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의 마음으로 보고 듣고

 눈을 들어 하늘을 본다. 그리고 가만히 멈추어 서서 귀기울여 본다. 한껏 세운 내 귓바퀴 속으로 공중을 가득 채운 환희로운 새들의 노래가 흘러들어 오고, 그러면 하늘에 가득 찬 아름다운 음률만큼이나 내 마음도 찬란한 음악으로 가득차는 것을 느낀다.

 새들의 색깔 또한 어여쁘다. 카디날 새의 빨간 빛깔도 예쁘지만, 불루제이의 파란 색은 더 눈부시다. 현란한 형형색색의 새의 깃털들을 모아보면 얼마나 멋질까? 아니, 저마다 목청을 돋우는 새들의 노래를 테입에 담으면 얼마나 훌륭한 음악이 될까? 오늘 아침, 혼자 입 속으로 찬송을 불러보며, 새들의 노래만으로도 인생이 풍요롭고 행복할 수 있음을 느낀다.

 하나님께서는 왜 우리에게 눈과 귀와 입을 주셨을까? 우스운 질문 같지만, 여기에는 깨달아야 할 아주 중요한 이유가 있다. 눈은 하나님의 아름다운 창조물들을 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도록 주셨고, 귀는 하나님께서 만드신 창조물들의 아름다운 소리를 듣고 감격하도록, 그리고 진리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완전한 미를 발견하게 하시기 위해 주셨다. 또 입은 우리가 늘 하나님의 사랑을 말하고 노래하고 찬송하게 하기 위하여 주신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창조물인, 만물의 영장이라는 현대의 인간들을 한번 보라! 요즈음 사람들이 자신의 눈과 귀와 입을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지를, 그리고 그것들을 사용하는 방법에 따라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또 얼마나 많은 일들이 달라지는 지를...

미의 애호가이신 하나님
 
하나님은 참 아름다운 분이시다. 하나님은 미의 애호가이시다. 우리가 그분의 창조하신 만물을 보면 그 사실을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왜 하늘을 새들의 음악으로 채우셨는지, 왜 땅을 그렇게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하셨는지, 그리고 왜 대지를 그렇게 부드러운 초록빛 벨벳같은 잔듸로 깔으셨는지를 보면...

 인간이 살기 위해서는 음식이 필요하다. 만일 하나님께서 미의 애호가가 아니셨더라면, 인간들이 먹을 수 있는 채소나 과일이나 곡식만을 창조하셨을 것이다. 그런데 왜 하나님께서는 구태여 새들을 만드셔서 하늘을 아름다운 음악으로 채우시고, 우리로 그것을 듣고 감격하게 하셨을까? 왜 먹을 수 없는 꽃들로 대지를 장식하셔서 우리로 그 찬란함에 현혹되게 하셨을까? 아니, 왜 이 세상은 이다지 아름다운 것들로 둘러싸여 있을까? 인간이 만들어 낼 수 없는 기가막히게 예쁜 자연의 색깔들을 보라! 그것만 보아도 하나님은 아름다움을 좋아하시고 우리가 행복하기를 원하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 수 있지 않은가!

 태초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셨을 때, 창주물들 중에 가장 아름다운 걸작품이었던 인간은, 외모와 성품과 마음이 창조주 하나님을 닮아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고 조화롭고 완전하였다. 하나님과 똑같은 마음과 눈과 귀를 가지고 있었으므로, 귀는 들어야 할 것(하나님의 말씀인 진리)을 잘 듣고, 눈은 보아야 할 것(하나님의 창조의 완전과 아름다우심)을 잘 보고, 입은 하나님의 창조의 경이로움을 늘 찬양하였다. 타락하기 이전의 인류의 시조와, 타락하여 오랜 세월을 살아 온 지금 우리 인간들의 마음과 눈과 귀와 입을 비교해 보라. 지금의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의 창조하신 목적에서 벗어나 있는가를...

 예수님과 성경과 자연계를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보라고 주신 눈, 하나님의 사랑의 기이한 법을 보고 만족을 얻으라고 주신 어여쁜 눈은, 다른 사람의 잘못과 허물과 실수를 보고 못마땅해 하고, 미워하며 흘기는 눈으로 변해 있고, 새들의 노래와 신실한 산 설교자를 통하여 말씀하시는 당신의 사랑의 기별과 진리를 들으라고 주신 귀는, 좋지 않은 소리와 죄악된 것들을 듣기 위해 커져 있고, 하나님의 기이하신 능력과 사랑을 찬양하고 전하기 위해 주신 입은, 다른 사람에 대한 험담과 좋지 않게 모함하는 말들을 하는 입으로 변해 있지 않은가!

하나님의 눈과 귀를
 
이 세상의 모든 일들은 어떻게 보고, 어떻게 듣고, 어떻게 말하는가에 따라 달라진다. 이것으로 인해 많은 일들이 발생하고 일어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마음으로 보고, 마음으로 듣는 법을 터득해야 한다. 그것도 그냥 마음이 아닌 하나님의 마음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 마음 속에, 또한 하나님의 마음을 우리의 눈과 귀에 집어 넣어야 한다. 우리는 날마다 하나님께로부터 그분의 사랑의 성품을 선물로 받아야 한다. 마치 햇빛이 꽃에 여러가지 섬세한 빛깔을 주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품성의 아름다움을 매일 하늘로부터 받아야만 우리는 빛나고 아름다운 삶을 살 수 있다.

 우리 인간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만일 하나님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거나 선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어떤 사람에 대해서 천사의 보호를 즉시 거두어 버리시는 인색한 분이시라면 어떻게 할뻔 했는가? 만일 미래를 예지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어떤 사람의 미래를 너무 뻔히 아시므로, 그 사람은 구원 받을 가망이 없다고 미리 포기하여 성령의 역사를 거두어 버리시는 부정적인 분이시라면 어떻게 할뻔 했는가? 당신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그리고 감격해 본 적이 있는가? 우리를 향해 가지신 하나님의 무한히 긍정적인 믿음과 무한하신 신뢰와 사랑에 대하여... 끝까지 사랑과 인내를 가지고 보아주시고 들어주시는 하나님의 눈과 귀에 대하여...

 세상에는 이상한 눈과 귀를 가진 사람들이 많다. 똑같은 것을 보았는 데도 그것이 각 사람의 눈에 따라 달리 비춰지고, 똑같은 것을 들었는 데도 사람마다 전혀 다른 의미로 들려지고 해석된다. 곧, 어떤 말을 들을 때, 그 말의 의미가 그렇지 않은 데도 그 듣는 사람이 자신의 생각, 자신의 마음 상태에 따라 자기 마음대로 해석하여 들음으로, 그 뜻이 전혀 다른 뜻이 되어 버린다. 그렇게 함으로 이 세상에는 많은 오해와 질시들이 생긴다. 선한 마음과 이해의 눈, 곧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것을 보고 듣고 이해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행복한 세상이 될 것이며, 이 세상에 살지만 우리는 얼마나 하늘에 가까운 사람들이 될 것인가!

성령의 필터를
 
우리들은 우리의 오관(감각기관)을 잘 지켜야 한다. 왜나햐면 이 오관은 우리의 심령으로 들어가는 통로이며, 사단은 이것들을 통하여 우리를 지배하려고 하기 때문이다. 만일 우리가 우리의 마음을 지배하기를 원하고, 헛되고 타락된 사상이 우리의 심령을 더럽히는 것을 막으려 한다면, 우리는 우리의 눈과 귀 등 모든 오관의 충실한 파수꾼이 되어야 한다. 사단은 우리의 오관을 마비시키고 자기의 악한 영향을 불어 넣어 우리를 하나님의 아름다운 진리로부터 떠나게 하려고 노력하며, 좁고 너그럽지 못한 마음, 오해하고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삐뚤어지고 왜곡되고 인색한 마음을 우리의 눈과 귀에 집어 넣어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한다.

 깨끗한 물을 먹기 원하는 사람들은 필터(여과장치)를 넣은 정수기를 사용한다. 우리의 마음과 눈과 귀에도 여과장치를 설치하는 것이 어떨까? 하나님의 여과장치, 곧 성령의 순결하게 하시는 필터를 우리의 눈과 귀에 착용한다면... 나쁜 소리를 들어도, 욕하고 험담하는 소리를 들어도, 성령의 여과장치를 통해 아름다운 소리로 마음에 전달되도록... 좋지 않은 것을 보아도 여과장치를 통해 마음 속에 선한 영상으로 전달되도록... 그리하여 아무리 악한 소용돌이가 우리 주위를 휩싸도, 아무리 어둡고 부정적인 생의 파도가 우리에게 몰아쳐도, 늘 순결하고 잔잔한 평화가 마음 속에 끊임없이 존재하는... 이것이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의 생애에, 그리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덧입은 사람의 눈과 귀에 나타나는 현상이 아닐까? 악한 자가 만지지도 못하는(요일 5:18)상태란 이런 현상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은혜로 덧입혀진 마음, 성령의 은혜의 필터가 설치된 눈과 귀를 가진, 거듭난 사람의 아름다움이여!

 언젠가 예수님께서 크게 웃고 계시는 그림을 본 적이 있다. 대부분의 예수님의 그림들은 예수님이 엄숙한 표정을 짓고 계시는 것들인데, 그 그림은 참 인상적이었다. 고통의 신음소리와 죄악적이고 다투는 소리로 가득 찬 이 땅에 사시면서도, 악한 광경과 선하지 못한 일들로 가득 찬 이 땅위에 사시면서도, 우리와 같은 본성을 가지셨던 예수님은 어떻게 그렇게 죄악의 조류에 영향을 받거나 전혀 휩쓸리시지 않고 초연하고 아름다운 성품으로 사실 수 있었을까?  하나님의 사랑의 마음을 똑같이 입으신 예수님의 눈과 귀에는 충만하신 성령의 필터가 늘 단단히 장치되어 있지 않았을까?...

권두언

강병국 목사

 이 지구 위에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들이 산재해가고 있습니다. 온난화 현상, 천연재해들의 가속화, 인구의 폭등, 식량의 부족, 악해져만 가는 인간성, 세계 전쟁들, 주기적으로 오는 전염병들 등으로 인류는 이제 그 막다른 골목길에 와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과학의 힘과 경각심으로 환경을 조금 향상시킬 수 있을는지는 몰라도 궁극적인 해결 방법은 없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언젠가 이 지구는 자멸하고 마는 것일까요?

 이 세상의 어떤 다른 종교도 이러한 실재적이고도 심각한 지구 생태계의 문제에 대하여 희망을 주는 예언을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만 이 지구의 장래와 소망에 대한 실재적인 예언을 담고 있는데, 인류의 궁극적인 희망은 이 지구를 처음에 창조하신 그 하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입니다. 다시 오셔서 이 지구를 원래의 상태대로 재 창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원래 창조하신 계획대로, 죽음과 슬픔이 없는 원래의 상태대로 되돌려 주시는 것입니다.

 이 지구의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날부터 시작 될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 은혜의 왕국을 세우고 계시는 중입니다. 인간의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하시는 중이십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성품이 다스리는 그러한 마음의 왕국 말입니다. 그 후에 실재적인 영광의 왕국을 건설하시는 것입니다. 영생과 완전한 건강과 흠이 없는 행복만이 깃드는 그러한 영광스러운 하나님의 나라 말입니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어떻게 임하는 사건일까요? 언제쯤 오시는 것일까요? 또 어떻게 임하시는 것입니까? 예수의 재림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감동적이고 영광스러운 사건이 될 것입니다! 이 세상은 더 이상 죄와 또한 죄의 결과들이 존재하지 않는 새로운 나라가 될 것입니다. 완전히 아름다운 곳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예수의 재림은 확실한 것입니다. 예수의 재림은 인류의 유일한 소망입니다. 그분만이 이 지구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 해 주실 수 있는 분이십니다. 이번 호는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성경의 가르침에 그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흔들리고 있는 두 가지 기준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께서 그러했던 것처럼 이 혼탁한 세상에서 흔들리지 않는 도덕적 기준이 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나침반이 언제, 어디서나 남과 북을 정확하게 가리키듯이 어떤 상황 속에서도 정직과 고결함을 유지하는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날 교회와 세상 속에서 살아가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위선과 부정직 속에 자신의 삶 전체를 담그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무엇이 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이토록 천박한 삶을 살도록 만들었을까요? 지금 세상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의 이런 모습을 보면서 손가락질하며 비웃고 있습니다. 언제나 존경받으면서 곧바르게 서있어야 할 교회가 왜 이렇게 세상의 조롱거리로 전락되고 말았을까요? 그것은 진리와 양심이라는 두가지 기준이 흔들리고 더럽혀졌기 때문입니다.

