”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임을 알 수 있다.

* 환란을 통과한 의인들 : 비밀 휴거론을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과거에도 종종 의인들은 환란을 하나님의 은혜로 모면하였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에도 의인들은 비밀 휴거를 통하여 마지막 환란을 모면할 것이라고 가르친다. 정말 그런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서 출애굽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던 바로왕 때문에 이집트에 내렸던 10재앙의 경우를 생각해 보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환란 속에서 어떻게 취급하셨는가를 살펴보자. 처음 3재앙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하여 이집트에 사는 모든 사람들에게 내렸으며, 나머지 7재앙은 이집트 사람들에게만 내려진 사실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무서운 재앙으로부터 당신의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그들을 이집트 국경 밖으로 데리고 나가지 않으셨다. 10가지의 재앙이 모두 끝마쳐진 다음에, 홍해를 가르시는 기적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 시키셨다. 마찬가지로, 마지막 시대에도 7재앙을 피하게 하기 위해서 그리스도 교회를 하늘로 휴거시키지 않으실 것이다. 의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인내로 지킴으로써, 환란 속에서 보호를 받게 될 것이며, 7재앙과 환란이 끝난 후에야 공중으로 승천하게 될 것이다. 의인들도 재앙에 의해서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것이지만, 그것 때문에 신앙을 포기하거나 좌절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들은 성도의 인내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써, 짐승의 표를 거절하고 환란을 통과하여 승리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환란 속에서 보호하신 예를 찾아 보자. 창세기 6-8장에는 노아 홍수에 대한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노아 가족을 하늘로 휴거시키는 대신에 홍수 속에서 보존하셨다. 다니엘 3장에는, 하나님께서는 다니엘의 세 친구를 보존하시는 이야기가 나온다. 하나님께서는 풀무불이라는 환란 자체를 없애버림으로써, 그들을 구원하지 않으셨다. 풀무불 속에서 그들과 함께 하심으로써, 그들의 머리털 하나도 불에 타지 않게 보호하셨다. 다니엘 6장에는, 다니엘을 사자 굴에서 구하는 이야기가 나온다. 마찬가지로, 다니엘이 사자 굴에 들어가지 않도록 하심으로써, 다니엘을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사자 굴 안에서 사자들의 입을 막으시는 기적을 행하심으로써, 다니엘을 보전하셨다.

* 분리는 세상 끝에 일어남 : 마태복음 13:24-30, 36-43에 나오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는 비밀 휴거의 모순을 분명하게 드러내 준다. 인용 구절이 너무 길어서 다 소개하지는 못하지만, 비유를 설명해주는 예수님의 말씀을 읽어보자.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가라지를 심은 원수는 마귀요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추숫군은 천사들이니” 38.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세상 끝에 천사들을 보내셔서 추수하실 때, 오직 두 그룹의 사람들 즉, 구원받는 의인들과 멸망 당하는 악인들로 나뉘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설명을 들어보라. “둘 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서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니” 30. 이 비유의 말씀은 의인과 악인의 분리가 추수 때인 세상 끝에 이루어짐을 분명하게 선언하고 있다.

* 마지막 날에 있을 부활 : 비밀 휴거론자들의 주장대로, 의인들이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악인들로부터 분리된다면, 부활의 약속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예수께서는“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라는 말씀으로 세상 끝에 있을 의인의 부활을 약속하셨다. 여기서 “마지막 날”은 세상의 마지막 날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또한 바울은 죽은 자들이 부활하는 그 시간에, 의인들이 공중으로 승천할 것이라고 말하였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공중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고”(데살로니가후서 4:16-17). 예수께서는 이 부활을 가리켜 마지막 날이라고 부르신 것을 기억하라.

예수께서는 두 단계로 오시나요?

