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섭리의 시간 속에서

 고통과 시련의 시간을 지나는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많이 읽으며 용기를 얻는 욥기서 마지막 부분에는 이런 구절이 있다.

 욥이 여호와께 대답하여 가로되 주께서는 무소불능하시오며 무슨 경영이든지 못 이루실 것이 없는줄 아오니... 무지한 말로 이치를 가리우는 자가 누구니이까? 내가 스스로 깨달을 수 없는 일을 말하였고 스스로 알 수 없고 헤아리기 어려운 일을 말하였나이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러므로 내가 스스로 한하고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하나이다(욥 42:1~6).

 이 말은 자신에게 왜 그렇게 모진 고통과 어려운 시련들이 있어야 했는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던 욥이, 모든 고난을 견디고 그의 인생에 일어나는 모든 슬프고 쓰라린 경험들을 통과한 후, 겸허하게 하나님 앞에 엎드려 고백한 간증이다.

고난이 주는 것
 
고난은 우리의 눈을 뜨게 한다. 인간의 역사상 인간이 겪을 수 있는 고난 중에서 가장 큰 고통과 재난을 당했던 욥은 그의 생애에 휘몰아친 갖가지 고난과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고통을 다 겪은 후에야 비로소 귀로만 알던 하나님을 진정으로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게 되었다. 자신을 몰아부치는 친구들에게 자신의 무죄를 변명도 해보았고, 하나님의 형벌을 받을 죄를 지었는지 스스로 철저히 살피며 괴로워 하던 욥은, 그러나 자신의 삶에 닥친 재난과 고통들에 대해 어떻게 이해할 길이 없어 고뇌하다, 마지막에 하나님 앞에 절규하며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진다. 왜 입니까? 하나님!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나야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무지한 말로 이치를 어둡게 하는 자가 누구냐? 너는 대장부처럼 허리를 묶고 내가 네게 묻는 것을 대답할지니라라고 하시며, 욥의 질문에 대한 직접적인 대답 대신 인간이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창조의 신비와 자연의 이치들에 대해서 말씀하시며,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에 인간이 불평없이 순응하며 낮추어야 하는 미덕을 깨우쳐 주신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설명을 듣던 욥은, 어떻게 그렇게 큰 우주가, 그리고 광대한 우주에 있는 수많은 별들이 하나의 부딪힘도 없이 아직도 변함없이 운행되고 있는지, 오리온 성좌의 별이 어떻게 세개가 나란히 붙어 반짝이고 있는지, 왜 염소 새끼가 5개월 만에 어미의 뱃속에서 나오는지, 어떻게 작은 새가 그 작은 날개로 허공을 치며 날아 올라 하나님께서 준비한 양식을 찾아 먹는지, 심지어 바닷가의 작은 게가 어떻게 뒷걸음질을 치면서도 길을 잃지 않고 자기의 집을 찾아 돌아갈 수 있는지, 자신이 지극히 작은 일 하나의 이치조차 알지 못하는 형편 없이 작고 보잘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자신의 문제와 자신의 고통만이 크게 보이던 욥은, 자신은 다만 하나님께서 운행하시는 넓은 우주의 한 흐름 속에 던져진 작은 존재라는 것을 자각하고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고백을 한다. 무지한 말로 하나님의 이치를 흐리게 하였다고... 그리고 모든 고난을 통과하여 겸허해진 욥은 하나님을 바로 보며 이렇게 외친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만 들었었는데, 이제는 비로소 눈으로 주님을 뵈옵나이다!라고... 고난은 사람을 겸손하고 지혜롭게 한다. 시인은 시편에서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라고 하지 않았던가!

체험하기 위해 주어진 삶
 
우리의 삶은 묘하게 슬픔의 날줄과 기쁨의 씨줄로 짜여 있다. 고통과 환희가 거미줄처럼 얽혀있다. 우리는 이 땅에 태어나 한번쯤 살아 볼 수 있는 것에 대해 감사해야 한다. 그것이 비록 고통에 차 있는 삶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이 땅에 태어나 모든 것들을 체험하게 하셨다. 고통과 슬픔을, 때로는 좌절과 낙망을, 외로움과 절망을, 기쁨과 환희를... 그런 체험 없이 인간은 하나님을 발견하기가 어렵고, 또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만큼 성숙하게 자라날 수 없다. 그런 체험들은 성품의 성숙함을 가지고 오는데, 성품의 성숙을 이루지 못하면 우리는 한번도 타락한 적이 없는 아주 원숙하고 아름다운 인격을 가진 우주의 거민들과 천사들과 온전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함께 이마를 맞대고 하늘에서 살 수 없다.

 고통과 시련은 사단과 죄와 타락의 결과로 오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런 것들을 우리를 위해 현명하게 이용하신다. 어떤 상황과 환경에 부딪혀 보지 않으면 결코 배울 수 없는 교훈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수많은 섭리와 사람과 사건들이 줄을 지어 우리에게 찾아오나 보다! 같지 않은 갖가지 어려운 시험과 시련들에 접하면서야 비로소 우리는 진정한 자신을 보게 되기 때문에...

 왜 하나님을 믿는지 우리의 믿음의 동기를 무섭게 휘집어 놓는, 그래서 우리로 다시는 흔들리지 않도록 만드는 격렬한 시련들, 우리의 생의 이유를 활깍 뒤집어 놓고도 남을 만큼 고통스럽게 다가오는 절망과 좌절들, 닥치는 상황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되도록 우리를 겸허하게 낮추는 비애와 슬픔들, 우리로 진리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고 사상의 틀을 다시 놓도록 흔드는 수많은 깨달음과 갈등들... 그렇게 우리에게 다가오는 자비로운 하나님의 섭리의 사건들, 사람들, 상황들...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사랑
 
우리의 삶을 지나는 매 단계에서 경험하는 어떤 사건들 때문에 우리 속에 감추어져 있던, 자신조차 알 수 없었던 어떤 부분에 대해서 알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서 알 기회가 없었던 사람은, 그리고 한번도 자신에 대해 솔직하고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은 사람은, 그리고 자신을 진정으로 알지 못하는 사람은, 아무리 세상에서 많은 부를 가졌다고 해도 가장 가난하고 형편없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진정한 자신의 모습을 드러나게 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사건이 올 때, 우리는 아주 기뻐하며 그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 이유는 지금 모든 것이 드러나야 바꿀 수 있고, 변화함을 받을 수 있으며, 다시 태어남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기 때문이다.

 이것이 성경에 압축되어 나타나 있는 심판의 개념이다. 사랑의 하나님의 심판은 너무나 자비로우시고 지혜로우시다. 하나님은 급하지 않으시고, 몰아부치지 않으시고, 강요하지 않으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으로 미리 미리 드러나야 할 것들을 드러내시며, 그리하여 우리로 깨달아 고침을 받게 하신다. 시간을 두시고 찬찬히 그리고 자세한 점검을 거쳐, 우리의 자유의지에 따라 마음대로 택하게 하시고, 그것이 어떤 맛이었는지를 경험하게 하신 후, 그것을 영원히 택할지 택하지 않을지 결정하게 하신다. 인간의 눈에 그것은 아주 기이하고 때로는 상식에 벗어난 일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지혜로우신 하나님의 섭리의 눈에 의해 어떤 것도 헛것으로 그냥 주어지거나 쓸데없는 시간낭비로 주어지지 않는다. 비록 그 과정이 우리 인간이 이해하기에 어려운 난해한 상황으로 보일지라도... 일어나는 어떤 일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는 섭리의 과정에 들어가 있는 사람이나 어떤 것을 서둘러 판단하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섭리는 아직 그 사람에게서 끝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혹을 받은 영혼이 끝내 모든 시험의 과정을 견디고, 미숙한 자아가 다시는 살아나지 않고, 시험을 당할 때마다 받던 상처와 모욕감과 슬픔을 전혀 느끼지 않게 될 때, 수술하는 칼은 그 영혼이 참으로 자아에 대해서는 죽고 하나님을 향해서는 살았다는 것을 드러낼 것이다.

성숙해진 욥처럼
 
우리는 겸손하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감사함으로 살아야 한다. 우리는 달리 우리의 삶을 바꿀 능력이 없다. 만일 선택이 잘못된 것을 깨닫고 만회할 수 있다면 다행이지만 어쩔 수 없이 결과를 거둘 수 밖에 없게 되었다면, 이왕 겪고 견디어야 할 것을 기쁨과 감사함으로 받아들이면 우리의 삶은 훨씬 달콤하고 견디기 쉬운 것이 될 것이며, 불평하며 인생길을 걸어감으로 하나님 아버지를 슬프게 하고 염려하시게 하는 것보다 훨씬 낫게 될 것이다.

 우리는 고통과 시련으로 겸손해진다. 하나님의 섭리에 의한 체험으로 성숙해진다. 마치 모든 바람과 폭풍을 견디고 이제는 무거워진 고개를 살짝 떨구고 있는 성숙한 벼이삭처럼... 격렬한 시험들을 통과한 후에 비로소 눈을 떠 하나님을 볼 수 있었던, 모든 것을 달관한 욥처럼...

 우주의 섭리의 수레바퀴 속에 겸허하게 순응하는 사람은 아름다운 사람이다. 모든 시험의 과정들을 견디고 정금같이 나온 사람들이야말로 우주의 성숙한 인격과 성품을 가진 영적인 존재들과 천사와 성도들과 영원히 살 준비를 갖춘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의 마음 속에 깃든 평화는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영구적인 것이다!

권두언

강병국 목사

 지난 뉴 올리언즈 지역을 강타했던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생각케 하는 재난이었습니다.

 이 세상은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간이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적해만 가고 있습니다. 각박해 가는 인심들을 보면서 참으로 걱정이 많이 됩니다. 이제는 정말로 영원한 나라로 가기 위하여 짐 보따리를 싸야 할 때가 된 것 같습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국에게 너무나도 큰 상처를 주었습니다. 크나큰 손실이 앞으로 우리를 계속 괴롭힐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는 그리스도인들로서 또 다른 각도에서 이 문제를 보아야 합니다. 이러한 천재 지변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 것이며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무엇을 보여주려 하시는 것인지를 깨달아 알아 차려야 합니다. 앞으로 이러한 일은 점점 더 심하게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이 시점은 우리의 삶의 좌표를 살펴보고 재 조정해야 할 때입니다. 잘못된 부분들을 회개하여 고치고 전적으로 말씀에 맞는 생활로 고쳐 나가는 절실한 노력들이 생겨야 할 때입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하면 우리들의 영적인 감각들이 무뎌져서 하나님의 음성을 더 이상 들을 수 없는 지경까지 나가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 하나의 징조들을 계속 보여 주시면서 호소하시는 성령의 음성을 거절하게 되면 다음 번에는 점점 더 큰 자극이 필요하도록 우리의 양심과 영적인 감각이 둔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번 호는 과거에 이 세상이 물로 한번 멸망 되었었던 노아 홍수 시대에 대한 기사들로 꾸며 보았습니다. 이번 허리케인의 모습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가 바로 옛날 노아 시대와 너무나 흡사 하다는 사실을 실감케 해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번 우리와 우리 가정을 돌아 보아야 합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이 진짜 신앙인지, 아니면 대다수가 걷고 있는 대로인 멸망의 길로 쉽게 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살펴 보아야 하겠습니다. 이번 호를 정성스럽게 읽어 주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큰 은혜가 될 것입니다.

경쟁적인 스포츠와 우리의 품성

 한 세기가 바뀌기 전에 미국인들은 경쟁적인 스포츠에 관하여 스포츠는 품성을 도야해 준다는 강력한 사고방식을 받아들였다. 이런 생각은 미국에서 여러 세대를 통하여 영속될 것처럼 보였으며, 실제로 아무런 도전을 받지 않았다.

 사실상 이런 윤리는 매우 깊이 뿌리 박힌 것이어서, 그것에 대하여 의문을 가진다는 것은 미국인이 아닌 것처럼 보이게 되었다. 흥미롭게도 인류학자인 미러클(Andrew Miracle) 박사는 스포츠가 품성을 도야해 준다는 것이 사실인지 아닌지를 입증하기 위하여 연구문헌들을 살펴보게 되었다. 그는 사회과학자였으며, 자신이 고등학교에서 경쟁적인 스포츠를 했을 뿐 아니라, 그의 아버지는 고등학교 운동 코치였다.

 미러클 박사는 자기를 성장시켜준 것은 스포츠라고 믿고, 그것을 확인하고 싶었다. 더욱이 그 해답은 개인적이고 학구적인 관심사였을 뿐 아니라, 그의 탐구 결과는 수많은 사회적인 결정에 영향을 주었다. 작은 마을이 새로운 고등학교에 축구장을 만들어야 할 것인가? 우리 아들이나 딸이 경쟁적인 스포츠를 하도록 지원해야 하는가? 재정이 부족한 지방학교 이사회가 체육예산을 삭감할 것인가? 우리가 속한 사회에서 이런 질문들의 목록은 계속 이어질 수 있다.

 미러클 박사가 출간된 연구 문헌들을 재검토했을 때, 놀랍게도 그 결과는 그가 기대했던 것과 달랐다. 이런 상황에서 그는 두명의 다른 과학자와 함께 이 문제에 대하여 직접 연구하고 실험하게 되었다. (Miracle AW Jr. Do High school sports build character?A quasi-experiment on a national sample, Social Science Journal 1990)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실험과 연구


 
그들은 먼저 미국의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600명을 대표적인 표본으로 설정했다. 그리고 그들이 대표팀 운동 선수단에 입단한 결과를 측정하기 위하여 학생들의 인성을 분석했다. 미러클 박사 팀은 품성의 특질들이 스포츠에 의해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을 발견했으나 그 영향은 절대적인 크기에서 조금이었으므로, 고등학교 스포츠는 그 참가자의 사회적 발달에 별 유익이나 해를 주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나 그들의 연구결과를 주의 깊게 읽어보면 우려되는 것이 있다. 비록 품성에 대한 영향은 적을지 몰라도, 그들은 잘못된 길에 들어서 있었다.

* 경쟁적인 스포츠는 품성 도야에 유익한가?
 고등학교 3학년 남학생 1,600명을 대상으로 대표팀 운동선수로 입단함으로 받은 영향에 대한 분석

1. 공격성 증가 2. 흥분하는 마음증가
3. 정직성 감소 4. 자제심 감소
5. 독립심 감소 6. 자존심 약간 증가

 위의 사실을 보면, 공격성과 흥분성은 감소하는 대신 오히려 증가하였고, 정직성과 자제력은 증가하는 대신 감소하였다. 긍정적이라고 판단되는 유일한 변화는 자존심 증가였다. 비록 자존심이 표면적으로는 바람직한 것처럼 보일지 몰라도, 이 요소가 바람직한 것인지 아닌지는 사람이 왜 자기를 존경하는 가에 달려있다고 본다. 다른 사람들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에 기초하여 커진 자존심은 자만심과 이기주의 그리고 공격성을 기를 수도 있다는 심각한 우려도 있다.

 이런 염려는 스티븐슨(Christopher L. Stevenson)이 또 다시 제기했는데, 그는 스포츠와 개성에 관한 조사 연구에 대하여 최고 수준의 비평을 했다. 수많은 연구를 통하여 그는 운동선수들이 일반적으로 우월감에 대한 심리학적 요인에서 더 높은 점수를 얻었음을 알게 되었다(Stevenson CL. Socialization effects of participation in sports; a critical review. Research Quarterly for Exercise and Spirit 46).

