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에 언급된 안식일 문제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거짓의 아비"인 사단이 우리의 첫 모친 하와에게 "네가 신들과 같이 되어 선과 악을 알게 되리라."는 말로 호기심을 자극하여 그녀를 유혹하였다. 하와처럼 그녀의 후손들도 유혹하는 사단의 의도를 시험에 쓰러진 후에 깨닫는다. 본 논설이 다루는 안식일 문제도 사단의 통상적 술책에 비추어 볼 때 예외적 상황이 아니다.

 

지난 3세기 동안 불만과 야심으로 가득 찬 다수의 크리스천들에게 사단은 하나의 "새로운 출발"이 성공할 수 있다는 찬란한 가능성을 그럴 듯하게 제시해 주었다. 사단의 제시는 하나님의 아들이 친히 세우신 교회를 스승으로 모시기를 포기하고 오직 성경만을 그들의 새로운 스승으로 받아들이게 만들려는 유혹이었다.

 

영민한 악마는 이 계략의 찬란한 성공을 예측했다. 실제로 그 결과는 그의 교활한 기대를 충족시키고도 남음이 있었다.

 

그 모험에 앞장서기 위해 필요한 것은 담대하고 모험적인 정신 하나면 충분했다. 악마의 왕은 배도한 수도사 루터를 보는 순간 당장 알아보았다. 루터는 자기의 입으로 자기와 자기의 주인이 얼마나 서로 비슷한가를 그의 "탁상 담화"와 1558년 비텐베르크에서 멜란히톤의 감수 아래 출판된 그의 저서에서 밝히고 있다. 에덴동산에서 뱀이 베푼 그 능수능란한 과업을 루터는 기독교계에서 성취한 것이었다.

 

루터가 천주교회를 공격할 때 악마가 그에게 제시한 최종 목표는 기독교적 정신의 파괴였다. 이제 우리는 그가 그 일에 성공하도록 하기 위해 사용했던 수단들을 하나하나 알아볼 수 있게 되었다. 지금까지 그것들은 잘못된 것이요, 자가당착이요, 허망한 것이었다. 그러면 그의 협잡에 대한 조사를 더 진행해 보자.

 

앞에서 이미 입증한 것처럼 사복음서에 51번이나 언급된 안식일에 대한 기록을 살펴볼 때, 구세주께서는 그의 지상 생애 동안 단 한 번도 충실한 안식일(토요일) 준수를 이탈하신 일이 없고, 비록 자신을 "안식일의 주인"으로 명명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결코 한 번도 그의 명령이나 행위로 그날을 다른 날로 대치할 생각을 암시하신 적이 없었다. 또한 성 누가가 우리에게 분명히 말해 주는 것처럼(눅 24:1) 주께서 죽으시던 날 저녁 사도들과 여신도들은 주의 시신에 바를 향품과 향유를 사전에 준비했다가 안식일(토요일)이 지난 후에 사용하려고 했다. 이 사실은 혹시 하나님의 아들이 지상 생애 중 안식일 준수에 허점이라도 있지 않았나 하는 의혹을 배제한다. 성 누가가 증명하는 것처럼, 주께서 돌아가신 후 사도들의 행적이 그것을 말해 주거니와 독자가 사도행전에서 분명히 읽을 수 있는 것처럼, 그 후 30년 동안이나 이 점에 있어 그들이 주님의 본을 조금도 벗어나지 않고 안식일(토요일)을 지켰다는 것은 논란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다. 사도행전 18장 4절을 보라. "그(바울)는 안식일마다 회당에서 강론하며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을 설득했다."

 

이방인 개심자들도 우리가 본문에서 보는 것처럼 똑같이 안식일을 지키도록 가르침을 받았다. "유대인들과 헬라인들"이란 말이 지적하는 것처럼 그들도 유대인들과 함께 그날 집회에 참석하여 그리스도교로 개종했던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 이후 일요일이 최초로 언급된 것은 누가복음 24장 33~40절과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이다. 이 두 본문은 사도들이 그날 모였던 유일한 동기를 말해준다. 그날은 주께서 부활하신 날(부활절)이었는데, 그 모임은 옛 안식일(토요일)을 버리고 새 날을 "거룩히" 지키기 위한 "새 출발"을 기념하려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위에 말한 요한복음에서 우리가 분명히 읽는 것처럼, 그것은 기도나 권면이나 성경 낭독도 없이, 완전히 용기를 잃고 허탈해진 사도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예루살렘의 그 방에 모여 있었을 뿐이다.