성경은 예수 재림을 역사의 클라이맥스인 동시에 마지막 종점을 이루는 한 사건으로 소개하고 있다. 그러므로 비밀 휴거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재림의 사건을 두 단계로 나누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무리한 방법으로 성경을 해석해야 한다. 초기 그리스도 교회 이후로 수세기를 거쳐오는 동안, 모든 신학자들과 성직자들과 평신도들은 재림을 한번에 일어나는 한가지 사건으로 해석하여 왔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두 단계로 나누어서 재림하신다는 비밀 휴거 사상은 지금으로부터 약 150년 전부터 생기기 시작한 최근의 발명품이다. * 한 사건을 나타내는 3개의 헬라어 :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의 오심이 두 단계로 나누어질 것이라는 사실이 헬라어 원어의 의미 속에 나타나 있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먼저 파로시아 즉, 비밀리에 오시는 비밀 재림이 있고, 7년 후에 아포칼립시스 또는 에피파네이아 즉, 예수께서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나타나시는 재림이 있다고 믿는다. 이 헬라어들은 두 단계로 나누어진 별개의 사건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동일한 사건을 서로 다른 헬라어로 표현하고 있음을 주지해야 한다. 파루시아, 아포칼립시스, 그리고 에피파네이아는 모두 동일한 사건을 의미하는 단어이며, 이들 단어에는 7년간의 시간의 간격이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없다.

* 공개적인 재림의 의미로도 사용된 파루시아 : 휴거론자들은 헬라어 파루시아는 항상 비밀 재림을 의미한다고 믿는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파루시아)하시리니...”(데살로니가전서 4:16-17).

이 말씀에서 강림(파루시아)이라는 말이 휴거의 의미가 내포되어 있는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라는 말과 함께 사용되었기 때문에, 성경에서 파루시아는 비밀 재림을 의미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에서 빚어진 추측에 불과하다. 바울의 편지서인 데살로니가전서 3:13에서는 “그의 모든 성도와 함께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로 쓰여 있다. 파루시아 라는 단어가 휴거론자들이 말하는 7년 환란기 끝에 “성도들과 함께”-거룩한 자들(천사들을 의미함)- 오시는 영광스러운 공개 재림을 뜻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 파루시아 = 에피파네이아 : 데살로니가후서 2:8에도,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파루시아)하여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으로 폐하시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비밀 휴거론자들의 논리에 따르면, 불법한 자(적그리스도)는 7년 환란의 끝에 예수께서 두 번째로 다시 한번 더 강림하실 때에 죽게 되어 있는데, 이 성경절에서는 불법한 자가 죽게 되는 강림을 말하면서 파루시아를 사용하고 있다. 이 사실을 통하여, 우리는 파루시아라는 단어 역시 영광스런 재림을 의미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만일 파루시아가 그들이 말하는 대로 비밀 재림을 의미하는 단어라면, 적그리스도는 예수께서 비밀리에 강림(파루시아)하실 때에 죽는다는 말이 되기 때문에, 비밀 휴거 다음에 곧바로 이어지는 7년 환란기 동안에 적그리스도가 세상을 장악할 것이라는 그들의 종말 시나리오에 치명적인 모순이 생기게 된다. 더구나 이 성경절에서 “강림(파루시아)”과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이 한 사건을 표현하는 말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강림(파루시아)”과 “나타나심(에피파네이아)” 사이에 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을 수도 없다.

* 파루시아 = 아포칼립시스 : 마태복음 24:37에서 우리는,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파루시아)도 그러하리라”는 말씀을 보게 된다. 그런데 동일한 내용의 말씀이 누가복음 17:26,30에는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나타나는(아포칼립시스) 날에도 이러하리라”고 쓰여 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기록된 이 사건은 누가 보아도 동일한 사건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한 성경절에는 파루시아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재림을 표현하였고, 다른 성경절에서는 아포칼립시스라는 단어를 사용하여서 재림을 표현하였다. 파루시아(임함)와 아포칼립시스(나타남) 사이에 7년의 간격이 있다는 어떠한 암시도 찾을 수 없다.

7년의 시간적 간격이 있나요?

74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은 7년 환란을 너무나 자주 언급하고 있기 때문에,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이 그 기간을 매우 자주 언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하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성경의 단 한 구절도 7년이라는 기간을 세상 끝이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련하여 말하고 있지 않다.

* 그리스도의 초림에 관한 70주 예언 : 성경을 깊이 연구한 사람이라면, 비밀 휴거를 가르치는 세대주의자들이 7년이라는 기간을 증명하기 위해서, 다니엘 9장 24-27절을 문맥을 무시하고 해석하는 것에 대해서 놀랄 것이다. 세대주의자들은 다니엘 9:24-27을 잘못 해석하게 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서 다니엘에게 보내준 그 기별을 그리스도의 재림에 적용하기 때문이다. 그 성경절은 재림이 아니라, 메시야의 초림에 관한 예언임을 이해해야만 한다.