 대체적으로 그 조사 연구는 주어진 다른 요인들이나 여건들과 함께 경쟁적인 운동경기가 폭력을 예방하기보다는 오히려 실제적으로 그것을 조장하는 요인이 될 수도 있을 것이라는, 미묘하게 증가하는 추세의 의구심을 제기한다.

뉴질랜드 연구조사
 
15세에서 18세의 소년들과 소녀들 1,000명을 대상으로 뉴질랜드에서 한 조사 연구는 견쟁적인 스포츠에 열중하는 청소년들의 범죄가 더 많음을 알게 되었다. (Begg DJ, Langley JD, Sports and delinquency, Br J Sports Med 1996. Dec.)

 이 연구를 보면, 15세 때 스포츠를 매우 열심히 하는 소년들은, 18세가 되었을 때 동료들보다 비행을 저지를 확률이 2배나 높으며, 15세에 운동을 열심히 하는 소녀들은 18세가 되면 그들의 동료들에 비해 비행을 저지를 확률이 거의 3배나 되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적당한 수준에서 운동을 하는 소녀들도 비행에 빠질 확률은 2배나 높았다. 그런데 그들의 비행 가운데는 차량절도, 강도, 가게 물건 훔치기, 무기들고 싸우는 일 등이 포함되었다.

 그렇게 공격적인 행동들을 일으키는 경쟁적인 스포츠들은 럭비, 크리켓, 농구, 축구, 아이스 하키 등등이었다.

스포츠가 어린이들에게 미치는 영향
 
위에서 우리는 고등학교 대표팀이나 기타 팀의 운동선수로 참여하는 것이 품성에 끼치는 부정적인 영향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그러면 어린 자녀들이 운동에 참여하면 어떤가? 미러클과 리스는 심지어 더 어린 때에도 과격한 스포츠에 참여할 때 품성을 저하시킬 수 있다는 염려를 일으키는 몇가지 캐나다의 연구 조사들을 요약하여 발표했다. 조사자들은 어린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운동을 오래하면 할 수록 더욱 부정적인 품성의 특질들을 계발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캐나다 연구조사
 
* 아이스하키를 하면 청소년의 품성이 손상된다

 캐나다의 소년들이 청소년 아이스하키를 많이 하면 할 수록 그들은;
1. 속임수가 중요하다고 느낌.
2. 난폭한 행동은 합법적이요, 바랄 만한 것이라고 생각함.
3. TV에서 프로 선수들이 사용하는 불법적인 전술을 모방하기 쉬움.

 아마 사람들은 아이스하키가 더욱 고상하게 하는 스포츠는 아니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렇다면 휴가 기간에 모여서 하는 선의의 축구 경기처럼 좀 더 얌전한 운동은 어떤가? 바로 그런 의문에 대한 대답이 10~11세 어린이 54명을 대상으로 한 경쟁적인 스포츠의 영향력에 대한 조사 연구에서 나왔다. 다음의 실험 결과를 보자.

월드 시리즈 축구 경기에 출전한 선수 몇명이 실험 대상자로 선정되었다. 조사 결과는 다음과 같다.
 
* 어린이들에게 축구 월드 시리즈가 미치는 영향

1. 대개 말다툼이 발생했으며, 심지어 주먹 싸움까지 일어났다.
2. 대개는 패배나 부당 판정을 인식했을 때, 울부짖는 일이 여러번 발생했다.
3. 다른 아이들과의 경쟁심이 증가했다.
4. 이타심이 상당히 감소 했다.

 그 조사 결과는 대표 선수단이나 아이스하키 선수들에 대한 연구 조사와 비슷하다. 경쟁적인 스포츠 환경 가운데서는 잠재적으로 품성의 부정적인 특질들이 육성될 소지가 있다. 그러나 이런 연구 조사의 증거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요즈음 청소년 스포츠 전문가들의 여론은 경쟁적인 스포츠가 일반적으로 그 참가자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있음을 미러클과 리스는 지적한다.

 그러므로 나는 충분히 연구하여 다음과 같은 결론을 얻었는데, 즉 초등학교 어린이들에게나, 고등학교 3학년생들에게 경쟁적인 스포츠는 품성을 도야해 주지 않으며, 그와는 반대로 품성을 저하시킨다는 것이다.
학교에 다니는 자녀들이 경쟁적인 스포츠에 참여하는 일이 크게 증가하는 것은 왜 우리 사회에 젊은이들 사이에서 폭력이 지속적으로 증가하는가에 대한 또 다른 이유가 될 수 있다.

 그러면 대학 수준에서 경쟁을 벌이는, 좀 더 나이가 든 운동선수들의 경우는 어떤가? 스포츠가 그들이 품성을 도야해 줄까? 최근에 어떤 연구자들은 NCAA 대학 캠퍼스에서 있었던 100건 이상의 강간, 강간 미수, 구리고 성희롱 사건들을 살펴보았다. (Todd Crosset. - University of Massachusetts and coauthors at Northeastern University ­ quoted in Warner R. Analysis; Footballs violence can spill into private lives, 1994)

 조사를 실시한 학교 10곳의 경우, 폭력 사건의 19%는 남자 운동선수들이 저질렀는데, 운동선수는 전체 남학생의 3.3%에 불과했다. 이것은 운동선수들이 폭력적인 행동을 할 위험성이 5배 이상 높다는 사실을 시사한다. 이 조사 연구를 시행한 토드 크로셋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폭력성을 발휘하도록 훈련을 받을 때, 폭력은 개인적인 생애에서 흘러 넘칠 수 있다.

운동인다운 정신, 그것은 사실인가 허구인가?
 
어떤 이들은 운동인(sportsman)을 다음과 같이 정의한다. 불평 없이 손실이나 패배를 감수하고, 자못 우쭐대지 않고 승리를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 그리고 공정함과 너그러움과 예의를 가지고 상대방을 대하는 사람이다. 많은 사람들은 경쟁적인 스포츠에서 성취도가 높으면 높을수록 성품은 향상될 것이라고 추측을 한다.

 크리스토퍼 스티븐슨은 대학 운동선수들에 대한 서로 다른 여섯가지 연구 조사들을 재검토하여 그와 반대되는 사실을 발견했다. (Stevenson, CL. College Athletic and Character; Decline and Fall of socialization Research. In: Sports and Higher education. Human Kinetics, 1986 p. 254~255)

존 실바의 학술 조사도 비슷한 우려를 제기했다. 그들의 연구 결과를 보자.

* 스포츠와 스포츠맨십
 
1. 운동선수들은 일반인들보다 오히려 더 스포츠맨답지 않은 경향이 있다.
 2.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마이너리그 선수들보다 더 스포츠맨십답지 않다.
 3. 주전선수들은 후보선수들보다 더 스포츠맨답지 않다.
 4. 운동경력이 오래되고 경쟁 수준이 높은 선수일수록 규칙 위반과 남에게 상해를 입히는 행위들을 합법적이라고 믿는 경향이 높다.

 평균적으로 최고 기량의 운동선수일수록 운동인다운 정신을 적게 가지는 경향이 있다. 물론 예외도 있기는 하다. 더 큰 우려는, 더 나은 운동선수 (경쟁적인 경기에서 더 높은 수준에 도달하는 정도에 비추어 보아서) 일수록 규칙을 어기거나 경쟁 선수에게 상해를 입히는 일을 정당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더 크다는 것이다. 이것은 분명히 폭력적인 경향을 경기장 밖에서도 표출하는 문제를 일으킨다.

 릭 와너는 경쟁적인 스포츠에 대한 통찰력 있는 보고서에서 바로 그 반대 현상을 관찰했다. 그는, 대학의 운동선수들이나 프로 선수들이 여자를 때리는 일, 술집이나 식당에서 싸우거나 어떤 다툼을 하는 일 없이 그냥 지나가는 한 주일은 거의 없다고 발표했다. 와너는 나아가 여자들에게 신체적인 폭력을 행한 혐의로 고발당한 아주 유명한 일부 프로 운동선수들의 신분을 밝혔다. 그들 중 어떤 사람들은 유죄판결을 받았다.

* 운동선수와 폭력성 (범죄 유형의 기록)

마이크 타이슨 : 권투 선수 : 강간
대릴 스뉴베리 : 야구 선수 : 여러번의 가정폭력
윌 코데로 : 야구 선수 : 아내 구타
마크 피츠패트릭 : 하키 선수 : 임신한 아내를 발로 참
댄 윌킨슨 : 미식축구 : 임신한 여자친구의 배를 발로 참
워렌 문 : 미식축구 : 아내를 때리고 목을 조름
조니 처치 : 미식축구 : 아내 폭행
SMU팀 선수 3명 : 미식축구 : 6세 소녀 집단 성폭행
라세트 젠킨스 : 미식축구 : 강간
월터 스미스 : 미식축구 : 자신의 여자친구 성폭행
아이다호팀 선수 3명 : 미식축구 : 강간
나일로 실반 : 17세 소녀 성폭행 및 강간
O.J 심슨 : 자신의 전처와 전처 남자 친구 살해 혐의

 커네티컷 대학의 여성 센터의 캐터린 홀거슨은 특히 미식축구 선수들의 여성에 대한 잦은 폭력에 대하여 그 숨겨진 문제점을 이렇게 지적했다.
첫째, 축구 선수들은 그들이 시합 도중에 난폭해지는 것에 대하여 갈채를 받는다.
둘째, 여성에 대한 존경은 그들의 남성적인 문화의 일부분이 아니다.

 지금까지의 여러 실험과 연구 조사들을 통하여 스포츠가 품성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알아 보았다. 어린이 축구 월드 시리즈가 2주일 동안 상당한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면, 한 사람이 경쟁적인 스포츠를 평생의 과업으로 삼을 경우 어떤 영향을 받겠는가? 이것은 하늘을 위한 품성을 준비하는 우리 그리스도인에게 심각한 경종이 아닐 수 없다. 이에 대한 더 자세한 기사는 다음 호 2부에서 다루기로 한다.

1부 -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

 아직도 미국은 지난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영향으로 후유증을 앓고 있다. 인명 피해와 전염병의 문제, 그리고 문화적인 도시 유산의 완전한 파괴, 오일 쇼크와 물가의 상승 등 많은 이유들에서 카트리나는 아직도 우리들에게 여파를 미치고 있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피해를 준 천연재해로 손 꼽히면서 이 허리케인은 오래도록 우리 기억 속에 남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인들로서, 조금 더 나아가, 성경의 예언의 말씀을 연구하고 살피는 사람들로서 좀 더 영적인 각도에서 이 문제를 재 조명하는 일이 필요하다.

노아의 때
 
마 24장 37~39절에서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해 주시었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 예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때에는 그 상황이 노아의 때와 흡사 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할 것이라는 말인가? 사람들의 마음의 상태에 있어서 그러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하나님께 대한 인간의 태도와 곧 임하는 심판에 대한 사람들의 사고 방식과 특히, 여러가지 경고의 말씀들에 대한 인류의 반응이 노아 홍수 시대의 사람들과 아주 흡사할 것이라는 말씀이다.

 위의 말씀의 문맥에서 우리의 시선을 끄는 한 가지 대목이 있는데, 그것은 그들이 홍수가 임하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하는 생활 방식에 대한 언급이다. 그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깨닫지 못했다는 부분의 말씀이 바로 그것이다. 우리가 알다시피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일들은 죄도 아니요, 지나친 행동들도 아닌 지극히 정상적인 삶의 필수적인 과정들이다. 누가 먹고 마시지 않으며 살 수 있는 이들이 있겠는가? 누가 성년이 되어서 결혼하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있겠는가? 결혼하지 않고서 어떻게 인류의 번성과 증가가 가능하단 말인가? 이러한 것들은 우리의 생명의 유지에 필수 불가결한 일들이다. 그런데 왜 예수님께서 그러한 일들을 열거하시면서, 마치 그것들이 노아 시대의 사람들이 홍수가 오는 것을 깨닫지 못하게 된 이유들인 것처럼 언급하신 것일까?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일 자체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문제는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 일에만 정신을 팔고 살았다는데 문제가 있는 것이다. 무엇이 더 중요한가 하는 우선 순위의 문제이다. 또한 왜 먹고 마시고 결혼하는가 라는 생애의 목적이 뒤바뀌어 있었다는 지적이다. 누가복음 21장 34~36절에서 예수님께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여 두신 것을 발견하게 된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 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위의 말씀에서 방탕함과 술 취함은 먹고 마시고 라는 말의 다른 표현이다. 방탕함 이란 영어로 Surfeiting 인데 그 말의 뜻은 탐식이다. 술 취함 이란 물론 마시는 것의 일종이다. 또한 생활의 염려 속에 시집가고 장가가는 일들도 포함된다. 다시 말해서, 노아 홍수 시대의 사람들은 부절제한 생활을 살고 있었다는 말씀이다. 결혼에 대한 지나친 집착이나 성도덕의 타락도 포함 될 수가 있겠다. 하나님을 떠나서 이성의 사랑과 성적인 희열에서 인생의 만족을 찾고자 하는 육욕적인 생활 방식을 말하는 것이다. 한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고 이혼을 통하여 다른 이성들을 찾아 나서는 생활 방식들 말이다. 물론 이혼 당하여 슬퍼하는 억울한 자들도 많지마는 얼마나 많은 경우에 간통과 간음들로 신성한 결혼제도가 망쳐져 왔는가! 더 나아가서는 뒤틀어진 성적 욕구로 인하여 동성 연애들이 생겨 나고 이제는 그들도 떳떳하게 거리를 활보하며 자기들의 권리를 주장하는 상황이 되는가 싶더니만, 이제는 한 수 더 나아가서 정식으로 결혼을 하고 아이들을 양자로 들여 키우며 정식 가정으로 결속시켜 나가는 사회가 되어 버리고 있다.

 사도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였다.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 의인이 저희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을 상하니라) (베드로 후서 2:5-8). 베드로는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의 원인 가운데 하나가 그들의 성적인 음란한 행실이라고 기록하였다. 그러한 일들은 의인들의 마음에 고통을 주었다고 성경은 말씀하였다. 그리고 노아 시대의 홍수와 소돔과 고모라 성의 심판은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 즉 우리 세대들에게 본을 삼기 위하여서 내려졌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옛날 노아 시대의 심판과 소돔 고모라의 결과를 항상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는 말씀이다.

그 들은 마치 하나님의 심판이 없는 것처럼 살았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통하여 120년 동안이나 계속적으로 경고하시고 호소하신 말씀을 거절하였다. 나중에는 그러한 말씀들을 듣고 조롱 할 정도로 마음들이 둔하여 있었다. 그들의 부절제한 생활들과 음란한 생활, 또한 어떻게 하면 더 잘 먹을까 더 잘 마실까 하는 생활의 염려들에 집중된 생활 방식은 그들의 두뇌의 기능을 둔하게 만들었다. 생활의 염려는 지성적인 면에서라기보다는 하나님께 대하여 이해하는 영적인 감각을 둔하게 만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믿고 안다고 하면서도 생활의 염려에 집중하면 성령의 음성을 민감하게 듣지 못하는 상태에 빠지게 된다. 하나님의 심판이 곧 임할 것이라는 감각이 더 이상 생기지 않을 정도로 영적인 눈이 어두어지게 된다. 그러므로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부하게 되려고 애쓰지 말라고 하셨다. 돈을 사랑하는 것은 일만 악의 뿌리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한 사람이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할 것이니, 혹 이를 미워하며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며 저를 경히 여김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공중의 새를 보라. 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창고에 모아 들이지도 아니하되 너희 천부께서 기르시나니 너희는 이것들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나 더할 수 있느냐? 또 너희가 어찌 의복을 위하여 염려하느냐 들의 백합화가 어떻게 자라는가 생각하여 보라. 수고도 아니하고 길쌈도 아니하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솔로몬의 모든 영광으로도 입은 것이 이 꽃 하나만 같지 못하였느니라.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지우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보냐 믿음이 적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천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마태복음 6:24~34).

