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황금률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법인 십계명을 요약해서 말씀 하실 때에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셨다. 첫째는 사람이 하나님께 대하여 가져야 할 사랑, 둘째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가져야 할 사랑이 그것이었다.

 그 중에서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 포함된 사상, 곧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을 대접하라는 황금률은 예수께서 가르치신 교훈 중에 가장 위대한 가르침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예수께서는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오리니 그 때에 각 사람의 행한 대로 갚으리라(마 16:27)고 말씀하셨는데, 이 말씀은 사람이 황금률을 어떻게 실천했느냐에 따라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황금률을 다른 사람에게 재정적인 자선을 베풀거나 음식을 대접하는 것에만 국한시킨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아주 광범위한 것으로서 우리의 생각, 말, 판단, 표현, 마음씀씀이 등, 많은 것들을 포함한다. 곧,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어하는 대로 남들에게 말해야 하며, 우리가 취급 받고 싶어하는 대로 다른 사람들을 취급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의 형제들에게 어떻게 대하여야 할 것인가에 대한 보편적인 황금률을 함께 생각해 보기로 하자.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16장 27절에 마지막 날의 심판이 한가지 점에 의하여 결정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마지막 심판 날에 민족들이 그리스도 앞에 모일 때에 두 부류로만 나누어질 것인데, 그들의 영원한 운명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어떻게 취급하였느냐에 따라, 그리고 가난하고 고통 받는 자들을 도와주었느냐 또는 도와주지 않았느냐에 따라 결정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 날에 그분은 오른편에 선 자들을 향하여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고 말씀하실 것이다. 그분은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고 하신다.

 하늘 가족으로 태어난 자는 모두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우리 주님의 형제들이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당신의 가족들을 한데 묶어 연합시키며 어디서나 그 사랑이 표현되는 곳에서는 친족 관계가 나타난다.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요일 4:7). 심판 때에 그리스도께서 칭찬하실 사람들은, 신학이란 학문을 알지 못했을는지 모르나 그리스도의 원칙들을 마음에 품고 있는 사람들이다. 거룩한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그들은 주위에 있는 사람들에게 축복이 된 사람들이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다. 내 이름을 위하여 고통 당하는 모든 자들 가운데서 그대는 나를 알아보아야 한다고... 그리고 그대는 나를 섬기는 것처럼 그들을 섬겨야 한다. 이것이 바로 그대가 내 제자라는 증거이다라고... 그리스도의 사랑은 어떤 계층에 제한되어 있지 않다. 그분은 자신을 인간의 모든 아들과 동일시 하신다. 우리를 하늘 가족의 일원이 될 수 있게 하기 위하여 그분은 이 세상 가족의 일원이 되셨다. 그분은 사람의 아들이시며 따라서 아담의 모든 자녀들의 형제가 되신다. 예수님을 따르는 자들은 저희를 둘러싸고 있는 멸망하는 세상으로부터 자기 자신이 분리된 것처럼 느끼지 말 것이다. 그들은 인간이란 큰 거미줄의 일부분이며, 하늘은 그들을, 성도들뿐 아니라 죄들의 형제로 여기신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타락하고 잘못을 범하고 죄 많은 자를 포섭하시며, 타락한 영혼을 향상시키기 위하여 행한 모든 친절한 행위 즉 자비의 행동은 당신에게 행한 것과 똑같이 받으시는 것이 된다.

 하나님의 천사들은 구원의 후사가 될 자들을 섬기라고 보내신 바 되었다. 우리는 지금 누가 구원의 후사들인지 알지 못하며, 누가 승리하여 빛 가운데서 성도들의 기업을 나누어 가질는지는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의 천사들은 온 세상 구석 구석으로 다니면서 슬퍼하는 자들을 위로하고 위험에 빠진 자들을 보호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바치도록 노력하고 있다. 한 사람이라도 소홀히 취급되거나 지나쳐 버린바 되지 않는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을 편애하지 않으시고 그분이 창조하신 모든 영혼을 똑같이 돌보신다. 얼마나 놀라운 사랑인가!

 그대가 그리스도께 속한 가난하고 고통 받는 사람들에게 그대의 문을 열 때에 그대는 눈에 보이지 않는 천사들을 영접하는 것이다. 그대는 하늘 존재들의 동행을 청한다. 그들은 기쁨과 평화의 거룩한 분위기를 가져온다. 그들은 저희 입술에 찬양의 노래를 가지고 오며 화답하는 노래가 하늘에서 들린다. 자비스러운 모든 행동은 거기서 음악이 된다.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이기심이 없는 일꾼들을 당신의 가장 귀중한 보물들로 계수하신다.

 그리스도의 왼편에 있는 자들 즉 가난하고 고통 하는 사람들 가운데 계신 그리스도를 등한히 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에 대하여 깨닫지 못하였다. 사단은 그들을 눈멀게 하였고 그들은 저희가 저희 형제들에게 무엇을 빚지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였다. 그들은 자신을 생각하기에 여념이 없었으므로 다른 사람들의 곤경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하나님께서 부자들에게 당신의 고통 받는 자녀들을 구제하고 위로하도록 재물을 주셨으나 너무도 흔히 그들은 다른 사람들의 어려움에 대하여 무관심하다. 그들은 자신들이 가난한 형제들보다 높다고 생각한다. 그들 자신을 가난한 사람의 처지로 바꿔 생각지 않는다. 그들은 가난한 자의 유혹과 투쟁을 이해하지 않으므로 저희 마음에서 자비심이 소멸되었다. 부자는 값진 주택에 살고 화려한 교회 내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담을 쌓는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곤궁한 자들에게 축복이 되도록 주신 재물을 교만과 이기심에 탐닉되어 함부로 소비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주위의 이웃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배고프고 목말랐던 자는 나였다, 나그네였던 이는 바로 나였다, 병든 자는 나였으며 옥에 갇힌 자도 나였다라고... 또 그대가 풍족하게 차린 그대의 식탁에서 즐기고 있을 때에 나는 오두막집에서나 혹은 행인이 없는 거리에서 굶주리고 있었다. 그대가 호화스러운 집에서 편히 쉬고 있을 때에 나는 머리 둘 곳이 없었다, 그대가 옷장을 값진 의복으로 꽉 채우고 있을 때에 나는 헐벗고 있었다. 그대가 향락을 추구할 때에 나는 옥에서 신음하고 있었다라고...

 또한 그분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그대가 굶주린 가난한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빵 조각을 나누어 주었을 때, 그들로 하여금 몸에 스며드는 냉기를 피하도록 보잘것없는 의복을 주었을 때 그대는 영광의 주님께 주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했는가?, 그대의 온 생애 동안 나는 이 고통 당하는 사람 가운데서 그대와 가까이 있었으나 그대는 나를 찾지 않았다. 그대는 나와 친근하게 교제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를 알지 못한다.

 우리가 그리스도께서 생애 하시던 장소들을 방문하는 것, 즉 그분이 밟으신 곳을 걸어보고 그분이 가르치기를 좋아하시던 호숫가를 바라보고 그분의 눈이 때때로 머무르던 들과 골짜기를 바라보는 것은 큰 특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가기 위하여 나사렛이나 가버나움이나 베다니에 갈 필요는 없다. 우리들은 병상 곁에서나 빈곤한 오두막집에서나 사람이 많이 모인 대도시의 뒷골목 길에서나 인간의 마음에 위안이 필요한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예수님의 발자취를 찾을 수 있다. 지상에 계실 때에 예수께서 행하신 것처럼 행하므로 우리는 그분의 발걸음을 따라 행할 수 있다.

 아무도 예수님을 위하여 일할 장소가 없다고 생각할 필요가 없다. 죄악의 사슬에 매여 멸망 받을 수 밖에 없는 천천 만만의 영혼들은 그들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을 듣기조차 못하고 있다. 만일 우리의 입장이 그들의 입장과 뒤바뀐다면 우리는 그들에게 우리를 위하여 무엇을 해 달라고 요청할 것인가? 심판의 때에 우리들을 서게 하든지 혹은 넘어지게 할 그리스도의 생애의 법칙은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마 7:12)이다.

권두언

강병국 목사

 우주에는 법칙이 있습니다. 어디를 가나, 어느 곳을 바라 보거나 자연계를 보존시키는 정확하고도 분명한 법칙들이 존재합니다. 별들의 움직임에도 법칙이 있고 식물들이 성장하는 과정 속에도 법칙들이 있습니다.

 동물들의 번식과 생활 양식에도 법칙은 있고 심지어 미생물들과 박테리아의 번식에 있어서도 창조의 법칙이 그 생명을 주관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이러한 법칙들을 우리는 자연의 법칙이라고 부르지요. 자연계는 이러한 법에 의하여 주관되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 법칙을 어기게 되면 이상한 돌연변이들이 생겨 나게 되는데, 예를 들자면 범죄한 이후에 뱀의 입 속에 독이 생겨난다든지 아름다운 들판에 가시와 엉겅퀴가 생기는 것들이 바로 그러한 현상이지요. 뱀의 독은 원래 좋은 단백질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가시도 원래는 아름다운 잎이었었지요. 그러나 하나님의 원래의 법칙이 죄의 결과로 깨어지게 되자 이상한 현상들이 생겨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의 마음 속에도 도덕적인 법칙이라는 것이 있어서 우리를 아름답게 주관해 왔었습니다. 하나님을 닮은 형상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그런데 죄가 들어 오자 이러한 도덕적인 법칙이 인간의 마음 속에서 깨어지게 되고 사람의 마음이 타락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마음 속에 원래 넣어 주셨던 그 도덕법이 10가지의 문자적인 법칙으로 표현되어 주어 졌는데 그것을 우리는 십계명이라고 부릅니다. 이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당신의 손가락으로 직접 써 주신 계명입니다. 그런데 미국 기독교회에서는 지난 5월 7일을 십계명의 준수의 날로 지정하였습니다. 그래서 이번 호는 십계명에 대한 중요성의 문제를 다루어 보았습니다.

 이번 호의 내용들은 여러분들께 십계명과 인간의 존재 사이의 깊은 관계에 대하여 조명하여 드릴 것입니다. 주님의 크신 은혜가 독자 여러분들의 마음 속에 아름답게 역사 하시기를 간절히 기도드립니다.

목사를 찾습니다!

  나는 목사를 찾고 있다. 나와 내 가족의 구원을 위하여 목사를 찾고 있다. 그리스도인은 사람의 말에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야 한다. 그러나 또한,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매 주일마다 교회에 나가 목사 앞에 앉아서 그의 설교와 가르침을 들으면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걸어가야 할 신앙의 길을 제시 받게 된다.

 이것이 모든 그리스도인이 현실적으로 처해 있는 상황이다. 그러므로 나는 어떤 목사의 설교와 가르침을 받을 것인가? 라는 문제는 나와 내 가족의 구원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 문제를 너무나 쉽고 안일하게 생각한다. 어떤 사람들은 막연히 사람들이 많이 몰리는 큰 교회를 찾아 가고, 어떤 사람들은 집에서 다니기 편리한 가까운 교회를 찾으며, 또 어떤 사람들은 높은 학위를 가진 목사를 선호한다. 정말 목사는 그렇게 찾는 것인가? 우리는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막연한 추측을 하거나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볼 필요가 없다. 왜냐하면 성경은 마지막 시대에 그리스도인이 어떤 목사를 찾아야 할 것인가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부터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서 함께 살펴보기로 하자.

가장 부족하기 쉬운 목사의 자격
 
무엇보다도 목사는 하나님의 법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어야 한다. 이 점과 관련하여 예수께서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가장 부족하기 쉬운 한가지 문제를 지적해 주셨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마 7:22~23. 여기서 선지자 노릇하며, 귀신을 쫓아내며 많은 권능을 행하는 자들은 누구인가? 분명 그들은 오늘날의 목사와 교회 지도자들을 가리킨다. 그런데 왜 예수께서 그들에게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나니 라는 두려운 선언을 하셨는가? 왜냐하면 그들이 불법을 행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성경 말씀을 가르치고, 병자를 고치고, 방언과 기적을 행하지만, 그들의 가정과 삶 속에서 하나님의 도덕률인 십계명을 지키는 성결한 삶을 살지 않는 목사들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는 선언을 듣게 될 것이다.

 마태복음 7장 20절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좀 더 분명하게 이 문제를 설명해 준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렇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그 분의 뜻을 행하는 것, 바로 이것이 목사가 지녀야 할 가장 기본적인 요건이며, 성경은 이런 목사를 참 목사로 인정한다.

사람이 좋아하는 목사와 성경이 인정하는 목사
 
오늘날 사람들이 좋아하는 목사와 성경이 인정하는 목사 사이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이런 목사를 좋아한다. 설교 잘하는 목사, 방언하는 목사, 병 잘 고치는 목사, 정치나 사회 문제를 잘 분석하는 목사, 큰 교회를 잘 세우는 목사, 예절 바른 목사, 인사 잘하는 목사, 교인들의 심리 파악과 상담을 잘 해주는 목사, 사회 봉사 활동을 잘 하는 목사, 노인 잘 섬기는 목사, 교회를 문제 없이 잘 이끌어 나가는 목사, 가정 방문을 잘 하는 목사, 친절한 목사, 박사 학위를 가진 목사, 정통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목사, 부지런한 목사, 청소년을 잘 지도하는 목사 등. 그러나 내가 찾고 있는 목사는 그런 목사가 아니다. 내가 원하는 목사는 진리를 전하는 목사이다. 왜냐하면 앞에 나열한 모든 장점들을 다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그에게 진리가 없으면 그는 성경이 인정한 목사가 아니기 때문이다. 물론, 목사는 목회를 잘해야 하며, 환자들을 치료해 주어야 하고, 가난한 자를 도와주어야 하며, 노인들을 잘 섬겨야 하고, 설교를 잘해야 한다. 그러나 자선 사업이 빵을 나누어 주는 데서 끝나고, 의료 사업이 병을 고치는 데서 끝나며, 목회 사업이 교회를 성장시키는 데서 끝난다면, 기독교회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위대한 종교가 되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 5천명에게 단지 떡을 나누어 주는 것으로 만족하고, 문둥병자를 고치고,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것만으로 만족하셨다면, 그리고 제자들이 방언과 기적으로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것만으로 만족하였다면, 기독교회는 인간의 영혼을 구원하는 능력을 가진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빵을 나누어 주고, 문둥병자를 고치고, 가난한 자를 위로한 것은 방법이었지 목적이 아니었다. 예수 그리스도와 제자들의 목적은 죄인들의 심령 속에 진리를 심어주는 것이었다. 왜냐하면 죄인은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구원 받고 거룩해 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오늘날 교회에서 진리의 중요성은 철저하게 무시당하고 있다. 죄인은 오직 진리를 통해서만 구원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을 올바로 이해하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숫자가 너무나 적은 것이 오늘날 기독교회의 문제이다. 그래서 나는 인품이 좋은 목사도, 은사 충만한 목사도 아닌, 오직 진리를 분명하게 가르치는 목사를 찾고 있다.