* 유대인들을 위한 70주의 은혜의 기간 : 가브리엘 천사는 다니엘에게 예언에 대한 설명을 시작하였다. “네 백성과 네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70 week, 70주일)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허물이 마치며 죄가 끝나며 죄악이 영속되며 영원한 의가 드러나며 이상과 예언이 응하며 또 지극히 거룩한 자가 기름 부음을 받으리라”(다니엘 9:24). 바로 여기에 나오는 70주일에 관한 예언은 비밀 휴거를 주장하는 세대주의자들이 종말의 시간표를 작성한 기초를 이루고 있다. 이 예언을 올바르고 정확하게 이해해야만 휴거론자들의 문제점을 분명하게 포착할 수 있다. 이 예언에 나오는 70주일 기간은 이스라엘이 70년간의 바벨론 포로 생활(렘 29:10)에서 돌아온 유대인들에게 다시 한번 허락된 마지막 은혜의 기간을 의미한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락하신 70주일이라는 예언적 기간은, 그들이 메시야의 오심을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은혜의 기간이었다(70주 예언의 계산법: 살아남는 이들 제 7호를 참조할 것).

휴거주의자들은 7년이라는 환란 기간을 만들어 내기 위하여 다니엘의 70주 예언에서 마지막 7년을 역사의 중간으로부터 뚝 떼어서 저 멀리 미래 즉, 세상 끝으로 가져갔다. 그들은 마지막 70번째 주일은 말세에 그리스도께서 오셔서 의인들을 비밀리에 휴거시킨 후에야 성취될 것이라고 해석한다. 그리고 70번째 주인 마지막 7년을 “7년 대환란”이라고 이름 붙인 후, 7년 환란기의 앞과 뒤에 비밀 공중 휴거와 공개 지상 강림이 있을 것이라는 2단계의 재림설을 만들어냈다. 이것은 성경에 너무나 맞지 않는 허구에 찬 이론이다.

휴거는 적그리스도의 출현보다 먼저 이루어집니까?

비밀 휴거론자들은 세상 끝이 되기 7년 전에 성도들이 비밀리에 휴거를 당하고, 그 후에야 비로소 적그리스도가 나타난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과 사도 바울의 설명을 비교해 보자. “누가 아무렇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하지 말라.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이르지 아니하리니, 저는 대적한 자라 범사에 일컫는 하나님이나 숭배함을 받는 자 위에 뛰어나 자존하여 하나님 성좌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 하느니라”(데살로니가후서 2:2~4).

* 바울의 설명 : 바울은 이 문제에 대해서 너무나 자세히 설명하였다. 그리스도의 강림의 날에 앞서 “먼저 배도하는 일이 있고 저 불법의 사람... 곧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보여 하나님”이라고 주장하는 적그리스도가 “나타나기 전에는” “그리스도의 강림(파루시아)”이 없을 것이므로 “주의 날이 이르렀다고 쉬 동심하거나 두려워하거나 하지”말라는 것이 바울의 설명이다.

* 요한의 설명 : 휴거를 믿는 사람들은 주께서 강림하시는 사건과 적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사건의 순서를 바꾸어 놓음으로써,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적그리스도의 출현을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착각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성경은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의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멸하시리라”8절. 여기서,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에 적그리스도가 멸하여질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요한계시록 20:4에도, 이 문제를 정확하게 볼 수 있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더불어 천년이 차기까지 왕노릇하니 이는 첫째 부활이라.” 적그리스도와 그의 세력이 강요하게 될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사람만이 첫째 부활에 참여하게 될 것이라는 사도 요한의 기록은, 먼저 비밀 휴거와 부활이 있은 다음, 적그리도가 이 세상을 7년 동안 장악할 것이라는 세대주의자들의 주장을 완전히 무산시켜 버린다.

믿지 않는 자들에게 두 번째 구원의 기회가 주어집니까?

비밀 휴거론자들은, 첫 번째에 휴거되지 않는 자들에게도 구원받을 수 있는 두 번째 기회가 7년 동안의 환란기 동안에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단언하건대, 성경의 어느 곳에도 예수께서 오신 후에 두 번째 구원의 기회를 받는 사람이 있다는 기록이 없다. 노아와 롯의 때와 같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의 때에도 단 한번의 기회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의 마음을 즐겁게 하기 위해서 인간이 고안해낸 교리이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주의 깊이 읽어 보라.