 노아 시대에도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믿고 있었던 사람들이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언젠가 더 확실한 징조가 보이면 노아가 지은 방주에 들어 갈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더 확실하고 분명한 징조들을 기다리고 있는 동안 그들의 감각은 점점 더 무뎌져 갔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의 눈들을 의식하여 일반적인 대중의 눈에 좀 지나친 행동은 삼가게 되면서 하나님의 말씀 보다는 대 다수의 흐름에 따라가는 타성적인 태도가 생기게 된 것이었다.

 드디어 굵은 물방울들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일생 동안 한번도 비를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었다. 얼마나 놀랬을까? 그들의 충격은 이루 말 할 수 없는 것이었을 것이다. 그때에 모두 다 회개 하였을 것이다. 아니 후회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때는 너무 늦었다. 방주의 문은 천사의 손에 의하여 일주일 전에 영원히 닫혀져 있었다. 그들이 모두 달려와 문을 열어 달라고 소리를 치며 두드렸을 때에, 그 육중한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들은 자기들의 사랑하는 식구들과 어린아이들이 허우적 거리며 물 속에 빠져 죽어 가는 비참한 모습들을 속절없이 바라다보고만 있을 수 밖에 없었다. 노아 시대의 사람들은 다 괴상한 악마들이 아니었다. 여전히 부모의 사랑과 연민을 가지고 있던 자들이었다. 문제는 그들은 그들의 마음이 둔하여 져서 하나님의 경고의 말씀을 절실하게 받아드리지 않을 정도로 게으르고 부주의한 생활을 한 사람들이었을 뿐이다.

 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방주에 들여 주시지 않으셨을까? 그들은 두려움에서 잠시 회개 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들의 마음이나 성품이 변한 것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 만약 그들을 방주에 들여 보내 주셨다면, 홍수가 끝나고 그들이 다시 방주에서 나온 다음에는 옛날 살던 그 방식 그대로 다시 되돌아 갔을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시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 않겠는가!

뉴 올린즈 허리케인을 보면서
 
루이지아나 주의 New Orleans 도시는 해안 가의 살기 좋기로 이름 난 관광 도시였다. 그리고 그 옆의 Gulf Port 와 Biloxi 도시들도 많은 사람들이 몰려드는 좋은 경치의 도시들이었다. 그러했기에 그 도시들은 도덕적으로 문란하고 타락한 곳들이었다. 도박이 법적으로 허용되었는가 하면 창녀들의 활동과 신접한 강신술의 활동들도 융성한 도시들이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러한 타락한 대 도시에서 피하여 살아야 한다. 소돔과 고모라와 노아 홍수의 모본이 성경에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가지 놀라운 사실이 있다. New Orleans 는 해발이 바다의 수면보다도 낮은 도시였다. 마치 사발 그릇처럼 움푹 들어 간 곳에 건설한 도시였다. 좋은 경관을 찾는 것도 좋지만, 왜 그러한 장소에 도시를 건설했는지 조차 의심스럽다. 그리고 그 도시는 외곽에 쌓은 Levee 즉, 콘크리트로 쌓은 외곽 벽들에 의존하여 살고 있었다. 그 것도 몇 년 전부터, 저 방벽들이 큰 허리케인에는 견딜 수 없는 것들이라는 경고가 계속 주어졌었다. 그리고 2004년도 7월 달에는, 비상 사태 때에 온 도시가 물에 잠기게 되면 어떻게 백만이나 넘는 도시 인구들을 대피 시킬 것인가 하는 예행 연습까지 한 적이 있었다. 참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왜 그들은 그 경고들을 진지하게 받아드리지 않았을까? 마음들이 둔하여 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드로 후서 3장 3~10절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경고하고 있다. 먼저 이것을 알지니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하니, 이는 하늘이 옛적부터 있는 것과 땅이 물에서 나와 물로 성립한 것도 하나님의 말씀으로 된 것을 저희가 부러 잊으려 함이로다. 이로 말미암아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신 것이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은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의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

New Orleans 사람들이 가졌었던, 오늘 뜬 태양이 내일도 뜰 것이라고 안심하며 경고를 무시해 왔던 그 태도는 현재 온 세상 사람들의 마음과 태도들을 대표해 주는 실례였다. 온 세상이 그렇게 살아 가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통하여 성경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크고 확실한 경고를 주신 것이다. 이제 곧 멸망이 임할 것이다. 이 멸망은 어느 한 도시의 멸망이 아니다. 온 세상이 엄청난 천연재해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게 될 것이다. 온 지구 전체가 흔들리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모든 사람들을 깜짝 놀라 기절하게 만들 것이다. 이러할 때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사도 베드로는 계속하여 말씀하여 주셨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뇨?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 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 (벧후 3:11-14).

 허리케인 카트리나의 참상은 우리 모두의 것이다. 이 세상은 더 이상 하나님의 은혜를 지속시키지 못하게 만들고 있다. 창세시 6장에 있는 노아 홍수가 올 수밖에 없었던 형편이 바로 우리의 형편이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 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 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 함이었더라.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그 안에 간들을 막고 역청으로 그 안팎에 칠하라. 그 방주의 제도는 이러하니 장이 삼백 규빗, 광이 오십 규빗, 고가 삼십 규빗이며 거기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자부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고 혈육 있는 모든 생물을 너는 각기 암수 한 쌍씩 방주로 이끌어 들여 너와 함께 생명을 보존케 하되 새가 그 종류대로, 육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각기 둘씩 네게로 나아오리니 그 생명을 보존케 하라 너는 먹을 모든 식물을 네게로 가져다가 저축하라. 이것이 너와 그들의 식물이 되리라.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 하였더라 (창 6:5~22).

 오늘날 이 세상은, 우리의 눈과 귀를 돌리어 보고 듣는 것들마다 죄악적인 장면들을 연상케 만들어 우리의 생각들을 부패시키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실 때는 노아의 때와 같다고 하셨다. 사람들은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있으며 사는 일에 빠져서 하나님의 경고와 말씀을 무시하고 있는 시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러나 노아는 자기의 식구들을 구원하였다. 아니 자기 식구들 이외에는 구원 할 수가 없었다. 그만큼 사람들의 영적인 감각들이 둔하여져 있었다. 누가 과연 앞으로 곧 다가오는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가 있을까? 경건하게 사는 사람들, 하나님께서 지시 하신 대로만 사는 의로운 자들, 죄악의 관영 함으로 슬피 울며 마음 아파하는 사람들, 그러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 들어가 환란을 통과하며 보호함을 받게 될 것이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가족들을 하나님의 날개 아래로 모으고 있는가?

2부 - 미국 역사상 가장 큰 참사, "허리케인 카트리나"

 엄마아! 진짜 큰 물결이 몰려와요! 갑자기 심한 바람과 함께 밀려 들어와 차오르는 물살을 피해 다락으로 피신한 우리는 산더미처럼 몰려오는 물결을 보고 소리치는 딸아이의 겁에 질린 목소리를 들으며, 이제 우리의 생을 여기서 마감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깨달았다.

 갑자기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짧은 순간,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보았다. 아직 인생을 마감하기는 이른 나이였다. 누가 나의 삶이 여기서 마쳐질줄 알았겠는가? 이제 곧 우리는 산더미 같은 파도에 휩쓸려나가 생을 마칠 것이다. 언제나 아무 일도 없을 듯 평화롭던 세상이여, 그러나 우리는 이제 여기서 세상을 하직해야만 한다!

 이것은 가상적인 스토리이지만, 지난 8월 말, 미국 남부 지역, 특히 뉴올리언스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목숨을 잃은 수많은 사람들의 최후의 증언들을 실는다면 아마 이런 식의 이야기가 전개될 것이다. 8월 29일 뉴 멕시코만을 덮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강도가 낮아지리라는 기상 일보의 뉴스와는 달리 강도가 더 높아진 4등급과 5등급으로 루이지애나 주와 여러지역, 특히 뉴올린스를 강타하여 미국 역사상 자연재해로 인한 최대의 참사사건을 기록하였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란?
 
지난 2005년 8월말과 9월초, 미국 남부지역을 강타한 최고 시속 280㎞의 강풍과 폭우를 동반한 초대형 허리케인으로서, 루이지애나주, 미시시피주, 앨라배마주 등 미국 남부지역, 특히 뉴올린스에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 태풍이다. 미국 남부를 강타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미 역사상 최대 자연재해로 기록되고 있다. 미 언론들은 이를 미국판 쑤나미로 부르고 있다.

인명 피해
 
뉴올리언스 80% 침수; 첫 허리케인 상륙 시 허리케인의 직접적인 타격을 피해 한숨 돌렸던 루이지애나주의 뉴올리언스는 밤새 인근 폰트차트레인호(湖)의 둑이 최소 3곳 무너져 도시의 80%가 침수당했다. 이로 인해 호수의 물이 저지대인 뉴올리언스로 순식간에 흘러들어 도시 전체가 마비됐다. 이에 따라 미쳐 대비하지 못한 주민들은 밀려오는 산더미 같은 물결을 피할 사이도 없이 목숨을 잃었다.

 미 당국 사망자 수천명첫 공식 확인; 리빗 장관은 9월 5일 CNN에 출연, 지금 우리는 어렵고 비극적인 환경에 처해 있다면서 이번 재해로 인한 정확한 사망자 수를 확인할 순 없지만 수천명 선이라는 것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미 연방 관리가 이 정도 규모의 사망자 수를 언급한 것은 허리케인 참사가 난 후, 처음이다. 크레이그 밴더웨건 해군 소장도 인터뷰에서 세인트 개브리얼 프리즌에 있는 한 시체공시장에만 1000~2000명의 시신이 수습돼 있다고 밝혔다. 캐슬린 블랑코(여)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수천명의 사망자가 발생할 것으로 믿고 있고 있으나 아직 구체적인 사망자 숫자가 집계된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루이지애나주와 미시시피주, 앨라바마주는 자체적으로 사망자를 집계하고 있으나 구체적인 숫자를 밝히지않고 있어 과연 몇명이 이번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숨졌는지 알 수 없다. 사망자가 당초 예상보다 크게 늘어날 것으로 예상하는 이유는 인구 120만명의 도시인 뉴올리언스 시와 미시시피강 주변 중.소 도시들이 아직도 물속에 잠겨있어 물이 완전히 빠진 뒤에야 사망자 집계가 정확하게 나올것이기 때문이다.

 사망자 만명 추산;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한 뉴올리언스 지역 사망자가 1만 명이 넘는다 해도 터무니없는 숫자는 아닐 것이다.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은 5일 NBC 방송의 투데이 쇼에 출연해 이같이 말했다. 이것은 피해자 시신 수습 등 복구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가운데 나온 발언이다. 피해 규모와 정도가 예상을 훨씬 뛰어넘을 것이란 얘기다. 외신들에 따르면 뉴올리언스 시내에는 곳곳에 시신이 널려 있다. 운하에 둥둥 떠다니거나 전신주에 묶여 있는 주검이 잇따라 발견되고 있다. 물이 빠지기 시작하면 참상이 더 뚜렷하게 드러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러나 막상 복구작업에 박차를 가하는 시점에 이르자(9. 17. 05; 물이 30% 남고 거의 빠진) 사망자는 1000명 이내일 것이라는 보고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모든 것은 완전한 복구가 이루어진 다음에야 거론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외의 일어난 상황들
 
뉴올리언즈 시는 폭우를 동반한 허리케인이 강타하자, 두군데의 둑이 무너지면서 호수물이 도시 전체로 밀려들어 오기 시작했다. 허리케인이 공격한지 나흘이 지나도 빠질 기미를 보이질 않았으며, 도시를 빠져나가는 고속도로도 모두 물에 잠겨있어 슈퍼돔에 피신해있던 2만여명의 이재민을 인근 텍사스주로 옮기기위해 육로가 아닌 여객기와 군 수송기를 이용해야 했다. 가장 심대한 타격을 입은 뉴올리언스 시는 겨우 높은 건물과 2,3층 집들의 지붕만이 물 밖에 나와있을 정도로 물바다 그 자체이며, 이재민들은 언제쯤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면서 뉴올리언스 시는 죽음의 도시로 변했다고 말했다.

 뉴 올리언스 치안상황 악화; 허리케인 카트리나 강타 후 뉴올리언스는 치안이 불안정한 상태에서 시내 곳곳에 서 약탈행위가 이어지는 무법상태가 지속되었다.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엄청난 피해를 입은 미국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에서는 식량 및 생필품 부족에 항의하는 시민들이 무장 폭도로 돌변하고, 폭력, 성폭행 등 각종 범죄가 발생했으며, 먹을 것이 없어 굶어죽는 사람까지 나오는 등 도시 전체가 무정부 상태 에 빠졌다. 태풍 강타 후, 뉴올리언스의 레이 내긴 시장은 전 미국에 긴급구조(SOS)를 요청한다고 말했다.

 사살권 발효; 뉴올리언스 치안을 위해 9월 1일 주방위군 1200명이 투입된 데 이어 2일 다시 1200명이 투입됐으며 3일 저녁에는 7000명의 방위군을 더 파견했어야 할 정도로 무법상태였다. 미국 정부는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인해 무정부 상태가 된 뉴올리언즈의 치안확보를 위해 주 방위군에게 사살권을 부여했다. 캐틀린 블랑코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뉴올리언스에 투입된 3백명 규모의 아칸소 주 방위군 부대에 난동자를 사살할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고 말했다. 뉴올리언스에 투입된 군 병력은 미국 재해 역사상 최대 규모인 5만명 이상이었다.

 폭동; 태풍이 강타하여 10만여명이 고립되어 있던 당시, 피해지역에서는 약탈과 폭력까지 난무하였고, 도심 곳곳에서 대규모 약탈이 자행되고 교도소에서 폭동이 일어나는 등 곳곳이 무법천지로 변했다. CNN 방송은 뉴올리언스 도심의 약탈 행위가 대규모라고 표현했고, 캐슬린 블랑코 루이지애나 주지사는 치안 유지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밝혔다. 시내 한 교도소에서는 수감자들이 경비원과 가족 5명을 인질로 잡고 폭동을 일으켰다고 지역 TV 방송은 보도했다.뉴올리언스의 관광명소인 프렌치쿼터 지역에서 시민들의 약탈 장면을 촬영한 관광객 드니즈 볼링거씨는 사람들이 제정신이 아니었다면서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비슷한 상황일 것이라고 말했다. AP통신은 약탈자들이 심지어는 경찰과 주방위군이 지켜보는 데도 노략질을 계속했다고 전했다.

 매리 랜드리우 상원의원이 헬기를 타고 피해지역을 시찰하는 동안에도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편의점 창문을 깨고 상점 안으로 뛰어들어갔다. 프렌치 쿼터에 있는 한 상점에서는 사람들이 장바구니에 음료, 과자, 기저귀 등을 담아 도망갔다고 AP는 전했다. 한 약탈자가 총을 쏘아 약탈에 나섰던 또다른 사람에게 총상을 입히기도 했다. 의류상점에서 청바지 10벌을 들고 나온 사람은 이 상점은 이제 모든 사람의 것이라고 말했다.