신앙을 이끌어 가는 두 가지 기준
 
그리스도인에게는 어떠한 경우에도 타협하지 말고 흔들리지 말아야 할 두가지 기준이 있는데, 그것은 진리와 양심입니다. 하나님은 진리를 통하여 우리를 구원으로 인도합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 (시편 43:3). 그러므로 진리가 흔들리고 변질되게 되면 우리는 하나님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진리 이외에 하나님을 따르고 섬기는 또 다른 통로가 있습니다. 바울이 공회를 주목하여 가로되 여러분 형제들아 오늘날까지 내가 범사에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노라 하거늘 (사도행전 23:1). 여기서 바울은 자신은 모든 일에 있어서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양심을 따라 하나님을 섬겼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그것은 양심 속에서 들려오는 한 음성이 내게 지시하고 권고하는 대로 결정하고 따라가는 삶을 산다는 뜻입니다. 진리가 오해되고 양심의 음성이 무시될 때, 사단은 즉시로 먹이감을 낚아채려고 다가오는데,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이 때야말로 가장 큰 위기의 순간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따르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두가지 기준인 진리와 양심은 서로 어떻게 작용하며 어떤 관계 속에서 우리의 신앙 생활을 이끌어 가는지를 살펴보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1.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양심이 망가져 있는 경우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양심이 망가져서 제 기능을 발휘하지 못할 경우, 그리스도인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요? 어떤 그리스도인이 성경에 기록된 진리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를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에게 선한 양심이 없다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수 없습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에 따라 예배를 드리고, 헌금을 바치며, 전도를 하고,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각종 종교 활동에 열심을 다한다고 할지라도, 가정과 사회에서 이루어지는 매일의 생활에서 도덕적 양심이 올바로 작동하지 않는다면, 그는 매우 이상한 모습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게 될 것입니다. 기도를 하지만 이기적이고, 주일마다 예배를 드리지만 이웃의 아픔에는 무관심하며,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에는 엄격하지만 국가에 바치는 세금에는 부정직합니다. 사람들 앞에 나타나는 일에는 열심이지만, 음지에서 이루어지는 조용한 봉사에는 별다른 관심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열심히 전도를 해도 자기 만족을 위해서 하고, 하나님을 위해서는 모든 것을 바칠 것처럼 말하지만 상처받은 이웃에 대한 사랑과 동정에는 매우 인색합니다. 대개 이런 그리스도인은 과거에 유대인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돈에 약하고 명예에 쉽게 흔들립니다. 유대인들은 그 당시의 진리인 구약 성경을 가지고 있었고 날마다 성소에서 양을 잡아 죽이는 거룩한 의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매우 이기적이었고 돈과 명예를 사랑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종교적으로 완벽하게 보였지만, 실제로는 이기심과 재물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다른 사람에게는 높은 도덕적 표준을 강요하지만, 자신은 은근히 세속적 쾌락을 즐기며 사는 사람, 교리적 구원에는 지대한 관심이 있지만, 잘못을 범한 사람에게는 너그럽지 못한 사람, 교회 활동에는 매우 열심이었지만, 양심은 일상 생활에 속에서 전혀 힘을 발휘하지 못하는 사람, 이런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진리를 우습게 여기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게 됩니다. 양심이 곧바르고 분명한 음성을 그리스도인에게 주지 못할 때, 표면적으로는 하나님께 대해서 열심인 것처럼 보일지라도, 실제 생활에 있어서는 부도덕과 부정직으로 깊이 병들어 있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진리를 가지고 있지만 양심이 망가져 있는 사람들의 모습입니다. 망가진 양심은 하나님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게 만들며, 죄로 인하여 마음이 심한 고통과 아픔을 느껴야 할 때 그것을 충분히 느끼지 못하게 만들고, 엄격한 정직을 나타내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게 하며, 자신이 알고 있는 진리 위에 분명하게 서 있어야 할 때에 그렇지 못하게 만듭니다.

 살아 있는 양심을 가진 그리스도인은 항상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거리낌 없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사도행전 24:16). 그러나 하나님의 뜻과 사람에 대하여 거리낌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의 양심은 서서히 망가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이기적인 삶을 사는 사람들의 양심은 점점 망가져서 마땅히 가지고 있어야 할 양심의 예민함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부도덕하고 이기적인 삶을 살면서도 하나님과 사람에 대하여 부끄러움과 수치를 느끼지 못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치료 방법 : 사도 바울은 이런 그리스도인들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진단을 내립니다.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 (딤전 4:2). 그러나 이런 사람들에게도 아직 희망이 있는데, 그들은 먼저 양심을 치유받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선한 양심이 없이는 결코 하나님을 만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벧전 3:21). 선한 양심은 언제나 선한 음성만을 발합니다. 시시때때로 변하는 상황에 맞추어서 자신에게 유리한 이기적 음성을 발하는 양심은 선한 양심이 아닙니다. 양심이 망가지게 되면, 그것은 단지 타락한 육체의 요구를 합리화시켜 주는 도구로 전락하게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망가진 양심이 치유받고 회복될 수 있을까요? 성경 말씀에 기록된 그리스도의 성품과 생애를 깊이 연구하고 명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분의 성품과 생애를 자신의 것과 꾸준히 비교해 보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서 그분의 생애와 성품 속에 나타나 있는 사랑과 동정과 자비와 정직과 신실함을 배워야 합니다. 바울은 양심에 문제가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놀라운 치유책을 제시합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빌 2:5). 성령께서 직접 집도하시는 심장 이식수술에 의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된 사람은 그분처럼 생각하고, 그분처럼 정직하며, 그분처럼 신실한 삶을 살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망가진 우리의 양심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과 정신을 넣어 주심으로써 양심을 치유해 주십니다. 날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정직한 심령으로 읽으면 부패되어 죽었던 양심은 그 말씀에 의해서 씻겨지면서 다시 살아나게 됩니다. 말씀으로 씻겨진 깨끗한 양심은 드디어 우리 자신에게 곧바르고 분명하면서도 사랑과 자비로 감동된 음성을 주기 시작합니다. 새롭게 거듭난 양심은 새로운 생활을 가능케 합니다.

2. 양심은 살아있지만, 진리가 망가져 있는 경우
 
양심이 살아 있어서 실생활 속에서 꽤 도덕적인 삶을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성경 말씀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부족하거나 하나님께 대한 오해를 품고 있을 경우, 그리스도인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까요? 이런 그리스도인은 실생활에서는 매우 너그럽고 정직하며 선한 삶을 사는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가 믿는 교리가 비성서적으로 망가져 있기 때문에 이상한 신앙 생활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과 성경의 진리에 대한 잘못한 이해는 종종 이해하기 힘든 신앙으로 사람을 인도합니다. 우리의 양심은 우리가 알고 있는 성경의 지식과 일반적 상식에 의해서 움직이고 반응합니다. 예를 들어서, 중세기에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었던 그리스도인들은 지구가 둥굴다고 믿는 사람을 아무런 양심의 가책없이 하나님이 이름으로 핍박하였으며,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춤을 예배의 합당한 태도로 믿는 사람들은 아무런 두려움 없이 성전에서 춤을 추고 시끄러운 음악으로 예배를 드리게 되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술과 담배를 해도 된다는 가르침을 믿는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아무런 망설임없이 사도 바울이 경고한 부절제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방언이 구원받은 유일한 증거라고 믿는 사람들은 자신의 전 생애와 신앙을 방언에 몰입시키는 삶을 살게 되며, 가정보다 교회가 더 중요하다는 믿음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자녀와 가정에 대한 의무를 팽개친 채 교회에 자신이 가진 모든 시간과 노력을 바치는 신앙을 하게 됩니다. 믿기만 하면 자신의 생애가 죄로 물들어 있다고 할지라도 구원이 보장된다는 가르침을 믿는 사람은 믿음이라는 면죄부를 이마에 붙이고 아무런 양심의 책망도 느끼지 못한채 대담한 죄인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이와 같이, 자신이 무엇을 어떻게 믿느냐에 따라서 양심은 그것에 일치하는 삶을 살아가도록 인도하게 되기 때문에 올바른 성서적 가르침을 이해하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비록 하나님을 찾기 위하여 진지하게 방황한다고 할지라도, 진리에 대한 이해가 빗나가 있는 사람들은 많은 경우에 매우 감정적 신앙을 갖게 됩니다. 진리를 모르기 때문에 성경에 나타나 있는 진리의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고 하는 대신, 기적이나 어떤 종교적 의식을 통해 얻게 되는 감정적 도취에 의하여 신의 존재를 느끼고자 합니다. 기도와 금식이 그리스도인 신앙에 있어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진리에 대한 오해를 가지고 있는 사람이 기도와 금식에만 깊이 몰입하게 될 때, 결국에는 이상한 영에 이끌려 비참하게 살아가는 모습을 주변에서 종종 보게 됩니다.

 진리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는 사람의 마음 한 구석에는 언제나 허전한 공간이 있게 됩니다. 그래서 그들은 그 허전함을 채우기 위하여 극단적인 체험과 극적인 기적을 구하곤 합니다. 대개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인정해 주신다는 개인적 확신을 얻기 위하여 방언이나 통성기도, 치유의 은사와 같은 눈에 보이거나 귀에 들리는 어떤 것들에 매달리게 됩니다. 말씀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생활 속에서 성령의 인도하심을 확인하는 대신에 눈으로 보거나 감각으로 느낄 수 있는 감정적 체험을 추구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에서 진리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빠져 있을 때, 사단은 별다른 어려움 없이 그리스도인들을 마음껏 농락하게 됩니다. 사단의 덫에 걸려서 초자연적인 기적이나 이상한 감정적 황홀함에 빠져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마음의 불안과 공허함을 채우기 위하여 그것들을 계속해서 추구하게 되는데, 사단은 이것을 이용하여 그 사람을 지옥까지 끌고 갑니다. 사단이 주는 감정적 체험은 마치 마약과 같아서 그것에 길들여져 있는 그리스도인은 결국에는 심리적으로 매우 불안한 정신적 공황 상태로 들어가게 됩니다.

 모든 기적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닙니다. 목사가 안수로 병을 고쳤다고 해서 다 성령의 은사가 아닙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기적과 은사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으로 검증해 보아야만 하는 위기의 시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목사가 설교한다고 다 진리가 아니고, 신부가 가르친다고 다 진리가 아닙니다. 천사처럼 광명한 자가 하늘로부터 내려와서 복음을 가르친다고 해도 그 가르침이 성경 말씀과 일치하는가를 확인해야만 합니다. 우리나 혹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 (갈 1:8). 이것이 이상한 일이 아니라 사단도 자기를 광명의 천사로 가장하나니 (고후 11:14). 오직 성경 말씀을 통하여 분명하게 입증되는 교리 만이 진리로 받아들여져야 합니다. 믿음을 통하여 의로운 생애를 사는 구원의 경험, 복음과 계명의 관계, 믿음과 순종의 관계, 은혜와 심판 문제, 그리고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하나님의 예언에 대한 분명한 이해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마지막 시대에 사단이 교회 내에서 조작하는 각종 거짓 은사와 기적에 미혹당하게 될 것입니다. 또한 죽음과 귀신에 대한 성서적 이해를 가지고 있지 못한 그리스도인들 앞에 마귀는 죽은 자의 영으로 나타나 그들을 완벽하게 기만할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에 대해서 무지한 그리스도인이야말로 사단이 가장 쉽게 낚아채는 먹이감입니다. 악한자의 임함은 사단의 역사를 따라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 멸망하는 자들에게 임하리니 이는 저희가 진리의 사랑을 받지 아니하여 구원함을 얻지 못함이니라.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을 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데후 2:9-12).

치료 방법 :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 8:32). 진리만이 우리를 사단의 덫으로부터 보호해 줍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 양심을 다하여 살려고 하지만, 진리에 대한 지식이 부족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체계있고 깊이 연구해야 합니다. 성경 말씀을 올바로 가르치는 사람이나 책자나 테이프를 찾기 위하여 온 마음과 정성을 다하여 기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에 이러한 소원을 품고 진리를 찾는 사람은 반드시 원하는 바를 찾게 될 것입니다.

 성경에서 진리의 또 다른 표현은 계명입니다. 주의 모든 계명은 진리니이다 (시 119:151).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진리, 특히 계명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들을 인도하십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 이 말씀은 마지막 시대에 사단은 여자의 남은 무리 즉, 계명을 지키는 무리들을 최종 공격 목표로 정하고 활동할 것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경고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서 요한은, 온 세상에 짐승의 표가 강요되는 세상 끝에 드러나게 되는 하나님의 참 백성의 정체를 분명하게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2).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계명을 통하여 당신의 백성을 인도하신다면, 사단은 무엇을 통하여 사람들을 미혹할까요? 요한계시록은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하여 분명한 답을 제시해 줍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에서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 (계 13:13,14). 마지막 시대에 사단은 이적을 행함으로 사람들을 미혹합니다. 세상 끝에 있을 아마게돈 전쟁 때에도 사단은 각종 기적을 통하여 사람들을 자신의 편으로 끌어 모을 것을 요한계시록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저희는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통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 (계 16:14). 하나님의 말씀은 반복하여 사단이 마지막 시대에 각종 기적과 감정적 체험을 통하여 사람들을 미혹할 것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마태복음 24:24에서 말세의 가장 큰 징조 중의 하나로 거짓 선지자와 거짓 기적을 지적하셨던 사실을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

결론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말세에는, 계명을 지키는 하나님의 참 백성과, 사단이 쳐놓은 덫에 걸려서 기적과 감정적 체험을 추구하는 사람들로 나뉘어지게 됩니다. 눈을 크게 뜨고, 귀를 귀울여 주위를 살펴 보십시오. 계명을 지키는 의로운 삶을 강조하는 설교를 거의 들을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의의 높은 표준을 설교를 하는 목사는 가장 인기없는 목사가 되어버릴 뿐 아니라 오히려 율법주의나 바리새주의라는 낙인이 찍혀서 설 자리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방언과 기적이 나타나고, 시끄러운 음악으로 감정적 예배를 드리는 곳에는 교회 문이 터져나갈 듯이 사람들이 모여듭니다. 갈멜산에서 바알을 섬기던 거짓 선지자들처럼, 그들은 모여서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며, 목이 쉬도록 큰 소리로 기도함으로써, 귀신의 영을 초청하고 있습니다. 양은 목자의 음성을 정확하게 구별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양은 진리를 가르치는 목자를 따르고, 기적과 이적을 추구하는 양은 귀신의 영이 들린 목사를 찾아가게 됩니다.

 무리 놀라운 기적과 짜릿한 감정적 분위기가 흘러나온다고 할지라도, 성경 말씀으로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검증해보고, 그들의 삶의 열매로 그들을 판단해 보아야 한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 (사 8:20). 오직 소수의 양들이 진리의 말씀을 찾기 위하여 애쓰고 있고, 소수의 목자만이 진리를 분명한 목소리로 외치고 있습니다. 대다수의 양들과 목자들은 경건의 능력이 빠져버린 허탄한 이야기를 즐기고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쉽게 구원받을 수 있다는 거짓 가르침이 온 교회를 휩쓸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 참된 경건의 능력이 사라지고, 경건의 모양만이 판을 치고 있는 이러한 모습은, 우리가 지금 사도 요한이 묘사한 세상 끝에 살고 있음을 분명하게 확인시켜 줍니다. 이 시대는 영적 암흑의 시대입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기로 결심한 그리스도인들이시여, 성경의 진리를 깊이 깊이 파서 연구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절박한 마음으로 참 진리를 가르치는 목사와 설교 테이프와 책자를 찾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 때가 되었습니다.

햇볕에 대하여 얼마나 알고 계시나요?