74“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린도후서 6:2).
“불의를 행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행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하게 하라(은혜의 시간의 끝).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재림과 함께 주어지는 성도들을 위한 보상)”(요한계시록 22:11-12).

모든 사람들에 대한 은혜의 시간은 재림 이전에 끝난다. 구원을 위한 은혜의 시간이 끝남과 함께 성령이 세상에서 거두어지며, 칠재앙이 내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이 마지막 사건들의 순서이다.

성경 전체에 나타난 예수 그리스도의 신학에는 구원을 위해서 주어지는 두 번째 기회란 존재하지 않는다. 물론, 사랑과 자비의 구세주께서는 모든 인류들이 변명할 수 없을 만큼 충분한 시간과 기회를 주시지만, 일단 그들에게 주어진 은혜의 시간이 끝나면 그것으로서 모든 것은 끝나게 된다. “불의한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로운 일을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요한계시록 22:11).

 

4부 - 어떻게 재림을 위하여 준비할 것인가?


세상의 끝이 매우 가까운 시점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우리는 지상 최대의 사건이며,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최대의 소망인 예수님의 재림을 맞기 위해 준비해야 한다.

오랫동안 지연되어 온 지구의 역사가 곧 마쳐지려 하고 있으며, 우리를 둘러 싸고 있는 사회와 정치적 징조들은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했음을 말해 주고 있다. 어떻게 해야 예수님의 재림을 위해 준비될 수 있을까? 재림을 위한 우리의 준비에 대해 함께 생각해 보자.

1. 마지막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아야 한다.

“또 보매, 다른 천사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가지고 해 돋는 데로부터 올라와서 땅과 바다를 해롭게 할 권세를 얻은 네 천사를 향하여 큰 소리로 외쳐 가로되, 우리가 하나님의 종들의 이마에 인치기 까지 땅이나 바다나 나무나 해하지 말라 하더라”(계 7:2,3)

계시록 7장과 14장에 보면 마지막 환란, 즉 사방의 네 바람이 불기 전에 나타나야 할 하나님의 인을 이마에 받은 백성들에 대하여 나온다. 이 사람들은 계시록 13장의 짐승의 우상과 짐승의 표의 환란과 큰 핍박 속에서도 이기고 승리하여 어린양과 함께 시온산에 서게 될 사람들, 곧 144,000이며, 그들의 이마에 어린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의 마음과 성품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백성들이다. 이것이 바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다.

이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인은 그리스도인이 회개하고 거듭날 때에 받는 성령의 인과는 다른 것이다. 에베소서 1:13에 설명하는 성령의 인과 144,000의 인은 그 시기와 성격에 있어서 다르다. 성령의 인은 구원 얻을 자들이 모두 다 받아야 할 인으로서 성령의 거듭남을 상징하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나 계시록 7장이 말하고 있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성격이 좀 다르다. 그것은 사방 바람이 놓이기 직전에 쳐지는 것으로 보아 마지막 환란이 닥쳐오는 세상 종말에 살고 있는 자들이 받게 되는 경험임에 틀림이 없다. 그들이 이전 세대 사람들보다 더 낫다는 뜻이 아니다. 그들이 마지막에 겪게 될 핍박과 고난이 특별하기 때문에 특수한 무리처럼 기록되어 있는 것이다.

우리는 출애굽기 33장과 34장에서,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여 달라고 하자 하나님께서 당신의 이름을 선포하시면서, 당신의 성품을 말씀해 주시는 장면을 발견 하게 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이름은 곧 하나님의 성품을 말하는 동일어이다. 재림 직전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아야 하는데 이 경험을 하나님의 이름이 이마에 기록 된 것으로 설명 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인은 하나님을 닮은 품성을 소유한 자들 위에 쳐지는 특별한 인이다. 어린양의 이름은 특히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사셨을 때에 아버지의 계명을 온전히 지키신 거룩한 성품을 말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이 어린양의 품성이 아닌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이란, 회개 하여 성령의 인을 받고 나서 계속하여 자아가 죽고 성령께서 내재하시는 경험을 통하여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의 열매를 맺은 성도들에게 쳐지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마지막 환란을 통과하고 구원을 얻는 것이다. 물론 구원을 얻는 모든 성도들은 다 성령의 인침을 받은 사람들이다. 그러나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살고 있는 마지막 성도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다.