성경에 예언되어 있는 마지막 시대의 목사
 
놀라운 사실은, 성경의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참 목사의 정체가 정확하게 묘사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강조하는 가르침과 설교의 핵심 내용이 요한계시록에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나는 예수께서 재림하기 직전에 나타날 것이라고 예언되어 있는 바로 그 목사들을 찾고 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있는 독자 여러분 중에 정말로 이 시대를 위한 목사를 찾기 원하는 분이 있는가? 만약 그렇다면, 여러분도 나와 함께 요한계시록이 말해주는 마지막 시대의 참 목사를 찾아 보지 않겠는가? 자 그럼 이제부터 요한계시록에 예언되어 있는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종의 정체와 그들의 가르침을 함께 살펴보도록 하자.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부터 세상 종말까지를 일곱으로 나누어서 설명하는 일곱 교회 예언이 나오는데, 그 중에 마지막 일곱 번째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그러므로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의 특성을 살펴보면 마지막 시대에 어떤 목사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목사인가를 알 수 있다. 라오디게아 교회 시대에는 다음과 같은 두 종류의 그리스도인 그룹이 존재한다.

A. 뜨뜻미지근한 그리스도인 :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계 3:14~17.

 라오디게아 교회는 예수께서 너무나 역겨우셔서 토해 내치실 수 밖에 없는 교인과 목사들로 구성되어 있다. 차라리 그들이 신앙을 잃어버리고 차가워져서 교회 밖으로 나가버리면 성령께서 그들의 양심에 간절한 음성을 들려줄 수도 있으련만, 그들은 교회에 다니고,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설교하면서 그들 마음 속에 비밀스런 우상을 품은 채 살기 때문에 성령의 세미한 음성을 듣지 못하는 가련한 자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의 구원을 확신하고 있기 때문에 깊은 자기 기만으로부터 빠져 나오기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 그들 중 많은 이들은 한번 구원 받은 사람은 아무리 죄와 세속에 빠져 있다고 할지라도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거짓 교리를 강력하게 신뢰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가장 인기리에 받아들여지고 있는 이러한 거짓 구원론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기만적인 신학적 덫이 되고 있다. 영적으로 곤고하고 가련하며 눈멀었고 벌거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부자고 부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로 가득 채워진 교회, 바로 그 교회가 라오디게아 교회이다. 그런데 이런 참담한 교회 속에도 예수께서 주시는 3가지 치료제를 받아 자신의 양심과 신앙에 치유함을 받은 소수의 무리들이 있는데, 바로 그 무리 속에 우리가 찾아야 할 참 목사가 존재한다.

B. 금과 흰 옷과 안약을 산 그리스도인 :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계 3:18.

 예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회에 3가지 치료제를 제공해 주셨는데, 그것은 불로 연단한 금과 흰 옷과 안약이다. 바로 이 3가지 치료제를 통하여 라오디게아 교회의 질병으로부터 벗어나는 사람들이 마지막 시대의 참 그리스도인들이다. 결국, 이 3가지 처방을 종합하여 보면, 순결한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깨끗한 의를 옷 입어서 성품이 변화되고 의로운 생활을 살며, 성령의 감화를 통하여 진리를 분별하는 영적 눈을 가지고 있고, 양심이 순결한 목사를 찾는 것이 마지막 시대의 참 목사를 찾는 비결이다. 오직 이기는 자들에게만 구원의 특권이 주어진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계 3:21~22. 우리가 찾는 목사는 그들의 삶 속에서 이기는 경험을 하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를 위한 진짜 목사는 라오디게아 교회의 뜨뜻미지근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 분명한 치료제를 제시할 수 있어야 하며, 죄와 세속에 대하여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 비결을 제시해야만 한다. 어떻게 하면 깊은 영적 잠에 빠져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 속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참 목사를 찾을 수 있을까? 그들이 전하는 기별을 들어 보라. 그들이 어떤 설교를 하고 있으며, 그들의 가르침 중에 무엇이 강조되고 있는지를 유심히 살펴보라. 죄와 세속에 대한 승리의 기별을 강력하게 전하는 목사, 바로 그가 요한계시록에 예언되어 있는 마지막 시대의 목사이다.

 마지막 시대에 누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종인가를 구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법이 요한계시록 12장에 기록되어 있다. 용(마귀)이 여자(참 교회)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그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진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계 12:17. 마지막 시대의 목사는 사단의 집중 공격 목표가 된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에 대해서 강조하여 설교하기 때문이다. 사단은 계명이 십자가에서 폐지되었으므로 더 이상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거짓 가르침을 온 교회에 퍼트려 놓는데 성공하였다. 그래서 누구든지 계명을 지키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설교를 하기만 하면 어느새 율법주의자로 몰려버리고 만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 점에 대해서 분명하게 말씀하셨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고 버리고 또 그 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7-19.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종들은 마귀(용)의 집중 공격을 받게 된다. 왜냐하면 그들의 설교와 그들의 가르침이 여자의 남은 자손을 생성해 내는 데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용(마귀)은 분노하여 여자의 남은 자손을 제거하기 위하여 분주히 돌아다니는데, 하나님의 종들은 이리 저리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증거에 대한 가르침을 받아들이라고 호소하는 장면을 상상해 보라. 이것은 막연한 공상이 아니라 지금도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실제 상황이다. 사단은 계명과 구원에 대한 온갖 잘못된 가르침과 오해를 교회 안에 심어 놓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들은 계명과 구원에 대한 사람들의 편견과 오해를 벗기우기 위하여 애쓰고 있다. 마지막 시대의 참 목사는 구원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계명을 지키라고 설교하지 않는다. 그들은 하나님의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깊이 체험하였기 때문에, 청결하고 순결한 양심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사랑하며 그것을 지키는 변화된 삶을 살게 되는 것이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요 14:15.

 짐승의 표를 피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 표를 강요하는 세력인 짐승의 정체를 알아야 한다. 마지막 시대의 목사는 요한계시록 13장에 나오는 짐승의 정체를 정확히 알고 있으며,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쳐 준다. 그리고 짐승이 강요하는 그의 권위의 표를 피하고,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길을 제시해 준다.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계 14:11,12. 마지막 시대의 참 목사는 짐승의 표를 피하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방법으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킬 것을 분명하게 제시한다. 요한계시록에는 마지막 시대의 여자의 남은 자손의 정체를 계명을 지키는 자들로 밝혀주는 성결절이 3번 반복되어 나온다. 계명을 지키는 성결한 삶을 사는 여자의 남은 자손 만이 짐승의 표를 피하고 예수 재림을 맞을 수 있게 된다는 가르침이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종들이 외치는 기별의 핵심이다.

 요한계시록 13장에 짐승의 세력이 그의 표를 강요하기까지의 일련의 과정이 소개되어 있다면, 요한계시록 14장에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는 자들의 정체가 자세하게 묘사되어 있다. 누가 그 날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않을 것인가? 요한계시록 14장 1절부터 그들의 정체에 대한 상세한 묘사가 시작된다. 또 내가 보니 보라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 양에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이더라 계 14:1,5. 14만 4천인은 세상 끝에 짐승의 표가 온 세상에 강요될 때 그것에 굴복하지 않는 여자의 남은 자손을 대표한다. 또한 이 성경절에 기록된 대로 십사만 사천 인은 처음 익은 열매이다. 14만 4천인이 처음 익은 열매라는 말에는 첫 열매가 익은 다음에 곧 이어서 대규모의 본격적인 추수가 있을 것이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다. 그래서 이어지는 6절부터 12절까지에는 첫 열매인 14만 4천인이 마지막 추수를 위하여 전하는 복음의 내용과 그들의 역할이 구체적으로 묘사되어 있다. 여러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 &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라 &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모든 나라를 그 음행으로 인하여 진노의 포도주로 먹이던 자로다. 요한계시록 18장에는 이 장면이 다음과 같이 반복 묘사되어 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계 18:2,4.

 이 말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마지막 시대에 대다수의 교회는 바벨론의 거짓 교리와 비성서적 구원론으로 인하여 사람들에게 구원의 잔이 아닌 진노의 포도주를 먹이는 곳으로 변해 버린다. 그래서 하나님의 종들은 영원한 복음에 대한 올바른 성서적 이해를 촉구하는 말씀을 전하며, 눈 앞에 다가온 하나님의 심판과 재림을 준비하라는 강력한 설교를 한다. 그리고 잘못된 교리와 비성서적 가르침으로 인하여 바벨론이 되어 버린 교회에 묶여 있는 사람들에게 바벨론의 죄를 폭로함으로써 하나님의 백성들을 그곳으로부터 이끌어 낸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종들은 마귀의 집중 공격을 받을 수 밖에 없게 된다. 그들은 사람들의 귀를 즐겁게 해주는 기별을 전하지 않는다. 그들의 설교는 사람들로 하여금 바벨론의 죄와 잘못된 교리들로부터 돌아서라는 강력한 호소를 포함하고 있다. 그들은 교회 안에 있는 세속과 죄를 지적하는 곧 바른 설교를 하기 때문에 많은 경우에 있어서 교회와 교단으로부터 경계와 배척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그러나 들을 귀가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종들이 전하는 말씀 속에서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예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을 받지 말라 는 성령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보았던 바와 같이 마지막 시대에 나타나는 참 교회와 참 목사의 특성은 화려한 건물이나 거대한 조직이나 높은 학위와 같은 것들이 아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그리스도인이라는 말로 압축할 수 있다. 오늘날 많은 교파와 교단에 소속되어 있는 목사들이 제각기 다른 모습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설명하고 있다. 그러나 그들 중 과연 누가 뜨듯 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회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기별을 전하고 있는가? 누가 죄와 세속에 대하여 이기는 자가 될 수 있는 승리의 기별을 호소하고 있는가? 누가 짐승의 세력권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길을 제시해 주고 있는가? 누가 바벨론의 잘못된 가르침들을 폭로하고 영원한 복음을 가르쳐 줌으로써 사람들을 그곳으로부터 불러 내고 있는가? 누가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여자의 남은 자손의 특성과 올바른 조화를 이루고 있는 설교를 하고 있는가? 마지막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반드시 목사들을 이러한 질문들로 검증해 보아야 한다. 이러한 검증의 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어떤 목사가 과연 성서적 가르침 위에 굳게 서있는 하나님의 종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된다.

 마지막 시대에는 양 무리를 흐트러뜨리는 목사가 있고, 하나님의 양우리로 모아 들이는 목사가 있다. 하나님께서는 흩어져 있는 당신의 양 무리를 당신께로 인도하실 것인데 바로 그들이 남은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그 남은 자를 당신의 양우리로 모으시기 위하여 그들을 위한 참 목자를 세우실 것이라는 말씀이 다음 성경절에 약속되어 있다. 할렐루야!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 목장의 양 무리를 멸하며 흩는 목자에게 화 있으리라 그러므로 이스라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내 백성을 기르는 목자에게 이같이 말하노라 너희가 내 양 무리를 흩으며 그것을 몰아내고 돌아보지 아니하였도다 보라 너희의 악행을 인하여 너희에게 보응하리라 & 내가 내 양 무리의 남은 자를 그 몰려갔던 모든 지방에서 모아내어 다시 그 우리로 돌아오게 하리니 & 내가 그들을 기르는 목자들을 그들 위에 세우리니 그들이 다시는 두려워하거나 놀라거나 축이 나지 아니하리라 예레미아 23:1~4.

비타민을 알면 웰빙이 보인다!

 비타민 정제를 종류별로 날마다 골고루 복용하면 건강을 유지할 수 있을까? 사람에 따라서 비타민 복용을 통하여 어느 정도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경우가 간혹 있겠지만, 자칫 잘못하여 과다 복용이나 오용을 통하여 오히려 원하지 않는 결과를 갖게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어떻게 하면 비타민을 골고루 섭취하면서도 각종 부작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오직 한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식품 속에 넣어주신 천연의 비타민을 정확하게 이해하고 섭취하는 것이다. 동물성 식품에도 여러 종류의 비타민이 함유되어 있지만, 동물성 단백질과 지방이 가지고 있는 각종 심각한 문제점들을 고려해 볼 때에 우리는 비타민을 가장 효과적이고 안전하게 섭취할 수 있는 방법으로 식물성 식품을 추천할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천연의 비타민을 알면 웰빙이 보인다!라고 말할 수 있다. 이제부터 천연의 비타민을 종류별로 살펴보도록 하자.

비타민 A
 비타민 A가 점막의 정상적인 유지와 시력의 유지에 필요하다는 사실은 오래 전부터 널리 알려져 왔다. 그러나 비타민 A가 신체 기관의 적절한 기능에 필수적이며, 세포의 재생 기능과 면역 기능을 위해서 없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동물성 식품에도 비타민 A가 풍부하지만 그것은 활성화되어 있는 상태에서 너무 많은 양을 섭취할 경우 오히려 독이 될 수 있다. 활성 형태의 비타민 A가 많은 동물성 식품 즉, 계란, 전지우유, 간 등과 같은 식품에는 콜레스테롤의 양이 너무 높기 때문에 피하는 것이 좋다.