* 햇볕이 하는 일은?
 태양은 하나님의 위대한 창조물로서 지구의 생물 생존에 필수적인 존재이다. 지구상의 모든 산 생물들은 사람을 비롯하여, 동물, 식물, 미생물까지가 태양 에너지로 생명을 유지한다.  태양이 1년만 자취를 감춘다면, 지구 생태계에 큰 재난이며 태양이 구름으로 가리워져 흐린 날이 몇 달만 계속되어도 식물이 자라지 못하고, 식물계로부터 에너지를 얻고 있는 동물계와 사람의 생존이 어려워진다.

1. 에너지의 근원 태양
 식물은 광합성에 의해 태양 광선을 화학에너지로 바꾸어서 식물체내에 저장한다. 이것이 우리가 먹는 포도당이요, 당질이요, 전분이다. 식물은 대기 중의 탄산가스와 흙 속의 물을 뿌리로 흡수하여 엽록소를 만들고 그 속에서 태양 에너지를 포착하여 당질 속에 저장한다. 이 당질이 동물 체내에 들어가서 소화 흡수되면, 저장되었던 태양 에너지를 방출하면서 활동 에너지를 공급해 준다. 지구상의 생물계는 이 같은 원리에 의해 끊임없이 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받아서 생명을 유지하고 활동한다. 태양 에너지는 사람과 동물의 에너지의 기초 자원이다.  

2. 열의 근원 태양
 에너지와 열의 근원은 동일하다. 태양은 에너지와 열을 동시에 낸다. 태양 에너지를 저장한 식물이 썩어서 다시 식물이 성장하는 에너지를 공급하고, 그 식물이 타면서 열을 낸다. 우리가 생활하는 데 쓰이고 있는 열 에너지, 즉 전력, 깨스, 기름, 연탄, 석탄들이 모두 이 같은 과정을 거쳐서 생산되어 열 에너지를 낸다,

3. 태양 광선의 건강 증진 작용
햇볕이 잘 드는 집에 살면 건강하고 밝고 명랑하고 활기있게 살 수 있다. 햇볕이 건강에 주는 역할은 크고도 다양하다. 그 중 CAMP(Cyclic Adenosine Monophosphate)를 줄어들게 하는 역할도 하는데, CAMP는 커피, 차, 쵸콜렛 등을 먹거나 스트레스를 받았을 때, 부신피질 홀몬의 분비로 자극되어 필요 이상 많이 생기면 에너지 방출을 촉진하여 흥분상태가 되므로, 신경이 불안해지고 안정감이 없으나, 햇볕을 쬐면 CAMP가 줄어 들어 평안하고 안정된 상태가 된다.

4. 태양의 살균 작용
햇볕이 잘 드는 곳에는 세균과 박테리아가 번식하지 못한다. 햇볕은 곰팡이를 죽이고 살균 작용을 한다. 햇볕이 잘 드는 집안의 공기는 항상 소독되어 있다.

* 햇볕이 정신건강도 좌우?
 
계절성 우울증이란 질환이 있다. 일조량이 적은 겨울철에 많이 발생하는 우울증을 지칭하는 말이다. 가을이 되면 사람들이 감상적으로 변하는 것도 햇볕의 영향이 있다. 최근 독일 뮌헨의대 연구진은 가을에 유독 피곤하고 허탈하며 단맛에 대해 강한 식욕을 느끼는 것은 일조량 감소에 따른 정상적인 생리현상이란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가을철엔 감상적 무드에 쉽게 휩싸이고 겨울철엔 우울증에 시달리는 것은 망막에 도달하는 햇볕이 줄어들고 이로 인해 뇌에서 분비하는 멜라토닌 호르몬의 양이 감소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봄과 가을은 계절상 서로 일출과 일몰이 같지만, 봄은 일조량이 길어지는 시기이고 가을은 짧아지는 시기이다. 이에 따라 봄에는 기분이 상승하게 되고 가을에는 기분이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일조량 변화가 안구를 통해서 뇌의 시상하부를 자극하게 되고 이를 통해 번식과 관련이 있는 성호르몬 분비가 이루어지게 되며 이런 이유로 흥분, 기분이 상승하게 되는 것이다. 사람은 대뇌 피질의 발달로 인해서 본능보다는 이성이 발달해 있는 관계로 일상의 활동량에는 일조량 변화가 큰 영향을 주지는 않으나, 기분은 대뇌보다는 시상 하부 및 변연계와 관련되어 있기 때문에 이런 주기적인 변화에 대해서 영향을 받게 된다는 것이다.

 사람이 우울해질 때, 우울한 기분에서 벗어나는 방법 중 하나가 아침 일조량을 늘리는 것이다. 우울증 치료 중에 오전에 받는 광(光) 치료가 효과가 있는데, 수면 주기가 뒤로 물러나서 쉽게 잠들지 못하고 아침에 일어나도 개운치 않은 그런 종류의 불면증이 동반되는 우울증에 특히 효과가 있다. 이런 것을 일상에 적용해 보면 가을을 타는 사람은 오전 일조량을 늘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활동하도록 하고 추워서 활동하기 어렵다면 집안의 일조량이라도 늘려 준다면 효과가 있을 것이다. 이런 변화는 특히 아침잠이 많은 사람에게는 어려울 수도 있지만 생체리듬이란 개인의 노력에 의해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생체리듬을 조절하는 곳은 시상하부인데 그 역할은 주기적인 식사, 여성의 생리 기간 조절 및 수면시간 조절 등이다. 처음에는 일조량의 변화에 대해서 민감하게 반응을 일으키게 되고 따라서 처음에는 힘이 들 수도 있지만 반복을 통해서 천천히 적응하게 된다.

 정신의 활력과 건강을 위해서는 햇볕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두더지처럼 일부러 그늘만 찾아 다녀서는 안된다는 뜻이다. 특히 가을철 햇볕은 봄 햇볕에 비해 자외선 양이 적고 습도도 높아 쾌적하다. 봄볕은 며느리에게 쪼이고 가을 햇볕은 딸에게 쪼인다는 속담이 빈 말이 아닌 것이다.

* 뼈에 좋은건? 칼슘보다 비타민 D
 
비타민 D가 칼슘보다 뼈 건강이나 골다공증 예방에 좋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미국 헬스데이 뉴스가 2006년 1월 8일 보도했다. 아이슬랜드 랜드스피탈리 대학병원의 군나르 시구르드손 재 분비·신진대사학 박사는 2310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비타민 D가 칼슘의 체내 흡수를 돕기 때문에 뼈 건강을 위해선 칼슘보다 비타민 D 섭취가 더 중요하다고 밝혔다.

 비타민 D는 음식을 통해 얻기 어려운 영양소로 필요량의 90% 정도가 햇빛을 쐬면 피부에서 자연 합성된다. 시구르드손 박사는 실험참가자를 칼슘 섭취 그룹과 비타민 D 섭취 그룹으로 나눠 칼슘의 혈중농도를 조절하는 부갑상선 호르몬(PTH) 수치를 분석했다. 그 결과 칼슘 하루 필요량인 1200㎎보다 적은 800㎎을 섭취하더라도 비타민 D만 충분하면 PTH 수치가 정상 수준을 유지했지만, 비타민 D가 부족하면 적정 수준으로 유지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미국 테프츠대학 인간영양학연구소의 수전 해리스 박사는 이번 실험 결과는 비타민 D의 하루 권장섭취량을 현행 300-600IU(국제단위)에서 1000IU까지 높여야 한다는 학계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비타민 D는 음식물에도 들어 있으나 햇볕의 작용으로 인체에서 이 화학물질은 생성할 수 있기 때문에 호르몬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인체의 하루 동안의 비타민 D 요구량은 약 400units인데 15분만 햇볕에 얼굴이 노출되면 하루 요구량을 초과한다. 계란을 먹는다면 1일 3개를 먹어야 하고 생선(대구나 상어)의 간은 농축된 비타민 D가 있으나 지독한 냄새와 맛 때문에 섭취가 어렵다. 햇볕은 값싸고 효과가 빠르며 후유증도 없는 가장 안전한 비타민 D의 요소이다. 비타민 D는 뼈를 튼튼하게 해주며 (칼슘과 인의 배합) 어린이 구루병과 성인 골연화증 (osteomalacia)을 예방해 준다. 또한 장에서 칼슘과 인을 흡수하는 역할을 하며 혈관 속에서도 이 무기물의 전달과 분배역할을 한다. 아울러 뼈를 튼튼하게 해 주는 이 무기물을 적당한 양과 비율로 뼈 속에 저장시킨다. 햇볕은 콜레스테롤에서 비타민 D를 만들기 때문에 체내의 콜레스테롤 층을 줄여 준다.

 햇볕을 쪼이면서 운동을 하면 햇볕이 글리코겐 합성효소를 증가시키므로(햇볕에 노출된지 두 시간이면 증가되기 시작하고 열 시간에 최고치에 이른다) 인슐린 분비 장해로 글리코겐 합성 저장을 못하여 항상 혈당이 높은 당뇨병 환자가 일광욕을 계속하면 인슐린 주사의 필요성이 감소되고 당뇨 치료에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

 또한 류마티스성 관절염, 급성 류마티스성 열병, 급성 천식증, 애디슨씨 병 등 많은 질병을 치려하는 데 쓰이는 콜티손 홀몬 (인체의 부신피질에서 분비되는 홀몬)은 부작용이 커서 사용하기가 조심스럽지만, 햇볕을 쬐면 콜티손의 체내 합성이 촉진되어 콜티손 약제를 먹지 않고도 치료가 된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햇빛을 우리에게 주신 것이 얼마나 감사한가?

* 햇볕은 해로울 수도 있다?
 
햇볕이 면역력을 증가시켜 암을 비롯한 각종 질병의 발생을 억제한다는 연구결과가 나올 정도로 좋지만, 또 한편으로 햇볕은 몸에 나쁠 수도 있다. 이러한 햇볕의 양면성은 사람의 환경 훼손에서 비롯되었다. 각국의 공업화 결과, 냉매로 쓰이는 프레온 가스가 대량 방출되면서 성층권에서 햇볕의 자외선을 차단하는 오존층이 파괴됐기 때문이다.

 오존층은 태양 광선의 자외선을 대부분 흡수하여, 지상의 생명체를 보호하는 역할을 한다. 자외선은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태양에서 형성된 매우 파장이 짧은 광선이다. 그런데 자외선의 일부는 생명체의 유전자를 파괴하는 살상의 기능을 가지고 있다. 이런 유해한 자외선을 오존층이 막아주는 것이다. 오존은 생성 및 분해 과정에서 모두 자외선을 흡수한다. 이러한 화학반응을 통해 오존은 자외선을 차단할 수 있는데, 오존의 농도가 줄어들게 되면 이런 반응이 일어날 수 없다. 따라서 자외선은 그대로 제거되지 않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것이다.

 오존층 파괴 물질인 염소 원자는 프레온이라고 불리는 염화플루오러화탄소(CFC)가 분해되면서 나온 것이다. 프레온은 냉장고나 에어콘의 냉매나, 스프레이의 충전제로 쓰이는 인공적 물질이다. 자연의 상태에서는 전혀 만들어지지 않으며, 인간에 의해서만 만들어지는 물질이다. 이것이 하늘로 올라가 분해되면서 염소 원자를 만들어낸다. 지표에서 누출된 CFC가 오존층에 도달하는 시간은 약 10년 정도가 걸리며, 한번 올라간 CFC가 분해되어 없어지는데는 70년에서부터 400년이 걸린다. 결국 지금 당장 CFC를 쓰지 않더라도 앞으로 몇 백년동안은 오존층 파괴가 계속 일어나게 된다는 결론이다.

 오존층이 가장 많이 파괴된 호주의 경우 불과 50년 전만 해도 햇볕에 피부를 내놓고 다녀도 큰 탈이 없었지만 지금은 해마다 1천2백여명이 피부암에 걸려 숨진다. 인구로는 전세계 인구의 0.3%지만 피부암 환자수는 전세계 환자의 6%나 된다. 피부암은 과다한 자외선에 노출되었을 경우 피부에 생기는 암으로서, 백인에게 많으며, 특히 육식을 많이 한 사람이 과다한 자외선에 노출될 때, 피부암이 잘 생긴다. 그러므로 햇볕을 쬘 때, 너무 장시간이나, 과다한 강한 자외선을 쏘이지 않도록 한다.

* 일광욕을 해보셨나요?
 
햇볕을 잘 이용하여 일광욕을 하면 건강에 많은 유익을 얻을 수 있다. 한번쯤 일상생활에서 여유를 찾아 일광욕을 즐겨보면 어떨까? 일광욕의 바른 방법을 알아보자.

* 일광욕 방법
1. 매일 15분(여름철) - 45분(겨울철)의 일광욕이 적합하다.
2. 온대지방에서는 오전 10시 - 오후 3시 사이가 가장 좋으며 열대지방에서는 한 낮의 햇볕을 피하고 아침 일찍이나 오후 늦은 시간이 좋다.
3. 식사 전후의 1시간 30분 이내의 시간은 소화방해나 에너지 균형의 변화가 생길 우려가 있으므로 일광 노출을 피하도록 한다.
4. 흰 피부나 약한 피부는 몸 전면에 5분 후면에 5분씩 적용하고 매일 5분씩 늘려하며 최고 1시간 정도 적용한다. 검은 피부는 15분 정도부터 시작할 수 있으며 매일 15분씩 늘려갈 수 있다. 치료시간은 개인별로 달라질 수 있다.
5. 뼈의 결핵을 앓고 있는 경우에는 1일 3-4시간의 일광욕을 적용하기도 한다.