 

일요일에 관한 두 번째 언급은 요한복음 20장 26절부터 29절까지에서 발견된다. "그리고 8일 후 제자들이 다시 집안에 있을 때는 도마도 함께 있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이날 모든 제자들이 모인 자리에 나타나셔서, 부활하신 날 저녁 모임에 참석하지 못했던 도마의 의심을 해결해 주셨다. 만일 예수께서 안식일을 변경하실 생각을 가지고 계셨다면 제자들이 다 한 자리에 모인 이때야말로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기회였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을 간단히 말하자면 이 모임에서도 부활하신 날 저녁과 마찬가지로 예배의 특징인 기도, 찬양, 또는 성경 낭독 같은 것이 전혀 없었다.

 

사도들이 일요일에 모였던 세 번째 기록은 사도행전 2장 1절에서 발견된다. "오순절이 이미 이르매 저희가 다 같이 한 곳에 모였더니…"(그날은 마침 일요일이었다.) 자, 그러면 이 본문이 우리의 성서적 그리스도인 형제들에게 드디어 토요일이 일요일로 대치되었음을 말해주는 희망적 증거가 되어 줄 것인가?

 

비록 유대인들이 이 오순절(일요일, 오순절이 항상 일요일이 되는 것은 아님.)을 1500년 동안이나 지켜 왔고, 또 기독교 시대가 시작된 후에도 18세기 동안이나 매주 지키는 안식일과 함께 지켜 왔음을 우리가 알려 줄지라도 이 본문을 가지고는 아무런 위로도 안심도 얻지 못할 것이다. 오순절은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1) 그 기간을 일곱 이레 즉 이레씩 일곱 번을 셈한 후 그것이 끝나는 다음날이 축제 기간 중 가장 큰 명절로서 그것이 일요일이 되곤 했다(2). 이스라엘 사람치고 자기 민족이 3000년 동안이나 지켜 온 명절에서 주일 중 첫째 날을 지키는 관습의 근원을 찾으려는 사람을 볼 때 가련하게 보지 않을 사람이 있을까? 그리스도와 그의 사도들이 항상 지킨 안식일을 모독해 놓고 핑계할 말이 궁해진 개신교도들이 아니라면 누가 감히 하나님을 배신하고 자기의 스승인 성경을 외면하는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서 유대인들의 오순절에 호소하려 할 것인가?

 

다시 말하거니와 날이 바뀌었다는 변론을 내세우는 성경 해석자들은 흔히 사도행전 20장 7절을 제시한다. "주일 중 첫날에 제자들이 떡을 떼기 위해 모였을 때…" 운운하는 이 성구는 언뜻 보기에는 우리의 개신교 친구들에게 약간 위로가 될 듯이 보이긴 하지만, “떡을 떼는” 일은 주일 중에 어떤 날이나 할 수 있는 행사이다. "지나친 증언은 아무것도 증명하지 못한다."는 격언으로 성서적 일요일 성수론자들의 주장에 대한 대답을 대신하는 바이다.

 

그러면 사도행전 2장 46절을 한번 살펴보자.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계속하여 이 집 저 집에서 떡을 떼고 음식을 먹었다." 이 본문을 보는 순간, 일요일 성수론을 지지하기 위해 내놓은 구절(3)이 갑자기 무력해지는 것을 느끼지 못할 사람이 있을까? 그 구절을 방금 본 성경 절과 나란히 놓고 대조해 보고도 그것을 느끼 지 못하면 바보가 아닐까? 개신교회 신도들은 이 구절을 오직 일요일에만 적용하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그들은 날마다 성전에 모이기를 계속하여 이 집 저 집에서 떡을 떼고 음식을 먹었다."는 성 누가의 말은 그러한 일이 주일 중 어느 날에도 똑같이 진행되었음을 말해준다.