이들은 하나님의 공의와 은혜를 온 세상 앞에 잘 증거할 마지막 증인들이라 하겠다. 하나님의 심판은, 각 시대마다 그들이 받은 진리의 양에 따라 내려질 것이다. 하나님은 합리적인 분이시다. 그러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진리의 이해가 가장 밝은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이 말세의 성도들은 예수의 성품을 닮은, 하나님의 인을 받는 무리들이 될 수 있는 가장 밝은 빛 가운데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은 마지막 시대에 살고 있는 성도들에게 해당되는 것으로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곧, 성령의 능력으로 모든 죄를 극복하여 계 18장에 나오는 늦은비의 큰 성령을 받을 준비를 갖추고, 위로부터 내리는 능력을 받아 바벨론의 죄악을 폭로하고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곳에서 나오라고 외치는 큰 소리 외침에 참여할 준비를 갖춘 자들 위에만 쳐지는 것이다. 그들은 세상과 죄와 자신을 승리하는 사람들이며, 하나님을 사랑하므로 마음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경험을 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일은 마음으로 하는 경험인 것을 우리는 부인 할 수가 없다. 거듭난 사람의 마음에는 하나님의 법이 마음에 기록된다. 계명을 지킨다는 말은 죄를 승리한다는 말과 같은 말이다.

하나님의 인을 받는 준비는 우리 자신들에게 달려 있다. 우리는 지금 현재 하나님과 같은 성품을 계발하고 있는가? 아니면 적당한 종교생활을 하면서 그러나 세상과는 너무 두드러지게 다르게 되기는 원치 않으면서, 진리를 알기 때문에 의롭게 되었다고 스스로 위로하며 마음과 성품은 예수님처럼 변하지 않은 채,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고 있는가? 만일 우리들이 그러한 생활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결단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위해 준비되지 못할 것이며, 이마에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새롭게 하는 늦은비 성령, 혹은 하나님의 능력은,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하라고 하신 일 즉, 자신들을 모든 육신과 영의 부정함에서 깨끗게 하고 하나님을 두려워함으로 온전하게 거룩함을 이루는 일을 통하여서 자신을 준비시킨 자들에게만 임할 것이다. 요한은 계시에서 시온산에 서 계신 어린 양을 보았고, 그와 함께 서 있는 144,000이 그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보았다. 그들은 하나님의 형상을 반사하고 있었고 거룩한 하나님의 빛과 영광으로 가득 차 있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형상과 그 분의 품성을 지니려면, 우리는 우리 자신들을 모든 악함에서 분리시켜야 한다. 우리는 모든 악한 길을 버려야 한다.

마지막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지 않고서도 환란을 통과하여 구원 받을 수가 있을까? 깊이 생각해 보자. 주님께서 오시는 징조들이 나타나고 있다. 세계 단일 정부 주의자들은 세계를 하나의 정부, 하나의 헌법, 하나의 종교로 통합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며, 유럽의 통합과 유로화폐, 또는 9.11사태가 남으로 인해 일어난 이락 전쟁 이후 미국이 세계를 용처럼 호령하는 모습은 계시록의 예언 성취를 한 눈에 보는 것 같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의 재림을 오래 기다려 왔다고 할지라도 정작 예수님의 재림은 하루에 불과 하다. 그러나 그 날은 우리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는 놀라운 날이 될 것이다. 마지막 환란을 통과하고 영광스러운 재림의 날에 설 수 있는 준비를 갖추기 위해 이마에 하나님의 인 -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소유한, 성령의 능력으로 죄를 승리하는 사람들이 되자!

2. 회개하고 성령을 받자.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행 3:19).

앞에서 언급한 대로 하나님의 인을 받고 마지막을 통과하여 재림을 맞으려면 먼저 회개하고 성력의 능력을 받는 경험이 필요하다. 우리들의 품성에 점이나 흠이 가득하면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하게 될 것이다. 모든 더러움에서 영혼의 성전을 깨끗게 하기 위하여 우리 품성 가운데 결점을 고쳐야 할 일이 우리에게 남아있다. 그것이 곧 회개이며, 성화이다. 회개하고 정결하게 된 그 다음에 오순절 날 이른 비가 제자들에게 내렸던 것처럼 그렇게 하면 늦은 비의 큰 성령이 우리에게 내리게 될 것이다.