* 일광욕의 유의사항
1. 일광욕을 하는 동안 잠들지 않도록 하라(화상의 위험).
2. 썬스크린(햇볕을 가리는 로숀)은 사용하지 말라. 로숀 속에 포함된 파라아미노벤조산 (PABA, para-amino benzonic)은 유해한 햇볕성분을 제거하기도 하지만 햇볕의 유익성도 제거한다. 또한 피부세포에 손상을 주기도 하고 로숀의 기름 역시 해로운 요소이다. 가장 좋은 썬스크린은 햇볕을 보호할 수 있는 옷과 챙이 넓은 모자이다.
3. 안경을 착용하는 자는 안경을 벗은 상태로 얼마동안 야외에서 산책을 하도록 한다.
4. 눈(snow)과 같이 반사작용이 심한 경우에는 얼굴을 마스크나 챙이 넓은 모자로 보호한다 (눈은 자외선을 85%, 모래는 약 20%, 물은 약 5% 반사한다).
5. 직접 태양을 쳐다보지 않도록 한다. 망막과 시신경에 심한 손상을 일으킬 수 있다.
6. 얼굴 미용을 위해서는 얼음으로 뺨을 문지른 다음 햇볕을 쬐인다.
7. 흐린 날이나 안개가 낀 날에도 일광욕의 효과가 있다 (20% 정도의 자외선 투과).
8. 일광 화상을 입었을 경우 얼음으로 문지른다. 1%의 알루미늄 설페이드 용액이 포함된 냉 습포의 적용도 유익하다.
9. 창이 많은 방은 햇볕의 유익이 많다.
10. 이부자리를 자주 햇볕에 노출시키는 것은 일광의 유익을 활용하는 훌륭한 방법이다.

1부 - 재림의 약속

 꽤 오래 전의 일이다. 한국에서 남북이 분단되었던 이래 처음으로 이산 가족이 상봉하는 모습이 TV를 통해 방영되었던 적이 있다.

 몇십 년만에, 혹은 처음으로, 헤어져 있던 가족을 만나는 그 감격적인 장면은 보는 이들로 하여금 눈물을 쏟지 않을 수 없게 만들었다. 너무나 오랜 세월 동안 그리운 사람을 그리다가 만난 사람들은, 가슴이 벅찬 나머지 눈물을 흘리고 통곡을 하며, 서로 얼싸안고 떨어질 줄을 몰랐다. 남북 이산가족 상봉장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그 장면을 열심히 카메라에 담던 기자들 눈에조차 눈물이 맺혔다. 정말 가슴 뭉클한 재회의 장면이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가장 감동적인 만남의 순간이 있다면 그것이 무엇일까? 그것은 재림이다. 예수님과 우리가 만나는 날, 그렇게 오래 동안 보고싶어 하고 그리워하며 기다리던 예수님을 드디어 실제로 만나는 재림의 날... 어떤 인간 가족의 상봉과도 비교될 수 없을 만큼 더 감격스럽고, 더 기막히고 더 감동적인 만남, 그것이 바로 예수님과 우리가 공중에서 재회하는 재림일 것이다.

 성경에는 예수께서 우리에게 내가 다시 오리라고 약속하신 재림의 약속이 많이 나와 있다.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구속의 계획은 예수께서 재림하셔서 우리를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하늘본향으로 옮겨 가시기 전까지는 성취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구속의 역사의 피날레가 되는 재림은 우리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하고 필연적인 사건이다. 재림에 대하여 함께 연구하여 보자.

재림의 필연성
 
재림이 없다면, 성경이 말하는 지구의 역사의 마지막 결론이 없어진다. 우리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인 진리로 믿고 확신하는 사람들로서, 또한 성경에 나타난 예수님의 약속을 신뢰하는 사람들로서, 예수님의 재림이 이 땅 위에 반드시 임할 것을 믿어야 한다.

 레드 북(Redbook) 잡지사가 미국에서 유명한 8개의 신학대학원 쎄미나리에서 의견조사를 하였는데, 그 학생들 가운데서 1%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믿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밝혀졌다. 이러한 회의주의의 원인은 위대한 전도자였던 디 엘 무디선생의 경험에 의하여 설명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교회에 다닌 지 15년이 지난 후에야 비로소 그리스도의 재림에 관한 첫 번째 설교를 듣게 되었는데, 그 설교를 듣고 난 다음, 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제 나는 왜 마귀가 이 문제에 대해서 설교하는 것을 원하지 않는지를 알았습니다. 예수께서 곧 오신다는 교리만큼 교회를 깨우는 가르침이 없기 때문입니다. 무디 선생이 했던 지적이야말로 거의 모든 교회들이 그 놀라운 사건에 대하여 아주 이상스러울 만큼 잠잠한 것에 대한 이유와 원인을 가장 정확하게 설명하는 것 같다. 사단이 오늘날 라오디게아 교회를 깨울 수 있는 위대한 진리 위에 살며시 침묵의 이불을 덮어 씌운 것은 아닐까? 아무튼 재림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신앙의 주된 동기부여가 되고 있으며, 성경 역사의 마지막 클라이맥스를 장식하는 중요한 사건으로서, 이 재림의 진리를 정확히 연구한다면, 이것은 개인이나 교회에 큰 신앙부흥을 가져 올 것이다. 다음은 재림의 필연성에 대한 이유이다.

1. 예수께서 약속하셨으므로 재림은 필연적이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고난을 받으시기 바로 전, 제자들에게 당신께서 다시 살아나시고 승천하셔서 끝까지 그들을 돌보실 것을 약속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요 14:2~3). 하나님께서는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분이시며, 예수님도 또한 그러하시다. 그러므로 미쁘시고 신실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재림의 약속은 재림이 반드시 임해야 하는 재림의 필연성의 첫번째 순위를 차지한다.

2. 성경 예언의 성취는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므로 재림은 필연적이다
 예수께서는 감람산 위에서 당신께서 재림하시기 전, 세상 끝에 일어날 징조에 대해서 예언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당신께서 오시는 광경과 모습, 방법에 대하여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성경에 씌여 있는 예언은 과거에 그랬던 것과 같이 반드시 성취된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예언하신 당신의 재림에 대한 성취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이다. 또한 요즈음에 일어나는 재해와 재난의 예언에 대한 징조의 성취는 과거 어느 때보다도 더 빈번하고 그 정도가 더 심하여지고 있으므로 재림이 더욱 가까이 이른 것을 알 수 있다.

재림의 약속에 대한 성경절들
 
재림에 대한 성경절은 신구약을 통하여 여러 곳에 언급되어 있는데, 신약성경에서만 331번이나 언급되어 있다. 또한 구약에서는 재림이 심판에 대한 개념으로 나와 있는데, 그 이유는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곧 세상의 역사가 끝나고 새 세상이 이를 때, 이 세상이 심판을 받게 된다는 개념, 그리고 새로운 세상(영광의 왕국)이 임한다는 개념에서 심판에 대한 성경절로 언급되어 있다. 참고로 구약에는 예수님의 재림과 천년 후에 삼림하시는 모습이 함께 섞이어 언급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 신약에 언급되어 있는 재림의 약속
1. 요 14:1~3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또 나를 믿으라.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2. 마 26:64
예수께서 가라사대 네가 말하였느니라. 그러나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이 후에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3. 계 22:7,12,20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이 책의 예언의 말씀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으리라 하더라,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이것들을 증거하신 이가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하시거늘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4. 약 5:7~8
그러므로 형제들아 주의 강림하시기까지 길이 참으라. 보라 농부가 땅에서 나는 귀한 열매를 바라고 길이 참아 이른 비와 늦은 비를 기다리나니 너희도 길이 참고 마음을 굳게 하라. 주의 강림이 가까우니라.

5. 벧후 3:12~13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의 거하는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6. 히 9:28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바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두번째 나타나시리라.

7. 행 1:10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 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8. 계 1:7
볼찌어다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 그를 찌른 자들도 볼터이요 땅에 있는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9. 살전 4:16~17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은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

10. 고전 15:51,52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11. 살후 1:7~9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12. 살후 2:8
그 때에 불법한 자가 나타나리니 주 예수께서 그 입의 기운으로 저를 죽이시고 강림하여 나타나심으로 폐하시리라.

* 구약에 언급되어 있는 재림의 약속
1. 욥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땅 위에 서실 것이라.

2. 단 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3. 사 13:6
너희는 애곡할지어다 여호와의 날이 가까웠으니 전능자에게서 멸망이 임할 것임이로다.

4. 사 2:10~12,20,21
바위 틈에 들어가며 진토에 숨어 여호와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라 그날에 눈이 높은 자가 낮아지며 교만한 자가 굴복되고 여호와께서 홀로 높임을 받으시리라 대저 만군의 여호와의 한 날이 모든 교만자와 거만자와 자고한 자에게 임하여 그들로 낮아지게 하고, 사람이 숭배하려고 만들었던 그 은 우상과 금 우상을 그날에 두더쥐와 박쥐에게 던지고 암혈과 험악한 바위 틈에 들어가서 여호와께서 일어나사 땅을 진동시키시는 그의 위엄과 그 광대하심의 영광을 피하리라

5. 시 50:3
우리 하나님이 임하사 잠잠치 아니하시니... 그 사방에는 광풍이 불리로다 하나님이 그 백성을 판단하시려고 윗 하늘과 아래 땅에 반포하시도다.

6. 사 66:15
보라 여호와께서 불에 옹위되어 강림하시리니 그 수레들은 회리바람 같으리로다 그가 혁혁한 위세로 노를 베푸시며 맹렬한 화염으로 견책하실 것이라.

7. 슥 14:4~5
그 날에 그의 발이 예루살렘 앞 곧 동편 감람산에 서실 것이요 감람산은 그 한가운데가 동서로 갈라져 매우 큰 골짜기가 되어서 산 절반은 북으로, 절반은 남으로 옮기고 그 산 골짜기는 아셀까지 미칠찌라... 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임하실 것이요 모든 거룩한 자가 주와 함께 하리라.

2부 - 재림의 방법 그리고 광경

 그리스도의 재림이 어떻게 이 지구에 임하게 될까? 예수께서 어떻게 재림하실 것과 또 어떠한 방식으로 임하실 것을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왜냐하면 오늘날 복음주의파 그리스도인들 가운데 불길처럼 번지고 있는 잘못된 가르침들 때문에 수백만의 기독교인들이 기만 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주님의 제자들이 감람 산 위에서 주의 임하심과 세상 끝에는 무슨 징조가 있겠습니까라고 진지하게 물었을 때, 그리스도께서 대답하시기를 아무도 너희를 미혹하지 못하게 하라고 하셨다. 주님의 대답에 나타나 있는 분명한 암시는 주의 재림에 관하여 잘못 인도하는 많은 가르침들이 있을 것이라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당신의 두 번째 오심을 표시하는 중요한 징조들을 열거하셨다. 마태복음 24장 거의 전체에는, 사단이 이 문제에 대해서 온 세상을 기만하려고 하는 계략을 경고하는 말씀들로 가득 차 있다. 예수의 말씀에 의하면, 택한 자들까지라도 악한자의 기만적인 출현에 공박과 위협을 당할 것이라고 되어 있다. 주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기만하는 선지자들이 마지막 때에 도무지 부인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면서 나타날 것을 말씀하셨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케 하리라(마태복음 24:24).

사단의 기만
 
예수께서 경고하신 미혹하는 사단의 기만, 곧 과감한 종교적 기만들이 나타나고 또 나타났는가? 그런 일들은 실제에 있어서 세계의 유명한 신문들에 의해서 많이 보도되어 왔다. 자칭 예수라는 사람들이 이곳 저곳에서 나타났고 또 나타날 것이다. 비록 이러한 많은 거짓 주장들이 거절되어 왔지만, 이 세상은 은연 중에 초자연적인 거짓 그리스도의 출현을 위하여 준비되어 왔다. 성경 지식의 부족으로 인해서,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이 기만적인 주장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준비되어 있다. 사단은 특히 요즈음, 영화를 통해서, 책을 통해서, 악한 영들과 교통하는 잘못된 채널러들을 통해서, 또한 UFO를 믿는 사람들을 통해서, 이 지구상의 특정지역에 어떤 외계인이나 어떤 초능력적인 존재가 나타날 것을 믿도록 사람들에게 세뇌교육을 시켜 놓았다.

 예수께서는 재림하실 때, 이 지구상의 어느 특정 지역에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지 않으셨다. 그때에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여기 있다, 혹 저기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 사람들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그리스도가 광야에 있다 하여도 나가지 말고 보라 골방에 있다 하여도 믿지 말라(마태복음 24:23-26).

 성경의 말씀을 잘 아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강림을 흉내 내려고 꾀하는 사단의 기만에 흽쓸리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이 재림에 관하여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자세히 연구하여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만일 유명한 TV 뉴스 아나운서들이 열띤 어조로 런던에, 뉴욕에, 로마에, 그리스도가 나타났다고 보도한다해도, 그래서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것을 예수의 재림으로 믿는다해도,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믿지 않을 것이다.

사단이 그리스도로 위장함
 
만일 여러분이 사단의 그러한 기만에 넘어가지 않도록 잘 방어되어 있다고 생각한다면, 다음과 같은 현상을 상상해 보라. 여러분이 예수께서 경고하신 대로 주의를 하고, 사단의 기만이라고 생각되는 교묘하게 위장한 어떤 사람을 폭로하기 위하여 현장으로 달려 갔다고 생각해 보자. 그러나 거기서 여러분은 자신이 그토록 장엄한 현실을 접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지 않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위로 몰려드는 수많은 군중보다 훨씬 큰 키의 한 위엄 있는 사람이 빛나는 두루마기 옷을 입고 서 있다. 놀라운 힘의 광원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한 이 사람의 주위를 두르고 있다. 또 그 사람은 예수께서 이 땅에 계셨을 때에 사용하셨을 것 같은 온화한 음성으로 말을 한다. 여러분은 놀라움으로, 그 사람이 손을 내밀어 장님과 절름발이와 그 앞에 엎드린 온갖 병자들을 만지는 모습을 바라본다. 즉시로 병자들이 모든 병들과 허약한 점들로부터 고침을 받는 모습을 보게 된다. 수 많은 군중들의 외침이 하늘을 찌르고 있다. 예수께서 오셨다!