 비타민 A 중에서 가장 유명한 물질은 식물성 식품에서만 섭취할 수 있는 베타 카로틴이다. 베타 카로틴은 매우 안전한 물질이기 때문에 피부를 노랗게 만들 정도로 많이 섭취할지라도 아무런 해가 없다. 각종 실험에서 이미 증명된 바와 같이 비타민 A는 암의 위험을 저하시키는데 매우 중요하다. 노르웨이에서 5년 동안 8천명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연구 조사에서, 담배를 얼마나 피우든 지를 불문하고 비타민 A를 적게 섭취한 사람의 폐암의 발병률은 2배 이상 높았다. 놀라운 사실은, 흡연량이 많은 사람이 비타민 A를 적게 섭취할 경우, 폐암의 위험은 4배 이상 증가하였다. 일본에서 이루어진 최근의 연구에서도 혈액 속에 비타민 A의 수치가 낮을 경우 비타민 A를 충분히 섭취하는 사람에 비해 6배 이상이나 폐암 발병률이 높았다.

 식물성 식품 속에는 베타 카로틴과 유사한 여러 물질들이 함유되어 있는데, 이것들을 카로티노이드라고 부른다. 카로티노이드 중에서 어떤 것은 베타크리톡잔틴, 루테인, 리코펜을 함유하고 있다. 리코펜은 딸기와 토마토의 빨간 색을 띠게 하는 것으로서, 이것이 풍부한 식품은 전립선암 예방에 효과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혈중 리코펜의 수치가 낮은 사람은 췌장암에 걸릴 위험이 매우 높았다. 리코펜은 정제된 알약에는 함유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오직 천연의 과일과 채소에서만 얻을 수 있는 성분이다. 비타민 A, 그리고 이와 관련된 화학물질들은 신체 내에서 다음과 같은 작용을 하기 때문에 각종 질병들로부터 우리 몸을 보호해 준다.

1. 비타민 A와 관련 화학물질들은 신체 내에서 항산화제로 작용한다. 항산화기능으로 인하여 정상세포들이 암세포로 변질되지 않도록 도와준다.
2. 면역시스템을 향상시켜준다. 비타민 A를 쥐에게 많은 양을 섭취시켰더니 쥐의 T 임파구의 기능이 증가되어 암세포의 파괴율이 향상되었다.
3. 세포의 정상적인 분열을 도와준다. 암세포를 억제하는 작용을 할 수 있다.

 다음은 비타민 A의 관련 물질 중에서도 항산화 성분(베타 카로틴)이 많은 식품들을 순서대로 모은 도표이다. 88

 

 

 

 

 

 


 이 도표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뿌리 채소에는 베타카로틴이 특별히 많이 함유되어 있다. 고 농도의 베타 카로틴을 섭취할 경우, 특정한 종류의 암의 발병률이 매우 낮아진다는 사실이 최근에 학계에 발표되고 있다. 그러나 베타 카로틴을 인위적으로 추출하여 그것만을 다량으로 복용할 경우, 오히려 암을 유발시키는 유리기(free radicals)가 생성되는 부작용이 생길 수 있으므로, 천연의 식품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섭취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다. 베타카로틴을 정제로 만든 보충제는 체내에서 오히려 비타민 E를 고갈시킬 수 있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쥐에게 베타 케로틴 정제를 섭취시킨 결과 쥐의 혈중 비타민 E의 수치가 40% 이상 저하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그대로의 상태로 섭취하는 것이 최고의 효과를 얻을 수 있는 지혜이다. 실제로, 베타 카로틴과 적당한 양의 비타민 C와 비타민 E가 천연적으로 혼합되어 있는 과일과 채소를 섭취할 경우, 체내에서 강력한 산화방지의 효과가 배가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비타민 C
 비타민 C는 암으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중요한 작용을 한다. 비타민 C는 비타민 A와 유사한 항산화 작용을 하기 때문에 암의 원인이 되는 유리기(free radicals)의 공격으로부터 세포를 보호해 준다. 또한 음식에 함유되어 있는 아질산염으로부터 발암물질이 형성되는 것을 막아주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최근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비타민 C는 남자의 정자가 유전적으로 파괴되는 것을 막아주는 역할도 한다. 유전적으로 손상된 정자는 새로 태어난 신생아에게 암을 유전적으로 물려줄 수 있다. 어린아이들의 백혈병, 신장암, 뇌암과 같은 질병은 유전적으로 손상된 아버지의 정자가 원인이다. 정자를 실제적으로 산화시켜서 손상을 입히는 흡연, 하루에 250mg 이하의 비타민 C를 섭취하는 식습관, 그리고 발암물질에 장기간 노출되는 직업과 같은 요인들이 결합하게 될 때, 신생아에게 암이 유전적으로 물려지게 된다. 아버지의 식사 습관을 포함한 생활 습관은 자녀의 DNA 생명력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요인이 된다.

 육식과 인스턴트 식품에 과다하게 노출되어 있는 현대인들은 암을 예방하는 차원에서 적어도 하루에 250mg의 비타민 C를 섭취해야만 한다. 비타민 C는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각종 채소와 과일에 풍부하게 함유되어 있는데, 다음은 비타민 C가 많이 함유되어 있는 식품을 함유량 별로 모아 놓은 도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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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타민 E 
 
비타민 E는 비타민 C와 유사한 방법으로 암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는 또 하나의 영양소이다. 이것은 항산화제로서 유리기(free radicals)를 제거하는 작용을 하며, 아질산염을 함유하고 있는 식품에서 생기는 발암 물질이 발생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을 한다. 암의 발병을 예방해 주는 항산화성 비타민에 관한 연구가 최근에 있었다. 연구원들은 피부암에 걸리기 쉬운 털 없는 토끼의 변종을 만들어 자외선에 노출시켜서 암을 빠르게 진행하도록 하였다. 이때 토끼에게 2종류의 먹이 즉, 일반적인 먹이와 비타민 C와 E를 충분하게 보충한 먹이를 공급하였더니, 다음과 같은 결과가 나타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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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실험에서 비타민 C와 비타민 E는 피부암을 완전하게 예방하였다. 이 두 비타민이 가지고 있는 산화방지 기능은 피부암이 생기기 쉬운 환경에 노출되어 있는 세포의 산화를 확실하게 방지하였다. 이러한 토끼 실험 결과를 토대로 일본에서는 최근에 인간을 대상으로 폐암 연구를 했는데, 그 결과 역시 토끼 실험과 유사하였다. 인간의 경우, 항산화제 비타민 A, C, E의 혈중 수치가 낮은 사람들은 높은 사람에 비해서 6~8.5배에 이르는 매우 높은 폐암 발병률을 나타내었다.

 이러한 일련이 실험에서 꼭 유의해야 할 점은 실험 대상자들이 비타민 보충제를 복용한 것이 아니라, 천연의 식품 그대로를 섭취했다는 사실이다. 많은 사람들이 비타민 보충제를 복용하면 면역시스템이 강화된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지만, 농축된 비타민제 보다는 오히려 천연의 식품을 섭취함으로써 보다 효과적인 항암 효과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다. 왜냐하면 자연의 식품 속에는 비타민 외에도 다른 유익한 천연의 화학 물질들이 다수 함유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천연의 항암물질들이 결합하여 작용할 때 놀라운 상승 효과가 나타난다. 다음의 도표는 비타민 E가 함유되어 있는 식품군을 나열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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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가지 유의할 사항은 비타민 A, C, E는 항산화제로서 유익하지만, 항산화제라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지나친 양은 도리어 산화를 조장하며 실제로 유리기(free radicals) 형성을 돕는다. 그러나 베타 카로틴이나 비타민 C, E 등이 식물성 식품에 함유되어 있는 상태에서는 그것들이 서로 자연적으로 결합하여 항산화 작용을 아무런 문제 없이 유도해 낸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다. 자연의 식품을 그대로 섭취함으로써 얻는 이러한 효과는 항산화제를 정제로 만들어 따로따로 분리해서 복용하여 얻는 효과를 합한 것보다 훨씬 더 강력하다.

 더구나 비타민 보충제들은 거의 알파-토코페롤이라는 특수한 유형의 비타민 E로만 이루어져 있는데 반하여, 식품에서 직접 얻는 비타민 E는 감마-토코페롤 형태인데, 이 감마-토코페롤은 알파-토코페롤보다 인체 내에서 세포의 DNA를 손상시키는 입자들을 보다 효과적으로 억제한다는 사실이 발견되었다. 그러므로 가장 효과적인 비타민 섭취 방법은 신선한 채소와 과일을 직접, 충분한 양을 섭취하는 것이다.

서론 - "십계명 준수의 날"을 지켜보면서

강병국 목사

 미국에 있는 복음주의파 기독교인들이 2006년 5월 7일을 십계명의 날 (The Ten Commandments Day)로 제정해 놓고 워싱턴 디씨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규모 성토 대회를 열었다.

 미국 기독교회의 유명한 목사들과 이름있는 미니스트리들, 그리고 기독교 방송국들이 앞을 다투어 참여 하였고, 전 미국 그리고 나아가서는 전 세계에 하나님의 십계명에 대한 중요성과 준수에 대하여 알리는 일에 성공하였다.

 이러한 즈음에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십계명이 어떠한 것들이며 과연 우리와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이며, 또한 그 속에 들어 있는 내용들이 과연 무엇인지를 자세하게 알고 지나가는 것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아주 중요한 의무라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서는 어떻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삶인가에 대하여서 연구하여 보고 나서, 우리 자신들을 계명들에 비추어 살펴 보는 일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 될 것이다.

 한 때 과거의 기독교회는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해 졌다고 가르치는 일까지 있었다. 그러나 미국과 전세계에서 도덕이 심각하게 타락하게 되자, 이 타락을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일에서부터 그 이유를 찾아야 한다는 보수적인 목소리들이 높아지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미국의 복음주의 파들은 법원 같은 공공기관의 건물 벽에 십계명을 새겨 넣은 돌비들을 부착 할 수 있도록 법적으로 인정해 주어야 한다고 외치고 있는 것이다. 알라바마 주와 켄터키 주에서 기독교인들이 공공 건물 벽에 십계명 돌비를 붙여 놓자, 반대하는 자들이 고소하여 그 돌비들을 제거해 내는 공방들이 오가면서 이 문제가 전 미국의 핫 이슈로 떠 오르게 되었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는 마지막 시대에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란 어떠한 사람들을 말하는 것인지에 대하여 연구하는 것은 반드시 필요한 일이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용이 여자에게 분노하여 돌아가서 여자의 남은 자손 곧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있는 자들로 더불어 싸우려고 바다 모래 위에 섰더라 (요한 계시록 12:17).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저희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 (요한 계시록 14:12).

 이와같이 하나님의 마지막 참된 교회는 예수를 믿는 믿음만 가지고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사람들이라는 말씀을 읽으면서 많은 그리스도인들 마음 속에 의아한 생각이 들어가게 된다. 그 이유는 많은 교회들이 십자가에서 십계명이 폐했으므로 더 이상 지킬 필요가 없다고 가르쳐 왔던지, 아니면 믿음만 가지면 되는 것이지 계명을 지키는 일은 우리의 구원과 상관이 없다고 가르쳐 왔기 때문에 위에서 읽은 것과 같은 성경 말씀들은 많은 믿는 자들에게 의구심을 주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미국의 기독교회가 하나님의 십계명을 존중하며 지켜야 한다고 외치면서 십계명의 날 까지 만들어 놓고 그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준수하도록 촉구 해야 한다고 나선 것이다. 그것이 바로 5월 7일 Ten Commandments Day 의 의미이다.

 감리교회를 창시한 요한 웨슬레는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골로새서 2장 14절에 말씀하신 대로 주님께서는 의문에 속한 율법(모세의 의식에 관한 율법)을 십자가에 못박으시고 도말 하시었다. 그러나 십계명이 들어 있고 선지자들에 의하여 강조된 도덕적 율법을 없애 버리신 것은 아니다.. 도덕적 율법인 십계명은 의식법인 의문의 율법과는 완전하게 다른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십계명의 모든 부분은 어느 시대에 어느 민족을 막론하고 반드시 지켜야 하는 법으로 남아 있어야만 한다 (Sermons on Several Occasions, Vol. 1, 221).