자신의 영적 타락에 대하여 슬픔을 느끼지 않는 사람들과 다른 사람들의 죄에 대하여 슬퍼하지 않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을 받지 못한 채 남게 될 것이다(겔 9:4). 우리는 우리의 영적인 상태를 깊이 살피고 회개하며, 마음을 찢고 여호와께 돌아와야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인을 받고 환난 때 보호를 받을 사람들은 예수의 형상을 완전히 반사해야만 한다. 모든 얽매이기 쉬운 죄, 교만, 이기심, 세상을 사랑함 그리고 모든 그릇된 말과 행동에 대하여 승리하는 경험이 우리 모두에게 필요되고 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속죄일 때 그들의 모든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버렸듯이, 지금 우리의 모든 죄가 성소에서 자복되어야만 하며, 그 일은 지금 바로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일, 곧 죄를 회개하고 승리하는 일을 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도와 주실 것이다. 회개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말미암아 씻음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로 죄를 승리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비유를 보면 열 처녀는 모두 신랑이 오신다는 소리에 황급히 깨어 벌떡 일어났다(마 25: 1-13). 저들은 횃불을 환하게 비치며, 즐거운 음악을 내면서 혼례의 행렬이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저들은 신랑의 말소리와 신부의 말소리를 가까이 들었다. 열 처녀는 급히 나가기 위하여 각각 저희 등을 준비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중 다섯 처녀는 등잔에 기름을 채울 것을 등한히 하였다. 저들은 그렇게 오래 지체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고 이러한 비상 사태를 위하여는 아무 준비도 하지 않고 있었다. 그들이 기름을 사러 간 동안에 행렬은 그들을 버려두고 가버렸다. 그리고 문은 닫혔다. 미련한 처녀들은 성령의 기름을 준비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즉,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지 못하고 살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거절을 당하였고, 잔치 주인은 “내가 너희를 알지 못하노라”고 하였다. 성령의 기름은 매일 준비해야 한다.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므로 늘 성령의 충만함을 경험하자!

3. 자녀와 가족을 준비시키자.

“보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선지 엘리야를 너희에게 보내리니 그가 아비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게 하고 자녀들의 마음을 그들의 아비에게로 돌이키게 하리라” (말라기 4:5,6).

세상 마지막이 이르기 전에 우리의 가정에 큰 부흥이 일어나야 할 것인데, 그것은 우리의 가족들, 특별히 우리의 자녀들을 재림을 위해 준비시키는 일이다. 자녀들에게 세상의 교육을 열심히 시키다 보면 영적으로 소홀하게 되어 그들이 영생을 잃어버리게 될 수 밖에 없다.

그리스도인 부모들은 “참 교육”의 개념에 대하여 알 필요가 있다. 참 교육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과 하나가 되어 연합하는 것이다. 그것은 하나님을 인간의 마음과 정신에 가져오는 것이다. 자아를 겸손하게 낮추는 것을 배우는 것, 자아를 굴복시키는 것, 이것이 가장 고상한 교육이다. 교육의 진정한 목적은 영혼 안에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이다.

사람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목적이 실현되도록 사람에게서 창조주의 형상을 회복시키는 것, 다시 말해 지, 덕, 체의 발달을 증진시켜 사람으로 하여금 창조되던 당시의 완전한 상태로 돌아가게 하는 것이 구속 사업이다. 이것은 또 교육의 목적인 동시에 인생의 위대한 목적이기도 하다.

자녀들로 제일 먼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공부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자녀들도 부모와 같이 거듭나는 경험을 하게 해야 한다. 성경을 공부하는 것만큼 자녀들의 정신을 고양시키고 강하게 하는 독서는 없다. 고상하게 하는 성경의 원칙은 그들의 성품을 정직함과 진실함과 자제와 고결함으로 특징지어지게 할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위대한 교과서이며 그의 위대한 교육자이다. 모든 참된 과학의 기초는 성경에 있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자녀들을 하나님께 봉사하며 세상에서 훌륭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 교육시키려면 성경을 우리의 교과서로 삼아야 한다. 학교나 가정에서의 교육에서 가장 위대한 교사인 성경이 첫 번째 자리를 차지하도록 하자. 만일 그렇게 한다면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며, 그분께서 그대의 자녀들의 거듭남을 위해서 역사하실 것이다.