 그럴 때, 여러분은 거리들을 가득 채우고 있는 사람들의 움직임과 함성 소리에 영향을 받게 될 것이다. 수많은 종교지도자들과 정치인들이 그 성자 앞에 무릎을 꿇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 때에 이 숭고한 모습의 성자가 말하기를, 자신은 바로 이 땅에서 거룩한 치료와 가르침을 다시 시작하기 위해 재림한 메시야라고 공언한다고 가정해 보자. 정말 그 사람을 하나님의 아들로 찬송하고 싶은 충동을 억제하는 일이 쉬운 일일까? 여러분의 감정은 흥분될 것이며, 눈에 보이는 증거들로 인해서 압도될 것이다. 전 세계가 그러한 휘황찬란한 과시에 매혹될 수 있을까? 그렇다! 왜냐하면 모든 인간들 속에는 신비하고 장엄한 광경에 이끌리는 선천적인 경향들이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아무리 많은 돈이 들더라도 초자연적인 기적을 보기 위해서 어디든지 갈 것이다. 사단은 바로 이러한 인간들의 약점을 이용할 것이다. 그러므로 택한 자까지 미혹될 위험성이 있다는 말씀을 깊이 생각해보아야 한다.

 그렇다면 주님께서는 어떻게 임하실까? 함께 연구해 보자. 그리고 우리의 유일한 안전 책은 성경에 나타난 그대로의 진리를 이해하는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자.

재림의 방법
 
예수께서는 어떻게 재림하실까? 어떤 방식으로 오실까?
1. 구름을 타고
 
성경에는 두 천사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스도의 재 강림의 방법에 대해 명확하게 알려준 기록이 있다. 그 기록은 사람들로 하여금 이런 식으로, 또는 저런 식으로 잘못 해석을 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 말씀을 마치시고 저희 보는 데서 올리워 가시니 구름이 저를 가리워 보이지 않게 하더라.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흰옷 입은 두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사도행전 1:9-11).

 이 성경 절에서 나오는 저희 보는 데서, 보이지 않게,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쳐다보느냐, 본 그대로와 같은 다섯 가지 표현들은 예수님의 승천은 실제적 사건이었다는 것을 분명하게 나타내고 있다. 그것은 어떠한 신비적인 꿈이나 환상이 아니었다. 그들은 문자 그대로, 주님께서 먼 하늘로 올리워 가서 사라지는 모습을 육신적인 눈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 때, 천사가 말하였다.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너희가 하늘로가 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주의 오심은 당신께서 승천하셨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에 보이는 실제적인 것이다. 주께서 구름을 타고 가셨으므로 역시 구름을 타고 오실 것이다. 그리하여 의인들은 공중에서 주를 영접할 것이다. 또 다른 성경 절이 구름을 타고 오시는 것을 확증해주고 있다. 요한이 기록한 성경에는, 보라 구름을 타고 오시리라 각인의 눈이 그를 보겠고(계 1:7)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 짧은 한 성경 절 속에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의 강림에 대하여 가장 놀라운 사실들 중 하나를 계시해 주고 있다. 주께서 하늘 공간을 통하여 구름을 타시고 서서히 강림해 오실 때,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살아 있는 사람들의 눈이 그를 볼 것이다. 지구상의 모든 나라의 악인들이 다 같이 고개를 들고, 온 하늘을 가득히 채우면서 오시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것이다. 예수께서는 다음과 같이 묘사 하셨다. 그때에 인자의 징조가 하늘에서 보이겠고, 그때에 땅의 모든 족속들이 통곡하며 그들이 인자가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것을 보리라 (마태복음 24:30).

2.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함께
 
사단과 악령들이 주의 오심을 여러 가지 모양으로 위장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주께서 이 지구로 오시는 찬란한 광경을 흉내 낼 수는 없을 것이다. 어느 누구도, 어느 때, 어느 곳에서도 그러한 영광과 장엄함을 인간의 눈에 나타내 보일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마태복음 25장 31절에서 주께서 오실 때에 모든 거룩한 천사들이 함께 수행할 것을 읽는다. 사도 요한의 기록에 의하면 하늘에 수십억 이상의 천사들이 있는데, 그 모든 천사들이 주께서 오실 때 그분을 수행할 것이다. 그 수가 만만이요 천천이라(요한계시록 5:11). 성경의 역사를 읽어보면, 때때로 한 천사가 인간들 앞에 나타나서, 하늘의 영광의 힘을 나타내었을 때에 그 결과는 엄청난 것이었다. 한 천사가 앗시리아 군대를 밤에 쳤을 때에 18만 5천명이 죽었다(열왕기하 19:35). 그와 같은 영광을 수천만 배 이상 더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러면 당신은 가히 재림의 영광을 짐작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사건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일까? 물론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번개가 동편에서 나서 서편까지 번쩍임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마태복음 24:27)고 하셨다. 그래서 온 족속과 민족이 그 놀라운 광경을 볼 것이라고 한 것이다. 어두운 밤에 밝은 번갯불이 각 사방으로 번쩍일 때에 누구나 다 볼 수 있는 것처럼, 주의 오심도 그러할 것이다. 지구는 이쪽 끝에서 저쪽 끝까지 환하여 질 것이다.

 위에서 우리들은 이 마지막 사건들이 어느 한 구석에서만 이루어 질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았다. 그런데, 눈에 완전히 보이게 임하는 것 외에도, 그리스도의 재림 시에는 굉장히 큰소리가 나게 될 것이다. 사도 바울은 기록하기를,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데살로니가전서 4:16)라고 하였다. 그 놀라운 광경과 소리는 죽은 자들이 깨어 무덤에서 일어날 정도로 굉장한 일일 것이다. 그 외치는 음성과 나팔 소리는 해 아래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들릴 것이다. 한가지 확실한 사실은 나팔은 조용한 악기가 아니라는 것이다. 나팔은 불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들리도록 하기 위하여 만들어진 악기이다. 더구나 하나님의 나팔이라고 표현된 것을 보면, 재림 시에는 굉장한 소리를 동반할 것을 알 수 있다.

*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광경이 계시록 19장에는 조금 다르게 표현되어 있는데, 거기에는 예수께서 천사들과 함께 오시는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또 내가 하늘이 열린 것을 보니 보라 백마와 탄 자가 있으니 그 이름은 충신과 진실이라 그가 공의로 심판하며 싸우더라. 그 눈이 불꽃 같고 그 머리에 많은 면류관이 있고 또 이름 쓴 것이 하나가 있으니 자기 밖에 아는 자가 없고 또 그가 피 뿌린 옷을 입었는데 그 이름은 하나님의 말씀이라 칭하더라. 하늘에 있는 군대들이 희고 깨끗한 세마포를 입고 백마를 타고 그를 따르더라(계 19:11~14).

3. 재림 때 일어날 현상
 
종말을 고하는 또 다른 현상은 무엇일 까? 재림 시에, 큰 진동과 세계적인 지진이 있을 것인데, 그것은 이전에 전혀 없었던 파괴적인 것이 될 것이다.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이 있고 또 지진이 있어 어찌 큰지 사람이 땅에 있어 옴으로 이같이 큰 지진이 없었더라...각섬도 없어지고 산악도 간데 없더라(요한계시록 16:18,20).

 커다란 파도에 의해서 사람들이 사는 섬들이 바다 속으로 사라져 버리는 공포의 광경을 그려 보라. 선지자의 생생한 묘사에 의하면, 거대한 산맥들이 산산 조각이 나서 무너져 내릴 것이라고 되어 있다. 그러한 광경을 근거로 해서 생각해 볼 때, 우리 주님의 강림은 유사이래 가장 커다란 지각의 변동 사건을 가져올 것이 확실하다. 이 지구상의 어느 한 사람도 숨을 수 있는 장소를 찾지 못할 것이다. 특별히 악인들은, 지상으로 예수님을 에스코트하여 오는 수 많은 하늘 천군들의 행렬이 다가올 때에 크게 동요하게 될 것이다. 요한은 악인들이 자기가 거절하고 부인한 분의 임재 앞에서 피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이렇게 묘사 하였다. 하늘은 종이 축이 말리는 것 같이 떠나가고 각 산과 섬이 제 자리에서 옮기우며, 땅의 임금들과 왕족들과 장군들과 부자들과 강한 자들과 각 종과 자주자가 굴과 산 바위틈에 숨어 산과 바위에게 이르되, 우리 위에 떨어져 보좌에 앉으신 이의 낯에서와 어린양의 진노에서 우리를 가리우라.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요한계시록 6:14-17).

3부 - 휴거설은 믿을 만한 것인가?

 신약 성경에 나오는 그의 저서에서 사도 바울은, 재림 때에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하여 준비되지 못한 자들의 최후 운명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환난 받는 너희에게는 우리와 함께 안식으로 갚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시니 주 예수께서 저의 능력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불꽃 중에 나타나실 때에 하나님을 모르는 자들과 우리 주 예수의 복음을 복종치 않는 자들에게 형벌을 주시리니 이런 자들이 주의 얼굴과 그의 힘의 영광을 떠나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으리로다. 그날에 강림하사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시고(데살로니가 후서 1:7-10). 이 성경절을 읽어보면 의인들은 예수님의 재림 때에 영화롭게 되는 동시에 주의 은혜를 거절한 자들은 그의 임재의 빛에 의하여 죽임을 당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흥미로운 계시는 수백만의 그리스도인들을 잘못 오도한 커다란 기만을 밝히 드러내 주고 있다. 위에 나오는 명확한 성경 말씀처럼, 의인들이 영원 불멸의 몸을 받는 그 같은 시간에 악인도 심판 받는다. 그러므로 성도들의 승천에 대해서는 비밀스러운 것이 하나도 없으며, 많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퍼져 있는 소위 비밀 휴거설은 성경이 말하는 진리가 아니요, 인간이 억지로 풀어낸 하나의 망상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이 입증된다. 휴거설에 대하여 더 자세히 연구해 보자.

두 단계로 오신다는 설
 
그리스도의 오심이 두 가지 단계로 이루어진다는 이야기를 하는 그리스도인들이 있는데, 그들이 주장하는 것에 대한 어떠한 암시도 성경에서 찾아볼 수 없다. 매우 인기 있는 가르침인 휴거, 즉 예수께서는 세상의 종말이 오기 7년 전에 오셔서 선한 사람들을 비밀리에 살짝 데려가신다는 관념은 아무런 성서적 뒷받침이 없는 것이다. 의인들의 신비한 휴거 이후에 7년 동안 악인들이 지상에서 계속해서 산다는 가르침은 성경에서 찾을 수 없는 가상적인 스토리이다.

 바울은 말하기를, 예수께서 강림하셔서 그의 성도들에게 영광을 얻으실 때 악인들은 죽임을 당한다고 하였다. 얼마나 진리가 왜곡되었는가? 악인들 역시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예수 그리스도를 볼 것이다(계 1:7참조). 바울은 그가 두 번째 나타나실 것이요(will appear)(히브리 9:28) 라고 말하였으며, 베드로는 목자 장이 나타나실 때에(appear)(베드로전서 5:4) 라고 하였다. 만약에 주의 오심이 비밀스러운 것이거나 보이지 않는 일이라면, 그가 나타나시지 않을 것이라고 기록되었어야 한다. 나타난다는 것은 눈에 보인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오실 때에 우리 눈에 나타나실까? 혹은 나타나지 않으실까? 많은 성경절들이 주께서 나타나실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성경을 신뢰하겠는가? 아니면, 자신이 믿기 원하는 바를 지지하기 위하여 나타나실 것이요라는 말씀을 나타나지 않을 것이요라는 의미로 해석 하겠는가?

도적같이 오신다는 뜻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예수의 오심에 대하여 설명하는 두 가지 성경 구절을 잘못 해석함으로써 많은 혼돈이 생겨나고 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오해할 수 없도록 명확하게 말씀하셨다. 자 이제, 주님의 말씀 중에서 비밀 휴거를 증명하는 말씀으로 사용되고 있는 밤중에 도적같이라는 말씀과,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하리라는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기로 하자. 만일 우리가 마음을 열고 성경이 말하는 그대로를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 가운데 모호할 것이 전혀 없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 밤중에 도적같이라는 뜻
 
성경에 나오는 주님께서 밤중에 도적같이 임하실 것이라고 말씀하신 의미가 무엇일까? 예수님께서는 그 뜻을 마태복음 24:42-44절에 자세하게 설명하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을 때에 인자가 오리라.

 바로 이것이다! 이것은 어린아이라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간단한 것이다. 주의 재림은 거의 모든 사람들이 기대하지 않을 때에 이루어질 것이다. 재림은 이 세상을 깜짝 놀라게 만들 것이다. 즉, 주의 오심은 이 땅의 사람들이 가장 적게 기대하고 있을 때에 나타날 것이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밤중에 오는 도적을 예상하지 못하는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하지 않은 사람들은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그리스도의 재림을 맞이할 것이다. 이 말씀은, 주님께서 도둑처럼 아무도 모르고 비밀스럽게 우리에게 오실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다. 앞에서 배운 것처럼, 주님께서 오시는 광경은 세상이 목격할 수 있는 장엄한 광경으로 이루어질 것이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하는 때에 오실 것이다. 예수께서 50절에서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재강조해 주시고 계시다. 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베드로도 그리스도의 오심을 묘사하면서 꼭 같은 말을 사용하였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같이 오리니 그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베드로 후서 3:10). 이 성경 절 하나 안에도, 요즈음 많이 논란되고 있는 말의 의미를 알 수 있는 모든 증거가 포함되어 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도적같이 오실 때를 말하면서, 동시에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는 모습을 말하고 있다. 그렇다면 그것이 과연 비밀스러운 일이 될 수 있겠는가? 상식을 가지고 있는 그리스도인이라면, 이 장면을 수백만의 사람들이 하늘로 비밀스럽게 들려 올려지고, 나머지 다른 사람들은 전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모습으로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한 해석은 성경 말씀이 의미하는 바와는 정반대이다. 베드로가 언급한 큰 소리는 바울의 서신 가운데에서, 너무 소리가 커서 죽은 자들까지도 깨어 일어날 것이라고 말한 바로 그 외침과 나팔 소리인 것이다.