 약탈자들은 도시 전체에 물이 허리 높이까지 침수된 상태에서 큰 쓰레기통에 의류와 보석을 가득 채운 뒤 이를 베니어판에 담아 이동시키고 있다고 방송들은 전했다. 월마트에선 약탈자들이 쇼핑카트에 전자오븐과 에어컨 등을 가득 싣고 나왔다. 식료품을 가득 담은 봉투를 들고 가던 한 여성은 아이들과 손주들을 먹여야 한다면서 살기 위해서라고 주장했다. AP통신과의 인터뷰에서, 근처 수퍼마켓에서 음식을 훔쳤다고 말한 한 은행가는 국가적 비극의 한가운데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뉴올리언스시 당국은 9월 8일부터 도심의 물을 빼내는 작업을 시작했으나 언제쯤 물을 다 퍼낼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말하고 있다. 도시의 80%가 물에 잠겼던 뉴올리언스는 배수 작업이 본격화하여 9월 8일 침수 지역이 60%로 줄었고, 멈췄던 멕시코만 일대 석유 생산 및 정제 시설도 속속 재가동했다.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은 고비는 넘겼다며 장기화할 복구작업에 대비하고 있다.

 멕시코만의 유정 등 석유시설의 생산량은 평상의 절반 수준까지 회복은 됐지만, 956개중 23%는 아직 폐쇄된 상태이다. 그리고 쉐브론텍사코의 파스카굴라 정유공장처럼 피해 현황 파악조차 안된 곳도 있어, 이 지역 에너지 생산의 완전 정상화는 상당한 시일이 걸릴 전망이다.

 환경 재앙 경고; 수재에 따라 뉴 올리언스 시에서는 환경 재앙 경고까지 나왔다. 분뇨 등의 오물과 부패한 시신, 기름, 공장에서 흘러나온 유해 화학물질이 뒤섞이며 물이 썩는 바람에 독극물 수프 논란까지 일고 있다. 그리고 허리케인 카트리나 이재민 중 5명이 9월 8일 뉴올리언스 등 수해지역에서 배출된 물과 오폐수, 독성 화화물질들이 뒤섞인 더러운 물에 접촉한 뒤 숨졌다고 현지 보건관리들이 밝혔다. 미국 질병통제 예방센터의 톰 스키너 대변인은 이들은 비브리오 불니피쿠스로 알려진 박테리아균에 감염되어 사망했다고 발표했는데, 비브리오 불니피쿠스는 피부의 상처 등을 통해 인체내로 침입해 치명상을 입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앞서 미국 환경보호국과 보건부는 오폐수와 독성 물질로 인한 심각한 오염 가능성을 고려해 수해지역 물과 가능한한 접촉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경고한 바 있다.

 비브리오균 감염으로 벌써 뉴올리언스에서 5명이 숨진데다, 식중독 및 최악의 경우 사망까지 가는 E콜리 박테리아가 검출돼 질병통제 예방센터 등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 마이크 맥대니얼 루이지애나주 환경청장은 환경피해가 상상을 초월한다며 독성물질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건 죽음을 재촉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이 오염된 물이 미시시피강과 폰차트레인호수로 다시 흘러 들어갈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문가들은 수질 오염의 피해 지역 확산 우려를 경고하고 있다.

 미시시피주의 빌럭시도 대규모 폭격을 맞은 것처럼 완전히 폐허로 바뀐 상태여서 복구 자체가 불가능한 실정이다. 특히 미국의 집들은 톱밥으로 만든 널판지와 나무, 그리고 블럭 등을 조립해 집을 짓는 바람에 강풍이 불거나 불이 나면 완전히 흔적도 없어진다.

 위생재난; 외신들은 뉴올리언스 현지 르포를 통해 이재민들이 빠져 나간 도시 곳곳에 시신들이 나뒹굴고 있으며 아직도 허리까지 차오르는 물속, 고속도로 주변에 시신들이 떠다니고 있다고 참담한 현장 분위기를 전했다. 재해 지역은 기온이 높고 모기가 들끓는 곳이다. 게다가 곳곳에 시체가 물에 떠다니고 있는 데다 악취 속에 오갈 데 없는 사람들이 뒤엉켜 있어 콜레라, 말라리아, 파상풍, 웨스트 나일 바이러스 등 전염병이 창궐할 위험이 높다. |

 CNN 방송은 시장실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허리케인 참사를 당한 도시 내에서 인체에 치명적인 식중독 균인 E콜리박테리아가 검출됐다고 보도했다. 방송은 이 박테리아는 인체 및 동물의 배설물에서 발견되며 보통은 처리되지 않은 하수에서 검출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미시시피 주 빌록 시에서는 이질로 의심되는 질병이 발생해 수백명이 구호소에서 긴급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방역전문가들은 전기와 상수도가 없는 지역에서 지난 1주일 동안 전염병이 발생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며 앞으로 이 같은 행운이 얼마나 오래 계속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리빗 보건장관은공중 보건위생을 잘 지키지 않으면 엄청난 위생재난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며 주의를 당부했다.

 이 지역 물에는 이콜라이 바이러스 등이 안전기준보다 4만 3000배나 많아 완전 감염된 것으로 나타났다. 마시면 전염병에 걸리는 것은 물론 피부병, 치명적인 A형 간염 등 각종 수인성 전염병과 질병들이 확산될 위기에 빠져 있다. 더욱이 뉴올리언스에서는 물이 빠지면서 수천명, 많게는 1만명을 넘을 지 모를 사망자 사체들이 확인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 법의학팀(DMORT) 4개팀이 구성돼 지문채취, DNA 검사 등을 통해 시신의 신원확인 활동에 돌입했다.

 비상지원 요청; 미국이 유럽연합(EU)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에 허리케인 카트리나 피해자들을 위한 담요와 구급상자, 급수차량, 구호식량 등 비상 지원을 요청했다고 EU와 NATO가 9월 4일 밝혔다. 미국은 이날 아침 연방재난관리청(FEMA)을 통해 워싱턴 주재 EU집행위 측에 긴급 지원을 공식 요청했다. EU집행위는 첫 요청분은 전투식량(MREs) 50만개와 담요 수만장, 구급상자 및 급수차량 등이며 추가 요청분도 공식 경로를 통해 접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지금까지 영국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덴마크 스웨덴 네덜란드 핀란드 벨기에 룩셈부르크 에스토니아 슬로바키아 오스트리아 등이 지원을 약속했으며 일부는 파견 특별인력까지 대기시키고 있다.

 강제 대피령 및 완전소개령; 뉴올린스 시당국은 시내에 남아있는 모든 주민들에게 완전소개령을 재차 내렸다. 레이 내긴 시장은 이 상태가 몇 달간 지속될 수 있다고 말해, 복구가 본격 시작될 때까지 사실상 도시를 포기할 뜻을 밝혔다.

 1차 강제 대피령; 허리케인 강타 직후부터 이재민 이송 작업이 시작되었다. 8월 31일까지 2천명 정도가 휴스턴의 애스트로돔에 도착한데 이어, 9월 1일부터 2만 5천명이 또 애스트로돔을 향해 떠났다. 다른 2만 5천명은 샌 안토니오 등지로 분산 수용되었다. 그리고도 남은 5만~10만명의 이재민들을 매일 1만 5천명 씩 다른 도시로 떠나보냈다.

 2차 강제 대피령;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할퀴고 간 미국 뉴올리언스에 잔류하고 있는 1만 명 이내의 주민에게 2차 강제 대피령이 9월 6일 내려졌다. 레이 내긴 뉴올리언스 시장은 대피령 발표 직후, 도시에는 가스 누출에 따른 폭발사고 가능성이 있고, 독성 화학약품이 섞인 물이 고여 있어 위생상황이 나빠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내긴 시장은 도시 내에 고인 물 표면에 누출된 가스에서 생겨난 거품이 눈에 많이 띈다며 하루에 대형 화재가 4건 발생한 적도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아직은 주민들을 찾아다니면서 떠나지 않는다면 더는 구조할 수 없을 것이라며 대피를 설득 중이라면서 강제 대피는 최후의 수단이라고 덧붙였다.

경제적 손실
 
뉴올리언스의 완전한 복구에 필요한 피해복구비는 2001년 9.11 테러 때 10배 이상이 될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9.11 테러로 인한 경제적 손실은 총 200억달러 정도였으나, 카트리나는 복구비 하나만 해도 1천 50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는게 미 정부당국의 설명이다. 그리고 구호활동비도 매일 20억달러 정도가 소요되고, 보험 청구료만 해도 줄잡아 200억에서 350억달러에 이를 것이라고 미 정부 관계당국 및 보험사측은 밝히고 있다. 게다가 불어난 물로 입은 자산적 가치는 1천억달러에 달할 것으로 집계되고 있고, 연방정부의 비상 기금 염출과 카트리나 피해지역의 인프라(하부구조) 피해액은 500억달러에 육박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워싱턴 이그재미너지는 이와 관련, 카트리나 피해액은 총 2천억달러를 훌쩍 뛰어넘어 9.11에 비해 최소 10배가 될 것이라며 카트리나는 미 역사상 최악의 재앙으로 기록될 게 분명하다고 밝혔다.

 인명피해가 가장 큰 지역 중 하나로서 미시시피주의 빌록시 지역을 빼 놓아서는 안된다. 멕시코만의 항구도시인 이곳은 카트리나 진행로에서 가장 가까운 오른쪽에 위치해 직격탄을 맞았다. 인구 5만명인 이 도시는 이번 허리케인으로 9m에 달하는 폭풍 해일이 덮쳐 한 아파트 단지에서만 30명이 몰살한 것으로 확인됐다. 빌록시에는 아직 수백명이 침수된 가옥에 고립돼 있는 것으로 알려져 사망자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헬기로 피해현장을 돌아본 A J 할러웨이 빌록시 시장은 이것은 우리의 쑤나미라며 우리가 끝내 찾지 못할 시신도 많을 것 같다고 말했다. AFP통신은 미시시피주에서만 사망자가 125명에 이른다고 전했다.

실종 가족 찾기 운동; 10만명 이상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거나 실종된 사람들을 위해 적십자사가 개설한 가족찾기 웹사이트(www.familylink.icrc.org)에 등록한 사람수가 거의 10만 명에 이르렀다고 적십자 대변인이 9월 6일 밝혔다.

 플로리언 웨스트팔 국제적십자사위원회(ICRC) 대변인은 가족찾기 사이트에 등록한 사람수가 이날 하루동안 6만 5천명에서 9만 4천명으로 급증했다고 밝혔다. 재해지역에 있는 사람들은 이 사이트를 통해 가족과 지인들에게 자신의 소재와 안부를 알리는 정보를 등록할 수 있으며 가족과 친지를 찾는 이들은 이 정보를 검색해 사람을 찾을 수 있다. 웨스트팔 대변인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신규 등록자들이 계속 추가되고 있으니 실종자를 찾는 사람들은 정기적으로 사이트를 검색해야 한다며 가족들과 연락이 된 사람들은 목록에서 이름을 삭제해 달라고 말했다.

 대피지역 몸살; 허리케인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에서만 적어도 50만명의 이재민들이 대거 탈출하는 엑소더스가 벌어지면서 갖가지 수난을 겪고 있으며 이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한 각주들도 몸살을 앓고 있다. 남북전쟁 이후 70년만에 벌어진 최대 규모의 대탈출을 겪은 이재민들은 텍사스주에 절반인 23만명을 비롯해 아칸소 6만명, 테네시 1만 3000명이 이동했고 워싱턴, 뉴욕주에서 미시간, 뉴멕시코, 애리조나, 오리건에 이르기 까지 20개 주로 유랑생활을 떠났다.

3부 - 카트리나 대재앙을 부른 원인

 마치 노아의 경고를 무시하고 준비하지 않은 많은 사람들이 홍수가 와서 죽음을 당한 것처럼,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는 노아의 때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다.

 정말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노아의 때에 갑자기 닥친 (적어도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에겐) 홍수처럼, 엄청난 피해와 초강대국이라고 자부하던 미국의 어두운 그늘을 여지없이 드러낸 대재앙이었다. 이번 참사를 통해 철저한 대비와 준비 없이는 그 어떤 강대국도, 또 사람들도 자연 재앙 앞에 한순간에 무너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카트리나는 보여 주었다.

 최대 시속 233km의 강풍이 몰아치던 지난달 8월 29일, 4급 허리케인의 위력은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를 남겼다. 이미 예보된 허리케인이었지만 그것은 10000명(정확한 사망자 수 추산 불가능) 가까운 인명과 백조원대의 재산피해를 낸 대형참사로 이어졌다. 왜 이렇게 후진국형 재앙과 대참사가 선진국이며, 최강대국이라는 미국에 일어났을까? 그 원인들을 살펴본다.

1. 직접적인 원인
 
거듭된 경고 무시; 가장 큰 원인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1일 누구도 뉴올리언스 주변 둑이 무너지리라고는 예상치 못했다고 강변했다. 하지만 이는 사실과 달랐다. 루이지애나 주립대와 방재 전문기관들은 수 차례에 걸쳐 제방 붕괴위험성을 경고했고, 2002년에는 뉴올리언스 지역신문에 대형 허리케인이 덮치는 상황을 가정한 5회 시리즈물까지 연재됐다. 주민 20만 명이 대피하지 못해 수천여명이 사망하고 이재민은 수퍼돔에 수용되며 도로차단으로 구호요원이 피해지역에 접근하기 어려운 상황에 빠지게 된다는 시나리오는 이번 재난에서 그대로 현실화했다. 특히 뉴올리언스는 지난해 7월 가옥 50여 만 채가 부서지고 100여 만 명이 소개되는 비상사태를 가정한허리케인 팸이라는 5일간의 재해대비 훈련을 실시했다. 따라서 이번 사태는 예고된 재난을 알고도 대응에 소홀한 인재라는 지적이다.

 미국 연방재난관리청(FEMA)이 허리케인 카트리나가 오기 1년 전 이미 뉴올리언스에 허리케인이 닥칠 경우 100만명이 대피하고 최고 35만명의 이재민이 발생할 것이라는 예측을 했던 것으로 나타났다(워싱턴 AFP.AP=연합뉴스 9. 9, 2005). 미 하원의 민주당 의원들이 9일 공개한 FEMA 문서에는 이밖에도 예상 피해상황과 대처방안, 피해복구 등에 대한 자세한 예측이 담겨 있어 미국 정부가 예상가능한 위협에 제대로 대비하지 못한 것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FEMA가 지난 2004년 7월부터 12월까지 270명의 전문가를 동원, 현지 실사를 통해 작성한 가상의 허리케인 팸(Pam) 대비 계획문서는 3~4등급의 허리케인이 루이지애나를 강타할 경우, 인근 주나 연방정부의 대규모 지원 없이는 루이지애나주가 감당할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문서에는 또 허리케인이 닥치면 뉴올리언스에서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대피할 것이며 피난민들이 루이지애나와 인근 주 구석구석의 대피소를 가득 채울 것으로 전망했다. 이와 함께 30만~35만명이 침수지역에 갇히게 되며 강우를 동반한 폭풍으로 인해 뉴올리언스의 많은 지역이 4~6m까지 물이 차고 518㎢ 이상의 도시지역이 침수될 것으로 내다봤다.