가장 고상하고 참된 교육이란 타락한 인간이 어떻게 신성과 연합하여 죄를 이기고, 창조 받던 당시의 완전한 하나님의 형상으로 회복되어 구원을 얻는지에 대한 능력을 가르치고 얻게 하는 것이며, 예수께서 인성을 쓰시고 이 땅에 오셔서 어떻게 자신을 부인하고 희생하며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셨는지를 배워 우리도 그와 같은 생애를 살도록 만드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주위에서 높은 학위와 지식을 갖춘, 그리고 훌륭한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러나 똑똑하고 지식이 많고 세상에서 유명한 사람들을 만나 보면, 많은 경우에 그들이 가진 지식으로 세상에 공헌하려는 생각이나 마땅히 인류와 세상에 대해서 가져야 하는 사랑과 사명과 책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고, 다만 자기 자신을 어떻게 하면 더 나타낼 수 있으며, 더 즐겁게 할 수 있고, 더 가질 수 있고, 더 편안히 지낼 수 있는지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는 이기적인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오늘날 세상의 교육은 사람을, 흐뭇한 인류애를 가진, 사회와 인류를 위해 봉사하기를 즐기는 진정한 인격체로 만들기 보다는 이기적이고, 교만하고, 우월감에 찬 편협적인 인간을 만들어 내기가 훨씬 쉽다. 왜 그런가? 그것은 교육의 진정한 본질이 바뀌었을 뿐 아니라 전인적이어야 하는 교육이 지식 위주로 흐르는 편파적인 것으로 변질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태초에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진정한 교육은 그런 것이 아니었다.

요즈음처럼 경쟁하는 마음을 길러주는 교육은 하나님의 성품을 우리의 자녀들에게 이루어 주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남들을 위하여 희생하고 오히려 이웃을 도와 주며 남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품성, 바로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품성을 우리의 자녀들로 가지게 해야 한다.

우리의 자녀들은 하나님을 위한 증인으로 키워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증인들, 즉 하나님의 비밀(우리 속에 거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 온전히 마음 속에 이루어진 자녀들, 온전히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하나님의 계명이 그 마음 속에 기록된 경험을 하는 청년들, 그들의 성품으로 하나님의 성품을 온전히 드러내는 사람들, 성령과 예수의 능력으로 죄를 온전히 회개하고 버리며 극복하는 경험을 하는 사람들, 바벨론의 습관과 행습과 사상과 교육에서 완전히 벗어난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계시며, 마지막에 이 목적을 이룰 사람들, 즉 바벨론을 향하여 그곳에서 나오라고 큰 외침을 할 사람들과 청년들을 필요로 하신다. 그런데 이 사명을 이룰 수 있는 자격을 갖추게 하는 것이 참 교육이다. 많은 경우에 세상교육의 방침인 인본주의는 홀로 서는 법을 배우지 못하게 만들고, 독창적이거나 자신이 주위 환경이나 주위의 사람들과 다른 것을 스스로 허용할 수 없도록 만들며, 그룹 사이에서 일률적으로 같이 생각하게 만든다. 그러므로 마지막에 짐승의 표가 강요될 때, 세상과 다르게 살며, 세상과 다르게 서서 하나님을 증거하도록 부르심을 받으려면 세상적인 교육에서 탈피해야 한다. 즉, 세상과 다른 것, 또한 독특한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증인이 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사람이 되도록 교육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재림이 가까워 왔다. 준비할 시간은 짧다. 이루어져야 할 모든 것은 신속히 이루어져야 한다. 천사들은 네 바람을 붙들고 있으며, 사단은 진리 안에 완전히 서지 못한 각 사람을 이용하고 있다. 주님의 재림을 위해 설 사람들은 진리를 사랑하며 진리로 성화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가 우리의 모든 것이 되어야 한다. 진리보다 세상을 앞세우는 자들은 세상으로 인하여 망할 것이고, 진리보다 자신의 감정을 앞세우는 자들은 그 감정으로 인하여 망하게 될 것이며, 진리보다 자신의 명예를 앞세우는 자들은 명예로 인하여 망하게 될 것이다.

가까운 재림을 위해 이제는 그만 깊은 잠에서 깨어 진리를 경험하는 일이 필요하다. 재림이 가까운 이 때,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끝까지 하나님의 진리와 뜻과 계명에 순종하며, 하나님의 사업을 능력으로 끝마칠 사람들, 곧 우주와 세계에 하나님을 대표할 마지막 증인들을 찾고 계신다. 우리 모두 구원 얻는 무리에 참여하도록 깨어 기도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