2.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한다는 뜻
 
한가지 놀라운 사실은, 사람들은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하여 의미가 분명한 성경절들을 문맥에서 떼어내어 마음대로 해석한다는 것이다. 이런 일이 예수님께서 하신 맷돌을 가는 두 여인의 예화(눅 17장)에도 생겼다. 예수께서는 이 예화에서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는데, 이 성경절이 포함되어 있는 문맥은 우리에게 어떠한 의미를 전해 주고 있을까? 34절을 보자.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자리에 누워있으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두 여자가 함께 매를 갈고 있으며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성경으르 보면 매 경우마다 의인을 악인으로부터 골라내는 일이 있고 나서 악인이 죽임을 당했다. 누가복음 17장에 나오는 전체 이야기를 보면, 노아와 롯의 때에 버려둠을 당한 자들이 멸망을 당한 것처럼,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은 죽음을 당하게 된다는 예증이다. (눅 17장을 읽으라) 예수께서 맷돌을 갈던 여인이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이 그들이 어디에 버려둠을 당할 것인지를 물었다.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죽음)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눅 17장 37절). 주님의 대답은 명확하게, 버려둠을 당할 자들은 죽을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버려둠을 당하는 자들의 시체는 독수리들이 뜯는 먹이가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이 문제에 대해서 다른 성경 구절들이 말하는 바와 완전한 조화를 이루는 해석이다.

 여기에는 마지막에 구원받을 자와 멸망받을 자들이 갈라지는 일이 어떤 비밀스러운 방법으로 될 것이라는 암시가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인간이 만든 근거 없는 전통을 유지하기 위해서, 영감의 말씀을 자신들이 기존에 가지고 있던 편견에 맞추려고 노력함으로써, 결국에는 성경 말씀을 곡해하게 되는 것이다. 먼저 비밀 휴거가 있고, 7년 후에 다시 재림이 있을 것이라는 비 성서적인 2단계적 재림의 가르침이 계속해서 가르쳐져 왔기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진리인 것처럼 믿게 되었다. 그것은 매우 위험한 가르침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대다수의 그리스도인들을 멸망으로 인도하도록 기만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마지막 때에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경고하셨다. 여러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경고를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가?

천주 교회에서 태동한 휴거설
 
휴거논리는 천주 교회에서 400년 전에 기초를 놓은 가르침이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어떻게 이러한 논리가 생기게 되었으며, 왜 이러한 논리가 생겼는가를 이해해야만 한다. 만약 휴거 논리와 미래 적그리스도에 대한 교리를 그토록 열렬히 지지하는 개신교인들이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알게 된다면, 아마 경악을 금치 못할 것이다.

 종교 혁명 당시, 마틴 루터와 그의 동료 개혁자들은 과감하게 교황이 죄의 사람이라는 사실을 성경을 통해서 밝혔으며, 천주 교회를 예언에 나타나 있는 적 그리스도의 세력이라고 지목하였다. 이러한 공격에 대하여 천주 교회의 지도층에서는, 천주 교회가 그러한 공격을 피할 수 있는 예언 해석을 만들기 위하여, 두 명의 제수잇(예수회) 신부들에게 방어용 예언 해석의 책임을 맡기었다. 그리하여 이 두 신부는 개혁자들의 해석을 반대하기 위한 학설을 만들어 내게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생겨난 학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두 신부의 이론이 세월이 흘러가면서 거의 모든 개신교 신학의 기초를 이루게 되었다. 이 두 제수잇 신부들은, 마틴 루터가 교황을 적 그리스도로 지목하는 일을 효과적으로 방어했을 뿐 아니라, 개혁 운동의 결과로 생겨난 모든 개신교회들의 항거운동을 교묘하게 분리시키고 희석시키는 일에 성공하였다.

 오늘날, 종교의 흐름을 주의 깊게 지켜보는 사람들은, 빌리 그래함 목사나 제리 포웰 목사 같은 개신교회의 대표적인 지도자들이 미국과 바티칸의 정치적인 연합을 인정할 뿐만 아니라 지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깜짝 놀라고 있다. 어떻게 그토록 유명한 개신교의 대표자들이 로마 천주교회와의 연합에 대한 위험을 보지 못할 수 있는가? 그것은 그들 역시 다른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처럼, 종교 개혁자들의 역사적이고 성경적인 입장을 희미하게 만들어 버린 천주교회의 두 신부들의 논리에 깊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두 신부의 학설을 살펴보자.

1. 과거주의 설
 
먼저, 알카잘 신부는 요한계시록에 나오는 짐승에 대한 모든 예언을 안티오커스에피파네스 즉, 교황이 로마를 지배하기 오래 전에 살았던 한 장군에게 적용시킴으로써,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 이미 과거에 성취된 것으로 설명함으로써, 교황을 적그리스도라고 지목하였던 개혁자들의 공격을 피할 수 있게 만들었다.

2. 미래주의 설.
 
반면에, 제수잇(예수회) 신부인 프란시스코 리베라는 해석방법에 있어서 미래주의로 알려진 학설을 창안해 내었다. 그는, 적 그리스도를 세상의 종말에 나타나서 3년 반 동안 세력을 유지하는 뛰어난 어떤 인간으로 가르쳤다. 따라서 그의 가르침도 교황을 향한 종교 개혁자들의 공격을 미래로 돌리는 일에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하였다. 사람들은 자연히 과거주의나 미래주의적인 해석 중 둘 중에 하나를 받아들이거나 택하게 되었고, 그리하여 그 가르침의 잔재가 기독교 신학에 남아있게 된 것이다. 휴거의 이론과 미래의 적그리스도 이론은, 제수잇의 두 신부가 교황권을 보호하기 위해서 적그리스도에 관한 예언 해석을 왜곡시켜 놓았던 데에서부터 유래된 것이다.  그런데, 오늘 날 이러한 그의 비 성서적인 학설이 현대 그리스도인들에 의하여 부활되었다. 오늘날 수백만의 침례교, 감리교, 오순절 파의 교인들이 예수회(제수잇) 신부들이 만든 잘못된 학설을 마치 오류가 있을 수 없는 교리처럼 받들고 있다. (더 자세하게 휴거에 대하여 알기 원하는 독자는 살아남는 이들 24호를 참조할 것)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을 연구할 때, 기도하는 마음으로 연구하여야 하며, 또 지혜롭게 그 장의 전체의 요약과 문맥과 문장을 함께 살피며 공부하여야 억지로 성경을 푸는 실수를 범하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휴거설은 성경이 가르치는 바와 전혀 상관이 없는 인간이 만들어 낸 거짓 학설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리고 진짜 휴거는 아무도 모르게 살짝 들리워지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재림을 위하여 준비된 의인들이 공중에서 예수님을 만날 때, 바로 그 가장 감동적인 재림의 순간에 이루어진다는 것을 기억하자!

4부 -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이유

구원과 보상

 재림의 문제를 연구하다 보면 한 가지 극적인 국면으로 들어가게 된다. 그것은 왜 예수께서는 이 지구상으로 다시 돌아오실까?라는 질문이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다.

 그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를 영원히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보상해 주시기 위하여 재림하시는 것이다. 사도 요한은 그의 영감의 글에 이렇게 기록하였다.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 대로 갚아 주리라(요한계시록 22:12).

 길고 긴 수천 년의 고난 이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마침내 사단의 악의 속박으로부터 구속함을 받게 될 것이다. 예수께서 재림하시면, 준비된 의인들은 공중에서 예수님을 영접하여 불멸의 몸을 입고 하늘에 올라가 영생을 누리며 하늘에서 영원히 살 것이다. 마귀의 세력의 표는 지상의 공동묘지들 위와 전쟁 전사자들의 기념비들 위에 새겨져 있다. 성도들의 눈물과 부르짖음은 아담이 범죄한 이후부터 모든 세대의 역사를 통하여 점철되어 왔다. 죄의 저주가 걷혀지고 모든 인류의 가장 최대의 원수가 영원히 없어지는 그 날이 어서 속히 오기를 우리는 얼마나 기다리는가! 바울은 다음과 같은 글로 묘사했다.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 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그 후에 우리 살아 남는 자도 저희와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올려 공중에서 주를 영접하게 하시리니 그리하여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데살로니가전서 4:16,17).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지고 오시는 보상은 지구상의 어느 언어로도 적당하게 묘사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 중 무엇보다도 죽은 의인들의 부활은 장엄한 초점을 이룰 것이다. 수세기 동안 자고 있던 수많은 자들은 마치 꿈도 꾸지 않고 하룻밤을 자고 난 것처럼 깨어날 것이다. 얼마나 경이로운 일일 것인가! 어떤 사람들은 일생 처음으로 자신을 괴롭혀온 통증으로부터 자유롭게 될 것이다. 또한 과거에는 그저 만지거나 소리를 들어야만 사랑하는 자들을 알아볼 수 있었던 소경들의 눈이 열리게 될 것이다.

 바울은 성도들이 순식간에 변화하여 영원히 죽음과 고통의 영역을 벗어나는 일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다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이 썩을 것이 불가불 썩지 아니할 것을 입겠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으리로다(고린도 전서 15:51-53).

 부활한 자들이 공중에서 예수를 만나기 위하여 일어나고 모든 살아 있는 성도들이 순식간에 불멸한 젊음의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예수님의 발은 그때에 땅을 밟지 않을 것이며, 모든 구원 받은 자들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서 하늘에서 내려오시는 주님을 만나게 된다. 그 우주적인 재회는 기나긴 지구성의 역사 가운데 가장 황홀하고 감동적인 순간이 될 것이다! 성경의 많은 말씀들이 그 절정의 사건을 가장 열띤 어조로 묘사하고 있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죄의 종식과 회복 (구속의 경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또 다른 이유는 여기에 있다.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었을 때, 예수께서는 그들을 정죄하는 대신 그들을 구원하시기 위한 구속의 계획(창 3:15)을 발표해 주셨다. 내가 너로 여자와 원수가 되게하고 너의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이 말씀에는 깊은 의미가 담겨 있었다. 인간이 최초로 범죄하였을 때, 사람뿐만 아니라 지구도 죄로 말미암아 악한 자의 권세 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것들은 구속의 경륜으로 말미암아 회복될 것이었다. 아담은 창조될 때에 지구를 통치할 지위에 세워졌으나, 유혹에 굴복함으로 그는 사단의 지배 아래 들어갔다. 누구든지 진 자는 이긴 자의 종이(벧후 2:19) 된다. 사람이 사단의 포로가 되므로 그가 가졌던 통치권이 그의 정복자에게 넘어간 것이다. 이같이 하여 사단은 이 세상 신(고후 4:4)이 되었다. 그는 원래 아담에게 주어진바 되었던 지상의 통치권을 찬탈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희생으로 죄의 형벌의 값을 치르심으로 말미암아 사람을 구속하실 뿐만 아니라 사람이 잃었던 통치권도 되찾으실 것이었다. 첫째 아담이 잃어버린 모든 것을 둘째 아담이 회복하실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고 행복스러운 존재의 거처가 되도록 이 땅을 창조하셨다. 주께서 땅도 창조하시고 견고케 하시되 헛되이 창조치 아니하시고 사람으로 거하게 지으(사 45:18)셨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땅이 새롭게 되고, 죄와 슬픔에서 해방되어 그것이 구속받은 자들의 영원한 거처가 될 때 이 목적이 성취될 것이다.

 사단은 하늘에서 추방되었을 때 이 지구를 그의 나라로 삼으려고 단호히 결심하였다. 아담과 하와를 유혹하여 그들을 정복하였을 때 그는 이 세상이 그의 소유물이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왜냐하면아담과 하와가 나를 그들의 통치자로 선택하였기 때문이다라고 그는 말하였다. 그는 죄인을 용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므로 타락한 인류는 그의 합법적 백성이며 이 세상은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과 동등이신 당신의 귀하신 아들을 주셔서 죄의 형벌을 담당하게 하심으로 그들이 그분의 은총을 회복하고 그들의 에덴 본향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길을 마련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을 구속하고 사단이 장악하고 있는 이 세상을 탈환하시겠다고 약속하셨고, 그 일을 십자가에서 이루셨다. 그리고 그분의 능력을 받아 자신의 생애에 구속의 계획을 이룬 사람들, 곧 죄를 버리고 회개하고, 죄를 승리한 사람들을 데리러 오실 것이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에 완전한 구속의 계획이 끝나는 것이다.

영원한 속죄와 회복
 
죄는 이 세상에 너무나 많은 고통과 슬픔과 부조화를 가져왔다. 범죄한 이 지구는 하나님의 우주의 질서를 망쳐놓았으며, 범죄한 우리는 사랑의 하나님의 가슴에 너무나 많은 비극을 가져왔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속죄로 인하여 이 세상뿐 아니라, 온 우주도 안전하게 될 것이다. 죄는 영원히 사라질 것이며, 이 지구와 온 우주는 처음처럼 회복될 것이다. 그런데 한가지 중요한 사실은, 구속함을 받은 지구, 죄가 영원히 사라진 새 하늘과 새 땅에 들어가 함께 살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 속에서 죄가 그쳐진 사람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왜나햐면 하늘에 성전이 보이지 않더라는 요한의 말을 보면, 하늘에서는 죄를 속하는 일이 다시는 없다는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이유 중 또 하나의 아주 중요한 이유는, 마음 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미워하며 정결한 생애를 산 사람들을 다시는 죄의 유혹이 없는 세계, 다시는 속죄할 필요가 없는 하늘로 데려가 살게 하시려는 것이다. 그 때에 이 지구와 재림을 위해 준비된 성도들을 위한 영원한 회복이 성취되는 것이다.

* 재림신앙을 잃어버린 기독교
 
거의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의 재림과 그것이 어떻게 지구의 거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진리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거의 모든 교회들이, 개신교회를 세운 개혁자들의 성경적인 견해를 잃어버렸으며, 천주교회에서 유래된 휴거설을 받아들였다. 그 결과로 수많은 교회의 교인들이 휴거와 같은 결코 일어나지 않을 사건들을 간절히 고대하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주님의 오심은 몹시 두렵고 황당무계한 주제가 되어 버렸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재림 사건에 대해 무감각한 느낌을 가지는 이유는, 성경을 정확하게 연구하지 못함으로 인한 지식의 부족과, 성령의 충만하신 역사로 인해 진정으로 거듭난 경험이 없으므로 인해 주님을 맞이할 개인적인 확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올바른 성경의 진리들을 왜곡하여 가르친 종교 지도자들의 가르침을 양들이 무조건 맹종한 결과이기도 하다.

5부 - 재림을 위한 우리의 준비

 예수님의 재림이 아무리 최대의 감동적인 순간일지라도 만일 우리 자신이 재림을 위하여 준비되어 있지 않다면, 그 날은 우리에게 환희의 순간이 아니라 최대의 슬픔과 저주의 날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기쁨과 감동적인 재림의 순간을 맞이 하기 위하여 우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할 것인가?