 문서는 이밖에도 뉴올리언스 지역의 물이 빠지려면 수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했으며 대부분의 지역이 헬기와 보트를 통해서만 접근이 가능해 구조작업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측했다. 문서에는 또 사태의 심각성 때문에 이런 일이 있을 경우 정부의 효과적인 신속대응 능력 향상을 위해 특별한 수준의 사전계획이 요구된다는 내용이 들어 있었다.

 이렇게 홍수가 와서 강이 범람할 경우를 대비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경고를 재차 무시한 처사가 이번 대참사를 부른 원인이다. 부시 정부는 이라크 전쟁에 예산을 지나치게 소비한 나머지 뉴올리언스 시의 홍수예산을 삭감해 버리고, 자연재해로부터 도시를 방어해야 한다는 경고를 계속 무시해 왔다. 또한 도시의 책임자들이나 주민들은 재난 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이미 대처법을 알고 있었어야 했다.

연방정부의 무관심
 
정부의 재난 늑장대처를 비난하는 여론이 높아진 가운데 공화 민주 양당은 의회 차원의 진상조사에 착수하기로 합의했다. 상원은 연방정부의 초기 대처 실패를 따지는 청문회를 개최할 예정이다. 수전 콜린스(공화) 상원의원은 조지프 리버먼(민주) 상원의원과 개최한 공동 기자회견에서 테러집단이 관여한 것도 아니고 사전에 경고된 재난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하면서 테러리스트 공격을 어떻게 막느냐며 철저히 진상을 따져 책임을 묻겠다고 말했다. 한편 한국의 감사원 역할을 하는 미 의회 회계감사원(GAO)은 지난해 7월 행정부의 긴급 구조 및 구호를 다루는 비상대책기구의 인력 훈련과 보유 장비가 자연재해보다는 테러 대응에 지나치게 집중돼 문제라고 지적했다고 AP통신은 전했다.

 현지에서는 이미 몇년 전부터 허리케인으로 미시시피 강둑이 붕괴될 것이라며 연방차원의 대책을 촉구해왔다. 루이지애나 주는 주정부 차원에서 운하와 펌프를 보완해 홍수통제 체제를 강화하고, 저지대에 사는 흑인 빈곤층을 보호하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하지만 주정부의 재정 지원 요청은 연방정부와 의회에서 번번이 깎이거나 무시됐다. 미국 언론들은 루이지애나 주정부가 지난해 제방의 안전성 강화를 위해 연방정부에 예산지원을 요청했으나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라크 전비와 예산적자를 내세워 부시 행정부가 오히려 예산을 대폭 삭감하는 바람에 뉴올리언스의 피해가 컸다고 잇달아 보도했다. 빌 클린턴 전대통령의 보좌관이었던 시드니 블루멘털도 최근 독일 시사주간지 슈피겔에 기고한 글에서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하느라 홍수 통제를 위한 관련 자금 지원을 크게 줄였고 뉴올리언스의 경우 이전에 비해 현재 44%나 깎였다며 육군 공병대가 1년 전에도 뉴올리언스 지역 수해 방지책 연구를 건의했으나 무시당했다고 폭로했다.

주민들의 방심
 
매년 그래왔듯이 허리케인 상륙 직전에야 뒤늦게 대피령을 내린 시 당국도 문제였지만, 평소대로 대피령을 가볍게 여긴 주민들의 방심 또한 화를 키웠다. 주민들은 대피령이나 경계주의보를 여느 때처럼 가볍게 여겨 심각하게 대처하지 않았으며, 그런 타성에 젖은 그들의 방식이 더 많은 인명피해와 참사를 가져왔다.

허리케인의 근본 원인은 지구의 온난화?
 
지구의 온난화가 부른 허리케인; 1969년 이후 최대의 허리케인인 카트리나로 인해 엄청난 피해가 발생한 데 대해, 그 책임이 미국의 화석연료기업과 언론사들에게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지구는 계속 더워지고 있다(The Heat is On), 비등점(Boiling Point) 등의 저자인 로스 겔브스팬은 8월 30일자 보스턴글로브지 기고문을 통해 카트리나의 본명은 지구 온난화라면서 이번 허리케인을 인재라고 주장했다.

 올해 초 LA에 60센티미터가 넘는 폭설과 스칸디나비아의 원자력 발전소의 가동을 중단시켰던 시속 198킬로미터의 강풍도 그 원인은 온난화였으며, 지난 7월 스페인과 포르투갈을 휩쓴 사상 최악의 한발과 산불, 그리고 43도가 넘었던 아리조나주의 살인적인 무더위도 알고 보면 온난화가 그 원인이다. 지구온난화로 대기가 뜨거워질수록 가뭄은 더 길어지고 폭우는 더 집중적으로 내리며 더위는 더 자주 찾아오고 폭풍은 더욱 강해지기 때문이다.

 카트리나도 처음 발생할 때는 비교적 작은 폭풍이었다. 그래서 플로리다 남부지역을 관통할 때만 하더라도 큰 피해를 남기지 않았지만, 멕시코 만의 높은 수온과 만나면서 초대형 허리케인으로 바뀌었다.
이번 허리케인으로 미국은 끔찍한 재앙을 입었지만 불행하게도 미국시민 가운데는 그 원인을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그 이유는 시민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석유기업과 석탄기업들이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퍼붓고 있기 때문이다.

 1995년 미네소타주에서 실시된 청문회에서는 석탄기업들이 지구온난화 이론에 반대하는 4명의 과학자들에게 100만 달러를 지원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또 엑슨모빌도 1998년 이후 지구온난화를 부정하는 홍보 캠페인에 1300만 달러를 지출했다. 화석연료기업들이 이처럼 거액을 들여 지구온난화 이론을 부정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답은 간단하다. 온난화를 막으려면 화석연료 사용량을 70% 정도 줄여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거대 에너지 기업들의 생존 자체가 위협 받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국시민들이 지구온난화에 대해 무관심한 것은 에너지기업들 탓만은 아니다. 미국 언론들의 보도 태도도 한몫 거들었다는 여론이다. 정치와 외교문제에만 집중할 뿐 온난화가 농업과 물, 식물과 동물, 공중보건과 기후 등에 대해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2. 지형적인 원인
 
뉴올리언스시 유래
 
뉴올리언스는 도시의 상당지역이 해수면보다 0.3~3m 낮고 늪지대에 악어가 출몰하는 열악한 땅이었다. 이곳에 가장 먼저 정착촌을 건설한 사람은 1718년 프랑스인 식민 개척자인 장 밥티스트 르 뫄이느 드 비엥비유였다. 그는 미시시피강과 폰차트레인 호수 사이의 고지대와 자연제방으로 형성된 이 곳에 도시를 건설했고, 당시 프랑스 재상 필리프 뒤 도를레앙의 이름을 따 도시명을 지었다.

 이 지역은 이전부터 미 대륙의 토착 원주민과 동물가죽을 교역하고 금광을 캐려는 유럽인들이 자주 찾는 곳이었다. 그리고 미 대륙 깊숙이 흐르는 미시시피강 하구와, 남미의 유럽식민지들과의 교역 통로인 멕시코만에 위치해 교역의 요충지였다. 당시에는 300년 뒤 이 지대가 허리케인에 의해 완전히 물에 잠기리라는 우려는 없었다고 한다. 애초에 이 도시는 미시시피강 자연제방을 따라서 고지대에 국한돼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미시시피강의 잦은 범람과 허리케인에 대비해 1727년에도 길이 1.6km, 폭 5m가 넘는 제방이 만들어졌지만, 이는 고지대를 따라 건설된 것이었다.

 1762년 프랑스는 7년전쟁에서 스페인에 패배, 힘들게 건설한 루이지애나를 양도해야 했다. 이어 1700년대 말 잇단 대형 화재로 뉴올리언스의 프랑스식 목조 건물들은 모두 불에 탔고, 스페인 사람들에 의해 스페인 양식이 포함된 건물들이 프렌치 쿼터에 새로 들어섰다. 40년 후 나폴레옹은 스페인에 압력을 넣어 뉴올리언스가 포함된 식민지 루이지애나를 되찾았으나, 식민지 유지가 현명하지 않다고 판단, 1803년 신생독립국 미국에 팔았다. 미국의 제퍼슨 대통령은루이지애나 구입으로 알려진 이 거래에서 1500만달러를 지불하고, 하룻밤 새 영토를 두 배로 불렸다. 새로 얻은 땅은 지금의 12개주에 해당한다. 이후 뉴올리언스는 면화 생산과 아프리카 노예 무역의 중심지로 번창했다. 흑인들의 슬픈 선율이 담긴 재즈가 태어난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후 이 도시는 미국 독립전쟁과 남북전쟁의 무대가 되기도 했지만, 1860년대에는 미 대륙에서 가장 부유한 도시로 꼽혔다.

화근이 된 도시개발과 특수 지형
 
루이지애나주 뉴올리언스의 피해가 극심한 이유는 지형의 특수성과 인공적인 홍수통제 시스템 때문인 것으로 지적됐다. 뉴올리언스는 해수면 아래에 있는 넓고 깊이가 얕은 사발형(Bowl)지형 속에 자리잡은 도시다. 북쪽엔 크기가 이 도시의 2배 이상인 폰차트레인 호수가 있고 남쪽엔 미시시피강이 흐른다. 남동쪽은 멕시코만에 열려 있다. 호수와 강의 수면보다 낮은 도시가 물에 잠기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물을 끌어올리는 반영구적인 댐식 둑 2개가 거대하게 펼쳐져 있다. 둑들은 1927년 미시시피강 대범람 이후 만들어져 3등급 태풍과 홍수에 견딜 능력을 갖췄다.

 그러나 이번 카트리나는 엄청난 강우를 동반한 4등급 태풍인데다가 뉴올리언스를 정면으로 강타하며 북상했다. 폭우에 곁들여 호수의 둑 동쪽 두 곳과 미시시피강 둑 한 곳이 무너지면서 도시의 80%에 해당하는 호수와 강 사이 지역이 물에 잠겼다. 카트리나가 지나간 뒤 미시시피주와 앨라배마주에서 피해복구작업이 본격화한 것과 대조적으로 뉴올리언스는 희생자 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을 만큼 진흙물에 잠겼었다. 이는 뉴올리언스가 지닌 지형구조의 특수성이 사발효과(Bowl Effect)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빗물과 호수물이 저절로 빠지지 않고 저지대에 고여있는 형국이라서 이를 인위적으로 해소하는데는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는 분석이다.

 또 홍수를 막기 위한 제방도 뉴올리언스 재난에 일정 몫을 했을 수 있다고 BBC는 지적했다. 홍수통제 시스템은 루이지애나주의 거대한 해안 습지의 소멸을 초래했다. 이 습지는 허리케인을 막는데 콘크리트 수로들보다 훨씬 자연 완충 작용이 뛰어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습지의 소멸로 카트리나의 비는 습지지역을 그냥 지나쳐 미시시피강과 폰차트레인 호수에 쏟아졌다는 것이다. 인위적인 홍수통제 시스템이 자연을 변화시켰고 결국 자연의 보복을 불렀다는 것이다.

 1910년대 건축공학자인 볼드윈 우드는 당시까지 방치됐던 강과 호수 주변의 늪지대로 시를 확장하는 개발에 착수했고, 스스로 고안한 양수(揚水)시설로 물을 뽑아냈다. 이어, 연방·시정부가 20세기 내내 해운(海運)과 홍수 방지·도시 확장 등의 목적으로 뉴올리언스 주변의 늪지대를 개발하여 도시를 건설했다. 이는 결과적으로, 홍수 때 물을 흡수할 자연적인 완충장치를 제거한 꼴이 되었고, 개발 이후 뉴올리언스의 시 중심부는 해수면보다 낮은사발 모양이 되었다. 이후 진행된 허리케인 및 홍수 대비 프로젝트는 최고 5단계까지 5등급으로 분류되는 허리케인 중 3단계까지 견딜 수 있게끔 계획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시민의 목숨을 건 도박과도 같은 것이었다. 결국 4등급 허리케인이라는 0.5%의 가능성이 현실화했을 때, 뉴올리언스 일대는 무력할 수밖에 없었다.

**허리케인의 참사를 보면서
 
지난 8월 29일 미국 본토에 상륙한, 미 역사상 최악의 자연재해로 꼽히는 카트리나 대재앙으로 재즈의 도시뉴올리언스는 초토화됐으며 낭만적인 재즈선율은 비명과 울부짖음으로 치환됐다. 카트리나가 지나간 자리에는 인간의 나약함이 속절없이 노출되어 있었다. 한 때 뉴올리언스는 재앙 직후 폭력과 약탈, 방화, 총격전 등으로 재난도시로 전락했다. 방위군이 투입되면서 폭력사태는 한풀 꺾였지만 세계 최강대국 미국은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었다. 무엇보다 미 부시 행정부의 거듭된 경고 무시, 늑장대처와 무기력한 재난 처리에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고 있으며, 뉴올리언스 현지에 급파된 특파원들은 이구동성으로 수치스러운 합중국(United States of Shame)을 외칠 정도이다. 또한 흑백 인종갈등이 불거진 데 대한 비난도 끊이질 않고 있으며, 참상을 목격한 구조대원이 자살하면서 뉴올리언스 증후군이란 신종 용어도 생겨날 정도다.

 이번 허리케인 카트리나 대재앙은, 거듭 주어지는 경고에 주의를 기울여 미리 대비하고 준비했더라면 피할 수 있을 뻔한 것이었으며, 또 언젠가 한번은 큰 참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식자들이 거듭 경고한 경고를 무시한 데에서 기인한 인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이런 일은 우리에게 결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방심한 주민들의 방심과 불신이 더 많은 피해를 불러들였다고 할 수 있다. 이번 참사를 노아의 때와 비교하여 생각해 보면서, 이 일은 임박한 재림을 기다리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하나의 경종이 되고 있다.

4부 - 노아의 때

 예수님께서 감람산에 계실 때에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 질문하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일월 성신에는 징조가 있겠고 땅에서는 민족들이 바다와 파도의 우는 소리를 인하여 혼란한 중에 곤고하리라.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일을 생각하고 무서워하므로 기절하리니 이는 하늘의 권능들이 흔들리겠음이라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눅 21:25~26, 마 24:37).

 수많은 이재민과 막대한 수의 사망자, 그리고 미국의 경제와 오일산업에 큰 영향을 끼친 허리케인 카트리나는 하나 둘 씩 성취되는 재림의 징조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사람들은 갑자기 임한 재난에 속수무책이었고, 두려움과 무서움에 질려 곤고하고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예수께서는 세상 끝의 징조에 대해 말씀하시며 많은 사람들이 세상에 임할 재난들을 인하여 무서워하고 기절하리라고 하셨다. 이어서 말씀하시기를, 인자의 임하는 날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하셨다. 노아의 때는 어떠하였을까? 그리고 노아의 시대의 사람들의 생활과 영적인 상태는 과연 어떠하였을까?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시간에 살고 있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노아의 시대를 재조명해 보면 우리는 거기서 큰 교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함께 연구하여 보자.

노아의 시대의 배경과 환경
 
성경 구약에 나오는 노아의 시대에는 아담의 범죄와 가인의 살인죄의 결과로 이 지상에 이중의 저주가 지워져 있을 때였다. 그러나 이 저주는 천연계의 외관에 큰 변화를 가져오지는 않았다. 쇠퇴의 분명한 징후들이 있었지만 땅은 여전히 풍부하고 아름다웠다. 언덕들에는 열매가 주렁주렁 달린 가지들을 지탱해 주는 장엄한 나무들이 무성하였고 정원과 같은 넓은 평야는 신록으로 향기로웠다.