 Billy Graham 목사도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요한 웨슬레가 말한 것처럼 나도 은혜와 사랑을 말하기 전에 율법과 심판에 대하여 설교하여야만 한다.. 십계명은 인간이 어떻게 행해야 할지에 대한 하나님의 도덕법이다. 어떤 이들을 그 계명들이 폐했다고 말한다. 그것은 사실이 아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계명을 가르치셨다. 이 계명들은 오늘날 아직도 유효하다. 사람들이 변한 것이다.. 이 땅에 살고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빼 놓고는, 다 십계명을 어겼다. 죄는 계명을 어기는 불법이다. 성경은 모두가 다 죄를 범하여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고 말씀하고 있다. 십계명은 우리가 하나님의 표준에서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를 보여 주는 거울이다. 우리의 부족함을 보여주는 이 거울은 우리를 십자가로 이끌어 가는 것이다. (Billy Graham and the New York Crusade, pp. 108,109)

 그렇다! 하나님의 십계명은 폐하지 않았다! 법은 그 법을 만든 자의 성품을 나타낸다. 그러므로 십계명은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의 사본 그 자체이기 때문에 계명을 지키는 영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은 진정한 의미에서 예수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다. 그러므로 한가지 알고 지나가야 할 것은 우리가 구원받기 위하여 계명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여 주셨기 때문에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사실이다. 계명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는 것은 아니지만 계명을 지키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 경험이 없는 자들이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삶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당연한 것이요 결코 율법주의가 될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구원하여 내셨기 때문에 당신의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지, 그들이 계명을 지키면 구원해 내 줄 것이라고 말씀하시지 않으셨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예수께서는 요 14:15에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계명을 지키는 것은 우리가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외적 표현이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성령의 은혜를 통하여서만 가능한 일이다.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을 통하여서 우리 마음 속에 흘러 들어 와야만 진정한 순종이 가능한 것이다. 순종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경험이야 말로 그 사람이 거듭났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인 것이다. 전도서 12:13,14은 이렇게 말씀을 맺고 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

 자, 그러면 이제 출애굽기 20장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께서 친히 손가락으로 써 주신 십계명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하여 간단하게 요약하여 살펴 보도록 하자.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이 계명은 우리의 충성심에 대한 계명이다. 이 계명은 전체 모든 계명들을 한 마디로 줄인 것으로 볼 수 있다. 우주의 하나님은 당신께서 우리의 하나님 되심과 우리의 구속주가 되심을 말씀하시고 있다. 그 분께서는 우리가 다른 신을 가지지 않음으로 우리의 사랑을 표현하기를 요구하신다. 창조주이신 성경의 하나님만이 유일한 경배의 대상이시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영광과 경배를 다른 어떤 존재나 물건들과 나누어 가지실 수가 없다. 이 지구와 인간들의 시작과 끝은 하나님의 창조와 심판이기 때문이다. 비록 하늘에나 땅에나 신이라 칭하는 자가 있어 많은 신과 많은 주가 있으나 그러나 우리에게는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며 또한 한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았느니라 (거전 8:5,6)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둘째 계명은 예배에 관한 법이다. 첫째 계명은 누가 참 하나님인가를 알려 주고 있고, 둘째 계명은 참 하나님을 어떻게 경배하는 것인가에 대하여 알려 주고 있다. 첫째 계명은 하나님에 대한 개념을 알려 주고 있고, 둘째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 있어서 우리의 외적 행위에 대하여 말씀해 주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상이나 새긴 형상들에게 절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우리 마음 속에 무엇을 원하고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는가가 우리의 외적 예배의 행위로 드러나게 되어 있다. 눈에 보이는 형상들이나 의식들 자체가 우리를 구원한다는 오해 속에 빠져서는 안 되는 것이다.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는 어떤 종류의 것들이라도 우리 마음 속에 우상으로 자리 잡을 수가 있는 것이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셋째 계명은 경외심에 관한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그 분의 거룩한 이름을 경외하고 함부로 사용치 말라고 말씀하신다. 히브리어로 망령되이 일컫는다는 뜻은 불경함을 나타낸다는 말이다. 우리가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말하고 생각하는 것은 바로 우리가 그 대상에 대하여 어떠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가를 나타내는 것이다. 우리는 영원히 거룩하신 하나님께 경외하는 태도로 나와야 할 것이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 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넷째 계명은 성화에 관한 계명으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한 명령이다. 이 계명은 하나님께 예배하는 시간에 대하여 명령하고 있다. 안식일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자들이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과 그분의 사랑과 보호하심을 신뢰함으로 하나님의 능력 안에서 쉬는 경험을 말해 주고 있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것과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을 어느 것 보다 더 귀중하게 여기는 신자들만 이 계명의 의미를 이해 할 수 가 있는 것이다. 안식일 계명은 인간과 하나님을 하나가 되게 해 주는 계명으로서 첫 돌비에 있는 네 계명들, 즉 하나님께 대한 계명들을 하나로 묶어 주고 있는 계명이다.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신 것을 매주마다 기억나게 하는 기념일이요, 또한 우리를 구속하신 것을 기념하게 하는 날이다. 인간의 몸은 영과 혼과 함께 일주일에 하루씩 휴식이 필요하도록 창조되었고, 특히 매주 하루씩 하나님과 함께 시간을 보내야 우리들의 영혼이 회복 될 수 있도록 창조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을 예배하는 시간을 정해 주시고 그 날, 곧 제 칠일을 잊지 말고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명령하신다. 에덴 동산에서 모든 실과들은 임의로 먹되 선악과는 따 먹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처럼 안식일은 우리가 거룩하게 다루어야 하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날이다. 이 날은 우리가 새롭게 함을 입는 날이요, 하나님께서 복 주시기로 정해 놓으신 특별한 날이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다섯째 계명은 둘째 돌비인 인간 관계를 다룬 하나님의 명령들 중에 제일 첫 계명으로서 우리를 낳아주신 부모에 대한 공경심을 명령하고 있다. 부모를 사랑하는 것이 인간을 사랑하는 첫째 의무요 도리이다. 참된 종교에는 하나님과 인간관계를 묶어 주는 도덕적인 율법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인간들 간의 도덕을 세워 주는 계명이 없이는 참된 관계가 이루어 질 수 가 없다. 인간들 간의 도덕적 관계가 이루어지는 그 기초는 가정이요, 그 가정의 첫째 계명은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부모를 공경하는 계명이 깨어진 사회는 파괴되게 마련인 것이다. 이 계명은 약속이 있는 첫 계명이다. 너희 각 사람은 부모를 경외하고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레위기 19:3)

 살인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인간의 생명에 대한 존경심에 대한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웃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명령하신다. 살인은 꼭 남의 생명을 취함만으로 이루어 지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는 마음 속으로 남을 증오하는 것도 살인이라고 정의 하셨다. 마음 속의 미워함이 결국에는 살인을 낳는 씨앗이기 때문이다. 계명에 대한 진정한 순종은 마음 속에서 우러나오기 때문이다.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니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요한일서 3:15)

 간음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인간 관계의 순결함에 대한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간음하지 않음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라고 명령하신다. 간음은 현대 가정을 파괴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결혼은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제도임으로 거룩한 것이다. 간음은 마음 속의 생각에서부터 출발하는 것임으로 마음 속으로 음욕을 품는 것도 이미 간음한 것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다시 말하지만, 그러므로 계명은 마음으로 지키는 것이다. 유혹을 저지하거나 품는 것은 자신의 결정이기 때문이다.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여덟째 계명은 정직에 대한 계명이다. 하나님께서는 도둑질 하지 않음으로 이웃에 대한 사랑을 나타내라고 명령하신다. 개인의 소유에 대한 권리는 하나님께로부터 온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사람의 권리와 권한을 인정하며 살아야 한다. 다른 사람을 찬탈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권리를 빼앗는 것이기에 하나님께 범죄하는 것이 된다. 남의 것을 존중하지 않는 것은 사회와 국가를 파괴시키는 부도덕한 죄가 된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거짓 증거를 하거나 속이지 말라고 명령하고 있다. 사단은 거짓말의 아비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요 8:44 참조). 다른 사람을 속이거나 그 사람에 대하여 거짓 증거를 하여 그 사람의 인격을 무너뜨리거나 짓 밟는 것은 어떤 의미에 있어서 살인 보다 더 악한 영향을 끼칠 수가 있는 것이다. 남을 속이는 죄악은 사람들 간에 사랑을 식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하나님께서 탐내지 말라고 하시는 이유는 이 죄악이 모든 다른 죄악들의 뿌리가 되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평판과 인기를 탐내고, 이웃의 소유와 토지들을 탐내는 마음이 생길 때에 그 죄악은 다른 죄들을 짓도록 인도하는 동기가 된다. 남의 아내를 탐하다가 간음하게 되지 않는가! 루스벨은 하나님의 능력을 탐내다가 반역하여 사단이 되었고, 하와는 사단의 꼬임에 빠져 더 높은 지위와 하나님과 같아지는 것을 탐하다가 범죄하게 된 것이다. 가인은 하와의 죄를 본받아 하나님께서 자기 동생 아벨에게 주시는 인정을 탐내다가 첫 번째 살인자가 되었다.

 우리는 위에서 간단하게 십계명과 그 내용들의 의미들을 살펴보았다.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은 하나님의 계명들을 지키는 사람들이라고 성경은 선포하고 있다. 마지막 시대에 누가 참 신자인가를 나타내는 특징은 바로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하나님의 말씀은 강조하고 있다. 계명은 하나님의 성령께서 마음을 지배하고 있는 자들만이 진정으로 지킬 수 있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표가 바로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1부 - 하나님의 율법, 십계명

 시내산에서 장막을 친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모세는 하나님을 만나기 위하여 산으로 올라오라는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혼자 가파르고 험준한 산길을 올라가 여호와께서 임재해 계시는 곳을 나타내는 구름이 있는 곳으로 가까이 나아갔다. 이스라엘은 이제 하나님의 통치를 받게 될 교회와 국가로 조직되기 위하여, 지극히 높으신 분과의 밀접하고 특별한 관계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다음과 같은 기별을 백성들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셨다.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출애굽기 19장 참조).

 모세는 진영으로 돌아와, 이스라엘 장로들을 소집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기별을 전달했다. 그들은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하고 대답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하나님과 엄숙한 언약을 맺고 하나님을 그들의 통치자로 받아들이기로 맹세했다. 동시에, 그같이 하여 그들은 특별한 의미에 있어서 그분의 지배를 받는 신민이 되었다. 그들의 지도자는 다시 산으로 올라갔다. 여호와께서 그에게 내가 빽빽한 구름 가운데서 네게 임함은 내가 너와 말하는 것을 백성으로 듣게 하며 또한 너를 영영히 믿게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백성들은 그 곳까지 오는 길에서 어려움을 당했을 때에 모세와 아론을 원망했고 자기들을 멸망시키기 위하여 애굽에서 인도해 냈다고 비난하였다.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 앞에서 모세를 영화롭게 하심으로 저들이 그의 교훈을 따르게 되도록 계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율법을 선포하시는 행사가, 그 율법의 탁월성을 감안하여 매우 장엄한 광경이 되도록 계획하셨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과 관련된 모든 것은 무엇이나 최대의 경외심을 가지고 대해야 한다는 깊은 인상을 받아야 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너는 백성에게로 가서 오늘과 내일 그들을 성결케 하며 그들로 옷을 빨고 예비하여 제삼일을 기다리게 하라 이는 제 삼일에 나 여호와가 온 백성의 목전에 시내산에 강림할 것임이니라고 말씀하셨다. 이 몇 날 동안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위하여 모든 사람들은 엄숙하게 준비하는 일에 그들의 시간을 바쳐야 했다. 그들의 몸과 의복에서 부정이 제거되어야 했다. 그리고 모세가 그들의 죄를 지적해 줄 때 그들은 마음의 부정을 깨끗하게 씻기 위하여 자신을 겸비하게 하고, 금식하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여야 했다.

 명령된 대로 모든 준비가 갖추어졌다. 하나님께서 주신 또 다른 명령에 순종하여, 모세는 산 주위에 울타리를 치게 해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아무도 이 신성한 지역을 침입하지 못하게 했다. 누구든지 이 금령을 무시하고 그것을 만지기만 하여도, 그 벌로 즉각 죽임을 당할 것이다.

 제 3일 아침, 온 백성이 산을 쳐다보고 있을 때에, 산 꼭대기에는 빽빽한 구름이 덮였고, 그 구름은 더욱 검어지고 짙어지면서 아래로 밀려 내려와 마침내 온 산은 어두움과 무시무시한 신비에 싸여 버렸다. 그 후에 백성들로 하나님을 만나도록 소집하는 나팔 소리와 같은 소리가 들렸다. 모세는 백성들을 인도하여 산기슭으로 나아갔다. 짙은 흑암 속에서 번개가 번쩍이고 우레가 진동하여 그 소리가 주위의 산들에 메아리치고 또 메아리 쳐 퍼져 나갔다. 시내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점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였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모인 군중의 눈에는 맹렬한 불같이 보였다. 그리고 나팔 소리가 점점 커졌다. 여호와의 임재의 모습이 심히 무서워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에 질려 땅에 엎드렸다. 모세까지도 내가 심히 두렵고 떨린다(히 12:21)고 외쳤다.

 다음에 우레 소리가 그치고, 나팔소리도 들리지 않았으며 온 땅은 고요해졌다. 한동안의 엄숙한 침묵이 지난 후, 하나님의 음성이 들렸다. 수종하는 천사들에게 옹위되어서 여호와께서 산 위에 서시고 당신을 두르신 짙은 흑암을 통하여 큰 음성으로 당신의 율법을 알리셨다. 모세는 그 장면을,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도다(신 33:2, 3)라고 묘사했다.

 여호와께서는 재판자와 입법자의 무서운 위엄으로써 자신을 나타내셨을 뿐 아니라, 당신께서 그분의 백성의 동정 깊으신 보호자이심을 나타내셨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너의 하나님 여호와로라(출 20:2). 이스라엘 백성이 이미 그들의 인도자요 구원자로 알고 있는 그분, 그들을 애굽에서 인도해 내시고 그들을 위하여 바다 가운데로 길을 내시고 바로와 그의 군대를 멸망시키심으로써 자신이 애굽의 모든 신들보다 높으신 분임을 나타내신 바로 그분께서 지금 당신의 율법을 반포하고 계셨다.