깨어 있으라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마 24:42~43). 깨어 있어 기도하고, 마지막 징조가 가까운 것을 살피라는 이 말씀의 뜻을 모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에서는 표면적인 뜻보다 더 영적인 의미에서의 뜻을 살펴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예수께서는 세상의 마지막에 임할 여러가지 징조들을 말씀하시면서 이런 마지막 징조들을 보면 재림이 가까운 것을 알아 깨어있으라고 권고 하셨다. 성경에서 예수께서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던 경우들을 보면, 그것은 매우 중요한 사건이 일어나려고 하는 때였으므로, 준비하고 자신을 살피라고 그렇게 경고하셨던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께서 그분의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명령하신 때가 있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마 26:41, 막 14:38). 이 말씀을 하셨던 때는 십자가의 고난을 바로 앞둔 시기로써, 그분께서는 제자들이 영적인 혼수상태에 빠져들므로 앞으로 다가올 시련의 때, 곧 십자가의 고난의 때에 그들이 놀라서 영적으로 실패하지 않도록 준비하게 하시기 위함이었다. 예수께서는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권고하시며 매우 중요한 시기에 깨어 있지 못하고 잠자는 제자들을 향하여 안타깝게 호소하셨다. 만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의 명령대로 제자들이 깨어 있어 기도했다면, 온 우주를 감동시킨 구속의 경륜의 위대한 계획이 성취되는 그 놀라운 십자가의 고난의 사건에 그들이 모두 예수님을 배반하고 도망가는 실수를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깨어 있지 못하고 혼수상태에 빠져들므로, 만약에 예수님과 함께 깨어 기도했더라면 깨달았었을 구원의 비밀의 오묘를 놓쳤을 뿐 아니라, 사랑하는 그들의 선생님이 십자가의 고난을 위해 잡히셨을 때 믿음과 용기의 부족으로 도망하므로 예수님의 마음에 큰 고통과 실망을 더 해드리고,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신의를 져버리므로 세상에 비웃음을 가져왔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 세상의 마지막 징조들과 함께 경고하신 깨어 있어 기도하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

1. 깨어 있다는 것은 본다는 것
 
깨어있다는 것은 자신을 아는 것이다. 자신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이다. 깨어 있어 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바로 볼 줄 아는 사람은 거듭난 사람이며, 죄를 이기는 사람이다. 왜냐하면, 자신을 적나라하게 그리고 솔직하게 아는 사람은 자신의 부족함과 연약성을 스스로 잘 알고 있으므로, 성령의 필요와 예수님의 임재를 늘 간구하고 갈급하게 되고, 그리하여 그에 대한 응답으로 능력과 은혜를 받아 죄를 이기고 승리하는 삶을 살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성령의 감동으로 마지막 시대 라오디게아 교회 교인인 우리들에게 권고하시기를, 요한 계시록 3장 17절 18절에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고 하시며, 스스로 부자인줄 알지만 우리 자신들이 얼마나 헐벗은 상태인지를 보라고 하셨다. 만일 십자가 이전의 베드로가 자신을 진정으로 살피고 아는 사람이었다면, 예수님의 권고를 듣고 섭섭해 하거나 자만에 빠지는 대신, 자신을 깊히 살피므로 역사에 길이 남을, 예수님을 부인한 사람이라는 오명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믿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하나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보지 못하는 바리새인들에게 너희가 소경되었더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저 있느니라(요 9:41)고 말씀하셨다. 본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자신의 모습을 바로 아는 사람만이 변화함을 입을 수 있다. 보는 것은 변화함을 얻는 지름길이다. 자신의 진정한 모습 그대로를 보는 사람만이 고침을 받기 위하여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나아가 모든 것을 적나라하게 그분의 앞에 내어 놓게 되고, 그렇게 하는 사람만이 세상과 자신과 죄를 이기기 위한 무한한 하늘의 능력을 받게 된다. 아무리 스스로 영적으로 훌륭하다고 생각할지라도, 또는 스스로 자신이 진리에 대하여, 신앙생활이나 성경지식에 있어서 뛰어나고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할지라도, 스스로의 모습을 진정으로 볼 수 없다면, 그 사람은 깨어 있는 사람이 아니요, 영적으로 눈멀고 곤고한 상태에 빠진 라오디게아 교인에 불과한 것이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는 예수님의 명령은 재림을 맞기 위하여 우리의 마음을 영적으로 준비하는 일에 있어서 우리가 갖춰야 할 첫번째 계단인 것이다.

2. 성령이 필요함
 그런데, 깨어있기 위해서는, 곧 자신을 있는 그대로 적나라하게 보기 위해서는 우리에게 성령의 안약과 식별력이 필요하다.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우리가 깨어남을 경험할 수 없으므로 자신을 볼 줄 모르게 되고, 또 성령의 역사가 아니면 깨어있음을 경험하지 못하므로 자신을 알지 못하게 되어 생애에 진정으로 하나님을 찾거나 만나는 경험을 할 수 없다. 그러므로 깨어나 자신의 모습을 보고 회개하여 거듭남의 경험을 하는 데에도 성령의 역사가 필요하고, 또 깨어 있어 늘 자신의 부족함을 알게 되고 그리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구하여 죄를 이기는 성화의 삶을 지속하는 데에도 성령이 필요하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상태를 보지 못하므로 예수님을 마음 문 밖에 세워놓고 모셔 들이지 않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의 곤고한 상태에 대하여 권고하시며 성령의 안약을 사서 보라고 하신 것이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삶, 마음 안에 모셔 들여 함께 살고 먹고 마시는 동행의 삶,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삶을 살라고 권고하신 것이다.

 이렇게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사는 사람은 그 마음 속에 비밀을 이루는데, 그 비밀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 곧 영광의 소망(골 1:27, 골 2:2)이시다. 이렇게 우리 안에 영광의 소망이신 그리스도가 온전히 함께 하시는 삶을 사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 죄를 이기고 미워하며 승리하는 삶을 살뿐 아니라, 영광의 소망이신 예수님을 마음에 모시고 함께 살므로 어떤 여건에서도 감사하고 행복한 진정한 믿음의 생애를 살게 된다. 그러므로 이 비밀을 마음 속에 이룬 사람은 벌써 재림을 맞을 준비가 마음 속에 되어 있는 사람이다. 그러므로 늘 깨어 자신의 모습을 바로 보는 사람이, 졸지 않고 깨어서 재림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사람이다.

재림준비를 방해하는 요인
 예수께서는 깨어 있어 당신의 재림을 위해 준비하라고 하시며 덧붙여 깨어있음을 방해하는 위험요소에 대하여 경고하여 주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 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눅 21:34). 이 성경절에서 예수님께서는 깨어 있어 주님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조심해야 할 것들이 있는데, 그것은 방탕함과 술 취함과 생활의 염려라고 하셨다. 이 뜻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자.

1. 방탕함
 
예수께서는 당신이 재림하실 때의 세상의 형편을 지적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 24:37). 노아의 때의 형편은 어떠하였는가?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창 6:5). 홍수 이전 세상의 주민들은 여호와를 떠나고 그분의 거룩한 뜻을 행하기를 거절하였다. 그들은 그들 자신의 거룩하지 못한 상상과 악한 생각을 따라 행하였다. 그들이 멸망당한 것은 그들의 죄악 때문이었는데, 오늘날 세상도 같은 길을 따라가고 있다. 이것이 방탕함의 죄이다. 오늘날 이 세상에는 하나님의 율법을 범하는 자들이 세상을 죄악으로 가득 채우고 있다. 그들의 노름, 경마, 도박, 방탕, 음란한 행위, 억제할 수 없는 정욕들은 이 세상을 신속하게 난폭한 행위로 가득 채우고 있다. 재림의 징조를 말씀하신 다음 그리스도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가 이런 일이 나는 것을 보거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줄을 알라, 주의하라 깨어 있어 기도하라(영문 성경 참조)고 말씀하셨다.

 우리는 세상의 쾌락과 방탕함에 이끌려 마음이 미혹하는 힘에 빠지지 않도록 스스로를 지켜야 한다. 악한 종은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고 하였다. 그는 그리스도께서 오시지 않는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견해를 비웃지도 않았다. 그러나 행동과 말로써 또는 마음속으로 주의 오심이 지체되리라고 선언한다. 그는 주께서 빨리 오시리라는 확신을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서 사라지게 한다. 그의 영향으로 사람들을 외람되게 하고 부주의하게 하며 지체하도록 한다. 그들은 세속적인 무감각 속에 굳어져 있다. 세상 정욕과 부패된 사상이 그들의 마음을 점령하고 있다. 이렇게 악한 종은 주객과 같이 먹고 마시며 향락을 추구하는 일에 세상과 연합하고 있다.

 세상은 지금 방탕함과 불경건한 향락으로 가득차 깊이 잠들어 있으며 육적인 안전에 마비되어 있다. 사람들은 주의 오심이 먼 훗날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들은 경고를 비웃으며, 만물이 처음 창조할 때와 같이 그냥 있다, 내일도 오늘 같이 또 크게 넘치리라고 거만하게 자랑한다(벧후 3:4; 사 56:12). 그런 사람들은 향락을 사랑하는데 더 깊이 빠져 들어갈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는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계 16:15)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이 조롱하면서 주의 강림하신다는 약속이 어디 있느뇨 하고 묻는 바로 그 때에 징조는 성취되고 있는 중이다. 그들이 평화와 안전을 부르짖을 때에 홀연히 멸망이 이른다. 그러므로 방탕함에 빠지지 않도록 우리의 마음을 지키는 일이 재림을 준비하는 것이다.

2. 술 취함
 
만일 일깨지 아니하면 내가 도적같이 이르리니 어느 시에 네게 임할는지 네가 알지 못히리라(계 3:3). 성경을 보면 술취함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그것은 요한 계시록 17장 2절에 나온다. 그 구절을 읽어보면, 땅의 임금들이 음행의 포도주로 취한 모습이 그려져 있는 것을 알수 있다. 이것은 영적인 의미로, 사람들이 바벨론인 교황권의 오류의 포도주, 즉 잘못된 가르침에 취해 있는 것을 뜻한다. 오늘날 기독교에 침투해 들어온 거짓된 가르침의 오류에 많은 교인들이 취해 있다. 즉, 한번 구원을 받으면 영원히 구원을 받는다는 구원설, 어떤 사람은 어떤 행동을 해도 구원을 받도록 예정되어 있다는 예정설, 하나님의 사랑은 너무 커서 우리의 행위에는 상관이 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무조건 구원을 얻는다는 신신학 등등, 이 음녀의 포도주에 온 세상 사람들이 취해 있다. 사람들은 스스로 깨어 성경과 진리의 토대에 굳건히 서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을 하지 못한 채, 교사들이나, 잘 모르는 목사들이 가르치는 가르침이나 설교에 자신의 영혼의 구원 문제를 맡겨 버린다. 그 결과 그들은 함께 포도주에 취해 자신이 안전한 것으로 착각하여 깊은 잠에 빠진다. 진리를 모르는 거짓 교사들은 평화와 안전을 말한다. 예루살렘이 멸망하기 이전의 제사장들과 교사들처럼 그들은 교회가 세속적 번영과 영광을 누리기를 바란다. 그들은 시대의 징조를 이 일의 전조인 것처럼 해석한다. 그러나 영감의 말씀은 무엇이라고 말하는가? 멸망이 홀연히 저희에게 임하리(살전 5:3)라. 온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날은 덫과 같이 임할 것이다. 주의 날은 그들에게 노리는 도둑처럼 올 것이다. 그러므로 바른 진리를 알아 오류에 빠지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이, 곧 술취하지 않고 깨어 있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

 성경에 보면 오류에 취한 거짓 교사들은 그의 동료 종들을 때리며 저희 주님께 충성스러운 자들을 비난하며 정죄한다. 곧 재림이 가까웠다고 전하는 동료들을 핍박한다. 그들은 세상과 섞인다. 범죄에 있어서 같은 사람은 같은 사람끼리 모인다. 이것은 무서운 융합이다. 사람들이 취하여 세상과 같이 함정에 빠져 있을 때, 알지 못하는 시간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외식하는 자의 받는 율에 처하리라고 성경은 경고하고 있다. 그러므로 술취함에 빠지지 않고 바른 진리 안에 굳게 서 있는 것이 재림을 준비하기 위해 매우 중요하다.

3. 생활의 염려
 
마태복음 13장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씨뿌리는 자의 비유를 보면, 그리스도께서 심령을 위태롭게 하는 일들에 대하여 주의를 주신 말씀을 발견할 수 있다. 마가는 그것들이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욕심과 다른 모든 물욕이라고 말했고, 누가는 이 세상의 염려와 부와 쾌락을 열거하고 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막고 영적 씨의 성장을 방해하는 것들로 그려져 있는데, 이것이 곧, 생활의 염려이다.

 생활의 염려. 어떤 계층의 사람들을 막론하고 세상의 염려로 시험을 받지 않는 사람은 없다. 가난한 사람에게는 고역(苦役)과 빈곤과 궁핍의 염려가 그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또 무거운 짐이 되며, 부자에게는 재물을 잃어버릴 염려와 여러 가지 근심 걱정이 있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많은 사람들이 들의 꽃에서 배우라고 그분께서 당부하신 공과를 잊어버린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끊임없는 보호를 신뢰하지 않는다. 그들의 짐을 그리스도께 맡기지 아니하므로 그분은 저희의 짐을 지실 수 없다. 그리하여 생활의 염려가 그들로 그리스도께 가서 도움과 위안을 얻도록 하는 대신에 그것들이 오히려 그들로 그분에게서 떠나게 한다.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많은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사람들이 재물을 모으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그 결과로 그들의 모든 정력을 그들의 사업에 바치게 되어 자연히 영적 사물을 등한히 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들은 저희 자신을 하나님께로부터 끊어지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사업에 너무나 열중하기 때문에 기도할 시간도, 성경을 연구할 시간도 없고 하나님을 찾아 섬길 시간도 없다. 그리하여 때때로 그들의 심령이 성결하게 되고 천국에 들어가기를 사모하지만, 그들은 세상의 시끄러운 소리를 떠나 장엄하고 위엄 있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시간이 없다. 영원한 사물은 부차적이 되고 세속적인 사물이 으뜸으로 삼아진다.