 아담이 생명을 연장시키는 나무에 접근할 수 있었던 때로부터 수세대가 지났을 뿐이어서 사람의 수명은 아직도 백년을 단위로 헤아렸고, 타락의 징후인 질병이나 쇠약함이 없었으므로 사람들은 건장하였다. 그렇게 비상한 계획력과 실행력을 가졌던 그 장수한 사람들이 하나님께 봉사하는 데 헌신하였더라면, 그들은 세상에서 창조주의 성호를 찬양의 대상으로 만들었을 것이며, 창조주께서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 목적을 달성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이렇게 하는 데 실패하였다. 신장과 체력이 탁월하고, 지혜가 뛰어나고, 가장 정교하고 놀라운 일들을 고안하는 데 재간이 있는 거인들이 많았지만, 죄악을 엄격하게 제어하지 않는 그들의 죄악은 그들의 재간과 정신적 능력에 비례하였다.

 그 당시는 금, 은과 보석들이 풍부하게 있었다. 하나님께서는 홍수 전에 살았던 이 사람들에게 풍요한 선물을 많이 주셨다. 그러나 그들은 그분의 선물을 자신들을 영화스럽게 하는 데 사용했으며, 그들의 애정을 선물들을 주신 분에게가 아닌 선물들에만 둠으로써 그것들을 저주로 만들었다. 그들은 금·은·보석과 상품(上品)의 목재를 써서 그들 자신을 위하여 주택을 건축하였고, 그들의 가옥을 가장 공교한 솜씨로 아름답게 꾸미는데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앞지르려고 노력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교만한 마음의 욕망을 만족시키기만을 추구했으며 쾌락과 사악의 길에 빠졌다. 마음에 하나님 두기 싫어한 그들은 얼마되지 않아 그분의 존재까지 부인하기에 이르렀다.

우상숭배와 악의 성행
 
노아 당시 사람들은 하나님 대신에 천연계를 숭상하였다. 그들은 천재적인 인간을 찬미하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작품을 숭배하였고 자녀들에게 아로새긴 우상에게 절하라고 가르쳤다. 푸른 들과 보기 좋은 나무 그늘 아래 그들은 우상들의 제단들을 쌓았으며, 일년 내내 잎이 무성했던 넓은 숲들은 거짓 신들을 예배하는 데 바쳐졌다. 사람들은 하나님을 그들의 지식 밖에 두고 그들이 상상해서 만든 피조물들을 숭배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로 그들은 점점 더 타락하게 되었다. 우상을 만드는 자와 그것을 의지하는 자가 다 그와 같으리로다(시 115:8).

 바라봄으로 변화하는 것이 인간의 마음의 법칙이다. 사람은 진리와 순결과 거룩함에 대하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개념 이상으로 높아지지 않는다. 만일 마음이 보통 인간성의 수준 이상으로 높여지지 아니하고, 그것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와 사랑을 명상하도록 높여지지 않는다면, 사람은 계속적으로 점점 더 타락하게 될 것이다.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자들은 그들의 신들에게 인간의 속성과 성정을 부여했으며, 그렇게 함으로써 그들의 품성의 수준은 죄악된 인간성의 수준까지 저락되었다. 그 결과로 그들은 더럽혀졌다.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창 6:5,11).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당신의 계명을 생애의 법칙으로 주셨으나, 그분의 율법은 범해졌으며 그 결과 생각해 낼 수 있는 온갖 죄가 나타났다. 사람들의 사악함은 공공연하고 담대하였으며, 공의는 땅에 짓밟힌 바 되고, 압제받는 자들의 부르짖음은 하늘에 상달되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정하신 바와는 반대로 일부 다처가 매우 일찍이 시작되었다. 주께서는 아담에게 한 아내를 주심으로 그것에 관한 당신의 규칙을 보이셨다. 그러나 타락한 후에 사람들은 자신들의 죄악적인 욕망을 따르기로 선택하였다. 그 결과로 범죄와 비참하고 불행한 일이 신속하게 증가하였다. 결혼 관계나 재산의 소유권도 존중되지 않았다. 이웃의 아내나 소유물이 탐이 났을 때 누구든지 폭력으로 빼앗았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난폭한 행위를 으시대며 자랑했다. 그들은 동물을 죽이는 일을 낙으로 삼았다. 그리고 육식을 함으로 그들은 더욱더 잔인하고 피에 굶주리게 되었다. 그리하여 마침내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놀랍도록 대수롭지 않게 여기게 되었다.

홍수의 예고
 
세계는 그 초기에 있었으나, 죄악은 매우 깊고 널리 퍼져서 하나님께서 더 이상 그것을 참으실 수 없으셨다. 그리하여 그분은 마침내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창 6:7)겠다고 말씀하셨다. 그분은 그들이 자신들의 죄로 세계와 그의 풍부한 귀중품을 더럽히는 일을 그치지 않는다면, 그들을 그분의 우주에서 제거하시고 그들을 축복하시기 위하여 기쁨으로 주셨던 모든 것을 멸망시킬 것이었다. 그분은 들의 짐승들과 그렇게 풍부하게 양식을 공급했던 식물(植物)을 쓸어 버리시고 아름다운 지구를 황폐와 파멸의 장면으로 변모케 하실 것이었다.

 그러나 도처에 횡행하는 부패 가운데서도 므두셀라와 노아와 다른 많은 사람들은 참 하나님에 관한 지식을 간직하며, 도덕적 사악의 조수를 막아 보려고 노력하였다. 홍수 120년 전에 주께서 거룩한 천사를 통하여 노아에게 그분의 계획을 나타내시고, 방주를 짓도록 지시하셨다. 방주를 짓는 동안 노아는 하나님께서 세상에 홍수를 내리셔서 악인들을 멸하실 것이라는 기별을 전파하도록 되어 있었다. 이 기별을 믿고 회개와 개혁으로 그 사건을 위하여 준비하는 자들은 용서를 받고 구원을 얻을 것이었다. 에녹은 하나님께서 홍수에 관하여 자기에게 보여 주신 바를 그의 자손들에게 반복하여 전파하였으며, 노아의 설교를 살아서 들은 므두셀라와 그의 아들들도 방주를 짓는 일에 조력하였다.

5부 - 노아의 경고

 홍수가 임한 이유
 
성경 창세기에 보면, 이 땅 위에 홍수가 올 수 밖에 없었던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때에 온 땅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여 강포가 땅에 충만한지라. 하나님이 보신즉 땅이 패괴하였으니 이는 땅에서 모든 혈육 있는 자의 행위가 패괴함이었더라(창 6:11~12).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 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창 6:5~7). 인간의 하나님께 대한 고의적인 반역과 죄악의 관영은 하나님의 심판을 이 땅에 가져오고 있었다. 곧 이 땅위에 큰 홍수가 임할 것이었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창 6:8~9).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모든 혈육 있는 자의 강포가 땅에 가득하므로 그 끝날이 내 앞에 이르렀으니 내가 그들을 땅과 함께 멸하리라(창 6:13).

방주를 지으라고 명령하심
 
하나님이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잣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짓되... (창 6:13~14). 하나님께서는 의로운 노아와 함께 누구든지 원하기만 하면 구원을 얻고 멸망을 피하도록 앞으로 올 홍수에 대비하여 큰 방주를 짓도록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방주의 정확한 치수와 건축에 관하여 세부에 이르기까지 일일이 확실한 지시를 주셨다. 인간의 지혜로는 그렇게 강력하고 내구성 있는 큰 건축물을 고안해 낼 수 없었다. 하나님은 설계자이시고 노아는 건축가였다. 그것은 물 위에 뜨게 하기 위하여 선체(船體)와 같이 건조되었으나, 여러 면에서는 집을 더 닮았다. 그것은 삼층으로 되어 있었으며, 문은 옆에 하나밖에 없었다. 광선은 위에서 들어오게 하고, 여러 방도 다 빛이 들어오도록 만들어졌다. 방주를 건축하는 데 사용된 목재는 수백년 동안 부패하지 않는 나무였다.

 이 굉장한 건조물의 건축 공정(工程)은 느리고 힘들었다. 나무들의 엄청난 크기와 그 재목의 특성 때문에 더 강한 체력을 가졌던 그 당시 사람들에게도, 지금보다 목재를 준비하는 데 훨씬 더 많은 노력이 들었다. 그 공사를 완전히 하기 위하여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지만 그 방주 자체만으로는 지상에 임할 큰 폭풍우를 견뎌낼 수 없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만이 맹렬한 물결 위에서 그분의 종들을 보전하실 수 있으셨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지 못하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방주를 예비하여 그 집을 구원하였으니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좇는 의의 후사가 되었(히 11:7)다.

노아의 순종과 경고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믿고 한번도 비나 홍수를 본 적이 없었지만, 방주를 짓기 시작하였다. 그는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을 그대로 믿는 모본을 세상에 보여 주었다. 그는 자신이 소유했던 모든 것을 방주를 짓는데 바쳤다. 그가 마른 땅 위에 저 굉장한 배를 짓기 시작하였을 때에 많은 군중은 사방에서 그 이상스러운 광경을 보려고 왔으며, 노아는 방주를 지으면서 이 세상에 큰 홍수가 올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의 때가 올 것에 대하여 경고하고 설교하였다. 방주 짓는 것을 보러 온 사람들은 그 비범한 설교자의 진지하고 열렬한 말을 들을 수 있었다. 방주를 짓기 위하여 내리치는 망치질 하나 하나는 백성들에게 한 증거였다. 노아가 세상에 그의 경고의 기별을 전하고 있는 동안 그의 업적이 그의 성실성을 증거하였다. 이와 같이 하여 그의 믿음은 온전케 되었고 분명하게 드러났다.

 많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경고를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으나 그들은 참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는 않았다. 그들은 자기 죄를 버릴 마음이 없었다. 홍수가 이르기 전 지나간 기간 동안에 그들의 믿음은 시험을 당하였으며, 그들은 그 시험을 견디지 못하였다. 널리 퍼진 불신에 압도되어 마침내 그들은 먼저 사귀던 동료들과 합세하여 엄숙한 기별을 거절하였다. 어떤 사람들은 깊은 감명을 받고 경고의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였으나 희롱과 조소하는 자들이 너무 많아서 저들도 같은 정신에 감염되어, 얼마 안있어 은혜의 초청을 거부하고 가장 담대하고 무례한 조소자들의 무리에 가담하였다. 그렇게 되는 까닭은, 한 때 빛을 받았었지만 죄를 깨닫게 하시는 하나님의 영을 저항해 온 자들만큼 무모하며 그처럼 깊이 죄에 빠지는 자가 없기 때문이다.

백성들의 조롱
 
그 세대의 사람들 모두가 우상 숭배자들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자라고 공언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우상들은 신의 대표물이며, 그것들을 통하여 백성이 거룩하신 존재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노아의 설교를 앞장서서 거절한 자들은 바로 이 부류의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물질적인 것으로 하나님을 대표하려고 노력하였기 때문에, 그들의 마음은 하나님의 위엄과 권세를 알아보는 눈이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품성이나 그분의 요구들의 신성하고 불변적인 성질을 깨닫지 못하였다. 죄가 보편화됨에 따라, 그것이 점점 더 죄악적으로 보이지 않았으며, 마침내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은 더 이상 구속력이 없으며, 죄를 처벌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품에 배치된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그들은 그분의 심판이 지상에 임하게 되어 있다는 것을 부인하였다. 그 세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켰더라면, 그들은 그분의 종의 경고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알아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마음은 빛을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너무도 어둡게 되었기 때문에 그들은 진정으로 노아의 기별이 기만이라고 믿었다.

 홍수 직전에 세속적이며 영광을 받은 위인들과 현인들은 하나님의 위협은 겁을 주려는 것뿐이며 결코 실제로 이행되지 않을 것이다! 놀랄 필요가 없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에 의한 세계의 파멸과 그분이 창조하신 존재에 대한 처벌은 결코 발생하지 않을 것이다. 안심하라. 두려워 말라. 노아는 무모한 광신자다!라고 말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현혹당한 그 노인의 어리석음을 놀려 댔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 마음을 겸비하게 하기는커녕 하나님의 종을 통하여 아무 경고도 받지 않은 것처럼 불순종과 사악함을 계속하였다.

노아의 믿음과 충성
 
그러나 노아는 폭풍우 가운데 반석같이 굳게 섰다. 대중의 멸시와 조롱에 둘러싸인 그는 거룩한 성실과 확고부동한 충성을 나타냈다. 그의 말은 그분의 종을 통하여 사람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의 목소리였기 때문에 능력이 있었다. 120년간 그의 엄숙한 음성이 인간의 지혜로 판단해 볼 때 불가능한 사건들에 관하여 그 세대 사람들의 귀를 울리고 있는 동안, 하나님과의 연결이 그를 무한하신 능력 안에서 강하게 만들었다.

 여러 사람들이 노아의 설교에 마음이 끌렸으며, 그 경고가 참말이 아닐까 하여 마음이 흔들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곧 그들 주위의 현명하고 지혜로운 사람들이 노아의 말을 불신하는 것을 보고 마음을 놓았다. 노아의 이야기는 납득하기가 어려워 보였다. 홍수 이전 세상 사람들은 수세기 동안 자연 법칙은 변한 적이 없었다고 판단을 내렸다. 계절의 순환은 그 순서대로 이르러 왔었다. 지금까지 비가 내린 적은 결코 없었으며, 땅은 안개나 이슬로 물 공급을 받았다. 강들은 아직까지 그들의 경계선을 넘어 범람한 적이 없었고, 강물을 안전하게 바다까지 날랐다. 고정된 하나님의 명령은 물이 제방을 넘어 범람하지 못하게 하였다. 그러나 이 조롱하는 사람들은 네가 여기까지 오고 넘어가지 못한(욥 38:11)다고 말씀하시며 물들을 멈추게 하신 그분의 손길을 인식하지 못하였다.

 자연계에 특별한 변화없이 시간이 흘러가자, 때때로 공포로 떨었던 자들이 안심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추론하듯이 자연계는 자연계를 만드신 하나님 위에 있으며, 자연 법칙은 매우 확고하게 확립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도 그것들을 변경시키실 수 없다고 추론하였다. 노아의 기별이 옳다면, 자연은 그 궤도에서 이탈한 것이 될 것이라고 추론하면서, 그들은 세상 사람들의 마음속에 노아의 기별을 일종의 기만 곧 망상으로 생각하게 하였다. 그들은 경고를 받기 전과 똑같이 행동함으로써 하나님의 경고에 대한 그들의 멸시를 나타냈다. 그들은 연락과 폭식의 잔치를 계속 열었다. 그들은 먹고 마시며, 심고 지으며, 장래에 얻기를 바라는 이득에 관한 그들의 계획을 세웠다. 그들은 무한하신 하나님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해 더 한층 사악하게 행동하였고, 하나님의 율법을 더욱 더 도전적인 태도로 무시하였다. 그들은 노아가 말한 것에 조금이라도 참된 것이 있다면 세상에서 명성이 높은 사람들-현명한 이들, 사려 깊은 이들, 위인들-이 그것을 깨달았을 것이라고 단언하였다.

 홍수전 사람들이 그 경고를 믿고 그들의 악한 행실을 회개하였더라면, 주께서 후세에 니느웨에서 행하신 것처럼 그분의 진노를 돌이키셨을 것이었다. 그러나 양심의 견책과 하나님의 예언자의 경고를 완강히 거절함으로 그 세대 사람들은 그들의 죄악의 잔을 채웠고, 멸망의 때는 무르익었다.