 이 율법은 그 때에 히브리 사람들의 유익만을 위해서 반포된 것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사람들을 당신의 율법의 수호자와 관리자로 삼으심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으나 그것은 온 세계를 위한 신성한 위탁 물로 간수되어야 했다. 십계명의 명령은 온 인류에게 적용되는 것이며, 만민을 위한 교훈과 통치 원칙으로 주신 것이다. 간결하면서도 포괄적이며 권위 있는 십계명은 하나님과 이웃 사람에 대한, 사람의 의무를 총망라하고 있으며, 모든 조항이 다 근본적인 사랑의 대원칙에 기초를 두고 있다.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눅 10:27; 신 6:4,5; 레 19:18). 십계명 가운데는 이 원칙들이 구체적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그것들은 사람의 상태나 환경에 적용할 수 있도록 되어 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영원하시고 자존하시고 지음을 받지 않으신 분이시며 만물의 근원이시요 보전자이신 여호와께서만 최고의 존경과 경배를 받으실 자격이 있으시다. 사람은 어떤 다른 대상물에게도 그들의 애정과 봉사의 첫째 자리를 주는 것이 금지되어 있다.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사랑을 감소시키거나 마땅히 그분께 드릴 봉사에 방해가 되는 것을 우리 마음속에 품는다면 우리는 그것을 신으로 만드는 것이 된다.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둘째 계명은 우상이나 그와 비슷한 것을 가지고 참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을 금하고 있다. 많은 이교의 민족들은 그들의 우상이 예배를 받으시는 하나님의 표상이나 상징이라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와 같은 예배는 죄가 된다고 선언하셨다. 영원하신 하나님을 세상의 물질로 대표해 보려는 시도는 하나님께 대한 개념을 저하시킨다. 영원하시고 완전하신 여호와께로부터 돌아선 마음은 창조주께 보다는 오히려 그가 만드신 피조물들에게 더 끌리게 된다. 그리고 하나님께 대한 개념이 저하되면 사람도 타락하게 될 것이다.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의 친밀하고 신성한 관계가 결혼 관계의 형태로 표현되어 있다. 우상숭배는 영적 간음으로서 그것에 대한 하나님의 불쾌히 여기심을 질투라고 표현된 것은 적합한 말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 대 까지 이르게 한다. 자녀들이 부모의 비행의 결과로 고통을 당하게 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나 그들이 부모의 죄에 동참하지 않는 한 부모의 죄 때문에 그들이 벌을 받지는 않는다. 그러나 대체로 자녀들은 부모의 발자취를 따른다. 유전과 부모들의 모본으로 말미암아 아들들은 아버지가 저지른 죄를 짓는다. 나쁜 버릇과 그릇된 식욕과 저열한 품행은 육체적 질병과 퇴화 현상을 지니고 아버지에게서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전승 물로 내려간다. 이 무서운 사실이 죄의 길을 따라가는 사람들을 견제하는 데 큰 힘을 발휘해야 한다.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둘째 계명은 거짓 신들을 숭배하는 것을 금하는 동시에 참 하나님을 경배하라고 명령한다. 그분을 미워하는 자들에 대한 노여움이 삼사 대까지 밖에 미치지 않지만 그분을 위해 충실히 봉사하는 사람들에게는 천대까지 긍휼이 약속되어 있다.

 너는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죄없다 하지 아니하리라.
 
이 계명은 거짓 서약과 일반적인 맹세를 금할 뿐 아니라,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이름의 존엄한 뜻을 생각지 않고 경솔하고 부주의한 태도로 그 이름을 쓰는 것을 금하고 있다. 보통의 대화에서 부주의하게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는 일과, 사소한 문제로 그분께 호소하는 일과, 그분의 이름을 자주 생각 없이 되풀이하는 일로 우리는 그분께 욕을 돌린다. 그 이름이 거룩하고 지존하시도다(시 111:9). 모든 사람은 그들의 마음이 그분의 존귀하신 품성을 깨닫고 깊은 감명을 받기 위하여 그분의 위엄과 순결함과 거룩함을 명상해야 한다.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이름을 입 밖에 낼 때에는 존경하는 마음과 엄숙함으로 해야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 엿새 동안은 힘써 네 모든 일을 행할 것이나 제 칠 일은 너의 하나님 여호와의 안식일인즉 너나 네 아들이나 네 딸이나 네 남종이나 네 여종이나 네 육축이나 네 문안에 유하는 객이라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제 칠 일에 쉬었음이라 그러므로 나 여호와가 안식일을 복되게 하여 그날을 거룩하게 하였느니라.
 
안식일은 새로운 제도로서가 아니라, 창조 때에 이미 제정된 것으로 소개되었다. 그것은 창조주의 업적을 기념하는 것으로 기억해서 지켜야 한다. 그것은 하나님을 천지의 창조주로 지적하고 참 하나님과 거짓 신들을 구별시켜 준다. 제 칠일을 지키는 사람들은 그 같은 행동으로 그들이 다 여호와를 예배하는 자들임을 나타낸다. 그리하여 이 땅 위에 그분을 섬기는 사람들이 존재하는 한 안식일은 하나님께 대한 사람의 충절의 표가 된다. 이 넷째 계명은 열 계명 중에 입법자의 이름과 직함이 들어있는 유일한 계명이다. 그것은 또 누구의 권위로 율법이 주어졌는지를 보여 주는 유일한 계명이다. 그러므로 이 계명은 율법의 진정성과 구속력의 증거로서 그분의 율법에 찍힌 하나님의 인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일할 수 있는 엿새를 주시고 그들 각자의 일을 이 엿새 동안에 하기를 요구하신다. 자비를 베푸는 행위와 꼭 필요한 일들은 안식일에도 허락됐으므로 병자와 고통 당하는 자는 언제나 돌보아 주어야 한다.

 그러나 불필요한 일은 엄격히 피해야 한다. 안식일에 네 발을 금하여 내 성일에 오락을 행치 아니하고 안식일을 일컬어 즐거운 날이라 여호와의 성일을 존귀한 날이라 하여 이를 존귀히 여기고 네 길로 행치 아니하며 네 오락을 구치(사 58:13)말라. 여기서 그 금령이 끝나는 것이 아니다. 선지자는 사사로운 말을 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에 사업 문제를 의논하거나 계획을 세우는 사람들을 실제로 사업에 종사한 것으로 간주하신다. 안식일을 거룩히 지키기 위하여 우리는 세속적 성격의 일들을 생각하는 것 조차도 피해야 한다. 그리고 그 계명은 우리집 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포함한다. 집안에 동거하는 사람들까지 거룩한 시간 동안에는 그들의 세속적 사무를 제쳐놓아야 한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날에 자원하는 봉사를 통해서 그분을 영화롭게 하는 일에 연합해야 한다.

네 부모를 공경하라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네 생명이 길리라.
 
부모는 어느 누구보다도 자녀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을 자격이 있다. 그들의 보호 아래 위탁된 영혼들을 돌볼 책임을 지워 주신 하나님께서는 부모들이 저희 자녀가 어렸을 때에는 그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자리에 서도록 친히 정해 놓으셨다. 그러므로 자기 부모의 정당한 권위를 거부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권위를 거부하는 것이다. 다섯째 계명은 자녀들에게 그들의 부모를 존경하고 순종하기를 요구할 뿐 아니라, 그들을 사랑하고 부드럽게 대하며, 그들의 수고를 가볍게 해주고, 그들의 명예를 지켜 주며, 노후에 그들을 부양하고 위로해 주기를 요구한다. 이 계명은 또 목사들과 나라의 통치자들과 하나님께서 권위를 위임하신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라고 분부한다. 사도 바울은 이것이 약속 있는 첫 계명이(엡 6:2)라고 말한다. 잠시 후에 가나안에 들어가기를 바라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이 계명은 순종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땅에서 오래 살리라는 공약이었다. 그러나 이 계명은 보다 넓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모든 하나님의 영적 이스라엘 백성을 포함하며, 이 세상이 죄의 저주에서 해방될 때 이 땅에서 그들이 영원히 살게 되리라고 약속하고 있다.

살인하지 말지니라."
 
생명을 단축시키는 모든 부정한 행위와 증오와 복수의 정신과 또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행위를 하게 하거나 우리로 그들이 해 받기를 바라는 마음을 품도록 만드는 감정에 빠져드는 것(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인 까닭에)과 가난한 사람들이나 고통 당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이기심 때문에 돌보는 일을 게을리한 행위와 모든 방종이나 불필요한 소모나 건강을 해치는 경향이 있는 과중한 노동-등이 모든 것은 정도에 차이는 있으나 다 여섯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간음하지 말지니라.
 
이 계명은 음란한 행위를 금할 뿐 아니라, 육욕적인 생각과 욕망은 물론 그것들을 자극하는 경향이 있는 어떠한 행위도 금하고 있다. 외부에 나타나는 생활에서뿐만 아니라 마음의 은밀한 의도와 감정에 까지도 순결이 요구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의 원대한 의무를 가르치신 그리스도께서는 사악한 생각이나 눈길도 불법한 행위와 마찬가지로 죄가 된다고 선언하셨다.

도적질하지 말지니라.
 
공적이든지 사적이든지간의 범죄가 이 금령 안에 포함되어 있다. 여덟째 계명은 유괴와 노예 매매를 정죄하고 정복을 위한 전쟁을 금하고 있다. 이 또한 절도와 강도 행위를 정죄한다. 이 계명은 또 일상 업무의 가장 사소한 일에도 엄격한 성실을 요구한다. 이 계명은 상거래에 있어서 속이는 것을 금하는 동시에 당연히 지불해야 할 부채와 임금의 지불을 요구한다. 이 계명은 또 남의 무지와 약점과 불운을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취하려 하는 모든 행위는 하늘 책에 사기로 기록된다고 선언한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지니라.
 우리의 이웃을 속이려는 의도나 목적으로 어떤 문제에서든지 거짓말하는 것은 모두 이 계명에 저촉된다. 속이려는 의도가 거짓을 구성하는 것이다. 눈짓, 손짓, 얼굴 표정 등으로도 말로 하는 것과 같이 효과적으로 거짓말을 할 수 있다. 모든 고의적인 과장과 그릇되거나 과장된 인상을 전하려고 계획된 말이나 암시, 비록 사실일지라도 오해하게 만드는 방법으로 말하는 것은 거짓이다. 이 계명은 잘못 전하거나 나쁘게 추측하거나, 비방이나 고자질을 함으로 이웃의 명망을 손상시키려는 모든 행위를 금지한다. 고의적으로 사실을 은폐하여 타인에게 손해를 입히는 일도 아홉째 계명을 범하는 것이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유나 그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
 
열째 계명은 죄 된 행위의 뿌리가 되는 이기적 욕망을 금함으로써 만 악의 뿌리 자체를 강타하고 있다.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하여 남의 소유물에 대한 나쁜 욕심을 품는 것조차도 삼가는 사람은 그의 이웃들에게 해를 끼치는 악한 행위를 하지 않을 것이다.

2부 - 하나님의 율법, 십계명

 우레와 화염 가운데서, 위대하신 입법자의 권능과 위엄을 놀랍게 나타내시며 말씀하신 십계명의 거룩한 교훈은 이와 같았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율법을 선포하실 때에 당신의 권능과 영광을 나타내신 것은 당신의 백성들로 하여금 그 광경을 결코 잊어버리지 않게 해서 율법의 제정자요 천지의 창조주이신 당신께 깊은 존경심을 갖도록 감명을 주시기 위함이었다. 하나님께서는 또 당신의 율법의 신성성과 중대성과 영원성을 만민에게 보이려고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공포에 짓눌렸다. 하나님의 말씀의 무서운 능력을 그들의 떨리는 마음으로는 감당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의의 대원칙이 그들 앞에 제시되었을 때에 그들은 전에 없이 죄의 가증한 성질과 하나님의 목전에 있는 저희 자신의 죄를 통절히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공포와 경외심을 가지고 그 산에서 물러갔다. 군중들은 모세에게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출 20:19-21)라고 부르짖었다. 지도자 모세는 두려워 말라 하나님이 강림하심은 너희를 시험하고 너희로 경외하여 범죄치 않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대답하였다. 그러나 백성들은 모세가 하나님의 계신 암흑으로 가까이 가는 동안 멀리 뒤에 남아 두려운 마음으로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백성들의 마음은 노예 생활과 우상숭배로 어두워지고 저하 되어서, 하나님의 십계명의 원대한 원칙을 온전히 이해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다. 그리하여 십계명의 의무가 더욱 잘 이해되고 시행되도록 하기 위하여 십계명의 원칙을 설명하고 적용하는 여러 가지 법들을 첨가해 주셨다. 이 법들이 율례 라고 불리는데 (의문의 율법, 혹은 모세의 율법으로 불리 움) 이는 그것들이 무한한 지혜와 공평으로 만들어졌을 뿐 아니라, 법관들이 법에 따라 판결을 내리도록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 법은 십계명과는 달리 모세에게 은밀하게 전달되었으며, 그는 이것들을 다시 백성들에게 전달하였다.

 이 법들 중에 첫째 법은 종들에 관계된 것이었다. 고대에는 죄수들이 때때로 법관들에 의하여 노예로 팔렸다. 어떤 경우에서는 채무자가 채권자에 의하여 노예로 팔렸다. 때로는 빈곤으로 인하여 사람들이 자신이나 자녀들을 노예로 팔 때도 있었다. 그러나 히브리 사람들은 종신 노예로 매매될 수 없었다. 종살이의 기간은 6년간으로 제한되었으며 7년째 되는 해에는 자유를 주어야 하였다. 사람을 유괴하는 자와 고의적으로 살인하는 자와 부모의 권위에 대해 반역하는 자는 사형에 처하기로 되어 있었다. 이스라엘 태생이 아닌 사람을 노예로 삼는 것은 허락되었으나 그들의 신체는 엄격히 보호되었다. 노예를 살해하는 자는 형벌을 받아야 했다. 주인이 노예에게 상처를 입히면, 그의 이 하나를 부러뜨렸을지라도 그 노예를 해방시켜 주어야 했다.

 이스라엘 사람들 자신이 그전까지 노예로 있었으나 이제는 그들도 그들의 수하에 종을 거느리게 될 것이었다. 그 때 그들은 자신들도 애굽인 감독 밑에서 고생을 했으므로 그들처럼 잔인하고 가혹한 정신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할 것이었다. 그들이 당한 쓰라린 고역을 회상하고 자기 자신들을 종의 입장에 두어 그들에게 동정과 친절을 베풀고 그들이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남들을 대접하여야 하였다.

 과부와 고아들의 권익이 특별히 보호되었고, 그들의 속절없는 상태를 친절히 고려해 주도록 명령되었다. 여호와께서는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을지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출 22:23, 24)고 선언하셨다. 이스라엘과 연합한 이방인들도 부정이나 압박에서 보호를 받아야 하였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라 너희가 애굽 땅에서 나그네 되었은즉 나그네의 정경을 아느니라(출 23:9).

 가난한 사람에게서 이자 받는 것이 금지되었다. 저당 잡힌 가난한 사람의 의복이나 이불을 해질 무렵에는 되돌려 주어야 했다. 도둑질한 사람은 배로 변상해야 했다. 법관들과 통치자들을 존경하라는 명령이 주어졌으며 재판관들은 거짓 송사를 도와주거나 뇌물을 받고 재판을 그르치지 않도록 경고를 받았다. 비방과 중상이 금지되었고, 자기들의 원수에게까지도 친절한 행동을 하도록 백성들은 명령을 받았다.