 또한 이것들과는 전혀 같지 않은 목적을 가지고 일하는 많은 사람들도 이와 비슷한 과오에 빠진다. 그들은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하여 일하지만 저희의 임무가 너무 무겁고, 책임이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 기도하고 예배할 시간이 없을 만큼 분주하다. 그리하여 그들은 기도하고 말씀을 연구하는 일을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일을 등한히 하고 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 15:5)고 하신 말씀을 잊어버린다. 그들이 그리스도를 떠남으로 인해 저희의 생애에 그분의 은혜가 결핍되어, 자기 자신의 특성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하여 하나님께 대한 그들의 봉사는 남보다 높고자 하는 욕망과 제어되지 못한 거칠은 성벽으로 인하여 더럽혀진다. 이것이 그리스도인의 봉사가 실패하게 되는 주요 원인 중에 하나이며, 사업의 결과가 미미하게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재리의 유혹. 재물에 대한 사랑에는 사람을 호리고 기만시키는 힘이 있다. 흔히 세상 재물을 많이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은 너무도 자주 저희에게 재물을 얻을 능력을 주신 분이 하나님이심을 잊어버린다. 그들은 저희의 재물이 하나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을 일으키는 대신에 저희 자신을 높이게 한다. 그리하여 더 잘 살고 풍족하게 모으려는 욕망에 빠진 채 주의 날이 가까워 옴을 모르고 영적으로 깊이 잠들게 된다. 진리를 경멸하고 거절하는 자가 뻔뻔스럽게 될 때에, 여러 가지 영리적 사업에 있어서 원칙을 무시하고 일과를 수행할 때에, 학생이 그의 성경은 연구하지 않고 각 방면의 지식을 열심히 추구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도적과 같이 임하신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흥분 상태에 있다. 때의 징조는 불길하다. 다가오는 사건들은 그 앞에 그늘을 드리운다. 하나님의 성령은 세상에서 떠나고 있으며 바다와 육지에서 재난이 꼬리를 물고 일어난다. 태풍, 지진, 화재, 훙수 그리고 온갖 부류의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누가 미래를 알 수 있는가? 어느 곳에 안전이 있는가? 인생에게나 이 세상에 있어서 아무 곳에도 안전의 보증은 없다. 위기는 서서히 우리에게 덮쳐 오고 있다. 태양은 하늘에서 비취며 여전히 궤도를 따라 돌며 하늘은 여전히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한다. 사람들은 여전히 먹고 마시고 심고 짓고 장가가고 시집가고 있다. 상인들은 여전히 사고 팔고 있으며 사람들은 서로 밀면서 가장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하여 싸운다. 쾌락을 사랑하는 자들은 여전히 극장과 경마장과 도박장으로 몰려들고 있다. 최고조의 흥분이 편만해 있는 반면 은혜의 시간은 속히 마쳐지려 하고 있다. 모든 사람의 운명이 영원히 결정되려고 한다. 사단은 자기의 때가 얼마 남지 않음을 안다. 사단은 은혜의 때가 끝날 때까지 사람들을 속이고 현혹시키고, 마음을 사로잡아 도취시키려고 그의 온 힘을 기울여 일하고 있다.

 다음과 같은 우리 주의 경고의 말씀이 감람산으로부터 수세기를 통하여 엄숙하게 우리에게 전하여 온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하시니라.

 재림을 위해 깨어 기도하며 자신을 살피자! 깨어 기도하며 기다리는 사람에게 예수님의 재림은 최대의 감동의 순간이 될 것이다.

6부 -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위한 준비

 세상에는 원칙들이 있다. 그것은 꼭 그대로 되어야만 하는 법칙들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들이다. 천연법칙이 그러하고 십계명이 그러하다. 물이 위로 흐르면 안 되는 것이고, 별들이 회전하며 달리기를 그치면 안 되는 것이다. 도둑질을 하면 안되고 사람을 속이면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며 자기의 이기심대로 살면 세상에 죽음을 초래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

재림의 원칙
 
그러하듯이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재림 하시는 일에도 원칙이 있다. 원래의 원칙이 회복되는 일이 이루어 져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무런 이유 없이 이렇게 오래도록 이 지구를 내버려두신 채 돌아 오시지 않고 있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지구를 다시 회복시키시기 위하여 아들 예수님을 내어 주심을 무릅쓰고라도 역사하고 계신다. 하나님께서는 사랑의 하나님이시면서 동시에 공의로우신 분이시다. 인류를 다시 구속하시고 영원히 살게 하실 때, 자비만 가지고 결정하실 수가 없으시다. 그렇게 하면 온 우주의 존재의 법칙에 큰 오류가 발생하게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에 대한 신뢰도가 없어지게 되고 원칙이 손상을 받게 된다. 만물이 존재하고 살아가고 있는 대원칙은 원래 세워져 있는 하나님의 법칙에 기뻐 순응하는 성품에 달려 있는 것이다. 에덴 동산의 법칙이었던 선악과만큼은 따먹지 말아야 한다는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언약을 범한 인류는 죽음을 맞게 되었다. 태양이 열을 발하는 원칙을 범하면 다른 생명체들이 죽는 것처럼, 계명을 어기는 사람이 계속 살도록 허용되면 본인과 다른 존재들에게 죽음을 초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살지 않는, 다시 말하자면 죄를 짓고 살아가는 인간들이 하나님의 원칙 속으로 다시 돌아 와야 이 지구가 다시 회복 될 수 있는 것이다. 그제서야 드디어 예수께서 이 땅으로 다시 오실 수가 있는 것이다.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이 지구의 회복을 의미하는 것이며, 의인들이 다시 옛날 모습으로, 처음 창조되었을 때처럼 영원히 살 수 있게 되돌아 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그렇다! 예수께서 다시 오셔야만 한다. 우리는 창조의 원래 목적과 그 상태대로 되돌아 가야만 한다. 이렇게 슬픔과 고통과 죽음이 드리워져 있는 이러한 상태대로 존재하지 말아야 한다. 바로 이러한 지구의 상태와 우리의 삶 자체가 바로 지옥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지금 창살 없는 죄의 감옥에 살고 있는 것이다.

재림의 조건
 
그러므로 성경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다시 오시는 조건을 명백하게 말씀해 주고 있다. 바로 그것이 우리가 어떻게 주님의 다시 오심을 맞기 위하여 준비해야 하는지를 설명해 주는 내용이다. 그 말씀은 아주 간단하게 적혀 있는데, 오순절 날 성령을 충만하게 받은 사도 베드로가 설교하는 대목에서 말씀한 내용이다. 그는 이렇게 말씀했다.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의 입을 의탁하여 말씀하신 바 만유를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행 3:19-21)

 이 말씀 가운데 함축된 의미는 우리 인류의 회복의 원칙을 제시해 주고 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를 구원하는 복음에 대한 짤막하면서도 정확한 주석이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회복하실 때까지 하늘이 예수님을 맡아 둘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십자가에 돌아가신 그 사랑의 예수님께서 아무리 오시고 싶어도, 다시 오셔서 우리를 죄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하늘로 데려 가시고 싶으셔도 하실 수가 없다는 것이다. 만물이 회복되기 전까지는 말이다. 그렇다면 만물이 회복하는 길이 무엇이란 말인가? 인간들의 참된 회개와 마음의 회복이다. 회개하고 돌이켜 죄 사함을 받으면 유쾌하게 되는 날이 주님 앞으로부터 이르게 될 것인데, 그때에 하늘이 예수님을 다시 보내 줄 것이라는 말씀이다.

 베드로는 그냥 회개하라고만 말하지 않았다. 회개하고 돌이켜 죄 없이함을 받으라고 말씀하였다. 회개는 자기가 지은 죄에 대하여 진정으로 슬퍼하는 마음을 가지고, 자복하고 버리는 일을 포함해야 한다. 그리고 그 죄로부터 돌아서서 거룩한 길로 향해 가는 성화의 과정에 들어서야 한다. 그는 그저 회개하라고만 하지 않았다. 회개하고 돌이켜서 죄 없이함을 받으라고 하였다. 생활이 바뀌고 개혁되는 실제적인 변화가 없는 회개는 회개가 아니다. 그것은 그저 감정에 불과한 것이다. 텔레비죤에서 드라마를 보면서도 우리는 감동하여 우는 경우들이 있다. 그러나 그러한 감정적인 경험이 우리의 생활과 태도를 바꾸는 힘을 발휘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자기의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사람은 마음과 생애의 변화를 경험하게 되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드라마를 보고 우는 감동과 무슨 차이가 있겠는가? 회개하고 돌이키라고 베드로는 촉구하였다.

 그리고 돌이킨 후에는 죄 없이 함을 받으라고 그는 말씀하였다. 죄 없이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우리가 회개할 때에, 다시 말해서 의롭다고 칭하여 질 때에, 우리는 죄의 정죄에서 해방되는 것이다. 우리의 과거의 죄들이 용서를 받은 것이다. 그것들이 우리를 다시는 정죄 할 수가 없다. 예수의 보혈이 우리의 죄의 기록들을 사하시고 그 정죄 아래서 우리를 해방 시켜 주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구원의 경험이 거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다. 죄의 힘에서 해방되는 경험이 있어야 한다. 현재의 생활에서 죄의 세력이 우리를 주장하거나 지배하는 노예의 상태에서 벗어나야 한다. 성령의 능력으로 우리는 죄의 힘을 승리하여 이기는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그것을 우리는 성화의 생애라고 일컫는다. 그런 경험 후에 우리에게 죄의 도말의 경험이 이르러 오게 된다. 더 이상 하나님의 계명과 뜻을 어기는 죄악에 빠지는 일을 반복하지 않게 된다. 그것이 인침의 경험이다. 우리의 품성이 영원히 변하지 않도록 인쳐지고 포장되는 성령의 경험이다. 그 때에 드디어 우리는 하늘로부터 오는 유쾌하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될 것이라고 사도 베드로는 설교하였다.

유쾌하게 되는 경험
 
유쾌하게 되는 경험이 무엇인가? 그것은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새롭게 되는 경험을 말한다. 영어로는 Refreshing 이라고 번역하였는데, 그것은 우리의 마음과 영적 경험을 새롭게 쇄신시키는 특별한 경험이라는 말이다. 모든 죄와 사단의 공격을 이기고 승리한 사람들에게, 다시 말하자면 어떠한 경우를 당하든지 하나님께서 신뢰하실 수 있는 사람들로 변화된 그들에게 특별하게 인치시는 성령의 경험이 오게 될 것이다. 준비된 120 여명의 사람들을 오순절 날 다락방에서 특별한 성령으로 인치시고 그들에게 천국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할 능력을 부어 주신 경험이 바로 위로부터 오는 유쾌하게 되는 경험을 표상 하는 것이다. 우리는 온 세상에 천국 복음을 최종적으로 전파하고 끝내야 하는 사명을 가지고 있는 자들이다. 우리는 복음의 추수 때에 살고 있다. 오순절의 성령은 복음의 씨앗을 뿌리기 위해서 내린 이른 비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그 복음을 통하여 온전하게 익은 열매들을 추수하는 일을 감당해야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순절에 내린 성령의 능력보다 더한 갑절의 성령의 능력이 필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성령의 역사는 자기를 완전히 비우고 하나님의 성품과 능력만 나타나시도록 겸손하게 준비된 자들에게만 내려질 것이다.

 이러한 성령의 유쾌하게 되는 경험은 올바른 회개와 성화와 죄의 도말의 경험 속에 들어간 참된 그리스도인들에게만 내려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백성들이 준비 될 때에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것이다. 그때에 이 세상 만물이 회복 될 것이다. 이 지구의 동물들과 식물들, 모든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날 것을 고대하고 있다고 성경은 말한다. 그들은 우리들의 죄와 타락 때문에 할 수 없이 죽음의 환경 속에 묶여 생존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들도 하나님의 영광의 본래 상태대로 회복되기를 고대하고 있다. 피조물의 고대하는 바는 하나님의 아들들의 나타나는 것이니 피조물이 허무한 데 굴복하는 것은 자기 뜻이 아니요 오직 굴복케 하시는 이로 말미암음이라 그 바라는 것은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 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피조물이 다 이제까지 함께 탄식하며 함께 고통하는 것을 우리가 아나니 (롬 8:19-22).

예수님의 다시 오심
 
예수님의 다시 오심은 하나님께 대한 모든 오해가 풀리고 주님의 성품과 공의로우심이 온 우주에서 확인되고 증거 된 이후에 일어 나게 될 것이다. 바로 그러한 일을 이루는 일이 이 지구의 타락한 인간들의 구속 사업에 달려 있는 것이다. 죄인들의 참된 회개와 죄를 버리는 경험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과 계획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지구의 죄의 투쟁의 역사를 통하여 온 우주의 거민들과 천사들까지라도 하나님의 정부의 공정하심과 의로우심과 사랑과 자비하심을 더 밝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십자가의 복음이, 이렇게 악하게 타락한 죄인들을 변화 시키어서 다시 영원히 살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온 하늘이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새삼스럽게 이해하게 되고, 이제 예수님께서 이 세상으로 다시 오셔서 회개하고 죄의 세력에서 벗어난 자들을 다시 영원히 살게 하시고 거룩한 천사들의 세계로 다시 이끌어 오셔도 좋다고 동의하게 되는 것이다. 그들이 그러한 권리가 있다는 의미 보다는 그들이 하나님의 역사를 온전하게 이해하고 주님께 전적으로 동의하고 찬송을 돌리게 된다는 의미이다.

 우리들이 참되고 올바른 회개의 경험을 통하여 늦은 비처럼 임하시는 성령을 받게 될 때에, 그래서 복음의 마지막 추수 사업을 이루게 되면 하늘이 맡아 두었던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게 될 것이다. 예수님의 재림을 위한 우리의 준비가 무엇인가? 한 마디로 줄여서 말한다면, 진실로 회개하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원히 살기에 안전한 자들이 되었다는 사실이 증명되기를 노심초사 기다리고 계신다. 재림을 촉진시키기 위하여 함께 준비하지 않으려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