노아의 마지막 경고와 기이한 현상
 
경고의 기별을 믿지 않는 자들의 은혜의 기간은 거의 끝나가고 있었다. 노아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교훈들을 충실히 실행했다. 방주는 주께서 지시하신 대로 각 부분이 완성되었고 사람과 짐승을 위한 양식도 저장되었다. 이제 하나님의 종은 백성에게 마지막으로 엄숙한 호소를 하였다.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애절한 열망을 가지고 그는 찾을 수 있는 동안에 피난처를 구하도록 그들에게 간청하였다. 그러나 또 다시 그들은 그의 말을 배척하고 농담과 조소의 소리를 높였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조롱하던 군중이 침묵에 휩싸였다. 각종 짐승, 가장 사나운 짐승에서 온순한 짐승뿐 아니라 야수들에 이르기까지 각종 짐승들이 산과 숲에서 나와 조용히 방주를 향하여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급한 바람 같은 소리가 들리면서 사방에서 새들이 날아 들어오는데, 그들의 수효는 하늘이 어두워질 정도였으며 질서 정연하게 방주로 들어갔다. 동물들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반면에 사람들은 불순종하였다. 거룩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암수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가고 정결한 짐승은 일곱 쌍씩 들어갔다. 세상 사람들은 놀라움으로, 어떤 사람들은 무서움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았다. 이 예사롭지 않은 사건을 설명하도록 철학자들을 불렀지만 헛수고였다. 이것은 그들이 설명할 수 없는 신비였다. 그러나 사람들은 빛을 계속적으로 거절함으로 말미암아 마음이 아주 강퍅해졌기 때문에, 이러한 광경도 그들에게 순간적인 인상밖에 줄 수 없었다. 태양이 여전히 영광스럽게 빛나고, 땅이 거의 에덴의 아름다움으로 옷입은 것을 보았을 때에, 이 멸망 받을 운명에 처한 사람들은 소란한 환락으로 그들의 마음에 떠오르는 두려움을 없애버렸고, 그들의 난폭한 행위로 이미 일깨워진 하나님의 진노의 재앙을 자신들에게 불러들이는 것같이 보였다.

방주로 들어감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창 7:1)고 명하셨다. 노아의 경고가 세상 사람들에게는 거절을 당하였지만 그의 감화와 모본이 그의 가족에게는 복된 결과를 가져왔다. 그의 충성과 성실의 보상으로써 하나님께서는 그의 모든 가족들을 그와 함께 구원하셨다. 부모의 성실에 대한 이 얼마나 큰 격려인가!

 드디어 죄많은 인류에 대한 자비의 간청은 그쳐졌다. 들의 짐승들과 공중의 새들은 피난처로 들어갔고, 노아와 그의 가족은 방주 안에 있었다. 여호와께서 그를 닫아 넣으셨다. 눈부신 섬광이 나타나고, 번개보다 더 환한 영광의 구름이 하늘에서 내려와 방주 문 앞에 떠돌았다. 방주 안에 들어간 사람들이 닫을 수 없는 육중한 문이 눈에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하여 천천히 닫혔다. 노아는 방주 안에 들어가 있었고, 하나님의 긍휼을 거절한 자들은 닫힌 방주 밖에 있었다. 하나님께서 방주의 문을 닫으셨으며, 하나님께서만 그것을 여실 수 있었다. 그와 같이 하늘 구름을 타시고 오시기 전, 그리스도께서 죄인을 위한 그분의 중보를 그치실 때에 자비의 문은 닫힐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하나님의 은혜가 더 이상 악인들을 제어하지 않을 것이며, 하나님의 자비를 거절해 온 자들은 사단에게 완전히 지배될 것이다.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을 멸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마치 노아가 닫혀진 방주 안에 있었던 것처럼 의인들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될 것이다.

 노아와 그의 가족이 방주에 들어간 후 7일 동안 폭풍우가 올 아무런 징조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 기간 동안 저들의 믿음은 시험을 당하였다. 밖에 있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승리의 때이었다. 분명한 지체는, 노아의 기별은 기만이었고 홍수는 결코 이르지 않을 것이라는 그들의 신념을 더욱 굳게 해 주었다. 짐승들과 새들이 방주에 들어가며, 하나님의 천사가 문을 닫은 그 엄숙한 광경을 목격하고도 그들은 여전히 농담을 하면서 술을 마시고 흥청거리기를 계속하였고, 심지어는 하나님의 능력의 그 놀라운 표현을 조롱하였다. 그들은 떼를 지어 방주 주위에 모여 그 안에 들어가 있는 사람들을 비웃고 대담하게도 전에 없던 난폭한 행위를 감행하였다.

6부 - 시작되는 홍수

홍수가 임함

 그런데, 노아의 가족이 방주로 들어간지 팔일이 되는 날에 검은 구름이 온 하늘을 덮었다. 나지막한 천둥소리와 번갯불이 뒤따랐다. 얼마 안가서 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하였다.

 세상 사람들은 이와 같은 것을 전혀 목격한 적이 없었으므로 그들의 마음은 공포에 휩싸였다. 모든 사람들은 참으로 노아가 옳았던 것일까, 세상은 멸망당할 운명에 있는 것일까? 하고 수군거렸다. 하늘은 점점 더 어두워지고 내리는 비는 점점 더 빨라졌다. 짐승들은 무서워서 미친 듯이 돌아다니고, 그들의 귀에 시끄러운 울음소리는 그들 자신의 운명과 사람의 운명을 슬퍼하는 것 같았다. 그 때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창 7:11)렸다. 물은 구름 가운데서 큰 폭포들을 이루어 쏟아지는 것처럼 보였다. 강들은 범람하여 골짜기로 넘쳐 흘렀다. 형언할 수 없는 강력한 힘으로 땅에서 물이 솟구쳐 나왔으며, 큰 바위들은 수백피트 공중으로 높이 치솟았다가 떨어지면서 땅속 깊이 묻혔다.

 백성들은 그들이 만든 것들이 파괴되는 것을 처음으로 보았다. 그들의 화려한 가옥과 아름다운 정원과 우상을 세워두었던 삼림들이 하늘에서 떨어진 번개로 인하여 파괴되고, 그 파편들이 멀리 그리고 넓게 널려 있었다. 사람을 제물로 드려오던 제단들은 파괴되고, 그 숭배자들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권능에 떨며, 그들의 부패와 우상숭배가 그들의 멸망을 초래하였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폭풍우가 점점 더 거세지자 수목, 건물, 바위, 흙이 사방으로 날아가 흩어졌다. 사람과 짐승의 두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 폭풍우의 노호(怒號) 가운데서 하나님의 권위를 무시했던 백성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들렸다. 미칠 듯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방주를 향하여 손을 뻗치며 들어가게 해달라고 애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그들의 애원도 소용이 없었다. 마침내 양심이 각성되어 사람들은 하늘에서 다스리시는 한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그분께 열렬하게 구원을 호소하였으나 그분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듣지 않으셨다.

 그 무서운 시간에 이르러서야 그들은 하나님의 율법을 범한 것이 그들의 멸망을 초래했다는 것을 알았다. 그들은 형벌이 무서워서 그들의 죄를 인정했지만 진정한 통회의 정신이나 죄악의 가증스러움은 조금도 느끼지 않았다. 심판이 물러갔더라면, 그들은 다시 하나님께 대한 반항의 생활로 되돌아 갔을 것이다. 그와 마찬가지로 세상을 불의 홍수로 소멸하기 전, 하나님의 심판이 지상에 내릴 때, 회개하지 않은 자들은 그들의 죄가 어떤 것이었는지, 어떤 점에서 범죄했는지 알게 될 것이다. 즉, 하나님의 거룩한 율법을 멸시한 것이 그들의 죄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옛 세계의 죄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진정한 회개는 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자들은 절망 중에 필사적으로 방주를 부수고 방주 안으로 들어가고자 애썼으나 견고하게 건조된 이 방주는 깨어지지 않았다. 어떤 자들은 방주에 매달려 있다가 밀어닥치는 물결에 휩쓸려 가거나 바위와 나무에 부딪혀 그들의 손을 놓칠 때까지 방주에 매달려 있기도 하였다. 사정없이 불어대는 바람을 맞고 거대한 방주 전체가 진동하였으며 물결이 칠 때마다 뒤흔들렸다. 안에 있던 짐승들은 공포와 고통으로 울부짖었다. 그러나 폭풍우 가운데서도 그것은 계속 안전하게 떠 있었다. 능력이 탁월한 천사들이 그것을 보호하도록 명령을 받았다.

 폭풍우 가운데서 짐승들은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려는 듯이 그들에게로 달려갔다. 어떤 사람들은 짐승들이 좀처럼 죽지 않으며 불어 오르는 물을 피하여 제일 높은 곳으로 올라가리라는 것을 알고, 힘센 짐승들 위에 그들의 자녀들과 자신들을 붙들어 매었다. 어떤 사람들은 언덕이나 산꼭대기에 있는 나무에 자신들을 단단히 붙들어 맸다. 그러나 나무들이 뿌리째 뽑혀 거기 자신들을 묶어 매었던 사람들과 함께 소용돌이치는 파도 속으로 휩쓸려 들어갔다. 안전하게 보이던 곳들이 하나씩 하나씩 무너졌다. 물이 계속 더 높이 불어오르자 사람들은 제일 높은 산으로 피난하였다. 가끔 사람과 짐승이 발 디딜 곳을 차지하기 위하여 서로 싸우다가 둘 다 휩쓸려 갔다.

 가장 높은 산봉우리에 올라간 사람들은 서서히 물에 잠기는 세상과 끝없는 대양을 바라보았다. 하나님의 종의 엄숙한 경고가 더 이상 조소와 희롱의 대상으로 보이지 않았다. 멸망당할 수밖에 없는 그 죄인들이 그들이 무시해 왔던 그 구원의 기회를 얼마나 사모하였을까! 한 시간의 유예의 시간을, 또 한 번의 긍휼의 특권을, 그리고 노아의 입술에서 나오는 초청을 다시 듣기를 그들이 얼마나 애원하였을까! 그러나 자비로운 긍휼의 음성은 그들에게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공의 못지않게 사랑도 하나님의 심판이 죄를 제어해야 할 것을 요구하였다. 복수의 물결은 마지막 피난처를 휩쓸었으며, 하나님을 멸시하던 자들은 깊은 물 속에 빠져 죽었다.

홍수와 세상 끝
 
이 세상은 그와 같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때 세상은 물의 넘침으로 멸망당하였으되, 이제 하늘과 땅은 그 동일한 말씀으로 불사르기 위하여 간수하신 바 되어 경건치 아니한 사람들의 심판과 멸망의 날까지 보존하여 두(벧후 3:5-7)셨다. 또 하나의 폭풍우가 다가오고 있다. 세상은 다시 황폐케 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휩쓸릴 것이요, 죄와 죄인들은 멸망당할 것이다.

 홍수 전 세계에 멸망을 불러들인 죄들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고, 그분의 율법은 무관심과 멸시를 받고 있다. 지금 이 세대는 노아 시대만큼이나 크게 세속화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마 24:38,39)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먹고 마신 것으로 홍수 전 사람들을 정죄하지는 않으셨다. 그분은 그들의 육체적 필요를 공급할 수 있는 땅의 소산들을 그들에게 풍부하게 주셨다. 그들의 죄는 주신 분께 감사드림없이 이 선물들을 취한 것과 식욕을 자제하지 못하고 방종함으로 말미암아 자신들을 타락시킨 데 있었다. 결혼하는 것은 그들에게 합법적이었다. 결혼은 하나님의 질서 가운데 있었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최초의 제도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분은 결혼 제도에 대한 특별한 지시를 주셨으며 이것을 거룩함과 미로 옷 입히셨다. 그러나 이 지시는 잊혀졌고, 결혼은 왜곡되어 정욕을 채우는 수단으로 전락되어 버렸다.

 현재의 상황도 이와 비슷하다. 그 자체로는 합법적인 것이 지나치게 방종되고 있으며 식욕은 자제됨 없이 방종되고 있다. 오늘날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라고 공언하는 사람들이 취한 사람들과 함께 먹고 마시면서 그들의 이름은 존중받는 교회 녹명책에 올려 놓고 있다. 부절제는 도덕적 능력과 정신적 능력들을 마비시키며 보다 저급한 정욕들에 탐닉하는 길을 준비한다. 많은 사람들은 그들의 관능적 욕망을 제어할 도덕적 의무를 느끼지 못하고 색욕의 노예가 된다. 사람들은 감각적 쾌락을 위해서, 이 세상과 이생만을 위하여 살고 있다. 사치는 사회의 각계 각층에 퍼져 있다. 그 사치와 허영을 위하여 성실성을 희생하고 있다.

 속히 부자가 되려는 사람들은 공의를 굽게 하며 가난한 자를 압제한다. 그리고 노예들과 사람의 영혼이 아직도 매매되고 있다. 사기와 뇌물수수와 도둑질은 높은 곳에서나 낮은 곳에서나 정죄 받지 않고 활개를 치고 있다. 신문 지상에는 살인에 대한 기사로 가득 차는데 그 범죄들은 너무나 잔인하고 까닭없는 것이기 때문에 인류의 모든 본능이 말살된 것같이 보인다. 그리고 이러한 잔학 행위들은 너무도 흔히 발생되기 때문에 그것들이 논평의 대상이 되거나 경악을 일으키는 일도 거의 없다. 무정부주의 정신이 각국에 퍼지고 있으며, 세계를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는 폭동들은 일단 통제를 벗어나면 세상을 재난과 황폐로 채우게 될, 갇혀있는 정욕과 무법과 불의의 징후에 지나지 않는다. 현 사회는 성경에 기록된 홍수 전 세계의 상황으로 신속히 빠져 들어가고 있다. 지금도, 소위 그리스도교국이라고 공언하는 지역에서 고대 세계 죄인들의 멸망을 초래한 그 흉악하고 무서운 범죄들이 날마다 저질러지고 있다.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홍수 전에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회개하여 임박한 멸망을 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노아를 보내어 세상을 경고하셨다. 그리스도의 재림의 시기가 가까워짐에 따라 주께서는 그 큰 사건을 위하여 준비하도록 당신의 종들을 보내시사 세상을 경고하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생애를 살고 있으며, 이제 그분은 긍휼 가운데서 하나님의 신성한 계명에 순종하도록 그들을 부르고 계신다. 하나님께 대하여 회개하고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들의 죄를 버리는 자들은 모두 용서를 받는다. 그러나 죄를 버리는 데는 너무나 큰 희생이 요구된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하나님의 도덕적 정부의 순결한 원칙이 그들의 생활과 조화되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그분의 경고를 거절하고 그분의 율법의 권위를 부인한다.