 다시 안식일의 신성한 의무를 백성들에게 상기시켜 주었다. 연례적인 축제들이 제정되었다. 그 때에는 그 나라의 모든 남자들이 여호와 앞에 드릴 감사의 헌물과 그분의 축복의 첫 열매를 가지고 모이도록 되어 있었다. 이 모든 규정을 주신 목적이 진술되었다. 그것들은 단순히 전제적 주권을 행사하는 데서 유래된 것이 아니요, 모두 이스라엘의 행복을 위하여 주어졌던 것이다. 여호와께서는 거룩하신 하나님의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출 23:9)라고 말씀하셨다. 이 법들은 모세에 의하여 기록되었고 국법의 기초로서 십계명과 함께 조심스럽게 보관되었다. 이것들은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성취시킬 수 있는 열 계명을 설명하기 위하여 주어졌다.

 이제 여호와께로부터 그들에게 기별이 주어졌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로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 너희가 삼가 그 목소리를 청종하고 그를 노엽게 하지 말라 그가 너희 허물을 사하지 아니할 것은 내 이름이 그에게 있음이니라 네가 그 목소리를 잘 청종하고 나의 모든 말대로 행하면 내가 네 원수에게 원수가 되고 네 대적에게 대적이 될지라(출 23:20-22). 이스라엘이 방황하던 모든 기간 내내 그리스도께서는 구름기둥과 불기둥 속에 계셔서 그들을 인도하셨다. 오실 구세주를 가리키는 예표들이 있었던 반면에 또한 구세주께서 친히 현재 임하셔서 백성들을 위하여 모세에게 명령을 주셨다. 하나님은 그들 앞에 유일한 축복의 통로로 제시 되셨다.

 산에서 내려와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출 24장 참조)라고 말했다. 모세는 이 서약을 백성이 지켜야 할 여호와의 말씀과 함께 책에 기록하였다. 그 후에 언약의 비준이 뒤따랐다. 산기슭에 제단이 설치되고 그 곁에는 이스라엘 열 두 지파대로 열 두 기둥이 그들의 언약의 수락의 증거로 세워졌다. 그리고 이 제사를 위하여 선택 받은 청년들이 희생 제물을 드렸다.

 모세는 제물의 피를 제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다가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려 주었다. 이와 같이 언약의 조건들이 엄숙히 반복되었다. 모든 사람에게는 다 언약의 조건을 따르든지 아니면 거절하든지를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주어졌다. 백성들은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순종하겠다고 이미 약속했다. 그러고 나서 그 후에 그들은 그분의 율법이 선포되는 것을 들었다. 이 언약이 얼마나 많은 것을 내포하고 있는지를 알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율법의 원칙들이 상술되었다. 다시 백성들은 이구 동성으로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라고 대답하였다. 모세가 율법대로 모든 계명을 온 백성에게 말한 후에& 피를 취하여 그 책과 온 백성에게 뿌려 이르되 이는 하나님이 너희에게 명하신 언약의 피라 하였다.

 이제 여호와를 왕으로 모시는 선민의 국가가 창설될 완전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모세는 너는 아론과 나답과 아비후와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 여호와에게로 올라와 멀리서 경배하고 너 모세만 여호와에게 가까이 나아 오라는 명령을 받았다. 백성들은 산기슭에서 경배하는 동안 이 택함을 받은 사람들은 산 위로 올라오도록 부름을 받았다. 70인 장로들은 모세를 도와 이스라엘을 다스려야 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그분의 성령을 부어주시고 그분의 권능과 위대함을 나타내심으로 그들을 영화롭게 하셨다. 이스라엘 하나님을 보니 그 발 아래에는 청옥을 편듯하고 하늘같이 청명하더라. 그들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였고 다만 그분의 임재의 영광을 보았다. 이 일이 있기 전에는 그들이 그런 광경을 보고 견딜 수 없었을 것이었다. 하나님의 권능의 발현이 그들을 두렵게 하여 그들을 회개로 이끌었다. 그들은 그분의 영광과 순결과 긍휼을 깊이 생각하고 그들의 묵상의 대상이신 그분께 더욱 가까이 나아갈 수 있었다.

 이제 모세와 그 종자 여호수아는 하나님을 대면하도록 부름을 받았다. 그리고 그들은 한 동안 부재중일 것이었다. 그러므로 지도자 모세는 장로들의 도움을 받아 그의 직무를 대행하도록 아론과 훌을 임명하였다. 모세가 산에 오르매 구름이 산을 가리며 여호와의 영광이 시내산 위에 머물러 있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임재의 증거로써 6일 동안 구름이 산을 가리고 있었으나 그분께 대한 계시나 그분의 뜻은 전달되지 않았다. 이 기간에 모세는 지존자의 알현실로 들어오라는 부르심을 기다리면서 머물러 있었다. 그가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의 인내와 순종은 시험을 받았으나 그는 살피기에 지치거나 그의 직임을 버리지 않았다. 이 기다리는 기간은 그에게 있어서 준비하는 기간이었고 자기 자신을 면밀히 살피는 시간이었다. 하나님의 총애 받는 모세 조차도 당장 그분의 앞으로 나아가서 그분의 영광의 발현을 견딜 수는 없었다. 그가 그의 조물주와의 직접 교통을 위하여 준비될 수 있기 전에, 마음의 반성과 묵상과 기도로 자신을 하나님께 바치는 데 엿새가 걸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안식일이었던 제 칠일에 모세는 구름 속으로 부름을 받았다. 온 이스라엘의 목전에서 빽빽한 구름이 열리고 여호와의 영광이 맹렬한 불처럼 쏟아져 나왔다.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산상에서 체류한 40일에는 준비하던 6일이 포함되지 않았다. 6일 동안은 여호수아가 모세와 함께 있었으며 다 같이 만나를 먹고 산에서 흘러내리는 시냇물을 마셨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모세와 같이 구름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그는 밖에 머무르면서 모세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날마다 먹고 마시기를 계속하였다. 그러나 모세는 40일 동안 금식하였다.

 산에 머물러 있는 동안에 모세는 하나님의 임재가 특별히 나타나게 될 성소를 건축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지으라(출 25:8)는 것이 하나님의 명령이었다. 세 번째로 안식일 준수를 명하셨다. 여호와께서는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지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 무릇 그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출 31:17, 13, 14)고 선언하셨다.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성소를 조속히 지으라는 지시가 주어졌다. 이제 백성들은, 염두에 둔 목적이 하나님의 영광이었고 예배할 장소가 몹시 필요했기 때문에, 그들이 안식일에도 건축하는 일을 정당화하는 결론을 내릴 수도 있었다. 이런 과오를 범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경고가 주어졌다. 하나님을 위한 특별한 사업이 아무리 신성하고 긴급하다 할지라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거룩한 안식일을 범하게 해서는 안 되었다.

 이제부터 백성들은 그들의 왕의 영속적 임재로 영광을 얻게 될 것이었다. 내가 이스라엘 자손 중에 거하여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니, 내 영광을 인하여 회막이 거룩하게 될지라(출 29:43, 45)는 보증이 모세에게 주어졌다. 하나님의 권위의 상징이며 그분의 뜻의 구체적 표현인 십계명이 하나님의 친수로 두 돌 판에(신 9:10; 출 32:15, 16) 새겨져 성소 안에 거룩하게 안치되도록 모세에게 하사 되었다. 그리고 성소가, 건립되면 그것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민족적 예배의 중심이 될 것이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노예 민족으로부터 만 왕의 왕의 특별하고 보배로운 백성이 되어 모든 민족들 위에 뛰어나게 되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신성한 임무를 맡기기 위하여, 그들을 세상으로부터 분리시키셨다. 그분은 그들을 당신의 율법의 수호자로 삼아, 그들을 통하여 사람들 가운데 그분 자신에 관한 지식을 보존하시고자 하셨다. 그리하여 하늘의 빛은 흑암에 싸인 세계를 비추어, 모든 백성이 우상숭배에서 돌이켜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라고 하는 호소의 음성을 듣게 될 것이다. 만일 이스라엘 백성이 그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충실히 행한다면, 그들은 세계에서 강대국이 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방패가 되시고, 그들을 모든 다른 민족들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었다. 그분의 빛과 진리는 그들을 통하여 나타날 것이며, 그분의 지혜와 신성한 통치하에서 그들은 참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이 모든 형태의 우상숭배보다 훨씬 우수하다는 것을 나타내 보여 주는 표본이 될 것이었다.

3부 - 마음속의 죄

 여자를 보고 음욕을 품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마태복음 5장 28절).

 유대인은 자신들의 도덕성을 자랑하고 이방인의 관능적인 행위를 가증히 여겼다. 로마 제국의 통치로 팔레스타인에 들어오게 된 로마 장교들의 존재는 사람들에게 계속해서 실족하게 하는 것이 되었다. 왜냐하면 그 이방인들과 함께 이교의 습관과 음란과 방탕의 홍수가 밀려왔기 때문이었다. 가버나움에서, 로마 군의 장교들은 정부와 함께 유원지에 나타나 산보하였으며, 그들의 유람선들이 잔잔한 물위를 미끄러져 갈 때 자주 환락의 소리가 호수의 적막을 깨뜨렸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서 이런 부류의 사람들을 엄중히 책망하는 말씀을 듣기를 기대하였다. 그런데 오히려 그들 자신의 마음에 있는 악을 폭로하시는 말씀을 들었으니, 그 놀람이 어떠했겠는가!

 예수께서는 아무리 은밀한 중에라도 즐겨 악한 생각을 품을 때는 죄가 아직도 마음을 지배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런 사람의 심령은 여전히 심한 증오와 죄악의 속박 가운데 놓여 있다. 불순한 장면을 상상함으로 쾌감을 느끼는 사람, 악한 생각을 품고 호색적인 표정을 짓는 사람은 드러난 죄 속에서 그것으로 인한 수치와 마음을 찢는 슬픔의 고통을 느끼며 그가 영혼 골방에 감추어 둔 악의 참 특성을 보게 될 것이다. 사람이 유혹에 빠져 가증한 죄를 짓게 되는 때는,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악을 새로 지어내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 숨겨 놓았거나 잠재해 있는 것을 나타내거나 명백히 하는 것에 불과하다. 생명의 근원이 마음에서 시작되기 때문에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잠언 4장 23절; 23장 7절)하다.

 사람이 아무 연고를 물론하고 그 아내를 내어버리는 것이 옳으니이까(마태복음 19장 3절).

 유대인들은 지극히 사소한 허물을 가지고도 아내를 버릴 수 있었으며, 버려진 여자는 그 때부터 재혼의 자유를 허용 받았다. 이러한 풍습은 큰 불행과 죄를 초래하였다. 예수께서는 산상 설교에서, 결혼 서약을 충실히 이행하지 않을 때를 제외하고는 혼인 관계가 깨어질 수 없다고 분명히 선언하셨다. 그분께서는 누구든지 음행한 연고 외에 아내를 내어 버리고 다른 데 장가드는 자는 간음함이니라고 말씀하셨다.

 그 후에 바리새인들이 이혼의 합법성에 관하여 질문하자, 예수께서는 청중들에게 창조 시에 제정된 결혼 제도를 상기시키셨다. 그분께서는 모세가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아내 내어버림을 허락하였거니와 본래는 그렇지 아니하니라(마태복음 19장 8절)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하나님께서 만물을 보시고 심히 좋다고 선언하신 에덴의 아름다운 날들에 대하여 언급하셨다. 결혼과 안식일은 그 때에 시작되었고, 이 두 제도는 하나님의 영광과 인류의 유익을 위한 것이었다. 창조주께서는 거룩한 부부의 손을 혼인으로 연합시키실 때,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창세기 2장 24절)는 말씀을 주심으로써, 아담의 모든 자손을 위한 결혼의 법칙이 마지막 때까지 유효함을 선언하셨다. 영원하신 아버지께서 친히 좋다고 선포하신 것은 인류를 위한 최상의 축복과 향상의 법칙이었다.

 인류에게 지키도록 위탁된 하나님의 좋은 선물들 중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결혼 제도도 죄로 말미암아 왜곡되었다. 그러나 그 제도의 순결과 아름다움을 회복하는 것이 복음의 목적이다. 신 구약을 막론하고, 결혼 관계는 그리스도와 그분의 백성, 곧 그분께서 갈바리의 희생으로 구속한 자들 사이에 존재하는 우호적이고 거룩한 연합을 나타내기 위하여 사용되고 있다. 그분께서는 두려워 말라 & 이는 너를 지으신 자는 네 남편이시라 그 이름은 만군의 여호와시며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시라(이사야 54장 4, 5절), 배역한 자식들아 돌아오라 나는 너희 남편 임이니라(예레미야 3장 14절)고 말씀하신다. 아가서에서 우리는,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아가 2장 16절)라고 말하는 신부의 음성을 듣는다. 그리고 신부에게 있어서 만 사람에 뛰어난(아가 5장 10절) 그분께서는 나의 사랑 너는 순전히 어여뻐서 아무 흠이 없구나(아가 4장 7절)라고 당신의 택하신 자에게 말씀하신다.

 그 후에, 사도 바울은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에게 편지하면서, 마치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와 신령한 몸의 구주가 되시는 것같이 하나님께서 남편을 아내의 머리로 삼으심으로써 그를 아내의 보호자와 또 가족을 함께 묶는 가정의 띠가 되게 하셨다고 선언한다. 따라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 남편들아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니라 이와 같이 남편들도 자기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같이 할지니(에베소서 5장 24-28절).

 그리스도의 은혜, 오직 이것만이 이 제도를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대로 인류의 축복과 향상을 위한 제도가 되게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이 세상의 가정들은 연합과 화평과 사랑을 통해 하늘의 가정을 대표할 수 있다.