 

토요일이 일요일로 대치되었음을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본문이 또 하나 있다. 고린도전서 16장 1, 2절에 기록된 성 바울의 말씀이다. "그리고 성도들을 위한 연보에 관하여는…주일 중 첫째 날에 너희 각 사람이 따로 집에 모아 두었다가…" 하는 부분이다. 우선 성 바울의 이 요청을 신도들이 잘 따라 주었다고 가정하고, 구세주께서 지상에 계시는 동안 토요일마다 무슨 일을 하셨고, 또 그 후 30년 동안 그것이 어떻게 지속되었는지를 사도행전에서 찾아보도록 하자.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안식일마다"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즉 "안식일마다" 성경 말씀이 낭독되었다. "그리고 바울은 안식일마다 강론하던 그의 관습대로, 주 예수의 이름으로 강론했다." (행 18:4). 이미 확증된 것과 같이 토요일마다 의례적으로 성경 낭독, 기도, 권면 및 설교하는 일이 있었는데, 그것은 다 어찌 되고 돌연 그 대신 주중의 다른 날 연보 거두는 일이 등장했다는 말인가? 이보다 더 엉뚱한 추리가 있을 수 있을까?

 

지금 숙고하는 이 본문의 가치를 충분히 알기 위해서는 사도들과 여신도들이 수난 금요일 해지기 전에 한 행동을 생각해 보아야 한다. 그들이 향품과 향유를 구입한 것은 시간적으로 주님이 십자가에서 내려진 다음이었다. 그들은 모든 행동을 중지하고 "여호와 앞에 거룩한" 안식일이 다 지나기까지 기다렸다가 일요일 아침에 비로소 예수의 거룩한 시신에 향유를 발라 장례 절차를 마치기 위해 묘실로 찾아갔다.

 

우리는 이것을 묻고 싶다. 왜 그들은 시체 손질을 토요일에 하지 않았는가?

 

주님의 거룩한 시신에 향품을 넣는 일도 중요했지만 엄격히 말해서 그것은 안식일 준수에 위배되는 일이었다. 안식일 준수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므로 우리가 본문에서 본 일요일 바로 전 날인 안식일이 준수되지 않았다는 것이 입증될 때까지는 -안식일은 매주 반드시 성수되었으므로 그럴 리는 없다.- 일요일마다 연보를 모아 두라고 한 성 바울의 요청은, 그리스도의 시신 손질이 그랬던 것처럼, 안식일에는 할 수 없는 일이었기에 결국 편의상 그 다음날로, 그러니까 일요일, 즉 주일 중 첫째 날로 미루어진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는 신약에 언급된 안식일(토요일)과 주일 중 첫째 날(일요일)에 관한 본문을 모두 살펴본 결과 현재까지는 토요일이 일요일로 대치된 것을 입증할 만한 어렴풋한 근거도 성경에서 찾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그러므로 이제 한 가지 남은 것은 신약에서 발견되는 "주의 날" 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날" 등의 의미를 조사해 보는 일일 것이다. 이 문제를 우리는 다음 번 기사를 통해 계속 다루고, 어떤 신앙 체계는 앞뒤가 맞지 않아 변호 불능, 자가당착, 그리고 자살적임을 지적한 후 결론을 맺으려 한다.

 

 

 

(1) 이것은 정확하지 않은 말이다. 흔히 유월절 이후 50일째 되는 날이 오순절이라고 말하나, 성경에 의하면 유월절은 유다 성력으로 정월 14일이고, 다음날 저녁은 무교절이고, 그 다음날이 새로 추수한 곡식 단을 흔드는 요제절이다. (레위기 23:5, 6, 11) 정확히 말해서 오순절은 이 요제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이었다. (레위기 23:15, 16) - 편집자

 

(2) 오순절이 "반드시 일요일이 되곤 했다."는 것은 사실과 다르다. 위의 각주에서 설명한 것처럼 오순절은 유월절 다음다음 날부터 세어서 50일째 되는 날이었고, 유월절은 "요일"과는 상관없이 항상 유다 성력으로 정월 14일이었으므로 오순절이 항상 일요일이었을 수는 없으며, 따라서 유대인들이 그 일요일을 1500년 동안이나 지켰다는 것은 모순된 주장이다. - 편집자

 

(3) 사도행전 20장 7절 "주일 중 첫날에 제자들이 떡을 떼기 위해 모였을 때…"등을 말함. - 역자주