 홍수 전 세상의 수많은 사람들 중에 단 여덟 사람만 노아를 통하여 말씀하신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하였다. 120년 동안 의의 설교자는 다가오는 멸망에 대하여 세상을 경고하였다. 그러나 그의 기별은 거절과 멸시를 당하였다. 그 시대뿐만 아니라 현 세대도 그럴 것이다. 입법자이신 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를 벌하시기 위하여 오시기 전에 범법자들을 회개하고 다시 하나님의 율법에 순종하도록 경고를 받는다. 그러나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이 경고는 헛될 것이다. 사도 베드로는 말세에 기롱하는 자들이 와서 자기의 정욕을 좇아 행하며 기롱하여 가로되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조상들이 잔 후로부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벧후 3:3,4)고 할 것이라고 기록하였다. 우리는 바로 이 말을 공공연한 불신자에게서 뿐 아니라 우리 나라에서 설교단을 차지한 많은 사람들에게서 거듭 듣고 있지 않은가? 그들은 다음과 같이 부르짖는다.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온 세계가 회개하고 의인이 1천년 동안 왕노릇 할 것이므로 놀랄 이유가 전혀 없다. 평안하다, 평안하다! 만물은 태초에 있었던 것같이 계속된다. 쓸데 없이 걱정하는 사람들의 흥분시키는 기별에 아무도 불안해 하지 마시오. 그러나 천년기에 대한 이같은 교리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사도의 가르침과 조화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인자의 올 때에 세상에서 믿음을 보겠느냐(눅 18:8)는 의미심장한 질문을 하셨다. 우리가 본 바와 같이 그분은 세상의 상태가 노아의 때와 같을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바울은 끝날이 가까워 올 수록 악이 증가되는 것을 보리라고 우리에게 경고한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딤전 4:1). 그 사도는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리(딤후 3:1)라고 말한다. 그는 경건의 모양을 가진 자들 가운데서 발견될 놀라운 죄의 일람표를 제시한다.

 홍수 이전 사람들은 저들의 은혜의 기간이 마쳐지고 있을 때 흥분시키는 오락과 연락에 몰두했다. 큰 영향력과 세력을 가진 자들은 아무도 마지막 엄숙한 경고에 감명을 받지 못하게 하기 위하여 백성들의 마음을 계속 환락과 쾌락에 몰두시키고자 노력하고 있었다. 오늘날 우리는 같은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 것을 보고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종들이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는 기별을 전하고 있는 동안 세상 사람들은 오락과 쾌락 추구에 여념이 없다. 하나님에 대하여 무관심하게 만들고 다가오는 멸망에서 그들을 구원할 수 있는 유일한 능력인 진리들로 말미암아 감명을 받지 못하게 하는 흥분적인 일들이 계속된다.

 노아 시대의 철학자들이 세상이 물로 멸망을 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선언한 것처럼 오늘날도, 세상이 불로 멸망을 당하는 것은 자연 법칙들에 모순되기 때문에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거하고자 노력하는 과학자들이 있다. 그러나 자연계를 만드신 하나님, 그 법칙들을 제정하시고 통제하시는 분은, 당신께서 만드신 것들을 자신의 목적을 이루는 데 쓰실 수 있으시다. 위인들과 현인들이 물로 세상이 멸망당하는 것을 불가능하다는 것을 증명하고 득의에 차 있을 때, 백성의 두려움이 진정되었을 때, 모든 사람들이 노아의 경고와 예언을 무시하여 기만으로 여기고 그를 광신자로 바라보았을 때, 바로 그 때 하나님의 정하신 때가 다가왔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창 7:11) 조롱하던 자들은 홍수에 엄몰되었다. 사람들은 그들의 뽐내던 모든 철학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지혜는 어리석다는 것과 크신 입법자는 자연의 법칙보다 위대하시다는 것, 전능하신 분은 당신의 목적을 성취시킬 수단이 없어서 어쩔줄 몰라하는 분이 아니시라는 것을 너무도 늦게야 발견하였다.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눅 17:26,30).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철학적 이론이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공포를 떨어 버리고, 종교 지도자들이 평화와 번영의 장구한 시대가 올 것을 가리키고 있을 때, 세상 사람들이 심고 집짓고 잔치하고 연락하며 하나님의 경고를 거절하고 그분의 사자들을 조롱하며 그들의 사업과 향락에 몰두하고 있을 때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이르리니& 결단코 피하지 못(살전 5:3)할 것이다.

7부 - 세상 끝에 나타날 또 다른 에녹

 성경을 읽은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홍수가 오기 전에 신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땅에 존재했음을 알고 있다. 그 당시 그렇게 죄악의 창궐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통하여 향상되고 고결하게 되어 하늘 가족처럼 산 거룩한 사람들의 무리가 있었다.

 그들은 크고 거룩한 사명 즉 그들의 시대 사람들뿐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에게도 의의 성품을 계발시키고 경건의 공과를 가르칠 사명을 가졌었다. 성경 가운데는 이처럼 탁월한 사람들이 몇 사람밖에는 언급되지 않았다. 그러나 각 시대를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충성스러운 증인들과 성심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가지고 계셨다.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이 에녹이었다. 에녹은 방주를 짓는 것을 도운 므두셀라의 아버지였다.

 에녹에 관하여 성경은 그가 65세 때 아들을 낳았다고 기록하였다. 그후 그는 3백 년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다. 에녹은 이 옛시대에 하나님을 사랑하고 공경하였으며 그분의 계명들을 지켰다. 그는 거룩한 계보의 한 사람이요, 참된 신앙의 보존자들의 한 사람이요 약속된 여인의 후손의 선조들 중의 한 사람이었다. 그는 아담으로부터 타락의 어두운 이야기와 그 약속에 나타난 하나님의 은혜에 관한, 위안을 주는 이야기를 배웠다. 그는 오실 구속주를 의지했다. 장남이 태어난 후 에녹은 더 높은 경험에 이르고 하나님과 더 친밀한 교제 가운데로 이끌려 들어갔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자신의 의무와 책임을 보다 더 완전히 깨달았다. 아버지에 대한 자녀의 사랑과 그의 보호에 대한 아이의 단순한 신뢰를 볼 때, 또한 그의 장남에 대한 깊은 애정과 부드러움을 마음에 느꼈을 때, 그는 당신의 아들을 사람들에게 선물로 주신 하나님의 그 놀라운 사랑과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늘 아버지 안에서 편히 쉴 수 있는 신뢰의 귀중한 공과를 배웠다.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무한하고 측량할 수 없는 사랑이 밤낮 그의 명상의 주제가 되었다. 그는 전심 전력을 다하여 그가 살고 있던 주위의 사람들에게 그 사랑을 나타내려고 애썼다.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한 것은 황홀경 속에서나 이상 중에서가 아니라 그의 일상 생활의 모든 의무를 행하는 가운데서였다. 세상에서 하나님을 위하여 할 일이 있었던 까닭에 그는 이 세상을 완전히 등진 은둔자가 되지 않았다. 가정에서와 사교 생활에서, 남편이요 아버지로서, 친구로서, 시민으로서 그는 확고 부동한 하나님의 종이었다. 에녹의 마음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였다. 왜냐하면 두 사람이 의합지 못하(암 3:3)면 동행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동행은 3백 년간 계속되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거나 예수의 재림이 임박함을 안다면, 훨씬 더 열렬하고 헌신적이 되지 않을 그리스도인들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에녹의 믿음은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강해지고 그의 사랑은 더 열렬하게 되었다.

 에녹은 확고 부동하고 고도로 세련된 마음의 소유자였으며 지식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는 하나님께 특별한 계시를 받는 영광을 얻었으나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완전하심을 항상 느끼면서 하나님과 끊임없이 교제함으로 가장 겸손한 사람들 가운데 하나가 되었다. 하나님과의 연결이 긴밀하게 되면 될 수록 자신의 연약함과 불완전함을 더욱더 깊이 느꼈다. 경건하지 않은 자들의 악행이 증가 하는 것을 슬퍼하고 그들의 불신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그의 존경을 감소시키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에녹은 그들과의 지속적 교제를 피하고 많은 시간을 한적한 곳에서 보내며 묵상과 기도에 전심하였다. 이와 같이 그는 주의 뜻을 실행하려고 그것을 더 분명히 알고자 주의 앞에서 기다렸다. 그에게 있어서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었으며 그는 바로 하늘의 분위기 가운데서 살았다.

에녹의 계시
 
에녹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가운데 그리스도께서 두번째 나타나실 때의 이 세상의 부패한 상태를 보았다. 그는 이 세상이 유일하신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고, 율법을 짓밟으며 속죄를 경멸하는 거만하고 참람되며 제멋대로 하는 세대가 될 것을 보았다. 그리고 나중에 세상이 멸망할 때, 의인이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는 것과 악인들이 주 앞에서 추방되어 불로 멸망당하는 것을 보았다. 이 하나님의 예언자는 그가 이상 가운데 본 놀라운 광경을 이렇게 말했다. 보라 주께서 그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이는 뭇사람을 심판하사 모든 경건치 않은 자의 경건치 않게 행한 모든 경건치 않은 일& 을 인하여 저희를 정죄하려 하심이라(유 14,15).

 에녹은 의의 전도자가 되어 하나님께서 그에게 계시하신 바를 백성들에게 알렸다. 주를 두려워한 자들은 이 거룩한 사람을 찾아와 그의 교훈을 받고 그와 함께 기도하였다. 그는 또한 공적으로도 일하며, 경고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모든 자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하였다. 그는 두려움 없이 죄를 책망하였다. 그는 그의 시대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설교하며 그들의 악행을 버리라고 간청하면서 도처에 횡행하는 죄악을 책망하고 범죄자들에게 분명히 심판이 내릴 것이라고 그의 세대 사람들에게 경고하였다. 에녹을 통하여 말씀하신 분은 그리스도의 영이셨다. 그 영은 언제나 사랑과 동정과 간청의 말씀만 하시는 것이 아니다. 거룩한 사람들이 한 말은 언제나 부드러운 것들만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좌우에 날선 검같이 날카롭고 예리한 것을 말하도록 그분의 사자들의 마음과 입술에 진리를 두신다.

에녹의 생활
 
활동적인 생활 가운데서도 에녹은 하나님과의 교통을 꿋꿋이 유지하였다. 그의 사업이 더 커지고 더 분주하게 되면 될 수록 그는 더 부단히 그리고 열렬하게 기도하였다. 그는 어떤 기간들에는 모든 교제 관계를 떠나 있기를 계속하였다. 한동안 백성들 가운데 머물러 교훈과 행실의 모본으로 그들의 유익을 위하여 일한 후에, 그는 물러나서 하나님께서만 나누어 주실 수 있는 거룩한 지식에 주리고 목말라 하면서 한동안 한적한 곳에서 보내곤 하였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에녹은 점점 더 하나님의 형상을 반영하였다. 그의 얼굴은 거룩한 빛, 예수님의 얼굴에서 비취는 빛으로 빛났다. 그가 하나님과 교통하고 나올 때에 경건하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그의 얼굴에 찍힌 하늘의 인상을 경외심을 가지고 바라보았다. 사람들의 사악함은 극에 달하여 그들에게 멸망이 선고되었다. 세월이 흐름에 따라 인간의 죄악의 조수는 점점 깊어졌고 하나님의 심판의 구름은 모여들어 점점 짙어졌다. 그러나 신앙의 증인 에녹은 그의 길에 굳게 서서 경고하고 간청하고 탄원하고 죄악의 조수를 밀어내어 복수의 심판을 멈추게 하려고 노력하였다. 그의 경고가 죄악적이며 쾌락을 좋아하는 백성들에게 무시당하였을지라도, 그는 하나님께서 인정하신 증거를 가졌으며, 하나님께서 그를 죄의 세계에서 하늘의 순결한 희락의 세계로 데려가실 때까지 편만한 죄악에 맞서서 계속 신실하게 싸웠다. 그 세대 사람들은 금 은 보석을 모으거나, 이 땅에서 소유물을 축적하는 데 관심을 두지 않는 에녹의 어리석음을 조롱하였다. 그러나 에녹의 마음은 영원한 보화에 있었다. 그는 하늘 도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온 가운데서 영광 중에 계신 왕을 바라보았다. 그의 생각과 마음은 하늘에 있었으며 그의 대화는 하늘에 관한 것이었다. 이 세상의 사악함이 많으면 많을 수록 하나님의 집을 사모하는 그의 마음은 더욱 열렬하였다. 지상에 살면서도 에녹은 믿음으로 빛의 영역에서 살았다.

에녹의 모본
 3백년 동안 에녹은 하늘과 조화되기 위하여 영혼의 순결을 추구해 왔었다. 그는 3세기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었다. 날마다 그는 더 밀접한 연합을 바랐었다. 그 교통은 점점 가까워졌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 곁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는 영원한 세계의 문어귀에 섰었고 그와 축복의 나라는 한 걸음 사이였다. 이제 그 문이 열리고 지상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이루어졌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계속되었다. 그는 거룩한 도성의 문을 통과하였다. 그는 인간으로서 하늘에 들어간 첫째 사람이 되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저는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히 11:5)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받을 운명에 처한 세상 가운데서 에녹은 하나님과 매우 밀접한 교제의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음의 권세 아래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이 선지자의 경건한 품성은 그리스도께서 재강림하실 때에 땅에서 구속함을 얻을(계 14:3) 자들이 달성해야 할 거룩한 상태를 대표한다.
3백년 동안 에녹은 하늘과 조화되기 위하여 영혼의 순결을 추구해 왔었다. 그는 3세기 동안 하나님과 동행하였었다. 날마다 그는 더 밀접한 연합을 바랐었다. 그 교통은 점점 가까워졌으며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를 당신 곁으로 데리고 가셨다. 그는 영원한 세계의 문어귀에 섰었고 그와 축복의 나라는 한 걸음 사이였다. 이제 그 문이 열리고 지상에서 그처럼 오랫동안 이루어졌던 하나님과의 동행은 계속되었다. 그는 거룩한 도성의 문을 통과하였다. 그는 인간으로서 하늘에 들어간 첫째 사람이 되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기웠으니& 저는 옮기 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히 11:5)다. 죄악으로 말미암아 멸망받을 운명에 처한 세상 가운데서 에녹은 하나님과 매우 밀접한 교제의 생애를 살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가 죽음의 권세 아래 들어가는 것을 허용하지 않으셨다. 이 선지자의 경건한 품성은 그리스도께서 재강림하실 때에 땅에서 구속함을 얻을(계 14:3) 자들이 달성해야 할 거룩한 상태를 대표한다.

 홍수 전 세계에서처럼 세상 말세에도 죄악이 넘칠 것이다. 사람들은 그들의 부패한 마음의 충동과 기만적인 철학의 가르침을 좇아 하나님의 권위에 대항하여 반역할 것이다. 그러나 에녹과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음의 순결과 하나님의 뜻에 일치되기를 구할 것이며 마침내 그리스도의 형상을 반사할 것이다. 에녹처럼 그들은 주의 재림과 범법에 임할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경고할 것이다. 그들은 거룩한 담화와 모범으로 경건치 않은 자들의 죄를 견책할 것이다. 물로 세상이 멸망당하기 전에 에녹이 하늘로 승천한 것처럼, 산 의인들도 불로 세상이 멸망당하기 전에 하늘로 승천할 것이다.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라.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 여러 말로 서로 위로하라(고전 15:51,52; 살전 4:16-18).

 허리케인 카트리나 사건은 우리에게 주님의 재림이 가가왔음을 말해준다. 노아의 때와 같이 사람들은 거듭된 경고를 무시하고 이 세상은 죄악으로 부패할 것이나,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경건하고 순결한 사람들이 이 땅에 있을 것이다. 그들은 재림을 위하여 준비할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속히 다가 올 하나님의 심판의 날을 위하여 준비시킬 것이다. 독자는 이 세상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보고 깨어나 주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며, 다른 사람들을 준비시키는 에녹과 같은 사람이 되지 않겠는가? 신실히 깨어 기도하며 마지막을 위해 준비하는 사람들이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