 그리스도 당시와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사회의 형편을 보면 이 거룩한 관계에 대한 하늘의 이상이 제대로 펼쳐지지 못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우정과 기쁨을 바라던 곳에서 고통과 실망을 발견한 자에게도 그리스도의 복음은 위로를 준다. 그분의 영께서 나누어 주실 수 있는 인내와 온유는 비참한 운명을 호전시켜 줄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거하는 마음은 그분의 사랑으로 충만해지고 만족을 느끼기 때문에, 남의 동정과 배려를 바라는 욕망이 사라질 것이다. 또, 하나님께 마음을 굴복시킴으로써 인간의 지혜로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의 지혜가 이루어 주실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의 계시를 통하여, 한때 냉랭하고 벌어졌던 마음들이 세상의 줄보다 더 튼튼하고 오래 견디는 줄, 곧 고난의 시험을 견디어 낼 사랑의 황금 줄로 연합될 수 있을 것이다.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마태복음 5장 34절).

 이 명령이 주어진 이유는 다음과 같다. 하늘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 임이요 땅으로도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네 머리로도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모든 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온다. 우리가 하나님에게서 받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없다. 더욱이 그리스도의 피로 사지 않은 것은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 우리가 소유한 모든 것이 십자가의 인이 찍힌 채, 그리고 헤아릴 수 없이 귀한 피의 대가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은 그 피가 하나님의 생명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말을 실현시키기 위하여 마치 무슨 권리를 가진 것처럼 맹세할 수 없다.

 유대인들은 셋째 계명을 하나님의 이름을 불경스럽게 사용하는 것을 금하는 계명으로 이해했다. 그러나 다른 맹세들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들에게는 맹세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그들은 모세를 통하여 거짓 맹세를 하지 말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러나 맹세로 인한 책임을 면하기 위하여 많은 계책을 고안해 냈다. 그들은 불경한 일에 빠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은 것은 물론, 법률을 기술적으로 피하여 어떻게든 감출 수만 있으면 거짓 맹세 또한 피하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행동을 정죄하시고, 맹세하는 그들의 습관이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는 일이라고 주장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구주께서는, 말하는 것이 진실이며 오직 진실만을 이야기한다는 것을 증거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엄숙하게 부르는 법정에서의 선서는 금하지 않으셨다. 예수님 자신이 산헤드린 회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 맹세하고 증언하기를 거절하지 않으셨다. 대제사장이 내가 너로 살아 계신 하나님께 맹세하게 하노니 네가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인지 우리에게 말하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는 네가 말하였느니라(마태복음 26장 63, 64절)고 대답하셨다. 만일, 그리스도께서 산상 설교에서 법정에서의 선서를 정죄하셨더라면, 재판을 받으실 때 대제사장을 책망하시고, 당신을 따르는 자들의 유익을 위하여 그분 자신의 교훈을 강조하셨을 것이다.

 아무 두려움도 없이 동료 인간들을 속이는 사람들이 무척 많다. 그러나 이러한 그들도 창조주께 거짓말 하는 것이 무서운 일이라는 것을 배우기도 하지만 또 하나님의 영을 통해 늘 깨우침을 받고 있다. 선서할 때, 그들은 단순히 사람 앞에서 증언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앞에서 한다는 것과 또 거짓 증언을 하게 되면 마음을 읽으시고 정확한 사실을 아시는 그분께 하는 것임을 느끼게 된다. 이 죄에 따르는 두려운 심판을 알기에, 그들은 무서워 자제한다.

 맹세를 하고 일관성 있게 증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는 언제나 하나님 앞에 있는 것처럼 생활하며, 우리를 상관하시는 분의 눈 앞에 모든 생각이 공개되어 있다는 것을 안다. 그러므로 정한 방법으로 선서하라는 요구를 받게 될 때, 말하는 것이 진실하고 오직 진리만을 이야기 한다는 것을 증거해 달라고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은 그에게 있어서 정당한 일이다.

 예수께서는 맹세하는 것이 필요치 않다는 원칙을 세우기 위하여 계속 노력하셨다. 그분은 정확한 진실이 말의 법칙이 되어야 한다고 가르치신다.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느니라.

 이 말씀은 하나님의 이름을 거의 망령되이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는 모든 의미 없는 빈말과 어귀들을 정죄한다. 이것은 사교계와 사업계에서 유행하는 가식적인 인사, 진실을 떠난 속임, 아첨하는 말, 과장, 상업상의 속임수 등을 정죄한다. 이것은 또 자신의 본 모습이 아닌 것을 나타내고자 애쓰고, 감정을 있는 그대로 나타내는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은 누구든지 진실하다고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가르친다.

 그리스도의 이 말씀에 유의하면 악한 추측과 불친절한 비평의 말이 다 점검될 것이다. 타인의 행동과 동기를 비평할 때, 그 누가 정확한 진실만을 이야기할 수 있겠는가? 자만과 감정과 개인적 원한 때문에 얼마나 자주 다른 인상을 받게 되는가! 한 번의 눈짓, 한 마디의 말은 물론 음성의 억양까지도 거짓의 결정적인 방조자가 될 수 있다. 사실이 잘못 진술되어 본의 아닌 인상을 줄 수도 있다. 그러므로 참된 것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 좇아 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이 하는 모든 것은 햇빛과 같이 투명해야 한다. 진리는 하나님께 속한 것이나, 무수한 형태를 가진 악은 모두 사단에게 속한 것이다. 따라서, 진리의 바른 노선에서 어떤 방법으로든지 떠나는 사람은 누구나 자신을 악한 자의 권세 아래 내어 맡기는 것이다. 그렇다고 정확한 진실을 말하는 것이 쉽거나 용이한 일은 아니다. 진실을 알기 전에는 진실을 말 할 수 없다. 선입 관념과 편견, 불완전한 지식과 오판으로 얼마나 자주 우리와 상관된 문제들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가! 우리의 마음이 진리이신 분의 인도를 끊임없이 받지 않는 한 진리를 말 할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는 사도 바울을 통하여 우리에게 이렇게 명령하신다. 너희 말은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고루게 함같이 하라(골로새서 4장 6절).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 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에베소서 4장 29절). 이 성경 말씀에 비추어 보면, 산상에서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이 농담, 실없는 소리, 상스러운 대화 등을 정죄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말씀은 우리의 말이 진실할 뿐만 아니라 순결하기를 요구한다.

 그리스도를 배운 사람들은 열매 없는 어두움의 일에 참예하지 말(에베소서 5장 11절) 것이다. 그들은 생활에서와 마찬가지로 말에 있어서도 단순하고 정직하고 참되어야 한다. 왜냐하면 그 입에 거짓말이 없(요한계시록 14장 5절)는 거룩한 자들과의 교제를 준비하고 있기 때문이다.

 악한 자를 대적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 (마태복음 5:39).

 유대인들은 로마 군인들과 접촉함으로써 수시로 울화통이 터지는 일을 경험했다. 로마 군의 부대가 유대와 갈릴리의 여러 지역에 주둔해 있었는데, 이들의 존재는 유대인들로 하여금 한 국가로써의 자신들의 패망을 생각하게 했다. 그들은 비통한 마음으로, 나팔을 크게 부는 소리를 듣고, 군인들이 로마의 국기 주위에 도열한 채 그들 국권의 상징에 경례를 하며 경의를 표하는 것을 보았다. 백성들과 군인들 간에 충돌이 빈번하였으며, 이 일은 일반의 증오심을 격발시켰다. 로마 관리가 호위병들과 함께 급히 이동할 일이 있을 때는 흔히, 들에서 일하는 유대의 농부들을 붙들어다가 짐을 지워 산을 넘게 하거나 필요한 다른 어떤 봉사를 하도록 강요하였다. 이것은 로마의 법률과 관습에 따라 하는 일이었으므로, 그런 요구에 반항하는 것은 모욕과 학대를 초래할 뿐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로마의 멍에를 벗어 버리고자 하는 열망이 날이 갈수록 더 깊어 갔다. 대담하고 난폭한 갈릴리 사람들은 반항 정신이 특히 강했다. 국경 도시인 가버나움은 로마 수비대의 주둔지였다. 예수께서 가르치고 계시는 동안에도, 일단의 군인들을 본 청중들은 이스라엘의 굴욕을 생각하여 씁쓸해 했다. 사람들은 그리스도가 로마의 교만을 꺾어 주실 분이기를 바라면서 그분을 열심히 주목하였다.

 예수께서는 슬픈 마음으로, 앞에서 빤히 쳐다보고 있는 얼굴들을 살펴보신다. 그들의 얼굴에 찍혀 있는 복수의 정신을 주목하시며, 그들이 그들을 탄압하는 자들을 타도할 능력이 나타나기를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는지 알아차리신다. 그분은 슬픔에 잠긴 음성으로 그들을 향해, 악한 사람을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라고 명령하신다.

 이 말씀은 구약 성경의 교훈을 반복한 데 불과한 것이었다.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을지라(레위기 24장 20절)는 말이 모세를 통하여 주어진 율법의 한 조목이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하나의 국가적 법령이었다. 어떤 사람도 복수하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었다. 왜냐하면 다음과 같은 주님의 말씀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너는 악을 갚겠다 말하지 말고(잠언 20장 22절), 그가 내게 행함 같이 나도 그에게 행하여 그 행한 대로 갚겠다 말하지 말지니라(잠언 24장 29절). 네 원수가 넘어질 때에 즐거워하지 말며(잠언 24장 17절), 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식물을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우라(잠언 25장 21절).

 예수님의 지상 생애는 전부가 이 원칙을 나타내는 생애였다. 우리 구주께서 하늘의 집을 떠나신 것은 원수들에게 생명의 양식을 가져다 주시기 위함이었다. 그분께서는 비록 요람에서부터 무덤에 이르기까지 중상과 핍박을 쌓일 정도로 많이 받으셨지만 그 때마다 용서와 사랑만을 나타내셨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하였느니라(이사야 50장 6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같이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이사야 53장 7절). 당신을 죽게 한 자들을 위한 기도와, 죽어 가는 도둑에게 전한 소망의 기별은 갈바리의 십자가를 통해 각 시대로 전달되고 있다.

 아버지의 임재가 그리스도를 두르고 있었으므로, 무한한 사랑이 세상의 축복을 위하여 허락하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분께 닥치지 않았다. 여기에 그분의 위로의 근원이 있었으며, 이것은 우리를 위한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으로 감동되는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 거하게 된다. 이 사람을 겨냥한 강타는, 그를 당신의 임재로 두르고 있는 구주께로 떨어지게 된다. 그에게 닥치는 것은 무엇이나 그리스도를 통하여 오게 된다. 그리스도께서 그의 방벽이 되시므로, 그는 악을 대항할 필요가 없다. 주께서 허락하시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그를 건드릴 것이 없다. 그리고 주께서 허락하시는 것은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로마서 8장 28절)게 된다.

4부 - 계명의 목적을 이루신 예수님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마태복음 5장 17절).

 시내산의 우레와 불꽃 가운데서 율법을 선포하신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이셨다. 하나님의 영광이 삼키는 불과 같이 산꼭대기에 머물고, 주님의 임재에 산이 진동했다. 많은 이스라엘 백성이 땅 위에 엎드린 채 두려운 마음으로 율법의 거룩한 교훈을 들었다. 축복의 산에서 있었던 장면과 얼마나 대조적인가! 오직 새들의 노래만이 적막을 깨뜨리는 여름의 하늘 아래서 예수께서는 당신의 나라의 원칙을 설명하셨다. 그러나 이 날에 사랑의 음성으로 사람들에게 말씀하시는 분께서는 시내산에서 선포된 율법의 바로 그 원칙을 설명하고 계셨던 것이다. 율법이 주어졌을 때, 애굽에서의 오랜 속박 때문에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능력과 위엄으로 감명을 받을 필요가 있었다. 그런데 이제 그분께서 자신을 그들에게 사랑의 하나님으로 계시하고 계셨던 것이다.

 여호와께서 시내에서 오시고 세일 산에서 일어나시고 바란 산에서 비취시고 일만 성도 가운데서 강림하셨고 그 오른손에는 불 같은 율법이 있도다 여호와께서 백성을 사랑 하시나니 모든 성도가 그 수중에 있으며 주의 발 아래에 앉아서 주의 말씀을 받는 도다 (신명기 33장 2, 3절).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의 귀중한 유산으로 간직되어 온 이 놀라운 말씀을 통하여 당신의 영광을 모세에게 나타내셨다. 여호와로라 여호와로라 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 하나님이로라 인자를 천 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하나니(출애굽기 34장 6, 7절). 시내산에서 주어진 율법은 사랑의 원칙을 반포한 것, 즉 하늘의 율법을 땅에 계시한 것이었다. 그 율법은 중보자의 손으로 제정되고, 사람의 마음을 그 율법의 원칙과 조화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신 분에 의해 선포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너희는 내게 거룩한 사람이 될지니(출애굽기 22장 31절)라고 말씀하시면서 율법의 목적을 드러내셨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율법의 신성한 특성을 깨닫지 못하였으며, 너무도 자주, 그들이 공언한 순종은 사랑의 통치에 마음을 복종시켰다기보다는 형식과 의식을 따르는 것에 불과했다. 예수께서 당신의 품성과 사업을 통하여 하나님의 거룩하고 자비롭고 은혜로운 속성을 나타내시고 단순한 의식적 순종의 무가치함을 드러내셨을 때, 유대의 지도자들은 그분의 말씀을 받아들이지도 않고 이해하지도 않았다. 그들은 예수께서 율법의 요구를 너무 경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였다. 이리하여 그분이 하나님께서 지정해 주신 그들의 봉사의 중심이 되는 진리를 제시하셨을 때, 그들은 다만 외적인 것만 보고 그분께서 율법을 파괴하고자 한다고 비난했다.

 그리스도께서는 비록 조용히 말씀하셨으나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열성과 능력으로 말씀하셨다. 그들은 랍비들의 생명 없는 유전과 부당한 요구의 되풀이려니 하고 들었으나 그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마태복음 7장 29절)에 놀랐다.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교수 방법과 그리스도의 그것에 큰 차이가 있음을 알았다. 그들은 진리의 위엄과 순결과 미가 그 오묘하고 부드러운 감화력을 가지고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굳게 붙들고 있는 것을 보았다. 구주의 거룩한 사랑과 친절이 사람들의 마음을 그분께로 이끌었다. 랍비들은 그분의 가르치심 때문에 그들이 사람들에게 가르친 모든 교훈의 취지가 무시되어 버린 것을 깨달았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교만과 배타주의를 크게 만족시켜 온 분리의 벽을 무너뜨리고 계셨다. 그들은 만일 그냥 놓아 두기만 하면 그분께서 사람들을 그들에게서 완전히 끌어 갈 것이라고 두려워하였다. 그리하여 단호한 적의를 품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며, 어떻게 하면 무리에게서 그분의 인기를 떨어뜨리고 산헤드린 회로 하여금 그분을 정죄하여 죽이도록 할까 하고 기회를 엿보았다.

 산 위에서, 예수께서는 정탐꾼들에게 면밀한 감시를 받으셨다. 그분께서 의의 원칙들을 밝히실 때, 바리새인들은 그분의 가르치심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주신 계명과 반대된다고 서로 속삭였다. 구주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신앙과 제도에 대한 믿음을 동요케 할 말씀은 전혀 안 하셨다. 왜냐하면 이스라엘의 위대한 지도자인 그가 백성들에게 전달해 준 거룩한 빛의 모든 광선이 그리스도에게서 받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께서 율법을 폐하러 오셨다고 마음속으로 말하지만, 그분께서는 명백한 말씀으로 거룩한 계명에 대한 당신의 태도를 표명하신다. 그분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마태복음 5장 17절)고 말씀하셨다.

 계명을 폐하는 것이 당신의 목적이 아니라고 선언하시는 분은 인류의 창조주이시며 율법의 시여자이시다. 천연계 속에 있는 모든 것, 곧 광선에 비치는 티끌로부터 하늘에 있는 세계들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이 다 법칙 아래 있다. 천연계의 질서와 조화는 이 법칙을 순종하는 데 달렸다. 그러므로 지성적 존재의 생애를 주관하는 의의 큰 원칙이 있으며, 우주의 안녕은 이 원칙에 조화를 이루는 데 달렸다. 이 지구가 창조되기 전에, 하나님의 율법이 존재하였다. 천사들이 이 율법의 원칙에 의하여 지배를 받기 때문에, 세상이 하늘과 조화되기 위하여서는 사람도 하늘의 법에 순종해야 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새벽 별들이 함께 노래하며 하나님의 아들들이 다 기쁘게 소리(욥기 38장 7절)할 때, 에덴동산에 있는 사람에게 율법의 교훈을 알려 주셨다. 지상에서의 그리스도의 사명은 율법을 폐하는 것이 아니고 당신의 은혜로 사람들을 돌이켜 율법의 교훈을 따르게 하는 것이었다.

 산 위에서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오랜 후에 성령의 감동으로 영감의 기록을 남긴 사랑의 제자는 율법에 대해 이야기하기를 마치 항구적인 의무에 대해 하듯 한다. 그는 죄를 짓는 자마다 불법을 행하나니 죄는 불법이라(요한일서 3장 4절)고 말한다. 그는 자신이 말한 율법이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요한일서 2장 7절)이라고 분명히 밝힌다. 그는 창조 때에도 있었고 시내산에서 다시 언급된 율법에 관해서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율법에 대해 언급하시면서 내가 율법을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고 말씀하셨다. 그분께서는 여기서 완전케 한다 는 말을, 침례 요한에게 모든 의를 이루기(마태복음 3장 15절) 위한 당신의 목적을 선언하실 때와 동일한 의미로 사용하셨는데, 그것은 율법이 요구하는 표준을 이루고 하나님의 뜻에 완전히 일치하는 본을 보이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의 사명은 교훈을 크게 하며 존귀케 하(이사야 42장 21절)는 것이었다. 율법의 거룩한 특성을 보여 주고, 그 광범위한 영향력을 제시하며, 그 영원한 의무를 명확히 밝혀 주셔야 했다.

 그리스도의 품성의 신성미를 두고 이야기하자면, 가장 고상하고 온유한 사람도 그분을 희미하게 반사할 뿐이다. 솔로몬은 성령의 감동을 받아 만 사람에 뛰어 난다 & 그 전체가 사랑스럽구나(아가 5장 10-16절)라는 말로 그분에 관하여 기록하였다. 예언적 안목으로 그분을 바라본 다윗은 그분에 대해 왕은 인생보다 아름답다(시편 45편 2절)고 말하였다. 아버지의 본체의 분명한 형상이시며, 아버지의 영광의 광채이시요 극기의 구속주이신 예수님은 지상에서 사랑의 순례자로 지내시는 동안 하나님의 율법의 성격을 생생하게 나타내셨다. 그리스도의 생애를 통해, 하늘에서 난 사랑, 곧 그리스도 같은 원칙이 영원히 공정한 율법의 기초가 되고 있다는 사실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예수께서는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고 말씀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스스로 율법에 순종 하심으로써 변경할 수 없는 율법의 성격을 증거하시고, 아담의 모든 자손이 당신의 은혜를 통하여 율법을 완전히 순종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셨다. 산 위에서 그분은 모든 것, 즉 인류와 관계되는 모든 것, 구원의 계획과 관련되는 모든 것이 성취되기 전에는 율법의 가장 작은 일획도 폐하지 않으리라고 언명하셨다. 그분께서는 율법이 결코 폐지될 수 없다고 가르치시며, 또 우리의 시계를 최대로 넓혀 그 끝을 바라보게 하시고, 그 끝에 이르기 전에는 율법이 그 권위를 계속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확인하심으로써 아무도 율법을 폐지하는 것을 예수님의 사명이라고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신다. 천지가 존속하는 한, 하나님의 율법의 거룩한 원칙도 남아 있을 것이다. 그분의 의는 계속 축복의 근원으로서 대지에 생기를 주는 시냇물을 흘려 보낼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은 변경이 필요 없을 만큼 완전하므로, 죄악적인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 율법이 요구하는 표준에 도달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예수께서 구속주로 오신 이유였다. 예수님의 사명은 사람들을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로 만들어 하늘의 율법의 원칙과 조화되게 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죄를 버리고 그리스도를 우리의 구주로 받아들일 때, 율법은 높여진다. 사도 바울은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폐하느뇨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로마서 3장 31절)고 말한다.

 새 언약의 약속은 내 법을 저희 마음에 두고 저희 생각에 기록하리라(히브리서 10장 16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죽음으로 그분을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가리킨 표상적 제도는 폐지되었으나, 십계명을 통해 구체적으로 표현된 의의 원칙은 영원한 보좌와 마찬가지로 변치 않는다. 율법의 한 조목도 폐지되지 않고, 일점 일획도 변경되지 않았다. 에덴동산에서 생애의 큰 법칙으로 인류에게 알려진 그 원칙들은 회복된 낙원에서도 변치 않고 존재할 것이다. 에덴동산이 다시 지상에서 꽃 필 때, 태양 아래 있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사랑의 율법을 순종하게 될 것이다. 

  여호와여 주의 말씀이 영원히 하늘에 굳게 섰사오며(시편119편 89절), 그 법도는 다 확실하니 영원 무궁히 정하신 바요 진실과 정의로 행하신 바로다(시편 111편 7, 8절),
 내가 전부터 주의 증거를 궁구하므로 주께서 영원히 세우신 것인 줄을 알았나이다(시편 119편 152절).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마태복음 5장 19절).

 말하자면, 이러한 사람은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 그것은 한 계명이라도 고의적으로 범하는 자는 다른 계명도 신령과 진정으로 지키지 않기 때문이다. 누구든지 온 율법을 지키다가 그 하나에 거치면 모두 범한 자가 되나니(야고보서 2장 10절).

 죄를 이루는 것은 큰 불순종의 행위가 아니고 지극히 작은 것에서 하나님이 나타낸 뜻과 충돌을 빚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은 사람이 아직 죄와 교통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기 때문이다. 마음은 섬기는 바에 따라 나누어진다. 거기에는 사실상 하나님을 부인하는 일 곧 하늘 정부의 율법을 반역하는 일이 있다.

 만일, 사람들이 하나님의 요구에서 떠나 스스로 의무의 표준을 세울 것 같으면, 각 사람의 마음에 따라 여러 가지 표준이 있게 되고, 주권도 주님의 손에서 빼앗게 될 것이다. 사람들의 뜻이 최고의 것으로 여겨지고, 높고 거룩한 하나님의 뜻, 곧 피조물을 사랑하시는 그분의 목적은 업신여김을 받고 무시될 것이다.

 사람들이 자기 스스로의 길을 택할 때에는 언제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위치에 이르게 된다. 그들은 하늘나라에서 있을 자리를 얻지 못할 것인데, 그것은 스스로 하늘의 원칙에 대항하여 싸우고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뜻을 무시함으로써, 그들은 하나님과 사람의 원수인 사단의 편에 가담하고 있다. 사람은 하나님의 한 말씀이나 여러 말씀으로 살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우리는 아무리 하찮게 보이는 말씀 하나라도 무시하면 안전할 수 없다. 율법 가운데서 이생과 내세에서 다 같이 사람의 유익과 행복을 위하지 않는 계명은 하나도 없다. 사람은 하나님의 율법을 순종함으로써 울타리에 둘려 있는 것처럼 악에서 보호를 받게 된다. 하나님께서 구축해 놓으신 이 방호벽을 한 곳이라도 무너뜨리는 자는 그를 보호해 주는 그 능력을 파괴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원수가 들어와서 황폐케 하고 멸망시킬 길을 열어 놓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조상은 한 가지 점에서 감히 하나님의 뜻을 무시함으로써 이 세상에 재난의 수문을 열어 놓았다. 그러므로 그들의 본을 따르는 사람은 하나같이 유사한 결과를 거두게 될 것이다. 하나님의 율법의 각 교훈은 그분의 사랑이 기초가 되어 있기 때문에, 계명을 떠나는 자는 불행과 멸망을 자초하게 된다.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마태복음 5장 20절).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그분의 제자들까지도 랍비의 의식과 관례를 무시했다는 이유를 들어 죄인으로 몰았다. 때때로, 제자들은 그들이 종교 지도자로 존경해 온 자들에게서 비난과 공격을 받음으로 난처해지고 곤란해졌다. 예수님은 그러한 기만의 정체를 폭로하셨다. 그분은 바리새인들이 매우 가치 있게 여기는 의를 무가치한 것으로 선언하셨다. 유대인들은 스스로 하나님의 은총을 받은 특별하고 충성된 백성이라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는 그들의 종교를, 구원하는 믿음이 없는 것으로 나타내셨다. 그들의 가장된 경건, 인위적 고안과 의식, 심지어 그들이 자랑하는 율법의 외형적 준수까지도 그들을 거룩하게 할 수 없었다. 그들은 마음이 순결하지 못하고 품성이 고상하지도, 그리스도와 같지도 않았다.

 율법주의적 종교는 사람을 하나님과 조화되게 하지 못한다. 바리새인의 까다롭고 완고한 정통, 즉 회개와 온유와 사랑의 결핍은 죄인들을 넘어지게 하는 장애물에 불과했다. 그들은 맛을 잃은 소금과 같았다. 그들의 감화는 이 세상을 부패에서 방지하는 아무런 힘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일한 참 믿음은 심령을 정결케 하는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갈라디아서 5장 6절)이다. 그것은 품성을 변화시키는 누룩과 같은 것이다.

 유대인들은 이 모든 것을 선지자들의 교훈에서 배웠어야 했다. 하나님 앞에서 의로워 지고자 하는 심령의 절규와 이에 대한 답이 여러 세기 전에 선지자 미가에 의해 기록되었다. 내가 무엇을 가지고 여호와 앞에 나아가며 높으신 하나님께 경배할까 내가 번제물 일년 된 송아지를 가지고 그 앞에 나아갈까 여호와께서 천천의 수양이나 만만의 강수 같은 기름을 기뻐하실까 & 사람아 주께서 선한 것이 무엇임을 네게 보이셨나니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이 오직 공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장 6-8절).

 선지자 호세아는 이스라엘은 열매 맺는 무성한 포도나무라(호세아 10장 1절)는 말로 바리새인의 본질이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지적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섬기노라고 공언하면서도 실제로는 자신을 위해 일하고 있었다. 그들의 의는 스스로의 사상에 따라 사리 사욕을 차리기 위해 율법을 지키려는 자신의 노력에 대한 열매였다. 그러므로 그 의는 그들 자신보다 더 나을 수 없었다. 스스로 거룩하게 되고자, 그들은 깨끗한 것을 더러운 것 가운데서 끌어내려고 애썼다. 하나님의 율법은 그분께서 거룩하신 것처럼 거룩하며, 그분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완전하다. 그것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나타낸다. 사람의 본성은 타락하고 훼손되어 하나님의 품성과 전혀 같지 않으므로, 사람 스스로는 이 율법을 지킬 수 없다. 이기적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다 부정한 것 같고,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이사야 64장 6절)은 것이다.

 율법이 거룩한 것은 분명하나, 유대인들은 스스로 이를 지키는 것으로써 의를 얻을 수 없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천국에 들어가려면 바리새인의 의와는 다른 성격의 의를 얻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통하여 그들에게 완전한 율법의 마음의 문을 활짝 열면, 바로 하나님의 생명, 그분의 사랑이 그들 안에 거하여 하나님의 형상으로 변화됨과 동시에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을 통하여 율법이 요구하는 의도 얻게 될 것이다. 그러나 바리새인들은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를 복종치 아니(로마서 10장 3절)함으로써 그분의 의를 받아들이려고 하지 않았다.

 예수께서는 청중들에게,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곧 자신들 속에서 그리스도의 품성을 재현하는 것임을 계속해서 가르치셨다. 그것은 그분을 통해 하나님이 매일 그들에게 나타나셨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